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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 감독 영화 명량(鳴梁)’을 보았다. 울돌목으로 바다의 울음소리, 칼의 울음소리를 들으러 갔다가 마음 안으로 실컷 울고 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이순신 장군의 고뇌에 찬 모습이 내 가슴을 서늘하게 베며 지나간다.

흥행 속도가 무섭다. 날마다 한국 영화 관객 동원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가히 명량 신드롬이다. 주요 언론도 연일 명량관련 기사와 칼럼을 쏟아내고 있다. 왜 우리는 이 영화에 이토록 열광하는가. 임진왜란 당시처럼 지금이 난세여서인가. 리더십은 실종되고, 세상을 구원할 영웅은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인가. 누가 있어 우리를 지켜주고, 침몰해가는 이 나라를 끌어올릴 것인가. 진정한 리더십, 영웅의 출현을 목말라 하는 국민의 갈망이 불멸의 이순신을 찾아 영화관으로 모여들고 있다. ‘명량이 슬프고 아프고 억울한 국민들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시간 내내 푸른 바다, 피 맺힌 바다, 한 많은 바다가 회오리친다. 처음 몇 분간은 세월호 참사를 아프게 오버랩 시킨다. 진도 앞바다에 두 개의 해협이 있다. 유속이 빠르고 물살이 거세기로 우리나라에서 첫째(울돌목), 둘째(맹골수도) 가는 해협들이다. 6000톤이 넘는 대형 여객선(세월호)은 맹골수도에서 속수무책으로 침몰했고, 그에 비하면 가랑잎에 불과한 12(실제 13)의 판옥선은 100여 척(출동한 전 함대 330)의 적함 중 31척을 울돌목 깊숙이 수장시켜 버렸다. 이순신은 울돌목 거친 물살 속에서 기적을 일궈냈지만, 우리의 지도층은 맹골수도에서 기적을 들어올리기는커녕 리더십마저 침몰시켜 버린 것이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리더십과 위기를 더 큰 위기로 몰아넣는 리더십의 극명한 차이를 보았다.

 

기적은커녕 리더십을 침몰시킨 한국 지도층

그런 상념도 잠깐, 서서히 영화 자체에 빨려들었다. 가장 위대한 장군의 영웅적 면모와 인간적 모습이 400년 세월을 뛰어넘어 관객의 몸속으로 뚫고 들어온다. 이런 수준의 영화라면 세계 시장에도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은 말보다는 마음으로, 실천으로 부하들을 움직인다. 이따금씩 던지는 극도로 절제된 발언이 더욱 육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래서이다. 영화에서 이순신은 말한다. “()은 백성을 향하여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다.” 이순신의 애민 사상이 21세기 관객에게 극명하게 전달된다. 물론 어록에는 없지만 그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대사도 있다.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이 문제지.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로 나타날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의 암울함 속에 좌절해 있던 미국 시민들에게 했던 명언(“지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두려움 바로 그 자체이다.”)과 비슷한 맥락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두려움은 이순신과 조선 수군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왜장과 휘하 수군에게도 도사리고 있었다. 이순신은 나의 두려움을 억누르고 적의 두려움을 이용했다. ‘명량의 이순신 해석, 그 압권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문제의 핵심은 두려움이다. 전쟁이든 혁명이든 대공황이든 절박한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 이순신도, 나폴레옹도, 루스벨트도, 처칠도, 마오쩌둥도 다르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흔쾌히 사약을 받는다.⑴ 과연 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십자가에 달린 예수마저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지 않았는가. 구약성경에서도 신은 인간에게 두려워 말라면서 말문을 연다. 그만큼 인간이 나약한 존재란 의미이다. 탁월한 리더십과 그렇지 못한 리더십은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서 판가름이 난다.

세계 최초의 종군 참전기라 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세력 확장에 대한 두려움이 스파르타로 하여금 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고 설파했다. 술탄과 황제를 쓰면서 내 전공(?)이 되다시피 한 비잔틴 제국 멸망사를 한번 보자.

