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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형오 전 의장  "文정부 성패, 진영논리 극복에 달려"


한·터키 수교 60주년 행사서 '술탄과 황제' 저자로 기조 발표
"보수진영, 이대로 가다간 존재 무의미해져…철저히 죽어야 회생 가능"


터키 국영방송과 인터뷰하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차탈회이위크<터키>=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이달 21일 오후 터키 차탈회이위크 신석기시대 유물 발굴현장에서 터키 국영 테레테(TRT)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 전 의장은 오스만왕조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다룬 '술탄과 황제' 저자다. 2017.7.21 chc@yna.co.kr


(앙카라=연합뉴스) 하채림 특파원 = "지금 보수니 진보니 이런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한국은 '진영논리'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의 수명'이 언제 끝날지 몰라요."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한국과 터키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학술 교류행사 '아나톨리아 오디세이'에 참석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70)은 보수의 위기 타개책에 관한 질문에 답답함부터 토로했다.


그는 일정의 종착점인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이달 24일 열린 심포지엄에서 오스만왕조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다룬 인문서 '술탄과 황제' 저자로서 '역사의 새벽을 깨운 메흐메드2세'라는 제목으로 기조 발표를 했다. 

기조연설 하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앙카라<터키>=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24일 오후(현지시간)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한ㆍ터키 수교 60주년 기념 학술ㆍ문화행사 '아나톨리아 오디세이' 심포지엄에서 기조발표를 하고 있다. 2017.7.24 chc@yna.co.kr


김 전 의장은 발표 이튿날인 2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사회 전반이 극심한 진영논리에 매몰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정당뿐만 아니라 모든 기관과 조직, 직능이 '어느 것이 더 정당하고 우리 사회에 이로운가'보다는 '어느 쪽이 우리편이냐'를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면서 "이래서는 한국이 직면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고 개탄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성공하려면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전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직후 정무직 인사를 보면서 새 정부가 그런 기대에 부응하나 싶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진영논리를 답습하는 모습이 보인다"면서도 "아직은 기대를 품고 있다"고 했다.

20여 년 몸담은 보수진영에 대해 "지금처럼 계속하다가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필패하고, 존재가 무의미해질 것"이라며 쓴소리를 쏟아내고 "철저히 죽어야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굴현장 설명 듣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차탈회이위크<터키>=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김형오 전 국회의장(왼쪽 첫번째)이 21일 오후 터키 차탈회이위크 신석기시대 유물 발굴현장에서 이언 호더 발굴단장으로부터 유적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 전 의장은 오스만왕조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다룬 '술탄과 황제' 저자다. 2017.7.21 chc@yna.co.kr


김 전 의장은 5선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을 역임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정치인은 비위 혐의나 경쟁력 상실로 떠밀려 정치판에서 '퇴출'되는 경우가 많다. 김 전 의장은 그러한 전례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지역구에 뚜렷한 경쟁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전부터 저술가로서 제2의 인생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서 "너무 늦기 전에 결단했다"고 2년 전 불출마 선언 배경을 설명했다.

후배 정치인들에게 '롤 모델'이 되고 싶다는 김 전 의장은 다음 책의 소재 후보로 1683년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진 '빈 공성전'을 꼽았다. 또 전쟁사다.

"로맨스를 쓰기에는 나이도 있고, 무엇보다 경험이 일천하니까…"

tree@yna.co.kr 



[2017-07-26 연합뉴스] 인터뷰 기사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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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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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4] 아나톨리아 오디세이 심포지엄 기조 발표문

 

 

“역사의 새벽을 깨운 메흐메드 2세”

-『술탄과 황제』를 통해 본 역사성과 지도력-

 

 

 

김형오 (전 국회의장, 현 부산대 석좌교수)

   

한국과 터키는 1957년 국교를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곳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 뜻깊은 행사에 기조 발표자로 초대를 받아 개인적으로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앙카라<터키>=연합뉴스) 정하종 기자 =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24일 오후(현지시간)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한ㆍ터키 수교 60주년 기념 학술ㆍ문화 심포지움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17.7.24


수교를 한 해도, 60년이 지난 금년도 한국은 닭의 해입니다. 오스만 터키의 전장(戰場) 군영에서 새벽 기상을 알렸던 호자데데(Hoza Dede: 수탉 영감)처럼 닭은 새벽을 깨우는 길조(吉鳥: 좋은 징조를 주는 새)입니다. 파티 술탄 메흐메드(Fatih Sultan Mehmet; Mehmed the Conqueror)가 콘스탄티노플을 정복,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1453년은 한국의 닭의 해에 해당되며, 일제로부터 해방된 한국 최고의 국경일인 광복절도 닭의 해에 일어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닭의 해에 수교 60돌을 맞은 한국과 터키, 두 나라에 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해 봅니다.  

