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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간에 개막전은 설레입니다. 여러 달 동안 경기를 볼 수 없었는데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 시즌 개막전 때마다 신들린 듯 팀을 이끌어주는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 선수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개막전에 맹활약을 펼쳤던 인상적인 선수들을 모아봤습니다.




2000년 현대 퀸란 vs LG 테이텀

3루수 수비가 발군이었던 현대 용병 퀸란은 원래 방망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타율이 높은 선수는 아니었죠. 그러나 한 방에 있어서는 시즌의 처음과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그는 개막전에서 1회 3점포, 2회 1점포, 2점포를 작렬하며 개막전 스타가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줬죠. 또한 한국시리즈 MVP에 뽑히며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더구나 현대-한화(대전)의 개막전은 양팀 스코어 17:10의 난타전이었는데 무려 14개의 홈런이 쏟아지며 역대 한 경기 최다홈런(종전 11개)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시즌 중에 퇴출되었지만 테이텀 역시 퀸란 못지 않게 개막전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사직에서 펼쳐진 롯데와의 개막 1차전에서 선제결승홈런을 포함해 전타석 출루에 3타수 3안타 2홈런 4타점의 괴력을 선보였죠. 테이텀의 맹활약에 힘입어 엘지는 12:5로 낙승을 거뒀습니다.

개막 2차전에서 13k 완봉승을 거둔 김진웅과 최다안타 신기록을 수립한 장종훈도 잘했지만 인상적인 면에 있어서는 두 용병 선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1년 삼성 마르티네스-이승엽 vs 두산 장원진-우즈

개막 1차전에서 이승엽과 마르티네스는 각각 2점홈런, 1점홈런을 터뜨리며 한화를 4:3으로 제압했는데, 이들 콤비의 진면목은 2차전서도 드러났습니다. 1회부터 만루홈런으로 시작한 마르티네스는 4회에도 3점홈런을 작렬하며 4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한 이승엽과 함께 12:3의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이승엽-마르티네스 홈런 커플은 훗날 대기록 수립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되었죠. 역대 최초로 4연속타자 홈런이라는 기록이 수립되었는데 그 주인공은 이승엽, 마르티네스, 마해영, 바에르가까지 4명이었습니다.

2번 장원진 - 3번 우즈도 대단했습니다. 해태와 잠실벌에서 펼쳐진 개막 1차전에서 우즈는 7회에 병살타를 기록하며 역전 기회를 날려버렸지만, 9회말에 끝내기 2점홈런을 작렬하여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냈습니다. 다음 날에도 우즈는 5타수 3안타 2타점을 과시하며 역대 최고 용병이라는 찬사가 허명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장원진의 활약이 있었죠. 1차전에서 2:3으로 뒤진 상황에서 7회에 동점 적시타를 날려 팀을 살려내며 5타수 2안타 2타점, 다음 경기에서도 5타수 4안타 3득점을 기록하여 테이블 세터로서 더 없는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2002년 한화 송진우 vs 기아 키퍼

송진우와 키퍼는 2002년에 다승왕 경쟁을 펼쳤던 사이입니다. 이 두 선수는 개막 3연전에서 나란히 인상적인 투구로 팬들을 기쁘게 했죠.

특히 2000~2001년 모두 개막전을 두산에게 내줬던 기아(전 해태)는 2002년만큼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왔습니다. 결국 두산과의 3연전을 모두 싹쓸이하며 지난 앙금을 씻어내는대 성공했죠. 그 중심에는 키퍼가 있었습니다. 야구에서는 다득점이 펼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1:0의 투수전도 묘미가 있습니다. 개막 2차전에 선발투수였던 키퍼는 1회말에 정수근-장원진에게 연속타자 안타를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으나 이후 22타자 연속 범타를 이끌어내어 8이닝 3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영원한 회장님 송진우는 키퍼보다 더 빛나는 투구를 펼쳤습니다. 8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최기문에게 안타를 맞기 전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롯데 타선을 봉쇄했습니다. 결국 2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하여 프로통산 7번째 개막전 완봉승, 개인적으로는 통산 10번째 완봉승을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이날 승리로 당시 선동열이 세운 146에 단 1승차로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2003년 기아 리오스-키퍼 vs 삼성 이승엽-마해영

2002시즌에도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한 기아는 2003년에도 개막 2연전을 모두 거머쥐었습니다. 그 1등공신은 바로 용병투수들이었죠. 리오스가 개막전에서 7이닝 8피안타 1실점으로 2003시즌 마수걸이 승리를 올린 뒤, 키퍼는 2003년에 이어서 또 다시 개막 2차전에서 6 2/3이닝의 호투를 펼쳐 연승행진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역시 용병투수가 맹활약을 하면 그만큼 경기가 쉽게 풀리는가 봅니다.