 1123년을 지탱한 세계 최고의 제국에도 서서히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최후의 저항은 격렬하고 처절했다.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증조부 때부터 아버지 시대까지 이루지 못한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진두지휘신상필벌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비상한 머리로 직접 전략을 세우고 늘 앞장서 전투를 지휘한다. 배를 끌고 산을 넘어 항구를 점령하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성공시키는가 하면, 패전한 장수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한다. 나는 이를 두고 달리는 리더십이라 이름 붙였다. 그는 두려움을 즐기면서 극복한 몇 안 되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오스만 튀르크 600년 역사상 유일무이한 정복자란 칭호가 그에게 주어진다.

반면에 술탄과 맞서 싸우는 비잔틴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아둔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처럼 비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의외의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성은 50일 넘게 포위되어 식량도 돈도 다 떨어졌다. 지키는 병력 수는 공격군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신하와 장병들은 거듭 항복을 간청하지만 그는 끝내 거부하고 삼중 성벽을 수의(壽衣) 삼아 전사한다. 황제의 뜨거운 눈물이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였던 하기아소피아(지금의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떨어질 때 머뭇거리던 신민들은 이렇게 외친다. “가자, 황제와 함께! 죽자, 조국과 신앙을 위하여!” 황제의 진정성이 항복을 바라고 살기를 원했던 사람들의 두려운 가슴마저 녹여낸 것이다. 그들은 모두 황제를 따라 성벽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나는 이를 눈물의 리더십이라 명명했다.

이순신은 술탄의 달리는 리더십과 황제의 눈물의 리더십을 모두 갖춘 지도자이다. ‘명량에서 그는 두려워 나서지 못하는 장졸들을 뒤로 한 채 혼자 울돌목 거센 조류를 버티며 왜군과 대적한다. 감동한 부하들은 배를 앞으로 몰고 나와 죽을 각오로 장군과 함께 싸워 귀한 승리를 일군다. 이순신은 평소에 백성과 부하를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했다. 밥을 함께 먹고 놀이도 같이 하며 그들의 애로를 귀담아 듣고 고충을 헤아렸다. 그러나 군율을 어긴 장졸은 계급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처단했다.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는 법이다.

 그렇다, 군기(軍紀)와 사기(士氣)양날의 칼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이다. 이순신은 그 중요성을 잘 알았다. 사기와 군기, 둘 중 하나만 부족했더라도 울돌목의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임 병장윤 일병 사건 같은 엽기적인 병영 사고를 보면서 또 다시 명량의 이순신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세월호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근본을 잊었거나 잘못된 것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군 역시 마찬가지다. 왜 군대에 가는가? 왜 군인의 길을 선택했는가? 입대 장병과 직업 군인에게 묻고 싶다.

군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내 나라, 너는 네 나라를 지키려고 군대에 간다. 나와 너는 같은 우리나라, 대한민국 군인이다. 함께 피를 흘리고 함께 죽을 수도 있는 운명 공동체다. 내가 네 대신, 네가 내 대신 죽고 살기도 한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의 몫까지 조국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이것이 전우고 군인정신이다.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알았다. 그런데 같은 부대원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함께 먹고 자는 같은 내무반에서 집단 구타와 가혹 행위가 발생했다. 우리 군 전체가 아니라 극히 일부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고 싶지만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이건 전우가 아니다. 군인정신을 내팽개쳤다. 우리 세대가 군 복무할 때 있었던 기합이란 일제 잔재가 아직 청산되지 않은 것이다. 그땐 그것도 훈련의 일부라거나 군기 확립 차원이라고 억지로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어디서든 펑펑 터지고 외동아들 귀한 자식 아닌 장병이 없는데 아직도 이런 케케묵은 구시대 군대 악습이 남아 있다니,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핵을 가진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전쟁 위협을 공언하는 판국인데 우리 군의 자세는 극도로 해이하고 안이한 것이 아닌가. 이런 군기, 이런 군대로 국토를 수호하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을까 싶다. 우리가 못 지키는 대한민국은 미군도, 유엔도 지켜줄 수 없고 지켜주지 않는다. 이등병부터 참모총장까지 정신 자세를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복무 기간이 우리보다 여섯 배나 긴 북한 병사를 우리 사병이 이기려면 전투력은 물론 정신력 면에서도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 21개월 후 전역하여 버젓한 사회인으로 역할하기 위해서도 확실히 뜯어고쳐야 한다.

