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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lls of Heraclius, Leo and Manuel Comnenus


엄밀히 말하자면 테오도시우스의 삼중 성벽은 크세르 케르코 문에서 끝나고 그 다음부터는 다른 성벽이 이어진다. 헤라클리우스 성벽, 레오 성벽, 마누엘 콤네누스 성벽이 그것들이다. 마누엘 콤네누스 성벽은 12세기, 헤라클리우스 및 레오 성벽은 7~9세기 성벽으로 그 전까지 이 지역에는 성벽이 없었다. 성모 마리아 교회에 존재하던 성모의 허리띠와 성수가 도성을 지켜 준다는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외적의 침입이 잦아지자 성 밖의 성모 유품들을 그때마다 성 안으로 들여 놓아야 했고, 그런 번거로움과 위험성이 결국 이 지역에 성곽을 쌓게 만들었다.(내 책 2장 220~223쪽 '황제의 일기'와 '술탄의 비망록', 부록 395~398쪽 참고)

 

성벽의 모습을 나타낸 지도(1925년에 발행된 두 장의 도시 계획 지도를 합성하여 만들었음).

① 레오성벽

② 헤라클리우스 성벽

③ 마누엘 콤네누스 성벽

④ 텍푸르 사라이(궁전)

⑤ 테오필로스 성벽(골든 혼 해안 성벽)의 시작 지점

* 직사각형은 사각형 성탑,  아치형은 다변형(6~8각형) 성탑을 나타낸다.

  

골든 혼 해안에서 이어지는 육지 성벽의 시작 지점. 빨간색 바탕에 하얀색 초승달이 그려진 터키 국기가 나부끼고 있다. 나무들이 성탑과 키재기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예산 지원을 받아 복원한 모습이다.

 

블라헤니아 성문 안으로(2010년 8월 5일). 양 옆으로 도열한 꽃들이 입성하는 우리 일행을 맞아 주었다. 저 하얗고 빨갛게 피어난 꽃잎들에 정복 전쟁 당시 숨진 병사들의 얼과 혼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닐는지…. 나무에 가려 있지만 앞에 있는 성벽은 레오 성벽, 뒤에 높이 솟은 탑은 헤라클리우스 성벽의 6각형 성탑이다.

 

6각형 성탑(왼쪽)과 4각형 성탑(오른쪽). 사진 왼쪽이 헤라클리우스 성벽과 성탑, 오른쪽(앞쪽)은 레오 성탑과 성벽이다. 레오 성벽은 여기가 끝이다. 헤라클리우스 성벽은 골든 혼 해안 성벽과 만나는 육지 성벽 북쪽 끝 요새화된 지역의 안쪽 벽을 이루고, 레오 성벽은 육지 성벽 북쪽 끝 부분의 바깥쪽 방어 벽을 일컫는다.

 

블라헤니아 성문 안으로…. 헤라클리우스 성벽과 레오 성벽, 마누엘 콤네누스 성벽이 축성되면서 그 전까지는 테오도시우스 성벽 앞쪽으로 있던 블라헤니아 궁, 텍푸르 사라이, 성모 마리아 교회 등이 모두 성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맨 앞에 붉은 배낭을 멘 모자 쓴 사람이 필자)

 

헤라클리우스 성벽 위에서 골든 혼을 건너다보며 찰칵! 앞의 성벽은 레오 성벽이고, 멀리 보이는 시가지는 골든 혼 건너편에 있는 페라(갈라타) 지역이다.

 

헤라클리우스 성벽에서 무너진 레오 성벽과 고속화 도로를 보면서. 오른쪽 세로로 꽉 채워진 구조물은 헤라클리우스 성탑 일부이다.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626년 아바르군의 공격을 막은 다음 본래 있던 테오도시우스의 성벽 북쪽 끝 부분을 다시 쌓았다. 

 

헤라클리우스 성벽에서 바라본 골든 혼. 왼쪽 높은 벽돌 탑은 헤라클리우스 성탑, 오른쪽 성벽은 9세기에 축성된 테오필로스 해안 성벽의 시작 지점이다.

 

헤라클리우스 성벽을 오르내리는 계단은 성 안쪽에 있다. 누군가 계단 디딤돌 전면에 'MERT'라고 낙서를 해놓았다. 'Mert'는 터키어로 '대장부(大丈夫)'란 뜻. 전혀 대장부답지 않은 행위이다.

 

아이반 사라이(블라헤니아 궁) 부근에 있는 성모 마리아 교회. 이곳은 성모의 허리띠가 보관돼 있던 성소였고, 여기에서 성수까지 나와 신성시되었다. 궁전과 가까워 황제와 조신들이 자주 이용했다. 정복 전쟁 발발 20년 전 아름다운 비잔틴 양식의 교회는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후 몇 차례 신·개축을 거듭하였으나 옛모습은 사라졌다.  지금도 그리스 정교회 교회로 존속되고 있다.

