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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신공항 문제의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는가
갈등과 반목을 넘어 모두 승자가 되는 길을 위하여

김 형 오

존경하는 부산·울산·대구 시민 여러분, 경남·북 도민 여러분!

먼저 저의 발언으로 인해 마음 상하거나 실망감을 느끼신 분들에게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 지난주 두 차례 지역구를 방문해 저를 아끼시는 분들의 얼굴에 깊이 파인 수심을 보면서 저 또한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부산 시민과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나름대로 소임을 다해왔습니다. 누구보다도 민심을 섬기고 헤아리고 두려워해온 만큼 이 문제를 두고 고민과 번뇌가 깊었습니다. 제 지역구에서 공항까지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이 내걸린 플래카드의 숲을 지나치며 과연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제 양심을 걸고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역의 최다선 의원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 항공 수요는 갈수록 증대되고 있고, 우리나라 항공 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저 또한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공항이며 무엇을 위한 발전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신공항의 본질적 문제는 사라진 채 지역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양보와 타협, 절충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서로의 감정만 자극하면서 사생결단의 제로섬 게임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마땅히 주민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지역 발전을 위해 경쟁해야 할 때 자기 지역 편에 서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신공항 역시 수도권에 비해 낙후된 지역 발전이 그 갈등의 배경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만큼은 다른 무엇보다 화합과 공동 번영, 국익의 차원에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물론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공약을 못 지키고, 국론 분열을 미리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 동안 방치하고 방관한 정부에 대해서도 서운함과 실망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정부는 민관정(民官政)을 아우르는 기구를 만들거나 제대로 된 공식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나요. 청와대에 양쪽 의견과 날로 심각해져가는 민심 동향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보고했나요. 오직 용역을 맡겼으니 기다려 달라고만 했을 뿐 아닌가요. 이런 상태에서 용역 결과가 나온다 한들 과연 누가 승복하겠습니까.

정부는 지금이라도 국민들께 사과하고 ‘차선책’이 아니면 ‘차차선책’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신공항 문제로 더 이상 영남권의 남북이 등을 돌린 채 갈등하고 반목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영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 패자가 되는 게임을 막으려면 이 문제를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역사와 후손 앞에 당당할 수 있습니다.

상상했던 대로 저의 발언 이후 후폭풍은 거셌습니다. 수많은 지역민·언론·시민단체들로부터 비난과 비판이 빗발쳤습니다. 격려와 성원도 잇따랐습니다. 비난은 겸허하게, 격려는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저는 지역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분들의 순수한 열정에 찬물을 끼얹을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으로서 제 발언은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 이후의 일도 무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이 세찬 비난의 쓰나미 속에서 저는 휩쓸려가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설사 제 몸이 휩쓸려가 버리더라도 제 주장은 살아남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갈등과 반목을 접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 함께 갑시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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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불어숲 2011.03.16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반도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영남과 호남의 반목으로도 모자라
    영남끼리도 분열하고 갈등해서야 되겠습니다.
    백 번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우리 모두 더불어숲을 이루고 함께 울창해집시다.

  2. 2011.06.09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월 1일이면 3.1 만세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유관순 열사가 떠오릅니다.
유관순 열사는 최근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관련내용이 삭제 된다고 했다가, 많은 이들의 반대에 원래대로 싣기로 하여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독립운동과 관련한 가르침을 삭제하려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 불멸의 영웅, 안중근

<국회 한켠에 임시로 설치되었던 안의사 동상의 모습>

지난 10월, 국회에 있던 안중근 의사 동상이 부천시로 이사를 갔습니다.
2006년 중국 하얼빈시에 세워졌던 이 동상은 우여곡절 끝에 부천시 안중근 공원(중동공원)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와 관련해 
안중근 의사 동상, 왜 푸대접 받나? 라는 내용으로 포스팅을 했었는데요, 안중근 의사 동상이 옮겨간 부천의 안중근 공원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우선 인터넷 지도에서 공원의 위치를 확인하고, 공원이 위치한 부천시청을 찾았습니다.

