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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손길, 명장의 숨결을 만나다

2011 대한민국 명장 및 경남 최고장인전

 

김형오

경남 창원,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직선도로를 신나게 달리다가 도청 방향으로 틀어 전시관(성산아트홀)을 찾아 들어갔다. 12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3시. 제1회 ‘대한민국 명장 및 경남 최고장인전(展)’이 열리고 있다. 명장 네 분과 최고장인 여섯 분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주인공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 스마트폰에 담긴 순서대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작품 감상을 해보자.


▲ <자연의 소리>. 석공예 명장 김상규 선생의 작품이다. 화분, 수박, 호박 등을 돌로 깎아 만들었다. 참 힘든 작업을 했구나. 수박과 호박은 마치 실물을 보는 것 같다. 생동감 넘치는 자연미를 섬세한 조형 언어로 빚어냈다.


▲ 대한민국 명장회 회장을 지낸 한완수 선생의 세라믹 작품. 천연산 황토와 고령토를 고순도로 정제하고 광분채하여 고열로 처리하는 전통기법으로 빚어낸 신소재 고효능 도자기이다.

▲ 금속공예 명장인 변종복 선생은 이번 전시회의 추진위원장을 맡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청동으로 만든 그의 작품 <얼굴>은 너무나 리얼하여 진짜 실로 꼰 머리채인 줄 알았다. 변 선생은 자기 작품뿐 아니라 다른 분 작품까지 해설을 해주었다.


▲ 변종복 선생 작품 <삼족오문연잎청동촛대> 또한 섬세하고 정교하다. 부분 부분 참 재미있는 구도를 지니고 있다.


▲ 내가 좋아하는 와심(瓦心) 이계안 선생은 <결정>과 <삼채> 달항아리를 출품했다. 국회의장 시절 나는 이 분의 달항아리 한 점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계 최대의 아태문화원(이종문 기념관)에 기증한 바 있다. 또 그보다 좀 더 큰 달항아리를 퇴임 기념으로 국회에 기증했는데 이 작품은 헌정기념관에 비치되어 국회를 찾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달항아리는 그보다도 좀 더 커 보인다. “힘이 있을 적에 한두 점 더 남기고 싶어서” 만들었단다. 예술가의 창작 의욕을 누가 꺾을 것인가. 그 달항아리를 앞에 두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 나전칠기공예 최고장인 박재성 선생의 작품 <빗접>. 영롱한 자개 빛깔과 은은한 옻칠이 어우러져 편안함을 자아낸다. '빗접'은 빗·빗솔·빗치개·가르마꼬챙이·뒤꽂이·동곳 등 머리를 손질하는 도구들을 넣어 두는 함을 일컫는다.

▲ <동화(진사)> 연작을 출품한 도자공예 최고장인 김용득 선생의 도예 작품들도 참 예쁘다. ‘동화(銅畵)’란 고려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리 안료(銅顔料)를 이용해 선홍의 고운 발색을 내던 기법인데, 제작 과정이 까다로워 백자와 청자에 비해 발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 정찬복 장인의 출품작 나전칠기 접시 소반. 작품 이름은 <과기>이다. ‘과기’란 중국 송나라 때에 산시성의 가마에서 구워내던 도자기를 뜻한다.


▲ 조복래 장인의 가구는 퍽 인상적이어서 좀 설명을 하려고 한다. <상감삼층장>은 오래 된 고사목(느티나무)을 위주로 나뭇결을 잘 살렸으되 오동나무, 가죽나무, 배나무, 먹감나무를 섞어 작업했다. 특히 장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기둥과 쇠목은 단단한 가죽나무로 짰다. 괴목이 빚어낸 오묘한 무늬가 붓으로 그린 것보다 아름답다.

▲ <상감삼층장> 앞에 선 조복래 장인.


▲ 이한길 장인의 진사(동화)와 분청. 도자공예 외길을 걸어온 작가의 인생이 이름(이한길)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 감상을 마치고 찰칵! 여자 분들을 제외하고 사진 왼쪽부터 이계안 장인, 김상규 명장, 나, 변종복 명장, 조복래 장인.

