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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김형오 전 국회의장

 

“오늘은 내가 사실 할 말이 있어. 오랫동안 생각해 왔는데,

선거를 연기해야 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2일 선거구 획정이 늦어진 데 대해 “국민에 대한 우롱이고, 무책임의 극치”라며 총선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 조문규 기자]

 

 김형오(69) 전 국회의장은 준비했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진 데 상당히 분개했다.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암묵적으로 결탁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2일 오후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실에서 만났다. 기념사업회와 기념관, 학술회 세 단체가 협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백범의 아들인 김신 전 회장으로부터 잔여 임기를 물려받았다. 올 2월 말에는 정식으로 회장에 선출돼 새 임기를 시작했다. 그는 “오늘 인터뷰가 첫 업무인 셈”이라며 웃었다.

 “선친이 한독당으로 출마하려 했어요. 백범이 (제헌국회 선거) 불참을 선언하는 바람에 출마하지 못하고, 그 길로 정치에 대한 꿈을 접었어요.”

 백범과의 인연을 묻자 그는 “굳이 꼽자면…”이라며 가족사를 소개했다. 의욕이 넘쳤다.

 “김신 전 회장은 아버지께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회장으로서) 조심스럽게 행보했어요. 백범은 통일시대에 맞는 지도자 아닙니까. 저는 좀 더 활성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김 전 의장은 동아일보 기자, 외교안보연구원 연구관을 거쳐 총리실 정무비서관을 지냈다. 노태우 대통령의 정무비서관으로도 일했다. 그를 데리고 일했던 강영훈 총리가 민자당 김영삼 대표에게 공천을 부탁했다. 당시 김영삼 대표가 김 비서관이 포함된 조직책 명단을 내밀자 노 대통령은 “김형오가 누굽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청와대 비서관인데 모릅니까”라고 했고. 두 사람은 김 전 의장을 서로 ‘노태우 대통령의 비서관’ ‘김영삼 대표 쪽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이 바람에 정치에 입문해서도 계파색 없이 정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18대 국회 국회의장을 할 때까지 부산 영도에서 내리 5선을 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더불어민주당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마지막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2010년 8월 콘스탄티노플의 무너진 성벽을 답사하고 있다. 그는 책을 쓰기 위해 다섯 차례 현장 답사 여행을 했다.

 

 


 - 선거 42일을 앞두고서야 선거구가 획정되네요.

 “해도 너무합니다. 국민에 대한 우롱이고, 무책임의 극치입니다.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국회 안에 두거나 정당에서 추천하는 사람으로 구성하면 안 돼요. 누누이 겪어 봤지만 정당 추천 인사는 국회의원보다 더 로봇이야. 자기가 차지할 것을 자기가 하는 게…. 이건 민주주의 원칙에 맞지도 않고,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렇게 합니까.”

 - 이제라도 통과시키는 게 다행이죠.

 “선거를 연기해야 합니다. 헌법에도 위배되는 짓이고, 기본권·참정권도 제약하는 겁니다. 여야 간에 보이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이 있는 겁니다. 신인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최소화하는 거지. 최소한 선거를 한 달은 연기해야 돼.”

 - 책임져야 할 현 국회의원 임기만 늘어나지 않나요.

 “노(No), 노. 국회의원 임기는 5월 29일까지야. 딱 정해져 있어.”

 - 임기 종료 전에 선거를 하면 된다는 거네요.

 “그렇지. 4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이유는 정치에 새로운 바람, 희망의 정치를 보여 주자, 이건데. 신인이 등장을 못해요. 선동정치에 뛰어나거나 쇼맨십이 풍부한 사람 아니면 국민 눈에 띌 수 없는 환경이 돼버렸단 말이야. 이건 문제가 있어요. 공천 심사도 아주 졸속이 돼 버리는 거야.”

 - 새누리당에서 상향식 공천 문제로 갈등이 심한데.

 “상향식을 누가 반대합니까.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에서 하겠다는 건 상향식이 아니에요. 흉내만 내는 거지. 2000명 조사해서 됩니까. 돈은 많이 들어가고, 여론이라는 것은 하루가 다르고, 조사 기관이나 문항에 따라 달라지는데. 더구나 30%를 당원들한테 주는데 그중 90%는 기존 국회의원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국민경선입니까. 신인들은 당원 명부도 몰라. 말이 안 되는 거예요.”

 - 전략공천은요.

 “그건 권력자의 사천(私薦)이야. 당내 계보끼리 나눠먹든지. 이름 가지고 장난쳐 왔던 거 아니에요. 그런 식의 전략공천도 곤란한 거야.”

 - 잘못 가고 있다는 말씀이네요.

 “역대 가장 저조한 투표율이 될 겁니다. 실망을 시켜 놔서, ‘정치 꼴도 보기 싫다’, 투표장에 안 간다 이거야. 희망을 주는 게 정치인데. 결국은 또 진영끼리야. 중간층은 흥미를 잃고. 어떻게 민의가 반영되겠어요. 한 달 연기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국민에게 도리를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선거하면 선거무효소송이 이어질 겁니다.”

 - 아쉬운 일이 많으시죠.

 “나라는 커지고 달라졌는데 대화와 토론, 타협의 정치가 그때나 지금이나…. 지금 더 안 되는 것 같아. 정치구조·정치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가능합니다.”