 

대통령·장관·여야 국회의원 모두 "잘못은 내 책임"해야

두려움을 직시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다시금 깨우치자. ‘명량에서 이순신이 보인 리더십을 생각하자. “내가 두려우면 남도 두려운 것이다. 장관이나 육참총장경찰청장의 수시 교체가 두려움을 물리치거나 해소해줄 수는 없다. 책임이 나에게 튀지 않게끔 방어막차단벽을 치는 것에 불과하다. 내 두려움을 남에게 떠넘긴다고 그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국전쟁 때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자기 책상 앞에 이런 글귀를 큼지막하게 걸어놓았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The Buck Stops Here.)” 그렇다, 지금 책임의식이 절대로 필요한 곳은 다른 곳이 아니다. 대통령부터 각 부처 장관, 야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까지 서로 앞 다퉈 잘못된 것은 내 책임이다할 때 나라가 잘 될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움이 극복되고 사기가 오를 것이다.

 군 수뇌부를 불러놓고 책상을 치며 호통하고 줄줄이 옷을 벗으라고 다그치는 국회 모습⑵도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군 기강을 바로 세워 이런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따지는 일이다. 병사들의 사기 앙양과 군기 확립을 위해 무엇이 부족한지를 국민의 대표로서 살피는 일이다. 문책은 군 통수권자의 일이며 질책은 언론과 사회의 몫이다. 제 일은 제쳐둔 채 모욕 주고 야단치며 남의 영역에 간섭하니 딱하다 못해 염려스럽다. 지금 세월호 이후 불거져 나온 것이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이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해먹는 조직집단 이기주의가 심각하다. 해피아(해수부)철피아(철도청)모피아(재무부)교피아(교육부) 등등 수많은 신조어가 쏟아져 나오는 판이다. 이들은 관련 업체기관 위에 올라서 군림하고 지배하려 든다.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에 이루어지는 갑을 관계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들은 그래서 억울하고 불쌍하다. 현대판 신분 제도가 따로 없다. 감히 단언하건대 이 차별과 불공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국회와 정치권이 정부를 견제하고 시비를 가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문제는 정치권이 을 보호한답시고 에게 해대는 폭언과 무례다. 책임은 뒷전인 채 권한만 휘두르니 갑 중의 갑이 따로 없다. 특히 제복 입고 나라 지키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명예를 지켜주진 못할망정 모욕을 주어서야 되겠는가. 기강을 잡는답시고 기강을 세워야 할 군 지휘관장성들을 국회로 호출해 공개적으로 면박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겠는가. 이러고도 기강이 바로 서기를 바라는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공권력이 정치권력에 의해 무너지는 소리가 어디 내 귀에만 들리겠는가. 인기 만회용이든 지도력 확립 차원이든 이런 언행이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너나 잘하세요.”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국피아(국회)’ ‘여피아(여당)’ ‘야피아(야당)’ 같은 말이 나올까 두렵다. 정치권의 군 길들이기로 정치군인눈치군인을 양산하던 과거로 되돌아갈 셈은 설마 아닐 거라 믿는다.

 또 있다. 근본 대책은 수립하지 않고 사고에 따른 문책만 있다면 무사안일주의가 만연할 것이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고도 종내 운전하지 않는다면 무사고 운전자 보험에는 들 수 있다. 부엌이나 싱크대에 있지 않으면 그릇 깰 일도 없다. 이런 사람을 두고 모범 운전자라거나 살림 잘하는 주부라고 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다 보면 가끔 사고도 난다. 사고를 줄이거나 방지할 궁리를 해야지 사고 난다고 처벌만 하는 시스템이라면 결과는 뻔하다. 자칫 훈련 시간 단축, 경비 태세 소홀 등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군기 문란, 사기 저하, 전투력 약화, 안보 위기의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우리 군의 실상을 아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한 목소리로 초급 간부의 자질 강화와 복무 환경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한다. 이것은 의지만 갖고 되는 일이 아니다. 돈이 뒤따라야 한다. 구체적인 예산 지원책 마련이 국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군기와 관련한 여야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성 발언은 그래서 조마조마하다. 충무공이시여, 당신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하시겠나이까.