나와 터키와의 인연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2009년 1월, 꼭 8년 6개월 전 한국의 국회의장으로 터키를 공식 방문하는 길에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에서 메흐메드 2세를 만났습니다. 쇠사슬 방책으로 골든 혼(the Golden Horn; Haliç) 항구 진입이 봉쇄되자 수많은 배를 이끌고 산을 넘어간 스물한 살 청년 술탄! 누구도 상상 못한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항구를 점령해 천년 제국 비잔티움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역사를 쓴 인물! 이 청년 술탄에 대한 관심이 내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앙카라에서 터키의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회의원들을 만났을 때도 정복자 메흐메드에 관한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림 1: 배를 끌고 산을 넘다]

 

귀국 후 내 책상 위에는 터키 관련 서적 수십 권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중 콘스탄티노플 정복 관련 책자는 번역서 단 한 권(스티븐 런치만; Steven Runciman,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뿐이었는데, 바쁜 국회의장 업무를 수행하면서 짬 날 때마다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여 아마존 등 인터넷 서점을 통해 1453년 정복 전쟁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틈만 나면 짬을 내어 이스탄불을 방문해 격전의 현장인 성벽을 수없이 답사했습니다. 대학 도서관과 연구소·박물관을 찾았고, 유수 대학의 교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을 만나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습니다. 못다한 질문과 궁금증은

이메일로 계속되었습니다. 

      

                [그림 2: 성벽 앞의 필자]                             [2-1: 복원된 성벽]

  

‘이스탄불 정복전쟁’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높아질수록 작가로서의 모험이 곁들인 새로운 길과 정치인으로서의 명예로운 길 사이에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은 정계 은퇴 선언이었습니다. 이후 전적으로 여기에 매달리며, 이스탄불로 떠나 두 달간 장기 체류를 하기도 했습니다. 

메흐메드 2세를 알게 된 지 4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2년 늦은 가을, 드디어 책이 나왔습니다. 제목은 『술탄과 황제』입니다. 책은 나오자마자 언론과 평단 그리고 서점가의 화제작으로 떠올랐습니다. 호평과 찬사 속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책의 내용과 수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해 주기를 바라는 뜻에서 책 관련 자료 어디에도 나의 정치 경력은 넣지 않았습니다. 일반 소설도 교양서도 아닌, 아마추어 작가가 쓴 한국과 아무 관련 없는 560년 전 남의 나라 이야기가 4만 권 넘게 팔린 것은 한국 출판사상 지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메흐메드 2세는 어떻게 난공불락 철옹성을 무너뜨리고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했을까요?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 그는 탁월한 전략가였습니다. 역발상으로 배를 끌고 험난한 갈라타 언덕을 넘어간 창조적 마인드의 소유자이며 치밀한 행동가였습니다. 선대 술탄들이 모두 공략에 실패한 천년 성벽을 뚫기 위해 그는 규모와 성능 면에서 세계 최대‧최고의 대포를 개발했습니다.  

                                         [그림 3: 우르반의 대포]

그밖에도 공성탑 건설, 땅굴 공격 등 첨단 기기와 과학 기술을 총동원해 지 상‧지하‧해상‧공중에서 다양한 전술 전 략을 펼쳤습니다. 육군 중심국이었지 만 해군을 보강하여 장차 지중해 제해 권 장악의 기초로 삼았습니다. 군사 조직을 비정규 용병(바쉬보주크), 지방 민병군(아잡), 정규군(아시아군‧유럽군), 정예군(예니체리) 등으로 다원화·체계화하고 보병과 기병의 역할 분담 등을 통해 공격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정복 이후 200년 이상 터키가 유럽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한 것도 메흐메드 2세의 업적에서 비롯된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철두철미하게 ‘준비된 전쟁’이었습니다. 메흐메드 2세는 술탄에서 강등되어 왕자로 돌아가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능한 스승들을 모셔 심신을 단련하는가 하면, 직접 전투에 참가해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술탄에 다시 즉위하자마자 서방 각국과 일시적 휴전 조약을 맺는 등 평화 외교를 펼쳐 비잔티움을 비롯, 서방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렸습니다. 헝가리 섭정 후냐디(야노슈 후냐디: Janos Hunyadi)의 발을 묶어놓고, 앙숙 관계였던 베네치아‧제노바를 상호 견제시키기도 했습니다. 배후 안정을 위해 동부 카라만(Karaman ; Karaman Beyliği)과는 정복 전쟁 대신 평화 조약을 맺고, 선친 무라드 2세의 미망인이었던 마라(Mara Brankovic)를 귀환시켜 그녀의 친정 아버지인 세르비아 왕의 환심을 샀습니다.

