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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9일 청주에 있는 공군사관학교에 다녀왔습니다.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대회의 입상자들에게 시상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늠름한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김신 장군님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김구 선생의 아드님으로 험한 세월을 견디셨고, 또 대한민국 공군을 창설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분으로 이런 후배들을 보셨으면 얼마나 가슴 뿌듯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시상식 인사말과 사진을 같이 올립니다.




[공군사관학교 시상식 인사말]

  조국의 하늘을 지키며 공군의 미래를 이끌어갈 자랑스러운 공군사관학교 생도 및 장병과 군무원 여러분!


  먼저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신 황성진 학교장님을 비롯한 교직원 여러분과 대회에 참가한 생도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는 지난 2005년도에 시작, 이번 대회까지 총 481회에 걸쳐 국군 장병과 국내외 중‧고‧대학생 65만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이 진솔하게 기록된 이 책을 읽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라 사랑 정신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선열들의 땀과 피로 되찾아 다시 세운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하며, 우리가 몸과 마음을 바쳐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조국인가를 『백범일지』는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백범일지』는 사랑하는 두 아들에게 유서를 대신해 남긴 회고록입니다. 그 두 아들 중 차남은 바로 여러분도 잘 아는 김신 장군님이십니다. 6‧25 전쟁 당시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의 주역으로 제6대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우리 공군의 살아 있는 전설이지요. 아드님(김양)과 손자(김용만)는 물론 사위(김호연)와 외손자(김동만)까지 3대가 공군 장교로 복무한 병역 명문가, 여러분의 대선배이기도 합니다.



  김신 장군께서 쓰신 회고록 『조국의 하늘을 날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내가 중국 공군에서 훈련받다가 광복을 맞이해 귀국하려 했을 때, 아버지는 계속 훈련받을 것을 명하셨다. 그 결과 나는 당시로서는 미 공군에서 정식 비행 훈련을 마친 사실상 유일한 한국인이 될 수 있었다. 항공 전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항공 분야의 가능성을 이해하신 아버지의 혜안 덕분이었다.”

  다시 찾은 조국의 진정한 독립과 굳건한 안보를 위해서는 공군력이 필수불가결함을 백범 선생께서는 예견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입상자들에게는 내가 쓴 졸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부상으로 드립니다. “어떻게 하면 김구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쉽고 깊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밤잠을 줄여가며 쓴 책입니다. 『백범일지』와 나란히 여러분 서가에, 또 머리맡에 놓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다시 한 번 ‘『백범일지』 독서감상문 쓰기대회’와 오늘 이 시상식 자리를 마련해주신 황성진 학교장님과 수고하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영광의 입상자뿐만 아니라 대회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진심어린 축하와 격려를 드립니다.



  공군사관학교의 교훈은 “배우고 익혀서 몸과 마음을 조국과 하늘에 바친다.”입니다. 이 교훈의 깊은 뜻을 가슴에 새기고 조국의 하늘을 지켜나갈 여러분의 건승과 공군사관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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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빨간마후라 2018.11.16 1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만 보아도 정말 늠름한 보라매의 기상이 느껴집니다. 백범 가문과 공군이 이런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줄 처음 알았네요.

오늘(10/25) 오전 10시에 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주최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토론자로 참석하면서 준비한 원고를 올립니다. 




왜 개헌인가,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김 형 오(전 국회의장)


 

우리 헌법에서 가장 소중한 대목을 한 곳만 들라고 하면 저는 주저 없이 헌법 전문에 있는 다음 구절을 들고 싶습니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는 구절입니다. 이는 제가 좋아하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일컫는 페리클레스의 연설 한 대목인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서 나온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그렇습니다, 우리는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지켰습니다. 이것을 위해 나라가 있고 헌법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헌법 개정을 하더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이 최고의 가치들은 결코 훼손됨이 없어야 할 것을 전제로 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국회의장 취임 일성이 개헌이었습니다. 국회에 오기 전 저는 10년 가까이 정무 담당 공무원으로서 권력의 부침과 영욕, 그 허무함을 보고 느껴왔습니다. 큰소리치던 권력자와 그 주변을 얼씬거리던 수많은 인사들의 말로(末路)를 직접 보았던 사람입니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 진사가 지은 한시(漢詩)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새벽 굼벵이는 살려고 자취도 없이 달아나건만, 저녁 모기는 죽기를 무릅쓰고 왱왱거리며 덤벼든다”(曉蝎求生無跡去, 夕蚊寧死有聲來). 조선조말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목숨을 건지려고 굼벵이처럼 슬그머니 피신한 이들과, 곧 죽을 줄도 모르고 모기떼처럼 설쳐대는 자들을 풍자한 시구입니다. 세월이 수없이 흘렀건만 새벽 굼벵이와 저녁 모기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땅에 있습니다. 누가 자취를 감추는 굼벵이인지 왱왱대는 모기인지를 이 자리에서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런 굼벵이와 모기 같은 자들이 정치권, 특히 권력 주변을 에워싸지 않기 위해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87년 헌법의 정당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들이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뒤끝이 안 좋았습니다.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세 분(노태우이명박박근혜)은 감옥에 가고, 한 분(노무현)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두 분(김영삼김대중)은 재임 중 자식이 감옥에 가는 불운과 수모가 겹치고 연이었습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단 한 사람도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를 떠난 분이 없습니다. 그 중에는 눈부신 민주 투사도 있고, 콘크리트 같은 열혈 지지자가 수백만인 분도 있었지만 모두가 불행했습니다. 퇴임 후엔 일정한 역할도 없이 조용하고 쓸쓸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렇잖아도 국가 원로가 빈약한 나라에서 법과 세금으로 예우해주는 전임 대통령의 할 일이 없는 나라입니다.

  

사진출처 : 내외통신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왔습니다. 여야를 번갈아가며, 같은 진영이 계속되기도, 다른 진영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섯 명의 대통령, 이번까지 포함하면 일곱 명의 대통령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간 대통령과 정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전임 대통령의 업적·정책·방침을 지우고 바꾸기에 급급했습니다. 정권에서 정권으로 이어가는 중장기 계획이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오히려 전임 대통령 시절 주요 정책을 담당했던 공무원은 문책을 당하고 감옥에 가거나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밀려납니다.

 

멀리 보고 길게 가는 정책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중장기 계획이 없는 나라인데 어찌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겠습니까. 미래가 안 보이는 나라인데 어찌 느긋하게 참고 기다릴 수 있겠으며, 오직 현재만을 위해 아득바득 다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는 것은 자기 보호의 본능입니다.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은 차기 정부에서 뒤집어지고 핵심 가담자들은 차기 정권의 눈 밖에 날 것이 뻔하므로 그저 대충대충 시키는 일만 하고 적당히 땜빵만 하며 넘어가려 합니다. 사명감도 비전도 의욕도 내용도 부실하기만 합니다. 성장 동력이 꺼져가는 나라입니다. 이대로라면 나라가 전체적으로 내려앉고 5년 단임제 정권의 단물이 다 빠져 소태 씹는 심정으로 빈 창고를 지켜야 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실패한 대통령은 그래도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대통령들로 인해 나라마저 실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통령은 다시 뽑으면 되지만 실패한 나라는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 요인과 맹점을 현행 헌법이 안고 있는 대통령제에서 찾는다면 지나친 억측이고 비약일까요? 나와는 소속 정당이 달랐지만 제가 존경하는 전직 국회의장께서도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우리 헌법을 고치지 않고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대통령에게는 미국 대통령과는 비교도 안 될 막강한 권한을 헌법이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의 기본이어야 할 삼권 분립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그렇게나 싫어했던 유신 헌법의 잔재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고 행정권을 장악합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대통령 뜻에 따라 구성되고, 국회의 대통령 견제 권한은 형식적이며 또 지극히 미약합니다. 비판·견제·감시를 해야 할 국회의 구체적이고 분명한 권한이 없다 보니 행정부 발목 잡는 짓이나 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국회답지 못하니 대통령의 대국회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충성분자와 과격파들이 국회를 주도하게 됩니다.

