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로그 | 미디어로그 | 방명록  


대학에 들어갈 때, 친척분 명의로 휴대전화를 신청하여 사용하다가, 군대를 전역하고 신규가입을 했습니다. 원하는 번호는 제 생년월일을 조합한 숫자로 신청했습니다.

010-XXXX-8XXX

하지만, 그 번호는 이미 누군가 사용중이여서 앞자리에 1을 더한 숫자로 신규휴대전화번호를 발급받았습니다.

010-XXXX-9XXX



그 때는 몰랐습니다...

이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번호가 예전에 누가 쓰던 번호였는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많이 왔는데, "번호가 바뀌었습니다"라고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동철(가명)인데. 보고 싶다."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동철(가명)이는 군대에서 악마같던 동갑내기 선임이었습니다.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선임의 이름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던 때였거든요.

물론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이 자식이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라고 생각하다가,
'아, 나는 이제 민간인이야. 이 자식한테 꿀릴것 없어!' 라고 마음을 다잡고 매정한 답문을 보냈습니다.

"난 너 별로 안보고 싶은데.."

"난 너 보고싶은데, 사진 한장만 보내주면 안돼?"

"내 사진? 내 사진을 왜?"

"보고 싶어서ㅋㅋㅋ"

"싫어. 너가 날 왜 보고싶어?"

"사실 나 너 좋아해..."

"헉... 난 남자에 관심없어."

"미안해. 내가 이랬다고 어색해지는건 아니지?"

"흐..괜찮아. 민우(가명, 후임) 이번달 전역하면 한번 다같이 보자."

"혜영(가명)이 번호 아니예요?"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XX년 XX월에 전역한 동철병장님 아니세요?"

"죄송합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이를 통해 알게 된 사실.

이전에 내 번호를 사용하던 사람은...

1. 번호의 조합으로 보아 생일이 비슷한 10살 어린 여학생

2. 이름은 혜영(가명).
3. 남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음.


그 이후에 비슷한 문자를 다시 한번 받게 되었습니다.

"안녕? O고등학교 2학년 현준(가명)이라고 해. 축제때 동아리 방명록에 남긴 번호보고 연락하는거야. 괜찮다면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데."

이럴수가!!!
O고등학교는 제 모교였습니다.
저는 후배에게 친절한 답문을 보냈습니다.

"현준학생, 안녕? 나는 O고 XX회 졸업생 맹태라고 해. 번호가 바뀌었는데 혜영학생 찾는 연락이 많이오네."

"그리고 주변에 이 번호 연락하는 친구들 있으면 번호 바뀌었다고 좀 전해줘."

"앗, 선배님. 죄송합니다.;;;;"

"아냐, 죄송하긴.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 공부 열심히 하고~"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 후로 연락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잊을만하면 가끔씩 연락이 오더라구요.
"번호가 바뀌었으니, 주변에 널리 좀 알려주세요"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저..예전에 이 번호 쓰던 사람인데요."

전 저도 모르게 "혜영아!"라고 외칠뻔 했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제가 번호 바꿨는데, 친구들이 이 번호로 연락했다가 혼났다고 해서요.."

"아...!" (혼낸적은 없는데..-_-;;;)

"죄송하다고 연락드렸어요. 귀찮으셨을텐데 전화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구요."

"아...아니예요. ^_^;;;"

그 후로도 그 여학생을 찾는 전화가 가끔 오긴 했지만, 몇년이 지난 지금은 스팸문자나 광고성 전화만 많이 오고 있습니다. ^^;;;

동철학생이나 현준학생, 혜영학생(모두 가명) 모두 지금쯤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텐데.
현준학생은 혜영학생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싶어하던 꿈(?)을 이루었는지, 궁금하네요.

Posted by 맹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조재진 2010.05.25 0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밌네요. ㅋㅋㅋ
    만약 정말로 군대 선임이 그러셨던 거라면... ㅎ_ㅎ

    • BlogIcon 맹태 2010.05.25 0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아득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날 좋아해서 그렇게 괴롭혔던건가??' 라는 생각부터...ㅋㅋㅋㅋ머리속이 복잡했지요.ㅋㅋ
      다행히 그 선임도 전형적인 남자여서 지금은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답니다..^^;;

  2. ㅋㅋㅋ 2010.05.25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 재밌어요.ㅋㅋㅋㅋㅋㅋ
    우연히 이름이 같으니깐 더 재밌는 상황이 되었네요.ㅋㅋㅋ

  3. 서성 2010.06.16 16: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ㅋㅋ
    우연히 들어왔다가 재밌는글 잘 읽고갑니다!
    그나저나 굉장한 우연이네요ㅎㅎ

  4. 박선혁 2010.07.31 1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에피소드 잘 보고 갑니다 ㅎㅎ



누구나 살다보면 절망의 끝에 서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가능성은 열려있습니다.

못 믿으시겠다구요? 지금의 주인공을 만나본 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배영수


2000년대 중반에 리그를 제패하던 에이스는 어느 날 오른쪽 팔꿈치 인대 손상으로 수술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술을 맡은 미국 의사는 "어떻게 인대가 이 정도로 손상될 만큼 몸을 내버려두었냐?"며 자신이 여태까지 수술한 환자 중 가장 상태가 안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수술이 결정되고 여러 단계를 밟아가려던 차에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배영수의 간 수치가 높아서 수술이 미뤄졌던 것이죠. 그 뿐이 아니라 그는 원래 발목도 좋지 않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정말 설상가상의 지경에 이른 것이죠.

배영수는 리그를 호령하던 최고 에이스의 모습은 고사하고, 졸지에 선수생명의 갈림길에 서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우여곡절 끝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 배영수의 팔꿈치 수술 자국(좌)과 팔꿈치에서 나온 뼈조각(우)


흔히 수술 후 오랜 시간의 재활은 도를 닦는 것에 비유합니다. 특히 선수들의 재활은 그 성공 여부가 보장되지 않은 기약 없는 일이거니와 재활을 한다고 해서 원래의 몸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보장이 없기에 선수들에 있어서 재활은 끝을 모를 사막에 선 것과 같습니다.

더구나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게 되면, 처음에 팔이 제대로 펴지지 않습니다. 남의 팔 같은 자기 팔을 갖고 끊임없이 통증과 씨름하며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선수로서 뛰어볼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죠.

대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선수들은 6개월 ~ 1년반 가량 재활의 시간을 갖고, 기량 회복까지 2~3년의 과도기를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얻는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배영수도 재활 후 공을 던지기 시작했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기량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부 운이 좋은 선수들의 경우에는 수술을 받으면 오히려 더 빠른 공을 던질 수 있기도 한데, 배영수는 수술받기 전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기에 회복하는 것조차 불투명했죠.

