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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고문·굶주림에 흔들렸던 백범, 위대한 투사도 보통사람이었다

 

 

서화동 기자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김형오 지음 / 아르테 / 41219800


악형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굶기는 벌이다. 배가 고플 대로 고픈 때에 차입밥을 받아서 먹는 고깃국과 김치 냄새를 맡을 때에는 미칠 듯이 먹고 싶다. 아내가 나이 젊으니 몸을 팔아서라도 맛있는 음식을 늘 들여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난다. (중략) 사람의 마음을 배고파서 잃고 짐승의 성품만이 남은 것이 아닌가 하고 자책하였다.”   

 

백범 김구의 초상화 /한경DB

 

김구 선생(1876~1949)백범일지(白凡逸志)’에 남긴 절절한 고백이다. 19111월 황해도 일대의 민족주의자를 모두 잡아들인 안악사건으로 전격 체포된 백범은 서울로 압송돼 모진 고문과 굶주림, 회유에 시달렸다. 매에 장사가 있으랴. 고문에 못 이겨 정신줄을 놓은 사이 제자 이름을 말해버린 뒤엔 혀를 물어 끊고 싶었다고 했다. 1947년 처음 국내에서 출간된 백범일지가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국민애독서가 된 것은 조국 독립에 평생을 바친 백범의 위대한 삶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나약함과 치부마저 숨기지 않은 진솔함 때문이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쓴 백범 가상 인터뷰다. 선생의 호 백범은 평범한 백성, 즉 보통 사람이란 뜻이다. 책 제목의 백범은 선생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다. 저자는 백범일지를 완전히 해부하다시피 해 보통 사람들의 질문에 선생이 답하는 형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60개의 질문과 답, 여기에 저자의 해설을 덧붙여 비범한 혁명가이자 진솔한 인간이었던 백범의 삶을 보여준다. 기자 출신답게 쉽고 간결한 문체로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황해도 시골의 상민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숟가락을 엿과 바꿔 먹은 개구쟁이 일화부터 동학의 아기 접주로 명성을 날렸으나 결국 실패했던 청년기의 좌절과 경험, 명성황후 시해를 복수하려고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 뒤의 옥살이와 탈옥, 유랑, 농촌계몽운동, 임시정부를 이끌며 분투했던 중국 망명 시절의 간난신고(艱難辛苦)가 책 전체에 담겨 있다.  

 

인상 깊은 것은 백범의 인간적인 면모다. 백범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두 차례의 투옥으로 어머니와 아내가 옥바라지를 하느라 모진 고생을 견뎌야 했다. 번번이 혼사가 깨져 서른이 넘어서야 결혼했지만 망명생활을 하느라 가족과 함께 산 세월은 짧기만 했다. 그나마 같이 살 때도 두 아들에게 아버지는 잠깐씩 다녀가는 손님 같은 존재였다. 대신 그에겐 임시정부의 동지와 식구들로 구성된 대가족이 있었다.



  

이들을 먹여살리며 독립을 준비하는 일을 백범은 달팽이의 등껍질처럼 지고 살았다. 하지만 백범은 단 한 번도 이를 탓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임시정부는 월세도 못낼 만큼 가난에 쪼들렸지만 백범의 몸엔 60만원이라는 천문학적 현상금이 붙었다. 임시정부 청사 임대료 1600년치를 내고도 남는 돈이었다. ‘움직이는 복권신세가 된 백범을 고발한 한인은 없었다. 저자는 백범은 그들에게 현상금 60만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고 설명한다.

 

백범은 또한 결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 나이, 지역, 출신 성분도 따지지 않았다. 19311월 백범이 상해 임시정부의 재무부장과 거류민단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한 청년이 찾아와 젊은 날 일본으로 건너가 여기저기 떠돌다 독립운동에 뜻을 두게 됐는데 상해에 가정부(假政府)’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다. 말의 절반은 일본어인 데다 행동거지도 일본인과 비슷했다. 가정부는 임시정부를 폄하해 부르던 말이었다. 다들 미심쩍어했지만 백범은 그와 우국담론을 나누며 의기투합했다. 그 청년이 바로 철혈남아이봉창 의사였다.

 

저자는 열린 마음과 애국 열정, 삿됨이 없는 정의감이 백범과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한 길로 가게 했다엄혹한 임시정부 시절, 배신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상해에서 수많은 애국자와 투사는 그렇게 태어나고 길러졌다고 평했다.  

 

백범일지 마지막에서 밝힌 대로 백범의 평생 소원은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었다. 그래서 백범에겐 일제의 무조건 항복이 복음이 아니라 비보였다. 일지에서 백범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고 했다. 향후 전개될 통일정부 수립 과정에서 외세 영향력이 커지고 우리 정부의 발언권이 약해질 것을 걱정해서였다. 주변 강국들의 영향력이 여전한 지금의 한반도를 보며 백범은 뭐라고 할까. 책을 읽는 내내 울컥한 마음을 진정하기가 어렵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2018-06-29 한국경제]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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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9 조선일보 : 최경운·이슬비의 뉴스 저격




"조국 앞에선 좌익도 우익도 없다통합의 끈 놓지않았던 게 白凡정신"




조선일보 최경운 기자 이슬비 기자




오늘의 주제: 金九 선생 서거 69주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 김형오 국회의장에 물었다

 

 

내년(2019)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임정(臨政)을 이끌었던 백범 김구(金九·1876~1949) 선생 서거 70주년이 되는 해다. '임정 100주년-백범 서거 70주년'을 한 해 앞두고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회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는 백범 기리기 사업에 나섰다.

 

백범 서거 69주기 날인 지난 26일에 즈음해 백범의 광복 후 국내 행적을 기록한 '백범의 길'을 펴냈다. 다음 달엔 임시정부 시절 백범의 행적을 좇아 중국 답사를 한다.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은 "온갖 고난 속에서 임정을 이끈 백범 정신은 조국 독립과 자유를 향한 희생과 헌신의 여정"이라며 "백범의 순수한 애민, 애족, 애국의 열정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최근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재구성해 풀어낸 책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출판사 아르테)를 펴냈다. 저자인 김 회장을 만나 백범의 삶이 갖는 의미를 짚어봤다.

 

백범이 독립투쟁에 나선 정신적 기반이 궁금하다.

 

"백범의 일생을 관통한 저항 정신은 어릴 적 양반의 핍박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상놈 신세 벗겠다는 '면천(免賤)' 의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망국을 겪은 백범은 '상놈 콤플렉스'에 머물지 않았다. 훗날 백범은 양반에게 분노와 증오를 품기보다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라며 통합과 개화를 강조했다. 저항하되 정신적으로 성숙한 평등주의자, 그것이 그를 독립투쟁으로 이끌었고, 수많은 분파와 갈등이 내재했던 독립운동 세력의 지도자로까지 끌어올렸다."

 

봉건적 세계관의 소유자였던 백범이 어떻게 혁명가가 됐나.

 

"백범은 17(1892) 때 양반이 되려고 과거에 응시했다. 하지만 당시 과거장은 대작(代作), 대필(代筆)이 다반사인 난장판이었다. 백범도 남이 대신 짓고 써준 답안지를, 그것도 효도하겠다는 생각에 아버지 이름으로 제출했다. 그러나 낙방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세상을 보고 개벽을 꿈꾸며 이듬해 동학(東學)에 입교했지만 우국충정과 분노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게 됐다."

 

백범은 이후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격분해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죽인 '치하포 사건'(1896)으로 인천감옥소에서 사형수로 복역한다. 감옥에서 백범은 개화에 눈을 뜬다. 고종의 어명으로 사형 집행을 면한 그는 이후 탈옥해 방랑하다가 기독교에 귀의해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 활동이 여의치 않자 중국 상하이로 망명길에 올랐다. 김 회장은 "백범의 표현을 빌리면 상하이 임정 시절이 '죽자꾸나 시대'였다면 충칭(重慶) 임정 시절은 '죽어가는 시대'였을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지난 25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는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김 회장은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희생과 헌신이라는 백범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했다


지난 25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는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김 회장은 우리 사회 지도자들이 희생과 헌신이라는 백범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백범이 임정의 지도자가 됐을 때 상황은 어땠나.

 

"백범은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청사 문지기를 자청했다. 그런 백범에게 도산 안창호 선생은 경무국장을 맡긴다. 하지만 임정은 시작부터 대통령 이승만을 지지하는 세력과 국무총리 이동휘 세력의 사상이 달라 갈등을 빚었다. 민주주의 세력과 공산혁명 세력의 대립이었다. 1921년 이승만이 상하이로 부임해 집무를 시작하자 이동휘는 총리직을 사직했고, 이승만도 결국 넉 달 만에 미국으로 돌아간다. 임정은 허울만 남은 채 좌·우익 갈등을 겪었다. 백범이 국무령에 취임하기 직전 2년 동안 6명이 국무령을 맡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백범은 1926년 국무위원 전원이 사직해 사실상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던 임정의 국무령에 취임했다. 당시 임정은 국무령이 내각을 이끄는 체제였다(백범은 1940년 임정 주석에 취임한다). 재정 상황도 최악이어서 독립운동 자금은커녕 청사 운영비조차 막막했다. 192069000달러였던 임정 수입은 19271445달러, 1928975달러로 줄었다. 임정이 나라 안팎의 독립운동을 지휘하기 위해 조직한 연통제가 일제의 탄압으로 위축된 탓이었다. 백범은 임정이 가진 권총 네 자루 중 두 자루를 팔아 운영비로 쓰기도 했다. 잠은 청사 빈방에서 자고 동포들 집을 기웃거리며 밥을 얻어먹고 지냈다.

