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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전 의장은 10월 17일(수)에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주최로 코엑스 컨퍼런스 센터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 <2012 DB 그랜드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맡아, 그간 국회에서 IT 전문가로서 활동한 경험을 십분 발휘하여 이번 컨퍼런스의 중요성을 알리고 격려하였다.   아래는 김형오 전 의장의  연설문 전문이다.


 

2012 Database Grand Conference Keynote Speech

빅 데이터, 새로운 데이터베이스 세상의 시작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前 국회의장 김형오입니다.

먼저,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의 “2012 데이터베이스 그랜드 컨퍼런스” 개최를 축하드립니다.

오늘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문화체육관광부 김갑수 국장과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서강수 원장,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  한국DB산업협의회 손삼수회장, 한국DB학회회장 조남제 한양대교수, 또한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들 반가운 인사를 드립니다.

이 뜻 깊은 날,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제 얘기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제가 왜 IT 산업분야에 관계하게 되었는지, 한국 IT산업, 정보문화산업 발전과 나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말씀드리면서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비하는 지혜를 얻었으면 합니다.

   

나는 1992년 국회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국회의원은 전문 분야별로 일하는 상임위원회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때 나는 1지망도 2지망도 그리고 3지망도 "교체위원회"를 선택하였습니다. 교체위원회란 지금은 없어진 교통부와 체신부를 다루는 위원회인데, 가장 인기가 없는 상임위였지요. 더구나 교체위원은 다음선거에서 100% 교체된다고 하는 징크스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내가 교체위를 택한 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제지역구가 섬이기에, 뱃사람 선원들이 많았고 이들과 직결되는 해운항만청이 교통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기관이었던 것이 내가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요, 또 하나는 앞으로의 세상은 정보통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감했기에 정보통신 업무를 다루는 체신부가 있는 위원회를 골랐던 것입니다. 그때 저를 아끼는 선배의원님이 이런 곡절도 모른 채 "상임위원회를 바꿔 줄테니 말하라"고 까지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회는 시끄러웠고 걸핏하면 휴회 정회를 일삼았습니다. 나는 그때를 이용하여 내가 잘 모르는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특별과외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분들 덕에 체신부에서 정보화 관련 보고만 있으면 제가 좀 아는 체 나섰고, 그러다보니 제가 마치 정보통신 전문가인 것처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정보통신업무에 영어나 외국어가 많고, 또 CDMA ,TDX, DB 같은 약어들이 많아 선배의원들은 이게 뭐냐 또는 어떻게 읽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때 서울대학을 나오신 선배의원 한분은 Giga를 지가로 읽느냐고 제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제가 국회 입성한 이래 정보화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이른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슬로건은 국민들 마음에 뜨겁게 다가갔습니다. 우리들은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바꿔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그때 민영화 대상이었던 제2이동통신을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다른 의원들은 제2이통의 민간매각방식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고 언론도 그쪽에 관심을 가졌을 때 저는 외롭게(?) 디지털 방식을 주장했습니다. 또 디지털방식으로 통신시장을 개편하기로 한 후 정부가 TDMA냐, CDMA냐를 놓고 고심할 때 저를 중심으로 하여 국회에서는 CDMA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이방식이 세계최초로 상용화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일이지만 그때 제가 유럽에서 채택한 GSM방식을 알았더라면 단연코 GSM 방식을 주장했을 터인데, 저의 지식의 한계였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휴대폰 개발은 우리나라가 오늘날 모바일 강국이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부는 초고속정보통신망을 전국적으로 까는데 박차를 가하고, 그야말로 "정보화는 앞서가는"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열정이 넘쳤지요.

그때 미국 뉴욕에서 유학하다 방학을 이용해 잠시 귀국한 어느 유학생은 "한국 컴퓨터는 커피마실 시간도 안 준다"고 했습니다. 미국서는 컴퓨터를 부팅해서 인터넷 접속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한국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접속 연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초선의원 시절에 정보의 대중화운동을 추진했습니다. "미래사회 정보생활"이란 사단법인을 만들고 뒤이어 "정보교사단"을 구성하여 미래의 주역인 학생들에게 정보화 마인드를 심고 학교정보화를 위해 앞장섰습니다.

또 학생들과 함께 두 척의 대형 해양실습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모험심과 함께 정보화 체험을 하는 행사를 추진하였습니다. 서남으론 제주도 목포 인천으로, 동으로는 포항 울릉도 독도까지 항해하며, 그때는 이미 사라진 '삐삐'(페이져)로 교류하며 독도 근해에서 대한민국의 '통신주권'을 선포 확인하기도 했고 울릉도와 서울간 최초로 화상회의도 직접 하였습니다.

그 다음해는 중국 공안의 간섭을 피해가며 백두산 천지에 올라가 한라산 백록담, 그리고 제가 미국 출장 중인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이렇게 3원 인터넷 대화를 성공시킨 가슴 뛰는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1994년에 그때는 천리안 하이텔을 통한 PC통신시절입니다만, 국회의원으로는 최초로 저의 홈페이지를 컴퓨터상에 구축, 정보를 교류하며 소통에 주력하였습니다.

이런 버릇 때문에 국회의장이 되어서도 블로그를 계속 사용해왔고, 요즘같이 별 볼일 없는 백수이면서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의 강연도 내일쯤이면 내 블로그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1996년에는 내가 소속한 당의 전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인터넷 교육을 실시한 바가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비교적 젊은 분들이기에, 지금부터 16년 전에 인터넷을 우리 국회의원을 상대로 교육했다면 깜짝 놀랄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드웨어 강국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충실해야 정보화가 제대로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 계시는 여러분이야말로 DB를 다루는 소프트웨어 전문가 아닙니까?

당시 벤처붐이 나라의 활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버블로 끝난 생각을 하면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더구나 IMF를 맞아 뜻있는 벤처들이 눈물짓는 사이에 권력과 결탁한 일부 벤처를 가장한 투기꾼에 의한 "먹튀"(먹고튀는) 현상으로 도덕적 해이와 벤처의 신뢰도에 먹칠한 일은 정말 큰 손실이었습니다.

저는 97년도부터 미국 퀄컴사의 부당한 조처에 대항한 결과, 결국 이긴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뿌듯한 일입니다. 아시다시피 퀄컴사는 CDMA 원천기술을 개발하였고 우리는 이를 세계최초로 상용화했습니다.                 우리는 휴대폰을 하나 팔 때마다 퀄컴사에 일정 로열티(특허료)를 바쳐야하고, 반면 퀄컴사는 우리의 상용기술화에 대해 자기가 받은 로열티(특허료) 20%를 우리에게 도로 주도록 계약되었습니다. 그러나 퀄컴사는 받을 것은 확실히 챙기면서 우리에게는 단돈 한 푼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 문제를 국회국정감사를 통해 신랄히 지적하고 미온적인 정부와 ETRI(전자통신 연구소)를 압박하여, 끝내 국제재판에서 우리가 승소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화로 3천억원 이상의 외화(US 달러)를 현찰로 찾게 되었습니다. 저는 재판승소 소식을 듣는 순간 너무나 감격하여 대한민국만세를 몇 차례나 불렀습니다.

만날 싸우는 국회로 인식된 우리 국회에 그래도 돈벌어오는 애국적 역할을 하는 의원도 있어 국회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98년부터는 정권의 불법적인 도청 감청에 대항하여 싸움을 벌였습니다. 제대로된 정보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기본권 중에 기본권인 통신비밀의 자유가 절대적으로 보장받아야 합니다. 당시 저는 일반전화뿐만 아니라 휴대전화까지 도감청을 일삼는 당국에 대해 자유와 인권을 위하여 싸웠고, 정보통신강국을 위하여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5개부처 장관 합동기자회견을 하며, 모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오, 정부는 불법으로 도감청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로 대응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여론과 언론은 제 편이었습니다. 저는 구체적 자료와 면밀한 분석으로 정부와 끈질기게 싸웠고 3년 후 통신비밀보호법의 전면 개정을 이루어냈습니다.                                                                                저의 휴대폰 도청주장은 그 7년 후 국정원의 실토로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저는 2001년부터 국회 과기정위원장을 맡으면서 디지털 국회를 만들기 위해 보고서와 모든 자료를 엄청난 분량의 인쇄물로 만들어 의원회관과 국회 회의장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관행을 깨뜨리고 모든 자료와 서류는 인터넷 이메일 그리고 CD로만 제출토록 하였습니다.

이른바 "종이없는 국감"을 세계최초로 시행하였습니다. 아마 이것이 DB산업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도 여전히 의원들의 책상위에 수북이 쌓인 자료들을 보면 얼마나 아까운 나무들이 베어지고 외화가 낭비되는가 안타까운 생각에 젖습니다.

