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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4] 아나톨리아 오디세이 심포지엄 기조 발표문

 

 

“역사의 새벽을 깨운 메흐메드 2세”

-『술탄과 황제』를 통해 본 역사성과 지도력-

 

 

 

김형오 (전 국회의장, 현 부산대 석좌교수)

   

한국과 터키는 1957년 국교를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곳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 뜻깊은 행사에 기조 발표자로 초대를 받아 개인적으로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앙카라<터키>=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24일 오후(현지시간)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한ㆍ터키 수교 60주년 기념 학술ㆍ문화 심포지움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17.7.24


수교를 한 해도, 60년이 지난 금년도 한국은 닭의 해입니다. 오스만 터키의 전장(戰場) 군영에서 새벽 기상을 알렸던 호자데데(Hoza Dede: 수탉 영감)처럼 닭은 새벽을 깨우는 길조(吉鳥: 좋은 징조를 주는 새)입니다. 파티 술탄 메흐메드(Fatih Sultan Mehmet; Mehmed the Conqueror)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1453년은 한국의 닭의 해에 해당되며, 일제로부터 해방된 한국 최고의 국경일인 광복절도 닭의 해에 일어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닭의 해에 수교 60돌을 맞은 한국과 터키, 두 나라에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해 봅니다.  

나와 터키와의 인연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2009년 1월, 꼭 8년 6개월 전 한국의 국회의장으로 터키를 공식 방문하는 길에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에서 메흐메드 2세를 만났습니다. 쇠사슬 방책으로 골든 혼(the Golden Horn; Haliç) 항구 진입이 봉쇄되자 수많은 배를 이끌고 산을 넘어간 스물한 살 청년 술탄! 누구도 상상 못한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항구를 점령해 천년 제국 비잔티움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쓴 인물! 이 청년 술탄에 대한 관심이 내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앙카라에서 터키의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회의원들을 만났을 때도 정복자 메흐메드에 관한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림 1: 배를 끌고 산을 넘다]

 

귀국 후 내 책상 위에는 터키 관련 서적 수십 권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중 콘스탄티노플 정복 관련 책자는 번역서 단 한 권(스티븐 런치만; Steven Runciman,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뿐이었는데, 바쁜 국회의장 업무를 수행하면서 짬 날 때마다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아마존 등 인터넷 서점을 통해 1453년 정복 전쟁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틈만 나면 짬을 내어 이스탄불을 방문해 격전의 현장인 성벽을 수없이 답사했습니다. 대학 도서관과 연구소·박물관을 찾았고, 유수 대학의 교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을 만나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습니다. 못다한 질문과 궁금증은

이메일로 계속되었습니다. 

      

                [그림 2: 성벽 앞의 필자]                             [2-1: 복원된 성벽]

  

‘이스탄불 정복전쟁’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높아질수록 작가로서의 모험이 곁들인 새로운 길과 정치인으로서의 명예로운 길 사이에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은 정계 은퇴 선언이었습니다. 이후 전적으로 여기에 매달리며, 이스탄불로 떠나 두 달간 장기 체류를 하기도 했습니다. 

메흐메드 2세를 알게 된 지 4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2년 늦은 가을, 드디어 책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술탄과 황제』입니다. 책은 나오자마자 언론과 평단 그리고 서점가의 화제작으로 떠올랐습니다. 호평과 찬사 속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과 수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해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책 관련 자료 어디에도 나의 정치 경력은 넣지 않았습니다. 일반 소설도 교양서도 아닌, 아마추어 작가가 쓴 한국과 아무 관련 없는 560년 전 남의 나라 이야기가 4만 권 넘게 팔린 것은 한국 출판사상 지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메흐메드 2세는 어떻게 난공불락 철옹성을 무너뜨리고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을까요?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 그는 탁월한 전략가였습니다. 역발상으로 배를 끌고 험난한 갈라타 언덕을 넘어간 창조적 마인드의 소유자이며 치밀한 행동가였습니다. 선대 술탄들이 모두 공략에 실패한 천년 성벽을 뚫기 위해 그는 규모와 성능 면에서 세계 최대‧최고의 대포를 개발했습니다.  

