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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의 결단력, 황제의 눈물…나를 역사책 집필로 이끌었다"


사진 이성근 객원기자


많은 사람들은 한 가지 일을 하다 은퇴를 하고, 그 후에는 별다른 일 없이 살아간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지금껏 걸어온 길이 아닌 전혀 다른 길에서 제2, 제3의 인생을 산다. '김병준의 대담'은 올 한 해 이런 분을 모셔서 이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인생을 들어보기로 한다.

첫 번째 손님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5선 국회의원으로 최연소 국회의장을 지냈다. 지금 그는 1453년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 사이에 있었던 전쟁을 그린 실험적 역사서 <술탄과 황제>의 저자로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술탄과 황제>는 우리 학계와 문화계에 주는 일종의 경종이자 충격이다. 내용의 새로움과 치밀함은 손쉬운 주제와 방법의 매너리즘에 빠진 학자들에 대한 경종이고, 역사서와 소설을 뛰어넘는 실험적 서술 방식은 학술과 문학 모두에 있어 충격이다.

어떻게 이런 책이 가능했을까? 잠을 하루 3시간으로 줄여가며 집필에 전념한 그 열정과 노력, 단지 그것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가 이 자리에 있던, 그래서 기존의 규칙과 문화에 매이거나 빠져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또한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있지 않았던 자리로의 제2, 제3의 인생을 꿈꾸어도 좋은 이유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꺾인 자존심>

김병준: <술탄과 황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정치인들이 흔히 내는 그런 책인 줄 알았다. 선거 직전 출판기념회용으로 내는 그런 책 말이다.

김형오: (웃음) 그런 건지 오늘 취재 좀 해 보라.

김병준: 국회의원을 하고 나면 지성도 인격도 없어지는 것 아닌가?(웃음) 아무튼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남의 나라 전쟁사를 이렇게 깊고 정확하게 파헤칠 수 있을까? 또 이렇게 생동감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 온 사람으로서 크게 부끄러웠다.

김형오: 과찬이다. 다행히 평가가 좋고, 25쇄를 찍을 정도로 많이 팔려 기분이 좋다.

김병준: 지금도 많이들 찾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형오: 지금은 절판 상태이다. 일부 새로운 내용을 담기 위해서이다. 몇 달은 있어야 새로 찍을 것 같다.

김병준: 국회의장까지 한 분이 어떻게 역사 서적을 쓸 생각을 하게 되었나?

김형오: 외국 출장을 가면 꼭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른다. 2009년 터키 이스탄불을 갔을 때도 그런 맥락에서 전쟁기념관을 들러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가이드가 “이게 메흐메드 2세 술탄이 배를 산으로 끌고 간 그 장면이다” “이게 콘스탄티누스 11세 황제가 해상 봉쇄 때 썼던 바로 그 쇠사슬이다”라고 설명을 했다. 그러자 동료의원들도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으로는 놀랐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다.

김병준: 무슨 말인가?

김형오: 우선 해상이 봉쇄되자 70여 척의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지? 그런데 다른 사람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태도였단 말이지. 가이드도 ‘바로 그 유명한’ 어쩌고 하면서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듯이 이야기했고…평소 역사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존심이 있었는데 이날 이게 금이 갔다.

김병준: (웃음) 그런 일은 잘 몰라도 그냥 아는 척하는 것 아닌가? 사실 1453년,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있었던 전쟁을 어떻게 잘 알 수 있나.

김형오: 어쨌든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그 전쟁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좀 그랬다. 그래서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가는 길에 사무실로 메시지를 보냈다. 이 전쟁에 관한 책을 구해 놓으라고.

김병준: 글쎄, 책이 있기나 했을까?

김형오: 아닌 게 아니라 국회도서관에서 수십 권을 빌려다 놓았는데, 대부분이 비잔틴 미술사라든가 터키 여행안내서 같은 것들이었다. 다행히 딱 한 권, 스티브 런치만(Steve Runciman)의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걸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그다음에는 어떡하겠나. 아예 전문 외서를 구해서 읽었다. 줄잡아 150~200권은 읽은 것 같다.