그런 그가 작년에 마음을 먹고 공을 던졌지만 그는 단 1승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리그에서 2번째로 많은 패배(12패)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두고 많은 팬들은 "이제 배영수는 갔어. 예전 배영수는 없어."라고 말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랬던 그가 투구패턴과 구종개발에 힘 쓴 끝에 3월 31일 광주 기아전에서 344일만에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승리를 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보다는 발전한 투구내용을 선보였기에 다시 일말의 희망을 선사한 것이죠.

여전히 많은 고비가 남아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든 희망은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엄정욱


2005년 8월 21일 현대전 구원승 이후 1694일 만에 승리
2004년 8월 10일 현대전 이후 2070일 만의 선발승


이 기록의 주인공이 누구냐구요? 바로 엄정욱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비공인 최고 강속구 신기록을 세웠던 주인공이죠.

엄정욱은 타고나야만 누릴 수 있는 강속구 투수였기에 많은 야구팬들이 그에 대해 높은 관심을 두었고, 언론들도 '앞으로 그가 어떤 투수가 될 것인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오히려 그는 자꾸 제자리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한 때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아무렇지 않게 던졌던 그에게도 부상이라는 악마가 찾아왔습니다. 2006년 어깨 수술, 2007년 팔꿈치 수술의 과정을 거쳤지만 2009년까지 희망, 재기라는 단어는 그의 사전에 등재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만년 유망주로 불린데다 부상으로 팀에서 이탈되어버리자, 팬들은 그에 대해 기대하는 일도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점차 팬들의 기억에서도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비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그랬던 그가 올 시즌 최고의 투수조련사 김성근 감독과 뜻을 모은 뒤,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성숙해진 엄정욱으로 거듭나려 하고 있습니다. 그 결실이 지난 11일 넥센전에서 승리(선발승)로 이어진 것이죠. 여러 투수들이 빠진 SK로서는 천군만마를 얻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더구나 최근 몇 년간 김광현을 포함한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 강속구 투수가 많지 않았던 SK였기에 '불 같은 공'을 뿌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속이 뻥 뚫린 듯 시원시원한 느낌을 받은 팬들도 많이 늘어났을 겁니다. 그의 복귀가 반가운 이유입니다.



김광삼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습니다.

안 해 본 게 없었습니다. 그는 투수였지만 공격에선 타자도 하고, 수비에선 야수로도 뛰었습니다. 투수로서 주로 1군에만 있었는데, 야수가 되고 나니 2군에만 있게 되었습니다.

김광삼의 이야기입니다. 신일고 출신의 김광삼은 커브와 슬라이더가 좋은 전도유망한 투수였습니다. 일찍 군대도 다녀와 다른 선수들만큼 군복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지만, 10승 투수라는 벽을 넘는데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7~8승에 전전하며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한 그는 결국 야수의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외야수로 뛸 무렵 엘지의 2군 홈구장인 구리구장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초구, 2구를 좋아하는 적극적인 타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투수로서 가진 재주가 아까웠기 때문에 방망이를 든 그의 모습은 왠지 어색해보였습니다.

그런 그가 다시 마운드로 돌아왔습니다. 과거에 비해 그의 공은 아직 무디고 약해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다짐과 집념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보였습니다.

'내가 뛰는 팀을 일으켜야 겠다'는 모습에서 그는 분명 과거와는 달라보였습니다. 7년 동안 가을 잔치를 밟아보지 못했던 팀이었기에, 더구나 리그를 호령하고 있는 잠실 라이벌인 두산에게 밀릴 수 없었기에 그의 투구는 진지했습니다.

그의 혼신을 다한 역투에 동료 선수들도 많은 득점으로 화답했고, 2005년 9월8일 잠실 KIA전 이후 무려 1676일만에 선발투수로 승리하는 감격을 누렸습니다.

개인적인 목표를 묻는 중계진들의 물음에 그는 "올 시즌은 100이닝 이상을 던져서 팀에 도움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여느 투수들 같으면 몇 승을 따내겠다고 호기를 부릴 터이지만 그는 팀에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것 같았습니다.

갈 길이 멀어보이지만, 괜찮습니다. 희망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으니까요.





스포츠는 살아있는 감동을 선사합니다. 꾸밈 없는 그대로의 모습이 팬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죠.

"더 이상 안 돼", "도저히 못하겠다"

이런 마음이 들 때, 셀 수 없는 여러 날 동안 눈물을 삼키며 절망의 터널 속에서 희망의 빛을 잡으려고 뛰어든 이들을 한 번만 떠올려보시길.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너서미 2010.04.26 1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절망의 끝에서 살아돌아오는 선수들을 보면
    정말 스포츠는 감동인 것 같습니다.

  2. BlogIcon www.bsfmusic.fr 2015.04.10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수술을 맡은 미국 의사는 "어떻게 인대가 이 정도로 손상될 만큼 몸을 내버려두었냐?"며 자신이 여태까지 수술한 환자 중 가장 상태가 안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야구 속담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좌완 강속구 투수가 있다면 지옥에서라도 데려와라"



그만큼 왼손 강속구 투수는 희소하면서도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동국대 졸업반일 당시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서승화는 여러 곳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는 미국 진출과 한국 구단 입단을 저울질하다가 결국 계약금 5억을 받고 LG 유니폼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입단 후 그의 인생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국민타자 이승엽과의 주먹다짐, 윤재국의 치명적인 부상, 그리고 몇 차례의 빈볼 시비(전상열, 김재걸...) 등에 휘말리며 '그라운드의 악동'으로 낙인되었고, 기량을 꽃 피우기도 전에 손가락질부터 받는 불운을 겪게 되었죠.

(작년에도 2군에서 '작은 이병규'와의 갈등으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잊혀질 만하면 터지는 구설수로 고생한데다 2002~2004년 3년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던졌지만 말 그대로 '공 던지는 것' 이상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거액을 받고 입단한 대형 유망주답게 상대를 제압하는 투구를 꾸준히 펼치지 못했으니까요.



2005년부터는 이렇다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가 공익근무 등으로 자숙의 시간을 보낸 뒤, 작년쯤 본격적으로 투수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LG에 입단할 당시 감독이었던 현 SK 김성근 감독은 "서승화는 과거 해태의 김정수를 연상시킬 만큼 팔 동작이 부드러운데다 투구시 팔 각도를 봤을 때 좌타자들이 등 뒤에서 공이 날아오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그를 상대하는 좌타자들이 고생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요즈음에 와서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어제 경기 하이라이트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서승화의 투구에 두산 좌타자들이 엉덩이가 빠진 채, 타격하는 현상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 두산의 라인업에서는 1~4번인 이종욱, 오재원, 이성열, 김현수가 모두 좌타자였고, 그 뒤의 7번 유재웅까지 더하면 모두 좌타자가 5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좌타자들을 상대로 서승화는 단 1개의 안타만 허락했습니다. 그 안타조차도 이종욱이 간신히 갖다 맞힌 타구였죠. 특히나 두산 입장에서는 1~4번이 봉쇄되니 공격에서 꽁꽁 묶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서승화의 두산전 호투는 갑작스러웠던 일은 아닙니다. 작년 8월 18일 두산전에서 6 1/3이닝 3실점(2자책)의 성적을 거둔 바 있기 때문이죠.