 

행정부가 집행할 예산을 행정부 스스로 편성하고, 마찬가지로 자기 공무원에 대한 감사를 자기가 합니다. 쓰임새와 복무 자세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 등 국민을 위한 파수꾼·보호자가 돼야 할 기관들이 대통령 심기와 눈치를 살피는 기관이 돼버려 국민의 두려움과 불신·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5년 권력은 잠깐입니다. 집권 말기가 가까워지면 이들 기관은 차기 권력의 향방에 눈길을 주고, 지는 해인 현재 권력에는 등을 돌립니다. 조직이 살기 위한 5년마다의 눈부신 변신입니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돼온 고질적 행태입니다.

 

미국 말고 대통령제가 제대로 성공한 나라가 있을까요. 그럼 미국은 왜, 어떻게 성공했을까요.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한마디만 하란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권한이 적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의회를 비롯한 끊임없는 감시와 헌법적 제약이 엄존합니다. 미국 외 다른 나라의 대통령들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기에 포장만 벗기면 비민주적 독재, 장기 집권, 부정부패, 부의 편중 또는 정국 불안에 시달립니다.

 

또 있습니다. 현행 헌법상 국무총리의 위상이 애매합니다. 국정 통할 기능이 무엇인지, 통할이란 말도 어렵지만 내용은 더욱 모호합니다. 청와대 중심의 국정 처리가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느낌입니다. 국무회의는 토론이 사라지고, 장관들은 총리 의중을 묻지 않습니다. 다만 청와대 눈치를 살피고 그 오더를 쫓느라 바쁩니다.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없는 단순한 대통령의 참모 보조 기구인 비서실이 정치와 정책을 주도하면 책임 정치는 실종되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헌법 정신은 퇴색하고 맙니다. 촛불 민심은 밀실 정치,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국민의 분노, 그 표출이었습니다. 촛불로 태어났다는 이 정부가 촛불 정신의 참된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총리가 국정의 중심 역할을 못하는 것도 현행 헌법상 대통령제의 취약점입니다.

 

개헌을 논의하자면 다짜고짜 4년 중임제냐 이원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냐를 묻습니다. 틀을 먼저 짜놓고 거기에 내용물을 구겨 넣겠다는 식입니다. 이런 수준의 논의라면 제대로 된 개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식이라면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 보다 더 지긋지긋한 8년 단임제가 될것이고, 분권형제는 권력 나눠먹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대통령 권한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그 줄인 권한을 어떻게 합리적·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먼저 논의해야 합니다. 즉 권력구조에 대한 합의가 최우선입니다. 그 후에 합리적으로 조정된 권력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데 4년 중임제로 하는 것이 맞는지, 총리 중심의 분권형제로 하는 게 합당한지를 따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더는 불행한 대통령이 나와선 안 됩니다. 대통령의 불행은 나라와 국민의 불행이고 수치입니다. 역대 어느 대통령인들 스스로 불행해지고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거나 비난 받으려 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비극의 길로 들어섰다면, 이것을 운이 없다거나 운영을 잘못한 탓으로 돌리는 미욱한 자세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이 잘못된 제도,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제도, 삼권 분립 원칙에도 어긋난 헌법을 이대로 두고서는 다른 내용이나 제도를 아무리 잘 고쳐도 대한민국은 결코 민주주의로 가지 않고 나라도 국민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저는 국회의원 생활 중 10년 이상을 정보통신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나라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이런 미래지향성이 부족합니다. 또 저는 지역구 의원으로 있었기에 지방자치의 중요성과 절실성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남녀평등과 기회 균등, 자유의 확대, 소득 보장 등 모든 현재적·미래적 가치를 존중합니다. 개헌을 한다면 이런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민주 헌법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30년 전과 지금은 엄청난 시대적 간극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헌법의 내용을 보강하고 성숙시키고 보다 민주적으로 나아가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이것만을 위한 개헌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한은 그대로 둔 채, 또는 지엽적 변경만 가한 채, 다른 구구절절한 내용들을 담아 개헌을 하려 든다면 저는 단연코 반대할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개헌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처럼 돼버린 제왕적 대통령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는 지상 명제이며 절체절명의 과제입니다. 개헌을 하겠다는 모든 세력단체조직정당들은 우선 이 명제부터 합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본격적인 개헌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합의가 쉬운 것부터 먼저 하자거나, 권력구조는 합의가 어려워 그대로 두겠다면 개헌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헌은 특정 정파나 어느 세력의 전유물이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습니다. 아직도 왜 개헌인가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국민이 적지 않습니다. 온 국민의 바람 속에 국민을 위한 개헌이 되려면 왜 지금 개헌인가,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에 대한 물음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귀담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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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일, 부산대학교에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이 있었습니다. 제가 현재 부산대학교 석좌교수로 있고 하토야마 총리와는 의장시절 부터 인연이 있었던 터라 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축사 전문을 올립니다.



<축 사>

 

 

존경하는 내외귀빈 여러분, 전호환 총장님, 교수, 교직원, 학생 여러분.

 

3년 전인 2015년 여름 어느 날 아침, 신문을 보던 저는 한 컷의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옛 서대문 형무소 자리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일제의 식민통치와 우리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참회와 사죄를 하고 있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국 최고의 애국자요 독립운동계의 거목인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라서 더욱 그랬을까요?

 

이 한 장의 사진이야말로 얽히고설킨 한일 관계사의 매듭을 풀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지의 표상이며, 또한 동북아의 평화, 동아시아의 번영으로 향하는 거대한 비전을 밝히는 횃불이었습니다. 확고한 역사관과 세계관, 투철한 신념이 빚어낸 결과였습니다.

 

이 행동은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를 방문,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던 장면과 오버랩 됩니다. 그도 물론 위대한 결단이었지만, 하토야마 총리의 용단이야말로 더 높이 평가받을만합니다. 독일과는 비교도 안 될 일본 내의 만만찮은 반대 기류를 무릅쓴 그의 담대함, 지성적 용기, 솔선수범, 미래 지향성 등이 오랫동안 폐쇄적이고 이기적이었던, 편협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선동적이었던 내외의 여러 세력들에게 커다란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 몇 해 전인 200965, 제가 국회의장 시절 방한한 하토야마 총리(당시 민주당 대표)를 의장실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었던 추억이 불현듯 스쳐갔습니다. 그해 830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낸 그에게 축전을 보냈더니, 그는 한국과 가일층의 우호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201510월 중국 톈진에서 열린 빈하이 포럼 오프닝 세레모니에서 그와 나는 동북아 평화 발전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 인연도 있습니다.

