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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뉴스]2012-11-28  기사  바로가기 클릭

 

"천년보다도 더 긴 하루였다." 1453년 5월 29일,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함락의 날을 그는 이런 표현으로 시작했다. "새벽 2시. 날씨는 맑고 바람은 신선했다. 서편 하늘로 달이 흘러가고, 유성이 빗금을 그으며 화살처럼 떨어져 내렸다." "드디어 대포 소리와 군악대 악기소리, 8만 대군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우렁찬 함성이 새벽공기를 갈랐다." 8만대군을 이끈 이는 오스만제국의 스물한 살 패기만만한 청년 술탄 메흐메드 2세. 그는 성벽을 향해 "총공격"을 외치며 전진, 또 전진하고 있었다. "이들이 내지르는 엄청난 함성과 기괴한 복장, 다양한 무기, 쏜살 같은 움직임은 집단적 공포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고 저자는 기록한다.

술탄이 이끈 대군의 파상공세를 담담히 바라보고 있던 이는 40대 중반의 비잔틴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하지만 전선 최선봉에 섰던 용병대장 주스티니아니가 치명상을 입고 후퇴하자 황제도 우왕좌왕한다. 제국의 멸망을 직감한 황제는 눈을 지그시 감는다. 자줏빛 망토를 벗어 던졌고, 제위를 상징하는 문장도 버렸다. "내 심장에 창을 꽂아 줄 기독교도가 단 한사람도 없단 말인가." 황제는 검을 뽑아들고 적군 한가운데로 달려나갔다. 1400년 화려한 영광의 로마제국 마지막 황제의 최후는 이렇듯 갑작스러웠다. 순식간에 그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 역사적인 날을 생생히 그려낸 이는 5선 의원을 지낸 김형오 전 국회의장(65)이다.

1453년 비잔틴 제국 몰락의 날을 '술탄과 황제'란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4년 전 국회의장 시절 터키를 방문했을 때 함대를 이끌고 이 가파른 갈라타 언덕을 넘어간 한 사나이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술탄 메흐메드 2세다. 승산 없는 싸움에서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채 무너지는 제국과 함께 장렬히 산화한 비탄진 최후의 황제 역시 저자에게 강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4년간 터키를 네번 방문했고 그 뒤 47일간 체류하면서 수백권의 책과 자료를 뒤적였다. 전문가, 관련 학자들의 인터뷰도 물론이다. "20년 정치인생과는 전혀 다른 인문학적 몰입의 경험이었다"고 그는 회상한다.

▲ 비잔틴 제국 몰락의 날을 생생하게 서술한 '술탄과 황제'는 지난 2009년부터 4년에 걸쳐 준비한 노작이다. 저자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 4년간 역사의 현장인 터키를 수차례 방문했고 47일간 장기체류하며 자료를 모아 책을 썼다. 김 전 의장이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둘러보고 있다.


책은 전개 방식은 소설이지만 내용은 본격 역사서인 독특한 장르다. 1장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 전투, 2장 황제의 일기와 술탄의 비망록, 3장 2012년 저자의 이스탄불 방문기로 구성됐다. 1장은 역사적 사실, 2장은 팩트에 저자의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형식, 3장은 저자의 기록이다.

정치인이 썼다고 내용이 허술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도 밝혔듯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한" 책이다. 가령 전투기간 중 그들은 무엇을 먹었는지, 취사는 누가 담당했는지, 술탄과 장군 일반 병사의 음식은 어떻게 달랐는지, 막사는 누가 설치했고 소재는 무엇을 썼는지도 저자는 관심있게 봤다. 긴박감이 느껴지는 스토리 전개, 흥미로운 팩트에 462페이지 분량이 술술 익힌다.

최진숙 기자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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