                                         [그림 3: 우르반의 대포]

그밖에도 공성탑 건설, 땅굴 공격 등 첨단 기기와 과학 기술을 총동원해 지 상‧지하‧해상‧공중에서 다양한 전술 전 략을 펼쳤습니다. 육군 중심국이었지 만 해군을 보강하여 장차 지중해 제해 권 장악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군사 조직을 비정규 용병(바쉬보주크), 지방 민병군(아잡), 정규군(아시아군‧유럽군), 정예군(예니체리) 등으로 다원화·체계화하고 보병과 기병의 역할 분담 등을 통해 공격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정복 이후 200년 이상 터키가 유럽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한 것도 메흐메드 2세의 업적에서 비롯된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철두철미하게 ‘준비된 전쟁’이었습니다. 메흐메드 2세는 술탄에서 강등되어 왕자로 돌아가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능한 스승들을 모셔 심신을 단련하는가 하면, 직접 전투에 참가해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술탄에 다시 즉위하자마자 서방 각국과 일시적 휴전 조약을 맺는 등 평화 외교를 펼쳐 비잔티움을 비롯, 서방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습니다. 헝가리 섭정 후냐디(야노슈 후냐디: Janos Hunyadi)의 발을 묶어놓고, 앙숙 관계였던 베네치아‧제노바를 상호 견제시키기도 했습니다. 배후 안정을 위해 동부 카라만(Karaman ; Karaman Beyliği)과는 정복 전쟁 대신 평화 조약을 맺고, 선친 무라드 2세의 미망인이었던 마라(Mara Brankovic)를 귀환시켜 그녀의 친정 아버지인 세르비아 왕의 환심을 샀습니다.

지도를 통해 지형지물을 숙지하고, 전문가들을 초빙해 정보를 얻고, 공격 목표인 삼중 성벽을 직접 사전 답사도 했습니다. 수송로와 지원군 차단을 위해 보스포러스 해협에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rı)를 세우고 철저한 봉쇄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림4: 루멜리 히사르]

아랍·러시아 등 강국의 수많은 침략과 오스만 선대 영웅들의 여섯 차례 공격에도 버텨냈던 콘스탄티 노플이 21세의 청년 술탄에게 정 복되는 비결 아닌 비결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셋째, 국론을 통일하고 중앙집권제를 강화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전쟁‧전승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모병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현실적 보상과 출세의 사다리를 제공하고, 이슬람 성직자들을 통해 성전(聖戰:Jihad)과 정전(正戰: Justice War)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화평파 세력도 참전시켜 토론과 담판을 통해 반대 의견을 제압했습니다. 정복 후 여세를 몰아 정적이었던 할릴 파샤(Halil Chandarlı Paşa)를 제거하고 부족‧호족 등 기득권 세력을 몰아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종‧종교‧지역·신분을 불문하고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세계 제국으로 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넷째는 리더십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승리의 핵심 요인인지도 모릅니다. 메흐메드 2세는 늘 최전방에서 말을 몰며 진두지휘를 했습니다. 해상 전투가 치열할 때는 관복이 물에 젖는 줄도 모른 채 직접 말을 타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림 5: 말 타고 물에 뛰어든 술탄]

타고난 승부사였습니다. 한 번의 실패 뒤에는 반드시 역전의 비책을 던져 더 확실한 승리를 일구어냅니다.

