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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 속의 고향을 찾아
-사진으로 스케치한 아주 특별한 네팔 기행

<편집 노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며칠 전 (주)택산상역 우헌기 대표이사로부터 20여 컷의 사진을 메일로 받았습니다. 김 전 의장과 우헌기 대표는 대학 동문으로 지난 8월 이스탄불에도 함께 다녀온 오랜 친구 사이입니다. 김 전 의장은 친구가 보내온 사진들을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가 수준의 퀄리티와 함께 거기 담긴 사람이며 풍광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 대표에게 캡션과 함께 짤막한 글을 부탁했습니다. 아래 글과 사진들이 그 결과물입니다. 신문으로 치면 특별 기고라고 할까요. 좋은 사진과 유려한 글 솜씨로 블로그를 빛내 주신 우헌기 대표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모든 사진은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헌기 택산상역 대표이사는 '천년의 미소'라는 블로그(http://blog.naver.com/hgwoo0920) 아이디에 어울리는 인상을 갖고 있다. 신라 불상의 은근한 미소를 떠올리게 하는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사람과 풍경에 관심이 깊고 여행을 좋아하는 그의 어깨에는 늘 카메라가 매달려 있다. 빛나는 인문학적 지식과 통찰력으로 지인들을 감탄시키곤 한다. 보기와는 다르게 등산은 물론 스키, 스킨스쿠버다이빙, 빙벽 등반 등 다이내믹하면서도 익스트림한 취미를 갖고 있는 만능 레포츠맨이다.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매일매일 가슴 설레는 삶을 살고 싶어하는' 영원한 청년이기도 하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네팔에 다녀왔다. 이번이 세 번째다. 그 중 두 번은 ‘랑탕국립공원’을 찾았다. 이번엔 트레킹만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그곳을 방문했다. 그곳에 사는 ‘따망족’들의 호흡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어릴 때의 기억을 찾아, 향수를 달래기 위해, 사람도 자연도 너무나 변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현실의 고향이 아니라 ‘내 맘 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고향’을 찾아 떠났다.
  따망 사람들은 오래 전에 티베트에서 넘어와 2000~3000m 고지대에 정착하여 어렵게 생활하는 소수 민족이다. 그들은 가파른 산 중간 중간에 있는 조금 평평한 곳에는 어김없이 계단식 논밭을 만들고 마을을 이루어 산다. 농토의 크기에 따라 몇 가구에서 몇 십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지금 그들이 사는 수준은 우리 어릴 때보다도 더 열악한 것 같다. 농토와 재배하는 곡식 종류가 한정되어 있어 식량도 풍부하지 않았다. 과일나무도 눈에 띄지 않았다.

  5년 전 처음 그곳을 찾았을 때, 그곳은 마치 고향처럼 느껴졌다. 모든 모습이 너무 친근하고 편안해서 나는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여기서 한 서너 달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돌아왔다. 그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내 어릴 때 모습과 너무 유사했기 때문일까. 그곳의 모든 불편이 내게는 오히려 더 평화로웠다. 전기가 없는 그 마을 사람들은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났다. 일상생활을 해와 더불어 시작하고 마무리했다. 땔감을 장만하는 모습이나, 꼴을 베는 풍경도 눈에 익다. 주변 환경도 우리와 유사한 것이 많다. 작은 정원에는 분꽃도 있고 무궁화도 있다. 쌀, 토란, 밀, 파, 배추, 감자, 고구마, 호박 등 그곳 사람들의 주요 먹을거리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들이다. 그들은 빵과 커리와 기장죽을 곁들인 밥을 주로 먹는다. 향신료를 쓰지 않아 음식이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난 우리와 비슷한 외모, 해맑은 얼굴, 순박한 삶의 모습에서 어릴 적 우리 시골 사람들을 보았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가 지게로 짐을 나르는 것과는 달리 물건을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메고 다닌다. 짐승 털로 만든 외투는 매우 무겁다. 비가 올 때는 우비 역할도 한다.

