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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를 걷다 ; 마르마라 해안 성벽 탐사



  <구름 위의 산책>이란 영화가 있습니다만, 그대 혹시 바다 위를 걸어 본 적이 있나요?

  나는 걸어 보았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도시 ‘이스탄티노플’에서 말입니다. 물론 특수 신발을 신었다거나, 갑자기 내 눈 앞에서 ‘모세의 기적’이 펼쳐졌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수로 바다 위를 활보했던 걸까요?

  엄밀히 말하자면 ‘바다 위의 산책’은 아니었습니다. ‘1453년 당시에는 바다였던 곳’을 답사했던 거지요. 부연하자면, 나는 지금은 대부분 매립돼 육지로 변해 버린 마르마라 해안 성벽 주변을 탐사했습니다. 몇 장의 지도를 손에 들고서 말입니다.


  총 길이 약 9킬로미터. 마르마라 연안을 끼고 완만한 오목렌즈 형으로 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해안 성벽은 한 겹이었으며, 그 성벽을 관통하는 11개의 문이 바다 쪽으로 나 있었습니다. 또한 두 개의 요새화된 항구를 비롯해 작은 선착장들이 있어 물자도 실어 나르고 세찬 북풍 때문에 골든혼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소형 선박들의 피난처가 돼 주었습니다.

  성벽 둘레로는 급류가 흘러 상륙용 주정(소형 배)을 성벽 끝까지 갖다 대기가 어려웠으며, 암초와 모래톱 또한 마르마라 성벽의 든든한 방어물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1453년 전까지만 해도 1000년 이상 외세의 침략에 의해 허물어지거나 성문이 열린 적이 없는 천혜의 철옹성이었습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15세기 콘스탄티노플 도성 모습. 오른쪽으로 방어용 쇠사슬을 쳐 놓은 골든혼(금각만)이 흐르고, 그 옆에 제노바 사람들의 거주지였던 갈라타 지역 일부가 보인다. 그림이 증명해 주듯이 당시에는 아래쪽 마르마라 바다가 성벽과 거의 맞닿아 있었다. 파도가 성벽으로 밀려와 부딪치는가 하면, 성문을 통해 식량과 물자를 실은 배들이 드나들기도 했다. 지금은 복개되어 사라졌지만 콘스탄티노플 도성을 가로질러 흐르던 리쿠스 강이 예니카프를 통해 마르마라 바다로 흘러가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1453년 당시에는 도성의 상류 지역인 메소테이키온에서 격전이 치열했던 만큼 리쿠스 강물에도 핏물이 진하게 섞여 바다로 흘러 내렸으리라.


  그러나 이제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어순을 바꾸어 벽해상전(碧海桑田)이라 해야 할까요? 저 그림 속에서 꿈틀대던 마르마라 바다의 일부분은 흙으로 메워져 지금은 공원과 해안 도로로 변해 있습니다. 옛 성곽들도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많이 허물어지고, 도로와 철길이 놓이면서 상당 부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설픈 복원 공사로 미관을 해친 부분도 더러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 보십시오. 아래에 소개하는 사진들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답지 않습니까. 프로추어(프로+아마추어) 작가 두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찍은 사진들이지만 이번에도 올리지 못한 사진이 수백 컷입니다.
  한
컷의 사진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나와 함께 마르마라 해안 성벽 주변, 바다 위를 걸어 볼까요?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누구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꿈이 현실이 되는 도시 ‘이스탄티노플’에서라면….



▲ 골든혼 입구에서 마르마라 해 쪽으로 배나 자동차를 우회전하면 해안 성벽이 나타난다. 오른쪽 언덕 위로 톱카프 궁전의 둥근 지붕이 보인다. 만만치 않은 수심인데도 더위를 피해 나온 시민들이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안전 요원이나 ‘수영 금지’ 팻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 해안 성벽으로 접어들면 맨 먼저 눈에 띄는 *투르굿 레이스(Turgut Reis, 1485~1565)의 동상. 마르마라 해와 보스포루스 해협을 바라보며 왼손을 지구의에 얹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동상 오른쪽 건너편 페라 신도시 앞바다에는 하얀색 크루즈선이 떠 있다.  

*16세기 오스만의 유명한 해군 제독.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두 살에 군인이 되었다. 지중해 말타 섬 원정을 총지휘했으며, 그리스도교 선박들에 대한 무자비한 약탈로 유럽에서는 악명이 높았다. 1551년에는 말타 제도에서 두 번째로 큰 고조 섬의 주민 6000여 명을 모두 리비아에 노예로 팔아 버린 일도 있었다. 코르시카 섬과 마요르카 섬을 초토화시키기도 했다.

투르굿 레이스에서 레이스(Reis)는 성이 아니라 ‘제독’이란 뜻을 지닌 옛 터키어이다. 아시아계 유목 민족이 그러하듯이 터키도 예전에는 성(姓)이 없었다. 특정 인물 이름에 직함을 붙여 부르는 건 터키인들의 오랜 전통. 걸출한 제독들에게는 ‘레이스’란 칭호가 붙었다. 같은 이유로 장군이나 사령관에게는 파샤(Pasha), 중견급 군인이나 지방 장관에게는 베이(Bey)란 호칭이 따라 붙는다.


 

▲ 투르굿 레이스의 동상 옆 망루 성벽에 새겨진 고대 그리스 문자들. 테오필로스 황제(829~842년)가 이 성벽을 새로 지었다는 말과 함께 황제를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테오필로스는 9세기 무렵 아랍 함대들의 침공에 대비해 성벽을 보강했다. 이 망루 성벽 복원을 위해 역사학도(해안 성벽 전공) 니사가 관여하는 협회에서 유네스코에 연구 논문을 제출했다고 한다.


▲ 출입문인가, 경비용 혹은 감시용 문인가. 비잔틴 양식의 아치형 문이 아랫부분은 지하로 절반 이상 매몰된 채 시커먼 속을 내보이고 있다. 지표면의 융기로 땅이 솟아오른 데다가 매립까지 더해진 걸 감안하면 실제 높이는 만만치 않았으리라.


*부콜레온 황궁(Boukoleon Palace)으로 통하는 바다 쪽 수문의 원형 복원도.
   우리가 찍은 아래 관련 사진들과 비교해가며 보기 바란다.

