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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2) >

자~ 드디어 1996년입니다.

해태와 이종범의 1996년 한국시리즈를 정리해보겠습니다.


▲ 출처 : KBO

2. 1996년 한국시리즈

1996년 정규시즌 5대 선수
* 투수 3관왕이자 MVP 고무팔 구대성
* 다승왕, 탈삼진왕의 독고탁 주형광
* 30-30클럽의 신인왕 괴물 박재홍
* 타격왕 포함 3관왕 양준혁
* 그리고 도루왕에 20-20 클럽을 달성한 우승팀 해태의 이종범

사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이종범보단 투수진의 활약이 컸습니다.
해태 못지 않게 현대가 투수진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었죠.
정명원 같은 경우만 봐도 한국시리즈 최초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을 정도니까요.
(오히려 이종범은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훠~얼씬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래도 우승의 주인공은 해태 타이거즈였습니다.
3차전 완봉승 포함 2승 1세이브, KS MVP였던 이강철
정민태와 맞대결에서 사실상 1승 1무를 펼친 조계현
2경기에서 7이닝 이상 소화한 이대진

이 선수들이 주역이었죠.

▲ 출처 : MBC ESPN (1996년 한국시리즈 최종전 당시 3루타를 치고 기뻐하는 장면입니다.) 

그럼 당시 이종범의 주요 활약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도루 1개를 더하며 
역대 한국시리즈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한국시리즈 5경기 연속도루 (1993년 10월 22일 4차전 ~ 1996년 10월 16일 1차전)
→ 역대최다 타이 (장효조, 1984년 9월 30일 1차전 ~ 10월 6일)

이종범은 2차전에서 3회에 선제 1타점 적시타를 포함해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는데, 팀이 더 이상 추가점을 내지 못해 연장전에 이르렀죠.
이것도 당시로서는 기록에 올랐습니다.

한국시리즈 최장시간 경기 4시간 35분 (1996년 2차전)
→ 1996년 한국시리즈 당시까지는 신기록 (현재 기준으로는 역대 4위)
→ 현재 한국시리즈 최장시간 경기는 2006년 한국시리즈 5차전(삼성:한화) - 5시간 15분(15회)

최종전이 되어서야 이종범은 그다운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1회에 기습번트 안타로 출루한 뒤, 이어 도루를 시도했는데,
경험이 부족한 상대 포수의 악송구를 틈타 3루까지 진루했습니다.
후속타자인 홍현우의 내야 땅볼 때 홈을 파고들어 손쉽게 1점을 뽑아냈죠.

이후 9회 2사 1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터뜨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이후에 스스로 감격해하는 그 모습이 아직도 떠오르네요
.


< 에피소드 >

1996년 당시 해태의 상황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전합니다.
(종범신의 한국시리즈 활약상이 쬐끔 미진했지만, 이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96년 해태는 실제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1994년은 디펜딩 챔피언이었지만 준플에서 패했고, 1995년은 가을 잔치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선동열의 해외진출, 김성한의 은퇴로 팀의 구심점을 잃었고
전문가들조차도 1996년에 3강 후보를 전년도 3강이었던 OB, LG, 롯데를 꼽았죠.
오히려 해태와 쌍방울은 약체로 분류했었습니다.
(시즌 종료 후 그 두 팀은 나란히 정규시즌 1,2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시범경기는 꼴찌, 정규시즌 들어가서도 5월 중순까지 꼴찌였습니다.
흔히 명장은 위기에 강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김응룡 감독의 리더쉽이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면 사람들이 선동열, 김성한 없어서 그랬다고 할 텐데,
그러면 여태까지 그렇게 우승하는 동안 너희들은 뭐한 거냐?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어?
지금까지 해태라는 팀이 누구 몇 명의 팀이었어?"

이 말에 자극을 받은 해태 선수들은 힘을 내어 승승장구를 했고
급기야 7월 31일 현대를 제치고 페넌트레이스 1위를 달리게 됩니다.
1993년 9월 27일 이후 1047일만의 쾌거였죠.

7월 한 달 간 15승 1무 5패, 8월에는 10연승 등의 저력을 보였기에
그 기세가 결국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양심적으로 1996년 한국시리즈는 이종범이란 이름에 비해선 활약상이 쬐끔 약했습니다.
저도 그래서 어떻게.. 알려드리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네요. ;;;

(1), (2)편으로 만족 못하신다면 (3)편에서 끝내줄 것을 약속드립니다.

물론 (1), (2)편으로 만족하셔도 (3)편을 보실 것을 권합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에서의 이종범
(1) 1993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3) 1997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오돌뼈 2009.10.19 08: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라 2탄!!!!!!!!!! 96년에 그런일이 있눈줄 몰랐는뎅.
    강철옹이 잘했던 해군화.