김병준: 완전히 빠져들었다는 이야기 아닌가?

김형오: 우선 전쟁의 내용이 너무 흥미로웠다. 당시에 나올 수 있는 전략과 전술 그리고 무기가 다 나왔다. 배를 끌고 산을 넘는 것부터 시작해서 포격전과 지상전에 불화살이 날아가고, 심지어 그 시대의 네이팜(napalm)이랄 수 있는 공격까지 행해졌다.

김병준: 리더십 변수도 재미있지 않은가. 쓰신 책에도 잘 나타나 있지만 결단력과 패기의 지도자 메흐메드 2세와 유약하지만 질 수밖에 없는 전쟁에 끝까지 사력을 다하는 공감과 눈물의 지도자 콘스탄티누스 11세 황제 말이다.

김형오: 물론이다. 이 두 대조적인 리더십과 그들의 고민과 고통, 그리고 그들의 의사결정 행태가 나를 끌어당겼다. 국회의장 경험이 있어 더욱 그랬다. 직권상정 문제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여당은 왜 하지 않느냐 야단이고, 야당은 왜 하느냐 야단이었다.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콘스탄티누스 11세 황제와 메흐메드 2세 술탄의 고통이 가슴에 와 닿았다.


<6선 대신 택한 집필의 길>

김병준: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김형오: 공부를 하면서 주변에 이 전쟁 이야기를 조금씩 해 봤다. 그러다 이걸로 책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국내 서적으로는 번역서 두 권이 있었는데 이 두 권 모두 한계가 있어 보였다. 하나는 앞서 말한 런치만의 책인데 읽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또 하나는 <로마인 이야기>로 잘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인데 솔직히 그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감이 있었다.

김병준: 런치만 책이 어려운 것은 이해된다. 학자가 쓴 책이라 그쪽 역사를 잘 모르는 우리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대중적인 글을 쓰는 시오노 나나미 경우는 의외이다.

김형오: 시오노 나나미 책은 사실 다른 책을 본 다음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반가운 기분에 책을 구입한 날 저녁에 바로 다 읽었다. 하지만 아쉬웠다. 문헌을 좀 더 폭넓게 참고했더라면, 그래서 당시의 상황이나 흐름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했더라면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김병준: 그래서 결국 직접 쓰자? 더 풍부하고 재미있게, 또 더 정확하게?

김형오: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의장 임기를 몇 달 앞둔 시점, 그러니까 18대 국회의원 임기를 2년 여 남겨 둔 시점이었다. 그때부터 더 열심히 공부했다. 국회가 쉬는 기간에 다시 이스탄불을 다녀오는 등 자료 수집과 사실 확인에 더 매진했다.

김병준: 정계 은퇴도 이 문제와 관련이 있나?

김형오: 통상 국회의장을 하고 나면 더 이상 출마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경우는 최연소로 워낙 일찍 국회의장을 한 탓에 모두들 다시 출마할 것으로 생각했다. 의장 출마를 하면서 불출마 약속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임기 1년 정도를 앞두고 불출마 선언을 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책에 전념하고 싶어서였다.

김병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김형오: 정치는 그 나름 매력적인 직업이다. 역동성이 있고 또 열정을 쏟아부을 여지도 많다. 하지만 마음이 점점 책을 쓰는 쪽으로 기울었다. 기자회견에서 불출마의 변으로 ‘후진을 위해’, 또 ‘정치 발전을 위해’라고 말하며 여의도를 떠났다.

김병준: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다. 젊은 시절 기자생활을 했다고 해서 쉽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형오: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의장 시절 수필집을 두 권 썼다. 일종의 연습이었다.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된다. 능력도 어느 정도 따라가 줘야 하는 것 아니겠나.

김병준: 집필 이전에 자료를 모으고 해석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모두 남의 나라, 그것도 560년 전의 자료이다.

