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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주고 받는 선물에는 얼마만큼의 쓰레기가 나오나요?"




올해는 설날과 발렌타인 데이가 겹쳐서 '설렌타인 데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설이든 발렌타인 데이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선물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선물에 담긴 정성과 내용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이제는 거기에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생겼습니다.
바로 포장(포장재)입니다.




최근 들어 환경문제가 대두되면서 포장재의 재질과 사용량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죠.
우리가 선물을 받은 뒤 재활용하지 못한 포장재들은 금새 쓰레기로 둔갑하게 됩니다.

국내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의 30% 가량이 포장재에서 나온다고 하는데요.

일본 환경성 자료에 따르면, 과대포장만 억제해도
1가구당 연간 58.3kg의 온실가스 배출양을 줄일 수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지난 2009년 12월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는 '늘어나는 과대포장 어떻게 줄일 것인가?'
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토론에서 (사)자원순환사회연대 김태희 기획실장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과대포장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 포장이 과다하거나 문제가 있는 포장재를 사용
- 상식적으로 보기에 과대포장이지만 관련 규정이 없음
-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포장재 사용


(사)자원순환사회연대가 2009년 연말연시에 일부 백화점의 선물 과대포장 실태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포장공간비율 = 포장재 공간 - 제품 부피. 포장공간비율이 높을수록 과대포장에 해당됨)




표에서 드러나듯 여러 제품의 경우에서 내용물의 용적에 비해 과하게 포장재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품을 포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요?


함께 열린 '간편한 포장 날씬한 지구' 전시회(주최: 이두아 의원)에서는
'좋은 포장'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규정했습니다.


■ 좋은 포장 ■
▷ 친환경재질로 소박하게 한 포장
▷ 재사용, 재활용품을 이용해서 만든 포장재를 쓴 포장
▷ 제품용량은 같지만, 예전에 비해 포장재의 사이즈와 두께를 줄인 포장
▷ 포장재를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인쇄한 포장


그러면 실제로 우리 생활 속에서는 제품 포장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을까요?
위의 '좋은 포장'의 기준과 법규 기준으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연인들이 항상 기억해야 할(?) 날이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선물인데요.
'나쁜 포장'에 해당하는 과대포장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선물을 크게 보이게 하려고 재활용이 안 되는 포장지가 사용되었습니다.




왼쪽 제품이 '나쁜 포장 제품'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2가지입니다.
재활용이 안 되는 PVC소재로 포장을 한데다 포장공간비율이 높기 때문이죠.

상대적으로 오른쪽의 경우에는 생활에 재활용할 수 있는 바구니를 썼다는 점에서
'좋은 포장'에 해당되는 제품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나쁜 포장'과 '좋은 포장'의 몇 가지 사례를 더 소개합니다.
(◁◁ ▷▷ 표시를 누르시면 더 많은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기업들도 과대포장에 대한 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고.




종전에 비해 과대포장 개선의 사회 전반적인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대포장에 관한 개선이 아직 충분하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점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개선안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포장의 재사용성, 재활용 등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
▶ 제품생산단계에서부터 포장재 재활용을 고려한 생산이 가능하도록 규정 개정
▶ 포장재의 수거 및 재활용 비율을 증가시킬 수 있도록 법적 근거 마련
▶ 수거방식과 수거주체의 구체적 선정
▶ 포장재 변경시 상품의 원가 상승을 최소화할 만한 방안 모색



특히 유영석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다양한 형태의 제품에 대해 정확하게 포장 공간 비율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현재 적용되는 포장공간 비율 산정 방식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언급했습니다.

함께 참석한 김태희 (사)자원순환사회연대 기획팀장도
"포장공간 비율 규정에 명시되지 않은 제품은 과대포장될 가능성이 높다"라며
"포장재에 관련된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끝으로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소비자들의 인식도 함께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화려하지만 다량의 쓰레기가 발생하는 포장보다는 단아하지만 실속있는 포장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때
'과대포장'의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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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무릎팍도사에 이봉주가 출연했습니다. 속눈썹 이야기부터 황영조와의 관계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트랙을 돌며 두 팔 벌려 테이프를 끊을 것 같은 그가 은퇴했다는 사실이 저는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지구를 약 다섯 바퀴를 돌았다는 그의 마라톤 인생은 부상과 좌절, 재기와 투혼이 얽힌 한 편의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짝발과 평발 그리고 느닷없이 찾아온 온갖 시련을 묵묵하게 노력과 끈기로 이겨낸 것은 더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죠. 그의 마라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희망과 용기를 얻었고, 또한 인생을 배웠습니다.

