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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9 한국핵정책학회 추계학술대회 격려사>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형오 전 국회의장



친애하는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및 회원,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지금 한반도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으로 625 전쟁 이래 최대 안보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절박한 시기에 한국핵정책학회가 기로에 선 한국, 핵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마련했습니다. 최고 전문가들의 기탄없는 토론과 진단 그리고 명쾌한 처방을 기대합니다.


    사진제공 : 파이낸셜 타임즈


전문가도 아닌 저는 오늘 아침, 왜 이 자리에 서게 된 걸까요? 먼저 제 이력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그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오랜 기간 정치권에 몸 담았고, 대한민국 의전 서열 두 번째인 국회의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어 어느 정당, 어느 정파에도 소속돼 있지 않습니다.


20년 남짓한 국회의원 생활 초반 10여 년 동안 저는 과학기술정보통신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정치외교학도였던 저는 왜 전공과는 거리가 먼 이 분야에 종사한 걸까요? 대한민국을 살릴 미래의 먹거리이자 성장 동력은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 상임위에서 2년 정도 활동하다가 다른 상임위로 옮기는 것이 당시 국회의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관례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줄곧 과학기술 그리고 정보통신 분야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이 분야에 문외한이던 저는 매년 국정감사 우수 위원으로 선정됐고, 몇 가지 자부할 만한 업적도 쌓았습니다.


국회의장 시절, 저는 상임위 경험을 살려 아랍에미리트(UAE)로 날아가 그곳의 실질적 통치자인 모하메드 왕세자와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를 협의했습니다. 한국의 원자력은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으며, 가장 안전하고 가장 값싸고 가장 빠른 시일 안에 지을 수 있고 지은 후에도 가장 경쟁력 있고 경제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음을 설득력 있게 설명했습니다. 모하메드 왕세자는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가 그를 만난 후 1년도 안 되어 한국 대통령과 모하메드 왕세자는 아랍에미리트에 한국형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기로 정식 합의했습니다. 석유 부국 UAE가 사막을 옥토로 만들기 위한 장기 비전하에 우리 기술로 만든 원자력발전소의 완전 가동을 이제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적어도 한 곳 이상의 원자력 발전소를 직접 방문해 현장을 익히고 관계자들과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10여 년 전 위도 방폐장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 저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당시 여당의 실세 정치인들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정치 생명을 걸고 위도 중저준위 방폐장 설치를 반대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환경 보호를 내세운 시민단체는 물론 다수의 군민들도 격렬한 반대 시위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야당 의원인 저도 곤경에 처한 정부를 수수방관하거나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위도 방폐장 설치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 결과 며칠간 제 의원회관 사무실은 마비 상태였고, 저는 감당하기 힘든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중저준위 방폐장이 많은 인센티브를 받고 경주에 설치키로 한 것은 너무나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위도 방폐장 문제가 불거지기 2년 전쯤 스웨덴의 방폐장을 직접 시찰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여름철이라 안내자나 저나 모두 반팔 차림으로 가운조차 걸치지 않고 암벽 동굴 속에서 한 시간을 시원하게 보내다 나왔습니다. 동행한 스웨덴 대사와 제 아내 역시 간편복이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쓰다 버린 장갑장화옷가지마스크 등을 압축해 기밀용기에 담아 보관하는 곳이 위험하다 못해 금방 방사능에 오염된다면 우리 부부는 벌써 이 세상에 없어야 할 것입니다.

 

친애하는 참석자 여러분!

제 고향은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가장 밀집한 부산입니다. 집안 어른친척조카친구들이 두루 살고 있습니다. 부산울산경주는 500만 명의 인구 밀집 지역이며, 산업·문화·역사의 중심지입니다.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난다면 큰 문제지만, 지난 40년간 한국의 수많은 원자력 발전소 중 단 한 곳도 방사능 유출 문제로 심각한 사고가 났거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는 없습니다. 기차 사고, 비행기 사고, 빌딩 화재도 발생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집니다. 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의무이자 숙명입니다. 사고가 두렵고 필연적이라면 비행기와 기차도 세워야 하고, 대형 빌딩은 출입을 금지시켜야 합니다. 또 원전의 안전이 문제라면 서해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의 원전에 대해 짓지 말라고 강력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와 서해바다를 마주하는 중국은 원전 35기가 가동 중이며, 2030년까지 무려 100기를 더 지어 원전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원전은 거의 대부분 한국 서해 바다와 맞닿는 중국연안에 위치합니다. 바람은 언제나 중국 쪽에서 불어오고 조류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한국만 원전을 안 짓는다고 피해가 안 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쌓아올린 원자력 발전 최첨단국 한국의 위상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가당치도 않은 논리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선동과 감정과 허구로 짜인 각본에 놀아나는 대한민국이라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기가 힘듭니다. 나라의 미래와 경쟁력과 비전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정책이 이대로 추진된다면 한국의 미래가 얼마나 어둡게 될지, 또 한국의 추락이 어느 나라를 더욱 이롭게 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자리를 함께 해주신 여러분!

우리는 요즘 정말 불안합니다.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 우려 때문이 아닙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때문입니다. 북한 김정은과 미국 트럼프 간의 말 폭탄이 언제 한국으로 방향을 틀지 알 수 없습니다. 양쪽은 핵을 가지고 서로를 겨누는데, 우리는 핵도 없고 비핵화가 기본 정책입니다. 싸우지 말자고, 사이좋게 지내자고 평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외교학을 수십 년간 공부하고 현장에서 정치를 해온 사람입니다. 또 역사를 좋아합니다. 제가 아는 정치학 어디에도 힘없는 나라가 힘센 나라를 끌고 간 경우가 없었으며, 제가 본 역사책 어디에도 힘없는 나라가 자기보다 강한 나라를 침략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전쟁과 싸움은 상대가 만만하고 깨뜨릴 수 있다고 판단할 때 생기는 것이지 지려고 싸우는 경우는 없는 법입니다. 평화가 말로써 지켜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평화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노력과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는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서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2500년 전의 정치인도 자유를 지킬 용기를 시민들에게 요구했습니다. 또 페리클레스보다 조금 앞선,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그의 책 역사에서 페르시아 사람들은 명령에 의해 싸웠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자유를 향유하기 위하여 어떤 대가를 지불할 용기나 용의가 있는가요? 자유는 공짜로 숨 쉬는 공기 같은 건가요? 아니,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가 지켜주는 것인가요?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성립하는 냉혹한 국제정치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핵은 보수와 진보의 논리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핵을 스스로 만들든지, 핵을 가진 것과 같은 조건이나 위치를 만들든지, 아니면 상대가 핵을 못 가지게 하고 못 쓰도록 해야 합니다.


원자력 발전소 몇 개 있다고 결코 핵무기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놓은 원자력 기술마저 무용지물로 만든다면 우리는 원자탄은 물론 그 용도가 무궁무진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대열에서도 낙오될 것입니다. 이는 북한이 원자탄을 만들었다고 해서 더욱 고도의 기술과 노력이 요구되는 원자력 발전소를 제대로 짓거나 운영할 수 없는 이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는 치열한 경쟁시대에 접어 들었는데 우리는 우리의 특장점마저 땅에 파묻어려 합니다.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1000년 제국 비잔티움이 멸망하고 그 자리에 오스만 튀르크가 새로이 융성하는 역사적 사건에 빠져 있었고 이것을 책으로 냈습니다.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과분한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분명한 한 가지는, 나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흥할 때는 흥하는 이유가 있고 망할 때는 망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 시점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떤 모습으로 죽어야 하는가를 수없이 되뇌이며 많은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았다고 역사 앞에 말할 수 있을까!

요즘 참 잠이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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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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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헌기 2017.09.30 1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이지, 이 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너무 명명백백한 사안이기에 철회하는 걸로 짐작합니다만, 가만히 있으면결코 거두어들이지 않을 것이기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반대 서명했습니다. 좋은 성과 거두고잘 다녀오세요.

  2. 나라가 2017.10.03 02: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친건지 아님 북한만 중한건지
    40년넘게 투자해서 일귀낸 기술력을
    지손으로 박살내겠다는
    한심한 정부 어느나라 정부인지 한심하네요.
    진짜 쑈나하고 앉았으니

 

코라 수도원 교회(카리예 박물관)에서 제국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다 ②
Chora Church (Kariye Müzesi : Kariye Museum)



1편을 쓴 지 거의 12개월 만에 2편을 낸다. 무던히도 게으른 내 자신을 질책하며 기다려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와 사과를 드린다. 본 편에서는 코라교회가 자랑하는 세기적 미술품, 즉 비잔티움 후기 양식을 대표하는 모자이크화와 프레스코화에 대한 본격 설명을 드리려고 한다. 1부에서 설명했지만, 간단히 서두를 말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다.