*네아 바실리카 교회 옆, 히포드롬(원형 이륜마차 경기장) 바로 뒤에 있었던 비잔틴 제국의 궁전. 아야 소피아와 매우 가까워 콘스탄틴 대제를 비롯한 비잔틴 황제들이 이곳에 머문 적이 많았다. 부콜레온(Boukoleon)이란 이름은 이 궁전을 지키고 있는 황소(Bull)와 사자(Lion)를 닮은 동물 조각상(붉은 사각형)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터키 정부가 그리스와의 우호 관계를 고려해 최근 일부 건물을 보수하고 있다고 한다. 표지판에 고고학 박물관의 감독 아래 이 궁전과 그 주변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 부콜레온 황궁으로 연결되는 해안 쪽 문. 궁전을 수호하던 동물 조각상은 사라지고 물결이 넘실대던 바다는 매립으로 메워져 해안도로(케네디 대로)가 나고 해안선은 그만큼 멀어졌다. 배들이 다니던 바다를 지금은 자동차들이 달린다. 매끈했던 대리석 벽면에서는 거미줄처럼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 부콜레온 황궁으로 이어지는 해안 쪽 문 내부. 카메라로 얼굴이 가려진 저 사나이는 누구인가. 내 오랜 벗 우헌기 兄이다. 이번 어드벤처에 기꺼이 동행해 프로 수준의 사진으로 맹활약했지만 “촬영 감독은 원래 스크린에 안 비치는 법”이라며 한사코 블로그에 등장하길 사양했다. 그런 그의 사진 찍는 모습을 내 디카에 담았다.


▲ 비잔틴 양식의 전형을 보여 주는 부콜레온 황궁 성벽의 맨 윗부분. 저 꼭대기에서도 무화과나무는 뿌리를 하늘에 두고 가지를 땅으로 향한 채 물구나무서서 자란다. 터키는 기후와 토양 모두 무화과나무가 자라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무화과나무(Fig-tree)를 인지르(Incir)라고 부른다. 하도 이 나무를 많이 보아서 나는 이 도시를   ‘인지르 시티(Incir City)’라고 부르기로 했다. 로마에서는 주신() 바쿠스가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해서 다산()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이스탄티노플은 문명과 문화 모두 다산성(多産性)인 도시이다.


◀ 아흐르카프(외양간 문) 주변. 오랜 옛날부터 등대는 늘 그 자리에 있어 왔다. 그러나 이 등대는 비잔틴 시대의 등대도, 오스만 시대의 등대도 아니다. 공화국 이후에 다시 지어진 현대식 등대이다. 달그림자마저 얼어붙었을 1453년 5월의 어느 날 밤을 등대는 기억하고 있을까. 여기서 마르마라 해 건너편 아시아 쪽 연안으로  *1군 사령부가 바라다 보인다.





*위스크다르 남쪽 마르마라 해 연안에 세워진 오스만 시대의 건물로 독일의 건축 양식을 따랐다. 크림전쟁 때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로 일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군 시설이라서 민간인 출입은 금하고 있으며 북동쪽에 나이팅게일 기념관이 있다.


 

▲ 해안 성벽 안쪽. 성벽의 윗부분은 복원한 흔적이 뚜렷하다. 활을 쏘기 위해 만든 네모난 구멍은 안쪽이 넓은 반면 바깥쪽은 좁다. 공격과 수비를 모두 유리하게 하기 위한 지혜의 산물이다. 아치(Arch) 모양이지만 보다 전문적인 건축 용어로는 *니치(Niche)라고 일컫는다.

*장식을 목적으로 두꺼운 벽면을 파서 만든 움푹한 대(臺)로 보통 그 윗부분이 반(半)돔형이다. ‘벽감(壁龕)’이라고도 한다. 서양에서는 이곳에 꽃병 등을 놓거나 아예 이 부분을 장식용 분수(噴水)로 만들기도 했다. 아치와 니치를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벽이 없이 움푹 뚫려 있으면 아치, 움푹 들어가 있지만 벽으로 막혀 있으면 니치이다.



▲ 성벽의 높이를 짐작해 보자. 단 옛날에 비해 대지가 융기하고 해안이 매립됐음을 감안해야 한다. 지하에 숨어 있는 깊이까지 헤아린다면 결코 만만하게 볼 높이가 아니다. 여기에 바닷물이 들이차고 남풍이 거세게 불고 암초까지 많았으니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려는 세력들도 마르마라 해안 성벽은 감히 공격할 엄두를 못 내었다고 한다. 다만 강한 바닷바람(海風)에 실려온 염분으로 인해 육지 성벽이나 골든혼 쪽 성벽보다 보수 및 보강 공사를 더 자주 해야 했다.



▲ 어느 것이 먼저 무너질까? 1500년을 버텨온 성벽 틈새에 판잣집이 위태위태하게 이웃해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즉석에서 그런 사진 캡션이 떠올랐다. 차틀라드카프 인근에는 이런 식의 건축물들과 성벽들이 흔했다. 그래서 일행 중 사진 애호가인 두 사람은 갈 길이 멀다고 재촉해도 못 들은 척 경쟁하다시피 셔터를 눌러댔다.


▲ 인간이 살고 있다! 허물어진 성벽 사이로 허름하게 지어진 목조 가옥의 2층 처마 밑에서 빨래가 마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온기가 넘쳐흐르는 느낌이었다. 문득 멀리 두고 온 그리운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다.



▲ 이 그림을 바로 위 사진과 비교해 보라. 앞 성벽은 모양이며 구조가 위 사진 속의 성벽과 똑같다. 동일한 성벽이다. 그래픽으로 표현한 대리석 건물은 부콜레온 황궁 벽의 운형 복원도. 높이만 놓고 보더라도 그 위용을 실감나게 상상할 수 있다.




▲ 이스탄티노플에선 피사체 모두가 예술 작품, 아니 그 이상이다. 어떤 조각가, 어떤 화가가 이토록 아름답고 운치 있는 풍경을 빚어낼 수 있으랴. 오랜 세월, 비와 눈과 바람과 햇살이 합작해 빚은 천혜의 예술 작품 앞에선 오른쪽 인공으로 지은 건축물마저 불협화음이 아니라 차라리 조화롭게 느껴진다. 역설의 미학이랄까.