아쉬운 점 한 가지. 이렇게 훌륭한 작가들의 명품이 한 곳에 오롯이 전시되었건만 내가 비행기 시간을 변경해가면서 1시간여 머무는 동안 관람객이 거의 없어 썰렁했던 것. 전시회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좀 더 많은 관람객이 찾아 주었을까. 서울로 옮겨 전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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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품명장 2011.12.15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인의 손길이 빚어낸 명품들도 놀랍지만 그걸 글로 옮긴 심미안도 찬탄스럽습니다

춤추는 도자기, 노래하는 도자기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을 만나다 2

김형오


<만다라>에 빠져 있는 내 손을 잡고 김이환 관장은 “우리 집에서 제일 자랑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하신다. 뭘까?

내 키보다 더 큰 2m 높이는 됨직한 거대한 도자기가 주변을 압도한다. 첫눈에 전혁림 화백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색깔․선․면 처리가 투박한 듯 날렵하고, 무거운 듯 가볍다. 산과 바다, 하늘과 땅, 새와 온갖 것들이 춤추고 노래한다. 거대한 입체 캔버스 위에서 사고가 자유를 만끽한다. 도자기라는 정해진 틀에 닫혀 있으면서 또한 열려 있다. 참 오늘 미술 공부 많이 한다. 아니, 전혁림의 미술관, 작품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이 도자기는 전 화백이 강화의 도자기 요에 직접 가서 그린 작품이란다. 두 점을 그렸는데 한 점은 아깝게도 가마에서 꺼내다가 파손되어 이것밖에 없다고 한다. 이 큰 도자기에 연로하신 몸으로 어떻게 작업하였을지 자못 궁금하다. 전 화백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거대한 도자기가 물레 틀에서 조금씩 돌아가고, 화백께선 붓을 들고 영감과 예술혼을 그 위에 펼쳐나가셨단다. 아드님 영근 화백은 그런 아버님 자세를 흩뜨리지 않으려고 뒤에서 허리춤을 꽉 붙잡고 도와드렸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 두 가지! 첫째, 빙 둘러 그림을 그리고 선과 무늬를 넣었는데 마치 자로 잰 듯 시작과 끝이 딱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직접 확인해 보았다. 맨 윗부분만 보더라도 삼각형 무늬가 같은 크기로 반복되고 있다. 가로줄도 색깔의 짙고 옅음은 있지만 비뚜로 되지는 않았다. 오늘 여기서 많이 듣는 말, ‘일필휘지’다. 그랬다, 도자기는 덧칠을 할 수 없다. 색을 빨아들이므로 한번 붓질한 자리에 또 칠하면 금방 표가 나고 보기도 안 좋기 때문이다. 일필휘지로 해와 달, 물고기와 새를 그려내며 선생님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두 번째 놀라움. 이 거대 도자기 그림을 완수하는 데 불과 2시간도 안 걸렸다는 것이다. 설마하니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아드님이 지칠까 하여 빨리 끝냈을 리는 없을 테고, 평소 작가의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창조의 욕구가 그대로 발산된 것 같다.

도대체 전 화백은 어찌 이리 창조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신가. 어디서 모티프를 구하시는가? 추상인 듯 구상이고, 구상인 듯 추상이다. 아드님 왈, “아마도 독학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모든 것이 작품의 소재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신영숙 여사는 한술 더 뜬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초월하신 분”이란다. 아드님이나 제자나 극진한 존경과 사랑이 묻어나온다.

자세히 보면 도자기도 예사롭지 않다. 광주 도자 엑스포에서 대상을 수상
한 도예작가 손호익씨에게 특별 의뢰하여 강화도 초지진의 도요지에서 구워낸 것이다. 아, 아깝고 또 안타깝다. 같은 크기의 작품 한 점이 도요에서 나오다가 파손돼 버리다니!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 어릴 적 영도다리 건너에 '대한도기'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자기 공장이 있었다. 전 화백은 일찍이 거기에서 몇년 동안 직접 도자기를 빚었다. 통영 미륵산 자락에 자리잡은 전혁림미술관에는 전 화백이 직접 빚은 도예 작품 수십 점이 소장되어 있다.