그 가운데 '이봉주'하면 200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월계관을 쓴 그와 함께 보스턴 하늘에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듣는 순간, 새벽잠을 설쳐가며 중계를 지켜본 보람이 있었죠. 올림픽, 아시안게임이 아닌 마라톤 단일 종목만 열리는 국제 대회 중계를 저는 그렇게 열심히 시청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봉주와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세계 최고의 마라톤 대회에서 51년만의 쾌거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1897년에 처음 열렸으며, 올림픽 다음으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대회입니다. 1950년에 열린 이 대회에서 손기정의 지도를 받은 한국대표 함기윤, 송길윤, 최윤칠이 나란히 1,2,3위를 석권하며 화제를 모았다고 합니다.

이후 이 대회의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우리 나라는 무려 51년만에 이봉주가 왕좌에 등극하며 한국 마라톤의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문득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손기정옹 이후 황영조가 몬주익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던 장면이 떠올랐죠.

이봉주의 우승을 통해 미국-유럽권 마라톤 대회에서 한국인이 수상하는 장면을 본 것은 낯설면서도 특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51년 만이라니~




부상의 불운과 부친상의 슬픔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

2000년 2월에 열린 동경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자신의 최고기록이자, 역대 한국최고기록인 2시간 7분 20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올림픽을 앞둔 터라 많은 사람들의 기대도 부풀어갔죠.

그러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그의 뜻대로 되기는 커녕 오히려 큰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15km를 달릴 무렵 선수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졌는데, 아프리카 출신의 한 선수가 넘어지면서 이봉주와 부딪혔던 것이죠. 그 때문에 덩달아 넘어진 이봉주는 24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손에 쥐어야 했었습니다.

이봉주는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 연말에 열린 후쿠오카 대회에서 다시 2위를 차지하며 희망을 얻었고, 보스턴 대회 성공의 초석을 다졌죠. 당시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2000년 동경국제대회 등 여러 대회에서 2위만 해서 '단골 2인자'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독 일본에서는 성적이 좋은 편이었는데다 묵묵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모습 덕택에 일본팬들도 많이 늘었다고 하더군요.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웃을 일이 생기니 슬픈 일이 다가오고, 슬픈 일 다음에 기쁜 일이 생기는가 봅니다. 2000년 후쿠오카 대회의 호성적으로 간신히 희망을 찾는가 했으나 보스턴 마라톤 준비에 한창이던 때에 부친상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이봉주에게는 훈련에 차질을 빚게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대회 준비에 치명적인 시련이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는 결국 보스턴에서 월계관을 쓰고야 말았습니다. 어쩌면 하늘에서 그의 아버지가 도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황영조와는 또 다른 길을 걷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마라톤'하면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와 보스턴 우승자 이봉주를 떠올립니다. 동갑내기인 둘은 서로 친하면서도 또한 너무도 상반된 스타일을 갖고 있죠.

황영조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인터뷰도 쉽게 잘하는 편이지만, 이봉주는 내성적인 성격에 수줍음을 잘 타면서도 순수한 인간성이 매력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황영조는 이른 시기에 최전성기를 맞은 뒤 오래지 않아 은퇴의 길을 걸었지만, 이봉주는 대기만성형 선수로 오랫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죠. 시기적으로는 황영조의 퇴조와 이봉주의 부각이 맞물리는 부분도 있었는데, 두 사람은 동갑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바통 터치하는 형국으로 그들의 역사는 전개되었습니다.

실제로 황영조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에 뽑히지 못한 채 은퇴의 수순을 밟을 무렵, 자연스럽게 김이용과 이봉주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는데, 결국 승자는 이봉주였습니다. 이봉주에게 있어서 상징적인 성과를 꼽으라면, 바로 보스턴 마라톤 우승이었습니다. 이로써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마라톤은 황영조-이봉주의 역사로 굳어지게 되었죠.