 

침체한 임정의 독립투쟁이 되살아난 계기는 무엇이었나.

 

"백범이 조직한 애국단의 두 청년, 이봉창·윤봉길 의사가 벌인 의거(義擧)이다. 두 청년이 연이어 일으킨 의거는 일제의 이간계(離間計)로 악화했던 중국인들의 반한(反韓) 감정을 되돌려놨다. 두 의거는 백범의 '열린 마음' 덕분에 가능했다. 이봉창 의사의 경우 신원과 출신이 불분명하다는 주변의 우려가 컸지만 백범은 겉모습이나 나이, 지역, 출신을 따지지 않고 믿고 썼다. 백범은 애국 열정으로 독립투사를 길렀고, 그들은 기꺼이 조국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일본의 탄압과 감시가 옥죄어와 임정은 상하이를 떠나 충칭에 이르는 5000의 피란길에 오른다.


임정 국무위원들 -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다 1945년 광복을 맞은 조국으로 돌아온 백범 김구 선생(왼쪽 사진). 오른쪽은 백범 선생이 1935년 중국 자싱(嘉興)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당시 임시정부 국무령이었던 백범은 60세였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송병조·김구·조성환·차리석·이시영·이동녕·조완구 선생.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제공


100여 명의 임정 대가족을 광복 때까지 이끈 리더십의 비결은 뭔가.

 

"남녀노소가 뒤섞인 피란 행렬은 더디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백범일지' 어디에도 임정 식구들에 대한 불평은 없다. 오히려 대열에 합류한 이들에게 고마워하고 미처 동행하지 못한 이들에게 미안해한다. 아무리 멀고 힘들고 버거워도 등에서 임정을 내려놓거나 팽개치지 않은 것, 그것이 백범의 리더십이다."

 

대한민국은 곳곳에서 남·(南南) 갈등을 겪고 있는데.

 

"백범은 자유와 평등이 넘치는 조국을 갈망했다. 이를 위해 독립운동 단체들의 연대를 끊임없이 촉구했고 끝까지 좌·우익을 통합하기 위해 분투했다. '통합''연대'의 백범 정신을 지금 되살려야 한다."

 

우리나라 지도층은 백범에게 무엇을 본받아야 할까.

 

"백범은 임정 국무령과 주석을 맡은 지도자였다. 그런데 그 자리는 백범이 원해서나 바라서 한 게 아니었다. 가장 많이 희생하고 헌신한 사람이 백범이었기에 맡겼을 뿐이다. 특히 우리 정치인들은 백범의 희생과 헌신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임정 대가족의 피란길本紙, 내달초 그들의 발자취 따라간다

 

1919413일 중국 상하이(上海)의 프랑스 조계(租界) 지역에 둥지를 튼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윤봉길 의사의 4·29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나 피란길에 오른다.

 

백범이 이끈 피란 행렬에 동행한 이는 100여 명에 이르는 대가족이었다. 그 시절 백범은 일제(日帝)를 피해 중국 도시와 산하를 떠돌아다니는 달팽이 신세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피란길 지도


상하이를 탈출한 임정은 인근 저장성 항저우(杭州)로 이동했다가 1935년부터 자싱(嘉興), 전장(鎭江), 난징(南京)으로 옮겼다. 1937년 일제가 난징을 점령하자 임정 대가족은 다시 이삿짐을 쌌다. 창사(長沙)로 옮겼으나 일본의 공습이 본격화돼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창사를 떠나 기차로 피란 가는 임정 대가족은 일본군의 공습 때문에 가다 서기를 반복해야 했다.

 

임정 일행은 남부 광둥성 광저우(廣州)에 도착했으나 일본군이 광저우로 진격함에 따라 다시 함락 하루 전날인 19381020일 광저우를 탈출해야 했다. 40일 만에 류저우(柳州)에 안착했다가 몇 차례 더 피란 끝에 19409월 충칭(重慶)에 정착했고 거기서 해방을 맞았다.

 

피란길은 가혹했다. 동행한 일행 가운데 피란길에 병사(病死)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도 그중 한 명이었다.

 

본지는 다음 달 초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와 공동으로 임정 대가족의 행적을 따라 광저우~류저우 피란길 답사에 나선다.

 

 

 

 

[2018-06-29 조선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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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 서거 69주기 추모식사


오늘 우리 겨레의 큰 스승이며 참된 어른, 선각자이신

백범 김구 선생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걸음 하여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도

백범은 언제나 그리운 얼굴, 사무치는 이름입니다.

해마다 6 26일이 오면 우리는 잊지 않고 이 자리에 모여

옷깃을 여민 채 선생의 정신과 사상을 되새기게 됩니다.


백범은 암울한 시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외로이 맞서 싸우며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초지일관의 삶을 사셨습니다.

눈보라가 휘날리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으셨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한평생을 사셨기에 역설적으로 죽어도 죽지 않는,

살아 있는 역사로 남아 영원한 생명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안내인도 표지판도 불빛도 없는 멀고 험난한 노정이었지만

선생은 스스로 길을 내고 등불을 밝히며 고단한 발걸음을 내딛으셨습니다.

즐겨 쓰시던 시구처럼 오늘의 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하시면서 절대로 허튼 걸음을 걷지 않으셨습니다.

조국의 산하와 중국 대륙 곳곳에 피땀으로 얼룩진 얼과 혼을 새기셨습니다.


올해 서거 69주년 기일에는 특별히 뜻과 정성을 모아

백범 선생님 영전에 세 권의 책을 바칩니다.

밤이슬에 옷자락을 적시며 해진 신발을 신고

당신께서 온몸으로 헤쳐 가신 그 길을

전문 연구자 여덟 사람이 되밟았습니다.

당신의 숨결과 체온을 더듬으며,

흙 속에 바람 속에 숨어 있고 깃들어 있을

작은 무엇이라도 찾아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오늘 영전에 바치는 이 두 권의 책에 이어

선생님 서거 70주기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는 내년에는

·중 학자들의 합작으로 중국 대륙 답사기를 발간할 계획입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당신이 나고 자랐으며

망명 전까지 머물면서 일제에 항거했던,

또 환국 이후 통일을 열망하며 삼팔선을 넘었던

북녘 땅 답사기도 꼭 낼 생각입니다.


저 또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쓴 졸저 한 권을 선생님께 바칩니다.

어렵고 힘겨운 일에 부닥칠 때마다

김구 선생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하셨을까?”,

백범일지 안에서 길을 묻고 답을 찾던 경험이

이 책을 쓴 동기와 바탕이 돼주었습니다.

  

혼돈의 시대, 우리 젊은이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용기를 되찾는 데 백범일지를 풀어 쓴 이 책이

도움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자란 재주로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 공부가 부족한 탓에

선생께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두렵고 조심스런 마음입니다.


오늘 저는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19458, 그토록 갈망하던 조국 광복의 날이 왔건만

백범 선생님은 왜 오롯이 기뻐하실 수 없었을까요?”

향후 전개될 통일 정부 수립 과정에서

우리 국민의 의지, 우리 정부의 발언권보다

외세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셨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선생의 우려는 그대로 들어맞고 맙니다.


지금 한반도는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역사의 일대 전환점을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어렵고 안개 속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하셨을까요?


선생께서 역수어(逆水魚)의 패기와 기백을 가지라며

역설하신 말씀이 절실하게 가슴으로 밀려듭니다.

죽은 물고기는 물의 흐름에 몸을 맡겨 떠내려가지만

산 물고기는 목적지를 향해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는 뚜렷한 목적 아래 급류를 박차고 거슬러 올라가는

살아 있는 물고기가 되어야 한다!”

 

선생께선 또한 이 말씀을 필생의 경구로 삼으셨습니다.

절벽에선 붙잡은 가지마저 손 놓아 버려라!”

오늘 이 시대 지도자들이 이런 자세와 각오로

자기를 버리고 책임과 헌신을 다한다면

국민은 안심하고, 나라의 미래는 뻗어나갈 것입니다.

 

백범이시여, 꺼지지 않는 겨레의 혼불이시여!

언제까지나 밝게 빛나고뜨겁게 타오르며

조국의 앞날을 환히 비추소서.


갈등을 치유하고 분열을 봉합하며

화해와 통합으로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도록

우리 국민의 앞길을 바르게 인도하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께서 그토록 소원하셨던

완전한 독립, 곧 통일 대한민국의 새날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하는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



-2018 6 26, 

사단법인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김형오 삼가 올립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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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8 동아일보] 인터뷰


김형오 “백범, 치부조차 모두 드러낸 인간적 투사”



69주기 추모식에 ‘백범 묻다…’ 책 헌정

김형오 前 국회의장의 김구 예찬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27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백범일지에는 자기를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숱한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다시는 같은 전철을 밟지 말라는 간곡한 뜻이 담겨 있다”며 “이는 두 아들뿐만 아니라 온 겨레에게 전하는 당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 나라가 거저 생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얼마나 많은 눈물과 아픔으로 일구어졌는지를 지금 세대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백범(白凡) 김구 선생 제69주기 추모식에서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라는 책 한 권이 영정에 헌정됐다. 저자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현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장·사진). 