지도를 통해 지형지물을 숙지하고, 전문가들을 초빙해 정보를 얻고, 공격 목표인 삼중 성벽을 직접 사전 답사도 했습니다. 수송로와 지원군 차단을 위해 보스포러스 해협에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rı)를 세우고 철저한 봉쇄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림4: 루멜리 히사르]

아랍·러시아 등 강국의 수많은 침략과 오스만 선대 영웅들의 여섯 차례 공격에도 버텨냈던 콘스탄티 노플이 21세의 청년 술탄에게 정 복되는 비결 아닌 비결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셋째, 국론을 통일하고 중앙집권제를 강화했습니다. 전국적으로 전쟁‧전승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모병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현실적 보상과 출세의 사다리를 제공하고, 이슬람 성직자들을 통해 성전(聖戰:Jihad)과 정전(正戰: Justice War)의식을 고취시켰습니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화평파 세력도 참전시켜 토론과 담판을 통해 반대 의견을 제압했습니다. 정복 후 여세를 몰아 정적이었던 할릴 파샤(Halil Chandarlı Paşa)를 제거하고 부족‧호족 등 기득권 세력을 몰아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종‧종교‧지역·신분을 불문하고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세계 제국으로 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넷째는 리더십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승리의 핵심 요인인지도 모릅니다. 메흐메드 2세는 늘 최전방에서 말을 몰며 진두지휘를 했습니다. 해상 전투가 치열할 때는 관복이 물에 젖는 줄도 모른 채 직접 말을 타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림 5: 말 타고 물에 뛰어든 술탄]

타고난 승부사였습니다. 한 번의 실패 뒤에는 반드시 역전의 비책을 던져 더 확실한 승리를 일구어냅니다.

병사들과 똑같이 야영하는 솔선수범 형 지도자였습니다. 실전 같은 훈련, 훈련 같은 실전을 했습니다. 신상필벌 에도 엄격했습니다. 패배자는 결코 용 납하지 않았습니다. 전리품은 약속 대 로 처리했고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고 신뢰를 얻었습니다. 군기 또한 엄중했습니다. “튀르크군 1만 명의 행군보다 기독교 군대 100명이 움직이는 소리가 더 시끄럽다”라는, 15세기 한 프랑스 여행가(베르트랑동 드 라 브로키에르: Bertrandon de la Broquiere)의 목격담이 그 사실을 실감나게 증명해 줍니다. 그러므로 당대 최고의 헌신과 열정의 지도자 중에서 파티 술탄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책이 나온 후 나는 이스탄불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몇 차례 더 방문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새로운 결심이 섰습니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쓰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38쇄를 거듭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책을 더는 찍어내지 말도록 출판사에 요청하고, 두 달 안에 개정판 원고를 넘기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가 나오기까지는 꼬박 1년 6개월이 더 걸렸습니다. 

[그림6: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한 페이지도 전작과 같은 곳이 없을 정도로 완전히 뜯 어 고쳤기 때문입니다. 전작(초판본)의 정신과 뼈대는 그 대로 살리되 사실상 새 책으로 쓰려니 재주가 부족한 저 로서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체제도 바꾸고 문 장·표현도 고치고, 일부는 삭제하고 상당 부분을 새로 추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터키 측 자료들을 요긴하게 활용(특히 페리둔 에메전 교수의 근작: Feridun Emercen, 『Fetih ve Kıyamet 1453』 등)했습니다. 

새 책 역시 문단의 호평을 받았고, 언론에서도 크게 리뷰를 해주었습니다. 작년 연말 촛불 시위, 태극기 집회 속에서도 책을 읽어준 한국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초판에 이어 개정판까지 구입해 꼼꼼히 대조해가며 읽었다는 독자도 인터넷을 통해 적잖이 만납니다.  

1453년 5월 29일, 비잔티움이 멸망하고 오스만 제국이 들어섰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왜 책으로 쓰려 했고, 독자에게 무엇을 말하려 한 걸까요.  