두 사람 모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경력을 갖고 있지만, 황영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이봉주는 200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각각 우승하여 서로 다른 분야에 각자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마라톤'은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지만, 단일 대회로서는 보스턴 대회를 빼놓을 수 없거든요.

이렇게 서로 다르고 사연이 많은 그들이었지만, 이봉주의 아내를 황영조가 소개시켜줬다는 사실에서 그들은 경쟁자이자 친구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봉주는 평발, 짝발로 인해 물집이 생기고 발톱이 빠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봉주가 은퇴하고 나니 한국 마라톤계가 휑한 느낌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마라톤 뿐만 아니라 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스포츠는 그 어떤 분야보다 국민에게 힘이 되었고, 대한민국을 알리는데 앞장섰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은 2000년대에 걸맞는 기량을 요구하고 있지만, 체육 인프라와 투자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부끄러울 정도로 열악합니다. 앞으로 제 2의 이봉주를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부 기업들은 스포츠 스타가 급부상하면 당장의 광고효과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느껴져서 유감스럽기도 합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후, 51년만에 이봉주가 우승했는데,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선수가 다시 월계관을 쓰려면 반세기를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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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4 14: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봉주 선수의 발 사진을 보니,
    가슴이 먹먹하네요.
    항상 푸근한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무거운 태극기 마크를 달고 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04 1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힘든 운동인데도 고통을 감내하며 뛴 걸 보면
      외유내강의 성격을 가진데다 근성과인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2. BlogIcon gemlove 2010.02.04 1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이봉주 선수 발을 보니 눈물이 ㅠㅜ 신체적인 단점을 극복하고 그 자리까지 올라가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3. BlogIcon 탐진강 2010.02.04 2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봉주가 황영조 보다 친근감이 넘치죠.

지난 주말, 정말 오랜만에 친구 K를 만났습니다.
매일 야근에 쉬는 날 없이 일하다가 겨우 시간이 났다는 K는 다짜고짜 ‘살맛이 안 난다’며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나 아무래도 결혼 못 할 것 같다.”

그의 얘기인 즉 슨 지난 달 여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여자친구 부모님이 비정규직인 K의 고용 상태를 이유로 결혼을 반대해 현재 여자친구와도 관계가 소원한 상태라고 하더군요.

▲'나의 일자리는 어디에 있나? 나의 자리가 있기는 한 걸까?' 

대학 졸업 후 유학을 떠난 K는 외국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취업난에 나이까지 꽉 찬 K는 지원한 기업마다 번번이 낙방을 거듭했고 결국 한 중견기업의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해야 했죠.

K는 “지금까지 일하면서 한번도 일 못한다고 구박받은 적 없고 비정규직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일해 왔는데 요즘은 정말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다. 남들한테 인정도 받지 못하는 이 일,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뿐이야”라고 울분을 토하더군요.

그는 이어 “더 웃긴 것은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업무의 차이는 없는데 월급 차이는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야. 기본급 뿐 아니라 야근 수당도 정규직은 있지만 비정규직은 없어. 이러다보니 회사에서는 정규직보다 돈이 적게 드는 비정규직에게 일을 더 많이 시키고 야근이 계속되다보니 연애는 물론 자기 계발할 시간도 없지. 결국 비정규직에게는 결혼도 사치인 세상이야”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30대 비정규직에게 사치가 된 결혼.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는 K에게 여자친구와의 행복한 결혼은 물론 삶의 방향까지 통째로 들고 흔드는 족쇄였던 것입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우리나라의 어두운 미래.

통계청은 올해 9월 청년(15세~29세)실업률이 지난해 같은 달 보다 1.5% 포인트 상승한 7.6%라고 발표했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에 세계적인 경기침체까지 겹치면서 청년실업문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각계에서는 '벨기에'에서 시행했던 로제타플랜(청년고용할당제)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로제타 플랜이 궁금하시면 청년백수, 드라마와 영화 속 슬픈 루저들을 참고하세요.

▲지난 9일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한국형 로제타 플랜 가능한가' 토론회.

지난 9일 국회에서도 ‘한국형 로제타 플랜(청년고용할당제) 가능한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은 청년실업 해결의 구체적 방안으로 3가지 정책을 제안했습니다.