제 이야기가 너무 길었는지도 모릅니다. 드릴 말씀은 많습니다만 제 정보통신 약사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한국 미래를 움직일 여러분께 제 얘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제 오늘 주제 빅 데이터에 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를 ‘빅 데이터 시대의 원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빅 데이터, 빅 데이터 하는데, 빅 데이터가 무엇입니까. 저는 처음에 청춘남녀가 데이터를 아주 거창하게 하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빅 데이터는 글자 그대로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데이터를 말합니다. 너무 크기 때문에 기존 방식으로는 분석이 불가능합니다. 형식은 다양하고 속도 또한 매우 빠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현실세계를 디지털로 변환시킨 그런 모든 자료가 빅 데이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지식정보화가 진화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탄생된 기술적 용어지만 이제는 새로운 흐름을 나타내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빅 데이터는 ‘정보 폭발’의 결과물입니다. 네트워크 시대의 속살입니다.

마치 산업혁명에서 철과 석탄이 핵심요소였듯이, IT 혁명에서는 인터넷이, 스마트 혁명에서는 빅 데이터가 핵심자원입니다. 발굴되지 않은 금광이고 가공되지 않은 원석입니다.

스마트 환경은 예전에 정보가 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정보로 만듭니다. 우리가 하는 말, 행동, 기호, 취미, 습관, 위치와 환경 이 모든 것들이 정보가 됩니다.

예컨대 특정시간 청계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수, 이들이 듣고 있는 음악, 이들의 복장, 광장에서의 양태, 모인 숫자가 미치는 형태, 돌아갈 때 이용하는 차편, 도로교통상황 등이 모두 정보가 되어 기록될 수 있는 것이 빅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환경입니다. 그러므로 엄청나게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가 초단위로 쏟아지는 스마트 환경에서 빅 데이터 기술의 부상은 필연적입니다.

수많은 정보를 감지하는 기기들과 센서들이 스마트 환경의 각각 기관이라면, 빅 데이터 기술은 스마트 환경의 두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정보시대에서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류의 시작에서부터 2003년까지 발생한 모든 데이터 양은 5엑사바이트인데, 지금은 같은 양이 생성되는데 단 이틀이면 족하다고 합니다.

*MB(메가) → GB(기가) → TB(테라) → PB(페라) → EB(엑사) → ZB(제타))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합법적으로 빅 데이터를 수집하고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빅 데이터 4대 천왕이라 불리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은 핵심 서비스를 무료 또는 염가로 제공하면서, 천문학적인 빅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IBM, MS, SAS 등 IT분야 강자들이 빅 데이터 솔루션 개발과 출시에 앞장서고 있으며,HP, 후지쯔, 도시바 등도 빅 데이터 비즈니스 진입을 서두르고 있어 빅 데이터로 인한 IT계의 지각변동은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스토리지 전문기업인 EMC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1년에 전 세계에서 생성된 디지털 데이터의 양은 1.8 제타바이트(ZB)에 이릅니다. 제타는 ‘조’단위의 기가 바이트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것은 약 1조 8천억 기가바이트(GB)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 국민이 54만년 동안 쉬지 않고, 1분마다 트위터 글을 1개씩 게시하는 분량에 해당됩니다. 또한 1시간이 넘는 HD 동영상 2,000억 편을 한 사람이 쉬지 않고 9천400만년 동안 시청해야 하는 분량이라고 합니다. 이를 16GB 아이패드에 저장할 경우에는 1,150억개의 아이패드가 필요하고, 이를 깔아놓는다면 서울 면적의 4.2배 되는 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데이터는 앞으로도 매년 2배 이상씩 증가하여, 2020년에는 35.2제타바이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사실 말은 이렇지만 빅 데이터를 현실감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를 처리할 기술도 결코 녹녹치 않습니다. 그러나 국가나 기업 그리고 개인이 이를 활용할 경우 그 혜택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입니다. 편리하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류를 위한 소중한 자산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구글의 독감유행정보는 사람들이 독감지역을 미리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익한 정보입니다. 월마트의 맞춤서비스는 고객의 욕구를 미리 알아서 선제적으로 서비스해주는 것입니다. 임신예측시스템은 그 한 예에 불과합니다. 스페인의 패션의류회사 자라(ZARA)는 다품종 소량의 의류를 짧은 시간에 값싸게 공급함으로써 세계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나의 경우도 비잔티움과 오스만 터키의 최후의 결전에 푹 빠져 있는데 아마존에서는 수시로 관련 정보(물론 돈 주고 사야하는 책이지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주 작은 예에 불과하고 실제 활용 기술이나 영역에 대한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위키본(Wikibon)에 따르면 2012년 빅 데이터의 시장규모는 약 50억불이며, 2017년에는 500억불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협의의 빅 데이터 제품, 즉 빅 데이터 처리를 위한 컴퓨팅 인프라(서버)와 솔루션 시장을 말할 뿐입니다.

빅 데이터가 실제 서비스 현실에 적용되었을 때 어느 정도의 가치가 발생할지 명확한 측정치는 아직 없으나, 빅 데이터 활용이 미국 의료분야에서 3,300억불, 유럽 공공 부문에서 1,500억~3,000억 유로의 잠재가치가 있다는 것이 맥킨지(컨설팅 회사)의 추정입니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데이터베이스 산업은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3조 원에 불과했던 데이터베이스산업 시장은 작년에 10조 4,374억원으로 2010년 대비 10.9%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작년도 경제 성장률의 3배 수준으로 DB 산업이 성장했습니다. 관련 비즈니스도 다양해지고 수익 모델이 확장되고 있는 등 국내 데이터베이스 산업은 크게 확대되고 있습니.                                                                                                                                  또한 데이터베이스 관련 일자리 역시 매년 1만명 이상 창출되고 있으며, 데이터베이스 산업의 생산유발액은 연간 31조 8,000억원, 부가가치유발액은 15조 3,000억 원에 달합니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DB전문가로서의 진로와 취업에 대해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에서 DB산업의 앞날이 매우 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갈 길이 요원합니다. 2011년 DB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인력은 총 22만명으로 전년대비 17.9%나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DB서비스 부문만 보더라도 DB 산업 총 종사자의 62%에 이르는 13만 6,500명이나, 이중 직접 DB관련 업무자는 18.1%에 불과하며 68.8%가 DB와 무관한 인력이라는 것입니다.                    (전체 22만명 중 26%가 DB관련자, 74%가 무관자임)

지난 10년간 다양한 데이터 활용 시스템이 구축됐지만,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이터를 정확히 이해하고,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또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한국의 좁은 내수기반과 언어적 약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구체적으로 대략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품질과 기술의 문제입니다.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 품질이 아직 도입단계 수준에 불과합니다.

2011년 국내기업들의 데이터 품질 관리 성숙수준은 전년 대비 겨우 0.1레벨 상승한 1.1레벨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1레벨은 데이터 품질관리 성숙수준 5단계 중 제1단계인 것입니다. 데이터 품질 관리 능력과 기술이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둘째, 빅데이터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인력기반이 취약합니다.

우리나라의 능력성숙도 통합지수 CMMI(Capability Maturity Model Integration) 품질지수는 2.94로 인도 4.30을 비롯 미국 3.06, 중국 2.97 보다 낮습니다.

또, 비구조적 데이터와 분석 모델을 다룰 수 있어야 하며,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문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빅 데이터 전문 관리자는 정규교육체제에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수리적 능력과 현장 경영 감각을 동시에 갖춘 인재를 시장의 수요만큼 육성하는 작업은 지금 서둘러도 늦다고 하겠습니다.

셋째, 의식과 문화의 문제입니다.

데이터의 가치는 충분한 크기와 다양성에 있습니다. 그러나 부서이기주의나 마인드의 부족으로 빅 데이터 자체가 수집되고 있지 않거나 소홀히 취급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구비하였다 하더라도, 칸막이를 헐고 무너뜨리지 않는 한 정작 중요한 정보는 자기 칸막이 밖을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이 정보공유라는 개념에 있어 미국과 한국의 차이입니다.

1994년으로 기억됩니다만, 초선의원시절 미국의회의 초청으로 한 달간 미국 의회 및 정부를 연수차 간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국무부를 방문했고, 다음날은 국방부를 방문했는데 국방부 관계자는 놀랍게도 제가 어제 국무부에서 한 질문을 다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실무연수 차원이었기에 실무자, 기껏 국장급 인사를 만났 는데 인터넷은 물론이고 컴퓨터도 잘 활용되지 않을 때였음에도, 이들끼리는 충분한 정보를 교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은 20년 전이나 후나 아직도 니껏내껏을 칸막이 쳐 놓고 엄격히 구분하고 있지 않은지요.

또 의사결정자의 의식·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수많은 데이터를 수집·정리하여 보고해도 일회용·전시용으로 끝나 버리거나, 오너의 구미에 맞는 데이터만 올리게 됩니다.

우리의 잘 나가는 기업들 중엔 충분한 활용가치가 있는 데이터가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고,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같은 회사 안에 있는 다른 부서에 어떤 데이터가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업이 현재는 잘 나가지만 앞으로도 잘 나가리라 누가 담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이유도 이러한 과제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빅 데이터를 처리할 기술과 사례를 공유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DB산업은 큰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뛰어난 IT 인프라를 가지고도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빅 데이터 시대에 뒤쳐져 있습니다.