전혁림은 통영의 물길이고 또한 상징이다. 통영 시내 주요 아파트 벽면과 절개지, 그리고 도로변에서는 그의 붓자국이 생생한 그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 화백의 작품들을 확대 모사해 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지만, 사실은 나폴리를 '서양의 통영'이라 해야 맞다. 우리 국토에 이토록 아름다운 산하(山河)가 있다니! 그 통영을 전혁림은 붓으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의 캔버스는 유한과 무한의 경계가 없다. 모든 것을 담아내고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그런 그가 100세를 4년 앞두고 떠나갔다. 하지만 통영은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의 숨결과 체취는 통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통영시와 통영시민들의 문화의식, 그 수준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통영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 자랑스러운 도시다. 그 핵심, 심장부에 전혁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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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필 2011.12.11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가의 한 획은 일필휘지가 되건만
    나의 졸필 한 줄은 왜 일필휴지가 되는가.

국정감사 여적(餘滴)=길 위에서의 이삭줍기②
꼬라오 마을에 ‘희망꽃’ 피운 꼬레아의 우정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Cusco) 외곽에는 꼬라오(Ccorao)라는 이름의 작은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해발 3700미터 높이에 있는 원주민 마을입니다. 꼬라오, 왠지 정겹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어쩌면 꼬레아(Corea, 한국)와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발음을 떠나 이 마을은 실제로 우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6년 전부터 봉사단원을 파견해 희망의 씨앗을 심고, 또 꽃을 피워가고 있는 마을이니까요.


▲ 꼬라오 도자기 학교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 맨 위에 큰 글씨로 ‘비엔베니도스(Bienvenidos)’라고 써 놓았다. 우리말로 “환영합니다”라는 뜻이다. KOICA 앞치마를 두르고 도예 작업 중인 한국 여성, 페루 국기와 나란히 걸린 태극기 그림이 눈길을 끈다.

▲ 손에 손에 태극기와 페루 국기를 든 어린이들이 마을 어귀까지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반기듯이 스스럼없이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체온이란 따뜻한 것이다.


▲ 어른들도 참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성긴 이빨을 그대로 드러낸 채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 맞아 주었다. 옷은 비록 남루해도 태극기는 눈부시게 깨끗하다. 의료 지원 및 봉사를 좀 더 강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월 17일, 우리 팀은 바쁜 일정을 쪼개어 꼬라오 마을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무상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서 G20 국가에 걸맞은 기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꼬라오 마을은 우리의 원조 사업으로 현지 주민들 삶의 질이 높아진 대표적인 성공 모델입니다.

▲ 산세바스티안 시의 훌리안 로카 시장이 조끼 비슷하게 생긴 원주민들의 전통 의상을 내게 입혀 주었다. 기온이 낮아 조금 쌀쌀한 느낌이었는데 잘됐구나 싶었다. 행사 내내 그리고 페루를 떠날 때까지 나는 이 조끼를 입고 다녔다.


▲ 98%의 호기심에 2%의 경계심이 담긴 눈빛으로 우리 일행을 바라보는 두 여자 어린이. 아마도 자매인 듯싶다. 그 뒤로는 우리가 선물로 가져온 쌀 포대가 쌓여 있다. 흑백으로 찍었더라면 50~60년대 우리의 시골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페루는 우리에게 중남미 지역 제1의 지원 대상국이면서 또한 전 세계적으로 봉사단을 가장 많이 파견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지원 규모는 약 861만 달러. 중점 지원 분야는 교육 및 보건 의료, 인적 자원 개발 등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지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참 부족합니다.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너무 미미해 수치로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일본과 우리의 GDP 차이가 6배라면, 대외 원조 규모는 다시 그 1/10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 중절모를 쓴 할머니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나는 머리에 원주민들이 준 전통 모자인 ‘츠요’를 쓰고 있다. 원래는 귀가 살짝 덮이도록 좀 더 내려 써야 하는 모자란다. 할머니는 무릎 위에 아기를 안 듯 쌀 포대를 안고 있다.


▲ 오늘은 꼬라오 마을의 잔칫날이나 마찬가지다.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보려고 몰려나왔다. 주민들 입가에선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그만큼 우리 한국의 봉사단원들이 순수함과 진정성으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리라.