기아가 용병투수의 합작이 돋보였다면, 삼성은 토종 강타자 듀오의 방망이가 빛났습니다. 이승엽과 마해영은 각각 개막 1,2차전에서 닮은 꼴 활약을 펼쳤습니다. 개막전 첫날 이승엽은 절친한 친구인 박명환을 상대로 1회, 3회에 각각 연타석 투런포를 앞세워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면 다음 날에는 마해영이 구자운을 상대로 2회, 4회에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전 시즌 한국시리즈 MVP의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특히 개막 2차전에서 마해영은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의 활약으로 통산 10번째 2000루타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2004년 삼성 오리어리 vs 한화 송진우

기아-두산의 개막 1~2차전에 등판한 투수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기아를 거쳐 두산 유니폼을 입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죠. 개막 1차전은 리오스-키퍼의 대결이었고, 2차전에는 두산에서 레스가 등판했습니다. 기아(해태)에서 두산으로 옮겨간 순서는 레스, 키퍼, 리오스가 되겠군요.

2004년 개막전에 빛난 선수는 송진우가 있습니다. 전년도 한국시리즈 MVP인 현대 정민태와 맞대결을 펼친 그는 7이닝 무실점의 역투를 펼치며 4:1로 이겼습니다. 2002년 개막전을 연상시킬 만큼 호투였습니다. 4회까지 노히트 노런이었는데다 7회말까지 단 2안타만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투를 펼쳤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그는 다음 시즌(2005년)에도 개막전 선발투수로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또 다른 개막전의 영웅은 삼성의 용병 오리어리였습니다. 개막전에서 3회에 좌전안타를 날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데 이어 3:4로 뒤지던 7회에 동점홈런을 터뜨리며 제 몫을 해냈습니다. 다음 날 경기에서도 비록 팀은 패했지만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3타점을 책임지며 개막 2연전에서만 3홈런을 폭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활약은 오래 가지 못한 채, 결국 퇴출되고 말았죠.


2005년 삼성 심정수 vs SK 김재현

2004시즌을 마친 뒤 최고의 이슈는 삼성의 100억 FA선수 영입(심정수, 박진만)이었습니다. 2005년 개막전부터 심정수의 위력은 여지 없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미 개막 1차전에서 3타수 3안타 1타점으로 방망이 솜씨를 가다듬었던 그는 개막 2차전 1회에도 그랜드슬램을 기록하며 거포의 위력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각인시켰습니다. 개막 2연전 동안 심정수가 기록한 8연타석 출루(5타수 5안타 5타점)는 신기록이었습니다.

심정수와 동갑내기이자 FA 자격으로 이적한 김재현은 새로운 팬들에게 맹타로서 첫 인사를 보냈습니다. 1차전에서 SK는 현대를 상대로 비록 5:5로 비겼지만 1홈런을 비롯해 6타수 2안타 3타점을 폭발한데다 2차전에서도 2:2로 동점이던 상황에서 승부의 균형을 깨는 우전적시타를 터뜨려 결승점을 만들어냈습니다. 개막 2연전에서 10타수 4안타 4타점을 작렬한 김재현은 이적 후에도 역시 '클러치히터', '캐넌히터'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94년 우승을 경험했던 그는 각서파문 끝에 팀을 옮기고 2007년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기도 했죠.






2006년 SK 시오타니 vs 삼성 권오준-오승환

시범경기부터 이목을 끌었던 일본인 용병 시오타니는 불행히도 KIA전에서 장문석의 투구에 맞아 왼손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퇴출되고 말았죠. 그러나 개막전에서 보여준 그의 맹활약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문학에서 펼쳐진 현대와의 개막전에서 4회말에 선제 2점홈런으로 결승타를 기록한 데 이어 다음 날 2차전에는 끝내기홈런을 포함해 무려 5타수 3안타 4타점을 쏟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죠.

