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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의 유머 펀치 ⑦=양들의 침묵, 양들의 친목?

뭉치면 덥고 흩어지면 춥다?


양(羊) 하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착하다, 온순하다, 유약하다, 뭐 그런 단어들이 연상될 것입니다. 국어사전에도 양은 ‘성질이 매우 온순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돼 있고, 이솝우화 속에서도 양은 늑대의 대척점에 존재합니다. ‘양의 탈을 쓴 늑대’란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아니 정반대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양만큼 이기적이고 못돼먹은 동물도 없다는 얘기죠. 그 근거로는 양들의 다음과 같은 습성을 예로 들더군요.

양들은 보기와는 달리 심보가 아주 고약하다. 한여름엔 악착같이 붙어서 지내고, 한겨울엔 멀찌감치 떨어져 생활한다. 왜? 한마디로 남들 좋은 꼴을 못 보겠다는 거다. 그래서 여름엔 남들 더 더우라고 몸을 밀착하고, 겨울엔 남들 더 추우라고 일부러 따로 격리되어 논다. 털의 보온성을 역이용한다. 그로 인해 자기 또한 더 덥고 더 춥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상대방을 골탕 먹이려고?


글쎄요, 실제로 양들이 저런 습성을 갖고 있고 또 그 이유가 성질이 고약해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지난해 8월 이스탄불에 갔을 때 성벽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양떼들(아래 사진 참고)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정말인가? 불볕더위인데도 하나같이 몸을 밀착시키고 있는 걸 보면 양들은 진짜로 바보 같고 이기적인 동물인가?


그러나 곧바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건 누군가가 웃자고 지어낸 유머일 뿐 양들이 그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동물학자는 아닙니다만, 긍정적으로 상상해보면 이런 가설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양들이 한여름엔 붙어서, 한겨울엔 떨어져서 생활하는 건 맞다. 하지만 거기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숨어 있다. 더운 날엔 내 몸으로 태양을 가려 뜨거운 햇볕을 막아 주려고, 추운 날엔 내 몸이 따뜻한 햇살을 가로막는 걸 피하려고 밀착 혹은 격리돼 지내는 것이다.


성벽 아래 양들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어보아도 그들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순간 <양들의 침묵>이란 영화 제목이 떠올랐지만 그 또한 제목을 살짝 바꾸기로 했습니다. <양들의 친목>으로 말입니다. 그래요, 양들은 마치 친목계라도 하고 있는 듯 평화로운 풍경이었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동화책 『못된 늑대와 어리석은 양들의 이야기』는 어른들에게도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대강 이런 줄거리입니다.


숲속의 양들이 모여 늑대를 물리치기 위한 회의를 연다. 다채로운 아이디어들이 속출한다. 줄지어 돌진해 늑대를 납작하게 밟아 버리자, 커다란 바위를 산 위에서 굴려 늑대를 압사시키자, 새총을 만들어 일제히 늑대한테 쏘자, 숲에 불을 지르자, 늑대 옷을 입고 늑대를 속이자, 양털을 모두 깎아 야위어 보이게 위장하자, 풀들을 죄다 먹어치워 뚱뚱해진 다음 풍선처럼 하늘로 날아오르자…. 양들은 서로 자기 의견만 옳다고 내세우며 다투다가 뿔뿔이 흩어지고, 결국 늑대는 한 마리 한 마리씩 맛있게 냠냠….


여러분은 이 우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떠올렸나요? 나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연상했답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과 생각은 공염불이고 ‘그림의 떡’입니다. 한편으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란 말도 생각나더군요. 결집력 부족과 리더십 부재란 측면에서 말입니다.

늑대를 물리칠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있습니다, 누군가 ‘희생양’이 되면 가능합니다. 목숨 걸고 늑대 목에 방울을 다는 양이 나타나면 되는 겁니다. 잡아먹힌 새끼들을 늑대 뱃속에서 구해내기 위해 잠든 늑대의 배를 가위로 자르는 어미 양의 모성애와 용기가 있으면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이 나타납니다.

‘희생양’이란 뭡니까?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람 대신 양을 제물로 바친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요즘엔 의미가 바뀌어 타인의 이익이나 집단의 목적을 위하여 목숨․재산․명예․이익 따위를 바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즐겨 쓰는 표현이죠.

인터넷에서 양의 희생정신과 관련해 코믹하면서도 의미 있는 캠페인성 광고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서원 작가가 디자인한 다음과 같은 작품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런 두루마리 화장지를 걸어 놓는다면 인간의 편익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내줌으로써 속까지 다 파헤쳐진 양이 가련해서라도 휴지를 아껴 쓸 것 같지 않습니까?

양들은 그 생김새처럼이나 양순한 동물입니다. 이제부터 그들이 왜 더운 날엔 뭉치고 추운 날엔 흩어지는지 그 까닭도 정확히 모르는 채 그저 웃자고 양들을 ‘몹쓸 것들’로 매도하지 맙시다. 왜냐면 양들이 매애애~~ 하고 비웃으면서 이렇게 반문할는지도 모르니까요.

“매애애~~, 인간, 그러는 당신들은 이기적인 유전자의 동물인가요, 이타적인 유전자의 동물인가요? 매해해~~”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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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7라운드 관전평 2011.10.06 1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장실에 희생양이 살고 있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촌철살인 유머펀치에 이번에도 녹다운!

  2. 쉽새끼 2011.10.06 1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큰 배는 쉽 작은 배는 쉽새끼.
    어미양은 쉽 아기양은 쉽새끼.

  3. 멤버십 2011.10.06 1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양들은 친화력과 동료애가 좋습니다.
    Membership은 혹시 어원이 Membersheep 아닐까요?

  4. 1 2011.10.06 17: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웃겨

  5. 주제용 2011.10.06 1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들의 침묵은 양떼의 침묵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참고하세요.

  6. 캐시미어 2011.10.07 0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40대를 지나면서 부부는 사시사철 한겨울의 양이 됩니다.
    죽어라고 떨어져 잡니다.

  7. 언어도치 2011.10.09 0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침묵과 친목?
    문득 침목과 목침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침목을 목침 삼아 베고 철길 위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어느 자살남의 모습.

  8. 魚鱗羊 2011.10.14 0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고기 비늘을 뒤집어쓴 어린양이 바다를 건너갑니다.
    양떼구름이 비친 바다 풍경입니다.

  9. 이단아 2011.10.24 2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서원 작가는 두산가 재벌 회장 아들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홀로서기, 따로서기에 성공한 듯이 보입니다. 속까지 내준 양 두루마리 화장지 걸이, 기발하고 참신하네요.

  10. 캐시미워 2011.10.31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막힌 서커스단입니다.
    개랑 갈매기랑 교배해 낳은 개새가 우리 서커스단 마스코트였는데 이번에 갈매기랑 양이랑 쥐랑 삼종교배로 다크호스를 탄생시켰습니다.
    이름하여 새양쥐.
    많이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