원래 코라교회는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건설한 성벽 바깥에 세워진 복합 수도원이었다. ‘시골의 성스러운 구세주 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aviour in Chora)’ 또  ‘야외에 있는 거룩한 구세주의 교회(The Church of the Holy Redeemer in the Fields)’라는 뜻이다. 내 책 «술탄과 황제»에 자세히 설명한 5세기 초에 건립된 테오도시우스 2세의 육지성벽(QR코드 17) 안으로 들어오게 됐지만 ‘교외∙시골(chora)’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본당 건물은 마리아 두카이나(Maria Dukaina,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의 장모)가 1077~1081년 사이에 십자가형 구조로 재건축한 것이다. 그 후 12세기 초 지진 등으로 건물 일부가 붕괴되었는데, 이삭 콤네누스(Isaac Comnenus, 알렉시우스의 3남)가 재건했다. 세 번째, 가장 중요한 증개축은 테오도르 메토키테스(Theodore Metochites : 1260~1332)가 라틴제국으로부터 수도를 탈환한 기념으로 안드로니쿠스 2세의 명령을 받아 이루어졌다. 원래의 건물에 지름 7m의 대형 돔을 올리고 궁륭(vault) 일부와 안쪽 나르텍스(narthex)를 개조하고, 또 서쪽에 바깥 나르텍스를 덧붙이고 남쪽에 영묘로 사용할 보조 교회당인 ‘파레클레시온(parecclesion)’을 증축했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모자이크 성화와 프레스코 성화를 완성한 것이다. 오스만 시대 빛과 공기의 순환을 위해 창문을 넓힌 것 외에는 현재 건물은 모두 그 때의 것이다.


메토키테스는 뛰어난 학식과 교양으로 황제(안드로니쿠스 2세)의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 하다가 60세가 되던 1320년에는 권력서열 제2위인 재상에 올랐다. 바로 이때 그가 코라교회를 재건했다. 그러나 권력과 명예는 끝이 있는 법, 1328년 황제는 자신의 조카인 '안드로니쿠스 3세(Ανδρόνικος Γʹ Παλαιολόγος, Andronikos III Palaiologos : 1328~1341년까지 재위)'에 의해 쫓겨났다. 이와 함께 메토키테스의 영광도 끝났으며, 모든 재산을 몰수 당하고 트라케 지방으로 추방됐다. 하지만 추방을 풀어 달라는 간곡한 탄원서를 새로운 황제에게 계속 올린 덕분에, 2년 뒤(1330년)에 자신이 세웠던 코라교회에 평수도사 자격으로 돌아갈 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제국은 교회를 세운 사람에게 노후에 그 교회의 수도사로 들어가 최후를 마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메토키테스도 이 전통에 따라 코라 성당의 부속 수도원으로 돌아가 2년 후인 1332년 3월 13일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무덤은 코라교회의 페라클레시온에 안치됐다.


후술하겠지만 코라교회의 모자이크가 완성된 14세기를 흔히 비잔티움 제국의 르네상스로 일컫는다. 한때 이교도 냄새가 난다고 외면 받던 인간을 중시하는 고대 그리스의 가치관이 이때 되살아났으며, 바로 이것이 한 세기 뒤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된다.


1320~25년간 완성된 모자이크를 제작한 예술가가 누구인지는 유감스럽게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비잔티움 르네상스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로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 만들어진 코라교회의 성화는 고대 그리스 회화나 조각의 영향을 받았다. 원근법과 정교한 세부묘사가 드러나며, 일부 그림에는 인체의 해부학적 사실주의가 표현되어 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약 50년 뒤인 오스만 튀르크의 바예지드 2세 때 총리인 알리 파샤(Atık Ali Paşa)는 코라교회를 모스크로 개조하여 카리예 자미(Kariye Camii)가 되었다.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는 회칠로 덮였고, 또 잦은 지진으로 작품에 손상이 갔다. 그러다가 1948년 미국 비잔티움 연구소와 덤바튼 오크스 비잔티움 연구회의 토마스 위트모어와 폴 언더우드가 후원 및 복원 작업에 착수하여 이후로 모스크 활동이 중지되었다. 그러나 앱스(apse)의 미흐랍(mihrab)과 바깥에 있는 19세기의 미나렛(minaret)은 남아 있다. 현재 코라교회는 박물관(Kariye Müzesi)으로 대중에 공개되고 있다.


코라교회를 관람할 때는 순서에 신경을 써야 한다. 신도들이 교회에 들어와서부터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순간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느낄 수 있도록 성화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또 교회가 누구에게 봉헌된 것이고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알아야 성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코라교회는 하기아 소피아(아야소피아 박물관)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교회이다. 그러나 비잔티움 초기에 건설되고 9세기 이후 성화가 복원된 하기아 소피아와는 달리 건물 내부 전체가 비잔티움 후기 성화로 장식되어 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과 정교한 대석, 대형 모자이크로 장식된 하기아 소피아에 비한다면 코라교회는 소박하고 초라하다. 그러나 내부를 꽉 채운 모자이크화와 프레스코화를 마주하는 순간 호흡이 멎을 것 같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예술성과 영성에 당신은 압도되고 말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후기 비잔티움 예술의 진면목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코라교회로 안내하도록 하겠다.


현재는 교회의 뒤쪽으로 입구가 나 있어 일단 들어가서는 본래 교회의 입구(정문쪽 입구)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교회 왼편에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다룬 성화들로 채워져 있고, 오른편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화들로 채워져 있다. 성화들은 시간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각 장면을 설명하는 글들이 적혀 있다. 그러나 워낙 좁은 공간 전체에 많은 그림을 배치하였기에 시간 순서대로 보기 위해서는 이쪽 저쪽으로 오가면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코라교회는 현재 남아 있는 다른 비잔티움 교회에 비해 크지 않다(742.5㎡). 교회는 크게 출입구인 나르텍스(narthex), 본당(nave/naos), 부속 교회 (parecclesion) 이렇게 3구역으로 나뉜다. [그림1]







[그림1]


정문으로 들어서면 맨 처음 나오는 공간이 바깥쪽 나르텍스(outer narthex)인데, 폭 4m 길이 23m의 횡단 복도이다. 이곳에서 안쪽 나르텍스(inner narthex)로 들어가는 문 위에 비잔티움 후광을 한 예수 그리스도가 왼손에 성경책을 들고 오른손으로 삼위일체와 양성론 표시를 하고 있는 모자이크가 있다. 예수의 눈동자가 보는 이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예수의 좌우 눈∙귀의 높이와 형태가 다르다. 바로 비잔티움시대 미술 기법으로 감상자가 어디에 있든 예수와 눈을 마주치게 하는 기법이다. 예수의 양 옆에는 “ἡ Χώρα τῶν ζώντων(Land of the Living, hē Chōra tōn zōntōn)*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그림 2]. 그 반대편인 외부 출입구 위에는 아기 예수를 가슴에 품은 성모 마리아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데, 양 손 위에는 “ἡ Χώρα τοῦ Ἀχωρήτου(as the Container of the Uncontainable, hē Chōra tou Achōrētou)**라는 명문이 있고 그 양 옆에는 두 천사가 경배하고 있다[그림 3]. 이 두 성화는 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것임을 나타낸다.


* 산 사람들의 나라, 곧 ‘천국’을 의미함. 시편 27:13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 담겨지지 않는 자의 땅 또는 담을 수 없는 자의 땅, 즉 ‘예수 그리스도의 땅’을 의미함.


[그림 2]                                                                 [그림 3]




                          [그림 4]


안쪽 나르텍스로 들어가면 본당(nave)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나오는데, 그 위에 이 교회를 중건한 메토키테스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교회를 바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그림 4]. 그는 황실의 고급관리들만 쓸 수 있었던 황금색과 흰색 줄무늬가 있는 큰 모자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으며, 옆에는 “Ό Κτητώρ Λογοθέτηϛ τοῦ γενικοῦ Θεόδωρος Μετοχίτης(창건자이며 보물창고의 로고테테스(λογοθέτης, Logothete)인 테오도르 메토키테스)”라는 명문이 쓰여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왼손으로 성경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손짓을 하며 앉아 있다. 예수의 양쪽에는 안쪽 나르텍스 출입구에 있는 성화와 마찬가지로 “ἡ Χώρα τῶν ζώντων(이 코라 톤 존톤 : 살아 있는 자들의 땅)”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다.