애플의 아이폰은 우리 기업에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폰의 출현으로 우리 기업이 그간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모바일 생태계를 개방·확대하여 외국에 뒤쳐졌던 S/W, 콘텐츠, 무선 데이터, 스마트 폰을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빅 데이터 패러다임의 확산은 아이폰 혁명보다 더욱 험난한 도전이 될 전망입니다. 스마트 폰의 수명은 2-3년에 불과하지만, 스마트 폰을 통해 수집된 빅 데이터의 가치는 수십년에 걸쳐 미래 사회의 특성에 맞게 대응할 것이며, 기회 요인을 창출하는 핵심엔진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많은 사업영역에서 빅 데이터를 얼마나,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승자와 패자를 가를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각 섹션 세미나를 통해 이런 과제와 이슈를 토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빅 데이터는 기술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문화적 측면도 충분히 고려해야 비로소 빅 데이터의 가치가 빛날 것입니다.

 

빅 데이터에 관한 관심과 논의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저는 몇 가지 과제를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풀어보고자 합니다.

첫째, 빅 데이터 거품론입니다.

최근 빅 데이터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열풍 수준이며, 빅 데이터가 거의 모든 비즈니스의 필수적인 경쟁력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빅 데이터 분석을 시행해 본 결과 실망감을 표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데이터 마이닝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투자비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적다 등이며, 가트너의 경우 Fortune의 500대 기업 중 85%가 빅 데이터 활용에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빅 데이터 자체가 아니라 이것을 사용하는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아마존, 이베이, 구글 등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기업은 인터넷을 잘해서가 아니라, 혁신적인 서비스 모델을 먼저 만들었고, 이것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인터넷을 활용했던 것입니다.

빅 데이터의 목적은 혁신적인 서비스이고, 빅 데이터는 그 수단입니다. 목적과 수단을 명확히 인지하고 잘 활용할 때 빅 데이터의 진정한 가치가 빛날 것입니다.

둘째, 빅 데이터의 양극화 문제입니다.

현재 정보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구글, 애플, 페이스북 그리고 아마존 등 소위 4대 천왕은 엄청난 데이터를 쏟아내는 플랫폼 회사입니다.

매일 구글에서는 10억건의 검색이 이루어지고 있고, 페이스북에서는 8억명의 사용자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맞춤형 광고를 제공하고, 2억5천만 장의 사진이 공유되고 있으며 900만개의 상품이 아마존을 통해 거래되고 있습니다.

특히, 구글은 구글지도를 포함 지메일, 유튜브 그리고 크롬북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활동을 기록하고 스캔할 태세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구글지도와 구글어스는 물론 구글마스와 구글문까지 그 서비스 영역을 우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빅 데이터 활용이 본격화되면 구글에 대한 의존성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서는 중간지대 보다는 양극의 속성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국가 간, 기업 간의 정보격차 특히 빅 데이터가 극소수에 집중될 경우 우리는 어떻게 충격에 대비할 것인지 지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셋째, 빅 데이터와 ‘빅 브라더’를 같은 선상에서 연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빅 데이터의 생생한 자료의 출발은 각 개인들 삶의 로그 기록입니다. 빅 데이터가 나무보다는 숲을 지향하지만 개인정보보호 가치와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개인정보보호와 빅 데이터 활용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양립할 수 있는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정보에 민감한 우리의 경우 처음부터 법률과 제도적 보완을 통해 빅 데이터의 정보 수집범위를 확실히 정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빅 데이터는 기업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정책에까지 그 활용 폭을 넓혀야 합니다.

빅 데이터야말로 21세기 특성인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감소시킬 수 있는 구체적 도구입니다. 

빅 데이터 안에 세상이 있고 민심이 있습니다. 그 속에 정책이 있고 전략이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 실패를 줄여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국민과의 소통을 촉진할 수 있는 방안도 찾을 수 있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빅 데이터는 문명의 흐름을 바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에너지입니다. 누가 이 새로운 에너지를 잘 가공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갈릴 것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이제부터 전문가들이 앞장서고 여기 계신 분들이 협력한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도약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빅 데이터를 도약의 국가 에너지로 활용합시다.

그리하여 퀀텀점프하는 ‘빅 코리아’를 만듭시다.

오늘이 그 첫걸음입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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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古典> 

崔仁勳의 『광장』

피카소에게 피가 물감이었듯

최인훈의 잉크 또한 心血이었다

   

金炯旿(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이다. 그런 선언적 찬사가 전혀 과장되게 들리지 않을 만큼 『광장』은 전후 한국 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랬다, 『광장』은 1960년대 벽두에 그날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새벽 4시의 사이렌 소리처럼 잠든 의식을 뒤흔들어 깨우며 등장했다.
 

나에게도 『광장』은 육중한 감동을 동반하고 찾아왔다. 전율 그 자체였다. 내 청춘의 독서, 그 맨 윗줄에는 『광장』이 있다.

4.19 혁명의 해인 1960년 11월에 탄생한 『광장』을 내가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뒤 대학에 들어가 두 번쯤 더 그 작품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60년대와 70년대 학번 치고 『광장』의 세례를 받지 않은 인문학도가 몇이나 될까.

『광장』 이후 나는 한동안 최인훈의 소설에 매료되어 살았다. 『구운몽』『회색인』『총독의 소리』 등 어떤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보다도 더 예리한 시선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해부해내는 그의 작품들에 몰입했다. 작중 인물들과 더불어 고뇌하고 번민했다.


지금도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은 『광장』이 그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시대에 검열의 칼날, 판금의 덫을 용케 피해 왔다는 사실이다. 지하 밀실의 백열전등 아래서 남몰래 읽어야 했을 것 같은 소설이 햇빛 아래 광장에서 팔리고 읽혔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지하 시인의 『황토』와 『타는 목마름으로』, 현기영의 『순이 삼촌』,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 등 숱한 문학 작품들이 불온서적이란 오명을 쓰고 날개가 꺾였다. 남정현의 『분지(糞地)』는 반미 용공적이라는 죄목으로 작가가 구속까지 당했던 시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광장』은 어떻게 비켜 서 있었을까. 그 까닭은 아마도 검열자들이 『광장』을 이념적 선동보다는 러브 스토리와 철학적 사색에 무게를 두고 저울질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방적 찬양이 아닌, 남한과 북한을 양비론적인 시각에서 다룬 것도 방어막 역할을 했으리라. 아니면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예컨대 판금 도서로 묶어 버리면 지하의 필독서가 되어 훨씬 더 파급 효과가 커질 거라 생각해 애써 외면해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줄거리를 간추려 보자.

철학도인 주인공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혹독한 고문을 받은 뒤 ‘광장 없는 사회’인 남한을 탈출해 이북으로 간다. 그러나 그곳 또한 명준이 꿈꾸던 사회는 아니었다. 혁명의 탈을 쓰고 있지만 광장에서 밀실로 이어지는 길이 없고, 광장에는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꼭두각시 인민들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고 남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국립극장 발레리나인 은혜만이 유일한 삶의 이유고 희망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명준은 낙동강 전선에서 간호병이 된 은혜를 만나 사랑을 이어 나가지만 그녀는 뱃속에 명준의 아기를 가진 채 전사하고 만다. 전쟁 포로가 된 명준은 휴전 이후 체제의 선택권이 주어지자 중립국으로 가기를 희망한다. 이제는 좁아질 대로 좁아져 자신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면적이 전부인 광장에 서서 명준은 인도 캘커타로 가는 배를 타고 있다. 그 배를 따라오는 두 마리 갈매기. 그 모습에서 명준은 어느 순간, 숨진 은혜와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딸, 그 환생을 본다. 망명지는 정해졌다. 명준은 배에서 행방불명된다. 사랑을 찾아 바다로 몸을 던져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중립국도 아닌, 그들만의 광장으로 망명의 길을 떠난 것이다.

김현은 이 작품을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암초에 걸려 자살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 지식인의 외로운 자기 성찰”이라고 한 줄로 요약했다. 동의하고 공감한다. 다만 부연하자면 나는 주인공 이명준의 자살을 ‘망명’이란 단어를 써 표현하고 싶다. ‘사랑’에게로의 망명. 명준이 탄 뱃길에 동행하는 두 마리 갈매기가 암시하는 ‘연인 은혜와 사랑의 결실인 딸’, 그들과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이 고독한 청년은 바다로, 그러니까 하늘나라로 망명을 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체제 갈등이 없는 그 나라로….

 

『광장』은 그 동안 수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언급되어졌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직접 쓴 ‘1961년판 서문’만큼 이 작품을 간략하면서도 정확히 묘파한 서평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중 몇 줄을 옮김으로써 『광장』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고 한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 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이명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 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을 일컬어 “모두가 피로 그린 것”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피카소의 피는 ‘총천연색’이다.

나는 최인훈의 『광장』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피카소에게 피가 물감이었듯이, 최인훈의 잉크 또한 심혈(心血)이었다. 그에게 있어 『광장』의 집필은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다. 그는 ‘심장의 피’를 펜촉으로 찍어 원고지 위에 말렸다.

