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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5~16일 부산-경남행을 끝으로 중단되었던 희망탐방이 재개됐습니다.

50일만의 나들이인 셈입니다.

영주에서 보낸 하루를 사진으로 담아봤습니다.
 

1. 영주로 출발


영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의 풍경을 보니, 밤사이 눈 내린 흔적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치악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화장실로 향하던 중 의자에 생긴 고드름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겪은 추위를 대변해주는 것 같군요.


2. 성혈사

영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성혈사였습니다.


나한전은 한창 보수 중이었습니다.
나한전은 조선시대 불교 공예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문에 새겨진 독특한 무늬는 독특함을 자랑하는데요. 
이에 대해 김봉렬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나한전의 문에 새겨전 무늬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무늬는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물, 땅, 하늘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좌측 문의 우측 하단에 꽃게도 보이네요.
올라갈수록 연꽃, 소년도 나오고, 올라가면 극락조도 등장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 때문에 사찰의 크기를 늘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사찰 예술들은 이렇게 문과 같은 곳에 장식하는 식의 제한을 받았습니다.



나한전에서의 설명이 끝나자 등현스님이 우리 일행을 방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이 자리에는 인도에서 유학 온 외국인 스님도 계셨는데,
등현스님의 유창한 영어실력에 다들 놀랐습니다.




성혈사를 떠나려하자 함박눈이 내리네요.
'더 머물러 있다가 가라'는 뜻이었까요?


3. 부석사

이제 부석사에 도착했습니다.
산사의 설경은 도시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이날 눈바람이 변화무쌍하게 몰아쳤습니다.
오후가 되자 진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김형오 의장은 무량수전에 들러 절 3배를 했습니다.

이후 모두가 무량수전에 관한 김교수의 설명을 들었는데,
실제 배흘림 기둥과 건물 곳곳을 보며 고려시대 건축의 우수성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지어진 건물들 중에 뛰어난 건물도 아닌데도
현존함으로써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데,
당시의 우수한 건물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무량수전을 둘러본 뒤,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보자마자 놀랄 수 밖에 없었어요.
눈과 입이 호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만두처럼 싼 유부로 만든 전골'(우측 중간)과
'곶감에 잣이 끼워진 수정과'(좌측 하단)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음식입니다.




공양을 마친 뒤, 근일 큰 스님을 친견했습니다.
스님은 큰 정치를 해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의장님 내외가 다정하게 앉아 계시니 아침 방송에 나온 느낌입니다.






떠나는 의장과 남아있을 스님.
서로 마음이 통하였을까요? 작별의 아쉬움을 웃음으로 대신합니다.


3. 소수서원

오후 일정은 소수서원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개천을 옆에 두고 서 있는 정자가 운치 있어 보이네요.






위 사당은 소수서원 내의 문성공묘입니다.

보통 사당을 칭할 때, 사(祠)와 묘(廟) 중 대체로 사(祠)를 쓰는데,
유교적으로 매우 큰 일을 한 사람에게 있어서 묘(廟)를 붙인다고 합니다.

문성공 안향은 최초의 주자학자로서의 공을 인정받아
그를 기리는 사당에 묘(廟)의 칭호를 새기게 됐습니다.


김봉렬 교수가 차분하고 논리정연하게 설명해줬다면
박석홍 선생(바로 위 사진)이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소수서원을 나오는 길인데, 참 묘한 풍경입니다.
좌측에는 대나무가, 우측에는 소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거든요.


4. 소수박물관

소수박물관에는 조선시대 유학 관련 유물을 포함해서
영주 일대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유물,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과거시험 답안지입니다.
꺼멓게 먹으로 눌러진 자국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길죽한 '어사화'는 과거급제자에게 임금이 내려주던 종이꽃입니다.
여기에 전시된 것은 '김영'이란 인물이 문과에 급제하여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제향에 관한 것을 묘사했군요.



강학 장면을 미니어쳐로 만들었네요.

소수서원(사적 제55호)은 우리 나라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이었습니다.


5. 선비촌

소수서원 나온 우리들은 인근에 선비촌이란 한옥마을에 가봤습니다.
민속촌을 연상시키는군요.







6. 풍기인삼시장

풍기는 금산, 강화 등과 함께 우리 나라에서 인삼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김형오 의장은 풍기인삼시장에 들러 상인들을 만나 그 분들을 격려하고 위로했습니다.



7. 돌아가는 길


일정을 마치고 상경하던 중 김연아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우승했더군요.
마지막에 출전한 안도 미키가 2위가 되는 순간, 버스 안은 환호성과 박수가 넘쳤습니다.
TV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번 김연아의 역전 우승은
주말 탐방을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선물이 됐습니다.



[ 탐방 에피소드 ]



정성스럽게 차려진 다채로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 있는 보살님들께서 힘써주신 덕분이 아닐까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부석사에 있는 동안 눈바람이 멈추지 않아 신발에도 눈이 쌓였습니다.
사찰 앞뜰에 소용돌이가 생기기도 했을 정도였죠.
만일 털지 않고 신발을 신었다간~ 윽~!




공양을 마친 뒤, 찍은 몰카 한 컷입니다.
이런 의장의 모습에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량수전을 둘러본 뒤, 우연히 만난 어느 가족과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역사여행 나온 모습이 무척 보기 좋네요.



단체 사진을 찍을 때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수, 찍히는 사람은 과녁이 된 느낌입니다.
서있는 사람이나 찍는 사람이나 딱 고정되어 있는 것만큼은 일사불란하군요.




이번 탐방을 통해 '좌우명'의 뜻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직역하면 "항상 하늘이 준 책은 앉은 자리 오른쪽에 둬야 한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즉, "마음을 깨우쳐 줄 좋은 말씀을 걸어두고 습관적으로 살핀다."란 뜻이죠.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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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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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연 2009.12.25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았습니다 역 풍기입니다

  2. 김연 2009.12.25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우리고향 풍기입니다

  3. 좌우명 2017.06.09 18: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좌우명(座右銘)이라는 말은 후한(後漢)때 최원(崔瑗 78~143)이라는 서예가로부터 유래됐다고 합니다.
    崔瑗은 젊은시절 자신의 형이 괴한에게 피살되자 원수를 찾아 복수하고 도망다녔습니다.
    몇년후 죄가 사면돼 고향에 돌아온 최원은 자신의 과거 행실을 바로잡을 교훈적인 문장을 지어 쇠붙이에 새겨(銘), 의자(座)의 오른쪽(右)에 걸어놓고 매일 바라보며 반성의 자료와 일상생활의 거울로 삼고 스스로를 가다듬었다고 합니다.

    (东汉书法家崔瑗年轻时好意气用事,他哥哥因被人杀害,大怒之下杀了仇人,只身逃亡。几年后,朝廷大赦,才回到故乡。崔瑗自知因一时鲁莽起大祸,吃足苦头,就作铭(文体的一种)放在座位的右侧,用以自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