 명량을 통해 추가로 두 가지 점을 꼭 짚었으면 한다.

명량에서 대승을 거둔 이순신의 그 다음 행보는 어떠했는가. 영화에서 언급되진 않았지만 굉장히 이례적인, 그래서 얼핏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피어린 울돌목을 뒤로 하고 기수를 돌린다. 그냥 돌리는 것이 아니라 전속력으로 쉬지 않고 노를 젓는다. 당사도어의도법성포위도를 경유한 그의 행선지는 전라도와 충청도의 경계인 선유도(고군산열도). 동력선도 아닌 당시 배로 수백 리 파도치는 길을 닷새 만에 왔으니 급속한 후퇴다. 대승을 거둔 군대로선 쉽게 상상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자신을 못미더워하는 선조 임금을 비롯한 조신들이 쏟아 부을 비난과 질책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퇴각을 하다니(그의 퇴각에 대해 조정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는 실록에 기록되지 않아 알 수 없다). 나는 이 점에서 탁월한 전략가로서의 그를 다시 보았다. 만약 승리에 들떠 환호하는 백성들과 함께 명량 주변에 머물렀다면 이순신 군은 대패하고 말았을 것이 틀림없다. 조선 수군 12척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았고 일본 배 200여 척은 아직 싸움 한 번 하지 않은 채 건재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연이어 전투가 벌어졌다면 승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퇴각한 것이다.

 

사즉생과 퇴각을 아는 용기의 리더십

요즘의 한국 정치 상황에 비추어보자. 전투에 이긴 사령관이 지역을 버리고 퇴각했다면? 여야 정치인, 일부 언론과 시민 단체, 심지어는 청와대까지 나서서 소환문책하라고 야단이 났을 것이다.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서만 사건을 해석하니 진실과 거리가 먼 일방적 주장이 목소리를 키우고 사실이 왜곡되기 십상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전문가를 키울 틈도 없이 갈아치운다. 또 설사 전문가라 하더라도 소신껏 책임 있게 일하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임란이 일어났던 16세기는 통신도 TVSNS도 없던 시대여서 이순신은 살아서 다음 전쟁에 대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실소를 머금어본다.

상황은 다르지만 국민당 장제스(蔣介石) ()에 패해 중국 대륙을 도망 다녔던 마오쩌둥(毛澤東) 군이 중국인의 민심을 얻게 된 것도 바로 이 패주 길에서였다. 그들은 가고 머무는 곳에서 군율을 엄격히 지켰다. 민가에 들어가 잠자지 않고, 음식이며 물자를 빼앗지도 훔치지도 않았다. 말로만 듣던 적군(赤軍)홍군(紅軍)이 실제로 내 아들, 내 조카와 같은 중국인임을 각인시켰다. 패잔병이었지만 그들이 머무는 곳곳에서 온정이 오갔다. “일본군과 싸워야 하는데 국민당 군에게 쫒기고 있다. 하룻밤 바깥에서 머물다 갈 테니 불편하더라도 참아 달라.” 중국의 서북 변방 옌안(延安)에 올 때까지 병력물자무기복색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마오쩌둥 군은 중국 인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25000리 패주 길을 대() 국민 홍보 심리전의 더없이 좋은 기회로 삼았다. 마오쩌둥 군은 전투에선 졌지만 민심을 얻는 데선 장제스 군을 이긴 것이다. 중국 대륙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 바로 이 장정(長征)’이었다. 이순신의 퇴각로 역시 도망 길이 아니라 승전보를 생생히 온 백성에게 전하는 살아 있는 방송이고 뉴스였다. 가는 곳마다, 들르는 지역마다 이 위대한 장수와 병정에게 조선의 희망을 걸었다. 수군 지원자가 몰려오고, 부족하지만 군량과 물자 조달도 가능해졌다. 군대를 훈련시킬 시간도 벌게 되었다. 결국 전라도 중턱까지 분풀이한답시고 올라왔던 일본 수군은 언제 조선 수군의 기습이 있을지 몰라 추위를 핑계대며 퇴각하고 만다. 나는 이순신의 용전분투와 더불어 깊은 전략적 숙고, 민심까지 추스르는 혜안과 인품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분노와 복수에 칼날 앞에선 한국사회… 각자 위치에서 최선 다해야