작가 스스로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 고백했지만, 최인훈은 정말로 애정과 집착을 갖고 『광장』에 매달렸다. 지난해 5월에 발간된 7판까지 공식적인 개작만도 무려 열 번째에 이른다. 그래서 초판과 7판은 여러 모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분량은 물론 내용과 문체, 단어와 토씨까지 확연히 달라졌다. 빼고 덧붙이고 고치고 바꾸고 다듬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판을 거듭할 때마다 서문을 다시 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에는 일곱 개의 서문이 실려 있었다. 『광장』은 아마도 텍스트가 가장 많은 작품이리라. 이는 세계 문학사를 뒤져 보아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 아닐까.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이런 말을 했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 나는 작가가 열 번을 고쳐 쓸 만큼 공을 들인 『광장』이야말로 두 번, 세 번, 아니 열 번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번이 네 번째 독서이다. 

통행금지로 상징되던 군부 독재 시절, 나는 나의 ‘밀실’에서 『광장』을 읽었다. 심금을 울리는 길고 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내 청춘의 새벽이 열렸다.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치인이 된 나는 ‘광장’과 ‘밀실’을 자유롭게 오가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노력해 왔다. 그것이 어쩌면 세상에 나온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광장』이 여전히 나에게 유효한 까닭이다.

그렇다,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한 『광장』은 우리를 억눌러온 이데올로기의 실상을 증언하는 문학으로서 그 존재 가치를 길이 빛낼 것이다. 아니, 통일이 되어 이념적 갈등에서 벗어난 뒤에도 『광장』은 스테디셀러로서 그 문학적 지위를 잃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광장』은 이데올로기와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벗들에게 세월이 흘러도 낡거나 퇴색되지 않는 이 매력적인 작품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2002년 서울 월드컵 때 나는 경기장과 거리를 온통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들의 물결에서 ‘밀실과 광장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보았다. 그 전까지 소설『광장』의 논리에 틀어박혀 있던 나는 또 한 번 전율했다. 그것은 들불보다 거센 기세로 밀실(IT·휴대폰)에서 전파된 하나의 혁명이었다. 순수하고 자발적인 파워로 문명사적 조류를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붉은 악마의 마력은 마치 블랙홀처럼 온 국민을 광장으로 빨아들였다. 대한민국 곳곳에 ‘콜로세움’이 세워졌다. 로마 시대에 수십 년의 역사(役事)로 건설된 콜로세움이 문명의 이기를 업고 단 몇 시간 만에 들어선 것이다. 광장과 밀실을 통합하는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그 물결의 발원지에 『광장』이 있다.

 

※<월간조선> 2011년 4월호 권말 부록에 수록된 글입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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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루펜슬 2011.03.22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인훈의 <광장>.
    1980년대 한때,
    나 또한 얼마나 그 광장에서 헤매며 길을 찾았던가.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이 탄생한다면
    고은도, 김지하도, 황석영도 아니다.
    마땅히 <광장>의 작가
    최인훈에게 그 영예가 안겨져야 할 것이다.
    <광장>이여, 영원하라.

  2. 망명시민 2011.03.22 16: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작에 걸맞은 명비평문입니다.
    <광장>을 다시 꺼내 읽고 싶어지는군요.

  3. 은둔주의자 2011.03.23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장]에서 [밀실]로
    [밀실]에서 [광장]으로.
    오, 나는 기꺼이
    최인훈이라는 감옥에 갇혀
    청춘의 한때를 서성거렸노라.

  4. 밀실의독서 2011.03.30 0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나 역시 밀실에서 읽은 것 같은 [광장]이 한 번도 판금 도서로 묶인 적이 없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지식인 소설에 대한 지식인 다운 평문, 잘 읽었습니다.

  5. 그라운드 2011.04.05 1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밤 책장을 뒤져 광장을 꺼내 다시 읽어 보렵니다

  6. 붉은악마 2011.04.05 1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장과 밀실을 자유롭게 오가고 넘나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의장님, 꼭 만들어 주십시오, 꾸벅.

  7. 왕그니 2011.04.19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밀실에 갇혀 있는 많은 국민들을 광장으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정치인들에게 있지요..^*^

  8. 민초 2011.06.28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광장은 시작된다.

  9. BlogIcon UGG Boots On Sale 2012.10.11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멋진 글에 '게임을 안하면 됩니다!' '그게 정답이다!!' 라는 리플을 달면 참 빈곤배 보이겠죠 ^^

  10. BlogIcon find a wedding guest dress on line for cheap 2012.11.02 1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광장은 시작된다.

‘지켜야 할 약속’과 ‘가야 할 먼 길’

김형오(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버킷 리스트>(모건 프리먼, 잭 니콜슨 주연)라는 영화가 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노년의 두 남자가 병실을 뛰쳐나와 여행길에 오른 뒤 살아생전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지우고 또 새로 만들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아 나가는 로드 무비이다.

한국 영화 <해바라기>(김래원 주연) 역시 교도소에서 갓 출감한 청년이 낡은 수첩에 적어 놓은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 배경에 깔고 있다.

이들의 수첩은 어떤 소망들로 채워져 있을까.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버킷 리스트>), 김밥 싸 들고 소풍 가기, 문신 지우고 대중목욕탕 가기(<해바라기>) 등 일견 평범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절실하고 소중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두 영화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버킷 리스트’는 크고 작은 ‘꿈의 목록’ ‘희망의 리스트’이다. 또한 나는 앞으로 이런 삶을 살겠다는 약속과 다짐, 의지와 신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길은 ‘행복’을 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버킷 리스트는 종착역이 ‘행복’이라고 적힌 여러 장의 티켓과도 같다.

 

영화 버킷리스트 포스터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서 해피엔딩의 주인공을 꿈꾼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고 싶어 한다. 내가 다녀간 세상에 무언가 의미 있는 흔적, 가치 있는 이름으로 남겨지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버킷 리스트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성취를 하려면 도전해야 하고, 꿈을 이루려면 꿈을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도달하지 못하면 어떠리.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훗날 적어도 그 꿈에 몇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버킷 리스트의 주인공은 김구 선생이다. 고등학교 때 『백범 일지』 부록으로 수록된 「나의 소원」이란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던가. 백범의 버킷 리스트는 오직 하나였다. 첫째도 ‘대한 독립’, 둘째도 ‘우리나라의 독립’, 셋째도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었다.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내 과거의 칠십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도 이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성하려고 살 것이다.”

 

나에게도 버킷 리스트가 있다. 크게는 손가락 다섯 개 안쪽으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소소한 것까지 나열한다면 웬만한 수첩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어떤 목록은 이미 이루어 지워진 것도 있고, 앞으로 새롭게 써나갈 항목도 있으리라.

나는 그 리스트를, 나의 소망인 동시에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나와의 약속도 있고 가족과의 약속, 국민과의 약속도 있다. 시대와의 약속, 역사와의 약속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남은 생을 온전히 이 소망을 이루고 이 약속을 지키는 데 바칠 생각이다. 그 중 몇 가지를 여기에 적어 본다.

 

영어 스피치.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뒤늦게 배워 보려고 애는 쓰고 있지만 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귀도 잘 안 들리고 입도 쉽게 안 열린다. 외교학과 출신에 국회 외통위 소속으로서 영 체면이 안 서는 노릇이다.

2010년 3월, 제122차 IPU총회 대표연설을 하는 모습


그래도 기회만 닿으면 나는 영어로 스피치를 하고 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개막된 아시아정당국제회의, 그리고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할 때도 영어를 사용했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주한 외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국내 행사에서 축사를 할 때도 나는 웬만하면 영어로 스피치를 하고 있다. 어느 날 그럴싸한 자리에서 그럴싸한 내용으로 적어도 5분은 머리를 숙이지 않은 채 (원고를 보지 않고) 영어 스피치를 하는 꿈은 그래서 내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을 차지하고 있다.

 

아내와 손잡고 여행 다니기.

바쁘다는 핑계로 좀처럼 가족 여행을 할 기회가 드물었다. 국회의장 재임 시절의 공식적인 해외 순방, 국정감사 기간을 틈탄 우리 땅 탐방에 몇 차례 아내를 동반한 것이 고작이다. 그때마다 소녀처럼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탐방의 결과물인 두 권의 책(『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을 쓰는데도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여행이란 투자 대비 효과가 아주 큰 ‘생산적 소비 활동’이다. 심신 건강 유지에도 여행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 정계에서 은퇴해 시간이 자유로워지면 아내와 손을 잡고 추억과 낭만, 충전과 활력을 얻기 위해 자주 길을 떠날 생각이다. 그 여행길에 가끔은 손자손녀들도 같이 데려가고 싶다.

 

『비잔틴 최후의 날』(가제).

이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써 보고 싶은 대하(大河) 장편실록이다. 그 작업을 위해 나는 수많은 자료들을 섭렵했고, 지도에는 없는 도시 ‘이스탄티노플’에 세 번 다녀왔다. 이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의 합성어, 내가 개념 짓고 명명한 도시이다. 현재의 이스탄불과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화해’와 ‘공존’의 상징 언어이다.