1. 성모 호데게트리아


본당(Nave)
메토키테스 모자이크 아래에 있는 본당 출입문 양편으로 왼편에는 사도 베드로가 오른편에는 사도 바울의 모자이크가 있다. 베드로는 왼손에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으며[그림 5], 바울은 왼손에 복음서를 들고 오른손으로 축복을 보내고 있다[그림 6]. 두 그림 모두 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인체 비율과 색감이 뚜렷하고 벽감(니치)에 배치도 잘 되어 있다.


[그림 5]                                                                  [그림 6]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면 신도들이 예배하는 본당이 나온다. 본당의 성화들은 대부분 파괴되어 현재 세 점의 성화만이 남아있다. 지성소 오른편에는 성경을 펼쳐 든 예수 그리스도상이 있다[그림 7]. 왼손에 든 성경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라고 쓰여 있다. 왼쪽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상이 있다[그림 8]. 성모 호데게트리아(Hodegetria : 길을 가리키는 여인) 이콘이다. 그림 속의 테오토코스(Theotokos : 신의 어머니∙성모)는 한 손으로 아기 예수를 안고 다른 손으로는 구원자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 두 그림 모두 상태는 별로 좋지 않다.

  

[그림 7]                                                                  [그림 8]


호데게트리아는 내 책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72쪽에서 언급한 누가복음의 저자인 성 누가가 그렸다는 호데게트리아 성화에서 이미지를 따온 모자이크다. 틈만 나면 카리예 박물관을 찾은 것은 이 호데게트리아 때문이라고 할 정도로 호데게트리아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QR코드 8 참고). 성모 마리아의 머리와 양 어깨에 수놓인 별은 예수를 낳기 전과 후 모두 동정녀임을 나타낸다. 비잔티움 전승에 따르면 이 이콘은 <누가복음> 저자인 성 누가에 의해 최초로 그려졌으며, 성모가 초상을 보고 "이 그림과 함께 언제나 나의 축복이 있으리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콘이 모셔진 곳에서는 수많은 기적 같은 사건들이 일어나 순례자들에 의해 러시아에까지 전해졌다. 복사본 또한 신비한 이적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책 237쪽의 각주 81 및 ①편 설명 참고)

[그림 9]


본당 입구 위에는 ‘성모 마리아의 죽음(聖母永眠,Koimesis, Dormition of the Virgin)’을 그린 성화가 있다[그림 9]. 그림 중앙에 성모 마리아가 침대에 누워 있고 후광을 한 베드로∙바울 등 사제, 전도사, 초기 주교가 성모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그 위에 성모 마리아의 영혼을 상징하는 아기를 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육체는 남았지만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 아래 천국으로 가는 것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영성(영혼)을 표현하는 비잔티움인들의 예술 방식이 정결하다.



2. 코라 교회의 모자이크 성화


마리아의 생애 - 안쪽 나르텍스(Inner Narthex) 왼편
본당에서 다시 안쪽 나르텍스로 나와 모자이크들을 차례로 살펴보도록 한다. 안쪽 나르텍스에는 두 개의 돔이 있다. 본당으로 통하는 중앙 홀(세 번째 방)을 기준으로 왼편의 돔은 지름이 3.40m로, 열여섯 개의 홈과 다섯 개의 창이 있다. 돔 중앙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Theotokos : 신의 어머니)가 있고, 방사선으로 퍼져 나가는 각 홈에는 다윗 왕부터 시작되는 마리아의 조상 16명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창문이 나 있는 돔의 맨 아래쪽에는 마리아의 직계 조상은 아니지만 예수의 탄생을 예언한 11명의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10]. 오른편의 돔은 지름이 3.74m로, 중심 원에 예수 그리스도(Pantocrator : 전능자)가 있고, 24개의 홈에는 아담부터 시작되는 예수의 조상 24명을 그려 넣었고, 그 아래에는 9개의 창이 있다. 이 창 사이에는 야곱의 열 두 아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11].


* 다윗(David) 이후의 조상들은 솔로몬(Slolmon), 르호보암(Rehoboam), 아비야(Abijah), 아사(Asa), 여호사밧(Jehoshaphat), 요람(Jehoram), 웃시야(Uzziah), 요담(Jotham), 아하스(Ahaz), 히스기야(Hezekiah), 므낫세(Manasseh), 아몬(Amon), 요시야(Josiah), 여고냐(Jeconiah), 스알디엘(Shealtiel) 이고, 그 아래 그려진 구약의 인물들은 하나냐(Hananiah), 아사랴(Azariah), 미사엘(Mishael), 다니엘(Daniel), 여호수아(Johua), 모세(Moses), 아론(Aron), 훌(Hur), 사무엘(Samuel), 욥(Job), 멜기세덱(Melchizedek)이다.


** 돔의 홈에는 아담(Adam), 셋(Seth), 노아(Noah), 게난(Kenan), 마할랄렐(Mahalalel), 야렛(Jared), 라멕(Lamech), 셈(Shem), 야벳(Japheth), 아르박삿(Arphaxad), 셀라(Shelah), 에벨(Eber), 스룩(Serug), 나홀(Nahor), 사라(Sarah), 아브라함(Abraham), 이삭(Isaac), 야곱(Jacob), 벨렉(Peleg), 르우(Reu), 므두셀라(Methuselah), 에녹(Enoch), 에노스(Enosh), 아벨(Abel)이라는 24명의 초상이, 그 애래 창문 사이에는 야곱의 열 두 아들인 르우벤(Reuben), 시므온(Simeon), 레위(Levi), 유다(Judah), 스불론(Zebulun), 잇사갈(Issachar), 단(Dan), 갓(Gad), 아셀(Asher), 납달리(Naphtali), 요셉(Joseph), 벤야민(Benjamin)이 그려져 있다. 이들 가운데 요셉과 벤야민은 라헬(Rachel)이 낳은 자식이고, 단과 납달리는 빌하(Bilhah)가, 갓과 아셀은 실바(Zilpah)가 낳았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아들은 레아(Leah)가 낳았다.


 

[그림 10]                                                         [그림 11]


성모 마리아의 가계도가 있는 돔의 아래, 본당 벽 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방에는 마리아의 생애가 연속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 내용은 야곱 복음서에서 따온 것들로 정통 복음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비잔티움 제국 사람들은 물론 현재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도 이 내용을 잘 알고 있다. 이제부터 성화에 대한 설명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진행됨을 미리 밝혀 둔다.


*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Joachim)과 안나(Anne)는 둘 다 유다 지파의 후손이다. 이들은 결혼한 지 20년이 되돌고 아이가 없었다. 봉헌 축제 때 요아킴은 성전에 가서 봉헌을 하려고 했지만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이런 수치를 당한 요아킴은 산으로 올라가 40일 동안 밤낮으로 아이를 달라고 기도한다. 축제의 마지막 날,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안나 앞에 천사가 나타나 딸을 낳을 것이며, 이름을 마리아라고 지으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해준다. 이에 대한 증거로 예루살렘의 황금문 앞에서 남편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말을 해주고 천사는 떠난다. 한편 요아킴은 기도를 끝내고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바친 뒤 예루살렘으로 내려오다가 황금 문 앞에서 안나를 만난다. 그리고 예언대로 안나는 딸을 낳는다. 마리아가 6개월이 되었을 때, 일곱 걸음을 걷고 다시 어머니에게 돌아와 안기는 놀라운 일이 있었다다. 마리아가 세 살이 되자, 요아킴은 아이를 얻으면 성전에 바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마리아를 성전에 바쳤다. 이때 마리아를 받아 준 제사장은 바로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였다. 그 뒤 마리아는 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성전에서 천사가 가져다 주는 빵만 먹으며 자란다. 그런던 어느 날, 제사장이 다윗 가문의 소녀들 중에서 누가 황금실과 고급 린넨과 비단으로 아름다운 천을 짤 것인지를 놓고 제비를 뽑았는데 마리아가 선택되었다. 마침내 마리아가 열다섯 살이 되어 결혼할 때가 되자 사가랴는 신랑감을 고르기 위해 열두 명의 구혼자들의 지팡이를 놓고 기도한 후 돌려 주었다. 요셉이 지팡이를 돌려 받을 때 지팡이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나와 그의 머리 위를 맴돌더니 동시에 그의 지팡이에서 푸른 싹이 돋아났다. 요셉이 마리아의 배우자임을 알려주는 징표였다. 요셉은 “나는 이미 결혼하여 아들 넷이 있고, 나이도 많아 저 처녀의 남편이 될 수 없다.”고 했으나 자카리아는 하나님의 뜻이라며 요셉을 설득했다. 어쩔 수 없이 요셉은 마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요셉의 집에 머물던 어느 날, 마리아는 우물가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을 만난다. 천사는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낳을 것이라고 알려준다.