<중앙공원에서 바라 본 부천시청>

그 앞의 공원(중앙공원)을 안중근 공원으로 착각하여 한참동안 부천중앙공원을 헤매었습니다.
주변을 지나는 시민분들에게 안중근 동상의 위치를 물어보았지만, 알고 계신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만,
근처 매점 아주머니와 부천시청의 경찰분들의 도움으로 "안중근 공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키 컸으면! 키 컸으면! 키 컸으면!>

안중근 공원(舊중동공원)은 부천 현대백화점의 옆에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동상은 제단에 설치되어 국회에 임시로 머물때보다 훨씬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습니다.

<동상의 키높이 비결??>



실제 모습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묘가 모셔진 효창공원에 설치불가했던 안중근 동상.
과연 실제 안중근 의사의 모습은 어땠을까요? (안중근 의사의 또렷한 사진 관련 기사)

 

<출처: 춘천MBC 제공, 명주옷 차림의 안중근, 죽음을 달관한 그의 눈빛 [중앙일보]>


유관순 열사 전기 교과서 삭제 소동을 보니,
"안중근 공원"에 당당히 서 있는 안중근 의사 동상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100년이 되는 날이군요.
3.1절을 맞이하여 오늘은 4월 25일까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리는 안중근 특별전(순국 100년 안중근-국채보상운동, 동양평화로 피어나다’)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면모를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요?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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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배낭돌이 2010.03.01 2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순국 100년이 되는 날이군용!!
    그 100년전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겠지요!!

    • BlogIcon 맹태 2010.03.02 0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로스트 메모리즈 2009 라는 영화였던가요?
      광화문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이 서있고..
      대한민국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2. BlogIcon 악랄가츠 2010.03.07 07: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인 장소, 하얼빈 역에서도 그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ㅜㅜ
    단지, 마치 암호처럼 바닥에 저격방향 표시석만 있더라고요 ㅜㅜ

  3. 미소 2010.03.26 2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중근 의사 가묘는 장충단 공원이 아닌 효창공원입니다!



이곳은 故 임수혁 선수의 모교인 '봉천초등학교'입니다.
원래 그는 방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에 다이어트 삼아 운동을 하다보니
결국 5학년 때 야구부가 있는 봉천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사이에도 그의 모교에서는 후배 야구선수들이 맹활약하고 있었고
또 다른 후배들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운동장을 거닐며 故 임수혁 선수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노라니
가장 기억에 남은 3경기가 떠올랐습니다.


▲ 스포츠조선 2000년 4월 19일자



1999년 플레이오프 최종 7차전 (대구) - 기적 같은 대역전극의 초석이 되다

1승 3패로 몰린 롯데가 내리 2연승을 하며 최종 7차전을 맞이했습니다.
이승엽, 김기태, 김종훈의 홈런을 앞세운 삼성이 5:3으로 앞서고 있었죠.

2점차 뒤진 9회초를 맞이한 롯데.
공필성의 안타로 회생의 불씨를 살린 뒤 임수혁이 대타로 들어섰습니다.

임수혁은 바깥쪽 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른 뒤,
무언가 직감한 사람처럼 두 팔을 번쩍 들며 1루로 달려갔죠.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홈런!!!

이 동점포에 힘을 얻은 롯데는 연장전에 터진 김민재의 적시타에 힘입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동점홈런의 가치가 높았던 것은 상대투수가 최고의 마무리 임창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플레이오프 경기'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야구팬들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새긴 임수혁은 타격에 소질이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공격형 포수로 호쾌한 방망이를 과시하던 그가 그라운드를 떠난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이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무척 슬프군요.

과연 그가 쓰러진 당일,
무슨 일이 있었길래 팬들이 좋아하는 한 선수를 하늘 나라로 보내야 했던 것일까요?