-청년실업 의무고용제 100인 이상 기업 5%적용

-사회연대형 고용창출형 노동시간단축방안으로 재편


-비정규직의 온전한 정규직화 전환계획

그렇다면, 100인 이상 기업을 기준으로 청년실업자 5% 의무고용이 적용될 때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의 수는 얼마일까요?

2005년을 기준 사업체수는 138만9138개이고, 이중 100인 이상 고용 규모의 기업은 1만231개입니다.
이 중 10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종사자 수 기준, 5% 의무고용을 적용하면 14만1533명의 청년실업자를 새로 고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14만 명이라는 고용가능 숫자는 청년실업자 층의 약 50% 수준으로 넓은 의미의 청년실업 해결 대상층 70만 명의 1/5수준이라고 하네요.

“아이들이 좋은 대학 가야 한다고 아등바등 하지만 결국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등록금 1000만 원과 청년실업의 현실, 비정규직의 헤어날 수 없는 함정이죠. 청년들의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면 안 됩니다. 이들이 곧 우리나라의 미래이니까요.”

이를 위해 청년고용할당제는 단순한 일자리 마련이 아닌 양질의 일자리, 즉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정규직 채용이 기준이 돼야 한다고 김성희 소장은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우리 사회 청년들의 꿈과 사랑, 미래의 행복이 저당 잡혀 있습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입니다.

Posted by 포도봉봉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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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싫다.. 2009.11.17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천에서 용난다는거는 정말이지 이젠 옛말이 되어버렸네요..
    노력하고 노력해도 타고난 재능이 엄청나거나 집안이 부유하지 않는 이상은
    아둥바둥해봤자 거기서 거기..
    능력보다는 연줄이 통하는 한국... 실력보다는 운...
    정말이지 차라리 외국가서 살고 싶네요-_-=3

  2. 산업역군 2009.11.17 0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내세요, 아 싫다님. 홧팅!!

  3. 뭉탕 2009.11.17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힘을 내세요 살다보면 좋은일이 일을거여요

  4. 내인생 끝인것 같다. 2009.11.17 1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2살 남성. 결혼포기한 1人

  5. 88만원세대.. 2009.11.17 1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8만원세대... 그렇죠... 타지생활하는데 기본 생활비... 아껴도 아껴도.. 40만원 정도... 오르는 물가에 치솟는 월세값... 식비.. 교통비... 결혼은 무슨....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드오~
    답답합니다.. 답이 없습니다... 정말...

  6. 이상한 2009.11.17 1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꿈꾸며 살수 없는 나라 ~~~

  7. 웃기네 2009.11.17 1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기보다 못한 처지의 여성과 결혼하면되지~ 최소 비슷한 직장에 비슷한 레벨 이상의 여성을 원하니까 결혼을 못하지 그냥 놀고있는 집도 없고 모아둔돈도 없는 오갈데없는 아가씨와 결혼하시오. 여자는 결혼하면 다들 직장 그만두라고 압박인데 당연히 자기보다 잘벌고 높은 수준의 남자와 결혼해야지 남자들이 눈높이를 낮춰야지 장가가고 싶으면~

    • BlogIcon PJW 2009.11.17 17: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끼 여보슈 !

    • 근데 2009.11.17 2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근데 어느 정신나간 남자가 그냥 놀고있는 여자랑 결혼하나? 어떻게 그런말을... 그건 욕인거같고. 적어도 비슷은 해야지 이상을 바라는건 욕심이겟고.

    • 정답대공개 2009.11.18 0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자건 여자건, 결혼은 사랑해서 하는거임.
      그 과정에 여러가지 조건을 따지겠지만, '조건이 비슷하다'고 해서 결혼하는건 아님.

  8. 최부랄 2009.11.17 17: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배 꼬였군...그런 식이라면 영영 힘들거요, 웃기네님...

  9. 12345 2009.12.01 14: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지금 그 입장이라 그런지.. 공감이 되는 글이네요..
    최선을 다해 일하는데 월급의 차이는 어마어마.. 정말 공감입니다.. 뼈빠지게 일하고 돌아오는건 소액의 급여와 고용불안정.. 게다가 윗사람의 무시.
    큰기업이든 작은기업이든 무조건 정규직이 되야 하는 현실인거 같습니다..