김 전 의장은 27일 “백범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다”며 “좀 더 친숙하고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백범을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재구성한 책. 보통사람들이 백범에게 가진 의문과 지적을 왜 그때 그렇게 했는지 백범이 직접 답하고, 여기에 저자가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제목의 ‘백범’은 백정과 범부, 즉 평범한 백성을 의미한다. 백범이 답하는 부분은 백범일지를 토대로 했다. 



김 전 의장은 “처음 책을 의뢰받았을 때는 내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 해도 되는지 고민이 많았다”며 “위대한 보통사람의 삶을 짧은 글에 잘 담을 수 있을지 걱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먼저 공부를 시작했고, 출간된 백범일지가 300여종이 넘어 다양하게 각색·편집된  관련 서적 수십 권을 놓고 씨름하느라 출간까지 3년여가 걸렸다고 한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공부하면서 치부조차 솔직하게 드러낸 백범의 인간됨에 감명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백범이 일지에서 “감옥에서 굶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있을 때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면 젊은 아내가 몸이라도 팔아서 아침저녁으로 맛있는 음식이나 사식을 넣어주면 좋겠다는 더러운 생각까지 났다”는 고백까지 했었다는 것. 김 전 의장은 “백범을 냉정한 투사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한편으로는 보통사람이면 밝히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사건과 생각까지도 숨김없이 고백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백범 가족과 동아일보의 인연도 소개했다. 백범은 일지에서 ‘1925년 상해에서 두 손자를 키우시던 어머니는 내 짐을 덜어주려고 네 살배기 막내 신을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셨다. (…) 내가 노자를 조금밖에 못 챙겨드려 인천항에 내리자마자 여비가 떨어졌다. 어머니는 동아일보 인천지국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셨다. 그러자 지국에선 상해 소식과 어머니의 딱한 형편을 기사로 읽었다며 서울행 차표와 여비를 드렸고, 서울에서 다시 동아일보 본사를 찾아가니 역시 사리원까지 보내드렸다고 한다’고 적었다. 


김 전 의장은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있었지만 일제의 보도통제로 국내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할 때 동아일보만 호외를 네 번이나 발행하고 이 의사 사진과 집을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추모식에서는 ‘백범 묻다…’ 외에 기념사업협회 차원에서 출간한 ‘백범의 길, 조국의 산하를 걷다(국내편)’도 헌정됐다. 백범이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거쳤던 장소와 사건들을 일일이 답사해 정리한 것이다. 김 전 의장은 “내년은 백범 추모 70주기,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내년에는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백범이 중국에서 활동한 지역을 중심으로 2부를 낼 계획이며, 3부는 북한 지역의 노정을 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2018-06-29 동아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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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을 바꿀 때가 왔다 (2부)

 

 

 

 

김형오 전 국회의장 (부산대 석좌교수)





을 바꾸지 않으면 공멸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물갈이정치를 마음속으로 원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선거 때만 되면 제철을 만난 듯 정치적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물갈이해야 될 은 갈지 않고 그 안에 있는 물고기만 갈아버렸습니다. ‘귀중한선량을 물고기에 비교하는 꼴이 되어버렸지만 물갈이가 아닌 물고기 갈이가 돼버린 것입니다.

썩은 물에 새 물고기를 집어넣은들 물고기가 온전히 살아가겠습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어라는 성경 말씀도 있지만 우리 정치는 헌 부대에 새 술을 계속 부은 격이 되었습니다.

 

우리만큼 인재육성 과정이나 기간에 문제가 있는 나라에서 새로운 인재들은 제대로 피지도 못하고 꺾이고 만 것도 이 잘못된 물갈이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물갈이 대신 판갈이라고 이름 붙이겠습니다.

 

정치판을 새로 깔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떤 참신하고 유능한 정치인이 들어가더라도 오염된 기존 정치판에서 성장하기도, 살아남기도 어렵습니다. 정치판을 바꾸는 데는 여·야가 없으며 청와대도 모두 함께 동참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는 누가 잘했고 잘못했다는 평판이 갈리지만, 결국 이 정치판을 책임진 3대 축은 잘못되면 모두 공멸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비극이 그분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정치권 전체에 해당되고, 나아가 우리 국민 전체에 비극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하루빨리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정치판 물갈이, 즉 판갈이를 위해 이 자리에서는 크게 몇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먼저 판을 갈려면 그 축인 헌법을 개정해야하며, 정치의 핵심 현장인 국회와 정당이 바뀌고 변해야 합니다. 또 법과 제도만 바뀌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운영행태와 정신자세를 꼭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실현될 수 있습니다.

 

개헌만이 살 길이다

 

개헌만이 살 길이다라는 뜨거운 함성으로 탄생한 87년 체재는 평화적 정권교체와 5년 단임제로 장기집권은 막았으나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무엇보다 87헌법은 유신잔재를 털어내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이 3권 위에 군림하듯 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합니다. 그러므로 87헌법을 고쳐야 하는 핵심은 대통령 권한의 합리적 배분과 조정입니다. 대통령이 사법부(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장의 임명권에 직접 개입할 수 있습니다.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방송통신위원회·감사원·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등 국민과 공직자, 언론과 기업에 직접적 규제와 규율을 정할 수 있는 기관들 중 일부는 독립기관으로, 일부는 객관성·중립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헌법기관과 각 부처의 독립성·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대통령 눈치 보는 기관이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하는 기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국회 특히 여당은 대통령 의사를 충실히 받드는 기관이 되어버리고 야당은 이에 반발하는 모습으로 자구책을 찾습니다. 한국 국회가 유독 투쟁적이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것도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결과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선 완화야말로 개헌의 핵심이고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대통령 5년 임기는 절대 권력자에겐 부족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취임하자마자 첫 과업이 전임 대통령 그림자 지우기입니다. 6번의 단임 대통령을 맞으면서 전임 대통령의 중요 정책이 계승된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87년 체제가 들어선 이후 한국은 중장기 계획과 비전을 잃어버린 나라가 되었습니다. 공무원이 직급이 높아지면 정권과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5년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고위직 공무원·산하기관 책임자급은 모두 옷을 벗어야 합니다. 정책의 단절에 이어 인재의 단절입니다.

정권 말기에 접어들수록 공무원과 산하 기관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새 대통령이 들어설 때까지 결코 나서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들이 찍히지 않으려고 몸보신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일을 하지 않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습니다. 나라의 경쟁력은 이래저래 뒤처집니다.

 

나는 지난 지방선거 이전까지 개헌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야당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방선거에서 개헌 이슈가 생기면 선거에 불리하다는 이유였습니다. 매사를 당리당략적으로 생각하는 이런 야당이 선거에 이긴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입니다.

개헌은 야당의 몫입니다. 개헌을 하더라도 현행 대통령 임기는 보장하되, 제왕적 대통령 행태에 정신적·심리적 제동을 걸 수 있었지만 야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더욱 힘 있게 국정을 밀어붙이고 야당은 더듬이를 잃어버린 곤충처럼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보수를 살리고 민주주의를 살리고 자유시장경제를 확충하고 국가가 중장기 비전을 갖고 미래로 나아가려면 개헌을 적극 추진해야 합니다.

청와대 비서실이 국정과 행정을 주도하는 것은, 3권 분립 정신과 맞지 않고 헌법에 없는 일입니다. 또다시 소극적으로 임하면 지난 번 폐기된 개헌안과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반() 시장주의적 내용의 개헌안이 통과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5년 단임제보다 훨씬 못한 8년 단임제가 될 것입니다. 개헌은 야당이 이 2년 동안 나라를 위해 해야 할 가장 우선적 과업인 것입니다.

 

일하는국회로 만들자

 

저는 국회에 들어가서 두 차례 강산이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여당 10, 야당 10년입니다. 여기서 대한민국 국회의원 자랑을 하자면, 학력, 경력 등 이력이 대단히 출중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내공과 명성을 쌓은 명망가들입니다. 어느 선진국도 우리처럼 화려한 스펙을 가진 분들로 구성된 국회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합당한 대접을 못 받을까요? 실력과 인품을 갖춘 분들이 모인 국회에 국민들은 왜 따가운 눈총과 핀잔을 보낼까요?

 

그것은 일하지 않는 국회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들은 왜 일하지 않을까요? 왜 그렇게 인식되었을까요? 국회에서의 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대통령과 정부는 틈만 나면 일하는 국회를 주문합니다. 국민들 눈에 국회의원은 무노동 유임금의 대표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국회가 공격을 당할수록 대통령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오르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일하는 국회는 대통령과 여당의 입맛에 맞는 법률안을 통과·처리하는 곳이 아닙니다. 일하는 국회는 법률안과 안건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의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 국회는 유감스럽게도 이 일을 등한히 합니다.

문을 열어 놓고 일하지 않습니다. 토론·대화·협상·논의가 없습니다. 정부 쪽에서는 산더미 같은 법률안이 낮잠 자고 있다고 하는데 선진국 의회도 법률안 처리율은 한국과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해당 법률안을 논의조차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연말이나 회기 말이 되면 후다닥 방망이를 쳐 처리합니다. 무슨 법을 어떻게 통과시켰는지 국회의원도 잘 모릅니다. 부실한 심사로 통과된 법이니 얼마 못 가 또 그 법률 개정안이 나옵니다.