명문가 출신으로 일본 최고 대학을 나와 제가 잠시 방문교수(Visiting Scholar)로 발을 들였던 미국 명문 스탠포드 대학에서 정식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딴 하토야마 총리는 일본 정계의 대표적인 지한파, 친한파 정치인입니다. 저에게 비친 그는 품격과 인격을 갖춘 엘리트 정치인, 소탈하면서도 개혁적이며 나라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자입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21세기 정치인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정치인은 퇴임 후의 족적으로 평가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그런 면에서 귀감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일본 정치가 가야 할 바른 방향을 끊임없이 제시하는 한편, 잘못된 정책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높은 식견에 바탕을 둔 용기 있는 발언과 진실된 행동은 일본은 물론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큰 울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퇴임 후에도 새로운 정치, 새로운 한일 관계, 새로운 동북아 및 동아시아를 위해 헌신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하토야마 총리에게 제가 석좌교수로 있는 이곳 부산대가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며 반갑고 기쁜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전 지구적 차원의 환경변화와 글로벌 네트워크로 동북아의 해양이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넓게 마주하는 이 바다가 양국의 호수처럼, 강처럼 가까워지고 활용되며 네트워킹 될 날도 머지않을 것입니다. 동북아 해양도시 중 최대의 항구와 공항, 대학과 문화가 있는 부산과 부산대의 미래는 이 바다를 어떻게 인식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대와 새롭게 인연을 맺은 하토야마 총리의 향후 역할과 지도력에도 기대를 걸어봅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와 동북아 및 동아시아의 새로운 발전, 그리고 부산대의 활약을 기원하면서 하토야마 총리의 건승과 명예박사 학위 영득을 거듭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8102,

부산대학교 석좌교수 김형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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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김형오 前 국회의장 


"동포에 대한 헌신·희생이 白凡정신… 정치인들에게 이게 안 보여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펴낸 김형오 前 국회의장

만난 사람=홍영식 논설위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인터뷰 장소로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을 선택했다. 그는 “정치지도자들은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하는 백범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 솔선수범, 희생의 리더십을 실천한 위대한 혁명가입니다. 평생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산 백범의 정신을 오늘날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합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백범의 차남 김신 전 교통부 장관(1922~2016)의 요청으로 2015년 7월부터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후 3년간 오롯이 백범의 일생을 좇아 그 정신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주력했다. 그는 “애국 열정의 휴머니스트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고 인간적인 매력에 빠져든 날들”이라고 했다. 김 전 의장이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재구성해 펴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그 결과물이다. 김 전 의장이 ‘백범(白凡·평범한 사람)’을 대표해 물으면 김구 선생이 답하고, 김 전 의장이 추가 설명을 붙였다. 김 전 의장을 만나 엄혹한 시대에 맞서 몸을 던진 독립투쟁가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들어봤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출판사에서 백범에 관한 책을 펴내자고 제안했을 때는 좀 언짢게 생각했어요. 《술탄과 황제》(김 전 의장이 2012년 쓴 책)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니 나를 이용해 책 장사를 하려나 생각했습니다. 나는 봉사로 여기고 이 자리(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에 왔어요.(김 전 의장은 월급과 판공비 등을 일절 받지 않고 있다) 출판사 관계자를 야단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가면서 혼잣말로 ‘요즘 젊은이들이 백범을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이후 이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고민이 컸습니다. 내가 책을 쓸 능력이 있는지, 이미 수많은 연구자가 백범 연구 결과물을 내놨는데 어떻게 차별화할지 고뇌의 시간을 보냈죠. 결국 ‘이 시대에 백범의 정신이 필요하겠구나, 한 번 해보자’고 결심하고 3년간 매달렸습니다.”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이 책이 제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릅니다. 탈고한 뒤 긴장이 풀렸는지 한 달 반을 편도선·기관지염으로 고생했어요. ‘제발 더 이상 책상에 앉아서 고생하지 말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견뎌내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책 제목이 독특합니다.

“백범일지를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제대로 읽어본 사람도 드물 겁니다. 백범이 살던 시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어느 시대나 젊은이들은 고뇌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와 투지가 필요합니다. 백범일지를 제대로 읽으면 희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기성세대도 백범일지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봉건적 세계관을 가졌던 백범이 혁명가로 변신한 정신적 배경은 무엇입니까.

“백범은 ‘상놈’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면서까지 입신양명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시대와 환경이 보통사람을 위대한 인생, 위대한 혁명가로 만들었어요. 백범의 올곧은 자세가 사상과 지향점을 키운 원동력입니다. 19세에 동학 접주가 돼 수천 명을 이끌기도 했지요. 그러나 준비 안 된 리더가 얼마나 무참하게 끝나는지 깨달았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 전후로 교육계몽운동을 하다가 나라를 빼앗기자 감옥에 가고, 온갖 고초를 겪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 영글어지고 단단해졌습니다.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라고 외치면서 통합과 개화를 강조했습니다. ‘상놈 콤플렉스’에만 머물지 않고 성숙한 평등주의자로, 독립투쟁가로 나아갔습니다.”


▶백범 리더십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솔선수범입니다. 책임정신과 헌신, 이게 아주 남달랐던 거죠. 역경에 좌절하거나 온전히 타협해 주저앉는 스타일이 아니고, 극복하고 돌파해 나가면서 바르게 끌고 가려는 정신과 자세를 지녔습니다.”


▶백범은 치부조차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성공하면 자기를 미화하는 게 보통인데, 백범은 그러지 않았어요. 감옥에서 고초를 당할 때 ‘젊은 아내가 몸이라도 팔아서 맛있는 사식을 넣어주면 좋겠다는 더러운 생각까지 했다’는 내용까지 일지에 썼어요. 일지는 아들들이 보라고 쓴 일종의 유서입니다. 이런 것까지 글로 남긴다는 것은 그만큼 순수하다는 것이지요. 험난한 도망자 생활을 할 때 도와준 처녀 뱃사공과의 러브 스토리를 일지에 남긴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백범은 분열된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백범 리더십 중 가장 위대한 것은 투철한 애국심입니다. 동포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바탕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게 임정을 끝까지 지킨 힘입니다.”


▶백범이 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주도했습니다. 두 의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국내외 동포의 독립 투쟁을 가열시킨 촉매가 됐습니다. 중국 장제스(蔣介石)도 ‘한국과 합작해 대(對)일본 공동전선을 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백범은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광복군이 참전하기 직전에 일본이 항복하면서 우리 스스로 광복에 힘을 보태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죠. 광복군이 참전했다면 광복 후 우리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갈 힘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참전 여부는 곧 광복 후 외세 의존이냐, 탈피냐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걸 안 거죠.” 


▶백범 리더십이 오늘날 우리 정치권과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백범은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았습니다. 공인으로서 깨끗했습니다. 돌아가실 때 돈 한푼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떤 자리도 노린 적이 없습니다. 나라를 위한다면 서슴지 않고 몸을 던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자유한국당은 희생과 헌신의 자세가 보이지 않고, 백범이 가지고 있던 애국심 같은 것도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당도 문재인 대통령 개인 인기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정을 주도하고 여당은 심부름하는 역할만 했습니다.”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지율은 뜬구름 같은 겁니다. 높은 지지율이 계속 유지될지는 장담 못 합니다. 걱정되는 것은 경제입니다. 경제 정책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게 문제입니다. 근로시간 단축도, 최저임금 인상도 우리가 처한 경제상황과 따로 놉니다. 기업 및 노동자와 우리 생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연구한 끝에 나온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규제 문제입니다. 정부 자체가 규제 덩어리입니다. 규제 권한이 강화되면 관료는 옷 벗은 뒤 갈 수 있는 자리가 생기죠. 국회의 규제 입법도 심각합니다. 규제 입법하는 의원 이름을 공개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공공 규제가 가장 강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이래서 어떻게 기업이 투자를 하고 고용을 하겠습니까.” 


▶국회의원 20년 경력 중 10년 이상을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관련 상임위에서 활동해 원자력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이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값싼 전기료로 생산성을 보장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원자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탈(脫)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오르면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바보 같은 짓입니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1등 산업을 밟아버리는 겁니다. 신재생에너지로 감당하기는 아직 어림없습니다. 국가재앙 시대를 자초하고 있어요. 국가의 미래가 망가지고 있는 것 같아 처연한 심정이 듭니다.”