그 당시에도 서승화는 6회까지는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7회에 들어 그는 체력이 떨어지며 한계투구수에 다다르자 김동주에게 솔로포를 맞은 뒤, 2명의 주자를 두고 내려왔는데 후속투수들이 제대로 막아주지 못해서 자책점이 늘어나게 된 것이었죠.

경력이 일천한 만년 유망주가 현재 승승장구로 1위를 달리는 두산을 상대로 5이닝 1실점(5회까지는 무실점)을 펼쳤다는 건 대단한 활약입니다. 더구나 라이벌 팀인 LG로서는 선발투수진의 조각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 셈입니다.

두산 좌타선을 꽁꽁 묶은 서승화가 다른 팀을 상대로는 어떤 모습을 보이며 맹위를 떨칠 지 기대해봅니다. 특히 좌타자에게 어떤 투수로 기억될 지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더불어 그 동안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기 쉽지 않겠지만 야유만 받던 그에게도 변화의 시간이 다가오길 기대합니다.

비록 이제 시작이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식코 2010.04.11 0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 이미지가 각인되면 좀처럼 바꾸기가 힘들지요..서승화는 너무 집중적으로 문제를 많이 일으킨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한게 사실입니다.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 BlogIcon 칸타타~ 2010.04.11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대로 한 번 찍히면 이미지를 바꾸기 어렵습니다.
      서승화는 그라운드에서 전과(?)가 많은 선수라
      과거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출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그렇지만 한 인생을 보면 계속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기에
      야구를 잘하면서 개과천선하길 바라는 거죠.

  2. 스크 2010.04.11 2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성근의 판단은 맞았다.

  3. ㅁㄴㅇ 2010.04.11 2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에 서승화 선수 잘 모르고, 이승엽 선수랑 싸웠을 때는 그냥 승화 선수 욕만했었는데,
    알고보니, 좀 운도 없었고, 촉망받는 선수였다고 하더군요.
    여로모로 아까운 선순데, 좀 잘됬으면 좋겠어염

  4. BlogIcon www.lancelpascherfr.fr 2015.04.10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수술을 맡은 미국 의사는 "어떻게 인대가 이 정도로 손상될 만큼 몸을 내버려두었냐?"며 자신이 여태까지 수술한 환자 중 가장 상태가 안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이기고도 진 게임"

전반전 41분까지 3:0으로 앞서 있던 맨유는 그때까지 1~2차전 득점 합계 4:2의 우위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뮌헨의 거센 추격에 발목이 잡혀 4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바르셀로나, 인터밀란과 함께 강력한 우승후보에 올라있던 맨유가 독일 명문 뮌헨를 상대로 1승 1패에 득점 합계 4:4로 같은 입장이 되었으나,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원정 경기 2골을 넣은 뮌헨이 1골에 그친 맨유를 제치고 준결승전에 오르게 됐습니다.




출발이 좋았던 맨유


홈 경기에 강한 맨유는 출발은 좋았습니다. 이번에도 맨유의 첫 골은 빠른 시간에 터졌습니다. 전반 3분경 하파엘의 긴 패스를 받은 루니가 깁슨에게 논스톱으로 건네줬고, 이 공을 받은 깁슨이 뒷걸음질치는 뮌헨의 수비수 3명 사이로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뮌헨 부트 골키퍼가 뒤늦게 손을 내밀었으나 이미 공은 골망을 통과하고 난 뒤였죠.

추가골이 터지는데도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4분 뒤인 전반 7분에 발렌시아가 오른쪽 측면에서 바드스투버와의 1:1 대결에서 날카롭게 찌른 크로스를 골문으로 쇄도한 나니가 절묘한 오른발 힐킥으로 골을 연결시켰습니다.

맨유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수비 불안에 허덕이던 뮌헨은 설상가상의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나니가 뮌헨 진영을 유린했습니다. 전반 41분경 하파엘의 스로인을 받은 발렌시아가 개인기로 오른쪽 측면을 뚫어낸 뒤 빠른 패스를 찔러넣었고 루니가 이 패스를 흘린 사이 기다리고 있던 나니가 무인지경 속에 추가골을 넣었던 것이죠. 그 순간 '맨유의 4강 진출이 유력해지는가?' 싶었습니다. 

이렇게 맨유가 3골을 기록하며 앞서가는 동안, 뮌헨은 주득점원인 로베리(로벤 + 리베리)가 맨유의 수비진에 막혀 뚜렷한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무서운 뮌헨의 뒷심


그러나 뮌헨에겐 무서운 뒷심이 있었습니다. 1차전에서도 선제골을 내주고 역전을 시켰듯이 2차전에서도 뮌헨은 0:3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만회골이 터진 것이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맨유는 추격의 빌미를 내준 것이 통한의 결과를 낳은 신호탄이 되었죠.

전반 43분 슈바인슈타이거의 긴 패스를 받은 뮬러가 헤딩으로 울리치에게 패스해줬고, 이 공을 받은 울리치가 캐릭과의 몸싸움에서 이긴 뒤, 사각에서 왼발로 꺾어찬 것이 반전의 서막을 알리는 골로 이어졌습니다. 맨유 입장에서는 3:0의 점수차가 부른 방심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전반전에 부진했던 뮬러 대신 후반전에 고메즈를 기용한 뒤, 리베리가 점차 살아나자 뮌헨에겐 비로소 호재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전반전에 이미 한 차례 경고를 받은 하파엘이 돌파하던 리베리를 저지하려다 다시 경고를 받아 경고누적으로 퇴장을 당했던 것이죠. 이렇게 숫적 우세를 점하기 시작한 뮌헨은 반전의 자신감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차전에 뮌헨이 리베리의 프리킥으로 반전의 발판을 만들고, 울리치가 역전드라마를 썼다면, 2차전은 그 반대였습니다. 울리치가 0:3으로 뒤진 전반 43분에 만회골을 터뜨리자, 후반 29분에 로베리(로벤 + 리베리)가 합작하여 팀을 구원해냈습니다.

특히 2번째 골은 그야말로 그림과 같았습니다. 코너킥을 맡은 리베리가 양 선수가 밀집된 곳 뒷쪽으로 크게 그리는 예상 밖의 크로스를 올렸고, 약속한 듯 기다리고 있던 로벤은 저격수가 정조준 사격한 것처럼 정확하고 강력한 왼발 발리슛을 날렸습니다. 그렇게 날아간 공은 밀집된 선수들 사이를 손살같이 뚫고 맨유 골대 한 쪽 구석의 그물망에 꽂혀버렸습니다.

이 한 방에 모든 것이 결판이 나버렸습니다.