  KOICA(이사장 박대원)는 옛 잉카 문명의 중심지로서 약 3천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꼬라오에 2004년 처음 도자기 학교를 세웠습니다. 잉카 전통 자기에 한국식 유약 바르는 법을 가르쳤는가 하면, 판로를 개척하고 마케팅 기법도 전수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꼬라오 마을은 관광객 수가 늘어나고 도자기 매출액이 껑충 뛰어올라 주민들의 소득 또한 증대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비바 꼬레아”를 연호해가며 그렇게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친근하게 대해 주었나 봅니다.

▲ 고산 지대라서 걸음도 천천히 걷고 힘쓰는 일은 하지 말라 했는데 하도 많이 아이들을 안아 주다 보니 나중엔 숨이 가쁘고 팔이 저릿저릿했다. 그래도 마음은 뿌듯했다. 유년기로 돌아가 어릴 적의 나를 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 교복인 걸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빨간 티를 입고 환영을 나왔다. 붉은 악마 악동을 연상시키지만 붉은색은 페루의 국기 색이고 국민 색이다. 뒷줄 왼쪽부터 김영우 의원, 외통위 전홍조 국장, 한병길 페루 대사, 황진하 의원, 훌리안 로카 시장, 나 김형오, 에스테반 꼬라오 마을 대표, 최병국 의원.


  KOICA는 현재 내년에 완공할 계획으로 100만 달러의 예산을 지원해 꼬라오 마을에 감자가루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도자기 전시장과 마을회관도 확충할 예정입니다.

▲ 선물로 쌀 140포대를 준비해 와 꼬라오 마을 대표인 에스테반 씨에게 전달했다. 130여 가구가 한 포대씩 나누어 가질 분량이다. 문득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나누어 주던 옥수수가루 포대를 받으려고 번호표를 손에 든 채 교회 앞마당에 줄을 서 기다리던 우리 동네 어른들 모습이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 우리도 답례로 꼬라오 마을 주민들이 준비한 선물을 받았다. 손에 들고 있는 선물들이 각양각색이다. 왼쪽부터 장봉순 코이카 소장, 김영우 의원, 황진하 의원, 나, 훌리안 로카 시장, 최병국 의원, 한병길 페루 대사.


  나는 이 마을에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천사 같은 두 여성을 만났습니다. 권은주씨와 김아람씨. KOICA 단원인 그녀들은 미혼으로서 1년 남짓 꼬라오에 머물며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도자기 학교 마당에서. 내 어깨 너머로 잉카의 도예가가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 보인다.


▲ 잉카 전통 스타일의 도자기에 유약을 바른 완성품을 감상하고 있다. 왼쪽부터 코이카 봉사단원 권은주씨, 황진하 의원, 최병국 의원, 나.


▲ 서울에서 가져온 특별선물을 꼬라오 마을의 두 한국인 천사에게 전달하고 있다. 뭘까요? 힌트! 내 이름 석 자 중에서 한 글자와 똑같은 음식이다. 왼쪽부터 장봉순 코이카 소장, 한병길 페루 대사, 최병국 의원, 권은주씨, 나, 김아람씨, 황진하 의원, 김영우 의원.


  그 일이 얼마나 힘겨울는지 경험해 본 나는 잘 압니다. 왜냐면 꼬라오는 해발 3500~3700미터를 넘나드는 고산 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이 해발 2744미터입니다. 백두산보다도 1000미터나 더 높은 곳, 웬만한 식물은 서식조차 할 수 없는 까마득한 고지대에서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가난한 산골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있는 아담한 체구의 앳된 두 여성….
  게다가 환경은 얼마나 열악한지요. 목욕은 거의 하지 않고, 옷도 한번 입으면 해질 때까지 갈아입지 않는다는 원주민 마을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이 더욱 더 대견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 꼬라오 마을의 전통 공예품이나 의복·장신구·도자기 등을 파는 가게. 우리가 머문 한 시간 반 동안 관광버스가 8~9대는 올 정도로 홍보가 잘 돼 있었다. 도자기 전시 판매장은 이 사진 왼쪽에 있다.


