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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빛의 속도로 변하는 디지털시대 한국 정치는 여전히 아날로그식”이라며 “정치권이 지금처럼 오만하고 국민 요구를 외면하면 디지털시대에 살아남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사진=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유쾌한 변신은 아름답다. 최연소 입법부 수장을 마지막으로 20년 동안 몸담은 정계를 떠나 교수와 작가로 변신했다. 그가 발로 뛰며 쓴 `술탄과 황제`는 근래 보기 어려운 38쇄라는 스테디셀러(steady seller)를 기록했다. 그의 인생 4막은 산뜻하고 담백하다. 박수칠 때 떠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다. 


그는 정보통신기술(ICT)에 한국의 미래가 달렸다는 소신으로 10년 넘게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위원장도 지냈다. 1999년 `전자민주주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디지털 정치인답게 ICT 분야에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의정 활동으로 2억달러 이상을 벌어 온 국회의원으로는 그가 유일하다. 한국에서 처음 디지털정당을 추진한 주역이다. 그때 성공했다면 한국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정당을 선보였을 것이다. 

김 전 의장을 3월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있는 개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정치권의 혼탁 공천에 대해 “국민 보기에 부끄럽다”며 혀를 찼다. 최근 펴낸 시사칼럼집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는 정치·사회분야 판매 1위에 올랐다. 사무실은 서점(書店)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장과 책상, 탁자 위에는 인문학 책들로 가득했다. 글 쓰며 책을 벗 삼아 지낸다는 게 빈말이 아니었다. 

-정치는 이제 안하나. 

▲정계를 떠나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요즘 정치판을 보면 국민 보기에 부끄럽다. 거의 날마다 사무실에 나와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주위에 동양 고전(古典)을 많이 읽길 권한다.

-알파고444 대국은 시청했나. 

▲알파고 쇼크는 산업패러다임의 대전환 신호탄이다.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다.(김 전 의장은 바둑 3급이다.)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제목이 도전적이다. 

▲최근 2년간 정치 현안에 대해 각종 매체에 게재한 기고문과 강연 원고를 모은 시사칼럼집이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무책임의 극치다. 정당 구조를 하루 빨리 개편해야 한다. 영국 런던 시민들은 템스강변의 의사당 불이 커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편히 잠든다고 한다. 우리 국회의 불빛은 어디를 비추나. 선거에서 유권자의 냉정하고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 

-디지털정당을 처음 추진했는데. 

▲2003년에 한나라당이 디지털정당화를 추진했다. 디지털위원회를 구성해 내가 위원장직을 맡았다. 당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었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으로서 각종 인프라를 잘 구축했다. 그 기반 위에 디지털정당을 만들고자 했다. 당내 다수가 디지털 마인드가 없고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 주지 않았다. 고작 홈페이지나 고치는 수준이었다. 정치 구호나 정치 진열장용으로 생각하고 있던 당 대표와 입장도 달라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그때 성공했다면 한나라당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정당이 됐고, 한국은 21세기 디지털정치 선도국이 됐을 것이다. 

-구태 정치가 여전하다. 

▲우리는 빅데이터78사물인터넷80(IoT)으로 초연결사회에 진입했다. 인터넷이 사회와 산업, 권력구조를 바꾸는 세상이다. 디지털정당은 국민과 즉시 소통할 수 있고, 정책 전개 과정이 투명하다. 정치도 변해야 한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디지털시대지만 한국정치는 여전히 아날로그식이다. 지금처럼 오만하고 국민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대의민주주의 국회는 디지털시대에 살아남지 못한다. 정당을 혁파하고 정치를 개혁해야 정당이 존재할 수 있다. 영국과 일본은 당수가 총리다. 야당 당수는 차기 총리다. 선거 후 대통령직인수위 같은 게 필요 없다. 정당 무용론이 나올 수 있다. 정보기술(IT) 전문가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왜 디지털정당을 추진 안 하는지 모르겠다. 

-왜 정치권이 변하지 않나. 

▲정치 관행과 제도 탓이다.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헌법적 책무와 권한을 갖는다. 헌법과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면 만사 제쳐놓고 당론(黨論)에만 충실을 기한다. 이러다 보니 국회 본령인 대화와 타협이 없다. 이건 헌법기관이 아니다. 한국 국회의원처럼 화려한 이력 소유자는 없다. 개인으로 봐도 다 괜찮다. 미국 국회의원에는 장·차관 출신이 없다. 영국 의회에 대학총장 출신, 프랑스에 검찰총장 출신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사진=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어떻게 해야 하나. 