2006년은 KBO 역사상 최다홀드(32홀드), 최다세이브(47세이브) 신기록이 수립된 시즌입니다. 1차전에서 패한 삼성은 5:5로 팽팽했던 6회말에 선두타자 박한이의 결승홈런이 터지자 권오준-오승환이 마운드에 올라 롯데 타선을 제압하고 시즌 첫 승을 생겼습니다. 권오준-오승환의 철벽계투 콤비는 2006년 삼성의 아이콘이었을 뿐만 아니라 '삼성은 6회까지만 야구하면 된다'는 공식을 만든 장본인이었는데, 그 효시가 개막 2차전이었습니다.


2007년 롯데 손민한 vs KIA 장성호

2001이후로 당시까지 6년간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한 설움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선봉이 서겠다고 공언했던 손민한은 현대를 상대로 한 개막전부터 롯데의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8이닝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를 펼친 그는 팀의 주장이자 에이스로서의 자존심도 세웠습니다. 첫 단추를 잘 풀어낸 롯데는 장원준, 이상목이 잇달아 선발승을 챙기며 현대와의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롯데에 손민한이 있었다면, 기아에는 장성호가 있었습니다. 1차전에서 LG 박명환의 호투에 힘입어 1차전을 내준 기아는 장성호를 앞세워 2,3차전을 내리 이겼습니다. 2차전 1:0으로 앞선 3회에 2점홈런을 작렬하며 승기를 잡았고, 3차전에서도 2:1로 박빙이던 7회에 또 한 번 2점포를 가동하여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2008년 롯데 이대호 vs 삼성 철벽계투

이대호의 방망이가 롯데의 개막 2연승을 이끌었습니다. 1차전에서 5타수 4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11:1의 대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2차전에서는 1회에 선제적시타를 날린 뒤 3회에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이틀 동안 무려 9타수 7안타 6타점의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2007년에도 3연승으로 개막전을 시작한 롯데는 2008년에도 2연승으로 쾌조의 출발을 보였는데, 투타에 손민한, 이대호라는 확실한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롯데와 함께 2연승의 주인공이 된 삼성은 철벽계투진의 활약이 컸습니다. 권혁, 안지만, 오승환이 이틀 연속 호투쇼를 펼쳤던 것이죠. 1차전에서는 3 1/3이닝 무실점, 2차전에서는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의 지키는 야구는 선동열 감독이 삼성에 취임한 이후 마무리 오승환을 중심으로 권혁, 안지만, 정현욱, 권오준이 나누어맡아 이뤄온 팀 컬러입니다.


2009년 두산 김동주 vs 롯데 김주찬

기아와의 잠실 개막전을 싹쓸이한 두산의 1등 공신은 바로 김동주였습니다. 양 팀 에이스 김선우와 윤석민은 4회까지 1:1의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습니다. 먼저 무너진 쪽은 기아였습니다. 선발 윤석민이 5회에 2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하는가 싶었는데 이종욱, 오재원에게 연속안타, 고영민에게 4구를 허용했죠. 2사 만루에 등장한 김동주가 싹쓸이 2루타를 터뜨리며 승부를 뒤바꿔놨습니다. 이후 김현수, 왓슨의 적시타마저 연달아 터진 바람에 승부는 거기서 끝났죠. 2차전에서도 김동주는 2:1로 간신히 앞선 8회에 승부에 쐐기를 박는 1타점 2루타를 날리어 간판타자로서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개막 2연전 1승 1패를 거둔 롯데의 김주찬은 승패에 관계없이 독야청청했습니다. 1차전에 1번타자로 출전한 그는 투수 앞 안타를 터뜨린 뒤 조성환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선취점을 올렸고, 7회에는 역전 결승 2루타를 날리어 3:2로 짜릿한 승리의 영웅으로 우뚝 섰습니다. 다음 2차전에서 그의 소속팀 롯데는 1:10으로 대패를 당했지만 김주찬은 첫 타석 안타를 포함하여 4타수 2안타를 날리어 팀의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더 많은 개막전 야구 영웅들이 있었지만 모두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야구가 계속되는 이상 더 많은 개막전 영웅이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욱 기대되는 2010년 프로야구. 과연 어느 팀이 마지막에 웃게 될까요?