▲ 누가 저 고색창연한 성벽 위에 액자를 걸고 두 장의 현대식 건물 사진을 끼워 넣었을까?
눈이 잠시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 저 사진틀 모양 성벽들은 원래는 왼쪽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재질은 물론 대리석이다.(아래 그림 붉은 표시 부분 참고)






부콜레온 황궁 복원도


▲ 성곽 끝자락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한 자세로 마치 1500년 전부터 거기 존재해온 것처럼 대리석 기둥을 받치고 집 한 채가 있다. 부콜레온 황궁 복원도와 이 사진을 아치 기둥에 초점을 맞추어 비교해 보기 바란다.



▲ 황궁 터 앞은 옛 자취를 찾을 수 없게끔 매립이 되고 그 자리에 도로와 공원이 들어섰다. 주말이면 공원은 행락객들로 붐빈다. 폐선은 놀이터로 둔갑했다. 블루 모스크의 상징인 여섯 개의 첨탑(미너렛)이 마치 뾰족하게 깎은 연필처럼 구름 낀 하늘에 시를 적고 있다.



▲ 주말이나 휴일은 새(까마귀?)들의 잔칫날이다. 마르마라 해변 공원에서 새들이 행락객들이 남기고 간 음식물을 뒷설거지하고 있다. 비둘기도 아닌데 사람을 별로 겁내지 않았다.


▲ 터키 판 서낭당? 우리나라나 몽골․위구르 등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위에 매달린 실을 마르마라 해안 성벽 옆에서 보았다. 이 도시에서 23년째 살고 있는 통역사 이경숙씨에 따르면, 터키 시골에 가면 이따금 볼 수 있지만 이스탄불에서는 처음 본단다.
이경숙씨의 말, “의장님 따라 다니면서 모르던 것 새로 알고, 잘못 알고 있던 것 바로 알게 된 것들이 참 많아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 도시가 생긴 이래 남들이 안 다닌 곳들만 골라 다닌 유일무이하고 전무후무한 여행자일 겁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가. 여태껏 쌓인 피로가 씻은 듯이 풀리면서 내딛는 발걸음에 다시 새 힘이 솟았다.


▲ 지도에게 길을 묻다. 거리에서 발길을 멈추고 니사가 준비해 온 1930년대 지도를 펼친 채 들여다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해안 성벽이 많이 남아 있었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두 미녀의 눈길이 열심히 쫓고 있다. 나중에는 지도가 나달나달해졌다. 여백과 귀퉁이도 내가 써 놓은 메모로 가득 찼다.


▲ 옛 항구 자리를 찾아가던 길에 들른 카드르가 마을에서. 이 동네엔 오스만 시대의 전통 가옥들이 많았다. 기독교 문화권인 그리스 건축 양식이 창문이 굉장히 크고 돌출된 스타일인 반면, 이슬람 국가인 터키는 집안에 있는 여자들이 밖에서 잘 안 보이도록 작은 창문에 창살을 달고 담을 높여 집을 지었다고 한다.


▲ 주차장으로 변한 항구. 혹시 흔적이 남아 있을는지도 모를 카드르가 앞 항구를 찾기 위해 우리는 지도를 들고 이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항구는 온데 간데 없고 항구 끝자락 성벽만이 쓸쓸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옛날에 배들이 정박해 있었을 법한 곳이 지금은 매립돼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들여보내 주세요~

▲ 역시 이 나라 사람들은 ‘꼬레리’(한국인)에게 친절하고 관대하다. 우리는 비잔틴 시대 해안 성벽 최대의 항구(?)를 찾아서 또 육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예니카프 근처, 해저 터널과 연결되는 지하철 터미널 작업을 하고 있는 공사 현장은 일반인들 출입이 금지돼 있지만 우리에겐 특별히 문이 개방되었다. 여기가 바로 엘레우테리오스 항구가 있던 자리. 리쿠스 강물이 마르마라 바닷물과 몸을 섞던 최하류이기도 하다. 토목 공사 과정에서 비잔틴 시대의 유물들이 대거 발굴되어 고고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으며, 발굴된 유물들을 모아 국립 박물관에서 특별 전시회도 가졌다.


특종 사진!?

▲ 출입은 특별히 허용됐지만 아직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고 공식 발표 전이라서 사진 촬영은 절대 금지라고 했다. 하지만 프로 의식으로 무장한 우리의 기사(騎士? 技士?)는 ‘기사 정신’을 발휘해 눈치껏 셔터를 눌렀다. 특종 사진!? 흰 천막을 씌운 부분은 비잔틴 시대의 상선 22척이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됐던 자리들. 파헤쳐진 발굴 현장에 군데군데 솟아 있는 나무토막들이 여기가 바로 옛 항구 터였음을 말해 준다. 이 엘레우테리오스 항구 오른쪽 옆은 *오르한 왕자와 그가 이끄는 투르크 군이 방어하고 있었다.

*콘스탄티노플로 망명한 오스만의 왕자. 술탄 쉴레이만의 손자이자 무라드 2세의 먼 사촌이다. 1453년 당시 마르마라 해에서 상륙한 극소수의 오스만 병사들을 물리치기도 했다. 술탄에게 잡히면 목이 달아날 거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 오르한과 그의 부하들은 투르크 군과 대항해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말로는 비참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오르한은 정교회 수도복을 빌려 입고 변장한 채 탈출을 시도했지만 곧 붙잡혀 동료 죄수의 밀고로 그 자리에서 참수되었다.




▲ 바다 성벽 안쪽. 망루로 올라가는 계단이 놓여 있고 아치형 비잔틴 양식이 뚜렷하다. 여기저기에 동네 개들이 실례를 해놓아 조심조심 발밑을 살피면서 걸음을 옮겨야 했다. 1453년 당시 프사마티아와 스투디온 등 엘레우테리오스 항구 오른쪽에 있던 지역은 그곳 방위군들이 육지 성벽이 뚫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오스만의 함자 베이 함대에게 항복해 교회를 비롯한 주민들이 온전히 살아남았다. 이 지역 주민들은 돈을 걷어 포로로 잡힌 다른 지역 주민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그들을 구해 주는 의리를 발휘했다.


