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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사막에서 꿈을 찾고 나눔을 실천하다

-사진으로 스케치한 사하라 사막 마라톤 참가기

 

  

<편집노트> 김형오 전 국회의장과 우헌기 (주)택산상역 대표이사는 대학 동문으로 2009년 여름 이스탄불에도 함께 다녀온 오랜 친구 사이입니다. 김 전 의장은 우 대표가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다는 메일을 받고 친구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혼자 보고 즐기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나눔과 도전 정신으로 가득한 우헌기 대표는 이 마라톤을 통해 1km를 달릴 때마다 해외 어린이 돕기 성금을 모으는 이벤트도 함께 벌였습니다. 그래서 김 전 의장은 자신의 블로그에도 우 대표의 사하라 사막 마라톤 참가기를 올려 좀 더 많은 네티즌들과 감동을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총 8편으로 구성된 이 색다른 기록은 한 편의 시로 시작합니다. 그 중 1편은 전문을 전재하고, 나머지는 링크를 걸었습니다. 우헌기 대표는 지난해 10월에도 김형오 전 의장의 블로그에 아름다운 풍광 사진과 함께 네팔 방문기를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가기: 내 맘 속의 고향을 찾아) 멋진 사진과 유려한 필치로 블로그를 빛내 주신 우헌기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작가 소개>
우헌기 택산상역 대표이사는 ‘천년의 미소’라는 블로그(http://blog.naver.com/hgwoo0920) 아이디에 어울리는 맑은 인상을 갖고 있다. 신라 불상의 은근한 미소를 닮은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사람과 풍경에 관심이 깊은 그는 여행을 즐기며 어깨에 늘 카메라를 매달고 다닌다. 빛나는 인문학적 지식과 통찰력으로 대화와 글을 통해 지인들을 감탄시키곤 한다. 보기와는 달리 그는 대학 시절부터 소문난 어드벤처 맨이었다. 등산은 물론 암벽 등반, 스키, 스킨스쿠버다이빙 등 다이내믹하면서도 익스트림한 취미를 갖고 있는 만능 레포츠 맨이다. ‘아침에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매일매일 가슴 설레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영원한 청년이기도 하다.

 

 

1탄=왜 갔냐건 웃지요

 

드디어 그리고 그리던 사막에 도착했다. 카이로에서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렸다. 우리가 첫 밤을 보낼 곳은 와디 엘 라얀이라는 UNESCO 자연보호구역에 있는 호수 가(southern lake)이다.

 

웃은 죄

지름길을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그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말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 밖에

- 김동환 -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했다. 지금이라도 그만 둬. 절대로 무리하지 마라. 그동안 가정에 오순도순 산 것도 아닌데, 퇴직하고 나서는 또 이러면 어쩌지. 이젠 가정에 충실해라. 그게 순리야, 순리. 그래 난 분명 세월이 가져다주는 순리는 거스리고 있는지 모른다. 세월을 거스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누가 뭐래도 나이만큼 늙는다. 이제 60대 중반을 접어들었다. 평소 몸 관리는 잘 한 편이라 건강은 하지만, 나이만큼 늙었다는 걸 난 누구보다 잘 알고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젠 손자 손녀 재롱을 보면서 한 없이 행복해하고, 이게 행복이구나 하고 살 나이인 것도 부인하지 않는다. 부부가 살짝 손 잡고 집 주변을 산책해야 하는 것이 평온이요 순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떠나기로 했다. 난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카이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유도 명분도 따지지 마라. 그냥 맘이 내키는 대로 떠나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걷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흔히 상상하듯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도, 거창한 성취감을 만끽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양 가고 싶어서, 그리고 그냥 사막의 아름다움, 사막의 고독, 사막의 황량함, 사막의 처절함을 즐기고 싶어서 이 길을 나섰다. 

< 남으로 창을 내겠소 >

왜 사냐건 웃지요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어랴오
강냉이가 익거들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김상용 -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를 뒤로 한 채 떠났다. 속으론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을 간직한 채 드디어 사막에 들어왔다.