  2. BlogIcon 맹태 2009.10.19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종범신의 활약이 미약한 때도 있었네요.

    종범신이기 때문에- 다른 선수가 그랬다면 실망했을텐데

    '와, 이런 인간적인 매력도 있구나!'..ㅋㅋㅋ

  3. BlogIcon 윤석구 2009.10.19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면 사람들이 선동열, 김성한 없어서 그랬다고 할 텐데,
    그러면 여태까지 그렇게 우승하는 동안 너희들은 뭐한 거냐?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어?
    지금까지 해태라는 팀이 누구 몇 명의 팀이었어?" < 이말 때문에 자극을 받아서 꼴찌에서 치고 올라갔다구요?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픽션에 불과한 소리죠. 무슨 애들도 아니고, 팀 전력이 말한마디때문에 꼴찌에서 후반에 치고 올라가 1위를 한다는게 스포츠에서 말이 됩니까?
    1996년 해태가 초반 꼴지를 달리다가 치고 올라간것은 1995년부터 방위복무중이었던 이종범과 이대진이 1996년에 전역 한후 복귀한 후부터 치고 올라가 정규시즌 1위를 한겁니다.
    방위첫해인 1995년에 이종범은 홈경기만 출전할수 있었는데(규정이 그랬음) 당시 해태 선발투수들은 광주 홈경기에 등판하려고 서로 다툰것은 유명한 일화죠. 왜냐면 이종범이 광주경기만 출전할수 있었으니
    까.. 무슨 만화책에서 팀의 4번타자가 여자문제로 부진하자, 감독이 그걸 알고 "너란 놈이 이것밖에 안돼냐? 라는 한마디에 - 그 선수 엄청난 고민 - "그래 감독님 말씀이 맞았어"- 여자친구에게 성공해서 만나자고 이별을 통보함-여자친구 울면서 "니가 성공할길 바랄께- 한국시리즈에서 그 선수 역전홈런을 치자 관중석에서 헤어진 여친 눈물을 글썽임- 경기후 진한 포옹을 하며 엔딩... 뭐 이런 스토리네요.
    말한마디에 꼴찌에서 1위를 했다..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되죠.

    • BlogIcon 맹태 2009.10.19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맞는 말씀이네요.
      그래도 감독님의 말씀도 어느정도 자극이 되기는 했겠죠.
      동기부여가 된 선수도 분명 있었을테고.

      암튼 '만화책 주인공'으로 예를 들어주셔서 빵 터졌습니다.ㅋㅋㅋ
      방위병 출전규정에 대한 것은 참 재미있는 일화네요.
      감사합니다.^_^

    • BlogIcon 칸타타~ 2009.10.19 1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극적인 효과를 넣기 위해 포장을 한 건 사실입니다.
      저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해결됐다는 건 아니지만
      김응룡의 리더쉽 속에 분명히 선동열, 김성한 없이 치고 나가고자 하는 면이 있었죠.

      포장의 본 뜻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윤석구님께서 주장하듯 전혀 어불성설일 정도는 아니죠.
      당시 감독으로서도 대물급 선수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심했던 흔적들이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1996년 스포츠신문 3월~4월초 내용들을 보시면
      해태에 대해 하위권으로 전망한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문가들이 3강 3중 2약 혹은 3강 2중 3약 정도로
      평가했던 기억이나네요.
      그 중 해태는 중위권 혹은 하위권에 평가됐죠.

      (시즌 직전 전문가 예상 속에는 방위병으로 잠시 빠진 걸 시즌 전부라 계산하진 않았을테구요.
      방위병의 핸디캡 속에 5월 중순까지 해태가 6~8위를 전전하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던 점은
      당시 언론이나 팬들에겐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죠.
      다름 아닌 해태인데.)

      시범경기 성적도 안 좋았고 시즌 초반 출발이 안 좋으니 예견됐다는 기사도 있었고
      혹은 해태 이렇게 무너지나? 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죠.

      그리고 이종범이 방위복무 출전의 거의 마지막 세대였죠.
      원래 방위병 복무하면 홈 경기만 출전할 수 있었거든요.
      그게 1996년 시즌 중에 전역을 했죠.
      (1995년 이종범의 성적이 약했던 것도 방위 복무로 인한 출전 제한 때문이었죠.)

      1996년에 방위병 출전금지 조항이 생겼고,
      방위병 자체도 사라지면서 방위병의 홈 경기 출전도 영영 사라집니다.

      제가 이종범, 이대진 등이 방위병 복무한 걸 몰라서 안 넣은 게 아님을 밝힙니다.
      불혹이 된 이종범의 한국시리즈 맹활약에 감동 받아서 쓴 글이므로 이해바랍니다.

  4. BlogIcon 칸타타~ 2009.10.19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위병 이야기 나왔으니 말인데요.
    한국 프로야구의 마지막 방위였던 선수를 꼽아보겠습니다.
    시기가 약간 다르지만 거의 끝물(?) 방위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죠.
    위에 언급한 이종범, 이대진에 송구홍, 유지현, 박종호, 김한수, 정민철 정도가 기억나네요.

  5. 나불나불 2011.01.27 2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가지 잘못 표기해 놓으신게 있네요~ 1994년 해태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준플레이오프 자체를 치루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3위와 4위가 4경기(맞나)차 이상 벌어지면 준플없이 곧바로 플레이오프를 치룬다는 규정이 있었고, 4위 해태는 3위와 4경기 이상 벌어지며 준플레이오프를 하지 못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