김형오: 자료는 많다. 다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록들이 많은데 실제로 말하는 날짜가 서로 맞지 않아 고생을 했다. 또 오스만 쪽은 유목민이라 기록문화가 약해 상대적으로 조금 어려웠다. 하여간 수차례 이스탄불을 다녀왔고 마지막에는 50일 가까이 머물기도 했다. 그러면서 모을 수 있는 자료는 다 모았다. 그리고 수십 명의 현지 연구자들을 찾아다니며 괴롭혔다. 이들과의 인터뷰는 정말 유용했다.

김병준: 국회의장 출신이니까 다른 사람에 비해 고생을 덜 한 것 아닌가. 하다못해 잠도 좀 좋은 곳에서 자고.

김형오: 우리로 치면 장급 여관에 묵었다. 그것도 부담이 되어 어떡하든 재미있는, 그래서 잘 팔리는 책을 써서 비용을 건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컸다.(웃음)


<황제의 일기와 술탄의 비망록: 새로운 접근>

김병준: 실제로 어려워질 수 있는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쓰셨다. 특히 황제의 일기를 발견한 술탄이 그 일기를 읽으며 그에 대해 비망록을 작성해 나가는 부분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김형오: 어떻게 하면 쉽게, 또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쓸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그런 구상을 했다. 물론 일기장과 비망록은 픽션이다.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그런 형태로 서술했다.

김병준: 일종의 실험적 접근인데 정말 인상적이다. 우리 역사의 중요한 부분들도 그런 식으로 정리해 보면 어떨까? 예컨대 사육신 중의 누군가 일기에 세조가 비망록을 쓴다거나 보수적인 송시열 선생의 일기에 개혁사상가인 정약용 선생이 비망록을 쓰는 형식이면 어떻게 될까?

김형오: 그것 또한 우리 역사의 내면, 특히 역사적 인물들의 고뇌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병준: 또 하나 눈에 크게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술탄과 황제>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동등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선악의 관념도 약하다. 술탄에게는 황제가 악이고 황제에게는 술탄이 악이다. 그러나 독자는 어느 쪽이 악이고 어느 쪽이 선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묘한 구도이다. 일부러 그런 구도를 만든 것 같다.

김형오: 우리는 모든 것을 선악 관념으로 획일화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정치에 있어서도 나는 항상 옳고 너는 항상 그르다. 이래서 되겠나. 선악을 따지기 전에 서로가 어떠한 입장에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치를 하면서, 또 국회의장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김병준: 정치를 하셨으니 인간관계가 넓고, 그래서 참석해야 할 행사도 많았을 것이다.

김형오: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집중적으로 집필하는 기간에는 잠을 3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김병준: 끝으로 정치하는 분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김형오: 책임이 큰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나. 늘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양보할 것은 양보했으면 하는 마음만 전해 놓자. 버리고 양보하면 존재감을 상실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심청이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뛰어들 듯 국민을 위해 나를 희생시키면 된다. 하도 비판만 받으니까 그런 큰 생각 자체를 못하는 것 같다.

김병준: 돌아보면 늘 새로운 생각을 해 오신 것 같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정보통신정책에 대한 열정이다. 1990년대 초부터 천착하며 이 분야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기셨다.

김형오: 1992년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상임위를 골라서 갈 수 있는 입장이었는데, 일부러 비인기 상임위인 교통체신위원회로 갔다. 정보통신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이후 오랫동안 이 분야 상임위에 있었다. 1996년에는 전체 국회의원을 상대로 인터넷에 관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인터넷이 뭔지조차 잘 모를 때였다.

김병준: 그래서 그런지 <술탄과 황제>도 첨단이다. QR 코드가 잔뜩 찍혀 있다. 휴대폰으로 바로 연결되는 것인가?

김형오: 그렇다. QR 코드를 찍으면 사진 지도 그림 등 360여 개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김병준: 늘 새롭게 살아가는 이러한 모습이 보기 좋다. 오늘 대단히 감사하다.


김병준


[2016-01-03 매일신문]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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