▲ 바다 성벽 바깥쪽. 해안 성벽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성벽 바로 앞이 바다다. 1453년 당시에는 해안 성벽 모두가 이런 모습이었을 테니 적들이 감히 상륙할 엄두를 냈겠는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성벽 안팎 모두 야외 공연장으로 쓰면 좋을 것 같은 공간이 있었다. 주변 정리만 잘하면 관광 명소가 되는 건 금방일 것 같았다.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그 옛날 영도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지금은 진흙과 모래 그리고 자갈이 뒤섞여 퇴적된 모습이지만 550여 년 전에는 온통 바다였던 곳이다. 위치는 제라파샤 병원 건너편. 택시 기사에게 그렇게 말하면 데려다 준다.


▲ 바다 성벽 끝자락에 있는 주탑. 성벽 꼭대기는 복원된 모습이 역력하다. 바로 앞은 마르마라 해와 육지 성벽이 만나는 지점이다. 니치 양식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 드디어 마르마라 해안 성벽 탐사가 끝났다. 여기서 모퉁이를 돌아 왼쪽으로 꺾어지면 테오도시우스의 3중 성벽이 시작된다. 해안 성벽 탐사는 무엇보다도 길 건너는 것이 가장 위험했다. 자동차들이 야생마처럼 내달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급한 마음에 때론 교통 법규 위반까지 저질렀음을 고백한다.


▲ 오, 아름다운 정원! 육지 성벽은 이렇게 운치 있는 공원과 함께 시작된다. 그러나 이 멋진 곳을 찾은 사람은 우리뿐이다. 이미 해안 성벽 이전에 오랜 시간에 걸쳐 탐사도 하고 이스탄티노플 이야기 1․2․3․4편에도 소개한 지역이지만 이 날도 우리는 점심을 먹고 나서 또 해질녘까지 대포알을 찾아 3중 성벽 구석구석을 헤매고 또 헤매었다.


▲ 황금문 앞 풀밭 위에서. 마르마라 해안 성벽 탐사를 마치고 점심 식사 뒤 오후 ‘작전 계획’을 짜고 있다. 통역을 해준 이경숙씨, 열과 성을 바쳐 성벽 탐사에 동행하며 내 물음표를 지워 준 니사 양에게 내 등 뒤에 피어 있는 모든 꽃들을 모아 만든 꽃다발을 바치고 싶다.




지도로 보는 탐사 경로

7편은 마르마라 해안 성벽(세라글리오 곶부터 비상문까지/붉은 사각형 표시)을 탐사한 내용이다. 거리는 약 9킬로미터. 매립된 지역이 너무 많고 넓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바다 위를 걷는 기분으로 답사를 했다.


※1453년 당시 지도에 비해 현재 크게 달라진 4가지 포인트

1. 붉은색 표시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가로질러 흐르던 리쿠스 강은 지금은 복개되어 새 도로(아드난 멘데레스 불와르)가 나 있다.


2. 초록색 표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 부근에서 시내로 새 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밀렛 자떼시(Millet Caddesi). ‘시민의 도로’란 뜻이다.


3. 파란색 표시
마르마라 해변을 옆에 끼고 기찻길이 펼쳐져 있다. 이 레일 위로 파리에서 이스탄불 사이를 오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가 달린다. 그 종착역 겸 시발역이 바로 시르케지 역이다.


4. 노란색 표시
마르마라해 바다 성벽은 매립으로 해안 성벽이 돼 버렸고, 또 일부는 철도와 자동차 도로 등이 생기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노란색은 바다를 매립한 부분.


※ "이스탄티노플"에 대해 포스팅한 모든 내용은 지속적으로 수정/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용 가운데 오류나 다르게 알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지적 바랍니다.



*P.S.

  이스탄티노플 여섯 번째 이야기를 읽고 나서 아이디 ‘중독’님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그 중 한 구절입니다.


  “술탄이 왜 백마를 타고 바다에 뛰어들었는지 힌트를 봐도 유추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편을 기대하며…”


  다음 편(7편)을 지금 올리지만 중독님을 비롯한 6편 독자들은 술탄이 왜 백마를 타고 바다에 뛰어들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9편으로 미루고, 7편에는 다른 이야기를 썼기 때문입니다. 구성을 약간 달리 하면서 이야기 순서가 바뀌게 된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그 대신 8편에 올릴 내용을 한 컷의 사진과 함께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 마르마라 해안 성벽 탐사를 시작하며 보스포루스 해협 쪽으로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 찍은 바다 사진. 저 해협 양쪽에는 1453년 당시 오스만 투르크의 요새가 두 곳 있었다. 아나돌리 히사르와 루멜리 히사르. 각각 아시아 쪽과 유럽 쪽에 위치해 있으면서 선박들의 통행을 제한하고 위협하며 콘스탄티노플 정복의 전초 기지 역할을 했던 두 요새 이야기가 8편에서 펼쳐진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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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존과 발전 2010.10.01 13: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풍스럽다'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먼 옛날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너무 티나게 복원된 흔적들이 아쉽기도 하네요.
    하지만 유지/보수를 하지 않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간의 흐름만이 복원된 성곽의 흔적을 덮어줄 수 있을것 같네요

  2. 오스만 2010.10.01 1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원더풀, 뷰티풀!
    스릴과 서스펜스 넘치는 이스탄티노플 이야기 감명 깊게 읽고 있습니다.
    만국기처럼 다채로운 내용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3. 두륜 2010.10.01 15: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정과 노력에 매번 놀랍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고 사진을 올리고...
    대단 하시네요...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꿈이 현실이 되는 도시 "이스탄티노플"
    멋진 말이 아닐수 없네요...
    다음에 시간이 흐른뒤 외국의 명사가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지금 의장님처럼 꿈이 현실이 되는 나라 "대한민국"이라고
    소개한다면 더욱 멋지지 않을까요?