김형오 前 국회의장은…

 

언론인 출신 14~18대 국회의원… 정계 은퇴 뒤 '역사 소설' 작가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언론인 출신으로 14~18대 국회의원(5선)과 국회의장(18대)을 지낸 정계 원로다.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다 1978년 외교안보연구원에 들어가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으로 부산 영도구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2012년 정계에서 은퇴한 뒤 작가로 변신해 《술탄과 황제》라는 역사 소설을 펴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정치인 시절부터 통찰력 있는 식견과 균형된 시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시쓰는 술탄과 황제》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등도 펴내며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1966년 경남고 졸업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1975년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1975~1978년 동아일보 기자 △1992~2012년 14~18대 국회의원 △2006~2007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7~2008년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2008~2010년 국회의장 △2013년~ 부산대 석좌교수 △2015년~ 한국경제신문 객원대기자 △2015년~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 


정리=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



[2018-07-16 한국경제]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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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의 위기는 爭頭때문…백범 爭足에서 답 찾아야”






자신을 버리면 어떤 연정도 가능

상대를 품는 백범 리더십 배워야

 

정치판 개혁을 넘어 근본틀 바꿔야
정치문화도 시민의식도 혁신대상 


“백범 김구 선생은 우파인가, 좌파인가. 보수 정치 위기의 상황에서 백범 선생에게 무얼 배워야 하나.”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란 책을 쓴 김형오 전 국회의장에게 두 가지를 물었다. 첫 질문에 ‘둘 다 틀렸다’고 말했고, 두 번째 질문에는 ‘쟁족(爭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진 것 모두 버렸다면 해답 냈을것  


“온존(溫存)하고 쟁두(爭頭)하니까” 위기다. 자리를 지키고 모두 머리가 되려고만 하니 위기가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김 전 의장은 “앉자마자 비대위원장 진짜 안 하느냐고 물었잖느냐. 왜 그런 질문이 나왔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정치인들은 다 ‘미 퍼스트(Me first)’한다. 그걸 기자도 알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백범 선생은 임시정부 처음 들어가서 문지기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도산 안창호 선생이 더 높은 자리를 줬다. 그러자 화를 냈다”며 “평생을 발이 되고자 했다. 쟁족의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내 후배들 다 똑똑하다. 가진 것 모두 다 버렸다면 왜 위기에 대한 해답이 안 나왔겠느냐”고 설명했다. 


쟁족 정신이 없으니 생긴 폐단이 계파다. 계파가 없으면 힘이 없고 흔들린다. 쟁두하려 하니 날 받쳐줄 계파를 만든다. 이걸 바꿔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백범 선생은 상해에서 공산주의적 사고에 물든 사람과 대립각을 세웠으면서도 이후 과감하게 그들과 연정을 했다”며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포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 많은 파벌과 계파를 엮어 연합했다. 그릇이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대의를 위한 일을 한 것”이라고 되짚었다. 


“그래서 백범 선생에게 그때 다들 ‘낭만적’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근데 백범 선생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따지지 않았다. 30여년간 일제와 투쟁할 때 많은 사람이 전향했다. 계파주의가 판을 쳤다. 공산파, 민족파가 다퉜다. 그래도 백범은 끝까지 임시정부를 품었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책에서 백범 선생을 ‘우익세력’에 가깝게 표현했다. 그럼에도, 백범 선생이 공산계와 연정한 이유를 김 전 의장은 ‘독립’이란 대의를 위해서라고 했다. 보수가 계파다툼으로 위기에 빠졌기에, 대의를 생각한다면 상대를 품고 가는 백범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는 소리다. 


김 전 의장은 “말은 쉽지만, 쟁족이 힘들다는 것은 나도 안다. ‘희생하겠다, 헌신하겠다’ 말하지만 속으론 챙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를 버리면 길은 생긴다. 일본강점기 때 백범 선생도 버렸다”며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지금은 천당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복당ㆍ잔류파든, 새누리당에서 분화됐던 한국당ㆍ바른정당이든 야권의 차이점이 일본강점기 좌ㆍ우익의 그것보다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계파로 말미암아 머리 되려는 사심을 접으면 포용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그는 “되풀이되는 온존이고 쟁두다. 비대위원장 안 한다 했으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이유기도 하다”며 “어떤 후배든 혁신하고자 할 때에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 ‘법안·제도’에 대한 숙고 없어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으로 끝나는 개혁이 아니라, 근본을 바꿔야 한다는 소신이다.  


김 전 의장은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물갈이하라고 했더니, 다 물고기만 갈아버려선 안 된다. 물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인물이 들어와도 정치판이 그대로면 결국 과거의 문제만 되풀이한다는 교훈이다.  


바꿔야 할 세가지 판도 제시했다. 헌법으로 상징되는 제도와 정치문화, 시민의식이다.

정치 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개헌을 필수이자 시작점으로 꼽았다. 김 전 의장은 “지금 헌법에는 권위주의적 장치가 있다. 민주헌법아니다”며 “제왕적 대통령제 같은 유신의 잔재가 있다. 이하 국회법, 정당법 모두 이를 따랐다”고 정치 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를 따라줄 문화도 정착돼야 한다. 정치인들의 사고방식 개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엉뚱한 것으로 의사진행발언을 이어가는 형식논리가 계속된다. 그러니 연말만 되면 의장은 방망이 치느라 바쁘다”며 “정치권엔 지금 심의란 기능이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 후배 의원이 법안을 찬성했기에 왜 찬성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기권이나 반대하면 기자들이 물어볼까 봐 그랬다고 했더라”며 정치 본연의 역활에 충실할 수 있는 문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단순한 법안 통과율, 또 각 정파간 기싸움이 전부인 지금의 정치 문화를, 법안과 제도에 대한 숙고와 심사 기능이라는 정치와 국회의 원 뜻으로 바꾸자는 조언이다. 


마지막으로 국민, 즉 유권자들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좋은 정치도 표가 오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왼쪽 아니면 오른쪽’이라는 오래된 폐단에 대해 김 전의장은 “역사로 말미암은 교육체계 때문에 그렇다”고 해석했다. 그는 “성리학 전통이 이어졌다. 이념은 목숨을 내놓고 지킬 신념이었다”며 “이후 한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가장 빈곤했던 나라가 잘사는 나라가 됐고, 장기집권 시대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지만, 그 사이 시민교육이 안 이뤄졌다. 급성장과 민주적 제도라는 양면이 순식간에 공존하니 중간이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민주정치의 필수인 타협 없이, 정반(正反)만 있고, 이는 결국 유권자와 국민들의 낡은 인식과 관습이 만든 결과라는 비판이다. 그는 “목표 중심, 성향 중심이다. 지금 입시제도도 그렇지 않느냐”며 “나도 후배들에게 이를 가르치거나 바꾸지 못했다. 우리 세대도 다 잘못”이라고 반성했다.  


백범 ‘사상적 관점’서만 봐선 안돼 


계파가 없다고 하면 선명성을 의심받는다. 그래서 일부는 우파로 일부는 좌파로 파악한다. 내년 서거 70주년이 되는 백범 김구 선생과 관련된 지금의 논쟁이 그렇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을 사상적으로 보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한국정치의 병폐인 계파, 진영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며 “백범 선생은 정확히 말하면 우익도 좌익도 아니다. 우에선 좌로, 좌에선 우로 본다. 어느 쪽에서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백범 선생의 그릇을 한쪽 면에서만 보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백범의 민족 ‘우리끼리 민족’ 아니다 


“오로지 독립이란 대의였다. 그 아래에서 파벌이나 계파는 없었다. 대한민국 정치도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은 희생을 각오했기에 대통령이 될 생각도 없었다”고 전했다. 우두머리가 되려 하지 않으니, 계파에 묻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의 민족주의를 서양의 내셔널리즘과 비교해선 안 된다”며 “선생이 말한 ‘민족’은 변질한 ‘우리 민족끼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미군 철수는 외치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그것은 민족에 사상을 붙인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의 소원’에서 가닥이 잡힌 민족주의는 개방형 민족주의였다”며 “민족만 뭉치자는 것이 아니라 민족으로 세계평화에 이바지하자는 것이다. 소위 ‘우리 민족끼리’와는 다른 것”이라고 오해를 바로잡았다.


