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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1 백세시대] 인터뷰

김형오 전 국회의장 “비례대표의원은 힘 못써…
노인회가 후보 추천해 수십 명 보내야 해요”


5선 의원에 최연소 의장… ‘술탄과 황제’ 역사서 쓰려고 정치 포기
美회사와 휴대폰 특허료 소송서 이겨 ‘돈 벌어온 유일한 국회의원’


5선 의원에 국회의장인 정치인은 어느 날, 단지 책을 쓰기 위해 정치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4년여 각고의 노력 끝에 전쟁 역사서 ‘술탄과 황제’(21세기북스)를 펴냈다. 최근 한국과 터키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문화‧학술 교류행사에서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기조연설을 했으며 터키인들로부터 격려와 함께 격찬을 들었다. 김형오(70) 전 국회의장의 얘기다. 8월 초, 서울 마포의 개인사무실에서 만나 역사서를 쓰게 된 동기,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 그리고 노인에 대한 단상을 들었다.

-책이 더 중요했다는 말인데.
“제가 최연소 국회의장이었어요. 지역에 이렇다 할 경쟁자도 없어 다들 다음 선거에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제대로 된 책을 쓰려면 시간을 다 쏟아야 했어요. 정치를 계속하면 책 쓰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내용의 책인가.
“1453년 천년제국 비잔티움제국과 오스만튀르크 두 나라가 54일간 치른 격전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전쟁의 주역이었던 오스만의 술탄(메흐메드 2세)과 비잔티움의 황제(콘스탄티누스 11세), 두 사람의 리더십에 대한 치열한 탐구입니다.”


-책을 쓰게 된 동기는.
“2009년 터키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에서 배를 끌고 산을 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충격과 전율을 느꼈어요. 황제가 쇠사슬로 해상을 봉쇄하자 술탄은 함대를 이끌고 산을 넘어 공격한 겁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은 있지만 이건 역발상이랄까요, 너무 재미있어 완전히 몰입하게 됐어요.”


▲ 김형오 전 의장이 지난해 새롭게 펴낸 개정판 ‘술탄과 황제’(21세기북스).


-4년여를 고생했다고.
“우리나라엔 전쟁에 대한 자료가 없어 외국 책에 의존했어요. 약 100권의 책을 읽다보니 지식도 쌓이고 개중에는 수준 미달의 책도 있어 ‘내가 한 번 써볼까’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2년간 공부하고 2년간 썼어요. 하루 3시간만 자고 10시간 꼬박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 디스크협착증이 생겨 지금도 고생합니다. 눈도 급속히 나빠져 안경알을 3번이나 바꿨어요.”

-얼마나 나갔나.
“2012년에 초판을 내고 지난해 다시 개정판을 냈어요. 합쳐서 4~5만부 나갔어요. 인세 받아 이스탄불 체류하면서 들어간 여관비도 좀 빠졌어요(웃음).”

-책에서 말하려는 건.
“3가지로 첫째는 문명의 승화입니다. 문명 대 문명의 충돌에서 한 문명이 단절‧파괴‧멸절이 아니고 새로운 문명을 계승‧발전‧승화시켰다는 겁니다. 오스만튀르크는 비잔틴 문화‧유적을 그대로 남겨둔 덕에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돼 기독교도 보고 이슬람교도 보게 됐어요. 대한민국이 가야할 방향이 바로 그겁니다.”

두 번째는 ‘전쟁이라는 최종적이며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 지도자가 어떤 리더십을 보여야 하는가’를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술탄은 천재적인 머리에 강렬한 의지, 튼튼한 신체에 백전불굴의 경륜을 지닌 전형적인 고전적 리더십이다. 반면에 황제는 힘도 없고 싸움에서 이겨본 적도 없는 나약한 리더십의 소유자이다. 그렇지만 부하들은 황제와 함께 끝까지 싸우다 죽는다. 이게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눈물의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김 전 의장은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리더십은 술탄과 황제의 리더십을 합친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는 ‘국가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다. 흔히 국가는 영원하다고 생각하지만 국가도 언제든지 멸망할 수 있는 유한한 것이다. 지금과 같이 남북관계가 심각하고 동북아 정세가 미묘한 상황에선 우리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김 전 의장은 “한미동맹이 모든 걸 지켜주지 않는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 피를 흘릴 이유가 없다.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한미 관계를 강화하고 신뢰감을 좁혀가야 한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라는 생각을 버리고 국민도 각오를 단단히 할 때 비로소 핵‧미사일, 사드 문제도 해결된다”고 말했다.

김형오 전 의장은 경남중‧고교,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왔다. 동아일보 기자(3년), 외무부외교안보연구원, 대통령‧국무총리 정무비서관(15년)을 지냈다. 14~18대 국회의원과 제18대 전반기 국회의장(2008~2010)을 지냈다. 교통‧정보통신 분야 상임위에서 의정활동을 했다. 현재 부산대 석좌교수로 있다. 수필가로 등단해 ‘돌담집 파도소리’ ‘엿듣는 사람들’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등을 펴냈다.


-의정 활동 중 업적이라면.
“제가 ‘돈 벌어온 유일한 국회의원’일 겁니다. 미국의 한 회사가 CDMA라는 디지털 방식의 휴대폰 특허를 냈고 우리나라는 그걸 도입해 휴대폰을 생산하면서 세계 1위 생산국이 됐어요. 휴대폰이 팔릴 때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실용 특허료를 받기로 됐지만 미국이 이걸 주지 않았던 겁니다. 1997년에 미국의 회사를 상대를 소송을 벌여 3년여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아 밀렸던 특허료까지 합쳐 2억 달러를 받아낸 겁니다. 그것도 현찰로 말이지요.”


-대한노인회는 노인을 대표하는 비례대표의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가 의장 시절 고령화 사회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노인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만들어야 하는 건 맞는 얘기입니다만 왜 비례대표에요. 비례대표는 힘도 없고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큰 역할을 못해요. 각 당에서 1명 이상 못 주잖아요. 노인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수십명 만들어야 합니다. 노인회가 후보 추천을 하는 겁니다. 노인회가 ‘우리가 추천하는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이다’라는 말만 하면 돼요. 대신 후보로부터 국회의원이 되면 노인을 위한 법을 만들고 노인복지를 위해 애를 쓰겠다는 서약을 받아놓아야 합니다.”


-노인을 대표하는 정부 부처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우리 사회에 배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여성, 청년, 노인이에요. 여성가족부에 노인을 넣을 수 있지요. 새로 부를 만들면 다른 계층에서 또 요구가 쏟아질 테니까요.”


-노인자살률‧빈곤률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왜 이렇게 됐나, 원리원칙에서부터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가족제도에서 비롯된 문제예요. 자식에게 모든 걸 쏟아 붓고 정작 자신을 위해선 아무것도 만들어놓지 못했어요. 병들고 외롭고 가난하니까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됩니다. 노인이 외로운 건 노인문화가 없어서입니다. 제가 30년 전, 정치를 시작할 때 한 말이 ‘우리 시대의 경로당은 컴퓨터’라고 했어요. 이제는 인터넷 시대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며 가끔 경로당에 나가 몸도 부딪치고 살냄새도 맡으면서 시대 변화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김형오 전 의장은 인터뷰 끄트머리에 “노인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외롭지 않은 방법을 스스로 개척하고 개발해야 한다”며 “그림, 수필, 야생화 탐사, 여행을 하거나 그럴 여유가 없다면 하다못해 동네 전설이라도 찾아 나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오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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