첫째,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한 문명의 축적 위에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는 그 계기로 보고자 했습니다. 문명 대 문명의 충돌은 보통 승자의 패자에 대한 보복‧파괴‧멸절(滅絶)로 이어졌지만, 오스만은 포용과 공존‧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역사의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전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수단이 동원되었지만, 지도자의 역량과 철학에 의해 문명 파괴가 아닌 문명 승화(Sublimation of Civilization)의 본보기를 보여준 것입니다. 나아가 서구적 편견 없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터키 문명, 그 중에서도 동시대 세계사의 한 축으로 취급돼야 할 오스만의 역정(力征)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림 7: 메흐메드 2세 초상]

둘째, 가장 결정적 시기에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 그 중에서도 두려움과 대적해야만 하는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통해 인간의 능력과 한계를 살펴보고 자 했습니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과 자질, 생 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의 선택과 결단 등을 술탄과 황제의 입장이 되어 파고들었습니다. 솔선수범‧진두 지휘‧신상필벌로 요약되는 승리자 메흐메드 2세는 ‘달리는 리더십’으로 규정했고, 우유부단하지만 끝까 지 모든 책임을 싸안고 가는 콘스탄티누스 11세를 통해서는 ‘눈물의 리더십’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가냘픈 존재인지를 너무나 잘 아는 필자로서는 그 나약한 치부를 들추어내기보다는 그것을 감싸고 덧바름으로써 한 단계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담아 보았습니다.  

마지막 셋째로, 역사를 통해 오늘과 미래를 생각해 보고자 했습니다. 국가의 존재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유한하다는 전제 아래 이 책은 출발합니다. 국가가 당면한 최고의 위기, 가장 긴박한 순간인 전쟁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거대한 역사의 물결 앞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 오늘날 심각한 안보 위기와 혼란스런 국제 정치 속에서 한국과 한국민은 어떻게 살고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이것을 560년 전 아득히 멀리 떨어진 아나톨리아 반도의 흥망성쇠를 통해 역사의 생생한 교훈으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한국과 터키, 67년 전 그들은 한반도에서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고 피 흘리며 죽어갔습니다. 또 그 후손들이 오늘 각자의 나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피하려면? 나아가 번영·번성하려면? 국가가 존재해온 이후 끊임없이 계속돼온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 양국은 위대한 선조들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메흐메드 2 세의 헌신과 열정을 가슴에 새긴다면 험난한 파도도 담대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 역사의 새벽을 깨운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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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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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아 오디세이 심포지엄: 축사]

 

 

 

“자유와 역사적 연대를 넘어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년이 지나고 한국과 터키는 국교를 수립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이었습니다. 이틀 후인 7월27일은 지긋지긋한 전쟁을 잠시 중지하기로 합의한 휴전협정을 맺은 지 64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식 수교국도 아니며, 터키의 국민과 젊은이들이 들어보지도 못하였던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사람들을 도우려, 함께 싸우고 피 흘리며 목숨을 걸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터키로서도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고려 요소가 있었겠지만 나는 여기서 두 가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자유’입니다.

모든 면에서 연약하기 짝이 없는 신생국 한국은 이제 그 국민이 그나마 누려왔던 자유마저 잃게 될 위기였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생명과 자유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에 의해 나라가 없어지고 국민이 사라지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피 흘려 나라를 지켜왔고, 또 주권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당한 자유를 힘들게 누리게 된 터키로서는 한국민의 자유가 유린되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터키군은 한국전에서 힘들고 어려운 전투에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나섰고, 그리하여 미국·영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습니다. 그리고 자유를 지켜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에는 그들의 고귀한 희생과 신념이 묻어있고 그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역사적 연대감’입니다.

첫머리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라고 말했습니다만, 우리는 1300년 전 강한 역사적 연대를 형성한 적이 있습니다. 터키는 지금부터 2천 년도 더 전부터 중앙아시아의 주인이었습니다. 가장 넓은 대륙에서 가장 오랜 기간 푸른 초원을 지배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고구려와는 사신 왕래를 비롯,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역사적 연대는 한국전을 통해 피로써 다져지고, 터키 지진 사태 때는 땀으로 적시고, 2002년 월드컵 때는 양국기를 함께 흔들며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응원을 하였습니다. 승리와 패배를 가리기 위한 축구 시합이 아니라 우정과 신뢰의 기반 위에 양국 모두의 승리를 위한 탑을 쌓아올린 것입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도 두 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나라를 손꼽으라면 한국에선 터키, 터키에선 한국이 빠지지 않는 이유는 이런 역사적 연대감이 뿌리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수교 60년간 두 나라는 엄청나게 변하고 발전했습니다. 경제·문화적 교류는 더욱 활성화되고, 인간적 신뢰는 더욱 두텁게 쌓였습니다.