그러니 일하는 국회, 즉 토론하고 대화하고 협상하는 국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야당이 이 점을 확고히 깨달아야 국민의 국회와 야당에 대한 인식이 변할 것입니다.

 

일하는 국회가 되기 위해선 우선 상시 국회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365일 의사당 문을 열어 놓고 대화·토론·토의로 여야의원들이 마주해야 합니다. 시장 바닥에서 주민과 막걸리 마시며 어울리는 국회의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정을 제대로 돌보는 선량이 요구됩니다. 국정심의를 소홀히 다루는 의원은 연임되고 열심히 국정에 임하는 선량은 도태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올해가 헌정사 70주년입니다. 70년 전 헌법을 만들고 나라를 세운 제헌의회 의원들은 1365일 중 320일 의사당 불빛을 밝히며 휴일도 반납한 채 국정에 매진했습니다. 화물차로 출퇴근하며 박봉에 가난했지만 애국심과 성실함, 선공후사와 멸사봉공의 사명감으로 헌신했습니다. 이러한 제헌의원들의 자세와 정신을 지금의 국회가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상시 국회는 곧 캘린더 국회를 말합니다. 1년 달력처럼 본회의, 상임위 등 모든 의사일정이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국회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다투는 것은 세계에서도 드문 일입니다. 국회가 오늘 열릴지 내일 열릴지를 국회의장조차 모르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의회 사무관이 짜는 회의일정을 우리는 교섭단체 원내대표 권한으로, 막후협상의 카드로 사용해서야 되겠습니까?

국민의 따가운 눈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남은 2년 동안 국회에서 열심히 국정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야당이 먼저 국회에 들어가십시오. 걸핏하면 보이콧 하는 추태는 더 이상 보이지 말기 바랍니다. 국회 안에서 치열하게(수준 높게, 품격 있게) 논쟁하고 정부·여당을 땀나게 하는 그런 야당 국회의원을 보고 싶습니다.

국회운영과 국회의원의 품행에 대해 수없이 지적하는데도 왜 고쳐지지 않을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다수 국회의원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나 국회윤리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한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 것입니다. 국회윤리위를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으로 구성하여야 하며, 독립적·중립적인 상설기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국회윤리위만 제대로 가동된다면 국회의원의 원내외 활동이 한 차원 다르게 행사될 것입니다.


[사진제공 : 오 마이 뉴스]

  

자유한국당, 완전히 뜯어고쳐야

 

14:2, 11:1. 야구 스코어보드가 아닌 선거결과표입니다. 아마추어 야구경기에선 콜드게임이 선언될 성적입니다. 사실 선거 전부터 민의는 콜드게임을 선언했습니다. 이변은 없었고 민심은 분명했습니다.

 

정권을 거저(?) 양보한 보수야당에게 재기의 집념, 오기조차 남아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1야당 대표가 선거 지원마저 하지 못하는 초유의 부끄러운 일도 일어났습니다. 대선 패배 이후 지난 1년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바로잡지 못한 야당 의원들의 책임도 큽니다.

정치를 오래 한 중진들은 무한 책임이 지워졌습니다. 또 초·재선의원들은 무슨 대의와 명분을 갖고 정치를 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심과 동떨어진 막말정당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정책제안 능력도 없는 무능정당으로 혹평을 받는데도 누구 하나 쓴소리, 직언하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막말정당의 오명을 어떻게 씻을 것입니까? ‘없어 보인다(싸구려다)’는 시중의 여론을 어떻게 극복할 것입니까? 개혁적 보수, 따듯한 보수, 합리적 보수를 외쳤던 결기는 사라지고 없어 보이는 보수’, ‘막말 보수’, ‘무능한 보수로 전락한 보수야당에게 과연 미래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문제를 떠나 반성하지 않고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이 탄핵되고, 두 분이나 구속되어 있는데 통렬한 자기반성과 책임지는 모습 없이 어물쩍 넘어갈 일은 결코 아닙니다. 요란하게 탈당했다가 소리 없이 복당하는 정치인에게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요. 책임지지 않은 당과 정치인에게 어느 국민이 지지를 보내겠습니까.

2/3를 얻을 것이라는 총선에서 어이없는 패배, 내부의 막장 싸움과 네 탓공방으로 소수당이 된 후 대통령 탄핵, 대선 패배, 그리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지방선거 패배로 4연속 패배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은 천막당사로 이사했습니다. 비상상황에서 당을 맡은 박근혜 대표의 끈질긴 요청으로 나는 그때 당 사무총장이자 선대본부장을 맡았습니다. 나는 내 선거를 포기하다시피하며 선거기간의 반을 지역구를 떠나 여의도 천막당사에서 보냈습니다. 당시 박 대표는 점심·저녁을 거르며 유세를 강행했습니다. “종아리를 걷겠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 앞으로 정말 잘하겠습니다.” 메시지는 간결했고 시종일관했습니다. 현역의원 중 유일하게 나 홀로 당사를 지켰으며 박 대표가 가끔 들리면 천막당사는 붐볐을 뿐입니다.

배를 구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의 심정이었습니다. 김구 선생께서 경구로 삼은 절벽에선 붙잡은 나뭇가지마저 놓아버리는각오가 당을 살려냈습니다. 60석도 안 되리라는 의석을 두 배로 건졌습니다. 정치적 기적이었습니다. 중진 국회의원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깨끗이 던져라, 그것이 정치를 살리고 어쩌면 쓰러져가는 당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재선의원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주변 눈치 볼 것이 아니라 당 개혁을 위해 어떻게 몸을 던질 것인가를 고민하고 몸소 실천해야 합니다.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정당개혁에 관해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먼저 자유한국당입니다. 한마디로 스스로 청산하십시오.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 책임정당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기 바랍니다. 보수정당의 핵심 논리는 책임성과 희생성, 그리고 끊임없는 변화·발전입니다. 책임지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데 누가 지지하고 기대를 하겠습니까? 인적청산은 필수적입니다. 이것 없이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다음으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입니다. 과연 집권당이 맞습니까? 집권 여당으로서 어떤 일을 했나요? 청와대 눈치는 보지 않았으며 청와대와 다른 소리를 내본 적 있나요? 야당과 협상을 주도적으로 했으며 야당에게 어떤 양보를 해서 국회를 정상화시킨 적이 있나요? 청와대와 정권 주도세력의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는, 편중된 지역과 출신·소속을 뛰어넘는 탕평인사를 요구하거나 인물을 천거하거나, 국정방향을 제시한 적 있나요? 왜 핵심요소에는 특정 인사, 특정 인맥이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나요?

 

국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정당을 먼저 개혁해야 합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민주정당·자생적 정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문제가 정당에 대한 국가의 자금 지원입니다. 마약같은 존재입니다. 정당 운영자금을 국가가 보조할 수 있도록 헌법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가 공고화된 선진국 중에 우리처럼 국민 세금으로 정당을 운영하는 나라가 과연 있을까요? 정당이 일을 안 해도 곳간이 나랏돈으로 채워지니 책임정당, 민의정당과는 더욱 멀어집니다. 국민으로부터 참담한 심판을 받은 야당이 진정 새롭게 태어나려면 국민의 혈세인 국고보조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삭풍 이는 모래 언덕에서 뼈를 에이는 아픔을 겪어내며 살아나야 합니다. 마약을 끊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다가갈 것입니다.

 

당론 또한 독창적인 정당문화입니다. 헌법은 정당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만, 당론의 형성과정은 불투명하고 그 결정은 엄격합니다. 우리 정당에서 소수 실세에 의해 밀실에서 막후에서 결정된 당론은 거부할 수 없는 철칙입니다. 의원 개개인이 독립성을 가진 헌법기관일지라도 소신과 철학을 앞세우기에는 부담이 큽니다. 그 소신의 대가가 정치 생명과 맞바꾸어야 하니까요.

 

정당이 국회를 구속하고 당론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속박하는 한 정치개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점 또한 새롭게 태어날 야당이라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능력과 재량을 발휘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번 대 참패로 공룡이었던 야당은 풍선 야당이 되었습니다. 바늘만 찌르면 터질 것입니다. 스스로 몸을 낮추고 줄어든 무게에 맞게 공기를 빼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정당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채택하는 제도와 흡사합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당 대표도 최고위원도 사무총장, 대변인도 없으며 오직 원내대표 중심입니다. 중남미나 아프리카·중앙아시아의 독재적·권위주의적 대통령제 국가에서의 정당은 우리 같은 모습을 취하며 대통령의 거수기 역할을 합니다.

대통령제를 취하면서 의원내각제적 형태의 정당, 결국은 권리 위에 잠자는 공룡정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야당이 주장하려면 한국정당을 어떤 형태로 가다듬어야 할지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합니다.

 

결어

 

할 말은 아직도 남았지만 이제는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참패한 야당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보수정당의 재건은 가능한 일인가요?” 여기에 대한 답을 얻으러 이 자리에 오신 분이라면 이미 충분히 제 소견을 말씀드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마디 더 하란다면 보수주의로 진보하라입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 나라가 풍전등화일 때(1909. 11. 17) 황성신문의 사설 제목(“보수주의로서 진보함이 佳良하다”) 입니다. 보수는 개혁하고 진보해야 합니다. 그러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1909년도처럼 말입니다.