“그때도 계파싸움이 잦았다. 밥 굶기를 밥 먹는 것처럼 했다. 그래서 싸웠던 것이다. 찢어지게 가난한데 10만원 떨어졌다면 다투는 건 당연했다”며 “그러나 잘 먹게 되면 10만원을 ‘네 것이다. 아니다, 네 것이다’로 해야 한다. 그때는 힘들어서 싸웠지만, 지금 그럴 필요는 없다”며 정치 문화의 바로잡기를 다시한 번 강조했다.  


최정호ㆍ홍태화 기자/th5@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2018-07-13 한국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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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상상력ㆍ패기로 무장한 젊은 피가 보수야당 부활의 관건”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출간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


“내년 백범 70주기, 일지 72주년

책임ㆍ헌신으로 살아온 그의 정신

여야 정치인 모두가 되새겨봤으면”

“자기 세력만 옳다는 논리로 갈등

지금의 진영정치로는 희망 없어

진영보다 가치 중시하는 정치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1일 오후 마포 사무실에서 가진 한국일보 이유식 고문과의 대담에서 "우리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백범의 희생과 헌신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며 “상상력과 패기로 무장한 젊은 피가 보수 야당 부활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2018-07-11(한국일보)


김형오 전 국회의장에게 요즘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지난 달 백범 서거 69주년에 즈음해 펴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에 대한 세간이 관심이 높은데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비상대책위원장 물망에 끊임없이 오르내려서다.


그는 2010년 6월 18대 국회 전반기 의장 임기를 마친 후 야인으로 돌아와 정치보다는 저술에 몰두해 왔다. 그동안 내놓은 책만 해도 '술탄과 황제' 등 여러 권이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다. 이런 와중에 그는 틈틈이 정치원로서 후배 정치인들에게, 또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그는 바른소리라고 했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김 전 의장에게 저술가와 정치인은 동전의 앞뒷면이다.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은 백범의 삶과 사상을 새롭게 해석한 그의 책이 나온 시점에, 새 리더십을 찾아 헤매는 한국당의 러브콜이 이어진 것이 참 묘하다. '벼랑에서 잡은 나뭇가지마저 놓아버리는' 백범의 결기가 지금 한국당에 꼭 필요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제의를 거절했다고 했다. 바닥에 떨어져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명망가를 얼굴 마담 삼아 이 궁지만 넘겨보자는 잔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3년째 백범선생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그를 지난 11일 오후 마포 사무실에서 만나 왜 지금 백범을 다시 불러냈는지, 길을 잃고 방황하는 한국당의 살 길은 뭔지 묻고 답했다.


-한문체로 된 백범일지를 한글로 풀어쓴 책이 1947년 처음 나온 뒤 지금까지 300종이 넘는 해석본이 다양한 내용과 형태로 출판됐다. 우리나라에선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백범일지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백범이 묻고 김구가 답하는 새로운 접근과 내용이라고 하지만 이 시점에서 왜 하필 백범인가. 


“책 서문에 자세히 썼지만 이 나라가 거저 생긴 게 아니라는 것,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과 아픔으로 일군 나라라는 것을 동시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백범일지는 일기(日記)가 아니라 일지(逸志), 즉 소소한 이야기다. 아들에게 전하는 유서 형식으로 ‘못난 아비의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아비 대신 훌륭한 사람을 찾아 스승으로 섬기라’는 뜻과 함께 그의 지고지순한 국가관과 민족애, 헌신적인 삶이 잘 나타나 있다. 세상의 어떤 회고록이나 자서전도 이 책의 솔직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울림이 더 크다. 2015년 기념사업회장을 맡은 이후 효창원의 백범 묘소와 동상 앞에서 수없이 그와 대화한 결과물이다.”


-최근 정치상황이나 정치리더십, 특히 지방선거 참패 이후 혼란과 갈등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유한국당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내년이면 백범 70주기이자 백범일지 출판 72주년이다. 평생을 책임과 헌신으로 살아온 백범의 정신과 자세를 오늘날 여야 정치인 모두가 되새겨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2500년 전 그리스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페리클레스는 정치리더의 4대 덕목으로 지식과 소통, 애국심과 도덕성을 강조했다. 백범이야말로 이런 덕목을 몸으로 실천했다. 특히 솔선수범에 근거한 애국심과 도덕성은 지금 우리 정치와 보수야당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제목을 단 이유 등 책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했지만 이미 많은 언론이 다룬 내용이어서 화제를 돌렸다. 김구의 책임과 헌신 리더십을 이 시대가 요구한다면 그 자신도 그런 요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판단에서다. 더구나 대혼란에 빠진 한국당은 그가 한때 몸담았고 국회의장의 명예까지 안겨줬던 정당의 후신 아닌가.


-한국당이 쇄신의 깃발을 들고 개과천선하겠다며 강호의 명의들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디어 차원의 비대위원장 후보를 마구잡이로 언급해 그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망신을 자초했다. 유력 후보로 계속 거론되고 구체적 제안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입장에서 이런 방만한 방식을 꼬집는다면.


“난 정계를 은퇴한 사람이고, 백범선생기념사업회를 마지막 봉사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후배들이 나를 찾아 역할을 해달라고 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누가 지휘봉을 잡느냐 혹은 메스를 쥐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의원들의 일치된 각오와 자세, 즉 나를 버려서라도 변화를 수용하고 보수의 새 미래를 여는 밀알이 되겠다는 폭넓은 공감대를 먼저 만들어야한다고. 또 말로만 반성을 외치며 이회창이니 이국종이니 명망있는 얼굴마담을 쫓아다니는 것은 ‘낚싯대로 사자를 사냥하겠다’는 심보이니 그만두라고. 솔직히 말해 내가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아니다. 지금 날보고 비대위원장 맡으라고? 한마디로 턱없는 소리다.”


-한국당은 궤멸 수준의 패배를 당하고도 왜 감동을 주는 정치를 못하나. 시대착오적인 친박-비박 싸움을 거듭하며 네탓 타령만 하는 한국당에게 희망이 있겠는가. 최근 한 토론회에서 한국당 중진들을 향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의 심정으로 깨끗이 던져라”고 했던데 어떤 맥락과 의도를 담은 충고인가.


“요술방망이를 가진 누군가 와서 금나와라 뚝딱 식으로 해주길 기대하지 말고 중진들이 앞장서 대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자리를 비켜달라는 것이다. 국민의 엄중한 심판은 복도에서 무릎 꿇는 참회 코스프레로 해소될 사안이 아니다. 혁신비대위가 필요한 위기상황이라면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반성과 살을 내주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한국당이 지금 그런가. 다음 총선까지 아직 2년 가까이 남았으니 이번 국면만 잘 모면하면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회주의적 현실도피적 행태가 더 판을 치는 형국 아닌가. 기득권을 누려온 중진들이 한국당의 존폐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 정치의 앞날을 내다보는 큰 눈을 가져야 답이 보인다. 불출마든 퇴진이든 죽을 각오로 임하면 반드시 살 길이 보이는 법이다.”


-같은 자리에서 초ㆍ재선들의 무사안일을 책망하며 “더 이상 위아래 눈치보지 말고 어떻게 몸을 던질 것인지 고민하고 실천해달라”고 주문했다. 당부하고 싶은 실천의 내용이 뭔가.