이후 맨유는 뒤늦게 베르바토프와 긱스를 기용하여 재반전을 꾀했지만, 숫적 열세 속에 공격수만 늘린 꼴이 되어 오히려 역습의 빌미만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맨유는 더 이상 득점하지 못한 채, 3:2로 이 경기를 이기고도 4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정리해보면


수비가 좋기로 유명한 맨유는 홈/원정 2경기에서 모두 선취골을 터뜨리고도 경기 중후반부에 각각 2골씩 내주며 무너지는 뜻밖의 경기내용을 보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뮌헨은 수비진의 공백으로 객관적 열세 속에서도 울리치와 로베리를 통한 막판 뒷심을 자랑하며 모처럼 챔스리그 4강에 오르는 감격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1차전에서 박지성을 뺀 것이 패인이 되었던 맨유는 2차전에서는 박지성을 아예 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만일 2차전에 3:0으로 이기고 있었을 때라도 박지성을 넣었다면 어땠을까요?

이번 챔피언스리그 4강팀은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전멸한 가운데, 바이에른 뮌헨(독일), 리옹(프랑스), 인테르 밀란(이탈리아), FC 바르셀로나(스페인)으로 압축되었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www.monserviceplus.fr 2015.04.10 1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가적 참사에 대한 국민정서와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여 기존 계획을 대폭 축소, 변경하였습니다.

"현재의 절망에 굴복하면 미래는 없다."

<승승장구>에 출연한 장혁이 드라마 <추노>를 통해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난관에 봉착하곤 합니다. 어려움을 겪었을 때,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기도 하는데요.

배우 장혁은 일시적인 과오로 인해 병역비리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비리는 유명인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을 만큼 큰 잘못입니다. 세상의 싸늘한 시선 속에 여태까지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군 입대를 선택하는 것만큼 장혁에게는 절망적인 상황도 없었을 테죠. 오죽하면 그는 '긍정적'의 'ㄱ' 조차도 생각이 안 났다고 말했을까요?

그러나 장혁은 자신에게 닥친 난관을 극복하고 드라마 <추노>를 통해 과거에 얻었던 영광, 그 이상을 얻게 되었습니다. 절망의 늪에 빠져있던 그가 이렇게 인생 역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은 자세',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군 입대를 하게 되면 '억지로 온 군대이니 대충 시간이나 떼우다 가자"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더구나 장혁은 서른 안팎의 나이에 병역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군복을 입어야 했으니, 보통 사람들에 비해 군생활하기가 더 싫었을 겁니다. 결혼까지 생각하던 여인과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내어야 했던 것까지 생각하면 군대 가는 것이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그런데 장혁은 군대를 인생을 거듭나게 하는 곳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하더군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을 실천하듯 말이죠. 군생활하는데에 있어서도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 그가 재기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말처럼 그의 군 입대는 3가지 이유에서 새로운 인생의 싹을 틔운 기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새로운 자아을 발견하는 장이자, 비난의 피난처가 되었다

인기인에게 있어서 군대는 대중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군대가 가지는 격리적 속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가 군대에 가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다고 해서 좋은 시선을 받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는 군 입대를 통해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대중들의 비난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5주간의 훈련 후 사단장 표창을 받을 만큼 열심히 군생활을 하고 나니 차가운 시선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위기에 정면돌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든 그의 자세를 통해 장혁은 이제까지 경험했던 인기 연예인 그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  백지에서 출발할 수 있었기에 준비의 시간이 마련되었다

어떤 연예인이건 때에 맞게 변화하지 않으면 매너리즘이 찾아옵니다. 변신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미지를 지우거나 억누른 뒤, 새로운 이미지로 입혀야 하는 과정이 따르는데요.군 입대로 인해 일정 기간 동안 대중들에게 잊혀진 만큼 그런 매너리즘에 빠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오히려 백지가 된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처럼 군대생활하면서 매일 독서와 운동으로 자신을 갈고 닦았습니다. 그 결과, 전역 후에 이경희 작가로부터 <고맙습니다>의 출연 제의를 받게 되었고, 이 작품을 발판으로 올라서며 흥행작 <추노>의 주인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당장에는 잃어버린 2년이던 장혁의 군생활은 또 다른 준비의 시간을 맞이했다는 점에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던 것이 아닐까요?





■ 아픔을 이겨내고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은 언제든 위기와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고 나면 한층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구나 연기는 정신적 성숙이 미치는 영향이 큰 분야입니다. 그런 아픔의 시간을 겪으며 거듭난 장혁이었기에 드라마 <추노>를 통해 더 많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 겁니다.

인생에 있어서 절박함만큼 적극적인 동기부여는 없습니다. 입대 전의 장혁은 어땠을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군대 갔다 온 이후의 장혁은 한 작품, 한 작품이 소중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승승장구>에 출연한 데니 안은 장혁이 과거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아픔의 시간이 장혁을 더욱 꾸준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이끌어주는 밑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애틋했던 시간이 있었던 것이 결혼한 부인과의 관계도 더욱 더 깊은 사랑을 할 수 있게 도왔으리라 추측해 봅니다. 원래 조금 모자란 느낌이 들어야 더 끌리는 법이니까요.




'창업보다는 수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떤 높은 경지에 오르는 것보다는 그 경지에 올라서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이죠. 드라마 <추노>를 통해 우뚝 선 장혁.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승승장구>의 후반부에 보여준 경쾌한 탭 댄스의 발걸음처럼 장혁이 거침없이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www.valbuena.fr 2015.04.10 13: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가적 참사에 대한 국민정서와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여 기존 계획을 대폭 축소, 변경하였습니다.


LG 트윈스 에이스 봉중근의 2군 강등이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4일의 투구는 봉중근답지 못했습니다



모 방송에 나온 박동희 기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 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 직후, 박종훈 감독이 기자들 앞에서 이와 관련된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이날 봉중근은 3이닝 3실점으로 부진한 것 뿐만 아니라 평소 때와는 달리 경기를 치르는 동안 불만이 가득 찬 모습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LG 박종훈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갔다 왔는데에도 불구하고 봉중근 투수가 계속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는 강판을 당했는데, 이후에도 그는 덕아웃에서 여전히 분을 삭히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본 박종훈 감독은 주저 않고 봉중근의 2군행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LG 트윈스는 시즌 시작한 지 몇 경기 되지 않았는데 잇달아 악재가 겹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봉중근의 2군행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봉중근은 최근 몇 년간 두산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LG의 이번 주말 3연전 상대가 하필 두산입니다. 한 번 2군으로 내려간 선수는 최소한 10일을 거쳐야 1군에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빨라도 다음 주 주중 삼성전이 되어서야 복귀할 겁니다.

문제는 현재 LG는 심수창, 곤잘레스를 제외하면 제대로 자리 잡은 선발투수가 없기 때문에 선발 로테이션을 짜는데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점입니다.