세계사의 물길을 바꾼 기념비적인 사건…. 1453년 이슬람 세력(오스만 투르크)이 기독교 세력(비잔틴 제국)을 포위한 채 총공격을 감행한 콘스탄티노플 전쟁은 세계 전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였다. 이 전쟁으로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서양의 세계사에서는 대단히 소홀하게 취급되고 동양의 사학자들은 별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 ‘역사적 대사건’의 집필에 감히 도전하고 싶다. 서양의 굴욕도, 이슬람의 오만도 아닌 진실의 편에 서서 써 보고 싶은 것이다. 나의 체력·능력·상상력·정의감을 남김없이 소진할 그런 시간이 주어지기를 나는 간절히 기대한다. 좀 더 자세한 내용과 취지를 알고 싶다면 내 블로그(www.hyongo.com) 에 들어와 보기 바란다. 

고향의 작은 집에서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기.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지만, 나이 들수록 고향과 옛 친구들이 그립다.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더욱 더 또렷이 보이고 선연하게 떠오르는 것이 어머니와 고향이다.

내 고향 고성에 작은 집을 짓고 채마밭의 푸성귀가 시들지 않을 만큼 자주 들르고 머물며 노년을 보내리라. 이미 늙어버린 어린 벗들과 어울려 밭에서 갓 따온 상추를 된장에 푹 찍어 막걸리 한두 잔을 나누는 것도 내 버킷 리스트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신을 지키면서 정치 발전 이루어 내기.

정치를 시작한 이래로 나는 언행일치와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다. 그 바탕 위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나라, 내가 만들고 싶은 지역구를 설계하고 실행에 옮겨왔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정치, 거짓말과 덮어씌우기를 안 하는 정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 국민과 함께 울고 웃는 정치, 이상만이 아닌 현실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신념을 최고 가치로 삼는 정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정치…. 나는 그런 정치인으로 내 정치 인생을 마무리 짓고 싶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의 흐름이 조성될 때마다 무력감과 좌절감이 찾아온다.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며 안간힘을 쓴다. 그러면서 ‘다시 웃으며 시작하자’ 다짐하곤 한다.

2010년 12월, 본오복지관에서

헬렌 켈러의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 보라. 내일이면 후각을 잃을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 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보지 못할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그렇다, 마지막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은 그래서 모두 소중하다. 『탈무드』에서도 “모든 날들을 생애의 첫날처럼 그리고 마지막 날처럼 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후회 없는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살다 보면 내 삶의 고삐가 느슨해지고, 신념의 나사못이 헐거워졌음을 느낄 때가 있다. 각성과 다짐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경구처럼 한 편의 시를 떠올리곤 한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이다. 그 시의 마지막 부분을 나지막이 읊조리면 새 힘이 솟으면서 나의 버킷 리스트가 다시금 살아난다.

“숲은 사랑스럽지만 여전히 깊고 어둡다. /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신동아> 2011년 4월호 별책 부록에 수록된 글입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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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라미스 2011.03.22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읽고 나니 나도 수첩을 사고 싶어집니다.
    나와의 약속, 가족과의 약속, 세상과의 약속을 하고 싶어집니다.
    호야님, 버킷 리스트 꼭 이루세요~~~.

  2. 선플라워 2011.03.29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를 웃게 하는 건 희망입니다"
    영화 포스터 카피가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그 희망을 무참히도 짓밟힌 한 젊은이,
    그 처절한 몸부림이 생각나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내 목에 밧줄이 놓이기 전에>란 책이 있습니다만,
    나는 인생의 <그린 마일>을 걸어가기 전에
    과연 무엇을 꼭 하고 싶고 해야 할 것인가,
    그런 것들을 이 글 읽으며
    다시금 되새겨 보았습니다.

  3. 갈림길 2011.03.30 0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버트 프로스트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이었을까.
    <가지 않은 길>이었을까.
    어떤 이들에게는 가지 않은 길이
    버킷 리스트로 남기도 한다.

  4. 저리보고 2011.04.01 0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언제부터 인가 "버킷 리스트"라는 단어를
    맘에 들었습니다. 저도 수첩에 나와 가족과의 약속
    우리 회원님들과의 약속을 "버킷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버킷 리스트의 크고 작은 "꿈의목록"을
    희망의 리스트, 또한 나는 앞으로 이런삶을 살겠다는
    약속과의 다짐,의지와 신념의 표현,이런 단어가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께 배우고 좋아 하게 되었나봅니다.

  5. 비스킷 2011.04.07 0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같고 바삭바삭 고소한 비스킷 같은 내 버킷 리스트를 위하여!

  6. 스마일어게인 2011.04.24 1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과 수녀님의 함박웃음이
    봄날 순백의 목련꽃처럼 참으로 화사하십니다.

앨범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다

김형오(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소설가 최인호씨가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란 제목의 책을 썼지요?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자식들 가슴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얼굴, 지워지지 않는 목소리로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 계십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드셨다’지 않습니까.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희생과 거룩한 사랑의 표상입니다.


내 어머니, 당신이야말로 그런 분이셨지요. 저는 오늘 앨범 속에서 어머니, 당신을 만났습니다. 빛바랜 사진첩을 들추다가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사진첩은 이야기첩의 다른 이름입니다. 일기장을 펼친 듯 추억을 새록새록 끄집어내 줍니다. 타임머신에 태워 과거로 데려가 줍니다. 어떤 사진은 오래 전에 해둔 메모처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또 어떤 사진은 어제 일처럼 너무나 생생합니다. 눈길을 뗄 수 없게 하고, 마음을 붙잡아 쉽사리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게 하는 사진들도 여럿입니다. 일제 강점기 할아버지께서 우리 고향 고성의 남산에 올라 벗님들과 찍은 사진, 해방될 때까지 만주에서 활동하셨던 아버지가 젊은 시절 동료들과 백두산을 등정하며 천지를 배경으로 찍은 늠름한 사진, 이목구비가 또렷해 왠지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색동 한복을 입고 찍은 제 돌 사진, 집사람과 데이트하며 찍은 사진, 양가 어른들과 함께 찍은 제 결혼식 사진과 폐백 사진….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 이렇게 드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좀 더 멋진 사진, 좋은 사진이 없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그 중에서 제 대학 졸업식 때 어머니와 찍은, 그때로서는 흔치 않았던 컬러 사진과 함께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이 제 눈길을 고정시켰습니다.

이 사진 속의 어머니는 지금의 제 나이 또래로 보입니다. 아니, 그보다 좀 더 젊은 모습입니다. 늘 저보다 한참 위인 것처럼 기억되던 당신이 저와 동갑내기로 인식되다니, 세월은 참 경이롭습니다.

부산시 영도구 영선2동 돌담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대학 졸업반을 전후한 어느 여름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 속의 저는 그 당시 유행하던 헤어스타일에 검은 선글라스로 멋을 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단정한 머리 모양과 옷차림새에 안경 너머로 단아한 웃음을 짓고 계십니다. 딸들이 ‘아빠 모습이 홍콩 영화 주연 배우 같다’면서 좋아했던 사진입니다. ‘홍콩 배우’ 옆에 서 계신 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입니다.

어머니는 보기 드문 미인이셨지요. 그 당시 흔치 않았던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꽃가마 타고 재를 넘고 물을 건너 고성으로 시집오셨다지요. 어머니 여고 시절 그 예쁜 사진들은 모교에 기증해 이제 마산여고 100주년 기념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겠네요.

어머니는 꽃 가꾸기를 좋아하셔서 크지 않은 꽃밭에 꽃들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장미를 좋아하셔서 돌담 밑에 심은 덩굴장미가 담장을 가득 덮으며 피어나곤 했습니다. 그 향기는 또 얼마나 그윽했는지요. 돌담을 따라 장미꽃이 만발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곧잘 한두 송이씩 꺾어 가곤 했지만 당신은 애써 모른 척하셨습니다. 꽃 좋아하는 사람 치고 절대 나쁜 사람 없다는 것이 당신 생각이셨지요.

아버지께서는 바닷가에 잘 자란다는 해송을 구해 심어 놓으셨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 제가 어머니 심부름으로 통영에 가서 사 온 야자나무도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지요. 어린 야자들은 어머니의 섬세한 손길 아래 무럭무럭 자라나 저는 방학 때 집에 오면 마치 제가 자란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돌담집은 제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여행길에서 돌담집을 만나면 당신이 마당에서 꽃을 돌보고 있을 것 같고, 돌담 너머로 “어머니!” 하고 부르면 반갑게 달려 나오실 것만 같습니다.

별이 총총히 켜진 밤이면 그 별들이 마치 어머니께서 가꾸고 돌본 하늘나라 정원의 꽃들처럼 여겨집니다.

어머니는 노년에 부산 근교에서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감․밤․배․살구․복숭아 같은 유실수도 가꾸셨습니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노년의 당신에게 농사는 낙(樂)보다는 노(勞)와 고(苦)에 더 가까웠을 것 같습니다. 갓 결혼한 저한테 손수 따서 포장한 과일 상자를 보내 주셨지요. 그때는 고마운 줄만 알았지 밭농사, 과일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기후가 안 좋아 작황이 시원찮다”라고 하시면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지요. 적지 않은 연세에 이미 몸까지 편찮으셔서 그렇다는 걸 몰랐으니 얼마나 미련한 아들이었는지요.