다른 하나는 명량에 나타난 그의 사생관이다. 전투 하루 전날 난중일기에 쓴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는 이 영화의 키워드다. 이순신의 삶 자체가 사즉생이었기에 주제 선정은 잘했다고 본다. 다만 죽을 각오로 싸우는 것죽기 위해 싸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영화에선 이순신이 후자의 자세로 임하고 있음을 곳곳에서 느끼게 한다. 잘못 이해하면 염세적 사생관을 가진 분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결코 아니다. 선조에게 보낸 장계에도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겠다(出死力拒戰)”는 비장한 결의를 담았듯이, 그는 열악한 조건에서 적의 전진을 막고 승리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싸웠을 따름이다. 두려움을 이기고 죽음을 극복하는 이순신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키느라 감독이 다소 오버하지 않았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명량에서 맞붙은 적장 구루시마(來島, 조선에선 마다시(馬多時)로 알려진 인물)는 일본에서도 물살이 가장 빠르기로 소문난 시코쿠(四國) 끄트머리인 나루토(鳴門) 해협에서 활동하던 해적 출신이다. 나루토 해협은 명량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 회오리를 요즘도 볼 수 있는 곳이다(그러나 명량에선 자주 볼 수 없는 현상이다). 당포 해전에서 전사한 형에 대한 복수를 벼르던 구루시마는 해협의 급류에 누구보다 익숙한 터라 울돌목 앞바다를 만만하게 보았다. 반면에 임진왜란 1년 전까지 바다를 모르고 살았던 이순신은 매순간 매장소에서 현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그들을 대동하고 현장을 직접 살폈다. 밤잠을 설친 채 전략전술에 골몰했다. 무기든 날씨든 지형지세든 적에게 유리한 조건과 상황에선 절대로 맞붙어 싸우지 않았다. 백척간두에 서서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모든 것을 경계하는 자와 복수심에 불타 적을 가볍게 여기고 바다를 우습게 보는 자, 그 두 지휘관의 싸움은 병력 수와 관계없이 승패가 나는 법이다.

 최근 한국 사회는 또 다시 분노와 복수의 칼날 앞에 서 있는 듯하다.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각종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부딪힌다. 억울한 사람들을 부추기는 이들은 많아도 참으라고, 기다리라고 말리거나 달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순신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내 일을 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대접받는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도 명량을 보았다고 한다.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일반 국민들 마음을 헤아렸을까. 이순신의 애민애국을, ‘명량의 울음소리를 들었을까. 영화를 보며 함께 울었던 우리 국민들도 조국을 위해 내가 무엇을 했는지, 내 이웃을 위해 어떤 봉사를 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을 것 같다. 오늘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바르게 일어서야 한다.

 

<각주 1> 플라톤이 저술한 소크라테스의 변론’(29a)에서 인용. 그러나 조금만 더 읽어 가면 죽음이 두려워 정의나 양심을 팔지 않겠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신념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32a)”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소크라테스의 뜻은 명확하다. 이순신 장군의 사생관과도 일맥상통한다 하겠다.(천병희 역,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향연, 도서출판 숲, 2012, pp 42~51 참고)

 

<각주 2> 국회에 상당 기간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언급은 참으로 부담스럽다. 정계를 떠났지만 세상이 국회를 비난하고 민심이 정치인을 등질 때면 마치 나를 두고 하는 것처럼 자괴감과 무한 책임을 느낀다. 동료후배들에게 드리는 이 고언(苦言)이 나의 못난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 김형오 부산대 석자교수,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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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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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세출 2014.08.14 13: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죽으면 나라가 살고, 내가 살면 나라가 죽는다.
    왜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갖지 못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