성모 마리아의 가계도가 그려진 돔 아래, 펜던티브(Pendentive : 둥근 지붕과 네모난 벽 사이를 잇는 삼각형 모양의 공간)에서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에는 성전에 봉헌하러 간 요아킴(Joachim)이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으나 많이 파괴었다[그림 12].  요아킴과 사가랴(Zacharias∙자카리아)가 예물시비하는 장면, 사가랴가 세례 요한을 낳는 장면은 지워졌다.


                              [그림 12]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편에는 회당 출입을 거절당한 뒤, 상심한 마리아의 아버지 요아킴이 광야로 가서 자신에게도 아이를 달라고 40일 동안 기도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그림 13].


그리고 돔 바로 아래에 위치한 벽에는 천사가 안나에게 성모 마리아를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장면이 있다.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나무에는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고, 새끼는 부리를 벌려 먹이를 기다리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안나의 옷차림이나 집안에 있는 하인 등은 마리아의 집안이 부유했음을 나타낸다. 흘러내리는 물은 아기 없는 부부생활을 비유한다[그림 14].


      [그림 13]                                          [그림 14] 


옆방으로 가는 통로의 벽에는 예루살렘의 황금 문 앞에서 요아킴과 안나(Anne)가 만나 서로 포옹하며 인사하는 장면이 있다[그림 15]. 그들은 아기를 주신다면 신앙심 깊은 아이로 키우고, 성전에 바치겠다고 서약하고 양 두 마리를 바친다(일반적으로 희생제물은 한 마리). 그 오른편에는 마리아의 탄생 장면이 나온다. 안나는 산파의 부축을 받으며 침대에 누워 있고, 세 친구들은 선물을 주고 있다. 하녀들은 부채를 흔들고 요람과 아기 목욕을 준비하고 있다. 요아킴은 문 입구에 서서 이 장면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수줍은 것 같기도 하고 호기심이 가득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다[그림 16].


              [그림 15]                                  [그림 16]


마리아의 탄생 장면 옆에는 왼손에 천국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성화가 있고[그림 5], 그 위에는 생후 여섯 달 된 마리아가 일곱 걸음을 떼는 장면이 보인다. 엄마(안나)는 마리아가 더러운 흙을 밟지 않을까 얼른 안으려 한다. 하인의 붉은 베일이 바람에 날려 후광처럼 원을 그리고 있다[그림 17].




[그림17]


이 방의 천장 한편에는 마리아가 성전에서 사제들로부터 축복을 받는 장면이 있다. 요아킴은 한 살 된 딸 마리아를 안고 사제 세 명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그림 18]. 반대편에는 마리아의 부모가 마리아를 껴안고 쓰다듬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그림 19]. 가족의 사랑과 행복 속에서 자란 마리아이다. 이중 구조의 건축학적 요소가 그림의 깊이를 더해주고, 공작 두 마리가 존엄성과 정결성을 표현하고 있는 이 장면들을 고개를 위로 올리면 한 눈에 볼 수 있다[그림 20].

   

 [그림 18]                                                       [그림 19]


                        [그림 20]


본당 출입문 오른쪽 사도 바울의 성화[그림 6] 위로 천사가 마리아에게 빵을 가져다 주는 장면이 있다[그림 21]. 이렇게 마리아는 성전에서 천사가 주는 빵만으로 살았다고 한다. 제단 위는 대학자만 앉을 수 있는 자리인데 마리아를 그곳에 앉은 모습으로 묘사했다. 이 세 번째 방의 천장에는 요아킴과 안나가 세 살 된 마리아를 성전에 바치는 장면이 행렬을 이룬다[그림 22]. 이 그림의 윗부분 성전 입구에서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가 마리아를 맞이하고, 그의 머리 위쪽으로 제단에 앉은 마리아에게 천사가 빵을 가져다 주는 다른 장면이 그려져 있다[그림 23]. 마리아는 3~12세까지 성전 수종녀(attendant)로 머물렀다. 여자 아이들이 횃불을 들고 마리아를 맞이하고 있다. 이들 역시 성전에서 수종드는 아이들이다[그림 24]. 천장의 모자이크들은 빈 공간 없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고개를 들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비잔티움인들의 예술성과 정교한 기술에 감탄과 찬사를 자아내게 한다.


          [그림 21]                                [그림 22] 

   

[그림 23]                                                        [그림 24]

 

메토키테스가 성당을 바치는 그림 맞은 편에는 마리아가 사가랴로부터 성전에 쓰일 장막을 만들 자주색 실타래를 받는 장면이 있다. 지성소를 가리는 장막을 만드는 일은 아주 신성한 일이었다. 성전의 다른 성직자들은 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마리아 뒤로는 여섯 명의 처녀들이 서 있다[그림 25].

    

          [그림 25]                                                       [그림 26]


그 그림의 오른쪽에는 사가랴가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리아에게서 여성성이 나타나면 성전을 떠나야 한다. 마리아가 결혼할 때가 온 것이다. 다음날 천사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나타나서 다윗 왕가의 자손 중 12명의 남자를 선발하도록 한다. 사가랴는 그들의 지팡이를 제단에 놓도록 하고, 마리아가 누구에게 선택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징표를 구하고 있다[그림 26]. 그 옆에는 사가랴가 잡고 있는 지팡이에서 새싹이 돋아나오는 장면이 있다. 사가랴는 왼손을 마리아의 머리에 얹고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있으며 그 앞에 요셉이 당황하며 서 있다. 그 뒤에는 나머지 열한 명의 구혼자들이 서 있다[그림 27]. 야곱 복음서에는 비둘기가 요셉 머리 위를 돌았다는 내용이 있으나 이 모자이크에 비둘기는 없다. 하지만 유럽의 교회 그림에는 이 장면에 비둘기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 27]


두 번째 방으로 가는 복도에는 요셉이 마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는 장면이 있다. 요셉과 함께 있는 사람은 전처의 아들 중 하나인 제임스이고, 요셉은 마리아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돌아 보고 있다[그림 28]. 다시 마리아의 가계도가 그려진 돔이 나오면, 이 방의 서쪽 벽에는 뒤돌아 선 마리아에게 손을 흔드는 요셉이 보인다. 목수일을 하는 요셉은 지방으로 가 6개월 간 집을 비워야 했다. 아쉬운 작별은 하는 요셉과   그의 오른쪽에는 요셉의 큰 아들 제임스가 이미 길을 떠나고 있다[그림 29]. 돔 아래 북서쪽 모서리 펜던티브에는 마리아가 우물가에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 소식을 듣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누가복음 1:26~38)* [그림 30].


* 누가복음 1:26-38 :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림 28]                                  [그림 29] 

 

                                  [그림 30]



마리아의 잉태와 예수의 탄생 - 바깥 나르텍스(Outer Narthex)
마리아의 생애와 관련된 모자이크는 바깥쪽 나르텍스로 이어지는데, 여기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한다. 바깥쪽 나르텍스의 모자이크 역시 첫 번째 방 구석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림의 진행 방향은 대부분 오른쪽이다.


이 방의 북쪽 구석 반원에는 작은 나무 아래 요셉이 잠들어 있고, 그 위에 마리아는 성령으로 임신했으므로 아내로 취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는 말을 전하는 천사가 그려져 있다. 요셉은 자신이 없는 사이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 비밀리에 헤어지려고 했으나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다(마태복음 1:20~25). 천사 옆에는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누가복음 1:39~45). 그 옆에는 로마 황제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 Augustus)가 실시한 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가는 마리아와 요셉이 그려져 있다. 앞에 선 젊은이는 요셉의 아들 가운데 하나고 요셉은 마리아를 태운 당나귀 뒤에서 따라간다(누가복음 2:1~5) [그림 31].