“2016년 4ㆍ13 총선에서 200석 운운하던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밀려 2당으로 몰락한 직후 초선 대상 연찬회에서 ‘무능하고 무기력한 당지도부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청와대의 공천 전횡으로 보수정당 사상 최악의 패배를 맛보는 동안 누구 하나 쓴소리한 적이 있느냐’고 질책하며 초선들이 앞장서 사나흘 철야토론하며 뼛속까지 반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후 어떻게 됐는가. 뭐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초선들부터 무리지어 친박 행세를 일삼고 취미삼아 정치를 하지 않았나. 낡고 늙은 이념에 물든 당 대표가 막말과 기행으로 당을 말아먹어도 차기 공천을 좇아 각자도생하지 않았는가. 박근혜 정부의 불행은 나이먹은 늙은이든, 애 늙은이든 잿밥에만 눈이 어두워 한국당을 농단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상력과 패기로 무장한 젊은 피가 보수야당 부활의 관건이다.”


-보수야당의 몰락을 초래한 배경에는 보수정당이 안보와 성장의 이데올로기에 의존해 너무 쉽게 정치를 해온 것도 있다고 본다. 보수세력이 시대와 세대가 바뀌고 사회의 의제와 가치가 변하는 것에 유연하고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우리 세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문제를 외면했다는 뜻이다. 선배 정치인들도 반성해야 하지 않나.


“3김 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우리 정치의 패턴은 보수 정치체제와 계보정치다. 그 계보정치가 지금은 진영정치로 퇴화했다. 자기세력만 옳다는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갈등의 정치로는 희망이 없다. 나를 포함한 선배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못한 결과지만, 이런 타성에 젖으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은 공멸이다. 보수정치 차원이 아니다. 이제야 말로 진영보다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 같은 보수가, 진보 같은 진보가 나와 한국 정치가 가야할 길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보수나 진보가 보다 분명한 개념을 세워야 한다. 완전히 바꿔야 할 계기를 국민들이 6ㆍ13에 메시지를 준 거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도 동시에 준 메시지라 본다."


-보수진영이 사람과 자원을 키우기보다 수십 년 동안 곳간에 있는 것만 빼먹으며 기득권만 누리다가 고립무원의 거지꼴 신세가 됐다. 1960년대 월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쇠락하던 미국 보수를 다시 세우고 레이건 시대에 꽃피운 ‘헤리티지 재단’ 같은 싱크탱크나 보수 아카데미를 통한 지속적인 인력충원의 필요성이 제기되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당장 새 기구를 만들기 어렵다면 당 산하의 여의도연구소를 활용할 수도 있다. 나는 정당이 국민 혈세인 국고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것을 오래 전부터 반대해왔다. 민간 후원금이나 당비로 운영되는 게 옳다. 다만 정책을 연구하는 조직이나 싱크탱크에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을 찬성한다. 당 외곽이나 대학 등에 보수의 이념과 전통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재단이나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독지가 그룹도 중요하다."


-영국 보수당이나 미국 공화당, 일본 자민당의 사례에서 한국당이 벤치마킹할 부분이 있겠는가.


"보수물결이 유럽을 휩쓸던 80년대 초 영국 보수당 등의 역사와 사례를 분석한 소책자를 낸 적 있다. '시대정신에 민감한 개혁과 끊임없는 자기 수혈'을 결론으로 적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흔히 보수라고 하면 퇴행과 정체, 기득권을 연상하는데, 안정적 개혁과 인재 존중이야말로 보수의 참모습이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 한국당은 보수가 아니라 남은 몇 푼에 집착하는 수구적 집단이다. 그라운드 제로까지 내려가 고민하고 공부하며 집을 다시 지어야 한다. 2020년 21대 총선까지 남은 1년 반 남짓한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찬란한 부활도 가능하고 참혹한 폭망도 가능하다."


-다시 한번 묻자. 한국당 비대위원장 맡는 것도 책임과 헌신인데.


"소를 물가까지 끌고갈 수는 있어도 강제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먼저 내 몫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이익집단엔 관심이 없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2018-07-13 한국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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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김형오 국회의장 


한국당, 물갈이 하랬더니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꾸려 해



 


백범 김구 선생의 살신성인의 자세와 희생·책임의 정신이 아쉽습니다.”

 

김형오(71) 전 국회의장은 지난 9자유한국당이 정말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다는 각오로 임할 때 필사즉생의 여지도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서울 마포구 개인연구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백범이 평생 마음에 새긴 경구 중 하나가 벼랑에서 나뭇가지를 잡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며 그 잡은 손마저 놓아버려야 장부라는 말이라며 지금 선거하면 한국당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하는 처절한 각오와 심정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9일 서울 마포구 개인연구실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자유한국당의 수습 움직임과 관련해 한국 정치사는 물갈이를 하라는 민심의 심판에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꾼 사례가 허다하다제도와 정치문화(행태), 행위자 모두 바꿔야 정치판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서상배 선임기자

 

김 전 의장은 6·13 지방선거 직후 한 토론회에서 한국당 참패 이유로 새로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죄 권력의 사유화에 침묵한 죄 계파 이익 챙기느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돌보지 않은 죄 집권여당에 제대로 싸우지도, 대안 제시도 못한 죄 교만과 오만, 막말과 품격 없는 행동으로 국민을 짜증 나게 한 죄 반성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죄 희망과 비전을 등한시한 죄 7가지를 꼽았다. 촌철살인 같은 정리에 지방선거에서 한국당 후보를 찍은 지지자는 물론 등을 돌린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당 한국당의 혁신을 바라는 많은 이들이 김 전 의장을 찾아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만큼의 식견과 경륜, 리더십, 무엇보다 망해가는 보수정당에 대한 애정을 갖춘 인사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매번 나는 아니다며 에둘러 고사의 뜻을 나타냈다고 했다. 왜일까. ‘정치 현안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싶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 김 전 의장을 백범(18791949) 서거 69주기에 맞춰 펴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아르테)를 핑계로 만났다.

 

김 전 의장은 백범 선생의 차남 김신 장군(19222016)의 요청으로 20157월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의 부제는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백범 김구의 생애와 사상이다. 백범이 1947년 펴낸 회고록·자서전 백범일지를 토대로 백범(白凡·평범한 사람)이 질문(Q)하면 김구 선생이 답(A)하고 김 전 의장이 추가 설명을 보태는(+) 형식이다. 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은 직후 요즘 같은 세상이야말로 백범 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대 아닌가요?”라는 출판사 대표 말에 용기를 내 내리 3년을 집필에 매달렸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가 피로 쓰여진 책이라고 부를 만큼 김구 선생의 삶이 여느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라고 강조했다. 김구 선생이 엄혹한 시대상황에 맞서 온몸을 던지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초지일관된 삶을 산 분이라고 소개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의 사상에 대해선 투철한 국가관과 불타는 동포애, 민족 중심의 평화주의라며 백범만큼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관된 분은 없다고 단언했다.

 

20세기 독립투사의 삶과 정신, 자세가 21세기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김 전 의장은 혼돈·혼미의 시대, 그 어느 때보다 영웅을 그리워하지만 더 이상의 영웅은 나올 수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개개인 모두가 스스로 영웅이 돼야 하는 시대, 특정 지도자가 끌어가는 게 아닌 우리 모두가 영웅적 자질과 품성을 갖고 영웅적 행동을 해야 하는 시대라며 김구 선생의 책임감과 희생, 헌신이 21세기 현대사회 영웅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대개 보수진영은 해방 이후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진보진영은 김구 선생을 꼽는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전신) 출신 국회의장으로서 백범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이번에 책까지 낸 까닭은.

 

김구 선생 같은 분을 보수, 진보와 같은 이분법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은 좀 시정이 돼야 할 것 같다. 백범이라는 사람의 일생일대 올곧은 삶을 당시와 오늘날 상황에 비춰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가 기본이 돼야 한다. 내가 김구 선생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엄혹한 상황 속에서 당신은 어떻게 온몸을 던져가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초지일관된 삶을 사셨을까 하는 점이다. 김구 선생의 삶과 정신을 무슨 이념이나 사상에 따라 세분화하는 것은 조금 사치스럽고 한가하다는 느낌이 든다.”