 

(사진 : 스포츠서울)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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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펨께 2010.03.28 1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야구를 구경한지도 한참이나 되였네요.

  2. BlogIcon 악랄가츠 2010.03.29 0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산전에 소녀시대가 시구하더니,
    엄청난 경기를 보여주며 이겨버렸네요! ㄷㄷㄷㄷㄷㄷㄷ
    소녀시대가 Oh를 부르며 응원하였으니...
    이길 수 밖에 없는 게임이었네요! ㅎㅎㅎㅎ



이곳은 故 임수혁 선수의 모교인 '봉천초등학교'입니다.
원래 그는 방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에 다이어트 삼아 운동을 하다보니
결국 5학년 때 야구부가 있는 봉천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사이에도 그의 모교에서는 후배 야구선수들이 맹활약하고 있었고
또 다른 후배들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운동장을 거닐며 故 임수혁 선수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노라니
가장 기억에 남은 3경기가 떠올랐습니다.


▲ 스포츠조선 2000년 4월 19일자



1999년 플레이오프 최종 7차전 (대구) - 기적 같은 대역전극의 초석이 되다

1승 3패로 몰린 롯데가 내리 2연승을 하며 최종 7차전을 맞이했습니다.
이승엽, 김기태, 김종훈의 홈런을 앞세운 삼성이 5:3으로 앞서고 있었죠.

2점차 뒤진 9회초를 맞이한 롯데.
공필성의 안타로 회생의 불씨를 살린 뒤 임수혁이 대타로 들어섰습니다.

임수혁은 바깥쪽 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른 뒤,
무언가 직감한 사람처럼 두 팔을 번쩍 들며 1루로 달려갔죠.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홈런!!!

이 동점포에 힘을 얻은 롯데는 연장전에 터진 김민재의 적시타에 힘입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동점홈런의 가치가 높았던 것은 상대투수가 최고의 마무리 임창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플레이오프 경기'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야구팬들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새긴 임수혁은 타격에 소질이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공격형 포수로 호쾌한 방망이를 과시하던 그가 그라운드를 떠난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이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무척 슬프군요.

과연 그가 쓰러진 당일,
무슨 일이 있었길래 팬들이 좋아하는 한 선수를 하늘 나라로 보내야 했던 것일까요?



▲ 스포츠서울 2000년 4월 19일자



2000년 4월 18일 (잠실) - 돌아오지 못한 그라운드

임수혁의 소속팀 롯데는 LG를 맞아 잠실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2회초에 유격수 유지현의 실책으로 출루한 임수혁은 우드의 안타 때 2루를 밟게 되었죠.
7번타자 조경환의 타석 때 갑자기 쓰러진 그는 더 이상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병상에 눕기 전까지 임수혁은
1992년 부정맥의 판정과 함께 운동을 해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심장질환약을 복용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쓰러진 뒤 5분 안에는 누군가에 의해 심장 마사지가 시행됐어야 했는데
10분이 넘도록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이른 것이었죠. 
이후 임수혁은 10년간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 스포츠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습니다.
임수혁의 부친인 임윤빈씨의 "제 2, 제 3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당부에 걸맞을 만큼
당직의사제도를 비롯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쨌든 이 사고 후 며칠 간 경과를 보니 더 이상 임수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됐구나 싶었습니다.



▲ 일간스포츠 2000년 4월 19일자 (당시 분위기와 열악한 야구 환경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대구) - 꿈에서라도 통했다면

2002년 한국시리즈(삼성-LG)는 작년 한국시리즈(기아-SK)와 더불어서
역대 한국시리즈 가운데 가장 극적인 명승부로 기억합니다.

특히 최종전(6차전) 9회말을 시작할 때까지 9:6으로 엘지는 승기를 잡고 있었고 
삼성은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이승엽의 3점포와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시리즈 기간 동안 맹타를 휘두른 마해영은 MVP에 선정됐습니다.

"(임)수혁이 형이 병상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운동을 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극적인 끝내기홈런을 날린 마해영의 소감 중 한 구절입니다.
(당시 삼성은 마해영의 맹활약 덕분에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습니다.)

최종전 전날 임수혁의 꿈을 꿨던 마해영은 아침에 일어난 뒤
좋은 징조라 생각하며 그라운드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역대 손꼽히는 한국시리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낸 주인공이 됐던 것이죠.