 - 새로 도전하는 정치신인들에게 충고하신다면.

 “근데, 망설여지는 게, 내 충고대로 하면 정치인은 한 명도 못 될 것 같아. 지금 정치인으로 크려면 줄을 잘 서야 하고, 진영 논리에 집착해야 하고, 자기 지지층만 국민이거든요. 그런 사람이 표도 받고, 배지도 달고, 당직도 받고, 매스컴도 타는데, 내가 원하는 정치는 그게 아니거든요.”

 - 필리버스터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단호하게) 한마디로 잘못된 거예요. 더민주가 테러방지법을 반대한 게 아니에요. 소관기관을 놓고 밀고 당기는데, 이런 걸로 세계 기록을 세울 사안이 아닙니다. 여야 간 타협 능력, 조율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고, 지도부의 용기와 결단이 부족한 거예요. 여야 모두 다분히 선거용입니다.”

 - 국회선진화법은 ‘동물국회’ 방지용인데.

 “개정해야 돼요. 해 봐서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죠. 나는 선진화법을 국회가 발전하는 한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운영을 엉망으로 해버린 거예요. 선진화법 만들 땐 대화와 토론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거든. 직권상정이나 선진화법이나 그걸 믿고 타협을 안 하는 겁니다.”

 - 방법이 있습니까.

 “선진화법은 자유투표제가 전제가 돼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사사건건 당론으로 결정을 하니 운영이 엉망일 수밖에 없어요. 막말로 하면 각 당에 국회의원 한 명씩만 있으면 돼. 당론 결정 과정도 과연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치열한 토론을 통해 하느냐. 아니란 말이야. 몇 사람이 밀실에서 결정하는 게 당론이야. 의총장에서도 목소리 큰 사람이 주도하게 돼 있어요. 민주주의를 잘하려면 정당이 힘을 빼야 해요. 21세기에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기관 중 하나가 정당입니다. 미국 정당에 대표가 어디 있고, 사무총장이 어디 있어.”

 - 정당 공천을 받아야 당선되니까….

 “지금 국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40일 만에 투표를 해야 하니까. 당 색깔 보고 찍어 버리는 거야. 사람 안 보고. 미국은 제대로 된 상향식 하고, 국민들이 검증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조건을 주는데, 우리는 완전히 ‘깜깜이선거’야.”

 - 국회의장 재임 중에 개헌안까지 만드셨는데….

 “직선제를 한 이후 청와대는 웃고 들어갔다가 울고 나오는 곳이 돼 버렸어요. 단임대통령의 문제예요.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불일치로 생기는 문제도 심각해요. 특히 올해부터 3년 연속 선거를 해야 합니다. 나라가 거덜날 것 같아. 극심한 레임덕도 피할 수가 없어요. 대통령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길면 3년이야.”

 - 그런데 왜 개헌이 안 되죠?

 “대통령이 식언을 해서 그렇죠.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공약을 내걸었지만…. 하겠다고 해 놓고 왜 안 하는 거야. 블랙홀이라는 건 개헌을 안 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지.”

 - 당분간은 어렵겠죠?

 “어렵지 않다고 봐요. 공무원들이 일을 하지 않아. 정권교체가 됐을 때도, 정권 재창출이 됐을 때도 이전 정권에 줄 서 있던 공무원들은 그 다음 정권에서 빛을 보기 어려워요. 그러니 줄서기를 안 하려고 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거지. 장관까지 하려면 앞에서는 예 하고 뒤에서 딴짓 하고…. 행정부를 세종시로 옮긴 것도 천추의 한이야. 공무원들이 길거리에서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있잖아요. 나라의 중심이 공무원인데….”

[S BOX] 정계 은퇴 후 작가로 변신 “김훈보다 내가 잘 썼어”

참 독특하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술탄과 황제』(2012)를 읽으면 그렇다. 1453년 비잔틴제국의 최후인 콘스탄티노플 공성전. 각주까지 달아놓은 소설을 읽다 보면 전직 국회의장의 글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김훈의 『남한산성』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하자 그는 농반진반으로 “내가 더 잘 썼어. 그건 쓰다 말았대”라며 웃었다. 소설의 전개 방식, 책 뒤쪽 41개의 QR코드로 제공하는 자료도 젊은이의 감각을 뛰어넘는다.

“처음에는 책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그냥 빠져들어갔어요. 국회의장 하면 머리가 아프잖아요. 그래서 한 2년 동안 책을 수집했어요. 그런데 정치판을 떠나 나만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거야.”

그 대목에서 그는 어린애 같은 미소를 지었다.

“콘스탄티노플과 관련해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어요. 그런데 당시 세계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전략·전술이 다 동원됐어요. 배를 끌고 산으로 가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이간질, 간첩전까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책을 쓰기로 한 거지.”

승자인 술탄과 패자인 황제를 같은 영웅으로 놓았다. 그는 황제의 리더십을 좋아한다고 했다. “각박한 21세기에도 ‘눈물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한 2일에는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라는 칼럼집을 또 냈다.

“리더십도 없고, 국가 경쟁력에 대한 철학도 없고…. 국가 위기 비슷한 상황에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국민 각성제로 쓴 겁니다.”

정계를 은퇴한 국회의장이 작가로의 변신에도 성공한 것이다.

글=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정리=위문희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2016-03-05 중앙일보] 기사 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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