사막에서의 첫 밤, 이상하게 모두들 평화로웠다.

긴장감이 팽배해야 할 분위기이지만, 이상한 일이다. 내일부터 지고 가야할 배낭의 무게와는 상관이 없는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먹을 것은 모두들 엄청나게 많이 가져왔다. 맘껏 양껏 먹어두자,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더 비축해두기 위해서. 먹고 또 먹었다. 과식했을 때의 '기분 나쁨'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도 먹어둬야 한다. 또 먹었다. 에너지 비축을 위해, 서울에 있을 때부터 체중을 늘리기 위해 힘썻지만, 실패했다. 카이로에 있는 4일 동안도 열심히 먹었지만, 체중은 늘지 않았다. 오늘 밤이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더 비축해 둘 마지막 기회다. 그리고 맛 있는 것도 지천으로 많다. 모두들 많이도 가지고 왔다. 

사막에서의 첫 밤, 난 너무 행복했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른 채 달콤한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왜 가냐 건
웃지요 

2011 사하라 레이스 첫날 밤을 보낼 야영장, 호수 가에 설치된 첫 야영장이 사막에 왔다는 느낌마저 주지 않는다.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한다.   선수(참가자)들은 사막 도착  당일 저녁과 다음 날(시합 출발일) 아침에 먹을 식량은 별도(비닐봉지)로 들고 간다.

 

참가 선수들을 맞아 주는 현수막, 이 곳이 내일 첫 경기의 출발선이다. 현수막 밑에 보이는 것이 대만 민속 공연단의 인형 탈이다. 그들은 이 탈을 교대로 쓰고 250km를 걸었다.  (1탄 끝)





2탄 바로가기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드디어 출발 신호가 울렸다. 나는 이제부터 낙타가 되어 저 광막한 사막을 달려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디서 어떤 길이 나타날지 전혀 모른다. 오직 걷고 또 달릴 뿐이다...

3탄 바로가기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창공에서도, 가슴에서도 저마다 깃발이 펄럭인다. 꿈과 희망이 나부낀다.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마라토너는 러닝슈즈를 벗지 않는다. 메마른 사막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가 있다...

4탄 바로가기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모래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린다. 천막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그래도 석양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홍시처럼 빨간 달이 떴다. 오랜 꿈 나래를 피우기 위해 간밤엔 바람이 그렇게 불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5탄 바로가기 ☞ 완주 소감을 미리 쓰다
“예순세 살, 최고령자로서 250km를 완주하셨는데 소감은?” “할 만 하네요, 뛰어 보니 별거 아니네요.” 자문자답. 내가 묻고 내가 대답했다. 나와의 인터뷰로 각오와 의지를 새롭게 다졌다...

♠ 6탄 바로가기 ☞ 순풍에 돛 달고서
시작한 게 방금 전 같은데 벌써 훌쩍 절반이 지나갔다. 저 바람은 이 길을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걸까? 사막에서 나는 자연이 창조해낸 박물관과 미술관과 음악당을 보았다...

7탄 바로가기 ☞ 구름에 달 가듯이
상현달 아래서 밤을 새워 울트라 걷기를 했다. 내 발이 고단해지면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나는 끝까지 가야 한다. 외롭다. 조금은 두렵다. 그렇다, 고독과 자유는 서로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8탄 바로가기 ☞ 태산이 높다 하되
대장정의 막이 내렸다. 피라미드를 한 바퀴 돌자 레이스는 끝나 있었다. 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런데 뭐가 이리 아쉬운 걸까? 마음 같아선 10km 이상도 더 갈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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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달파란 2011.10.28 1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 분의 아름다운 우정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소제목만으로도 끌리는 이색 참가기, 고맙게 읽겠습니다.

  2. 아이언맨 2011.10.31 14: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갔냐건 웃지요.
    천년의 미소님다운 답변이십니다.