▲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한 채 헤어지기 전에 찰칵! 뒤에 있는 버스는 관광객들이 타고 온 것이다. 우리는 마을 입구에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서 왔다. 이미 앞 사진들에 나온 인물들이라서 개별적인 소개는 생략한다. 다만 오른쪽에서 세 번째, 가방을 허리 아래로 내려뜨린 이 미모의 여성은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시는 분 연락 바람.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힘이고 가능성입니다. 나는 그 연약해 보이는, 그러나 누구보다도 강인한 그녀들에게서 내 조국의 눈부신 미래상을 보았습니다. 21세기를 선도해 나갈 젊은이들의 맑은 열정과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정감사로 떠난 출장길에서 만난 그녀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마을에 머무는 동안 열 번도 넘게 외쳤던 구호를 다시 한 번 외쳐봅니다. “비바, 페루! 비바, 꼬레아!, 비바, 꼬라오!”

▲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가 아쉬워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사실 여기 오기 전날 밤부터 우리는 고산병 예방약도 먹고, 주의를 단단히 들었습니다. 절대로 뛰지 말 것, 무거운 것 들지 말 것, 어지럽거나 구토가 나면 곧바로 연락할 것…. 그러나 원주민들의 뜨거운 환영과 따뜻한 환대 덕분인지 우리는 전날의 주의 사항도, 여기가 백두산보다 1000미터나 높은 곳이란 사실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마치 그들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혹은 지리산 계곡 같은 곳에서 반갑게 만난 지인처럼 금세 친해져 격의 없이 어울렸습니다.


▲ 노란 손수건 대신 태극 깃발과 페루 깃발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어떤 할머니들은 우리를 만나 너무 기쁘다며 눈물을 흘렸었다.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는 할머니들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일까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작별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원주민들은 어김없이 그 자리에 서서 계속 깃발을 흔들며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차례의 재촉 끝에 우리는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한 뒤 타고 온 버스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런 우리 뒤를 원주민들의 눈길과 마음이 아주 멀리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이 모두가 KOICA의 두 천사들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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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퍼민트 2010.11.04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블로그가 아니면 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의장님이 보고 온 두 천사에게 정말 존경어린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이제 우리도 경제 규모와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코리아의 이미지를 세상에 심어야 할 때입니다.

  2. 비엔나 2010.11.04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른들도 '천진난만함'을 간직하고 있는 신비의 마을이군요!
    그 곳에 가면 모두 순수해 지나 봅니다.
    호야님 맑은 표정에서 느껴지네요.

  3. 해피송송 2010.11.04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 어른아이 할 것없이 모두 얼굴이 발그레 하네요

  4. 사랑한가득 2010.11.05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땟국물이 흐르는 개발도상국가의 아이와 아저씨, 할머니들을
    사랑으로 품어 안은 모습이 내 마음을 울립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 쓸 수 없는 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정치도 그런 마음으로 하시겠지요?

  5. 코카콜라 2010.11.05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읽으며, 사진 속의 얼굴들을 보며
    가슴이 캐시미론 이불을 덮은 듯 따뜻해졌습니다.
    사랑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듬뿍 느껴지는 글과 사진들입니다.
    아직도 저런 순수의 마을이 있다니,
    인류는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6. Sunny 2010.11.05 16: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속의 얼굴들은 순수하고 이국적이지만, 저들의 일상은 팍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으로는 행복지수는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보구요. 물질이 행복을 담보해주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품격을 유지시켜주는 물질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전쟁과 가난을 극복해낸 부모님세대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비바 의장님이십니다.!!Sunny는 진선희과장의 닉네임입니다^^

    • 김형오 2010.11.05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Sunny 영문도 한글도 이름도 얼굴도 이쁘군요 일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힘든 곳에 수행해 온갖 사전 준비와 뒤치닥거리를 깔금하고 말끔하게 처리하는 능력에 우리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더 큰 발전있기를!! 호야

  7. 김형오 2010.11.05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늦가을 추위를 녹이듯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길상사 법정스님 열반 다비 때 나는 우리 겨레의 한없는 사랑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사랑이 없는 정치 사랑이 없는 인생은 무의미합니다
    나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하여 정치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증오의 불씨를 꺼버리기 위하여 소명감을 갖고 정치를 합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사랑 애국하는 마음을 존중합니다 호야

  8. 르네상스 2010.11.06 0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취와 체온이 느껴지는 블로깅입니다.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배어납니다.

  9. 2010.11.26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