봉중근의 2군행을 결정한 박종훈 감독



이런 상황에서 박종훈 감독이 에이스를 2군으로 내려야 할 만큼 극약처방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박종훈 감독은 '투수의 마인드 컨트롤'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 시범경기 때 곤잘레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화를 내자, 박감독은 곤잘레스를 불러서 "계속 이런 식이면 기회를 주지 않겠다"며 혼낸 적도 있었고, 이재영이 오키나와에서 한화와 연습경기를 가질 때 난조에 빠지자 이 과정에서 고집을 부린 것이 문제임을 인식한 박감독은 조기귀국의 벌을 내리기도 했었습니다.

봉중근의 2군행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LG는 지금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인내와 화합이라는 것을 박감독은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감독이 에이스를 2군으로 내리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감독은 서로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지 않으면 LG가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특히 LG의 중심에 서야 할 봉중근이 망가지는 모습을 박감독도 마냥 지켜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말다툼을 벌였던 심수창(좌)과 조인성(우)



LG는 2002년 준우승 이후 7년 연속으로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사실 LG팬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박종훈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LG가 재기하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문제를 도려내고 아픔을 이겨내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봉중근 2군행'이란 극약처방은 비단 봉중근 뿐만 아니라 동료선수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물론 봉중근도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봉-크라이(cry)'이겠습니까? 그도 사실 최근 몇 년간 에이스로 뛰면서 마음 고생이 많았습니다. 죽기 살기로 던져도 불운한 경기가 많았기에 그도 어지간히 속이 탔을 겁니다. 웬만한 상위권팀에 있었다면 15승은 너끈히 했을 텐데 말이죠.

공교롭게도 봉중근이 선발투수로 등판하는 날이면 유독 LG는 타선도 안 터지고 동료투수들도 안 도와주더군요. 그가 한계투구수만큼 던진 뒤,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고 내려가면 불펜투수들이 불을 지르고, 동료투수들이 미덥지 못해 자신이 끝까지 던지면 힘 없는 공으로 버티지 못하다가 석패 당하기 일쑤고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봉중근이 LG 야수진으로부터 공수의 넉넉한 지원을 받아본 일도 많지 않습니다.

뿐만 아
니라 작년 초에 WBC에서 대한민국 에이스 역할을 하면서 준우승의 영광을 안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속팀으로 돌아와서는 체력적 부담과 잇단 불운으로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었으니 괴로움이 끊이질 않았을 것입니다. 후배 선수들이 우승하거나 각종 타이틀을 수상하며 주가를 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봉중근 입장에서는 팀 성적, 개인 성적에서 허탈감이 컸을 겁니다. 그래도 그는 지금까지 의연하게 야구를 해왔습니다.


LG는 봉중근의 2군행으로 박명환의 활약이 절실해졌습니다



사실 그의 몸 상태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오른쪽 허벅지 부상이 덜 나은데다 김용일 트레이너의 말에 따르면 피칭 훈련도 늦게 시작해서 페이스가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미칠 것 같은 그의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가지만, 그가 에이스이고 팀의 기둥인 만큼 한 번은 더 참아야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다른 LG 선수들도 자극을 받았으면 합니다. 봉중근의 2군행은 사실 봉중근 개인의 탓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진다'는 말처럼 이번 일을 계기로 LG 트윈스가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더불어 LG선수들도 근심이 커진 팬들의 심정을 헤아려주기를 바랍니다.


(사진 : LG 트윈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www.skyblueparachutisme.fr 2015.04.10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준비한 공연을 통해 활동비를 마련하여,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시설과 단체에 성금을 전달하고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 BlogIcon najstariji beogradski portal 2016.02.09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을 전달하고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3. BlogIcon apartmani zlatibor 2016.02.10 0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프리미어리그의 결승전이다!!!"




2009/2010시즌 맨유와 첼시는 각각 6경기만 남겨둔 채,
시즌 전체를 걸고 4월 3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대격돌을 펼칩니다.

6경기를 앞둔 양 팀의 승점은 각각 맨유가 72점, 첼시가 71점으로 불과 1점차입니다.
따라서 이번 맞대결이 리그 우승을 좌우할 수 있는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승부가 가려질 경우, 양 팀의 입장은 보다 확실하게 갈라질 것 같습니다.
그 중 패하는 팀은 3위인 아스널에게도 크게 위협을 받게 될 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양 팀은 무조건 필승의 의지로 경기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리그 최다득점(82득점)의 첼시와 리그 최소실점(25실점)의 맨유의 맞대결은
말 그대로 '창과 방패의 대결'이 될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현재 양 팀은 리그 최소실점, 리그 최다득점에 있어서도 각각 2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사실상 리그를 대표하는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득점력이 최고조에 올랐던 루니(현재 시즌 34골)가
지난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vs 뮌헨) 경기 막판에
발목 인대 부상을 입는 바람에 3주간 재활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코 앞에 닥친 첼시전과 4월 8일에 있을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
루니가 결장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루니가 빠진 것은 분명히 걱정거리입니다.
그만큼 베르바토프의 득점력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는 입장이구요. 




그렇기 때문에 박지성의 역할에도 이목이 집중됩니다.
골게터 루니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우기는 힘들겠지만 기민한 움직임과 많은 활동량을 통해
박지성이 커버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다재다능한 멀티플레이어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박지성의 위상을 감안했을 때,
그의 활약 여부가 첼시전에 미칠 영향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안정된 수비진을 갖고 있는데 비해서 오웬, 루니의 부상 공백으로
공격진을 꾸리는 것에 비상이 걸린 맨유 입장에서는 박지성의 공격력에 거는 기대도 클 것입니다. 
따라서 박지성의 역할 역시 득점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다행히도 최근 박지성의 골 감각은 좋은 편입니다.
특히 지난 31라운드에서 1:1로 동점 상황에서 그림과 같은 다이빙 헤딩슛으로
팀에 짜릿한 역전승을 안겨줬던 사실을 퍼거슨 감독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첼시도 주 득점원인 드로그바가 배앓이를 하고 있어서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그가 시즌 후 탈장수술을 받게 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것을 봐서는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군요.

상대적으로 루니의 부상으로 걱정하고 있는 맨유에게는 위안이 될 소식입니다.
루니와 드로그바는 현재 리그에서 각각 26골, 24골로 득점 1,2위를 다투고 있는 사이인데,
부상으로 인해 두 선수 모두 경기에 지장을 받게 된 것은 묘한 상황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드로그바는 지금 당장에 뛸 수는 있지만 시즌 후에 수술해야 할 처지이고,
루니는 당장 나오지 못하지만 3주 후에는 정상적인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한편 맨유는 오셔와 하그리브스가 복귀를 앞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미들라인이나 수비진이 있어서는 점차 두터워지고 있는데 비해
공격력에서 보다 파괴력을 높일 방안이 마련된다면 트레블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맨유-첼시 중 과연 누가 웃게 될 지 귀추가 주목이 됩니다.
드라마 '보석비빔밥'의 고나은의 응원이 박지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런지도 함께 궁금하군요.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Phoebe 2010.04.03 15: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구는 한일 전이나 드컵 응원밖에 잘 안하지만
    박지성도 응원 많이하지요.^^

    • BlogIcon 칸타타~ 2010.04.03 2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렇군요.
      요즈음 박지성이 잘하는데 계속해서 응원해주세요.
      저도 함께 응원할 겁니다. ㅎㅎㅎ
      김연아도 그렇고, 여자 골프 선수들이나 박지성도 그렇고.
      스포츠 스타들이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들에게 기운을 내게 해주네요.