▲ 역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끝내기홈런을 작렬한 마해영 -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임수혁과 마해영은 대학(고려대), 상무에서 한솥밥을 먹은 절친한 선후배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롯데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팬들은 이들을 두고 '마림포'라고 불렀습니다.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에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고
선수협 문제 등으로 마해영은 삼성으로 이적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마림포를 볼 수 없게 되었죠.

그래서 2002년 한국시리즈 MVP가 된 마해영의 소감이 더욱 인상 깊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수혁 선수가 병상에서 일어난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 궁금했지만
이제는 영영 아무 말도 들을 수 없게 되었군요.



▲ 월간 베이스볼 1998년  


임수혁은 1998년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돌아봤을 때 가장 불만스러운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야구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것."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자상한 가장이었다고 합니다.

사고가 났던 당일, 상경하기 전에 임수혁은 스킨로션을 사기 위해 부인과 함께 백화점을 들렀습니다.
모처럼 데이트의 분위기를 즐겼던 그는 부인에게 "일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해서 미안하다"며
"원정경기를 마치면 모처럼 다 함께 영화 한 편 보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때가 의식을 갖고 있던 임수혁이 부인과 함께 했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경기장에서의 비보를 들게 된 부인은 아이들에게 차마 아빠의 슬픈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아빠가 멀리 전지훈련을 떠났다"며 둘러댔다고 합니다.



▲ 손문상 화백의 <얼굴> 중 '돌아오지 않는 주자 임수혁' 편
(지난 7일 이 그림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글귀가 새겨졌더군요.)



이후 10년간 병상을 지키고 살림살이에 육아까지 맡아
고생만 한 임선수의 부인과
그 고통을 함께 안은 가족들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지더군요.


임수혁이 병상에서 일어나 그라운드를 누비길 기대했던 
많은 야구인들과 팬들의 바람도 이제 물거품이 됐습니다.

'제 2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 '제 1의 임수혁'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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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9 15: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치료가 조금만이라도 빨랐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정말 안일한 야구의료체계에 한숨만 나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09 16: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은 말씀입니다.
      응급처치라는 건 시각을 다투는 거라
      사고가 터지고 5분 안에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데.
      아직 우리 나라는 멀었다는 느낌입니다.

      야구장 문제도 그렇고.
      전담의사제도도 제대로 시행되는 건 광주 밖에 없다고 하고.

  2. BlogIcon 커피믹스 2010.02.09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포츠에 무지한 저는 그런 사연이 있는줄 몰랐네요
    안타깝습니다. 응급처치만 했어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10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 발인을 했다는데,
      이제 병상의 모습조차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민방위 훈련 가면 응급처치에 관한 부분을 교육받는데
      임수혁 선수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2009년과 2002년 한국시리즈 공통점 10가지

이 글에 앞서 열심히 싸워준 우승팀 기아와 준우승팀 SK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들의 혼신을 다한 플레이가 명승부를 이끌어냈습니다.

극적으로 우승한 기아도 대단했고, 지칠 줄 모르는 근성의 SK도 놀라웠습니다.
기아에겐 축하를, SK에겐 위로를 보냅니다.

당신들이 있어 야구팬으로서 행복했습니다.
문득 야구를 보는 순간, 2009년과 2002년과 닮은 꼴이 있어서 정리를 해봤습니다.




[ 2009년과 2002년 한국시리즈 최종전 공통점 10가지 ]

1. 최종전 9회말 1사에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시리즈 종료

→ 나지완의 끝내기 솔로포로 종료 vs 이승엽-마해영 랑데뷰 대포로 종료


2. 준우승팀 사령탑이 김성근 감독

→ 2009년 SK 감독 vs 2002년 엘지 감독

(패장이지만, 이 분 참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명승부도 적수가 강해야 명승부라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3. 우승팀이 최종전에서 역전하기 전까지 뒤지고 있었던 최대점수차는 4점차

→ 기아 1:5에서 역전 vs 삼성 5:9에서 역전


4. 최종전에서 우승팀 3번타자의 결정적인 홈런이 터짐

→ 9회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 vs 9회말 이승엽의 동점 3점홈런


5. 최종전에서 먼저 3점을 낸 팀이 준우승

→ SK가 5회초에 3:0으로 리드 vs LG가 2회초에 3:0으로 앞섬



6. 우승팀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 이번의 경우, 타이거즈는 V10이지만, 기아 인수 후엔 한국시리즈 첫 우승