이번 주 무릎팍도사에 이봉주가 출연했습니다. 속눈썹 이야기부터 황영조와의 관계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트랙을 돌며 두 팔 벌려 테이프를 끊을 것 같은 그가 은퇴했다는 사실이 저는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지구를 약 다섯 바퀴를 돌았다는 그의 마라톤 인생은 부상과 좌절, 재기와 투혼이 얽힌 한 편의 드라마였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짝발과 평발 그리고 느닷없이 찾아온 온갖 시련을 묵묵하게 노력과 끈기로 이겨낸 것은 더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죠. 그의 마라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은 희망과 용기를 얻었고, 또한 인생을 배웠습니다.

그 가운데 '이봉주'하면 200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월계관을 쓴 그와 함께 보스턴 하늘에 울려퍼지는 애국가를 듣는 순간, 새벽잠을 설쳐가며 중계를 지켜본 보람이 있었죠. 올림픽, 아시안게임이 아닌 마라톤 단일 종목만 열리는 국제 대회 중계를 저는 그렇게 열심히 시청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봉주와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세계 최고의 마라톤 대회에서 51년만의 쾌거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1897년에 처음 열렸으며, 올림픽 다음으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대회입니다. 1950년에 열린 이 대회에서 손기정의 지도를 받은 한국대표 함기윤, 송길윤, 최윤칠이 나란히 1,2,3위를 석권하며 화제를 모았다고 합니다.

이후 이 대회의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우리 나라는 무려 51년만에 이봉주가 왕좌에 등극하며 한국 마라톤의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문득 베를린 올림픽에서의 손기정옹 이후 황영조가 몬주익의 영웅으로 급부상했던 장면이 떠올랐죠.

이봉주의 우승을 통해 미국-유럽권 마라톤 대회에서 한국인이 수상하는 장면을 본 것은 낯설면서도 특별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51년 만이라니~




부상의 불운과 부친상의 슬픔을 딛고 일어선 인간 승리

2000년 2월에 열린 동경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며 자신의 최고기록이자, 역대 한국최고기록인 2시간 7분 20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올림픽을 앞둔 터라 많은 사람들의 기대도 부풀어갔죠.

그러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그의 뜻대로 되기는 커녕 오히려 큰 시련을 안겨주었습니다. 15km를 달릴 무렵 선수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게 이루어졌는데, 아프리카 출신의 한 선수가 넘어지면서 이봉주와 부딪혔던 것이죠. 그 때문에 덩달아 넘어진 이봉주는 24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손에 쥐어야 했었습니다.

이봉주는 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 연말에 열린 후쿠오카 대회에서 다시 2위를 차지하며 희망을 얻었고, 보스턴 대회 성공의 초석을 다졌죠. 당시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2000년 동경국제대회 등 여러 대회에서 2위만 해서 '단골 2인자'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독 일본에서는 성적이 좋은 편이었는데다 묵묵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모습 덕택에 일본팬들도 많이 늘었다고 하더군요.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웃을 일이 생기니 슬픈 일이 다가오고, 슬픈 일 다음에 기쁜 일이 생기는가 봅니다. 2000년 후쿠오카 대회의 호성적으로 간신히 희망을 찾는가 했으나 보스턴 마라톤 준비에 한창이던 때에 부친상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이봉주에게는 훈련에 차질을 빚게 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대회 준비에 치명적인 시련이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는 결국 보스턴에서 월계관을 쓰고야 말았습니다. 어쩌면 하늘에서 그의 아버지가 도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황영조와는 또 다른 길을 걷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마라톤'하면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와 보스턴 우승자 이봉주를 떠올립니다. 동갑내기인 둘은 서로 친하면서도 또한 너무도 상반된 스타일을 갖고 있죠.

황영조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인터뷰도 쉽게 잘하는 편이지만, 이봉주는 내성적인 성격에 수줍음을 잘 타면서도 순수한 인간성이 매력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황영조는 이른 시기에 최전성기를 맞은 뒤 오래지 않아 은퇴의 길을 걸었지만, 이봉주는 대기만성형 선수로 오랫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죠. 시기적으로는 황영조의 퇴조와 이봉주의 부각이 맞물리는 부분도 있었는데, 두 사람은 동갑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바통 터치하는 형국으로 그들의 역사는 전개되었습니다.