  2. BlogIcon 악랄가츠 2010.04.04 05: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흑.. 졌어요! ㅜㅜ
    너무 아쉽네요 ㅜㅜ
    페널티킥인데 완전! 버럭!

  3. BlogIcon www.reims-champagne-handball.fr 2015.04.10 15: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시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열린 정례기관장 회의에서 4월 임시국회 및 천안함 침몰사건 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고 허용범 국회대변인이 밝혔다.

해군 천안함 침몰로 실종된 장병들을 구조하던 중 안타깝게도 한주호 준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故人이 된 한준위에 대해 무공훈장 추서 여부가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입니다.

나라를 위해 힘쓰고 공을 세운 이들에게 주어지는 훈장, 그 유래와 역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겠습니다.






훈장의 유래와 역사


훈장(Order)는 국가나 사회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국가에서 그 공적을 표창하기 위하여 수여하는 표장(章)으로 라틴어 "Ordo"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Ordo"는 특정한 의무를 지고 있거나 일정한 규칙을 따르던 제한된 계층의 이들을 일컫었습니다. 유럽에서 교황이 최고권력을 갖고 있던 시대에 성직자 혹은 특수 계층 가운데 그들의 신분을 표시할 수 있게 복장과 장식 등을 대중들과 달리 하였는데, 이것이 훈장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100년대 유럽에서는 십자군을 조직하여 회교도와 싸웠습니다. 특히 성지인 예루살렘은 회교도의 습격을 막고 성지를 방문하는 참배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사단이 조직되었는데, 이 기사단의 대원들은 특수한 검은 옷을 입고 십자형의 표시가 있는 휘장을 가슴에 달았다고 합니다.

당시 서구인들은 이 휘장을 달고 있는 것을 영예로운 것으로 여겨 존경하였고, 후에 국가가 공로가 있는 자를 표창하기 위해 휘장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훈장의 시초였습니다.



한국의 상훈제도의 역사


상훈(賞勳)은 '상과 훈장' 혹은 '훈공을 가리어 상을 준다'는 뜻입니다.

- 서훈 : 훈등과 훈장을 내림
- 서임 : 벼슬자리를 내림
- 추서 : 사람이 죽은 뒤, 생전의 공훈에 따라 서훈, 서임함

우리 나라의 상훈제도는 부족국가시대부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전젱에 공이 있는 자에게 말과 노비를 상으로 주기 시작한 데에서 연유한다고 합니다. 삼국시대에는 무공을 세운 자, 효자, 열녀, 국난 공신 등에 대하여 식읍과 관직을 내렸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고공사, 조선 초기에는 공신도감에서 상을 내렸는데, 조선 중기 이후에는 충훈사(忠勳司)를 충훈부(忠勳府)로 승격시킨 뒤, 국가를 위하여 희생되거나 공훈을 세운자를 예우하고 이들을 위하여 사당을 세우고 제를 올렸고, 또한 이들을 기리는 책을 펴내어 만인의 귀감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근현대적 훈장제도의 효시는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개칭한 뒤 광무 4년 1900년 4월 17일 칙령 제 13호로 '훈장조례'를 제정-공포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훈장은 금척대훈장, 이화대훈장, 태극장, 자웅장으로 4종류였다가 팔괘장, 서성대훈장, 서봉장의 3종류가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훈장은 사라지게 됩니다.

일제 하에서 독립한 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독립과 건국에 공로가 있는 선열을 기리기 위하여 근현대적 상훈제도가 폐지된 지 40년 만인 1949년 4월 27일에 새로운 상훈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건국공로훈장령"이 제정-공포하는 것을 필두로 9개의 훈장령을 제정-공포하였고, 1963년 12월 14일 새로운 상훈법을 제정하여 각개별 법령으로 운영되던 각종 훈장령을 폐지하고, 새로운 상훈법을 통합하여 오늘날의 단일 법률 체제로 개편하였습니다. 이후 몇 차례 관련 규정을 개정하면서 현재에 이르렀죠.



한국 훈장의 종류


무궁화훈장,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무궁화훈장을 제외하고는 5등급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일부 글에는 과학기술훈장이 빠져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훈장은 2001년 신설되었습니다. 훈장보다 한 단계 아래 격인 포장 역시 훈장과 종류는 같습니다.)


1. 무궁화훈장
우리 나라의 최고훈장으로 대통령에게 수여하며, 대통령의 배우자,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 또은 우리 나라의 발전과 안전보장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전직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도 수여

2. 건국훈장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한 자나 국기(國基)를 공고히 함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전직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 수여
→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3. 국민훈장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무궁화장, 모란장, 동백장, 목련장, 석류장

4. 무공훈장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
→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

5. 근정훈장
공무원(군인,군무원 제외) 및 사립합교의 교원으로서 그 직무에 정근하여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청조, 황조, 홍조, 녹조, 옥조

6. 보국훈장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에가 수여
→ 통일장, 국선장, 천수장, 삼일장, 광복장

7. 수교훈장
국권의 신장 및 친선에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광화대장(외국의 수상급 이상)-광화장(외국의 대사급 이상), 흥인장, 숭례장, 창의장, 숙정장

8. 산업훈장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금탑, 은탑, 동탑, 철탑, 석탑

9. 새마을훈장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자립장, 자조장, 협동장, 근면장, 노력장

10. 문화훈장
문화예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금관, 은관, 보관, 옥관, 화관

11. 체육훈장
체육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체위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청룡장, 맹호장, 거상장, 백마장, 기린장

12. 과학기술훈장
과학기술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창조장, 혁신장, 웅비장, 도약장, 진보장




故 한준위의 무공훈장 추서 여부를 떠나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많은 이들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펨께 2010.04.02 1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탐진강 2010.04.03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간인 어선 선원 9명이 사망 실종인데 군은 나 몰라라 하는 듯한 코멘트를 하더군요.
    너무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한 처사라는 생각입니다.

  3. BlogIcon www.ski-clubs.fr 2015.04.10 1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시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열린 정례기관장 회의에서 4월 임시국회 및 천안함 침몰사건 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고 허용범 국회대변인이 밝혔다.

바이에른 뮌헨의 홈인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펼쳐진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은 뮌헨판 '캄프 누의 기적'이었습니다.

'캄프 누의 기적'은 맨유가 98/9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뮌헨에 0:1로 뒤지고 있다가
추가시간 3분 안에 2골을 넣어 극적인 역전승을 일컫는 말이었죠.