 

             [그림 31]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에 있는 벽을 보면 세금 징수를 위해 인구 조사를 하는 시리아 왕 구레뇨(퀴레니우스, Cyrenius)가 황금 보좌에 앉아 있고, 그 앞에는 관리들이 두루마리를 들고 서 있다. 구레뇨 앞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서 있고, 요셉의 뒤에는 그의 아들 네 명이 서 있다. 마리아는 만삭으로 배가 불러 있는 모습이다[그림 32]. 조사원이 배부른 마리아에게 아기 아버지가 누구냐 묻고, 요셉이 '나'라고 하면서 다가선다. 이 작품은 코라교회 모자이크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1:9의 인체비율로 머리가 무척 작게 표현되었다. BC 4C 경 풍미했던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미술에 차용되었다.

 

       [그림 32]


계속 오른쪽으로 가면 건물 안쪽 벽에 예수의 탄생 장면을 그린 모자이크를 만난다. 아기 예수가 누워 있는 석관 모양의 구유에는 소와 염소가 머리를 내밀고 있고, 하늘에서 성령이 강림하고, 그 앞에 성모 마리아가 누워 있다. 마리아의 발치에는 요셉이 앉아 있는데 어쩐지 처량해 보인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들판의 목자들에게 이스라엘 왕이 태어났음을 알리는 천사의 모습이 보이고, 마리아 위에는 천사들이 찬양하고 있다(마태복음 1:18~25, 누가복음 2:1~34) [그림 33].

 

     [그림 33]


이야기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로 옮겨지면서 모자이크는 오른편의 나르텍스로 계속 이어진다. 세 번째 방인 중앙홀을 건너 네 번째 방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건물 안쪽 벽 위에 동방박사 세 사람이 말을 타고 별을 따라오는 장면과 헤롯 왕(헤로데 안티파스, Herod Antipas)을 알현하는 장면(마태복음 2:1~12)이 있다[그림 34]. 동방박사들은 별의 인도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 그리고 꿈에 천사가 나타나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하여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간다.

 

    [그림 34]


다섯 번째 방의 벽에는 움푹 파인 공간인 니치(nitch)가 있다.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왕조인 팔라이올로구스 가문의 무덤으로도 쓰이던 공간이다. 이 방의 안쪽 벽에는 한 병정의 호위를 받고 있는 헤롯 왕이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해 사제와 서기들을 심문하는 장면의 일부가 남아 있다[그림 35]. 이곳에서 다음 방으로 가는 통로에는 두 개의 원주 기둥이 받치고 있다.

    

               [그림 35]                      [그림 36]


여섯 번째 방은 보조 교회당(parecclesion)으로 가는 입구인데 상당히 넓다. 이곳에도 한때 팔라이올로구스 왕가의 무덤으로 쓰였던 니치가 있다. 이방의 남쪽 벽에는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두 살 이하의 남자 아기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 그림이 있다[그림 36]. 시계 방향으로 이어진 바깥 벽들에는 두 살 이하 어린 아기들을 빼앗아 죽이는 군인들, 손에 칼을 들고 아기를 찾는 군인들의 모습 등이 묘사되어 있다[그림 37, 38].

    

      [그림 37]                                          [그림 38]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려면 원주 기둥을 지나 다시 다섯 번째 방으로 돌아와야 한다. 헤롯 왕의 심문 모자이크 건너편, 이 방의 바깥쪽 벽에는 아기가 살해당해 울부짖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있다[그림 39]. 다시 네 번째 방으로 건너가면 엘리사벳이 아기 세례 요한을 안고 칼을 든 군인을 피해 동굴로 피하는 장면이 있다[그림 40].    



[그림 39]                                                        [그림 40]


이후의 이야기는 중앙홀을 지나 다시 왼편 나르텍스 두 번째 방으로 돌아가야 이어진다. 성경에 의하면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헤롯이 죽었으니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하지만 요셉은 헤롯의 뒤를 이어 아들 아켈라오(Herod Archelaus)가 왕이 된 것을 알고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여, 천사의 지시로 나사렛으로 가게 된다. 이 방에는 이집트에서 보낸 4년 동안의 피난생활을 끝내고 나사렛으로 향하는 예수 가족이 그려져 있다(마태복음 2:19~23). 맨 왼쪽에 꿈을 꾸는 요셉이 보이고, 중앙에는 예수 가족이 여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앙증맞은 아기 예수가 요셉의 목에 목마를 타고 있으며 그 뒤를 마리아가 따르고 있다. 그림에서 오른쪽에 위치한 도시가 나사렛이다[그림 41].



[그림 41]


다시 첫 번째 방으로 돌아가면 예수의 가족이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맨 앞에 요셉이 가고 바로 뒤에 열 두 살이 된 예수 그리스도는 황금 십자가 후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맨 뒤에 성모 마리아가 뒤따른다(누가복음 2:41~47)  [그림 42].

 

[그림 42]

 


          [그림 43]

 


[그림 44]


두 번째 방으로 건너가면, 둥근 천장에 예수가 세례를 받는 장면을 그린 성화가 나온다. 이 방에서 가장 중요한 성화이다. 가운데를 흐르는 요단강을 기준으로 예수는 오른쪽에 서 있고 왼쪽에는 감히 예수를 바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린 세례 요한이 서 있다(마태복음 3:13~17, 마가복음 1:9~11, 누가복음 3:21~22) [그림 43]. 그 반대편에는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는 장면(마태복음 4:1~11, 마가복음 1:12~13, 누가복음 4:1~13)이 글씨와 함께 그려져 있다*[그림 44, 45]. 아래(*) 성경 말씀의 핵심을 모두 검은색 글씨로 장식하는 이 모자이크 기법 역시 르네상스에 그대로 전수되었다.

 


[그림 45]

 

 

 

* 마태복음 4:1-11 :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바깥 나르텍스의 정문 오른쪽 펜던티브에는 젊은이가 희생 제물로 바칠 양을 잡는 장면이 있다[그림 46].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리면 안쪽 나르텍스로 가는 출입문 왼편 펜던티브에는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장면(요한복음 2:1~12)이 그려져 있다[그림 47]. 출입문 오른편 펜던티브와 바깥 나르텍스의 정문 왼편 펜던티브에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고 열 두 광주리가 남았다는 ‘오병이어(五餠二漁)’의 기적(마태복음 14:15~21, 마가복음 6:30~44, 누가복음 9:10~17, 요한복음 6:1~14)이[그림 48, 49] 묘사되어 있다.

 

[그림 46]                                                                 [그림 47]

 

[그림 48]                                                     [그림 49]


여섯 번째 방에서 예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헤롯의 영아학살명령 그림 오른쪽 구석에는 예수가 우물에서 물을 긷는 사마리아 여인과 만나는 장면(요한복음 4:3~40)이 있다[그림 50]. 아래쪽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는 음향효과를 내기 위한 장치로 동서남북으로 몇 군데 있다. 벽 안에는 다른 곳과 달리 공명을 일으키도록 암포라 항아리를 설치했다. 남쪽 벽 위에는 예수가 가버나움(Capernaum)의 베데스다(Bethseida) 연못에서 중풍환자를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이 사실감 있게 보인다(마태복음 9:1~8, 마가복음 2:1~12, 누가복음 5:17~26)  [그림 51].

   

         [그림 50]                               [그림 51]



기적을 베푸는 예수 그리스도 - 안쪽 나르텍스(Inner Narthex) 오른편
여섯 번째 방에서 바깥쪽 나르텍스 모자이크 감상은 끝난다. 이 방은 부속 교회당으로 연결되지만, 좀 더 일관성 있게 성화를 감상하려면 다시 오른편에 있는 안쪽 나르텍스로 가서 모자이크를 먼저 보는 것이 좋다.

 

     

[그림 52]     

                          

 

      [그림 53]                                      [그림 54]


예수 그리스도의 가계도가 그려진 돔 아래 본당 쪽 벽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모자이크가 있다. 성모 마리아는 위쪽에 위치한 예수를 향해 두 손을 벌려 무엇인가를 간청하는 듯한데, 이런 자세를 그리스어로 데이시스(Δέησις, Deesis)라고 한다. 데이시스는 교회 건축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특히 '아야소피아 박물관(하기아 소피아 성당)' 2층 남쪽에 있는 데이시스 모자이크는 후기 비잔티움 예술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데이시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내 책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281쪽이나 QR코드 3을 참고하면 된다.