어머니는 편지 쓰기를 즐기셨습니다. 저한테도 그리고 며느리한테도…. 당신은 필체가 참 단아하면서도 활달하셨습니다. 한자를 즐겨 쓰셨고, 이따금씩 ‘시즌(잡곡 시즌)’ 같은 외래어도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어머니 글씨에 못 미치지만 필체만큼은 어딘가 당신을 닮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글도 저한테 쓴 편지였습니다. 병환 중에 있으면서도 어머니는 그 당시 첫 아기를 가져 배가 부른 며느리한테 부담이 될까 봐 알리지 말라 하셨지요. 그러면서 그 쇠약해지신 몸으로 제 몸보신하라시며 직접 처방해 지으신 한약을 편지와 함께 부치셨습니다. 아둔한 아들은 당신의 그 편지가 힘에 부친 몸으로 쓴 글씨라는 것도 뒤늦게야 알아차렸습니다. 어머니는 편지를 보내시고 바로 병원으로 가셨습니다. 다시는 걸어서 돌아오지 못하실 줄을 서울에 있던 저는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그로부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석가탄신일 전날 눈을 감으셨지요. 지금도 그 편지를 읽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왜 어머니께서 그토록 새아기(제 처)에게 극진한 사랑을 쏟으셨는지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결혼한 치 채 1년도 안 돼 병석에 누우신 당신은 이 둘째 며느리 얼굴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때 낳은 첫 딸, 어머니의 손녀는 그새 결혼을 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당신에게는 증손자, 증손녀입니다. 저도 덩달아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품에 손자손녀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면 당신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증손자, 증손녀 사진을 어머니 사진 옆에 나란히 놓아 드리렵니다. 아이들에게도 증조할머니 사진을 보여 주렵니다. 그리운 어머니, 여전히 제 마음 속에 살아 계신 어머니, 앨범 속 증손자, 증손녀와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2011년 1월 발간된 "海原 수필 동인지 - 파도밭을 건너며 제11집" 에 실린 '사진 한 장에 얽힌 사연' 을 소재로 쓴 글입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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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버 2011.03.08 1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 가득 감동이 밀물져 옵니다.
    용모도, 마음도 애틋하게 아름다운 어머니십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불멸의 연인>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 나도 불현듯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군요.
    먼 옛날 흑백사진의 추억 속으로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퇴근하면 아내와 함께 빛바랜 앨범을 열어 보렵니다.

  2. 물망초 2011.03.08 1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잊을 수 없는 이름 지울 수 없는 목소리. 내 어머니 가신 나라 달 돋는 나라. Forget you not.

  3. 김화자 2011.03.08 2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의 수필을 보고 저도 오늘
    어머니가 보고 싶어집니다.
    어머니는 잊을수 없는 얼굴! 지워지지않는 목소리!
    생생하게 살아 계시죠?
    정말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말에
    눈물이 핑 !! 수필 잘보고 갑니다.

  4. 감동의물결 2011.03.09 05: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야님이 미남인 건 어머니를 닮아서였군요.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돕니다.
    어머니는 눈물과도 동의어인가 봅니다.

  5. 순대국집아들 2011.03.09 1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저 보낸 어머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돌담집의 해송은 그대로 잘 있습니까?
    변함없는 소나무의 기품을 닮은 어머님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6. 이학희 2011.03.10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이 쫙 밀려옵니다
    평소에 존경스런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 이제기지게 펴시고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큰일 도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하세요!!!!!!!!!!!!!!!

  7. BlogIcon 김영철 2011.03.10 1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오형,
    문리대 세느강옆 마로니에 나무아래에서 형과 함께 나누던 어머님의 자식을 위한 희생적인 사랑을 곰씹으며 눈물을 훔쳐봅니다. 사랑합니다.!!!

  8. 수화 2011.03.10 1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가슴설레게하는사람이 어머님이시지요.변하지않는 마음 든든한 마음 언제나 내편이 되어주는사람 세상에 단 한사람 내어머님이지요.....

  9. 이병화 2011.03.11 05: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있는 정치인 김형오의장님! 정말 따뜻한 글을 읽었습니다. 항상 어머니 가슴같은 크고 넓은 지도자의 길을 가소서.

  10. BlogIcon 한향림 2011.03.16 16: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항상 가슴에 묻고 계시는 그마음이 전해져서 가슴이 저립니다. 아~ 저도 어머니께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따듯한 안부인사 한마디가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작은 효도도 못하고 지내다가 문득 문득 어머니 생각에 가슴에서 뜨거운 무엇인가 올라와 코끝이 찡해지곤 하죠. 의원님의 글에서 잔잔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업무보다가 잠시 가슴을 쉬게 해주었더니 새 기운이 나요. 아름다운 글, 잘읽었읍니다.

  11. BlogIcon 이상석 2011.03.17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님 글을 다 읽어 가자 두 눈에서 흘러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억제 할 수가 없었읍니다. "내가 이 나이에 눈물을 흘리다니...나 답지않은 일이다."며 감정을 억제하려 애를 썼으나 허사였읍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감지하지 못한 아둔함은 저도 마찬가지였으며 후회해본들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그 아린 가슴은 말로서는 표현이 안됩니다.눈물이란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는 신비한 물질인가 봅니다.마음의 온갖 더러움을 깨끗이 씻었읍니다.좋은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용마21회

  12. 마더 2011.05.08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어버이날, 빛바랜 앨범 속으로 나도 내 부모님을 만나러 가렵니다.

  13. 켄자스 2011.07.28 1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니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입니다.


지난 출판기념회 이후 많은 분들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를 구입해주신 덕분에 인터넷서점 YES24.com에서 주간베스트 국내도서종합 49위 / 문학 21위에 올랐습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많은 분들께 입소문이 난것 같습니다.
책 표지에도 쓰여있고, 출판기념회에서도 재차 약속드렸던 것과 같이 이 책 판매로 이루어진 모든 수익금은 도움을 필요로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이 아름다운 나라" 구입을 통해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 구입하러가기 ☞ YES24.com
(YES24.com을 통해 구입하시면 10%의 가격할인 혜택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

여러분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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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힘찬희망 2010.06.19 2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ㅡ 기쁜 소식입니다
    저는 한 권 샀지만
    또 한 권 사서 칙구에게 권하겠습니다,.

6월 16일에 있었던 김형오 의장의 저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의 출판기념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과 축하해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뒷정리를 하는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정신없이 출판기념회를 정리하다보니 블로그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마음으로 응원하고 축하해주신 분들께도 출판기념회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어 행사 모습을 올려봅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인사를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회를 맡아주신 강용석 의원님, 감사합니다.^_^


축사를 해주신 박희태 국회의장님, 감사합니다.^_^


축사를 해주신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님, 감사합니다.^_^

축사를 해주신 민주당 원혜영 의원님, 감사합니다.^_^


자리를 가득 메워주신 여러분께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님께서 서평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



희망탐방 중에 만난 해설사 세분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신 이정옥 해설사님. 감사합니다. ^_^


지난 책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에서 편지 수신인이었던 담양의 이정옥 해설사님은 이번 출판기념회에도 초대받으셨습니다. '한번 입을 열면 초승달이 보름달 될 때까지도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김형오 의장의 소개처럼 녹슬지 않은 입담으로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셨습니다.

좋은 말씀 나눠주신 박석홍 해설사님, 감사합니다. ^_^


"호남에 이정옥이 있다면, 영남에는 박석홍이 있다"는 소개로 자리에서 일어난 박석홍 해설사님 역시 개그맨 강성범이 보여주던 '수다맨'처럼, 재치있고 빠른 입담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신 말씀에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이나 방문할 만큼 김형오 의장이 각별히 생각하는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 박물관의 이문희 해설사님은 김형오 의장의 각별한 관심 덕분에 '반구대 암각화 전시관'이 '박물관'으로 승격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김형오 의장은 '선인들의 위대한 유산이 물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표현하며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지난 '희망편지 수익금'에 대해 어린이재단 김원진 사무총장님께서 그 사용내역에 대해 보고하였습니다.
수익금의 용도에 대해서는 "이 아름다운 나라"를 집필하기 시작할때부터 결정된 사항이었습니다만, 김형오 의장은  "이 아름다운 나라"의 수익금 역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사용할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했습니다.

"젊은 벗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읽고, 답신을 준비해 온 연세대 엄보운 학생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낭송해 준 이화여대 김진이 학생


피아노를 전공하는 김진이 학생은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하는 노래를 피아노 연주와 함께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이라 조금 떨려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김진이 학생



이렇게 초대손님들을 만난 후에,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다함께 노사연의 '만남'을 부르며 행사를 마쳤습니다.

모두 함께 합창을 하는 모습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_^


축하해주신 아름다운 여러분들 덕분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 출판기념회를 아름답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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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이 블로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지난 2009년 10월 중반부터입니다.