마치 데칼코마니를 연상시키듯 뮌헨의 짜릿한 승리였습니다.
뮌헨은 전반전 2분에 루니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어려운 경기를 펼쳤지만,
후반전을 20여분 남겨두고 박지성을 교체한 맨유를 상대로 역전극을 펼친 것이었죠.




뮌헨은 0:1로 뒤진 상황에서 맨유 수비수 네빌의 핸드볼 반칙으로 얻어낸 프리킥에서
77분에 리베리가 찬 볼이 맨유 스콜스의 몸에 맞고 굴절되어 골망을 뒤흔들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맨유 골키퍼 판데사르는 멀뚱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패색이 짙어가던 경기를 되살려낸 뮌헨은 주심의 휘슬이 울릴 때까지
끊임없이 맨유의 수비진영을 뒤흔들었습니다.

후반전 추가시간은 불과 2분.
그것도 이미 1분 30초가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뮌헨의 고메즈가 센터서클 부근에서 세 선수를 제치고 치고 나가려하다 상대 밀집수비에 막히는 순간,
포기하지 않고 달려오던 울리치가 맨유 수비수들의 방심을 뚫고 에브라 앞에 놓인 공을 가로채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절묘한 볼컨트롤로 맨유 수비진을 헤쳐나오며 잠시 주춤하더니
왼발로 이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 때가 경기 끝나기 불과 10여초 전이었습니다.
77분 동안 이기고 있었던 맨유 선수들은 막판 10여초를 버티지 못하고 패배의 멍에를 안아야 했죠.




이로써 맨유는 1999년 5월 '캄프 누의 기적' 당시에 승리의 기쁨을 맛본 후
11년간 뮌헨을 이기지 못하는 징크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맨유로서는 69분에 박지성을 교체한 뒤, 뮌헨의 파상공세를 받았다는 점이 아쉽고
경기 막판에 고메즈를 수비하던 루니가 부상을 입으며 설상가상의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1999년에는 맨유가 극적으로 뮌헨을 꺾고 우승하였지만
2001년에는 뮌헨이 맨유를 꺾으며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서형욱 해설위원의 말처럼 1999년 역시 기적이 일어났기에 맨유가 이겼던 것이지
그 경기 역시도 90분까지 뮌헨이 앞섰던 것을 감안한다면
세계 최고의 명문을 자부하는 맨유로서는 뮌헨이란 암초가 역시 만만치 않았음 말해주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무렵 세계 축구를 주도하는 팀을 일컫는 말 중 하나가 3M이었는데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이 3M에 속한 팀이었습니다.
혹자는 AC 밀란까지 합쳐서 4M이라 부르기도 했죠.

실제로 이 4M에 해당되는 팀들이 1997/1998시즌부터 2002/2003시즌까지
6년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독식했습니다.

더구나 바이에른 뮌헨은 4차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했던 팀으로서
가장 최근에 거둔 2000/2001시즌 뮌헨은 맨유를 상대로 치른 8강전 홈/어웨이에서 모두 승리하였고
4강에서 역시 레알 마드리드를 연파한 뒤, 결승전에서 만난 발렌시아마저 꺾고 우승을 차지했죠.

최근 10년간 분데스리가의 몰락과 프리미어리그 급상승이 맞물리며
맨유는 위세가 등등했던 반면, 뮌헨은 최근 몇 년간 결과가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의 승부는 상대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것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것이겠죠.




2001년 당시 두 팀의 맞대결(8강전 1,2차전)을 되돌이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뮌헨의 감독인 히츠벨트는 득점력이 좋은 브라질 용병 에우베르를 원톱으로 배치하고
미드필더를 두텁게 쓰는 전략을 통해 맨유의 공격력을 봉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후반 막판에 터진 세르지오의 결승골로 맨유의 홈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먼저 1승을 올렸습니다.

기분 좋은 1승을 거둔 뮌헨은 맨유를 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 당시의 뮌헨의 홈경기장은 알리안츠 아레나가 지어지기 전의 뮌헨 올림피아크였죠.
이곳은 특히 스페인 라리가 클럽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했던 곳입니다.

최근에 바르셀로나가 분데스리가 팀의 킬러로 각인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바이에른 뮌헨은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등 주요 스페인리그 팀들을 상대로 
역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이죠.

프리미어리그 49연승을 달릴 무렵의 아스날도 이곳에서 1:3으로 패배했던 바 있었습니다.
올림피아크에서 2차전을 펼친 맨유는 경고누적으로 출전금지된 베컴의 공백까지 안고 
뮌헨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맨유는 경기 초반부터 뮌헨의 에우베르에게 선제골을 내주었고
전반 막판에도 숄의 추가골을 허용하여 사실상 승부가 끝나버렸습니다.

후반전 초반에 맨유의 긱스가 만회골을 기록했지만 
맨유가 적지에서 후반전 중반에 2골 이상 넣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죠.
더구나 그 당시 뮌헨은 조직력이 매우 뛰어난 팀이고, 결과적으로 그 시즌 우승팀이었습니다.




어쨌건 맨유는 이번 패배로 인해 뮌헨의 홈에서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는 징크스를 남겼습니다.
사실 맨유에게 있어서 뮌헨은 최근까지도 까다로운 상대였습니다.

맨유는 작년 7월말에 펼쳐진 아우디컵 결승전에서 뮌헨을 만나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패해 준우승에 그쳤기 때문이죠.

2차전은 맨유의 홈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리는데,
아직까지 맨유는 홈 경기장에서도 뮌헨을 상대로 승리한 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전력에서는 맨유가 뮌헨보다 여전히 앞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맨유가 잇단 뮌헨 악재를 딛고 새 역사를 쓰게 될 지
아니면 뮌헨 징크스가 그대로 지속될 지 2차전의 결과가 무척 궁금하군요.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www.obienetreprovencal.fr 2015.04.10 15: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유가 98/9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뮌헨에 0:1로 뒤지고 있다가
    추가시간 3분 안에 2골을 넣어 극적인 역전승을 일컫는 말이었죠.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故 최진영의 사망 원인이 경부압박질식으로 인한 자살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가 자살했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절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죠. 남은 사람들은 어쩌라는 것인지요?