▲당은 큰 원칙만 정하고 세부 사항은 의원에게 맡기면 상임위에서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다. 미국은 대통령제이지만 정당에 대표, 최고위원,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대변인이 어디 있나. 원내 대표만 있다. 미국 정당이 만능은 아니지만 미국처럼 하지 않는 한 정치나 정당 개혁을 해 봐야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정치 구도와 본질은 그대로 두고 사람만 바꾼다고 변하겠나. 정당 간판만 바꾸고 내용은 안 바꾸는 건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국회가 법안을 제때 처리하지 않아 정부와 갈등을 빚는데. 

▲정부는 법안 주문자다. 법을 만드는 건 국회다. 정부와 국회는 입장이 다를 수 있다. 문제는 국회가 입법 노력을 안 한다는 점이다. 안 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남북 간 긴장이 최고조인데. 

▲지금 남북관계 긴장은 최고조 상태다.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해 정부는 국민과 한마음으로 뭉쳐서 강력 대응해야 한다. 우리 국방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안보에 공짜는 없다. 공직자가 병역 의무를 다하는 건 필수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으로 병역 미필자는 뽑지 말아야 한다. 임명도 하면 안 된다. 미필자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면 된다. 한국은 종전 국가가 아닌 휴전 국가다. 

-남북 신뢰 구축 방안은 무엇인가. 

▲북한은 핵이 체제 유지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은 북한과 동반관계에 있다. 중국이 남북한 통일을 바라겠나. 아니다. 총체적이고 다각적인 접근 전략이 필요하다. 북한의 체제 유지는 핵이 아니라 한국이 보장해 준다는 메시지를 주고, 그 바탕 위에서 교류해야 한다. 그러자면 상호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중국 외교도 잘해야 한다. 통일 한국이 중국에 위협이 안 된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 내부에서 천문학적 돈이 필요한 통일 비용도 준비해야 한다. 또 북한이탈주민을 잘 활용해야 한다. 과거 미국 하버드대 이주노동경제학 권위자에게 북한이탈 주민들의 노동력 분석을 의뢰한 적이 있다. 정부에서 북한이탈주민 명단이 비밀이라며 막았다. 지금 북한이탈주민이 3만여명에 달한다. 북한 노동력을 분석해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사진=김동욱기자 gphoto@etnews.com>


-디지털정치인으로 평가받는데 기억에 남는 일은. 


▲미국 퀄컴에서 CDMA 기술료를 받은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받은 돈이 2억달러가 넘는다. 1997년 국정감사에서 기술료 배분액 문제를 제기해 정부가 소송을 했다. 3년간 국제상사중재위원회에 소송해서 이겼다. 기술료 배분액 1억25만5530달러를 받았고, 이후 1억달러를 추가로 받았다. 의정 활동으로 돈을 벌어 온 국회의원은 나뿐이라고 언론이 보도했다. 

1999년 예산결산위원 시절 전남 고흥에 나로우주센터를 설치했다. 해당 부처의 건의를 받아 타당성 검토와 기초설계비로 10억원을 배정했다. 이듬해 김대중 정부가 이제 우주시대를 맞이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나로호 발사 때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초청으로 한승수 국무총리와 함께 참석했는데 아쉽게도 발사에 실패했다. 우주 강국 구현을 위한 연간 발사 계획을 세워야 한다.

2003년 과학기술공제회를 설립했다. 3년에 걸쳐 기금 1000억원을 조성했는데 지금은 3조4000억원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국회의장 시절에는 국정감사에 종이 없는 국감을 도입했다.

-규제 철폐는. 

▲정부가 각종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규제가 너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손톱 밑 가시 뽑기`를 역설해도 제대로 안 움직인다.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포용과 자기 희생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요즘 정치인들에게는 자기 희생 모습을 볼 수 없다. 모두 다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한다. 나를 던지면 더 크게 되는데 그걸 안 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藥水)`다. 취미는 글쓰기와 고전읽기다. `술탄과 황제`는 올 여름쯤 내용을 보완해 개정판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관련 서적과 자료를 찾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다. 

사무실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비롯한 개정판 자료들이 가득했다. 도널드 케이건 교수가 쓴 `전쟁과 인간`은 수도 없이 읽고 주요 대목은 밑줄을 그어서인지 너덜너덜했다.

김 전 의장은 기자로 출발해 국무총리실과 대통령비서실을 거쳐 1992년 14대 국회에 들어가 연속 5선을 기록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과 한나라당 사무총장·원내대표, 이명박정부 대통령직인수위 부위원장, 18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1999년 수필가로 등단했고, `돌담집 파도소리`를 비롯해 몇 권의 에세이집을 냈다. 디지털 정치인답게 현재 블로그(세상을 보는 큰 눈)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대 석좌교수이며, 지난해 7월 명예직인 백범김구선생사업협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낙화`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누구건 계급장을 내려놓고 떠날 때 기억해야 하는 시인의 경구(警句)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2016-04-01 [전자신문] 기사원문 ☞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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