자유한국당, 미래가 있을까요?” 쉽게 답변할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썩어 죽어야 합니다. 그런 각오가 되어있을까요? 국민들은 이른바 보수정치인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플라톤은 그의 국가(1347c)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자기보다 못한 자에게 지배당한다.”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 정치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보다 나은가요, 못한가요?

그럼 새로이 정치에 참여하려는 사람이 자유한국당이나 기존 정당으로 가야할까요? 제 생각은 그렇게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현 정당이 확고하고 확실하게 변하지 않으면 굳이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정당에 기대어 정치하고 출세할 생각일랑 아예 마십시오. 새 시대에는 크고 둔하면서 식성만 좋은 정당은 살아남기 힘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종대왕이 한 말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백성에게 먼저 시범을 보여 백성들이 믿게 하는 것이다.” (爲國之道 莫如示信, 세종7414)

 

국민이 믿을 때까지 모범을 보이기 바랍니다. 장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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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19 한국경제] 김형오 "한국당 중진들, 심청이처럼 깨끗이 몸을 던져라"


       [18-06-19 중앙일보] 한나라당 출신 전 국회의장이 정리한 '한국당 7죄'란



  [18-06-19 한겨레] 막말, 무능...보수원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말한 ‘한국당 7죄’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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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을 바꿀 때가 왔다 (1부)

 

 

 

 

김형오 전 국회의장 (부산대 석좌교수)

 

 

 

우리 정치의 좌표는 어디인가

 

동심의 세계에서 말문을 떼볼까 합니다. 초등 6학년용 학습지에 나와 있는 퀴즈입니다.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대립을 조정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활동을 (빈칸) 라고 합니다.” 빈칸에 알맞은 말을 쓰는 퀴즈입니다. 물론 답은 정치겠죠.

 

그럼 갈등이나 대립이 생기는 까닭은? 첫 번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사람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6학년 아이들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가 있다고 학습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정치 현실은 어떻습니까? 아이들이 배우는 정치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갈등 조장, 대립 첨예, 문제 쌓기... 갈 곳 잃은 정치, 표류하는 국회... 우리 정치 무엇을 바꾸고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우리는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알파고 쇼크가 얼마 전 일 같은데, 인공지능(AI)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침투해 있습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하고 변화의 속도와 규모를 가늠하기 힘든 새로운 차원의 문명, 4차 산업혁명은 세계경제질서의 재편을 예고합니다. 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생존경쟁에 돌입해 있습니다.

 

국제질서 또한 격동기 속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남북·북미 간 대화가 급행열차를 타고 질주하면서 중국, 일본, 러시아도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남북관계를 주목하면서 한반도는 새로운 안보환경의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러한 세계적 격변기와 시대적 도전에 대응해 대한민국은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는 대한민국 미래를 좌우하는, 우리 정치가 풀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입니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 정치의 좌표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고대 그리스 7현인 중 한 사람인 솔론(Sόlōn, BC 638~558)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자 합니다. BC 6세기 당시 아테네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나,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소수 귀족에게 부가 편중되고 농민들은 과도한 부채 때문에 점차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오늘날 양극화, 중산층 붕괴의 우리 상황과 비슷합니다. 사회적 불만은 커져가고, 아테네는 붕괴의 기로에 있었습니다. 이 위기에 솔론은 아르콘(집정관)으로 선임되었고 극심한 빈부 격차로 빚어진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솔론의 개혁을 단행합니다.

 

솔론은 귀족과 평민 간 어느 쪽 편에도 서지 않고 균형적·합리적 개혁정책을 추진하지만 불이익을 받은 쪽의 극렬 반대로 양쪽 모두로부터 지지를 잃게 됩니다(부자는 부채탕감 및 노예해방에 따른 손실, 농민은 토지 재분배를 하지 않았다는 실망에 따른 극단적 불만 표출).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10년간 유랑생활을 합니다. 솔론 없는 아테네는 당쟁이 격화되고 집정관 없는 무정부 상태(anarchy 시대)를 거쳐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독재)을 후에 겪습니다.

아테네의 솔론, 중국의 공자 같은 현인이 실패하는 것은 확고한 지지기반이 없었고 내 편을 확실히 챙기지 않고 인기정책을 쓰지 않은 까닭입니다.

현자도 풀지 못하는 정치를 저 같은 범인(凡人)이 해결할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다만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말함으로써 양쪽 모두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솔론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또 상처에 소금 뿌리고 관에 못 박는 짓을 하지 않나 싶어 씁쓸한 마음 가눌 길 없습니다만 여러분과 저의 아픔이 눈물이 되고 그 눈물이 새로운 탄생을 위한 자양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겠습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19일 서강대에서 열린 ‘대한민국의 보수,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보수정당의 혁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확연히 기울어진 정치판, 민심은 단호했다

 

이번 선거는 예상했던 대로 집권당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이래 역대급 압승입니다. 미니 총선으로 불린 국회의원 재보선도, 당적 없는 교육감 선거마저 진보 쪽의 완승입니다. 집권당의 완벽한 승리입니다. 청와대와 여권은 정책 추진과 집행에 더욱 탄력이 붙었고 야당은 존립의 위기에 내몰렸습니다. 이번 선거는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었지만 국민은 야당에 대한 심판으로 대답했습니다. 야권이 분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는 큰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먼저 여당은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못난 야당을 상대로 한 승리라 그리 즐거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여당의 승리요인을 꼽으라면 첫째가 무능한 야당 덕이고, 둘째는 문 대통령의 인기며, 셋째는 북미회담 등 남북한 평화 무드 때문입니다.

힘이 더 세진만큼 국정 운영에 대한 부담과 책임도 동시에 커진 것입니다. 독선과 독주의 유혹만 물리친다면 역대급 정권으로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국민만 바라보겠다.”는 겸손한 담화를 발표한 그 정신과 자세를 잃어버린다면 민심은 부지불식간에 돌아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울어진 정치판은 문재인 정부의 2~3년 차 집권기반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선거 약발이 보통 1년은 갑니다. 금년 내년이 문재인 정권 최고의 해가 될 것입니다. 이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이 기간 안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전쟁위기를 해소하고, 평화정착의 틀을 만든다면 문 정권은 내후년 총선도 그 후의 정권 재창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만해선 안 됩니다. 정권의 실패는 바로 자만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집권 3~4년 차가 위험합니다. 대통령의 실패 원인을 집권세력 내부에서 찾아보면 대통령 개인 능력의 한계, 집권당의 분열, 공무원의 반발입니다.

힘 있는 대통령의 독선·독주, 차기 대권을 둘러싼 집권당의 계파 갈등, 임기 중후반 공무원의 눈치 보기와 일손 놓기를 피해갈 수 있는 정권은 없었습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예외가 되길 바랍니다.

 

반면 보수야당은 생존과 몰락의 기로에 서있습니다. 전국정당으로써의 위세는커녕 전통적인 텃밭마저 뿌리째 흔들리며 지역정당으로 전락했습니다. 이제는 존립기반 자체를 걱정해야 할 형편입니다. 인과응보이고 자업자득입니다.

그러나 더 걱정스러운 것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사람들만 잔뜩 있고, 난국을 짊어지고 헤쳐 나갈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국민은커녕 몸 바쳐 일해 왔던 당원들이 선뜻 받아들일지 의문입니다. 실망을 넘어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당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을 연달아 배출한 과거의 영화가 무색하리만치 인물난에 허우적대는 대단히 초라한 행색입니다. 수권 능력은 차치하고 내부의 지도력 부재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결론적으로 작년 대통령 탄핵과 대선,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로 정치판은 한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어졌습니다. 왜 이러한 쏠림현상이 발생했습니까? 현 대통령과 집권당의 높은 지지율, 보수정권의 무능과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 정치적 기저효과, 모두 그럴듯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된 요인은 보수정당의 자승자박입니다. 새로운 인물을 키우지 못한 죄, 권력의 사유화에 침묵한 죄, 계파이익 챙기느라 국민 전체 이익을 돌보지 않은 죄, 야당이 된 후에는 집권여당에 제대로 싸우지도 대응하지도 대안 제시도 못한 죄, 교만과 오만, 막말과 품격 없는 행동으로 국민을 짜증나게 한 죄, 반성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죄, 희망과 비전 제시를 등한시한 죄 등등은 민심의 법정에서 심판을 받기에는 충분한 죄목입니다.

 

비극의 정치는 청산하고, 통합의 정치를 모색할 때

 

지난 10년간 한국 정치는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직전 세 명의 대통령 중 한 분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두 분은 구속되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비극의 정치, 비정상의 정치사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보수-진보 양 진영이 번갈아 정권을 잡으며 정치개혁정치보복의 널뛰기를 되풀이하면서 비극의 정치를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언제 종식될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은 무역경제 대국, 문화·스포츠 강국으로 국제사회에서 위세를 떨치는데 정치는 여전히 후진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1993년 문민정부 등장 이후 3차례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의 민주화 진보세력이 10, 이명박·박근혜의 산업화 보수세력이 9, 그리고 문재인 민주화 진보세력의 재집권이 그렇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우리 정치가 뭔가 바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리 긍정적이지는 못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 양대 정치세력은 권력을 잡기만 하면 내부결속을 강화하고 상대진영 허물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악순환의 조짐이 보입니다. 통합의 깃발을 들고 출발해 출범 1년이 지났건만 아직까지 해묵은 청산에 국정의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민주화와 산업화 두 세력은 한국 정치를 발전시킨 순기능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고질적이고 만성적인 갈등과 극단 대립은 국민 삶의 질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걸림돌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당리당략, 일방통행, 진영논리, 편가르기, 상대세력 손보기 등 양 세력이 1987년 이후 30여 년간 보여준 우리 정치의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오죽하면 정권만 잡으면 과거청산이 국정 1순위가 되고, 야당은 투쟁과 저항으로 날을 세워야겠습니까? 산업화·민주화 세력이 적대 관계입니까? 선배들이 그렇게 가르쳤습니까? 산업화·민주화를 위해 땀 흘리고 피를 쏟았던 선배들께 부끄럽지 않은가요?! 진정 양 세력에게서 통합의 리더십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입니까? 그간 정치판이 쌓아온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우리 정치판을 바꿀 생산적 정치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정신은 이어가되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통합적 정치 리더십, 바로 그 정치판 말입니다.