▲ 스포츠서울 2000년 4월 19일자



2000년 4월 18일 (잠실) - 돌아오지 못한 그라운드

임수혁의 소속팀 롯데는 LG를 맞아 잠실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2회초에 유격수 유지현의 실책으로 출루한 임수혁은 우드의 안타 때 2루를 밟게 되었죠.
7번타자 조경환의 타석 때 갑자기 쓰러진 그는 더 이상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병상에 눕기 전까지 임수혁은
1992년 부정맥의 판정과 함께 운동을 해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심장질환약을 복용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쓰러진 뒤 5분 안에는 누군가에 의해 심장 마사지가 시행됐어야 했는데
10분이 넘도록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이른 것이었죠. 
이후 임수혁은 10년간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 스포츠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습니다.
임수혁의 부친인 임윤빈씨의 "제 2, 제 3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당부에 걸맞을 만큼
당직의사제도를 비롯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쨌든 이 사고 후 며칠 간 경과를 보니 더 이상 임수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됐구나 싶었습니다.



▲ 일간스포츠 2000년 4월 19일자 (당시 분위기와 열악한 야구 환경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대구) - 꿈에서라도 통했다면

2002년 한국시리즈(삼성-LG)는 작년 한국시리즈(기아-SK)와 더불어서
역대 한국시리즈 가운데 가장 극적인 명승부로 기억합니다.

특히 최종전(6차전) 9회말을 시작할 때까지 9:6으로 엘지는 승기를 잡고 있었고 
삼성은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이승엽의 3점포와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시리즈 기간 동안 맹타를 휘두른 마해영은 MVP에 선정됐습니다.

"(임)수혁이 형이 병상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운동을 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극적인 끝내기홈런을 날린 마해영의 소감 중 한 구절입니다.
(당시 삼성은 마해영의 맹활약 덕분에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습니다.)

최종전 전날 임수혁의 꿈을 꿨던 마해영은 아침에 일어난 뒤
좋은 징조라 생각하며 그라운드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역대 손꼽히는 한국시리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낸 주인공이 됐던 것이죠.



▲ 역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끝내기홈런을 작렬한 마해영 -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임수혁과 마해영은 대학(고려대), 상무에서 한솥밥을 먹은 절친한 선후배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롯데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팬들은 이들을 두고 '마림포'라고 불렀습니다.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에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고
선수협 문제 등으로 마해영은 삼성으로 이적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마림포를 볼 수 없게 되었죠.

그래서 2002년 한국시리즈 MVP가 된 마해영의 소감이 더욱 인상 깊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수혁 선수가 병상에서 일어난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 궁금했지만
이제는 영영 아무 말도 들을 수 없게 되었군요.



▲ 월간 베이스볼 1998년  


임수혁은 1998년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돌아봤을 때 가장 불만스러운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야구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것."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자상한 가장이었다고 합니다.

사고가 났던 당일, 상경하기 전에 임수혁은 스킨로션을 사기 위해 부인과 함께 백화점을 들렀습니다.
모처럼 데이트의 분위기를 즐겼던 그는 부인에게 "일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해서 미안하다"며
"원정경기를 마치면 모처럼 다 함께 영화 한 편 보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때가 의식을 갖고 있던 임수혁이 부인과 함께 했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경기장에서의 비보를 들게 된 부인은 아이들에게 차마 아빠의 슬픈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아빠가 멀리 전지훈련을 떠났다"며 둘러댔다고 합니다.



▲ 손문상 화백의 <얼굴> 중 '돌아오지 않는 주자 임수혁' 편
(지난 7일 이 그림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글귀가 새겨졌더군요.)



이후 10년간 병상을 지키고 살림살이에 육아까지 맡아
고생만 한 임선수의 부인과
그 고통을 함께 안은 가족들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지더군요.


임수혁이 병상에서 일어나 그라운드를 누비길 기대했던 
많은 야구인들과 팬들의 바람도 이제 물거품이 됐습니다.

'제 2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 '제 1의 임수혁'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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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9 15: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치료가 조금만이라도 빨랐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정말 안일한 야구의료체계에 한숨만 나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09 16: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은 말씀입니다.
      응급처치라는 건 시각을 다투는 거라
      사고가 터지고 5분 안에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데.
      아직 우리 나라는 멀었다는 느낌입니다.