마리아의 뒤쪽 아래에는 왕관을 쓰고 수염을 기른 남자가 보이는데, 그가 바로 코라교회를 두 번째로 증축한 알렉시우스 1세의 아들인 ‘이삭 콤네누스(Isaac Comnenus)’이다[그림 53]. 그는 원래 코라교회에 자신의 무덤을 준비했지만, 나중에 트라케 지방에 수도원을 세우고 그곳에서 평생을 수도사로 살다가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쪽에도 두 손을 벌리고 있는 한 여인이 보이는데, 이 여자 옆에는 ‘가장 위대한 왕 안드로니쿠스(Andronicus)의 자매, 몽골의 숙녀 멜라네 수녀’라는 명문이 적혀 있다[그림 54]. 멜라네(Melanie Comnenus)는 미카엘 8세(Michael VIII Palaeologus, 1259~1282년까지 재위)의 서녀로, 1265년 몽골 ‘일 한국’의 아바카 칸(Abaqa Khan)과 정략결혼을 했다. 그런데 1282년에 칸이 죽자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와 수녀가 되었다(QR코드 10 참고). 나라를 위해 정략결혼을 마다하지 않은 그녀를 기려서 비잔티움 인들은 기꺼이 교회를 헌당했다. 코라교회에서 골든혼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바로 이 공주를 기념하는 몽골교회(Church of Saint Mary of the Mongols, Kanlı Kilise)가 자리잡고 있다. 설립 이래 지금까지 그리스 정교회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스탄불의 몇 안 되는 교회이다.
 
이 방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행한 일곱 가지 치유의 기적들이 그려져 있다. 이 모자이크들은 데이시스 모자이크를 기준으로 하여 시계방향으로 살펴보겠다. 데이시스 오른편 펜던티브에는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여인이 혈우병을 치료받는 기적(마태복음 9:18~26, 마가복음 5:21~43, 누가복음 8:40~56)이[그림 55], 그 옆에는 오그라든 손을 가진 청년을 치유하는 기적(마태복음 12:9~14, 마가복음 3:1~6, 누가복음 6:6~11)이 그려져 있다[그림 56]. 이어 부속 교회당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는 아치가 나오고, 그 옆에는 나병환자를 고치는 기적(마태복음 8:1~4, 마가복음 1:40~45, 누가복음 5:12~16)이 묘사되어 있다[그림 57]. 그 오른편 펜던티브에는 장님이자 벙어리인 청년을 고친 기적(마태복음 12:22~26, 마가복음 3:20~30, 누가복음 11:14~23, 12:10)이[그림 58], 그 옆의 반원형 벽에는 각종 병이 든 자들을 치유한 기적(마태복음 15:29~30)이 그려져 있다[그림 59][그림 62 하]. 오른편 펜던티브에는 여리고에서 두 명의 장님을 고친 기적(마태복음 20:29~34, 마가복음 10:46~52, 누가복음 18:35~43)이[그림 60], 뒤를 돌아 데이시스 왼편 펜던티브에는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마태복음 8:14~15, 마가복음 1:29~31, 누가복음 4장 38~39)하는 장면이 나온다[그림 61]. 좁은 공간에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들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이 코라교회의 특장이기도 하다. 

    

[그림 55]

 [그림 56]                                                    [그림 57]

 

 

[그림 58] 

 

 

[그림 59]                                     

 

[그림 60]                                                     [그림 61]

 

[그림 62]



3. 죽은 자들을 위한 방 : 파레클레시온


이 방의 출입구를 통해 나가 왼편에 있는 두 개의 원주 기둥을 지나면 ‘파레클레시온(Παρεκκλήσιον, Parecclesion)’으로 들어가게 된다. 파레클레시온은 그리스말로 교회에 붙은 ‘부속 교회’라는 의미인데, 코라교회의 파레클레시온은 메토키테스가 가족과 친지들의 영묘로 쓰기 위해 본당 남쪽에 덧붙여 지은 건물이다. 원래 무덤으로 쓰기 위해 지은 것이어서 석관을 놓을 니치가 좌우로 두 개씩, 모두 네 개가 있다. 코라교회에는 바깥 나르텍스의 맨 남쪽 끝에 위치한 두 개의 방과, 안쪽 나르텍스의 북쪽 끝에 위치한 두 개의 방에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왕조인 팔라이올로구스 왕가의 석관을 안치해 두었던 니치들이 있다.


코라교회의 본당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면, 파레클레시온은 죽은 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그래서 이곳의 성화들은 죽음과 최후의 심판, 부활과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그림 63]                            

 

     [그림 64]                                                    [그림 65]


본당의 성화들이 모두 모자이크인데 비해 파레클레시온의 성화는 첫 번째 방 오른쪽에 위치한 니치의 아치[그림 63]에 있는 미카엘 토미케스(Michael Tornikes) [그림 64]와 그의 부인의 초상[그림 65]을 제외하고는 모두 프레스코화*다. 이곳에는 수많은 성자들이 그려져 있지만 정교회 신학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고는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성경 이야기와 관련된 중요한 프레스코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 Fresco a fresco : 소석회에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벽면에 바르고 수분이 있는 동안 채색하며 완성하는 회화이다. 기원전부터 로마인들에 의해 그려져 왔고,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절정기를 맞는다. "젖어 있는"이란 뜻 그대로 마르기 전에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 바티칸 궁전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와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대작들이다.

 

[그림 66]                                                   [그림 67]

파레클레시온은 두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주 기둥이 서 있는 현관에 해당되는 아치에는 앗수르의 산헤립 왕(Sennacherib : BC 705~681년까지 재위)의 군대와 싸우는  천사들의 모습[그림 66]과 신의 축복을 받은 영혼들과 저주를 받은 영혼들의 모습, 제단에 바칠 봉헌물을 들고 가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려져 있다[그림 67].

 

 

                      [그림 68]


첫 번째 방으로 들어서면 자연 채광을 위해 열 두 개의 창을 낸 큰 돔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돔의 중앙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있고, 그 주위를 열 두 명의 천사가 둘러싸고 있다. 천사들은 모두 비잔티움 제국의 궁전 관리인 복장을 하고 무기를 가지고 있다[그림 68]. 돔 아래 네 귀퉁이의 펜던티브에는 유명한 찬송가 작가 네 명이 각각 그려져 있다[그림 69~72].

 

 

 [그림 69] 성 코즈마스                                     [그림 70] 성 요셉      

 

[그림 71] 성 테오파네스                                  [그림 72] 성 요아네스

 

    

 

 

[그림 73]                                                         [그림 74]

돔의 왼쪽, 즉 북쪽 벽의 아치 왼쪽에는 벧엘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이 그려져 있고[그림 73], 오른쪽에는 불타는 관목 숲 앞에 있는 모세에게 모습을 드러낸 여호와가 등장한다. 모세는 맨발인데 이는 그가 서 있는 곳이 성스러운 땅임을 나타낸다(출애굽기 3:1~5) [그림 74]. 지성소 쪽의 아치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축복을 내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남쪽에는 솔로몬 왕의 모습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궤(聖櫃)를 설치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그림 75, 76]. 

 

[그림 75]                                                    [그림 76]


그리고 첫 번째 방과 두 번째 방 사이의 아치 왼쪽에는 관목 숲 속에 서 있는 모세의 모습이, 오른쪽에는 성 초막을 지고 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그림 77, 78]. 오른쪽 벽의 니치는 메토키테스의 친구이자 재상까지 지냈던 미카엘 토미케스의 석관이 놓였던 자리고, 그 건너편의 니치는 메토키테스의 석관이 놓였던 자리다.

 

   [그림 77]                                            [그림 78]


파레클레시온 두 번째 방의 주제는 최후의 심판이다. 가운데 둥근 천장에는 한 천사가 달팽이 모양의 우주를 떠받들고 있고[그림 79], 예수 그리스도가 가운데에 앉아 최후의 심판을 하고 있다. 예수의 오른쪽에는 성모 마리아가, 왼쪽에는 세례 요한이 '데이시스(간청)' 자세로 있고, 좌우 벤치에는 열 두 명의 사도가 여섯 명씩 앉아 있으며, 천사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예수는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선택 받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택함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거부의 의사를 밝히고 있다. 왼쪽으로 흘러내리는 핏빛 강물이 섬뜩한 느낌을 준다[그림 80].