  4. 술취한술탄 2010.10.01 16: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도 가본적없는 이스탄티노플
    의장님덕에 3박4일정도 이스탄티노플 여행을 다녀온듯합니다.
    해박한지식과 격조높은 안목 다음편 기대할께요.
    더불어 말씀드리면 여행중 즐겼던 음식이나 에피소드도 올려주셨음 좋겠는데

  5. 박찬용 2010.10.01 16: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치 제가 마르마라 해안을 다니는듯이 느껴집니다
    너무도 생생한 현장감으로 제가 곳곳을 돌아 다닌듯
    감동과 여행후의 피곤함이 몰려옵니다
    한편한편의 글들을 읽으며 너무도 재미있는 산교육을 받는 느낌...

    늘 불타는 열정으로 한국의 산하와 역사를 쓰다듬어 주셨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힘드시겠지만 책으로도 만들어 주신다면 더많은 사람들이 더멋진 경험을 할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감히 해보게 됩니다
    8편이 너무도 기다려집니다

    아름다운 글들 너무도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 하십시요

  6. 가을바람 2010.10.01 1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과 사진을 보면서 내내 제가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글과 사진 너무 감사합니다^^

  7. 술에술탄 2010.10.03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탄티노플,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군요.
    터키 정부에서 훈장이라도 수여해야 할 듯.

  8. 중독 2010.10.03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다에 나와 바닷바람 맞으며 성벽을 따라 걷고, 성안으로 들어와 건축문화관람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 정원에 앉아 도시락 먹고... 주말 나들이 하고 가는 기분입니다. 나들이하러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9. 수몰 주민 2010.10.10 2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다 위를 걷다, 참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예전 어느 시인의 '물 밑을 걷기'란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수몰된 어느 마을에 얽힌 첫사랑과의 추억 이야기로 기억됩니다.
    바다 위를 걷든 물 밑을 걷든 옛 기억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든, 개인이나 국가의 역사든 말입니다.

사진과 함께 하는 이스탄티노플 역사 기행 5
                              - 모던과 클래식, 골든혼 성곽 탐사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사진 고르느라 조금 애를 먹었습니다. 찍은 사진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보여드리고 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이스탄티노플’은 그만큼 매력이 넘쳐나는 도시입니다.

  이번 편은 갈라타 타워로부터 시작됩니다. 탐사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이 도시의 전경을 높은 곳에 올라 사방팔방으로 관찰하기 위해 맨 먼저 찾아갔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갈라타 탑을 내려와서는 골든혼을 옆에 끼고 승합차로 천천히 달렸습니다. 골든혼(할리치)은 영문(Golden Horn) 의미 그대로 한자로 쓰면 ‘금각만(金角灣)’입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은 걸까요?
  이곳 사람들은 두 가지 설을 들더군요. 첫째, 골든혼에서 침몰한 배들과 함께 가라앉은 금은보화가 많기 때문이라는 설. 둘째, 석양 무렵이면 짐승 뿔 모양을 한 골든혼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때문이라는 설. 둘 다 일리 있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설을 떠나 골든혼은 그 자체가 ‘금싸라기 바다’입니다. 그만큼 지정학적·경제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이니까요.

▶ 이스탄불정복자협회에서 세운 *갈라타 타워 안내 표지판. 화재와 지진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재건축과 보수 공사를 거듭하며 콘스탄티노플과 이스탄불의 역사를 갈라타 지역 가장 높은 곳에서 묵묵히 지켜본 이 도시의 산증인이다.



*갈라타 타워 : 528년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맨 처음 건립했으나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파괴되었으며 1348년 제노아 자치령에 의해 ‘크리스티 투리스’(그리스도의 탑)란 이름으로 재건축되었다. 오스만 시대에도 여러 차례 재건축을 하며 화재 및 기상 관측, 적의 침입 감시, 포로수용소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1960년에는 목재였던 내부를 콘크리트로 바꾸고 일반인들에게도 관람을 허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올라가면 터키 민속춤과 밸리댄스를 감상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이 있다. 타워의 높이는 62.59미터, 꼭대기 장식물까지 포함하면 66.90미터이다. 벽두께는 3.75미터, 안쪽 지름은 8.95미터. 탑을 둘러싸고 외벽에 14개의 창문이 나 있다.

  골든혼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를 승합차로 둘러본 우리는 차에서 내려 해안 쪽 성곽을 탐사했습니다. 육지 성곽(테오도시우스의 3중 성벽)과는 달리 이곳은 외(Single)성벽으로 축조되었습니다. 골든혼 자체가 든든한 방어선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매립으로 인해 사라졌지만 1453년 당시에는 개펄과 바위가 많아 해안 성벽으로의 접근이 더욱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보여 드릴 사진에서와 같이 두께와 높이, 그리고 강도(强度) 면에서도 만만치 않은 성벽이어서 오스만군도 이곳은 주요 공략 지점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세월이 흘러 개펄 해안이 점점 굳어 육지화되면 비잔틴은 그 지점까지 또 성을 쌓았습니다. 어떤 성벽은 다른 성벽보다 유난히 더 앞으로 튀어 나왔거나 2중 혹은 3중 성벽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외부 세력이 감히 쳐들어올 엄두를 못 내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증축이 돼간 겁니다. 다만 성이 축조된 이래 꼭 한 번 4차 십자군 전쟁 때 골든혼 쪽 방어선이 뚫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됐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 당시에도 온전했던 골든혼 쪽 성벽들은 육지 성곽과는 달리 지금은 옛 모습을 많이 잃었습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도로 개설 및 도시 개발 과정에서 인위적인 훼손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은 열 마디 말보다 한 컷의 사진이 더 생생하게 증언해 줍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사진과 함께 하는 오늘의 탐사를 시작해 볼까요.

 

▲ 갈라타 타워를 등지고 이경숙씨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설명에 열중하고 있다. “의장님,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대에 ‘헤자르펜 아흐멧 찰레비’란 사람이 자신이 만든 날개를 달고 이 탑 꼭대기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아시아 지역인 위스크다르 언덕까지 날아가는 신기록을 세웠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 ‘헤자르펜 타워’로도 불리지요.”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전망대에서 종이비행기나 몇 개 접어 바다 쪽으로 날리고 올 걸 그랬다.