      야구장 문제도 그렇고.
      전담의사제도도 제대로 시행되는 건 광주 밖에 없다고 하고.

  2. BlogIcon 커피믹스 2010.02.09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포츠에 무지한 저는 그런 사연이 있는줄 몰랐네요
    안타깝습니다. 응급처치만 했어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10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 발인을 했다는데,
      이제 병상의 모습조차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민방위 훈련 가면 응급처치에 관한 부분을 교육받는데
      임수혁 선수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세경: "저한테 좀 기대요"

준혁: "예."

세경: "저한테 좀 기대라니까요."

준혁: "..많이 기댄건데.."

세경: "하나도 안 기대는거 같은데..빨리 기대요"

....

초등학교 5학년때였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와 함께 기차를 타고 시골 할머니댁에 놀러가는 길이었습니다.
대전역이었습니다. 어느 예쁜 누나들이 우리가 앉은 자리에 오더니 자신들의 자리라고 했습니다.

"응? 아닌데요. 여기 저희 자리인데요?"

우리는 표를 확인 시켜주었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었는지 난처해하던 누나들이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부산까지 가는데, 그러면 우리가 자리에 앉아서 너희를 안고 가면 안될까?"

당황스러웠지만 착한 어린이였던 친구와 저는 "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를 안고 자리에 앉은 누나들은 이것 저것 물어보다가 이내 자신들의 대화에 빠져버렸습니다.
친구는 편안하게 앉아서 가는것 같았는데, 저는 불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초등학생이라고 하지만, 5학년이면...좋아하는 같은 반 여자애도 있을 나이인데, 예쁜 누나들의 무릎 위에 편하게 앉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체중을 발끝과 앞좌석에 달린 손잡이를 잡은 손에 집중하여 그 누나와의 신체접촉을 최소화했습니다. 그저 내 바지와 누나의 바지가 닿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누나가 느낀 나의 체중은 완전 깃털 수준이었을듯.

나를 안고 앉은 누나가 말했습니다.

"편하게 앉아. 누나 힘 쎄."

"아..편하게 앉은건데.."

"아닌거 같은데. 편하게 앉아. 괜찮아."

"네..편하게 앉은거예요."

"너 엄청 가볍구나."

'죽을 것 같아요!!!'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렇게 대전에서 대구까지...>

싫은 것은 아닌데..좋아라 할 수는 없고...
준혁학생의 감정이 이렇지 않았을까요?

어제,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며 떠올랐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었습니다.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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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달콤시민 2010.01.05 0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꺄아아아아
    그림 완전 귀여워요!!!! ㅋㅋ 짱짱!!

    오늘 저는 진심 지옥철을 경험하며.. 제 동서남북위치의 아저씨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오느라 허리가 지금 휘었답니다 ㅜㅜ

    • BlogIcon 맹태 2010.01.05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달콤시민님.
      허리가 휘셨다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오늘은 어제 눈 때문에 사람이 정말 많던데- 고생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 BlogIcon 포도봉봉 2010.01.05 1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저도 지옥철 타고 왔어요. ㅠㅠ
      1cm 공간이 있어도 몸을 꾸깃꾸깃 구겨서 막 비집고 들어가서 아주아주 힘들게 급행 열차를 탔답니다.
      하도 꾸깃꾸깃했더니 삭신이 쑤셔요~~

  2. 이상한 2010.01.05 0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대 가혹해위보다 더심한 자세인데 즛즛

  3. 그때그누나 2010.01.05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너 그때 참 가벼웠단다~~

  4. 보안세상 2010.01.05 1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

    저 자세 굉장히 낯이 익는데요 ㅋㅋㅋ

    아 그저 준혁학생과 세경여신님의 사랑에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5. BlogIcon Phoebe 2010.01.05 1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렇게 앉은적 있어요.
    가볍게 보일라고...하하하....
    나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줄 알았다죠.ㅎㅎㅎ

  6. BlogIcon 미자라지 2010.01.05 1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전 여자친구한테 그런적 있어요.
    저의 몸무게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ㅋㅋㅋ

어렸을 때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일렬의 순서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하고, 좋은 짝을 만나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자라 학교에 들어가는...
특별할 것도 없고 모자랄 것도 없는 그런 일상들이 당연히 나에게도 다가올 줄 알았습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이 일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면서 나는 그냥 이 자리에 멈춰있었으니까요.