 

 [그림 79]                                                      [그림 80]

 

 

또 북쪽의 반원형 공간에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 천국의 문에는 6개의 날개를 가진 세라핌(Seraph) 천사가 문을 지키고 있고, 왼쪽에는  천국의 문을 열쇠로 열고 있는 베드로가 있는데 그의 뒤에는 선택 받은 자들이 서 있다. 오른쪽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여 구원을 받은 강도가 십자가를 진 채 환영의 몸짓을 하고 있고 그 뒤로 성모 마리아가 반만 남아 있다[그림 82]. 왼쪽 펜던티브에는 영혼을 건지는 천사의 모습[그림 81], 오른쪽 펜던티브에는 거지 나사로를 안고 있는 아브라함이 그려져 있다[그림 83].


  

                      [그림 81] 

 

 

 [그림 82]    

 

 

                             [그림  83]


반대쪽 벽 왼쪽에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죄들의 모습이[그림 84], 오른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궤를 운반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그림 85].  특히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육체 묘사는 해부학적 사실주의가 돋보인다. 두 번째 방 양 쪽 벽면에도 석관을 놓았던 니치가 남아 있다.

    

 [그림 84]                                                     [그림 85]


두 번째 방과 지성소를 나누는 아치의 가운데에 미카엘 대천사가 그려져 있다. 그 왼쪽에는 과부의 아들을 살린 기적(누가복음 7:11~17)이[그림 86], 오른쪽에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린 기적(마태복음 9:18~26, 마가복음 5:21~43, 누가복음 8:40~56)이 그려져 있다[그림 87].

     

[그림 86]                                                         [그림 87]


지성소의 왼쪽 아래 벽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있고[그림 88], 지성소의 벽과 천장을 잇는 반원 공간에는 예수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지성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면이며 주위를 압도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예수는 오른손으로는 아담을, 왼손으로는 하와를 석관에서 끌어내고 있는데 역동적이면서도 엄숙한 느낌을 준다. 좌우에는 구약 시대의 예언자와 의인들이 부활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예수의 발 밑에는 꽁꽁 묶인 죽음의 신 타나토스(Θάνατος, Thanatos)를 배치하고 검은 바탕에 부서진 문 조각들을 그려 넣었는데, 이는 예수가 부활해서 죽음의 세계가 정복되었음을 나타낸다[그림 89]. 코라교회(카리예 박물관)를 대표하는 프레스코화의 명품이다.

 

 

                                  [그림 88]



[그림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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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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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의 길’을 따라 걸은 1박 2일


 

- 김 형 오 -


출간을 준비 중인 ‘백범의 길, 조국의 산하를 걷다’(가제) 집필진과 함께 마곡사(麻谷寺)를 찾았다. 충청남도 공주시 태화산 기슭에 자리한 마곡사는 치하포 의거(1896년)로 수감되었던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9년) 선생이 1898년에 탈옥한 후 반 년 정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法名)으로 승려 생활을 하며 머물렀던 곳이다. 우리가 마곡사에 간 날은 마침 김구 선생이 태어난 날(8월 29일)이기도 해서 감회가 새로웠다. 『백범일지』에서 마곡사를 찾아가는 장면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평소 생각해왔다. 특히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혼탁한 세계에서 청량한 세계로, 지옥에서 극락으로, 세간(世間)에서 걸음을 옮겨 출세간(出世間)의 길을 간다.”는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어느 종교인이나 철학자의 심정을 보는 듯했다.

김구 선생이 속세를 떠나 마곡사에 들어갈 당시의 심경을 떠올리며, 우리도 복잡하고 바쁜 도심을 떠나 김구 선생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마곡사에 도착하자 주지인 원경(圓鏡) 스님이 직접 나와 맞아주셨다. 선생(원종)이 머물렀던 절의 주지가 법명이 비슷하여 더욱 호감이 간다. 스님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마곡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인 일양(溢洋) 스님의 안내로 마곡사 순례를 시작했다. 넘칠 일(溢)자와 바다 양(洋)자를 쓰신다는 일양 스님. 바다가 넘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사찰 안에서 장난삼아 ‘쓰나미’라고 불린다는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스님의 안내로 처음 만난 것은 대광보전(大光寶殿) 앞에 자리하고 있는 오층석탑이었다. 라마교의 양식으로 만들어졌다는데, 그래서인지 이전에 봐왔던 석탑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첫 인상은 조금 이상하게 생겼다는 느낌도 들었다. 고려 초기의 석탑 양식에 상부는 라마교 형식을 그대로 닮은 구리로 된 조형물을 올렸다. 풍마동(風磨銅)이라는 원나라 제품이라 한다. 티베트·네팔 등지에서 보던 스투파 형식의 구리 불탑의 축소판을 보는 느낌이다. 탑 주변에는 아직도 붉고 노란 꽃이 한 꽃송이에 피어 있는 화초들이 우리를 반긴다. 꽃 모양이 왕관을 닮았다 하여 ‘금관화’라는데 외래종이다. 

         금관화 둘레와 오층석탑, 심검당과 대광보전                고려석탑과 원나라 양식이 결합된 오층석탑과

                                                                                 상부의 풍마동


                             금 관 화                        대광보전 현판 : 표암 강세황의 낙관이 뚜렷하다

오층석탑을 본 후 대광보전으로 향했다.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本殿)이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순조 13년(1813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 1713~1791년)의 현판이 도드라진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자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불상이 불전의 가운데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 않고, 왼쪽에서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 모셔진 불상은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인데,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 관람객은 놓치기 쉽다며 스님이 직접 불상 뒤로 안내한다. 앞의 불상 크기의 커다란 관음보살상이 지그시 내려다본다. 앞에는 진리와 빛을 상징하는 비로자나 불상, 바로 뒤에는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 그림, 절묘한 배치가 아닐 수 없다.

           대광보전 안의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비로자나불               관음보살 그림


법당 불상 앞바닥에는 앉은 뱅이가 걸을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며 짰다고 하는 삿자리(갈대 또는 나무를 깎아 엮어 만든 자리)가 인조 카펫 아래 덮여 있다. 물론 앉은 뱅이는 삿자리를 완성한 후 걸어 나갔다고 한다.

대광보전 전면 기둥에 있는 주련(柱聯)*에 눈길이 간다. 백범이 환국 후 마곡사를 다시 찾았을 때(1946년) 찍은 사진을 보면 색칠을 다시 한 듯 주련 글씨가 선명했지만, 지금은 색이 완전히 바래서 고아(古雅)한 느낌을 준다. 돌아 나오니 친절하게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잘 설명된 안내판이 있다.

淨極光通達(정극광통달) 청정함이 극에 이르면 광명이 걸림 없으니
寂照含虛空(적조함허공) 온 허공을 머금고 고요히 비출 뿐이라.
却來觀世間(각래관세간) 물러나와 세상일을 돌아보면
猶如夢中事(유여몽중사) 모두가 마치 꿈속의 일과 같네.
雖見諸根動(수견제근동) 비록 육근(눈, 귀, 코, 혀, 몸, 뜻)이 유혹을 만날지라도
要以一機抽(요이일기추) 한 마음을 지킴으로써 단번에 뽑아버릴지어다.

* 주련 : 사찰이나 서원 또는 한옥의 기둥이나 바람벽 따위에 장식으로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 기둥에 시구(詩句)를 연하여 걸었다는 뜻에서 주련이라 부른다. 주련은 불교사, 서예사, 미술사적으로 가치를 지닌 하나의 독립된 문화유산이다. 사찰에서는 주로 부처님의 말씀 또는 고승들의 오도송이나 열반송을 주련으로 써 붙인다.