▲ 갈라타 타워 전망대에서 카메라에 잡은 아야 소피아(사진① 왼쪽),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사진 ① 오른쪽), 이스탄불대학교 중앙 탑(사진 ②), 쉴레마니예 모스크(사진 ③).
전망대는 360도 조망이 가능한 구조여서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비롯해 마르마라 해와 골든혼(금각만, 하리치)은 물론 이스탄불 구시가지 및 신시가지 전체를 빙 둘러가며 볼 수 있다. 1453년 전쟁 당시 만약 비잔틴군이 이 전망대를 이용할 수 있었더라면 전황도 좀 더 달라졌으리라.

▲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골든혼 쪽 성벽들. 벽돌과 돌·흙 등을 이용해 기하학적이면서도 자연스런 미감을 뽐내고 있다. 돌과 돌, 벽돌과 벽돌, 돌과 벽돌 사이에는 강력한 식물성 접착제를 발라 놓았다. 오른쪽 성벽은 2중 성벽 모습을 하고 있다.

▲ 유네스코의 예산 지원을 받아 복원한 성벽 모습. 일률적이고 인위적이어서 예스런 멋이 사라졌다. 화장과 성형 수술로 치장하고 멋을 낸 미인을 보는 듯하다. 수비군이 창검이나 활로 맞서 싸우기 유리하도록 네모난 구멍 뒤는 넓고 앞은 좁은 형태이다. 일정 부분 방패 역할을 해낸 것. 부챗살 모양을 하고 있는 구멍 위의 아치는 비잔틴 양식의 성벽임을 말해 준다. 이스탄불은 1985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복원 공사가 최근에 이루어졌더라면 이보다는 나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시대의 비잔틴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서 복원된 성곽 모습을 본다면 현대 문명의 수준을 얕잡아 보지는 않을는지….

▲지각 변동으로 땅이 솟아올라 문과 자동차의 왼쪽 벽 부분이 반 지하 상태로 변했다. 1층 표시와 3층 표시 부분은 대칭을 이룬다. 1층도 지표면의 융기로 인해 거의 지하층이 된 상태. 창문들이 비잔틴 양식이다. 지붕 위를 보라.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란 가운데 잎이 무성한 나무가 앞머리를 건물 이마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다.

▲ 1500여년 된 성벽 위로 화살처럼 쏟아지는 여름 햇살 아래 각양각색 빨래들이 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마르고 있다. 중세와 현대의 기가 막힌 앙상블! 마치 퓨전 설치미술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 1898년에 완공된 불가리아 교회. 불가리아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보던 이곳의 원래 이름은 ‘성 스테판 교회’이다. 외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신고딕 양식과 신바로크 양식이 하모니를 이루면서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사전 제작한 주철 구조물을 다뉴브 강과 흑해를 거쳐 배에 싣고 와 조립은 이스탄불에서 하는 독특한 건축 방식을 사용했다. 이 교회는 정면이 골든혼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이지만 터키가 비교적 타 종교에 관대한 나라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해마다 6월이면 이 교회에서 인터내셔널 이스탄불 뮤직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 성벽 문을 뚫고 차도를 만들었는데 인도가 없다.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런 걸까. 성문을 통과하면 왼쪽 옆으로 작은 보행자 도로가 나 있다. 가슴과 등을 밀착시킨 청춘 남녀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성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 부분도 3중 성벽 못지않은 두께를 갖고 있다.

▲ 성벽 위에 연립 주택을 짓고 사는가 하면 성벽 사이에도 집이 있다. 빨래가 널려 있는 연립 주택 맨 꼭대기 층의 창문으로 어느 예쁜 소녀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가는 우리가 쳐다보자 부끄러운 듯 이내 안으로 숨어 버렸다. 창문 밑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면 다시 나타날까나.

▲ 1500년 된 성벽 위에 지어 올린 시멘트 건물 옆으로 지은 지 얼마 안 된 모던한 느낌의 화이트 하우스와 금방이라도 나무 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낡은 판잣집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성벽 틈에는 풀이 돋아나 있고, 그 밑으로는 폐건축 자재 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다. 무성하게 자란 무화과나무가 쓰러질 것 같은 집을 떠받쳐 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 성벽 위로 연립한 현대식 주택들. 우리나라도 왕년에는 이런 적이 있었던가.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이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이스탄티노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짧은 기간에 급팽창해 1000만을 훌쩍 넘는 인구를 갖게 된 세계적인 거대 도시가 갖는 한계일까. 유럽 쪽이 아시아 쪽보다 땅값이 비싸다 보니 특히 골든혼 성곽 지역이 더 크게 훼손된 측면도 없지 않으리라.

▲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문양 같은데 훼손도가 심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단순한 장식일까, 다른 용도가 있는 걸까. 이 도시에는 이런 애매한 문화유산들이 도처에 흩어져 있다.

▲ 골든혼 쪽 성곽을 누비고 있는 4인조 탐사대. 맨 앞의 모자 쓴 사람이 나, 김형오이다. 성곽 위의 아파트나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는 하도 많이 보아서 무덤덤해졌다. 왼쪽 차도 건너로 골든혼을 끼고 흘러가는 바닷물이 웅덩이처럼 보인다.

▲ 골든혼 성곽 안쪽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본부(페네르 그리스 관구)를 향해 가고 있다. 기독교의 성물과 성녀들의 묘지, 주교가 앉는 의자, 귀중한 성상 등이 이곳에 보존되어 있다.

▲ 그리스 정교회 벽면에 새겨져 있는 비잔틴의 상징 쌍두 독수리. 두 개의 머리는 왕국의 주권과 동서양을 초월한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상징한다. 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지금도 국가의 상징으로 문장(紋章) 등에 이 쌍두 독수리 문양을 쓰고 있다.

▲ 그리스 정교회에서 만난 벽화. 정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 게오르기우스(성 조지)의 용감한 모습이다.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이자 14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게오르기우스는 회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칼이나 창을 들고 용(드래곤)을 무찌르는 백마 탄 기사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성벽과 가로등 사이를 통과해 좁은 길로 가다가 문득 그런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찾는 이가 적은 좁은 문, 좁은 길이 생명 길이며 영혼의 구원을 얻는 길임을 강조한 말씀이다. 물론 ‘구원’을 얻기 위해 나선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도시에서 ‘영원’한 제국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 뒤로는 13절과 14절에 걸쳐 이런 말씀이 이어진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그리스풍으로 지어진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그리스 요리를 점심으로 먹었다. 우리가 타고 다닌 승합차와 운전기사 에르한의 모습이 보인다.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와 우리말 실력이 보통이 아닌 친구였다. 내 카메라폰에 담은 이 식당의 내부도 한 쪽 벽면은 성벽을 그대로 활용한 모습이었다.