 

먼저 집권세력에게 주문하고 싶습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안고 있는 숙명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은 41% 지지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70%대의 굳건한 지지율을 올리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높은 지지율이 1년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당분간 지속될 것 같습니다. 역대 없는 일입니다. 그만큼 서민과 대중, 국민 밀착형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무엇인가 이루어야 합니다. 문 정부가 해야 할 당면과제는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가장 높은 지지율에 있을 때 미래비전을 제시하여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현재의 인기에 취하여 당면 현안만 챙기다 보면 곧 임기 중반을 맞이하고 그때부터는 급한 내리막길로 달리게 됩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종착역이 얼마나 쓸쓸했는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실패한 전임 대통령들을 답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일방독주, 코드인사, 측근비리, 포퓰리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민생을 꼼꼼히 살피고 경기(景氣)를 안정화하려는 정책을 펴야합니다. 그래야 집권 중·후반기에 치러지는 21대 총선과 그 이후가 보장됩니다.

특히 경제가 중요합니다. 세계경제 호황기에 유독 한국만이 침체를 거듭해서야 되겠습니까. 경제는 그야말로 경국제세(經國濟世: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함)입니다. 세금으로 메우는 정책이 성공한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경제가 잘못되면 인기도 지지도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낡은 경제관념에서 벗어나 새롭게 경제를 챙기는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비극의 정치는 이 정권에서 끝내야 합니다. 국민통합의 정신을 살려 야당과 부단히 대화하고, 반대 입장에도 귀 기울이고 국정에 일정 부분 반영해야 합니다.

이 정부가 대한민국 정치의 정상복원을 위해서 무언가 업적을 남겼다는 칭찬을 듣기 바랍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서 생긴 이념적·감정적 적대관계를 청산해야 합니다. 힘 있는 집권세력이 먼저 손을 내밀고 국민 대통합의 단초를 제공해야 합니다. 높은 지지율과 남북 평화 무드는 통합의 정치와 미래 지향적 나라로 행복하게 성장·발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혁 논쟁보다 앞서는 것들

 

<국가 안보는 왜 위협 받는가>

 

그동안 한국의 보수는 안보성장을 주도했습니다. 가난했고 냉전의 골이 깊은 시절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웠고 국가안보를 최우선적 가치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냈습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두 차례나 이뤄졌고 역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이 만났습니다. 영구적 남북평화와 비핵화가 목전에 다다른 듯 국민적 기대감은 높고 국제사회도 한반도 정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잠시 곁길로 빠져 이번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서 고대 그리스 장군이자 정치가인 테미스토클레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klēs, BC524~459)는 페르시아 전쟁 중 살라미스 해전에서 압도적인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한 전쟁영웅입니다.

 

페르시아 전쟁 대승 후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방위를 위해 성벽 건축공사를 주도합니다. 이에 육군강국 스파르타는 당연히 항의합니다. 즉각적인 공사 중지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아테네는 사절단 파견을 통해 회답하겠다는 약속을 하지요.

직후 테미스토클레스는 홀로 스파르타로 출발하며 신신당부합니다. “전력을 다해 성벽을 완성해라. 완성하기 전까지 다른 사절단은 출발하지 마라.” 스파르타에 도착한 테미스토클레스는 공식 사절단이 도착하기 전까지 일체의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며 버팁니다. 스스로 인질을 자처한 것입니다.

결국 성벽건설이 완료됐다는 보고를 받고서야 스파르타에 입장을 설명합니다. (성벽은 완성됐고 그리스 전체의 이익이 될 것이다. 스파르타는 불쾌했지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건된 성벽은 육군이 약한 아테네로서는 최상의 전략 무기이자 체제유지의 보루가 됩니다. 이후 27년간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자인 스파르타도 패자인 아테네도 지칠 대로 지쳐 테바이와 그 후의 마케도니아에게 모두 멸망하고 맙니다. 저는 테미스토클레스의 시간끌기와 전략적 사고가 이번 북미정상회담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북한은 우리에게 군사적 주적이었고, 그 개념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동족 간 전쟁의 상흔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이 여전히 살고 있고, 지금도 625전쟁의 참상을 학생들은 배우고 있습니다.

 

전쟁의 경험, 분단의 특수성은 안보를 중시한 보수 세력에게 유리한 정치적 토양을 제공했고, 심지어 반공의 국시는 철권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정치적 격변기에는 북한 위협론등 북한 변수가 부각되곤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수는 안보장사꾼이다, 선거 때면 안보위기를 조성해 국민을 현혹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중에는 북풍이 역풍으로 작용하여 보수정당 패배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미국으로부터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일각에서 분출되고 있고, 북미정상회담 후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발언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든든한 우산 안에서 성장과 번영을 갈구했던 한국 보수는 어리둥절합니다. 주한미군 철수 논란에 전전긍긍하고, 한미군사훈련은 중단해선 안 된다고 반박합니다.

그토록 강조한 안보를 위해 한국 보수정권은 무엇을 했나요? 예산투입과 제도개선은 충분했습니까? 북한의 군사적 위협 따위엔 무덤덤해도 될 만큼 국방력을 갖췄습니까? 만성화된 방산비리, 중복투자로 인한 혈세 낭비, 군대 내 인권과 복지에 대한 무관심, 군 사기 양양, 전문가 양성, 전략·전술개발은 제대로 했나요? 나아가 사회 지도층과 그 자녀들의 병역의무 회피 의혹... 표리부동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국력에 비례하는 군사력·국방력을 이룩하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북한의 침략위협을 분쇄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키우는 것은 보수정권의 의무였습니다. 본인이나 자식은 군대에 가지 않는 고위공직자, 정치인이 유독 보수 정치인과 그 정권에서 많다는 따끔한 지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제라도 자식 군대 보내기는 물론 군사력과 군인 사기 양양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군사력은 평화를 보장하는 확실한 수단입니다. 동시에 북한에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월한 쪽이 겁먹은 듯이 주춤거리니 약한 쪽이 큰소리치고 깔보는 것입니다. 현 정권을 비롯한 이른바 진보진영처럼 의 입장에서 접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대등하고 당당하고 공생공존의 입장에서 꾸준히 성심껏 접촉하자는 것입니다. 남북평화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면 우리가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주국방과 남북평화공존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보수의 근본 입장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로 가는 길입니다.

 

<치안과 안전은 왜 불안한가>

 

치안과 안전 역시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국가가 치안을 확립하고 나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지켜주기 때문에 국민은 세금을 내고 나라의 명령에 불편하지만 따르는 것입니다. 보수정당일수록 국민 생활 안전 확보를 위해 더 힘을 쏟는 것이 선진국의 역사·문화적 전통이며 오늘날도 통상적인 일입니다.

한국 보수정당이 집권할 때나 야당일 때나 치안을 확립하고 국민의 생명안전을 지켰다고 높은 점수를 줄 국민은 드물 것입니다. 오히려 제대로 챙기지 못해 지지층에게 실망감을 안기고 피해자들은 등을 돌리지 않았나요? 세월호 침몰에 쩔쩔매다가 정권 위기를 맞고, 강화해야 할 해경을 오히려 해체하는 일이 보수정권의 모습이 아니었던가요?

과격 시위로 몸살을 앓고, 경찰관이 얻어맞고, 주민은 불안에 떨고, ‘몰카도촬은 성행하고, 우범지역과 조폭은 늘고, 환경·위생·보건문제는 생명을 위협하는데 보수정당·정치인이 발 벗고 나섰다는, 맨몸으로 막아냈다는, 문제 해결을 위해 올인한다는 그런 소리·소문을 제발 듣고 싶습니다.

<성장의 뒤안길은 왜 어두운가>

 

한강의 기적은 국제사회에서도 칭송받는 한국 보수정권의 공적입니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성장신화 이면에는 분배의 그늘이 늘 있어왔습니다. 고도성장기 경제적 낙수효과를 기대했던 분배의 바람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저성장기로 접어들면서 오히려 양극화의 심화로 되돌아왔습니다.