                                 ▲ 김형오 의장 블로그 <형오닷컴> / www.hyongo.com 

지난 10 여년간 대문 겸 명함 역할을 해온 홈페이지(
www.kho.or.kr)를 과감하게 정리하고,
Daum 티스토리에
www.hyongo.com 으로 새 단장을 한 게 지난해 가을 10월 15일이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블로그 오픈에 때맞춰 열린 국정감사기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민심(民心)을 돌보고 살피는 일을 <희망탐방 (2009년)>이라는 이름으로 실행한 바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김형오 의장이 직접 블로깅을 한 내용과 의장비서실 참모들이 팀블로그 형식으로 공동생산한 콘텐츠가 2009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Daum 티스토리>에 포스팅 되었던 것이지요.

김의장의 블로그 <형오닷컴 (
www.hyongo.com) >은 이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2009년 12월 1일 평균 방문자 수 5천 명 ~ 1만 명을 돌파해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물론 여의도 정가에서의 입소문도 만만치 않아서, 요즘도 다른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로부터 "블로그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느냐?"는 전화가 심심찮게 걸려오곤 합니다.

2010년 4월, 김형오 의장은 지난해 가을부터 블로그 <형오닷컴>에 자신이 직접 쓰고 올린 내용을 간추려내고 다듬은 뒤 , 여기에 전문가적 식견을 한껏 덧붙여 책 한권을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의 일이지요. 그게 바로 지난 4월 15일 출간된 < 이 아름다운 나라> 입니다. 



일단, 언론의 반응이 뜨겁다는 점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기사부터 보시죠~


문화해설사’ 김형오 국회의장, 국토 돌아보며 풍경을 전하다 (동아일보)

무량수전 옆으로는 부석이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거대한 자연 반석인 이 부석은 장미란 같은 역도 선수가 백 명쯤 달라붙어도 꿈쩍 안 할 것 같은 거대한 바위였습니다. 이 바위가 진짜 선묘 낭자의 분신인가요….”

마치 문화해설사와도 같이 구수한 입담으로 경북 영주 부석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 저자는 김형오 국회의장이다. 그는 구석구석 돌아본 우리 국토의 풍경을 책에 담았다. 홍보를 목적으로 펴내는 다른 정치인들의 책과는 결이 다른 에세이다.


꼼꼼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 방식의 서술은 전문 여행작가 못지않다. 서울 창덕궁의 대조전을 소개하는 대목에선 위트가 엿보인다. “임금님 내외가 사랑을 나눌 때면 그 양 옆방에서는 상궁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군요.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나요? 하지만 잠자리가 그리 편치는 않았겠구나 싶었습니다.”

 

▲ "온몸으로 세상을 향해, 온마음으로 젊음을 향해 던지는 새로운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 < 이 아름다운 나라>


김형오 국회의장, 2번째 국토탐방기 출간 (한국일보)

김형오 국회의장이 23일 두 번째 국토 탐방기를 펴냈다. 제목은 <김형오의 희망편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 지난해 펴낸 <길 위에서 띄운 편지>의 속편이다.
김 의장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과 벅찬 감동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그는 지난해 가을 국정
감사 기간 백령도, 울돌목, 반구대 암각화, 평화의 댐 등 전국 40여 곳을 순례했다.

글은 편지 형식을 빌었다. 수신인은 '서동설화에 관심 있는 분', '선묘 낭자에게', '정순왕후님에게' '열여섯 살 가야 소녀에게' 등 다양하다. 우표로 초록색 잎사귀를 붙였다.
방문지의 역사 유물과 유적 등에 대한 얘기와 감상을 틈틈이 메모하고 사진도 직접 찍었다. 탐방을 끝낸 뒤에는 관련 서적들과
전문가와 통화를 하며 부족한 지식을 채웠다




김형오 의장 두번째 국토탐방기 "이 아름다운 나라" 출간 (노컷뉴스)

문인이나 학자들 말고 정치인들도 책을 많이 내는 부류에 속한다. 주로 연말에 후원금을 모집하거나 선거를 앞두고 자신을 알릴 필요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낸 책들은 일방적인 자화자찬으로 꾸며져 있어서 읽기가 거북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국회의원들이 낸 책중에도 흙속에 진주처럼 값어치 있는 책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이번에 낸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 - 김형오의 희망 편지'도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 김형오 의장이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글 시리즈 < 젊은 벗들에게>의 일부  

  김형오 국회의장 국토탐방기 펴내 (백령도.해남 등 40여곳 순례) <한겨레>

김 의장은 지난해 가을 국정감사 동안 백령도, 전남 해남, 경남 남해, 평화의 댐 등 전국 40여곳을 순례하면서 느낀 단상과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한데 엮었다. 서해 백령도를 찾은 소회는 잔점박이물범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에 담았고, 해남에선 고산 윤선도에게 편지를 띄웠다. 울산 남구 신정시장을 둘러본 뒤엔 전통시장 상인들의 넉넉한 인심도 살폈다.

“경기 안산에 가서 다문화가정의 주부들을 만났습니다. 시계선물했습니다. 시차가 나는 낯선 나라에서 시계를 맞추듯 빨리 바뀐 환경에 적응하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다문화가정 여러분에게’)

“선생님은 정말 치열하게 작업에 매달리셨습니다. 어떤 날은 새벽 4시를 훌쩍 넘길 만큼 ‘마지막 한방울’의 힘까지 짜냈습니다. 선생님의 숨결이 깃들고 체취가 스민 미술관에선 마산 앞바다가 내려다보입니다.”(‘조각가 고 문신 선생님에게’)


 

어떻습니까? 지난 주말부터 각 신문,방송 Book 섹션에 실리기 시작한 김형오 의장의 책 < 이 아름다운 나라>에 대한 평가는 4월을 지나 5월을 넘어서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 "섬세한 감수성과 필치, 재치로 녹여낸 가슴 벅찬 설렘의 러브레터" 김형오의 희망편지 < 이 아름다운 나라>


그 사이 벌써 네티즌 리뷰도 제법 올라와있네요.


"졸졸 흐르는 시냇물 같은 아름답고 결이 고운 문장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친구가 소개해준 이 책이 너무 좋다. 친구야 고맙다~  "

혼자 보기 아까운 책이라는데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계시군요.

그래서, 형오닷컴 블로그에서는 <이 아름다운 나라>의 내용 일부를 약간 변형해 약 10편 가까운 시리즈 형식으로 네티즌 여러분들에게 재미나게 소개할까 합니다. 책을 구입해서 보시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라도 블로그 내용을 접하고 조금이나마 김형오 의장이 쓴 책의 향기를 느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럼, 이틀 정도의 간격을 두고 한 편씩 소개해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 오늘은 <이 아름다운 나라>에 대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형오닷컴>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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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니보이 2010.04.28 14: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조선일보 기사를 읽고 찜해둔 책입니다.
    작년 책도 좋았는데 이번 책은 더 기대가 큽니다.
    블로그 글만 보아도 빨리 읽어보고 싶어지는 걸요.

  2. 겨울연가 2010.04.29 1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아침 스포츠조선에서 기사 보았습니다.
    주말에 교보문고 들러서 살 생각입니다.

  3. 아름다운사람 2010.05.02 13: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볼 줄 아는 아름다운 눈을 가진
    당신은 진정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정친인입니다.

  4. BlogIcon 한감열 2010.05.03 0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멋있는분이 왜 가마귀 싸우는 골에가셨나요 (이 아름다운 나라를 읽고)

  5. 백조의 호수 2010.05.05 20: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까마귀 떼 가운데 백로처럼 있어서 더욱 돋보입니다.


각국의 정상들이 주고 받는 선물은 어떤 것일까요?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장에게 어떤 선물을 줬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각국 최고 지도자들로 부터 받은 선물들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니만큼, 상징적인 가치가만으로도 그 가격을 따질수 없을 것입니다.

국회에서는 오늘부터 전.현직 국회의장이 의회정상외교 활동 가운데 외국 정상들로부터 받은 선물류를 전시하는 특별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특별전 개막 축사를 하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

입장에 앞서 기념 테이프 컷팅~


이번 전시회에는 역대 국회의장들(제11대~17대)이 기증해 국회에서 보관해 온 선물/기념품 164점 가운데 37점과 김형오 국회의장이 기증한 170점 가운데 100점을 전시한다고 합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전시된 물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시된 선물들을 둘러보며 기억을 되새겨 봅니다.

김형오 의장은 개인적으로 소장할 10여점의 명예학위증과 훈장등을 제외한 모든 선물/기념품 170점을 기증했습니다.

텐진대학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받은 학위복(2009.11)
학위복 안쪽에는 이름이 수놓여져 있네요.

텐진대학교, 실사구시 족자 (2009.11)
(實事求是: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하려는 태도)


블루리본 메달(2009. 5.) 불가리아 소피아 대학

금장모형 선박(2009. 1)

장식용 칼(2004. 10) 말레이시아 순방중

말수레 인형(1994. 1.) / 중국 순방 중

중국과학원성(2004. 5.12) 국회 방문한 노용상 중국과학원장

올리브나무 액자(2010. 1.) 튀니지 상원의장 압달라 칼렐

체코제 그릇 (1979. 4.) 체코슬로바키아, 제124차 IPU 위원회

이 밖에도 각국의 정상들에게 받은 신기하고도 다양한 선물과 기념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행사는 오늘 4월 9일부터 4월 30일까지, 국회의사당 4층 로텐더 홀에서 열립니다.