▲ 그야말로 부서진 성벽이다. 잔해만 남았다. 그래도 그 부서진 면면을 보면 이 성벽이 얼마나 단단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실감이 난다.

▲ 골든혼 성벽 바로 뒤 안쪽에 있는 오스만 시대의 수도. 오스만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난 뒤에 대대적으로 수도 시설을 확충 보급했다. 치수(治水)야말로 정치(政治)의 기본임을 알았던 까닭이리라.

▲ 성벽의 높이와 두께를 실감해 보자. 거구의 사나이가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진 위로도, 그리고 왼쪽 옆으로도 성벽은 더 높고 길게 이어져 있다.

▲ 아타튀르크 다리 부근에 있는 지발리 성문 앞. 성문 위로 모스크가 보이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펼쳐져 있다. 골든혼 연안 성벽에 있던 도시로 들어가는 몇 개의 성문 중 현재는 아야 성문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는 성문이다. 그러나 1453년 전쟁 당시에는 골든혼이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주어 이쪽 지역의 성곽들은 온전한 모습이었다. 지발리 성문 오른쪽 벽에는 이스탄불정복자협회에서 만든 현판▶이 붙어 있다.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오스만 사령관 ‘제베 알리 베이’가 무혈입성한 문이라고 한다. 그 뒤 세월이 흐르면서 사령관 이름(제베 알리)을 따 마을 이름이 ‘지발리’로 바뀌었다. 왼쪽 벽에는 흰색 표지판이 걸려 있다. 내용은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 웬 깃발들이 이렇게 줄지어 세워져 있나. 알고 보니 대학교 깃발들이었다. 위 사진 성벽에 ‘쓰레기 투기 금지’ 팻말을 걸어놓은 바로 그 대학이다. 민가뿐만 아니라 이런 공공건물도 성벽을 담벼락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학 간판도 성벽을 이용해 붙여 놓았다.

▲ 골든혼 건너편 카슴파샤 지역. 선박과 조선소·크레인 등이 보인다. 1453년 여기에서 무슨 일이?

▲ 원근감을 무시하고 그린 골든혼의 옛 모습. 입구에 굵은 방어 철책을 설치해 놓았다. 보기에도 견고한 이 쇠사슬 때문에 술탄의 배들은 골든혼으로 진입을 하지 못한다.

 

  맨 밑에 실어놓은 두 컷의 사진은 ‘이스탄티노플 여섯 번째 이야기’의 예고편 격입니다. 다음(6편)은 ‘배가 산으로 가다’ 편이 이어집니다.

 

*P.S. 이스탄티노플 4번째 이야기에도 많은 분들이 격려의 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몇 분의 글을 발췌해 옮겨보면….

  “불타는 탐구욕과 활활 끓고 있는 그 열정에 심심한 존경을 보냅니다. 건강도 살펴가며 하시기 바랍니다.”(이우종님)
  “옛 우물에서의 은어 낚시! 이스탄불이라는 우물에서 등비늘 반짝이는 은어들을 많이 낚으신 것 같군요.”(피플님)
  “다음에 꼭 그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네요. ‘이스탄티노플’ 명예시민으로서….”(두륜님)
  “그림을 보고 있으니 그 정밀한 묘사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네요. 그림 읽어 주는 남자?”(산리마을님)
  “역사는 투쟁 속에 진보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황제와 술탄의 대결, 흥미진진합니다.”(Socio89님)
  “글맛과 묘사의 역동성과 생생함의 차원이 다르다. 진정성을 갖고 역사의 진실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며 다가갈 때 그만큼 살아 있는 글이 된다는 것도 잘 보여준다. 함락의 막바지에 운명처럼 다가오는 오스만 군대의 대포 소리와 군악대의 우렁찬 소리 사이로 들리는 비감한 교회 종소리를 회상하는 필자의 묘사는 너무나 압권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못지않은 김형오 의장의 ‘이스탄티노플 이야기’를 이제는 지인들과 나눠야 할 것 같다.”(술탄님)

  그밖에도 여러 분들이 덧글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힘으로 이 벅찬 작업을 감당해 나갑니다. 앞으로도 의정 활동 틈틈이 시간을 내어 전심전력하겠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도로 보는 탐사 경로
5편갈라타 타워(지도 윗부분, 빨간색 사각형 글씨)골든혼 성곽 일대(지도 윗부분, 빨간색 표시부분)를 탐사한 내용이다. 육지 성벽에 비해 훨씬 훼손 정도가 심한 지역이다. 성벽을 건물의 한 부분으로 삼아 이렇게 많은 집을 지은 도시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하늘색 사각형 부분1편, 분홍색 사각형삼각형 부분2편, 갈색 사각형 부분 3편의 탐사 경로이다.

※1453년 당시 지도에 비해 현재 크게 달라진 4가지 포인트

1. 붉은색 표시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가로질러 흐르던 리쿠스 강은 지금은 복개되어 새 도로(아드난 멘데레스 불와르)가 나 있다.


2. 초록색 표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 부근에서 시내로 새 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밀렛 자떼시(Millet Caddesi). ‘시민의 도로’란 뜻이다.


3. 파란색 표시
마르마라 해변을 옆에 끼고 기찻길이 펼쳐져 있다. 이 레일 위로 파리에서 이스탄불 사이를 오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가 달린다. 그 종착역 겸 시발역이 바로 시르케지 역이다.


4. 노란색 표시
마르마라해 바다 성벽은 매립으로 해안 성벽이 돼 버렸고, 또 일부는 철도와 자동차 도로 등이 생기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노란색은 바다를 매립한 부분.


※ "이스탄티노플"에 대해 포스팅한 모든 내용은 지속적으로 수정/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용 가운데 오류나 다르게 알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지적 바랍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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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플 2010.09.15 1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더풀!!