한국, 동양적 세계관에서 60년이란 일생, 한평생을 말합니다. 한 생이 끝나고 새로운 생이 시작되는 의미에서 ‘환갑 또는 회갑’이라 부르며 중요하게 여깁니다.

한·터키 관계에서 ‘첫 번째 국가 일생(the first nation’s lifetime)’인 60년은 매우 의미가 깊었습니다. 다가올 새로운 제2의 국가 일생은 더욱 의미 깊게 승화·발전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특히 양국 간의 학술적·문화적 교류와 협력이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더욱 심화·발전되리라 기대합니다. 정기적이고 지속적이며 심도 있는 연구가 다방면에서 진척된다면 세계적 수준의 협력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과 터키 기업이 함께 건설하는 ‘1915 차낙칼레 대교’공사가 막 시작되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세계 최고·최장의 현수교가 터키공화국 건국 100주년을 맞는 2023년 개통될 때, 이 다리처럼 두 나라의 협력과 기술 수준, 우의는 더욱 발전하고 굳건해질 것입니다.

그때쯤 우리는 오랜 숙원인 남북의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그리하여 아시아 대륙의 한 쪽 끝에서 다른 한 쪽 끝까지 광범위한 문화 공동체가 오래 전 1500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구축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혈맹이며 형제이며 함께 가야 할 영원한 동지입니다. 세계를 위하여 응분의 역할을 해야 할 나라이며 국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며 축사에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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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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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직을 맡고 나서 가능하면 좀 더 자주 아직 살아 계신 애국지사를 방문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제 그분들 얼굴을 뵐 날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찬규 선생은 광복군 동지회의 가장 막내 회원이며, 인천시의 유일한 생존 애국지사이십니다.


[독립운동가를 찾아서/광복군 박찬규 지사]
 


“일본군 무기를 밀반출, 광복군에 넘기려 한 18세 애국 소년”




7월 18일 오후, 독립운동가 박찬규 지사(90세) 댁을 찾았다. 강화도 민통선 건너 소담한 집에 사모님(82세)과 두 내외가 살고 계셨다.

국가보훈처 자료와 오늘 들은 얘기를 종합해 일단 애국지사 박찬규 선생의 삶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92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 북경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 부대의 군속으로 근무하며 일제의 잔악상에 눈을 뜨고 점차 민족의식을 키워나간다. 1945년 2월 한국광복군 제3지대 소속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북경에서 암약하던 김순근과의 만남은 그의 삶을 전격 전환시킨다. 독립운동에 몸을 던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해 3월 일본군 부대 관사에 잠입, 지하공작에 쓸 총기 등을 몰래 빼내려다 붙잡혀 옥고를 치르던 중 해방을 맞아 극적으로 풀려난다. 6.25 전쟁에 참전, 백마고지 전투에서 공을 세운 호국용사이기도 하다. 2000년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했다. (거사를 함께했던 김순근 지사는 일본군의 가혹한 고문에도 꿋꿋이 저항하며 동지를 보호하기 위해 결코 발설하지 않았고, 끝내 형무소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광복 이후 박 지사의 항거를 증언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도쿄에 있는 일본 법원에 이에 대한 근거 자료가 남아 있어 독립운동가로 공식 인정받게 되었다.)

박찬규 선생은 거동이 다소 불편하지만 여전히 동네를 산책할 정도의 기력이 있으셨다. 사모님은 아직 건강해 보이셨다. 슬하의 1남 2녀는 서울‧인천 등지에 떨어져 살다 보니 자주 오지는 못하는 편이라고 한다. 두 내외는 우리를 매우 반갑게 맞아주시고 텃밭에서 기른 토마토와 잘 익은 수박을 큼지막하게 썰어 내오셨다. 준비해 온 「백범회보」와 휴대용 수첩 그리고 정관장을 답례로 드렸다.

평소에도 과묵하신 편이라 말씀이 뜸하신 박 선생을 대신해 사모님이 곁에서 보충 설명을 해주셨다. 그래도 사모님 말씀 중 부정확하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바로 고쳐주셨다. 듣기로 선생은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독립유공자 신청도 하지 않고 지내시다가 주변의 권유와 도움으로 2000년에야 유공자 등록을 하셨다고 한다.