이 중 “물러나와 세상일을 돌아보면(却來觀世間) 모두가 마치 꿈속의 일과 같네(猶如夢中事)”라는 구절은 첫머리에 백범이 마곡사를 찾을 때 “세간에서 출세간으로 간다”는 표현과 겹친다. 마곡사를 떠난 지 수십 년이 되어서도 백범은 주렴 구절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대광보전은 안팎으로 구성과 장식이 풍부하고 건축 수법이 독특한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광보전에서 나와 계단을 따라 뒤편으로 올라가 대웅보전(大雄寶殿)으로 향했다. 마곡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밖에서 바라본 대웅보전은 이층짜리 건물이었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천장이 높은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독특한 형태였다. 천장 가운데 유리창을 내어 법당 안으로 자연 채광이 되도록 했다. 바로 그 부분이 밖에서 볼 때 1층과 2층을 구획 짓는다. 이곳에는 석가모니(釋迦牟尼)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藥師如來)와 아미타불(阿彌陀佛)이 나란히 자리하고, 지붕을 받치는 네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일양 스님이 “이 중 한 나무 기둥을 잡고 시계 방향으로 세 바퀴를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서 우리 일행에게도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한다. 수많은 참배객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인지 기둥에는 윤기가 흐른다.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유형문화재 제191호)가 봉안되어 있다. 마곡사 옛 스님의 솜씨라는데 그림의 크기도 수준도 보통이 아니다. 내 생각을 말하라면 대웅보전은 마곡사의 건물 중 가장 뛰어난 건축물이다. 16세기 말 축조되었다고 한다.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金生, 771~?)의 글씨라는데 증명할 길은 없다.

대웅보전 주련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古佛未生前(고불미생전) 옛 부처님 나시기 전에
凝然一相圓(응연일상원) 의젓한 동그라미 하나
釋迦猶未會(석가유미회) 석가도 알지 못한다 했으니
迦葉豈能傳(가섭기능전) 어찌 가섭이 전하리.
本來非皂白(본래비조백) 본래 검지도 희지도 않으니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 짧지도 또한 길지도 않도다.

대웅보전 주련

                      마곡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내부의 높은 천장을 바라보는 일행

마곡사의 중심 불전인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을 본 후, 백범당(白凡堂)으로 향했다. 김구 선생이 마곡사에 있을 당시 생활했던 공간은 원래 심검당(尋劍堂)이었으나, 선생을 기려 호를 따 백범당으로 별도 배치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과 친필 휘호 ‘행복(幸福)’, ‘양심건국(良心建國)’ 등이 걸려 있고, 옆에는 김구 선생이 광복 이후 1946년 다시 마곡사를 찾았을 때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백 범 당                                          백범 김구 선생이 심은 향나무

심검당은 현재 오층석탑의 오른편, 대광보전 가기 전에 있다. ‘ㄷ’자형 건물인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정면 건물로만 보인다. 마곡사에 여러 건물들이 새로 들어서서 측면 건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모퉁이 어느 방에 백범이 기거했을 것이다. 영·정조 시대의 명필 송하 조윤형(松下 曺允亨, 1725~1799년)의 심검당(尋劍堂) 글씨가 오른쪽에,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년)의 마곡사(麻谷寺) 글씨는 왼쪽에 나란히 걸려 있다. 해강의 ‘마곡사’ 글씨가 이 절의 로고인 듯 여기저기 해강의 글씨로 표지를 해두었다. 해강의 글씨는 드물게도 대나무 그림이 배경을 이룬다. 삼일만세운동 때 명월관(明月館) 주인(?)인 죽농 안순환(竹儂 安淳煥, 1871~1942년)의 그림이다. 교수들과 함께 가니 의외의 사실들도 많이 알게 된다. 김구 연구 전문가들로서 한문과 한국 근현대사에 해박하여, 나 같은 사람의 수준을 올려 주기에 딱 좋은 여정이 되었다.

‘칼’은 백범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인가. ‘칼’을 씻고자 찾아온 그를 ‘칼을 찾는 집(尋劍堂)’이 맞이한다. 물질의 칼이 아닌 마음의 칼을 찾으라는 뜻이리라. 심검당 글씨는 마음을 씻을 칼을 찾는 이의 마음을 칼같이 차갑게 하는 듯하다. 옆의 부드러운 마곡사 글씨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마곡사 편액                                                    심검당 편액

백범당부터 김구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백범 명상길이 시작된다. 마곡천(麻谷川)을 따라 걷다가 만난 곳은 김구 선생이 승려가 되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는 삭발터. 젊은 나이에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과 고초를 다 겪은 그였지만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백범일지』에서도 “머리털과 같이 눈물이 뚝 떨어졌다”며 당시의 심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 곡 천                                               백범 김구선생 삭발터 

마곡천을 건너 산행을 시작했다. 산 속의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마곡에서 가장 지기(地氣)가 강하다는 군왕대(君王垈)였다. 우리는 지기를 느껴보기 위해 땅을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강한 기운 덕분일까? 땅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조선의 7대 왕 세조(世祖, 1417~1468년)도 이곳에 올라 “내가 비록 한 나라의 왕이지만, 만세불망지지(萬世不亡之地)인 이곳과는 비교할 수가 없구나”라며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김구 선생도 이곳에 올라 땅의 기운을 느끼며, 조국과 우리 민족의 힘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다잡지 않았을까?

                     군왕대로 올라가는 길                                군왕대의 지기를 느껴보았다.

군왕대를 뒤로 하고 마애불(磨崖佛)이 있다는 백련암(白蓮庵)으로 향했다. 백련암으로 가던 길에 영산전(靈山殿)과 매화당(梅花堂)에 들렀다. 영산전에도 군왕대와 마찬가지로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생육신(生六臣)의  한명인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이 계유정난(癸酉靖難) 소식을 듣고 마곡사에 은거할 때의 일이다. 세조는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 마곡사로 행차했으나, 김시습은 미리 알고 마곡사를 떠난다. 세조는 이를 안타까워하며 타고 온 가마를 두고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이 때 사용했던 가마는 현재 마곡사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영산전에는 세조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다.

영산전의 옆에는 매화당(梅花堂)이 자리하고 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김구 선생이 마곡사에서 처음 도착한 곳이 바로 매화당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스님들의 선방(禪房)이지만 한때 호신술로 유명했던 매화당 권법의 발상지가 바로 여기라고 한다.

                              영 산 전                                            세조의 친필 영산전 현판

영산전 주련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空生大覺中(공생대각중) 허공이 큰 깨달음 속에서 생겨난 것이
如海一漚發(여해일구발) 마치 바다에서 물거품이 하나 일어나는 듯하니
有漏微塵國(유루미진국) 티끌같이 수없는 중생의 세계도
皆依空所生(개의공소생) 모두 허공을 의지하여 생겨났도다
漚滅空本無(구멸공본무) 물거품이 소멸하듯 허공도 본래 없거늘
況復諸三有(황부제삼유) 하물며 다시 삼제가 있을 수 있을까?

영산전 주련

백련암을 찾아 가는 도중에 “백범이 머물렀다.”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백련암에는 백범의 흔적은 없고 바로 뒤의 마애불만 보았다. 안내자도 설명도 없어 조성연도조차 불확실한 수수한 마애불은 말없이 우리를 내려다 볼 뿐이다. 내려오는 길은 가팔랐다. 웬일인가 싶었더니 스님이 가리킨다. “저 송림(松林) 좀 보세요. 주지 스님이 이리로 올라가라 했는데 우리는 내려갑니다.” 과연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다. 자랑할 만한 숲이요, 공기의 질이 다른 것 같다.

                              백 련 암                                                 백련암 마애불 앞에서

마곡사 순례를 마친 후, 마곡사 주지 원경스님과 차담을 잠시 나누었다. 원경스님으로부터 김구 선생에게 있어 마곡사, 마곡사에 있어 김구 선생의 의미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차담 후, 오늘의 답사를 정리하고 ‘백범의 길’ 집필에 대한 방향을 정하기 위한 회의를 본격적으로 가졌다. 앞으로의 답사와 조사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고, 특히 아직 우리가 찾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자료 수집에 전 국민이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김형오 협회장과 원경스님                                     원경스님과의 차담

첫날의 모든 일정을 마친 후, 각자의 방사로 돌아가 개인시간을 가졌다. 밤 10시,태화산(泰華山)의 맑은 공기와 선선한 바람이 방 안을 감돌고, 마곡사의 은은한 범종 소리가 귓전에 남는다. 일정을 함께 한 교수 한 분이 말했다. “이렇게 빠듯한 일정을 자로 잰 듯이 지키면서 마음 편히 온종일 보내 본 행사는 근래 처음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전국에 뿌려진 백범의 발자취를 더듬는 이 쉽지 않은 일이 결코 어려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때보다 편안한 기분으로 잠이 들 수 있었다.

                                                        범종루의 동정각
 

[1부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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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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