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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2012-12-07 기사  바로가기 클릭

 

 비잔틴제국의 심장 콘스탄티노플은 중세 최강의 방어라인을 자랑했다. 육지 쪽으로 삼중 성벽이 둘러져 있고 해안의 좌우엔 거대한 쇠사슬이 연결돼 함대 근접을 막았다. 이 난공불락의 요새도 최후를 맞는다.

1453년 5월 29일 새벽 2시. 8만의 오스만튀르크 대군은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마지막 총공세를 펼친다. 비잔틴제국은 시민군, 외인부대까지 모두 합쳐 7000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철옹성 안에서 54일을 버텼지만, 전선의 최선봉을 이끌던 주스티니아니가 부상을 핑계로 도주하자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비잔틴군 전의는 일시에 무너졌고 침략자 사기는 충천했다. 신형무기인 거포의 탄환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막 해가 뜰 무렵 둑의 봇물이 터지듯 외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황제는 한 사람의 비잔틴 병사로서 장렬한 최후를 맞으려는 결의였을까. 제위를 상징하는 자줏빛 망토와 문장을 벗어던진 뒤 심복 2명과 함께 적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고 잠시 후 자취도 없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세계사를 바꾼 사건으로 평가된다. 중세 서양문명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비잔틴 제국의 멸망은 중세의 종말임과 동시에 근세의 시작을 의미한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펴낸 `술탄과 황제`는 1000년 이상 세계 중심이었던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놓고 세기의 대결을 펼쳤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틴 제국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이야기다. 자료 조사를 위해 전쟁의 무대인 터키 이스탄불을 다섯 차례 다녀왔고 수십 명의 전문가와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장장 54일간 세계 전투사에서 유례가 드문 격전을 치른 술탄과 황제의 리더십, 인간적 고뇌, 전쟁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압권은 20대 청년 메흐메드 2세가 철벽 수비로 막힌 바닷길을 뚫기 위해 배를 이끌고 산을 넘어가는 장면이다.술탄은 육지에 목제궤도를 깔고 갈라타 언덕을 넘어 함대를 이동시키는 역발상으로 난관을 돌파했다. 황제는 성벽을 과신해 공성용 무기에 무관심했다. 헝가리 대포기술자가 처음 찾아간 사람은 황제였지만 거부당하자 술탄에게 새로 개발한 거포를 넘겼다.

[배한철 기자]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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