집 바로 뒤로는 철책선 너머 한탄강이 흐르고 임진강‧예성강이 만나는 지점까지 바라다 보인다. 무엇보다 북한 땅이 지척이다. 한여름인데도 벌거벗은 모습인 민둥산과 황량한 북녘 마을을 보고 있으려니 눈을 떼기가 서운했다. 북쪽에서 건너온 대남 방송 소리가 고요한 마을의 정적을 흔든다. 그나마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돌아오는 길, 도로 양옆에 심어진 무궁화 군락이 오늘따라 더욱 싱그럽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무궁화 꽃잎을 보면서, 그 옛날 영화 시작 전 애국가와 함께 틀던 스크린 속의 한 장면이 떠올라 잠시 마음이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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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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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헌절 기념식 직후 <국가원로 개헌 대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비공개로 진행되었지만,

KBS1에서 녹화하여 17일 오후 3시에 방송했기 때문에 보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토론 발제를 제가 맡게 되었는데, 참고가 될까 하여 발제문을 아래에 올립니다.

개헌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계속되길 바랍니다.


[사진출처] 노컷뉴스


[국가원로 개헌 대토론회 발제문]




새로운 개헌의 과제와 지향점



                                                                       김형오 (전 국회의장)


  제헌절을 맞아 헌법의 존엄성과 시대 여망에 부응하는 개헌의 전기를 마련해준 정세균 국회의장께 감사드린다. 


  현행 헌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권력의 집중"과 (행위와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중심한 행정부가 국회•법원에 비해 과도한 권한을 가진데 반해, 권력을 상호 견제하거나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시스템은 발달하지 못했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 ‘all or nothing’ 게임에서 패배한 야당이나 과격파 기득권층은 조직적•저항적 반대 투쟁과 전투적 권력 교체를 추구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다수 국민은 정치 참여에서 소외되고,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혐오•불신 풍조가 조성됐으며,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를 심화시켰다.

  한국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은 먼저 삼권 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

1)자기가 집행할 법률을 자기가 만들어 국회에 제출할 수 있고,
2) 자기가 쓸 국가 예산을 자기가 편성하여 국회는 심의만 하도록 하고,
3) 자기 공무원에 대한 감찰을 자기가 직접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미국 대통령은 생각할 수도 없는 막강한 권한들이다.

  또한 현행 헌법은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대법관•헌법재판관 등의 임명에 대통령이 직접 간여할 수 있다.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더구나 국민 생활과 직결되고 국가 권력의 핵심 집행 기관인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공정거래위•방송통신위 등의 장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이다.

  장기 집권 방지와 평화적 정권 교체는 현행 헌법의 장점이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제도화 정교화되지 못함으로서  지도자의 공인 의식, 책임감, 제도와 공론에 의한 권력 행사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무뎌지게 되는 약점을 안게 됨. 

  결국 당선된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는 제왕적 권한을 휘두르다가, 중반기에 들어서면 극심한 대립에 시달리고, 종반기에는 힘없는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해, 결국은 민망한 모습으로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누구 하나 예외가 없었다. 국민에 대한 헌신과 봉사보다는 누려야 할 권력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막강한 헌법적 권한과 5년 단임이라는 시간적 제약, 그 딜레마에 빠져 새로운 업적 쌓기와 전임자 업적 지우기를 반복함으로써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다. 전 정부에서 하던 중장기 사업은 신정부 출범과 더불어 사라지고, 주무부서는 통폐합되고, 책임자와 담당 공무원은 한직으로 밀려나게 된다.
공무원은 의욕을 잃고 정부는 단기성과에 집착하다 보니 국가 경쟁력은 떨어지고, 중장기 비전을 잃어버린 나라가 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과 권한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모든 권력 주체들에게 엄정한 책임이 부과되어야 한다. 그 길만이 대통령도 나라도 국민도 사는 길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줄이려면
1)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누는 이원정부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2) 미국과 같은 순수 대통령제를 채택해야 한다.
3)어떤 경우든 국회의 권한은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 권한의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국회로 넘어오거나 국회의 견제 장치가 더욱 강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강한 상태에서, 국회의 권한이 강화되는 것에 국민이 선뜻 동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의원내각제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1)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하며, 2)새로 마련할 개헌안에는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책임성을 명시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이원정부제를 하잔다면서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를 전담한다는 발상은 효율적이지도 못하며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협치에 의한 권력 균점과 야합에 의한 권력 나눠먹기는 다른 것이며, 이런 안이하고 무책임한 발상은 이원정부제 자체의 탄력을 잃게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두겠다는 발상도 임시 미봉책이다. 표풀리즘에 의해  탄생한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두자는 것은 누구도 결과에 책임은 지지 않고 생색만 내겠다는 또다른 포퓰리즘적 발상이다. 개헌을 통해 국회를 완전히 세종시로 옮기지 않는 한 국정의 비효율성은 심각히 증대되고, 국가 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것이다.