남들이 차근 차근 밟아가는 일상이 나에게는 다가 오지 않았습니다.
보통의 삶도 사치가 된 나는 '청년 백수'입니다.

#"직업이 없다고 꿈까지 포기한 것은 아냐!" - 메리대구 공방전


서울에서 약간 벗어난 수도권 대학의 축산학과를 졸업한  메리는 우유회사에 취직했지만 1년 만에 짤렸습니다.
현재는 뮤지컬 배우를 목표로 여기 저기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만 결과는 늘 '꽝'이네요.
그녀는 꿈이 참 많은 '청년 백수'입니다.

대구는 '풍운도사의 백팔번뇌'라는 무협소설을 출판한 '무명의 무협소설가'입니다.
'소설가'라는 명함이 있는만큼 메리보다 조금 나아보이지만 출판사가 망하면서 하루 하루를 아르바이트로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이죠.
결국 대구도 메리와 똑같은 '백수'일 뿐입니다.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재능 없이 꿈만 큰 메리는  백수라고 무시하는 친구들의 면박과 시집이나 가버리라는 부모님의 잔소리에 매일 매일이 힘들다고 합니다.
그녀에게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물어봤습니다.

"인생은 나에게 왜 이렇게 야박한가요! 올 여름도 매미는 이렇게 울겠죠. 인생은 쓰라려~ 쓰라려~"

'청년백수'로 살고 있는 메리와 대구는 인생이 참 씁니다.

2007년 여름, '쩐의 전쟁'이 수목드라마의 최강자로 대한민국을 휩쓸었을 때 같은 시간대 아주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바로  '메리대구공방전'입니다.

너무나도 한심한 두 명의 '청년 백수', 그리고 꿈을 쫓는 그들의 대책없이 낙천적인 행동이 이 드라마의 주 내용이었는데요.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야기하면서도 백수의 심정과 생활, 그리고 그들이 느끼는 꿈에 대해서는 너무나 현실적이게 그린 이 드라마는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전국 청년 백수들의 공감을 얻으며 마니아 드라마로 재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우울한 현실을 꿈으로 포장한 '메리대구공방전'.
이 드라마 속 청년백수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과 함께 미소지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꿈을 간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단지 당신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라고" - ‘로제타’ 

한국의 청년백수 '메리대구공방전'이 절망 속에서도 꿈과 웃음을 이야기 했다면 벨기에 청년백수의 이야기인 '로제타'는 팍팍한 그들의 삶을 너무나도 현실적인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로제타는 그냥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고 싶은 20대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습니다.

힘들게 수습사원으로 취업한 로제타는 열심히 직장 내 주어진 일을 해내지만 수습기간이 지나자 짤립니다.

알콜에 중독된 엄마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복통, 그리고 지독한 가난.
이러한 상황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리케의 호의마저 불편하게 만듭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로제타는 말합니다.

"나는 단지, 당신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라구요."

로제타의 꿈은 남들과 동일한 삶의 과정을 밟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 속 로제타의 꿈은 사치가 된 것이죠.

52회 칸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로제타'는 영화를 넘어 벨기에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업정책, '로제타 플랜'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로제타 플랜 

벨기에는 2000년 ‘로제타 플랜’을 실시해 고용인 수 50명 이상인 민간기업은 전체 고용인의 3%에 해당하는 수만큼 청년실업자를 추가 고용하도록 조처했다. 이를 위반한 기업은 한 명당 매일 74유로(약 12만원)의 벌금을 부과했고, 의무를 이행한 기업에게는 고용한 청년에게 들어가는 첫해의 사용자 사회보장 부담금을 면제해주었다.




Posted by 포도봉봉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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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렉산더 2009.11.15 10: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8만원 세대란 말...처절한 말이지요..아, 취업의 길~~ 누구를 원망해야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