삼성도 당시 한국시리즈는 첫 우승


7. 우승팀의 최종전 선발투수가 초반 강판

→ 구톰슨 3이닝 2자책 vs 전병호 1 2/3이닝 2자책


8. 준우승팀이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치르고 올라옴

→  SK는 두산을 2패 후 3연승 vs LG는 기아를 3승 2패로 이김


9. 우승팀 4번타자도 제 몫을 다함

→ 타율 0.320 6득점 5타점의 최희섭 vs 한국시리즈 MVP 마해영


10. 정규시즌 우승팀이 한국시리즈 1차전 이기고 우승

→ 기아 승률 0.609로 1위 vs 삼성 승률 0.636으로 1위


다시 한 번 기아에 우승을 축하드리고, 명승부의 파트너였던 SK에게도 위로의 박수를 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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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랭빠 2009.10.25 0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갸팬입니다.
    이런 한국시리즈보니 02년과 비슷하다는 생각들었어요.
    정리된것을 보니 의외로 공통점이 많았군요.

  2. 파라독스 2009.10.25 0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코시는 일부 장면에서 양 팀 모두 씁쓸한 면이 있었습니다.

    • BlogIcon 칸타타~ 2009.10.25 0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어도 다 끝난 경기이니
      좋은 쪽으로 서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승부에서는 적이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는
      감독, 선수 간에는 동업자의 관계잖아요.
      앞으로 야구는 계속될 테니 서로 너그럽게 봅시다. ^^

  3. 목포의눈물 2009.10.25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오늘 기아 우승의 기쁨에 취했는데.. 이글 보니 김성근이란.. 사람의 운명도.. 기구하네요.

  4. SK는 2009.10.25 16: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K는 오락에 나오는 끝판왕 같더군요...
    죽여도 죽어도 안죽습니다.
    김광현 박경완 전병두가 빠졌는데 이정도라니
    진짜 대단한거 같아요... 내년에는 더 강해질것 같아서 더 무섭습니다.
    어떻게 이런 팀을 만든건지 김성근 감독님 진정 존경스럽네요..

    • BlogIcon 칸타타~ 2009.10.26 0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래 김성근 감독은 이기는 야구보단 지지 않는 야구를 추구하잖습니까?
      그러니 지더라도 상대방의 진을 빼놓는 것 같습니다.
      준우승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상대방이 더 싫어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공언했으니
      내년에도 어느 팀이건 SK와의 경기는 쉽지 않겠네요. ㅎㅎㅎ

  5. 호랑이군단 2009.12.15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기아타이거즈 팬 인데요.제가 한국시리즈를 거의다 봤거든요?기아가 잘 하긴 하지만
    sk와이번스는 맨날 초반에 못하고 후반에 잘하더라요?
    플레이오프떼도 두산한테 처음에 2번연속 졌다가 후반에 다시 2번연속으로 이기고 한번 더 이겨서 한국시리즈를 진출한거잖아요.그리고 기아전에서도 후반에서 잘 하던데.한국시리즈5차전에는 로페즈의 완봉투와 나주환의 실책까지 겹쳐서 진 거고.그래도 두팀 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잘 했어요~~~~~~~~~~~~~~~~~~~~~~~~~~~~~~~

  6. 호랑이군단 2009.12.15 14: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아타이거즈의 조범현감독과SK와이번스의 김성근감독님 모두 수고하셨어요.^^~~~~~~~~

  7. 사자군단 2010.05.20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있는것 같은데요
    끝내기를 기록한 둘 다 우타자 였던것.
    우승의 발판을 만들어준 타자들(이승엽, 최희섭)은 모두 좌타자구요.
    그리고 이승엽 최희섭 모두 1루수 입니다.
    ㅎㅎ 제생각이지만 맞지 않나요??

  8. 삼성이여 영원하라 2010.07.12 0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있습니다
    마무리 이승호가 던진 공과
    이상훈이 던진 공이 모두
    직구였다는 것입니다

  9. 사자군단 2010.07.28 2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성이여 영원하라 님 Sk 마무리 채병룡이었는데...? 그리고 직구가 아니라 체인지업이었어여 2009시즌은 .... 모르시나 보내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