  일방 독선 아집 무책임의 정치에서 대화 협치 공존과 책임 정치로 변해야 한다.
개헌이 그 시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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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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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으로 발행되는 법무사회보 7월호에 제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진정한 정치 개혁은 정당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인터뷰 내용을 지면 그대로 아래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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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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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 사람 2017.07.21 1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정치이념에 마지막은 무정부 주의 입니다.... 공부 하셔야 겠네......

  2. 서울 사람 2017.07.21 12: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당과의회가 먼저가 아니구요
    국민이 먼저 입니다..... 공부 다시하세요...

  3. 서울 사람 2017.07.21 1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구요 김형오씨 국회의장시절에
    보좌관 있죠?? 그사람 간첩 입니다.....
    택시 블랙박스와 인공위성 레이져 감청 가해자입니다......... 참으로 뻔뻔하시네..
    그리고요 세계의 모든 세금제도는 공산주의 제도 입니다... 복지제도는 사회의제도고....
    공부 하셔야 겠네...

김성곤 교수는 2003년부터 매주 수요일 <코리아 헤럴드>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자 칼럼에 제 책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를 언급한 부분이 있어 칼럼 일부를 올립니다. (영문 원문은 전문 올림) 김성곤 교수는 현재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으로 저의 또 다른 책 <술탄과 황제>를 해외에 소개하기 위해 애써주고 계신 분입니다.




한국의 미래에 관하여


최근 나는 한국의 미래를 다루는 두 권의 책을 읽었다. 하나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이다. 다른 하나는 서울대 전 공과대 학장인 강태진 재료공학부 교수의 코리아 4.0, 지금이다였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두 권의 책 모두 논리정연하고, 설득력 있으며, 핵심을 꿰뚫는 분명한 글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책들은 사고를 자극하고 시야를 트이게 했다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아량 있는 리더십, 즉 자신들의 정적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대신 우리 지도자들은 자신의 계파가 아닌 사람들이라면 능력과 역량에 관계없이 항상 적대시하고 배척했다. 관직에 누군가를 지명하기 전에, 우리의 편협한 지도자들은 언제나 그는 우리 편인가?” 혹은 그가 우리 선거 캠프에 있었나?”라고 묻는다 

김형오 전 의장은 또한 우리 사회나 정치 지도자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특권에 따른 희생정신, 책임감, 그리고 품위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들은 단지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력만 좇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는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지도자들은 언제나 우리를 실망시켰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 초대 대통령은 남쪽으로 피신하면서 한강 다리를 무너뜨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울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비운의 세월호 선장은 승객이 익사하도록 남겨둔 채 홀로 탈출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지진이 일어났을 때, 어느 학교장은 학생들을 지키거나 구하는 대신 혼자서 도망쳤다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는 또한 위기 상황에서 우리 지도자의 미숙함과 무능함을 통탄한다. 예를 들어 세월호 침몰 때나 중동 호흡기 증후군(메르스)이 퍼졌을 때, 우리 지도자들은 총체적인 무능력을 보였다. 어떻게 우리가 그런 어리석은 지도자를 믿고 존경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김형오 전 의장은 또한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 집단적 이기심의 벽을 허물고, 계파 싸움의 껍질을 깨도록 촉구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통합과 화해를 절실하게 요구한다. 김형오 전 의장의 통찰력 있는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언젠가 우리 모두 화해의 테이블에 앉아 화합의 노래를 합창하고 평화의 음악에 맞춰 즐거운 춤을 출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중략)

두 권의 책을 읽은 후, 나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두 저자는 변화를 촉구한다. 예를 들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궁극적으로 국가를 파산으로 몰고 갈 포퓰리즘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우리는 만성적인 계파 싸움을 뿌리 뽑고 단합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변화시켜야 한다. “드래곤 블레이드라는 영화에서 성룡은 겁쟁이들은 과거에 매달리고, 용감한 사람은 미래를 바꾼다고 말한다. 우리도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직 그러할 때 한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김성곤

