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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지켜주지 못해서, 구해주지 못해서,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어서, 진짜 아무 것도 해줄 게 없어서. 어떤 말, 어떤 몸짓, 어떤 눈물도 위로와 힘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서글프기만 하다. 덩그러니 살아 있다는 하루하루가 이렇게나 처연하고 고통스럽고 미안했던 적이 없었다. 이런 반성문을 쓸 염치조차 없지만 이 아침, 결코 잊지 않기 위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옷깃을 여미고 맑은 정신으로 참회와 애도의 마음을 적는다.

사랑하는 가족,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 마음을 어찌 헤아릴까. 어떻게 키운 내 자식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내 핏줄인데.

믿기지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저 먼 아프리카동남아에서나 아주 드물게 일어날 법한 사고가 우리 남쪽 바다에서 일어날 줄이야. 게다가 너희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고귀한 생명이 그렇게나 많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다. 이토록 무책임하고 비겁한 어른들의 세계가 알려진 것이 더없이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 모두가 죄인이다. 특히 지도층, 가진 자들의 잘못이 크다. 이 나라 모든 어른들은 어른으로서의 자격을 잃었다. 어찌나 참담하고 죄스러운지 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 정말이지 아무 죄 없는, 착하고 말 잘 들은 탓밖에 없는 너희를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진도대교 밑 울둘목은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적 함대를 물리친 곳이다. 진도의 기적이 제발 한 번만 더 일어나 주기를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주여, 이들에게 하루 속히 생명의 빛이 도달하게 하여 주시고, 그 넓은 주님 품속으로 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천국으로 향하는 어린 영혼들, 오열하는 유족들, 실종자와 그 가족들, 부상자들에게 주님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주시옵소서. 엎드려 빌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암흑의 바다 밑창에서 끄집어 올려 주시옵소서. 새 생명 주시옵소서. 주님, 살려 주시옵소서.”(420일 교회에서)

너희는 우리에게 엄중한 숙제와 책무를 안기고 갔다. 국군이 죽어서 말하듯이. 못 다 피운 너희의 꿈, 여리고 순결한 너희 영혼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영원히 기억하고 반성하고 뼈아픈 교훈으로 되새길 것이다.

한순간 생사의 갈림길에서 너희들 대신 살아남은 사랑하는 친구들이 깊은 슬픔과 자책감에 젖어 괴로워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들은 이 시련을 극복하고 떨쳐 일어나 너희들 몫까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세상을 사랑하라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라는 너희의 순결한 뜻과 소명을 완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 어른이 되어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저질러지지 못하도록 나라의 파수꾼이 되라는 사명까지 부여받았다.

요 며칠 통한과 비탄, 절망과 분노, 자책과 참회가 뒤엉킨 날들이지만 그래도 기적은, 희망은, 의로운 이름들은 살아 있었다.

충분히 살아나올 수 있었는데도 친구를 구하려고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는 선실로 발길을 되돌렸다가 학생증이 든 지갑을 양손에 꼭 쥔 채 차갑게 부모 품에 안긴 김주아양, 구명조끼를 받아 입은 여학생이 언니는요?”라고 묻자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야. 너희 친구들 다 구해주고 나중에 갈게하고는 순직한 스물두 살 승무원 박지영씨, 제자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주며 머리에 물이 차오를 때까지 아이들을 객실 밖으로 밀어내다 숨진 남윤철 교사. 이들은 마지막 가는 길까지 너희와 동행했다. 남 교사의 제자면서 너희 친구인 박호진군은 쓰러진 자판기에 깔린 다섯 살 여자아이를 안고 나와 그 애를 먼저 구명보트에 태운 뒤 배를 벗어났단다. 이밖에도 거룩한 희생과 숭고한 헌신이 수없이 많구나. 이 모두가 우리의 미래를 긍정하게 하는 희망의 얼굴, 사랑의 이름들이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 이 나라를 지탱하고 우리 국민을 이끌어왔던 힘이다. 기성세대들, 나 같은 정치인과 고위 관료, 이른바 높은 사람들이 내팽개쳐버린 사랑과 진실의 힘을 너희는 보여주고 갔다.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울고 또 울었다. 오늘 이 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고 성장한 것은 민초들의 희생과 헌신 덕분인데 나는, 우리는, 그들은 제복 입고 완장 찬 채 가만히 앉아 과일만 따먹었구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구나. 그러고도 이 나라 주인인 양 착각하고 행세한 과오를 진짜 주인인 너희가 고귀한 죽음으로 통렬하게 깨우쳐주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 미련한 방심과 불찰, 엄청난 희생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늘나라에서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주기 바란다. 두 손 모아 빈다. 이 나라가 정신적으로 나락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너희 고귀한 넋이 살아서 정신 나간 어른들을 깨우쳐주기 바란다.

기적은 간절한 염원에서 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캄캄한 바다 밑에서 너희가 두 손 활짝 벌리고 구조의 손길에 응답하리라 믿으며 기도한다.

올해 따라 유난히도 일찍 피었던 봄꽃들은 뭐 그리 바쁘다고 저리도 서둘러 꽃잎이 져서 가지를 떠났는지. 신록은 왜 또 저리 연하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지. 모란이 피려면 아직 멀었건만 찬란한 슬픔의 봄이 이렇게 속절없이 가고 있다.

나의 어린 벗들, 사랑한다, 너희들 모두 뜨겁게 사랑한다. 하늘나라 봄 소풍, 수학여행 길이 부디 편안하기를 기도한다. 너희는 나의, 우리의, 이 나라의 살아 있는 스승이었다.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 전 국회의장)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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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옐로리본 2014.04.24 0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고 또 울었는데 이 글 보니 또 눈물이... 온 국민의 뜨거운 눈물이 진도의 기적으로 환생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제발제발제발...

  2. 야수의 밤 2014.04.24 1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아니었습니다.
    일부 어른들은 짐승이었습니다.
    아니, 짐승만도 못한 악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