    • BlogIcon 맹태 2009.12.01 14: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12345님.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지미 카터
      후회 없는 꿈을 꾸는 12345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힘내세요..!
      어려움을 아는 사람만이 그 어려움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것도 사실 주제넘은 것이긴 합니다만...함께 힘냅시다..!! 화이팅!!


-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 복천박물관, 동래향교, 대한제강, 태광벤드 등 방문 -

김형오 국회의장은 10월 16일(금) “우리 땅 희망탐방” 여섯 번째 일정으로 전날 경남에 이어 부산을 방문, 노동계와 상공인, 문화계 인사들을 연이어 만나 고충과 애로사항을 듣고 산업현장을 둘러보았다. 이날 탐방에는 최거훈 국회의장 비서실장, 허용범 국회대변인, 정낙형 부산시 정무부시장, 안상영 부산시의원 등이 수행했다.

김 의장은 오전 첫 일정으로 부산 연제구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를 방문, 이해수 의장을 비롯한 지도부 20여명과 1시간여동안 정책간담회를 갖고 최근 노동 현안에 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김 의장은 이 자리에서 “과거 한나라당 시절 노동계와의 정책협의를 비롯, 여러가지 일로 밤새 숙의도 하고 논의도 했던 여러분들과 참 많은 인연이 있다”며, 노동계를 직접 찾아온 배경과 바람직한 노사정 관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정부와의 지속적인 대화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의장은 특히 본인이 해상노련을 통해서 한국노총의 명예조합원으로 활동해온 사실을 상기시키며, “해상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바다에서 근무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난 60년 동안 투표권 행사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것을 타개하기 위해서 십수년간 노력을 해왔고 결국 헌법불합치 판결까지 받아냈다”며 “이제 60년 동안 우리 해상노동자의 꿈이었던 주권행사, 투표권 행사가 이루어지도록 법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또 노조전임자 임금과 복수노조 등 노동계의 최대 현안이 되어있는 문제와 관련, “지금 노동계가 감정적으로 상기되어 있는 상황인데,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가 지속적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면서 “정부와 노조가 계속해서 서로를 설득하고 대화하며 바람직한 해법을 찾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국정감사가 끝나면 나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고 국회에서도 대정부 질문 등에서 핵심적 쟁점이 될 것”이라며 “노사화합과 국가경제를 위해 최선의 해답이 나올 수 있도록 나도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관심을 갖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지난 미디어법 직권상정 처리시 비정규직법은 제외한 것을 상기시키며 “당시 여러 곳으로부터, 심지어 한나라당으로부터도 비정규직법을 직권상정해 달라는 종용이 있었으나 내가 확신을 갖지 못한 법을 직권상정할 수는 없었다”면서,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한 소신이나, 비정규직법을 직권상정하지 않은 소신이나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이라며 “그런 결정에 대해 오늘날까지도 후회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이어 부산 동래구 소재의 ‘복천박물관’을 방문, 국보급 가야시대 발굴 유물과 전시실을 둘러본 뒤 동래향교를 방문했다. 김 의장은 이어 최상윤 한국예총부산시연합회장 등 부산의 대표적 문화예술인 20여명과 오찬을 함께 하며 지역문화 예술인들의 애로점 및 건의사항 등을 수렴했다.

김 의장은 이날 오후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신평·장림공단을 방문, 박수복 이사장을 비롯한 지역 상공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부산의 상징적 기업인 대한제강의 녹산공단 생산현장을 둘러보고 오형근 대표이사 등 임직원을 격려했다. 김 의장은 이어 세계 최고수준의 파이프이음새 생산업체인 태광벤드의 공장시설을 둘러보고 근로자들을 격려했다.

김 의장은 이 자리에서 “어떤 분들은 현장방문을 시간낭비라고 하지만, 나는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정리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국회의원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여긴다”며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가고 세계와 경쟁해 가는 국민과 기업인, 노동자들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김 의장은 “국회가 여야간 대립과 싸움으로 볼썽사나운 모습도 있으나 경제를 살리고 국가를 선진화시키는 데는 여야가 힘을 합치고 있다”며 “기업하기 좋은 지역 환경을 만들고 국가적인 지원을 위해 국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힘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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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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