국회에 오셔서 각국의 정상들로부터 받은 신기한 선물과 기념품 구경하세요~



클릭! ☞ 행사 소개하는 안내장 더보기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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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hoebe 2010.04.09 18: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아~~, 멋지네요. 가격은 얼마나 할지 몰라도 무척 가치있어보여요.
    뭔가 의미도 많이 있을 법한 물건들인데요.

    • BlogIcon 맹태 2010.04.09 2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저라면 기증하기 좀 아까웠을것 같기도 한데.. 의장님 말씀에 따르면 저 많은 선물을 개인이 보관하기도 힘들다고 하시더라구요. 국가의 정상이 주고 받은 선물을 창고에 꽁꽁 쌓아두는 것보다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도록 전시하는 것이 더 의미있으니까요..^^

  2. 순대 2010.04.10 1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혼자 다 갖고 싶었을텐데.....내놓기 아까운 것도 있었을텐데....암튼 보기는 좋네요.. ㅋㅋ

  3. BlogIcon 악랄가츠 2010.04.13 0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장모형 선박과 장식용 칼이 제일 탐나는데요! ㅎㅎㅎ
    딱 제 스타일이예요! 하하;;

  4. BlogIcon www.survetementpascherpc.fr 2015.04.10 1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수술을 맡은 미국 의사는 "어떻게 인대가 이 정도로 손상될 만큼 몸을 내버려두었냐?"며 자신이 여태까지 수술한 환자 중 가장 상태가 안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또 뭐 해 먹을까?'
주부 혹은 혼자 사는 자취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고민일텐데요.

'김치에 밥만 있으면 됐지. 뭘 더 바래.'
이러다가도 이왕 한 끼 먹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면 인생은 더욱 즐거워지겠죠?

한 끼 식사가 걱정인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오늘의 레시피부터 요리 과정 등 당신의 요리 실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 줄 아이폰 요리 무료어플 모음입니다.

1. 오마이 셰프 : 까칠셰프 이선균은 가라! 나에겐 나만의 셰프가 있다.

첫번째 소개할 요리 무료어플은 최고의 블로거 셰프들이 소개하는 맛있는 레시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오마이 셰프'입니다.

유명 블로그 요리사들의 레시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오마이셰프.


정말 이 어플은 무료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너무나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요리어플인데요.
국/찌개/탕/전골, 반찬/샐러드 등 일상 요리는 물론 손님상과 다이어트, 당뇨, 해장, 기념일 등 테마별 요리, 오늘의 추천 레시피까지,  때와 장소에 맞는 맞춤 요리 레시피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유명 블로그 요리사들의 친절한 레시피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제가 이 어플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능은 장바구니 기능인데요.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 중 없는 재료를 바로바로 체크해 장바구니에 담아둘 수 있어서
시장 볼 때 내가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너무나 편합니다.

2. Easy Recipes : 접하기 힘든 서양 요리를 비디오 보면서 따라해보자.

'오마이셰프'가 우리나라 요리 블로거들의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다면 'Easy Recipes'는 서양 요리사들의 요리과정을 비디오로 보면서 따라할 수 있는 무료요리어플입니다.
 

서양요리 레시피를 비디오로 볼 수 있어요.


이 어플의 경우 해외 레시피다보니깐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그런 요리들이 많이 소개되는데요.
그래도 비디오를 보면서 따라할 수 있어서 어렵지는 않은 편입니다.

3. Cooking Mama, Gourmania : 어려운 요리도 재미있게, 게임으로 즐기는 요리. 

요리 잘하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요리도 처음이 어렵지, 계속하다보면 실력이 늘어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고 먹을 사람도 없는데 요리만 잔뜩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요리는 하고 싶은데 직접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면?
걱정하지 마시고 게임으로 요리를 즐겨보세요.

쿠킹마마 게임. 제시하는 요리 과정대로 요리를 해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게임입니다.



쿠킹마마게임은 닌텐도 버전에서 처음 접했는데요. 간단하게나마 요리 과정도 알 수 있는 그런 게임입니다.

내가 직접 레스토랑의 셰프가 되보는 게임.


요리사들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레스토랑 주방장을 체험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손님들이 주문을 하면 제한 시간내에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요.
드라마 '파스타' 속 까칠셰프 이선균 못지않는 게임 속 레스토랑 주방장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포도봉봉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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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2 1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정말 요즘은 아이폰 대세네요!
    못하는 게 없어요! >.<
    전 안드로이드 살려고 줄 섰을 뿐이고....
    왠지 잘못 선 거 같고 흑흑..

  2. BlogIcon 달콤시민 2010.02.02 15: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에는 아이폰으로 다이어트 한다고 올리신거같은데..ㅋㅋ
    하긴 하시나요..
    아이폰때문에 다이어트 못하시것어요 ㅎ


▣ iPad nano?

미국 애플사는 얼마 전, 소문이 무성했던 iPad를 정식으로 선보였습니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국내기업의 반응은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럴법도 한것이 우리나라의 통신망으로 iPad의 장점을 살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타블렛PC의 사용이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플 특유의 부족한 확장성도 문제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외국의 반응도 썩 좋은 반응은 아닌것 같습니다.
이 패러디 광고가 "애플빠"들의 실망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패드 나노, 주머니에 쏙 들어갑니다. 아! 전화도 됩니다."

iPad가 iPhone의 크기를 키워놓은 것 뿐이라는 뜻입니다.
게다가 iPhone은 전화까지 되니, 굳이 휴대가 불편한 iPad를 선택할 것 없이, 휴대성 좋고 전화까지 되는 iPhone이 낫다는 말이죠.



▣ The Winner Takes It ALL

애플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애플은 문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Pod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도 클릭휠을 사용한 독특한 사용법을 제외하면 여타의 MP3 플레이어와 다를것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던가요?
iPod과 유사한 모양,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가진 MP3 플레이어가 이곳 저곳에서 등장했습니다.
오히려 iPod과 비슷하지 않은 디자인이 주목 받을 정도 아니었나요?

자동차 업계에서도 신차를 출시할 때면, iPod을 연결할 수 있는 커넥터가 장착되어 있다고 광고하기도 했습니다.
왜 삼성 Yepp 커넥터가 장착되었다고 광고하지 않았을까요?

애플의 로고가 온전한 사과(왼쪽)였다면, 과연 얼마나 마음이 끌렸을까요? (출처: 직접그림)
(벌레 먹은 과일이 맛있는 법이지요...ㅎㅎㅎ)

국내 타블렛PC 시장이 규모가 작고, 활성화 되어있지 않다고 하지만 iPad로 인해 그 수요는 증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요는 대부분 iPad에 대한 수요일 것입니다.)

iPad를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은 사용에 적합하도록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제서야 비슷한 타블렛PC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겠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미 iPad가 출시되었기 때문에, 타블렛PC 시장에 뒤늦게 뛰어드는 것은 수익면에서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나은 제품을 출시하기 위한 준비라면 의미 있을지 모르겠지만, 잘해야 본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중간하게 해서는 짝퉁 iPad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입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iCassette?: iPod은 '워크맨'으로 통칭되는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의 모습도 이렇게 변형시키기도 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iPad가 기대 이상의 판매를 이뤄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음... (아니면 어쩌지..;;;ㅋㅋ)

마침 어제 저녁에 보았던 뉴스 기사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문장을 클릭하면 기사로 이동합니다.)


예전에도 한번 애플과 관련해 포스팅했을 때도 그랬지만 (아이폰 출시...),
애플은 생각하면 할수록 .... 대단하다는 한마디로 표현하기엔 부족하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iPad 다음에는 무엇이 나올까요? 애플의 꿈은 어디까지 일까요?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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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hoebe 2010.02.02 0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울 남편 요즘 요거 알아보던데요.
    홍콩에 오면 전자상가 가자고 할것 같네요.ㅎㅎㅎㅎ

    • BlogIcon 맹태 2010.02.02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왕..홍콩은 그래도 이거 구입해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지원되겠죠? 국제적인 곳이니까, 그쵸??
      저는 iPad도 갖고 싶고, MacAir도 갖고 싶고,
      아 욕심은 끝이 없군요.ㅠㅠ

  2. BlogIcon 이상한 2010.02.02 1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탐나는 제품 입니다. 빨리 나와라 ㅋㅋㅋㅋ

  3.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2 1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득, 국회에 아이패드가 보급되면,
    의원님들 귀여운 모습이 자주 포착되겠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왠지 보급될 거 같아요! 앜ㅋㅋ

    • BlogIcon 맹태 2010.02.02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어렸을땐 상상화에 이런거 그려놓고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아이들은 상상화를 그리면 무엇을 그릴지 궁금하네요.
      국회의원님들뿐 아니라, 없이는 못사는 물건이 될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