실제로 황영조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에 뽑히지 못한 채 은퇴의 수순을 밟을 무렵, 자연스럽게 김이용과 이봉주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는데, 결국 승자는 이봉주였습니다. 이봉주에게 있어서 상징적인 성과를 꼽으라면, 바로 보스턴 마라톤 우승이었습니다. 이로써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마라톤은 황영조-이봉주의 역사로 굳어지게 되었죠.

두 사람 모두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경력을 갖고 있지만, 황영조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이봉주는 200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각각 우승하여 서로 다른 분야에 각자의 이름을 올렸습니다. '마라톤'은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지만, 단일 대회로서는 보스턴 대회를 빼놓을 수 없거든요.

이렇게 서로 다르고 사연이 많은 그들이었지만, 이봉주의 아내를 황영조가 소개시켜줬다는 사실에서 그들은 경쟁자이자 친구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봉주는 평발, 짝발로 인해 물집이 생기고 발톱이 빠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봉주가 은퇴하고 나니 한국 마라톤계가 휑한 느낌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마라톤 뿐만 아니라 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스포츠는 그 어떤 분야보다 국민에게 힘이 되었고, 대한민국을 알리는데 앞장섰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은 2000년대에 걸맞는 기량을 요구하고 있지만, 체육 인프라와 투자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부끄러울 정도로 열악합니다. 앞으로 제 2의 이봉주를 볼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부 기업들은 스포츠 스타가 급부상하면 당장의 광고효과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느껴져서 유감스럽기도 합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 우승 후, 51년만에 이봉주가 우승했는데, 이 대회에서 대한민국 선수가 다시 월계관을 쓰려면 반세기를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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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4 14: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봉주 선수의 발 사진을 보니,
    가슴이 먹먹하네요.
    항상 푸근한 인상이 참 좋았습니다.
    무거운 태극기 마크를 달고 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04 1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힘든 운동인데도 고통을 감내하며 뛴 걸 보면
      외유내강의 성격을 가진데다 근성과인내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2. BlogIcon gemlove 2010.02.04 1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이봉주 선수 발을 보니 눈물이 ㅠㅜ 신체적인 단점을 극복하고 그 자리까지 올라가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3. BlogIcon 탐진강 2010.02.04 2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봉주가 황영조 보다 친근감이 넘치죠.

국어사전을 뒤적였다. <페이스 메이커>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중거리 이상의 달리기 경주나 자전거 경기 따위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


TV속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 하나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앞에 외로이 서있었다.


그의 나이 마흔, 그의 이름 <이봉주>였다.



- 이봉주와의 우연한 만남 


내가 훈련중인 이봉주를 우연히 만난 곳은 서울 강동구 일자산(一字山)의 호젓한 산책로였다. 일자산은 평평한 산길이 정상까지 이어지는 곳이어서, 산악자전거(MTB) 동호인들이 밤낮으로 즐겨찾는 산.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든 가을이었다.


▲ 나무가 단풍들면, 울긋불긋 예쁘게 옷을 갈아입는다. 사람이 단풍들면 어떻게 변할까? 정말 아름답지 않을까? 


토요일 오전, 일자산 산책로를 걸어 오르던 나는 등 뒤에서 거센 바람소리가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건장한 남자 3~4명이 바람처럼 내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들이 산 정상쪽으로 번개처럼 달려간 뒤, 10초 쯤 흘렀을까.....


진한 갈색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앞서간 남자들을 따라잡으려는 듯 바람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마라토너 <이봉주>였다.


그가 이봉주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이봉주는 점점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와 나의 거리는 불과 10여 미터.

1~2초만 지체하면, 이봉주는 내 옆을 스쳐 일자산 정상쪽으로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 어떻게 하지???”  