병사들과 똑같이 야영하는 솔선수범 형 지도자였습니다. 실전 같은 훈련, 훈련 같은 실전을 했습니다. 신상필벌 에도 엄격했습니다. 패배자는 결코 용 납하지 않았습니다. 전리품은 약속 대 로 처리했고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신뢰를 얻었습니다. 군기 또한 엄중했습니다. “튀르크군 1만 명의 행군보다 기독교 군대 100명이 움직이는 소리가 더 시끄럽다”라는, 15세기 한 프랑스 여행가(베르트랑동 드 라 브로키에르: Bertrandon de la Broquiere)의 목격담이 그 사실을 실감나게 증명해 줍니다. 그러므로 당대 최고의 헌신과 열정의 지도자 중에서 파티 술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책이 나온 후 나는 이스탄불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몇 차례 더 방문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새로운 결심이 섰습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쓰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38쇄를 거듭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책을 더는 찍어내지 말도록 출판사에 요청하고, 두 달 안에 개정판 원고를 넘기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가 나오기까지는 꼬박 1년 6개월이 더 걸렸습니다. 

[그림6: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한 페이지도 전작과 같은 곳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뜯 어 고쳤기 때문입니다. 전작(초판본)의 정신과 뼈대는 그 대로 살리되 사실상 새 책으로 쓰려니 재주가 부족한 저 로서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체제도 바꾸고 문 장·표현도 고치고, 일부는 삭제하고 상당 부분을 새로 추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터키 측 자료들을 요긴하게 활용(특히 페리둔 에메전 교수의 근작: Feridun Emercen, 『Fetih ve Kıyamet 1453』 등)했습니다. 

새 책 역시 문단의 호평을 받았고, 언론에서도 크게 리뷰를 해주었습니다. 작년 연말 촛불 시위, 태극기 집회 속에서도 책을 읽어준 한국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초판에 이어 개정판까지 구입해 꼼꼼히 대조해가며 읽었다는 독자도 인터넷을 통해 적잖이 만납니다.  

1453년 5월 29일, 비잔티움이 멸망하고 오스만 제국이 들어섰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왜 책으로 쓰려 했고,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 한 걸까요.  

첫째,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한 문명의 축적 위에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그 계기로 보고자 했습니다. 문명 대 문명의 충돌은 보통 승자의 패자에 대한 보복‧파괴‧멸절(滅絶)로 이어졌지만, 오스만은 포용과 공존‧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역사의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전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수단이 동원되었지만, 지도자의 역량과 철학에 의해 문명 파괴가 아닌 문명 승화(Sublimation of Civilization)의 본보기를 보여준 것입니다. 나아가 서구적 편견 없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터키 문명, 그 중에서도 동시대 세계사의 한 축으로 취급돼야 할 오스만의 역정(力征)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림 7: 메흐메드 2세 초상]

둘째, 가장 결정적 시기에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 그 중에서도 두려움과 대적해야만 하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통해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살펴보고 자 했습니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과 자질, 생 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의 선택과 결단 등을 술탄과 황제의 입장이 되어 파고들었습니다. 솔선수범‧진두 지휘‧신상필벌로 요약되는 승리자 메흐메드 2세는 ‘달리는 리더십’으로 규정했고, 우유부단하지만 끝까 지 모든 책임을 싸안고 가는 콘스탄티누스 11세를 통해서는 ‘눈물의 리더십’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가냘픈 존재인지를 너무나 잘 아는 필자로서는 그 나약한 치부를 들추어내기보다는 그것을 감싸고 덧바름으로써 한 단계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담아 보았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역사를 통해 오늘과 미래를 생각해 보고자 했습니다. 국가의 존재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유한하다는 전제 아래 이 책은 출발합니다. 국가가 당면한 최고의 위기, 가장 긴박한 순간인 전쟁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거대한 역사의 물결 앞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 오늘날 심각한 안보 위기와 혼란스런 국제 정치 속에서 한국과 한국민은 어떻게 살고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것을 560년 전 아득히 멀리 떨어진 아나톨리아 반도의 흥망성쇠를 통해 역사의 생생한 교훈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한국과 터키, 67년 전 그들은 한반도에서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고 피 흘리며 죽어갔습니다. 또 그 후손들이 오늘 각자의 나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피하려면? 나아가 번영·번성하려면? 국가가 존재해온 이후 끊임없이 계속돼온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 양국은 위대한 선조들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메흐메드 2 세의 헌신과 열정을 가슴에 새긴다면 험난한 파도도 담대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 역사의 새벽을 깨운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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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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