 

성탑과 성벽. 헤라클리우스 성벽에는 육각형 방어탑이 세 개 있었다. 그리고 레오 성벽은 골든 혼 쪽에 두 개, 트라키아를 향하고 있는 서쪽에 두 개의 방어탑을 두고 있었다. 마누엘 콤네누스 성벽의 경우에는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해자를 팔 수 없었으므로 성탑도 다른 곳보다 더 튼튼하게 지었다. 성탑과 성벽은 최근 보수한 흔적이 뚜렷하다. '개선'인지 '개악'인지 한눈으로 판단할 수 있다.

 

다시 궁 밖으로 나왔다. 블라헤니아 황궁과 결합돼 있는 옹벽. 성벽을 더욱 굳건하게 지탱시키는 축대 역할을 했다.

 

맨 오른쪽은 마누엘 콤네누스 성벽, 왼쪽 앞은 레오 성벽, 왼쪽 뒷편은 헤라클리우스 성벽. 성벽의 앞은 전쟁 발발 직전 긴급히 해자를 팠던 곳이다. 지금은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텍푸르 사라이(궁전)와 성벽의 결합. 돌출돼 있는 원통형 물체들은 대포? 노! 성 아래에서 성 위로 물건을 들어올리기 위한 장치였다.

 

왼쪽은 12세기(텍푸르 사라이 일부), 오른쪽은 9세기에 보수한 성벽으로 추정된다. 300년의 시차를 두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성벽을 보면서 세월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유네스코의 예산 지원을 받아 보수 완료된 성벽(왼쪽 아래)과 옛 성벽. 현대와 중세의 어색한 공존이다. 보수된 성벽 틈새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잡초의 저 왕성한 생명력!

 

벽돌과 돌로 촘촘히 쌓아올린 마누엘 콤네누스 성벽. 보수한 흔적이 눈에 거슬린다. 마누엘 콤네누스 성벽은 테오도시우스 성벽 북쪽 끝에 위치한 텍푸르 사라이 바로 북쪽, 활 모양으로 돌출된 부분을 지칭한다.

 

비잔틴 건축 양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텍푸르 사라이의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지금은 복원 공사 중이라서 출입 금지 구역임). 이 사진은 2010년 여름에 방문해 찍은 것이다. 내 등 뒤에는 늘 포대기로 업은 아기처럼 배낭이 매달려 있었다. (우리 일행 넷이 뒷모습으로 서 있다. 배낭 멘 내 오른쪽은 총영사관의 정은경 박사, 왼쪽은 성벽 탐사에 열 일 제치고 달려온 니사 박사, 맨 왼쪽은 조병도 보좌관.)

 

텍푸르 사라이의 내부. 실내 장식이나 구조물들은 모두 소실되었지만, 벽만은 거의 온전한 형체로 남아 있다. 벽과 맞물린 지붕, 천장, 난간, 마루 등의 흔적으로 당시 모습을 어느 정도는 상상해 볼 수 있다.

 

밖에서 본 텍푸르 사라이의 아름다운 모습. 과연 황제와 가족들이 살던 궁전답다. 공주와 왕자들이 저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아치형 창 밖으로 얼굴을 쏙 내밀 것 같지 않은가.

 

9세기에 보수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 흙과 벽돌을 주재료로 축조되었다. 그 사이사이에 강력한 접착제가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아치형 성문(소문)이었던 곳도 성벽 보호와 방어 목적으로 폐쇄되었다.

 

마누엘 콤네누스 성벽의 공식 문이면서 유일한 출입구인 에으리 카프(칼리가리아 문). '굽은 문'이라 해서 성문을 앞뒤로 다니며 얼마나 휘어졌나 살펴보았다. 사진상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성 밖으로 나가는 길이 눈에 띄게 휘어지고 굽어 있었다. 성문 바로 앞에 이슬람 공동묘지가 있어 무덤을 우회해 좁은 길로 통행해야 했기 때문이다.(내 책 396쪽 참고) 에으리 카프 위의 성탑은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최후의 전투가 있기 직전 마지막으로 올랐던 곳이다.

 

안쪽에서 본 마누엘 콤네누스 성벽. 막힌 아치형 성벽이 매우 아름답고도 견고하다. 해자도 없는 외겹 성벽이어서 술탄이 이곳을 뚫으려고 거센  공격을 퍼부었지만 결코 뚫리지 않았다.

 

성탑 내부의 2층 마루는 사라졌지만 아치형 2중 총안이 있어 그 틈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얼마나 견고하고 치밀하게 설치됐는지를 한눈으로 알 수 있다.

 

맨 오른쪽은 성벽을 겸하는 블라헤니아 궁의 옹벽, 왼쪽 앞은 레오 성벽, 왼쪽 뒷편은 헤라클리우스 성벽이다. 블라헤니아 황궁을 방어하던 철옹성들이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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