짧지만 치열했던 고민 끝에, 난 그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대화를 나눴다.


- 나 :  이봉주 선수, 파이팅!!

= 이봉주 : (모기같은 목소리로...) 네,,,감샤합니다아앙~~~


이봉주는 쏜살처럼 내 앞을 달려가면서도 내게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다. (친절한 봉주씨! )


내 앞에서 걷던 몇 사람이 나의 ‘파이팅’ 구호와 이봉주 선수의 대답을 듣고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 이봉주!  이봉주!  이봉주! ..... ”


내가 그렇게 이봉주를 만난 게 5년 전의 일이다.



- 이봉주와 ‘자전거 도둑‘
  &  '페이스 메이커'


그 때 그와 만난 뒤,  서른 넷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난 소설가 김소진의 소설집 <자전거 도둑>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 특히 감명깊었던 <마라토너>라는 단편소설의 내용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한 노장 마라토너가 젊고 유망한 선수의 기록유지 보조요원, 즉 페이스메이커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내용이었다. 아마 일자산에서 이봉주 선수보다 10 여초 앞서 뛰어간 3~4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바로 이봉주의 페이스메이커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 이봉주는 대한민국의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


이봉주의 은퇴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난 이봉주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페이스메이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봉주가 먼저 치고 나가면, 우리 국민들은 그의 열정과 땀방울에 감동받아 그를 따라 달려갔던 것은 아닐까?


우리 국민은 10년 넘게 이봉주에게서 매우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봉주에게서 우리가 받은 소중한 선물은 대략 이런 것들이 아닐까...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마라토너로서 우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줬다.

-41번 풀코스를 완주하는 끝없는 노력으로 국민들에게 오뚝이 정신을 보여주었다.

-결코 자만하지 않는 태도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이봉주의 반쯤 감긴 눈꺼풀과 턱수염은 그의 헤어밴드 중앙에 찍힌 태극마크 보다도 더 대한민국 전체를 즐겁게 했다. (안 그런가?? )


봉달이 이봉주 때문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즐겁고 행복하고 유쾌하지 않았을까?  우리 대한민국은 이봉주 때문에 상당 부분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만 하면, 그를 대한민국의  ‘페이스 메이커’였다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 '행복하라, 봉달이~~ '


그랬다. 그가 은퇴를 했다. 봉달이가 마라톤을 그만 둔 것이다.


그의 눈물을 보며, 난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허스키 창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서유석의 노래. 

난 노래를 잘 못하지만, 봉달이 이봉주를 떠올리며 정성껏 불러보려 한다. 그 동안 나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했던 이봉주에게 힘 내라고, 잘 살라고, 앞으로도 내내 건강하라고 노래라도 하나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내 노래를 듣고 이봉주가 조금이라도 기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 오오오오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 노래듣기 (다음 블로그) - 서유석 <아름다운 사람>
http://blog.daum.net/ubsum/202?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ubsum%2F202
                                               


                          ▲  " 봉달이, 안녕~~~ 행복해~~ "          (사진 - 삼성전자 육상단)
                                                                                                     



                                                                                                                  - Posted by 백가이버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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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09.10.22 16: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이군요..사람이 단풍들면....이봉주 선수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땡스!!

  2. 살다보면 2009.10.22 22: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봉주 선수 참 대단했죠...겸손하고....황모선수와 비교되기도 했었고...암튼 잘 살기를///

  3. BlogIcon 이봉주 페이스메이커 2009.10.28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이봉주 선수는 대한국민의 페이스메이커 역활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본인의 영리 목적을 위해 달렸던 것이 아니고 가족과 국민을 위해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이제 체육 관계자 및 국민들은 마라톤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이봉주 선수에게 페이스메이커 역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마라톤은 강합니다.
    아프리카 선수들에게 빼앗겼던 마라톤 강대국의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 이봉주 선수를 믿습니다.

    - 이봉주 선수 페이스메이커(지금은 회사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