그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안 되는 7가지 이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머니를 위해서

남매를 한꺼번에 잃은 어머니는 어찌 되는 겁니까? 부모님은 자식이 죽으면 당신의 가슴에다 묻는다 했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있는 자식이 모두 죽어버리면, 그것도 자살로 세상을 등지면 살아계시는 부모님은 뭐가 됩니까? 오히려 더 악착 같이 살아서 세상을 떠난 누나의 빈 자리를 조금이라도 메우려고 하고 조카들 잘 성장하게끔 힘썼어야죠. 그의 부모님도 지금까지 인생이 순탄하고 즐겁기만 해서 살아계신 건 아니잖습니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있었더라도 극단적인 선택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누나 최진실을 위해서

최진영은 평소에 누나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습니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했을 때에도 "다시 태어나도 최진실의 동생으로 살고 싶으냐?"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을 정도니까요. 누나의 빈 자리를 보며, 그도 자주 누나가 그리웠겠죠. 험한 세상 같이 헤쳐오며 가난과 어려움을 뚫고 동고동락했던 남매들 아닙니까? 이제 부와 명성을 누리며 한창 행복해야 할 때에 누나가 먼저 하늘 나라로 가고 자신마저 이렇게 세상과 인연을 끊으면 그가 하늘에서 누나를 만나게 된 들 면목이 있을까요? 무언가 진실을 밝혀야 할 사정이 있다면 끝까지 살아남아서 밝혔어야죠.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생을 보고 과연 누나가 반기겠습니까? 어머니와 조카를 저렇게 내버려두고 말이죠.





조카들을 위해서

이번 최진영의 죽음으로 인해 앞으로 가장 큰 후유증을 겪에 될 사람은 바로 최진실의 아이이자, 최진영의 조카인 환희, 준희입니다. 가뜩이나 스타 부모님의 이혼으로 이미 상당한 충격을 받은 애들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쉽게 한 마디씩 하겠지만, 그 아이들은 헤아릴 수 없는 후폭풍을 감당하고 살아야 할 겁니다. 엄마인 최진실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삼촌인 최진영과 할머니가 있어서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마저 떠나면 남은 아이는 어떡합니까? 물론 친아버지인 조성민이 있지만, 앞으로 양육을 놓고 고민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연세도 들고 충격에 빠진 할머니와 다른 여인과 결혼해버린 아버지(조성민) 사이에서 방황해야 할 지도 모르죠.


팬들을 위해서

최진영을 아까고 사랑했던 팬들도 많을 겁니다. 어찌 보면 최진실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한 사람의 연예인 최진영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죠. 팬들도 그의 재기를 고대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제 연예인은 공인입니다. 그냥 혼자의 몸이 아닌 것이죠. 그가 이렇게 떠나버리면 그를 바라보던 팬들은 어찌 되는 겁니까?


자살을 결심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요즈음 점점 세상살기가 힘듭니다.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모두가 자살을 택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특히나 '베르테르 효과'란 말처럼 유명인의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부르기도 합니다. 오히려 최진영은 정말 죽고 싶었지만 이 악물고 살아서 결국 행복하게 되었다고 말했어야 하는 겁니다. 그게 가족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혹시 자살을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대중들을 위해서

최근에 비보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많은 대중들은 슬픔과 안타까움 더 얹고 살아야 합니다. 또한 남아있을 그들 가족을 바라보면 대중들도 마음이 편치 않겠죠. 밝은 소식이 더 많아도 힘든 이 세상에 슬픈 뉴스들이 늘어나니 사람들도 이제는 피곤해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제 연예인은 공인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언행에 따라 대중들이 영향을 받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의 생사부터가 그렇습니다.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살을 선택해서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최진영 자신 때문입니다. 생명 하나 하나가 소중한데 왜 그걸 인위적으로 버립니까? 세상이 살기 편해서 다들 힘든 것을 참고 사는 것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연예인으로서 재기의 기회도 주어졌고 그가 불편해했던 누나의 간섭에서도 벗어나서 스스로 당당히 스타가 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되었습니다. 그런 기회조차 없이 살아야 하는 많은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죠. 온갖 장애 속에서도 혹은 병마와 사투하면서도 하루라도 더 뜻있게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생들도 있습니다. 자살이 사실이라면 그 무엇보다 최진영 자신에게 너무나도 잘못한 일입니다.





한 때 너무나도 좋아했던 최진실이 세상을 등진 뒤, 팬으로서 마음 한 켠이 주저앉는 느낌을 받았는데, 다시 최진영의 죽음을 접하니 허탈함이 엄습해옵니다. 이들 남매 주변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더 기운이 빠지네요. 아~ 참~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Phoebe 2010.03.30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진실씨 자살 소식 듣고 한동안 저도 우울증에 걸려 있었어요.
    인기도 많고 동갑이라 꽤 좋아하는 연예인이었는데 ...
    동생까지 그렇게 가는게 너무 안타깝네요.
    고인의 명복을 빌 뿐입니다.
    계속 뉴스가 좋지 않아 큰일 입니다.

  2. BlogIcon 악랄가츠 2010.03.30 17: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가 멀다하고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네요 ㅜㅜ
    자살만큼은 어떤 이유라도 누구라도 해서는 안될 일인데....
    너무 안타깝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여러분의 지식을 기다림... 2010.03.30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진영씨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움....그런데....누나 최진실을 자살하게한 그 증권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죠??????신문을 보니,,,그녀가 전화로 죽으라고 하여서 최진실 자살 했다고 하던데????

  4. 가슴이 아프네요.. 좀더 멋지게 살아 주시지.. 2010.03.31 05: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애인들 죽었다고 슬퍼하고 그런적 없었는데. 최진실씨 와 최진영씨의 죽음은 마치 아는 사람이 죽은 소식처럼 가슴이 아프네요.. 너무 그들의 사건 사고가 기사화가 크게 되어 나오고 그들의 일상을 너무 알아 버린 이유 때문인지.. 최진영씨 살아서 애들 잘키워 주시고 멋지게 사시길 바랬는데... 너무 안타 깝습니다.

  5. BlogIcon buy tickets online 2010.08.21 0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좋은 기사.

  6. BlogIcon buy specialist 2011.05.22 06: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환상적 포스트! 정말 감사합니다.

  7. BlogIcon blue lizard sunscreen 2011.10.25 1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름이 내 인생에 떠있 어서, 비 또는 안내 폭풍을 휴대하지,하지만 내 일몰 하늘에 색상을 추가하는 더 이상.

  8. BlogIcon dreadnought guitar 2011.11.05 0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좋은 기사. 그냥 구글 번역기를 통해 읽어보세요.

  9. BlogIcon auto auctions in michigan 2011.11.05 0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은 정말 놀라운과 최소한 인사를 나에게 흥미로운 것을이다.

  10. BlogIcon www.stages-corroyer.fr 2015.04.10 15: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유가 98/9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뮌헨에 0:1로 뒤지고 있다가
    추가시간 3분 안에 2골을 넣어 극적인 역전승을 일컫는 말이었죠.

  11. BlogIcon 권미정 2018.10.19 1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불쌍한것 같아요 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누나를 위해서 어머니를 위해서 조카를 위해서 팬들을 위해서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중들을 위해서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많은 것 같고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 같은 것 같고 또 무엇 보단 자기 자신을 위한다면 극단 적인 생각 까지 안 하는것 같고 또 팬들 대중들 자살을 결심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같은 마음이 많이 있는것 같네요

  12. 권미정 2018.10.19 1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식들이 제일 먼저 하늘 나라로 가니까 어머니 조카들을 생각하니까 무슨일인지는 몰라도 죽을 힘으로 살라는 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