 


김성곤은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이자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이다. 그의 이메일 주소는 sukim@snu.ac.kr이다. (편집부)





[영어 원문]


What to do with Korea’s future



Recently I read two books that deal with the future of Korea. One was “For Whom This Nation Exists” by Kim Hyong-o, a former National Assemblyman and house speaker. The other was “Korea 4.0 Now” by Kang Tae-jin, a professor of textile engineering and former dean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While I was reading the two books, I could not but help nod frequently. Both books were well-argued, highly persuasive, penetrating and illuminating. Above all, they were thought-provoking and eye-opening.

“For Whom This Nation Exists” argues that our political leaders have seriously lacked magnanimous leadership, that is, the capacity of embracing others, including their political opponents. Instead of embracing the differences, our leaders have almost always antagonized and turned their backs on those who do not belong to their faction, no matter how able and competent they are. Before appointing someone at a government post, our narrow-minded leaders have always asked, “Is he one of us?” or “Was he in our election camp?”

Kim also argues that our social or political leaders have also lacked noblesse oblige, that is, the spirit of sacrifice, responsibility and decency that comes with privelege. In the eyes of the people, they just savor power bestowed upon them. But a true leader is one who is ready to sacrifice himself for people in an emergency. Unfortunately, our leaders have always disappointed us. When the Korean War broke out, our first president fled to the south, destroying the Han River Bridge as he left, so people could not escape from Seoul. The captain of the ill-fated Sewol abandoned his ship, leaving passengers to drown. When there was an earthquake, a school principal, instead of protecting or rescuing his students, reportedly escaped alone.

“For Whom This Nation Exists” also laments our leaders’ clumsiness and incompetence in times of crisis. For example, when the Sewol sank or when the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epidemic spread, our leaders exhibited total incompetence. How can we trust and respect such inept leaders? Furthermore, no one assumes responsibility in Korean society when something happens.

Kim also urges our political leaders to tear down the wall of collective selfishness and break the shell of factional antagonism. Indeed, our society urgently needs integration and reconciliation. After reading Kim’s insightful book, I hope that one day we all could sit at the table of reconciliation, singing together in unison and dancing joyously to peaceful music.

The other book, “Korea 4.0 Now,”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convergence to integrate different academic disciplines such as engineering, medicine, education and the humanities. In the book, Kang encourages not only interdisciplinary, but also multidisciplinary and transdisciplinary approaches in academia that would enable us to have more sophisticated, comparative perspectives. The book calls for modern-day Renaissance men in Korean society.

Kang also highlights that in order to accomplish true convergence and consilience, we should be creative. According to the book, creativity can be fostered by educational reform. Kang boldly argues that the binary evaluation system that forces students to choose the one and only right answer out of five possible answers should be abolished because it blocks diverse possibilities of creative thought. Kang says that so many revolutionary scientific discoveries inadvertently stem from random questions or what we perceive as wrong answers. In scientific terms, he writes, it is called “serendipity.”

In “Korea 4.0 Now,” Kang contends that our future will be shaped by our excellence not only through creativity, but also artificial intelligence, nanotechnology, bioengineering, big data and other technologies that belong to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He urges that we should be prepared for the upcoming social change.

In his book, Kang brings up an incident. At a G-20 summit meeting in 2010, Barack Obama repeatedly gave Korean reporters a chance to ask a question. Regrettably, no Korean reporters spoke at the time, whereas a Chinese reporter tried to ask questions several times. Kang blamed the Korean education that does not encourage people to ask questions. In my opinion, they could also have been silent because they were unsure of their English proficiency. Experts maintain that our English education has totally failed, because its main concern is not how to express yourself, but how to choose the grammatically right answer at the college entrance exam. If so, educational reform is imperative in Korea.

After reading the two books, I pondered on the future of Korea. The two authors urge us to change. For example, we should put an end to populism, which is likely to make our nation bankrupt eventually, if pushed to the extreme. We should root out chronic factional brawls and unite. We should also try to change the future, not the past. In the movie “Dragon Blade,” Jackie Chan narrates, “While cowards cling to the past, courageous men change the future.” We, too, should become brave men who can change our future. Only then, will Korea’s future be bright.


By Kim Seong-kon




[2017-07-11 코리아 헤럴드] 칼럼 원문 바로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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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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