이곳 사람들은 보통 머리에 뭔가를 쓰고 있다.
어른들은 모자를 쓰고, 어린이들은  이 아이처럼 머리에 수건을 두르기도 한다.

카트만두에 사는 어린이들.
때깔도 다르고 생긴 모습도 많이 다르다. 카트만두에선 중동 사람, 인도 사람 등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카트만두 시 동네 어귀에 있는 힌두교 신 앞에 선 어린이.

제대로 씻지도 못한 얼굴, 땟국 물이 흐르는 옷 등 어릴 시절 나의 모습도 이와 비슷했으리라.

길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부드러운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풀 뜯는 소가 내는 워낭 소리다. 스위스 관광 상품인 소 방울 소리보다 훨씬 부드럽다. 주변을 둘러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소를 돌보고 있다.
이 할아버지의 복장이 전통 의상이다. 모자는 안 쓰고 있지만 허리에 두꺼운 띠를 두르고, 큰 칼을 차고 다닌다. 사냥용은 아니고 길 가다 방해가 되는 풀이나 나무를 만나면 베는 데 사용한다. 소꼴을 벨 때도 이 칼을 쓴다. 낫을 사용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사진 찍기 좋도록 포즈를 잡아주고 혹시 안약이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감기약 등 비상약은 가지고 다니지만 안약을 준비하지 못해 미안했다. 다음에는 그런 약도 좀 준비해야겠다. 단, 의사의 처방이 없어도 되는 약으로.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직녀.
이 여인의 의복(모자, 허리띠)이 따망족들의 전통 복장이다.

머리에 짐을 매달고 길 가던 여인을 카메라에 담았다.
등 뒤에 매단 짐이 아니라면 머리띠로 착각했을 것 같다.

가뜨랑에서 만난 전통 모자를 쓴 할머니.
이 할머니가 한 전통 귀걸이가 매우 큼지막하다.
모델이 돼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바나나 두 송이를 드렸더니 답례로 구운 옥수수 몇 개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풀 베고 있던 아주머니에게 잠시 부탁하여 찍은 사진이다.
이곳 사람들은 대체로 사진 찍자는 요구에 잘 응해준다. 가끔은 피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먼저 찍은 사람들을 모니터로 보여주면 십중팔구는 응해준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은 사진을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답을 하기 어렵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카트만두에 있는 여행사로 보내면 그 사진을 다시 가는 포터 편에 보내줄 수 있다. 여행 도중에 만난 한 오지 여행가는 내게 사진을 찍었으면 반드시 인화해서 보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자기는 즉석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거나, 작은 인화기를 휴대해 현장에서 현상해 준다고 했다. 이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진을 꼭 보내 줘야겠다.

허름한 집들 사이로 멀리 어린이와 개가 보인다.
막 ‘응가’를 마친 어린이, 그걸 먹어치운 개다. 여기에선 익숙한 광경이다.

전통 복장을 한 15세 소녀. 수줍은 듯, 우수에 잠긴 듯한 표정이 눈에 밟힌다.
옷이 유난히 깨끗하다. 이렇게 깨끗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그런 산골에서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 소녀는 지나는 여행객들에게 음식을 파는 식당 집 안주인의 여동생이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곳에 사는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카트만두에서 언니 집에 다니러 온 모양이다.

가뜨랑에서 나따리 온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식당에서 만난 전통 복장을 한 자매. 왼쪽이 언니(식당 집 안주인)다.

키질하는 여인. 전통 복장(모자, 조끼, 허리띠, 치마) 차림이다.
치마는 수를 놓은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 앞뒤로 둘러 입는다. 우리가 치마 위에 앞치마를 두르듯 앞, 뒤 치마를 치마 위에 두른다.