양극화가 참여정부에서 점차 커졌다는 일각의 비판도 한국 보수에게 면죄부를 주지 못합니다. 이후 들어선 보수정권은 - 세계경제의 침체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성과우선주의에 매몰돼 4대강·자원외교의 치적 쌓기, ‘증세 없는 복지등 일방통행에 머물다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4대강, 자원외교 등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왜 국민의 외면을 받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보수정권은 성장과 분배의 양립 가능한 함수관계를 푸는 성공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현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 대표적인 경제정책은 성장과 분배의 고차원 방정식을 해결하는 해법일까요? 그리스 경제의 몰락에서 보듯 복지 포퓰리즘은 눈앞의 달콤한 과실은 될지언정, 결국 브레이크 없는 파국열차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시적·시혜적 대책이 나라 경제를 일으키고 국민을 잘 살고 행복하게 한 일은 어느 경우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야권은 어떤 대안과 대책을 제시했습니까? 당장의 서민 대중의 표 때문에 할 말도 못할 뿐만 아니라 어정쩡한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부패·무능한 보수의 민낯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정치권 속설이 있습니다. 실제 우리 정치에서 보수는 유능하지만 부정부패가 발목을 잡고, 진보는 도덕적이고 개혁적이나 경험 미숙의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유능=보수’, ‘깨끗=진보’, 이 공식도 이젠 공감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재벌개혁’, ‘기업 손보기가 유행어처럼 횡행하는데 노동개혁이란 단어는 실종된 듯합니다. 기업은 정부와 노조의 눈치를 보고 투자를 기피합니다. 세계경제는 호황기를 구가하고 미국·일본 등은 기업유치·투자가 늘고 생산성이 향상되고 실업률이 줄어드는데 우리나라는 고용절벽, 청년실업, 취업난에 허덕입니다. 미래 대책은 무엇인가요?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원전(原電)은 폐쇄하고, 반도체 호황기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국회가 서로 뒤질세라 규제·제한·허가·감독권을 남발하는 규제 천국에서 과연 활력있는 경제가 되며 미래 성장 동력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이럴 때 보수정당·정치인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요.

민주주의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과중한 사교육으로 주부·학생의 신음소리가 높습니다. 이른바 진보진영이 교육 평준화와 무상급식으로 환호를 살 때도 보수는 눈치 보기만 했습니다. ·우정권에 관계없이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은 성장하며 학원불패의 신화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념 이전에 나라와 국민이 중요합니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왔다고 자부하는 보수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 덤벼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표를 까먹어 가며 보수 운운하는 게으르고 무능한 가짜 보수에게 표를 줄 국민은 없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의 진전으로 도시 서민의 가계는 주름살이 지고 농어촌의 빈집은 늘고 있습니다. 전체 가구 수보다도 주택이 많은데도 집 없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1천만에 달하는 도시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선사하고, 내 집 앞에 구급차·소방차가 언제든 오갈 수 있도록 골목길을 넓히는 일은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굳이 따진다면 개혁 보수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골목길을 넓히고 내 집 마련의 꿈을 마련해주는 예산은 현재의 일시적·소모적 시혜비용, 임금살포 예산으로도 감당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기본적·구체적 대안조차 제시 못하는 보수에게 서민은 표를 주지 않습니다. 나라와 국민 전체의 삶을 따뜻한 눈으로, 인정 어린 마음으로 본다면 해답은 쉽고 분명히 제시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판을 짜야할 때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은 무능의 민낯을 보여줬습니다. 성난 민심의 촛불로 시작했고 결국 촛불에 의해 정권의 문을 닫았습니다. 지난 대선 이후 보수당의 행보 또한 무능함의 연장전에 불과했습니다. 자기희생과 책임이라는 보수 정신은 오간 데 없고 기승전 무능이 한국 보수정당의 현실입니다. 백척간두, 사면초가 상태에서 과연 보수정당이 재기할 수 있겠습니까? 과거 영국 자유당과 같은 몰락의 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반면 진보정권이라고 해서 보수정권과 처지가 다를까요? 개혁성, 도덕성을 내세워 자신만만하게 인선한 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했습니다. 그 후 문제 인사들이 계속 기용되는 것은 야당이 제대로 싸우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싸움은 주먹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해야 하는데 야당은 무엇으로 싸웠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합니다. 출범 후 1기 내각을 완성하는데 195일이나 걸렸습니다. 역대 최장 기간입니다. 인사 참사의 책임을 져야할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여권 차기 유력 대선주자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정치권을 떠났습니다. 잇따른 미투폭로는 진보세력의 도덕성에 물음표를 던집니다.

현 정권이 야당시절 세차게 비난했던 부조리, 도덕적 불감증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습니다. ‘내로남불의 전형입니다. 한국의 진보가 진보적입니까? 개혁적입니까? 그래도 보수정당보다는 낫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과거 보수냐 진보냐를 구분했던 이념적 선명성은 박물관에 보관해야 할 구시대적 유물입니다. 이념의 간판을 내리고, ‘흑묘백묘실사구시, 상생과 공존의 간판을 올려야 합니다. 정권유지, 선거승리에 집착하는 정치판이 계속되는 한 제2IMF가 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시대적 변화와 국민적 여망을 제도에 반영하는 새로운 정치질서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현재·과거의 집권층 모두 낡은 진보·낡은 보수의 틀을 던져야 합니다. 이념과 형식,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신인류들이 등장했습니다. 정치판을 바꿀 때입니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2부에서 계속)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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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특별좌담




"정치판을 바꿀 때가 왔다" 주제로 

김형오 전 의장 50분 기조 강연이 있습니다.


김광두 교수, 송복 교수, 김병주 교주의 원로의 제언 

각 당 국회의원, 원론인 등의 토론이 잇따릅니다.


일 시 : 6. 19(화) 13:45 ~ 18:00

장 소 : 서강대 남덕우 기념관 101호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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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소리 2018.06.19 1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넌 조용히 재야에 묻혀지내지 설레발처서 욕을 처먹고 그러냐? 너두 지금 얘들의 선배로서 자유롭지 않음을 유념하고 나대지말고 그냥 여생을 보내라.. 잘 생각해봐. 넌 어땠는지

[2018-05 서울대동창회 신문] - <명사칼럼> 김형오 전 국회의장


영웅은 죽어서 탄생한다



김형오 외교67-71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전 국회의장



김구, 절벽에 매달려 손을 놓다 


1896년 초봄, 기울어져 가던 나라의 한 청년이 어느 나루터 여관에서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두루마기 밑에 칼을 숨긴 일본인을 맨손으로 처단했다. 일인의 몸에서 나온 거금 800냥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눠 주라 이른 청년은 그 현장에 황해도 해주 텃골 김창수가 국모보수(國母報讐)를 위해 이 왜놈을 죽였노라고 방을 써 붙였다. 국모보수, 바로 민비(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 의해 무참히 시해되고 당시에는 시신도 찾지 못한 치욕과 분노의 사건(을미사변, 1895)에 대한 복수였다. 이로 인해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나라가 온통 들끓었던 해다. 김창수는 김구의 청년기 이름, 그의 나이 21세였다. 


김구는 일생의 스승이었던 유학자 고능선으로부터 이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더럽게 망한다 울분에 찬 훈시를 듣고 스승과 함께 눈물로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굳게 결심한다.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一死報國)하기로.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수십 번의 망설임 끝에 김구는 스승으로부터 각인된 평생의 경구(警句)를 되뇌며 최종 결심을 굳힌다. “절벽에선 붙잡은 나뭇가지마저 놓아버려라!” 그는 국모(명성황후)의 비참한 최후에 항거하는 조선인의 결기를 증명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던지기로 마음먹는다청년 김구를 일약 전국적 인물로 만든 치하포 의거는 그렇게 탄생했다. 


국모보수는 안중근 의사가 그로부터 15년 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며 내세운 15개 이유 중 첫 번째였다. 을미사변은 그만큼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던 것이다.


이봉창, 죽음으로 영원한 쾌락을 얻다 


내 나이 31, 그동안 온갖 쾌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영원한 쾌락을 얻고자 선생을 찾아왔습니다.” 일본인 행색의 노동자 이봉창이 첫 대면에서 김구에게 한 말이다. 그는 일본 천왕을 죽이겠노라는 결의를 밝혔고, 최소 1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김구의 지침에 따라 때를 기다린다. 이따금씩 자기가 공장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끼니도 거르는 가난한 임시정부 직원들에게 밥과 술을 대접하면서. 


그로부터 1년 후 첫 공작금이 이봉창에게 전해졌고, 며칠 지나 그는 김구를 다시 만났다. “선생이 허름한 바지춤에서 거금을 꺼내 제게 줄 때 눈물이 나더이다. 상해 조계(租界)를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선생은 제가 이 돈을 아무렇게나 쓰고 달아나 버려도 어쩌지 못하겠지요. 내 평생 이런 신뢰를 받아보긴 선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반드시 대업을 완수하겠습니다.” 이봉창은 도쿄로 가 천왕에게 폭탄을 던지고, 그해(1932)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윤봉길, 역사의 시계바늘을 움직이다 


사나이가 뜻을 세워 집을 나서니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丈夫出家生不還).” 사랑하는 처자에게 이 글귀를 남기고 망명길에 오른 23세 청년 윤봉길. 그는 이봉창 의거 직후 김구를 찾아왔다. 그가 채소 장수를 하던 상해의 홍구공원이 스스로 목숨을 던질 곳이 될 줄이야. 