  



기자 출신으로 그간 술탄과 황제’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등 많은 책을 냈다. 이번 책도 술술 쓰셨겠다.

 

기념사업협회장 직을 맡고 난 뒤 얼마 안 있어 술탄과 황제를 펴낸 출판사 대표가 김구 선생에 관한 기획안을 갖고 찾아왔다. 그런데 내가 백범 전문가도 아니고, 명색이 백범기념사업협회장인데 당신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아 단칼에 거절했다. 그런데 대표가 요즘 같은 시대에 김구 선생을 제대로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더라. 마음이 흔들려 틈만 나면 선생 묘소를 찾아가고 백범일지를 들춰가며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되물었다. 결국 선생의 민족사랑이나 리더십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

 

예비독자들, 특히 젊은세대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면.

 

안중근 의사 집안과의 극적인 만남, 김구 선생의 멘토고능선과의 교유, 애절한 가족사 등 많고 많다. 그중 백미는 백범과 이봉창·윤봉길 의사의 관계를 묘사한 부분이다. 이 나라가 거저 생긴 나라가 아니라 우리 선열들의 피로 이뤄진 나라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당신들의 뜨거운 애국혼에 나 스스로 글을 쓰면서 울기도 했다. 오늘날 고뇌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자세,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자유한국당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그래도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를 이끌어온 한 축인데 요즘 보면 비판을 넘어 조롱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의장도 한국당의 7가지 죄로 알려진 강연도 하시고 한국당 비대위원장 제안도 받으신 걸로 알고 있다.

 

그날 강연의 핵심은 한국당 비판이라기보다는 이 나라 정치판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사실 더 (세게) 이야기하려다가 그래도 전에 몸담았던 곳인데, 너무 짓밟으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차마 더 하지 못했다. 이번에 기념사업협회장 맡으면서 다시는 정치에 복귀하지 않는다고 다짐을 했다. 이런 전제하에 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자면 요즘은 정치가 사라진 것 같다. 정치라는 게 없다. 가만히 보면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자기들 선거(총선)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선 안 된다. 물갈이를 하랬더니 물은 안 갈고 고기만 바꾸려는 꼴이다.”



 

정치판을 갈아야 한다고 했는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다른 야당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여야 하나씩만 지적하자면 여당한테서는 국정주도 정당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민주당이 지금까지 앞장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책을) 이끌어나간 게 뭐가 있으며 청와대의 무리한 정책추진에 대해 제동을 걸어본 적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야당은 제발 국회 보이콧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슨 틈만 나면 (요즘은 국회 본청 앞 계단인 것 같지만) 국회 바깥으로 뛰쳐나가는데 가관이다. 국회에서 36개월 치열하게 싸우고 토론한 적 있는가. ‘일하는 국회 좀 만들어달라는 대통령·정부 비판에 일하는 국회는 정부 입맛대로 법률안을 통과시켜주는 게 아니다고 자신있게 반박할 수 있는 야당 모습을 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었다. 나이로는 종심(從心·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이다. 정치권이나 인생 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조선 세종대왕이 재위 7년 어전회의에서 했던 말을 소개하고 싶다. ‘위국지도(爲國之道) 막여시신(莫如示信)’.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국민의 신뢰를 얻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민들께 우리를 믿어달라고 호소하기에 앞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나이 얘긴데, 일흔이 되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건 공자 같은 성인군자뿐이다. 나 같은 사람은 70이 아니라 80이 되어도 법도에 어긋날지, 괜찮을지 항상 경계하고 삼가며 살아가야 한다. 됐제?”

 

대담=송민섭 정치부 차장

 

정리=이우중 기자 stsong@segye.com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경남 고성(71) 부산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석사, 경남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기자 국회의원 5(14~18)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내대표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부산대 석좌교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2018-07-11 세계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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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선생이 타던 차와 동일한 차종(뷰익 로드마스터) 앞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대비에 읽으면 좋은 전기·자서전은 어떤 게 있을까. 스티브 잡스 전기?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찾는다면,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아르테·사진)가 있다. 김형오(70) 전 국회의장이 알기 쉽게 풀어쓴 백범일지. 그는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출간


3일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만난 김형오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5·6차 산업혁명에서도 그 기본 중심은 인간이다. 백범은 솔선수범해서 희생과 책임의 리더십을 다했다. 4차 산업혁명에서도 적당히 해서 될 일은 없다.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가. 백범의 투철하고 철저한 애국혼·정신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다독가인 김 회장은 백범일지에 대해 이처럼 솔직한 회고록·자서전이 있을까. 세계 유명한 사람들의 회고록·자서전 어느 것을 보더라도 이만큼 솔직하고 진정성을 담은 경우는 참 드물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김 회장이 던지려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우리나라는 거저 생긴 게 아니다. 수많은 선열이 피와 땀과 눈물과 목숨을 바친 끝에 탄생시킨 나라다. 우리가 이 나라를 위해 좀 더 경건하고 겸손하게 공동체에서 할 일을 찾는 게 이 시점에서 너무나 절실하다.”

많은 정치인, 명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혁명가·독립운동가 김구(1876~1949)를 꼽곤 한다. ‘별로 욕먹을 일 없는무난한 인물이라 그럴까. 아니면 진심으로 존경하기 때문일까. 이에 대해 김 회장은 백범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한, 시종일관한 삶을 산 드문 분이다. 그래서 존경을 받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김 회장은 김구의 혁명가 리더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김구 선생에게 목숨을 맡기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 일제의 촘촘한 첩보망에 발각돼 거사 직전에 붙잡혔다. 거사를 감행한 경우에도 윤봉길·이봉창 의사만큼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형장의 이슬이나 모진 고문 끝에 돌아가셨다. 백범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는가. 지위를 주나, 명예를 주나 황금을 주나. 백범을 신뢰하고 존경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김 회장은 가능하면 이 책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고 밝혔다. 저작권이 풀려 이미 백범일지류만 300종가량 된다. “뭘 잘못 보태거나 해서 백범 선생에게 엄청난 누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과 부담 때문에 지난 3년 동안 효창원 백범 묘소와 백범김구기념관에 있는 백옥으로 만든 좌상을 자주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백범의 뜻과 정신을 알릴 필요가 있다. 이런 시대일수록 백범의 정신이 좀 더 많이 국민에게 전파되고 투영되면 좋지 않겠느냐는 명분을 머리와 가슴 속에서 떨쳐버릴 수 없어 집필에 착수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라는 책 제목이 좀 아리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자문자답했다는 뜻이 아니다. 책 제목의 백범은 보통 사람을 의미한다. 김형오 저자가 보통사람을 대표해 물었다는 뜻. 내년 2019년은 백범 서거 70주년이다


·사진=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2018-07-05 중앙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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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답식으로 서술한 김구의 삶·사상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 김형오 엮음 / 아르테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백범일지를 문답식 구성으로 풀어냈다. 저자는 지난 3년간 매일 효창원 백범 묘소와 백범 좌상을 마주하며 김구의 삶과 사상, 시대와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책은 그 결과물로 전문 연구가가 아닌 보통사람의 마음으로 김구의 생애와 생각을 진솔하게 바라본다. ‘보통사람을 가리키는 김구의 호 백범(白凡)처럼, ‘보통사람들의 질문에 김구가 직접 답하는 Q & A 형식을 취한다. 여기에 저자가 시대 상황 등에 대한 추가 설명을 더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김구의 인간적인 모습도 조명한다. 김 전 의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백범은 더욱 그리운 이름, 절실해지는 얼굴이다. 늘 푸르게 깨어 있고 서늘하게 살아 숨 쉬는 얼과 혼이라며 이 책은 그런 선생과 백범일지에 바치는 헌사라고 밝혔다.