짐을 지고 지나가다 잠깐 쉬고 있는 동네 사람.
이들은 이렇게 등짐을 지고 산길로 물자를 나르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마다 짐꾼들이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두었다. 짐을 쉽게 내리고 다시 질 수 있도록 돌로 단을 만들어 두었다. 인가 없는 곳에서 밤을 새워야 할 사람들을 위해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간이 가옥도 있다.

길을 가던 두 사람.
짐승 털로 만든 외투를 입은 이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 짐을 지고 우산을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비가 올 때는 그대로 비를 맞는다. 겉옷이 충분히 우의 역할을 한다. 허리띠가 이색적이다. 이들은 짐을 지고 산길을 가면서도 샌들을 신고 다닌다.


다른 동네로 일보러 가는 여인.
샌들을 신고 있다. 머릿수건, 허리 띠, 앞치마 등 전통 복장 차림이다.

여인들은 귀걸이, 목걸이 등 장신구를 좋아한다.
어린이나 어른, 노인 모두 마찬가지다.

눈에 익숙한 모습이다. 코를 흘리는 저 어린이.
내 시계가 5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이곳 사람들의 집. 2층 구조다.
아래층은 축사나 창고로 사용하고 위층에 사람이 거주한다.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려 습기를 피하려고 그럴 것이다. 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지붕에는 돌을 얹은 너와집이다. 창틀은 장식을 했다. 가파르고 좁은 사다리 계단이 어린들이 오르내리기에는 위험해 보인다.

마을길과 가옥들. 집 크기나 모양이 모두 닮은꼴이다.
다락 밑으로 송아지가 보인다. 집 앞에 조그마한 채소밭도 가꾸고 있다.

굴뚝이 없다. 부엌이 집안에 있고 연기는 그냥 지붕이나 벽에 난 구멍을 통해 나간다. 지붕을 덮고 있는 것은 안개가 아닌 연기다.
이곳 사람들은 밥을 지을 때 발생하는 열을 왜 난방으로 사용하지 않을까?

학교를 잠시 쉬고 세계 여행 중인 네덜란드 대학생 두 명을 안내하던, 영어가 완벽한 여행 가이드. 식견도 풍부했다. 자기 조국의 앞날에 대한 희망과 걱정도 많았다. 이야기 끝에 그 많은 아이디어와 식견으로 네팔의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관광장관이 되면 뜻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물어보니 자기는 왕손이란다. 어디서 영어를 배웠는지는 물어보지 못 했지만, 유학을 했거나 외국인 학교에 다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반쯤 졸고 있는 아기를 등에 업고 있는 어린이.
우리 어렸을 적에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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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마일 2010.10.21 17: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느낌이 풍부한 사진들입니다.
    이례적으로 이웃에게 블로깅을 허락했군요.
    이 블로그의 열린 정신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김형오 의장님과 우헌기 사장님의 우정도
    참 부럽고 보기 좋습니다.

  2. BlogIcon 마리오카트만두 2010.10.22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팔 한번 가보고 싶네요.
    정말 멋진 풍경입니다.
    산을 배경으로 키질을 하는 여인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네요.

  3. 나는야언제나술래 2010.10.22 1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를 찾는 숨바꼭질,
    여행이란 역시 그런 것인가 봅니다.

  4. 타임머신 2010.10.24 09: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땐 그랬지, 우리도 이랬었지,
    그런 생각과 감동 속에서 잘 보고 갑니다.

  5. 모리 2010.10.26 1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하 코흘리개 녀석 귀엽군요.
    옛생각이 모락모락 납니다.
    우리나라도 가난할때 열심히 살아보자 그렇게 애썼는데
    지금은 자살율도 높고.. 풍요속의 빈곤인건가요..
    괜시리 마음이 쨘해집니다.

  6. 최은희 2012.02.03 0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지회보에서 읽고 여기와서 사진까지 보고갑니다. 평화로움이 가득하네요. 사막의 마라톤을 원본을 읽고 싶어서 왔는데..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