1932429, 역사의 날이 밝았다. 윤봉길은 김구가 미리 부탁해둔 동포의 집에서 마치 새벽 일하러 가는 농부처럼아침밥을 든든히 먹는다그러고는 거사 자금으로 산 새 시계를 김구의 헌 시계와 바꾸자고 한다. 자기는 앞으로 몇 시간밖에 필요 없다면서. 택시를 타기 전 윤봉길은 주머니를 털어 차비를 내고도 여유가 있으니 염려 말라면서 가진 돈을 김구에게 건넨다. 김구는 목이 메어 작별 인사를 한다. “훗날 지하에서 만납시다!” 


그날 홍구공원의 일본 천왕 생일 축하 및 상해사변 기념식은 윤봉길 의거로 인해 대한민국의 독립 투쟁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미국인 피치 씨 부부 집에서 은신하던 김구가 성명서를 발표할 때까지 윤봉길은 갖은 고문 속에서도 배후를 밝히지 않았다. 두 눈을 가린 채 형틀에 묶여 원수의 나라 하늘 아래에서 총살당한 그의 품속에는 나무 십자가가 동행했다.


자기희생과 헌신으로 불쏘시개가 돼야 


위 세 편은 백범일지를 중심으로 엮어본 것이다. 김구와 이봉창윤봉길, 이 세 사람은 서울 용산 효창공원 안에 묘소가 모셔져 오늘도 지하에서 나라 걱정을 하고 계시다. 안중근 의사 가묘도 그 옆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전설적인 트로이 전쟁의 영웅, 반신반인(半神半人) 아킬레우스는 영원히 죽지 않는 편안한 길과 죽을 수밖에 없는 영웅의 길 중에서 후자를 택한다. 그렇듯 영웅은 죽어야 하고, ‘영웅적 죽음으로 생을 마감해야 비로소 영웅이 된다. 영웅 흉내만 내려 하거나 결과가 아닌 동기와 과정으로 영웅 대접을 받으려 해서는 일도 그르칠 뿐만 아니라 평도 나빠진다. 


바야흐로 남북 간에 새 시대 새 역사를 여는 영웅적(?) 대화가 시작됐다. 잘하면 한반도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세기의 영웅이 탄생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웅은 반드시 사후(死後-事後)에 탄생한다는 것이다. 떡과 과일부터 챙기려 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나라의 안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온몸과 온 마음을 던져야 한다. 그래야 영원히 살 수 있고 영웅도 될 수 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또 언제나 오는 것이 아니다. 왔을 때 전력을 다해 매진해야 한다. 지금이 그 기회이다. 


그러나 그 앞에는 수많은 도전과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 시대를 되돌아보며 결코 실패한 영웅들의 전철(前轍)을 되밟지 말아야 한다. 자기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성공도 못하고 영웅도 되지 못한다. 남북한의 평화 통일, 김구 선생이 역설한 나라의 완전한 독립이 영웅들의 애국심과 희생적 노력을 불쏘시개 삼아 마침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꿈꾸어본다.



[2018-05 서울대동창회 신문] 기사 원문 ☞ 바로보기 ☜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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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금요일(4월 13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제99주년 임시정부수립 기념식 및 임시정부선열 추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나라의 주권이 뺏긴 상황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중국에 임시정부를 설립하여 독립을 위한 길을 모색하며 투쟁했습니다. 세계 어떤 민족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랑스런 역사입니다. 행사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올립니다. 

  김구 선생께서 일생을 바쳐 헌신한 임시정부가 내년이면 수립 100주년이 됩니다. 선조들의 애국·애족 정신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전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진 제공 : 뉴스1


사진제공 : 국가보훈처


사진제공 : 조선일보


사진제공 : 한겨레


사진제공 : 김구기념관



사진제공 : 김구기념관


사진제공 : 김구기념관


사진제공 : 김구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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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 이데일리]


김형오 “靑·與·野, 5월말 개헌안 합의 후 9월1일 표결하자”



“정기국회 첫날 여야 표결 후 국민투표 부치면 윈윈” 

“대통령제 하려면 부통령 두고, 총리 두려면 국정통할권 확실히”

文대통령에 “헌법 발의권, 유신헌법 소산…이제 그만하라”


         김형오 전 국회의장(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27일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개정안 내용 및 개헌안 투표 시기를 둘러싼 정국 갈등에 “5월 말까지 청와대와 여야가 개헌안에 합의하고 9월 정기국회 첫날에 국회에서 표결하자”고 해법을 제안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헌법개정 국민주권회의’ 주최로 열린 ‘대통령 개헌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토론자로 나서 이같이 밝혔다. 


김 전 의장은 먼저 “개헌을 해야 하는 이유는 명명백백하게 대통령의 권한 줄이기를 위해서”라며 “현재는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임기 후반으로 가면 식물 대통령으로 형편 없이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결국 감방에 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형식만 삼권 분립이지, 대통령의 일권이라 견제와 균형이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  


선출방식 논란이 벌어진 국무총리를 두고는 “세계의 총리를 보면 분권형 내각제의 실세 총리 아니면 미국 외에 대통령제 취하는 나라의 껍데기 총리 이렇게 두 분류”라며 “국회 답변용 총리가 아니라 국정통할 기능을 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의장은 “헌법 어디에도 청와대 비서실이 없는데, 총리와 국무위원이 청와대 비서실의 지시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며 “이런 국정운영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떤 유능한 총리, 각료가 임명돼도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특히 권력구조 개편 방향을 두고는 “대통령제는 선하고 다른 제도는 악하다는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대통령제가 잘되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고, 의원내각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잘되는 나라는 수없이 많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에도 쓴소리가 이어졌다. 김 전 의장은 “대통령의 헌법 발의권은 그렇게도 증오하고 싫어한 유신헌법의 소산”이라며 “좋은 헌법을 만든다면서 나쁜 조항을 쓰려면, 압박용으로 끝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을 향해 “개헌을 안 하려면 계속하되 개헌을 정말 원한다면 이제 그만 두라”고 일갈했다. 


김 전 의장은 “국회의장을 비롯한 의장단, 상임위원장들의 임기가 끝나는 5월 말까지 청와대와 여야가 개헌안을 만들고 정기국회 첫날에 표결한 뒤 절차에 따라 국민투표 하도록 합의하자”며 “그러면 청와대와 여야가 한발씩 양보해 대승적 차원에서 윈윈하고 제대로 된 개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헌안에 담길 내용으로는 “감사원 같은 독립된 헌법기관에 대통령이 인사 개입을 할 수 없게 하고 검찰과 경찰, 국세청, 국가정보원, 방송통신위 등에도 대통령이 인사 개입할 수 없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대통령제를 하려면 부통령을 도입하든지, 총리를 두려면 국정통할권을 명확히 해야 한다”며 “국정운영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고 국회의 책임성과 윤리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전 의장은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냈으며, 지난해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장을 역임했다.



[2018-03-27 이데일리] 기사 원문 바로가기 클릭




[2018-03-28 동아일보]



“靑與野 개헌안 한발씩 양보, 5월까지 합의해 9월 투표를”




원로-학계 ‘대통령 개헌안’ 토론회 


“5월 말까지 여야와 청와대가 개헌안을 모두 합의합시다. 9월 정기국회 첫날 표결하고, 9월 중에 국민투표에 들어갑시다. 여야와 청와대가 각각 한 발씩 양보해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헌법,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봅시다.”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통령의 개헌안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 참석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이같이 강조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대통령 개헌안 발의 직후 “지금으로부터 한 달 내로 국회가 단일안을 만들어내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개헌) 시기는 조절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전·현직 국회의장이 모두 대통령 개헌안을 대체할 국회 개헌안 마련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김 전 의장은 오전 10시부터 이어진 이 토론회에서 대응 방향을 놓고 종합 토론을 하기 시작한 오후 3시경 토론회에 나와 정치권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 국회의장으로 재임하던 2008년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를 상기시키면서 그는 “10년 동안 허송세월했다. 4분의 3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개헌하자고 했는데, 지도자 몇 사람이 털면 됐을걸…”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김 전 의장은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줄여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 중 처음으로 웃으며 청와대를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도 했다. 토론회에 참석하기로 했던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갑자기 몸이 아파서 불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진보성향 이홍훈 전 대법관은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먼저 개헌안을 국회에 발의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국회에서 합의한 안을 의결해야 한다. 상당히 국회 책임이 무거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법관은 대통령 개헌안에 기본권 보장에 있어서 충분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5·18민주화운동 등을 전문에 추가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헌법 전문은 많이 수정하지 않는 것이 선례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추가해야 하는 것인지 한 번 생각해볼 필요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해서 헌법 전문에 맞게 표현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대법원장 권한과 관련해 이 전 대법관은 “대법관 임명과 관련해서 현재 헌법을 조금 더 가다듬어 (대법원장)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 좋은데, 다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쉽지 않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앞서 전문가 토론에서는 권력구조 개편 방향을 놓고 찬반 의견이 오갔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의 경우 오히려 의회를 통해 정부를 한 정파나 총리가 독점할 수 있는 제도로, 대통령제야말로 분권과 협치의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정한 의미의 분권과 협치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의 독점적 권한을 총리와 나눠 선의의 경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국무총리 임명과 추천, 선출 과정을 놓고도 논쟁이 이어졌다. 김 전 의장은 “대통령제를 하려면 부통령을 도입하든지, 총리를 두려면 국정통할권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은 “대통령 권한은 무엇이고 총리 권한은 무엇인지 구별해야 한다. 국회에 총리선출권이나 추천권을 주지 않고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분산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2018-03-28 동아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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