 

저자는 김구를 무작정 존경하거나 따르기보다는 배워야 할 점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을 구분해 삶의 귀감으로 삼으라고 조언한다. 412, 19800.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2018-06-29 문화일보] 기사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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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현식 2018.06.30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 입장엔 테러리스트 맞구만....
    안중근도 테러리스트고
    따질려면 전주이씨 종친회를 욕해야지.....
    나라 팔아 먹고 그렇게 됐으니....



<2018-06-29 부산일보>

[잠깐 읽기] 백범의 길:조국의 산하를 걷다 (강원·충청·전라·경상 편)/김상기 외



김구 선생을 찾아서


백태현 기자

 

백범 연구자들이 권역을 나눠 김구의 흔적과 체취가 서려 있는 곳을 찾아 그의 인생 역정을 더듬은 전기이자 답사기가 나왔다. 강원·충청·전라·경상 지역을 다루는 2권에서는 무주와 김천에 남은 흔적을 통해 유완무, 이시발, 성태영 등이 김구를 민족 지사로 키우기 위해 비밀리에 회동을 벌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김구가 '애기 접주'라는 칭호로 불리며 활약하다가 정부의 탄압으로 피신하게 된 마곡사에서 스님이 되고자 했지만 결국 속세로 돌아온 사연도 소개된다. 특히 환국 후 한국독립당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시작한 지방 순회의 길은 그가 젊었을 적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보은의 길로 이어지는데, 순천 보성 함평 김제 전주가 그 지역들이다.

부산 전재민수용소, 충무공시비, 촉석루 등 항일 정신이 깃든 장소를 방문한 김구의 발걸음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경기·인천 지역을 다룬 1권은 별권으로 출간됐다. 김상기 신복룡 도진순 한규무 김용달 지음/아르테/292/25000


백태현 선임기자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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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9 광주일보>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백범의 길 (1·2)

행동하는 이상주의자·꿈꾸는 리얼리스트 김구의 삶

김명섭 외 지음



백범 선생 서거 70주기,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투옥 생활 서대문감옥·동학 활동하다 마곡사 피신 이야기 등

역사·정치 분야 전문가가 김구 발자취 찾아 떠난 여행기

 

 

김구가 인천감옥에서 탈옥해 수십 일 동안 은거했던 보성 쇠실마을에 있는 김광언 가옥.

 

우리가 그토록 장소에 주목한 것은 역사가에게는 현장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현장은 영감을 준다. 탐방객들 사이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유행하지만, 그보다는 사랑하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고 느끼기에, 우리는 김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발자취도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서문 중에서)

 

올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또한 백범 김구 선생(1876~1949) 서거 7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억압과 설움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에게 김구는 독립운동의 대표이자 상징이었다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통일에 대한 염원이 확산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으로 평화국면이 전개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남북 분단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스스로 민족의 문지기가 되고자 했던 백범 김구는 “18세에 붓을 던진이후 시종 유랑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완전한 자주독립을 소원하던 그의 발길은 조국의 산하 구석구석에 미쳤고 중국 대륙에까지 이어졌다.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역사와 정치 분야 전문가들이 김구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역사 여행기 백범의 길’(2)을 펴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가 기획하고 김명섭 연세대 교수,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 김상기 충남대 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등 관련 전문가 10인이 필자로 참여했다. ‘조국의 산하를 걷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책은 행동하는 이상주의자이며 꿈꾸는 리얼리스트였던 김구의 전기이자 답사기이다. 서울·경기·인천을 아우르는 1권과 강원·충청·전라·경상을 포괄하는 2권으로 구성돼 있다. 곳곳에서 백정범부(白丁凡夫·평범한 백성)의 삶을 지향하고 민족의 독립에 헌신했던 인간 김구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발간사에서 멀고도 험난한 노정이었다. 길도, 안내인도, 등불도 없었다. 백범은 스스로 길을 내고 등불을 밝히며 고단한 발걸음을 내디뎠다우리는 그 길을 되밟기로 했다. 발자취를 더듬고 흔적을 헤아리며 백범의 숨결과 체혼을 느끼려 했다고 밝혔다


1권에서는 서울과 인천 그리고 경기 지역에서 찾을 수 있는 김구의 흔적을 다루었다. 서울 근교와 투옥생활을 했던 인천감옥과 서대문감옥도 살폈다. 김구의 삶에서 1945년 환국 이후의 시기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맞게 된 미소 양국의 대립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애썼지만 대의를 이루지 못했다.


2권에서는 동학에 심취해 활약하다가 마곡사 등으로 피신했던 이야기, 도움을 받았던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보은의 길 등 인생 역정을 돌아보는 여정을 담았다. 순천, 보성, 함평, 김제, 전주에서의 여정이 그러한 내용이다.

“‘백범일지를 읽다 보면 감동적인 장면이 한둘이 아니지만, 필자는 이대목이 가장 인상적이다. 40여 일 남짓 머물다 떠나는 생면부지 낯선 타지인에게 정성스럽게 만든 붓 주머니를 이별의 선물로 건네준 선씨 부부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22세 꽃다운 나이 때 만난 동갑내기들이 48년이 지난 70대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났을 장면이 떠올라서다.” (‘보성 김광언 가옥-쇠실마을에서 추억에 잠기고’)

 

/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소설가인 박성천기자는 전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남대에 출강중이며 소설집 메스를 드는 시간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광주일보 기사 ☞ 바로가기 클릭



<2018-06-29 한겨레>


백범의 길-조국의 산하를 걷다 백범 김구 선생의 70주기인 내년을 앞두고 기념사업협회의 기획으로, 신복룡, 도진순 등 8명의 정치·역사학자들이 전국을 다니며 백범의 흔적을 쫓은 답사기가 두 권의 책으로 나왔다. 김형오 협회장(전 국회의장)<백범일지>를 문답식으로 풀어쓴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도 함께 출간됐다. /아르테·각 권 25천원.



한겨레 신문 기사 ☞ 바로가기 클릭



<2018-06-29 영남일보>


남북 평화 모드재조명되는 백범 선생의 삶과 사상



김구 선생 관련 다양한 책 잇단 출간

지난 26일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인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일이었다. 남북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시기에 자주 독립을 주장했던 김구 선생의 삶과 사상이 재조명되고 있다. 출판계에서도 김구 선생을 주제로 한 책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김구 백범일지 나의 소원 자서전’(부크크)은 백범 김구 탄생 142주년을 기념해 나온 책이다. 김구 선생이 직접 쓴 백범일지가 담겨 있다. 김구 선생의 어릴 적 이야기와 기구한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3·1운동 이야기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김구 선생의 독립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는 나의 소원역시 볼 수 있다.

 

역사학자 박성순이 쓴 김구 선생이 얘기한 깨어있는 시민’(백두문화재연구원)은 김구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독립운동가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김구 선생의 애국정신, 민주주의 정신, 계몽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김구 선생의 삶을 통해 2018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진정으로 가져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아르테)는 김형오가 쓴 책으로 백범일지를 문답식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김구의 호 백범(白凡)평범한 백성이란 뜻이다. ‘보통 사람을 말한다. 이 책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김구 선생을 바라본다. ‘어떻게 삶, 어떻게 죽을 것인가’ ‘백범은 왜 백범인가등 백범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 그리고 탈옥수 시절, 끝으로 광복을 맞은 시절까지 백범의 일대기를 60개의 질문과 답변으로 구성했다.

 

백범의 길:조국의 산하를 걷다’(아르테)<>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가 펴낸 책이다. 김구 선생과 관련한 역사학계와 정치학계 연구자 8명이 참여했다. 2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전국 팔도에 숨어 있는 백범의 흔적을 찾고 있다. 19세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분노해 일본인 쓰치다를 살해한 후 인천감옥에서 수형 생활을 한 이야기와 한국독립당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지방 순회 길을 다녔던 이야기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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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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