  2. 한가위 2010.09.16 0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름달처럼 풍성한
    이스탄티노플 이야기
    한가위 이후에도 기대할게요
    명절 잘 보내세요

  3. BlogIcon 김화자 2010.09.18 2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름달 처럼 넉넉하시고 풍요로 우신 추석 명절 되십시요.
    행복 하시고 따듯하신 한가위 되시길 기원 합니다.
    언제나 건강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4. 세레나데 김 2010.09.26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금 전 연립 주택 창문 너머로 아름다운 소녀가
    얼굴을 내밀고 방긋 웃었습니다.
    어라, 다시 들어가 보니 그새 사라졌네요.
    신비스런 그녀를
    <이스탄티 걸>이란 이름으로 불러 봅니다.

  5. 소나티네 2010.09.27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금 전 이스탄티걸이 또 고개를 쏘옥~~
    이스탄티노플 이야기는 그만큼 잔상을 많이 남깁니다

  6. BlogIcon 스압 2010.09.30 18: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벽에 지은 집에 사는 이들은 기분이 어떨까 궁금합니다.
    '우리집 벽이 수백년전 격전이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라니!!'
    집에 값비싼 골동품 하나씩은 기본이겠네요. 부럽다. 돈 떨어지면 조금씩 팔아도...ㅋㅋㅋ

  7. 유한새 2010.09.30 20: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기의 철옹성에 무혈입성이라...!!

  8. 만국기 2010.10.12 0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리하면서도 부드럽고,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고, 깊이 있으면서도 쉽게 읽히는 탁월한 역사 기행문입니다.

  9. 형오투어 2010.10.12 2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컴퓨터가 바로 타임머신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이스탄티노플,
    그 가상의 도시를 여행하는 기분 정말 끝내 줍니다.
    착륙하고 싶지 않네요.

  10. BlogIcon silk flowers 2010.10.18 0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멋진 역사의 도시군여

사진과 함께 하는 이스탄티노플 역사 기행 3
                     - 3중 성벽 어딘가에 박혀 있을 대포알을 찾아서

 

▲황금문(알튼카프)! 황제의 대관식 또는 전쟁 승리의 개선문 등 의식용으로 사용했던 비잔틴 제국의 자존심. 이 문을 통해 옛 황궁까지 이르는 10여 킬로미터의 길(‘승리의 길’)이 나 있다.
마르마라 해를 끼고 세워졌던 성벽은 끝 부분에서 작은 비상문을 꼭짓점 삼아 육지 쪽 3중 성벽으로 이어진다. 사진은 육상에 세워진 제1군문인 황금문을 성 바깥쪽에서 찍은 모습이다. 성문과 외성 쪽 출입구를 보고 싶었으나 문이 잠겨 있었다. 어떻게든 들어가 보려고 여기저기 출구를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내성 쪽은 사진 찍을 곳이 마땅찮아 정면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공원묘지를 헤치며 들어갔지만 나무들로 뒤엉켜 있어 돌아 나왔다.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역사학도인 니사가 건네준 프린트물 속의 황금문.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던 2중 성문과 입구의 화려한 모습을 아쉬운 대로 상상할 수 있다. 쌍두 독수리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높이 치켜든 채 준마를 타고 저 문을 통해 의기양양하게 개선(凱旋)했을 비잔틴 황제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 그림 ①②와 위 사진 ①②는 동일 건물. 전면(全面)을 똑같은 모양과 크기의 흰 대리석 수백 장으로 장식한 황금문은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이다. 황금이 어디 있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황금문을 지나서 우뚝 솟아 있는 내성벽의 주탑. 무화과나무들이 발돋움을 하며 성 안을 넘겨다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위풍당당한 주탑에는 키가 한참 못 미친다.


▲성곽 탐사를 하던 도중 어느새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백라이트와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들이 벨그라드카프(제2군문)를 통과하고 있다. 성문 안쪽으로는 마을이 형성돼 있다. 둘러보고 싶은 성곽은 아직도 여럿이건만…. 갑자기 마음과 발길이 조급해졌다.


▲까마득한 성벽 위를 걸어가며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 남녀. 저렇게 한적하면서도 아슬아슬한 길 위에선 자연스럽게 손잡을 일도 많이 생길 것 같다. 페가에 문(실리브리카프) 근처 어디쯤에서 마주친 풍경이다.

 


▲내성과 외성․해자가 있던 자리를 뚜렷이 구분할 수 있다. 밭을 일군 부분이 해자가 있던 곳. 역사의 현장이 바로 이런 곳이구나, 하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일하는 틈틈이 허리를 펴고 고개 들어 성벽 너머 하늘을 바라보면 피로가 금방 풀릴 것 같은 느낌이다.


▲창살과 자물쇠로 가로막힌 내성과 외성 사이 공간도 채소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스티븐 런치만의 책(147페이지)에 따르면, 높이가 약 12미터인 내성벽(주탑 높이는 18미터)과 7.5미터 가량의 높이를 지닌 외성벽 사이에는 폭 12~18미터에 이르는 통로가 나 있었다.


▲페가에 문 안쪽 마을 성벽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양떼들. 양들은 보기와는 달리 심보가 고약해서 겨울에는 남들 추우라고 떨어져 자고, 여름에는 남들 더우라고 붙어서 지낸다는데, 정말인가? 불볕더위인데도 하나같이 몸을 밀착시키고 있는 이 양들을 보면 그런 것도 같다.


▲복원된 모습이지만 3중 성벽의 위용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천 년 동안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했던 성벽 아니던가. 무화과나무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고, 대를 타고 오르는 토마토 줄기에도 올망졸망 토마토들이 매달려 있다.


▲노점 좌판 위에 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야채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당근‧가지‧고추‧토마토‧배추(?)…. 아마도 해자를 메운 밭에서 수확한 것들이겠지? 이런 재료들로 식탁을 차리면 몸 안의 피가 한결 정갈해질 것만 같다.


▲아름답지 않은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원해지고 가슴까지 개운해지는 이런 풍경들이 ‘이스탄티노플’에는 도처에 널려 있다. 셔터를 누르면 ‘그림 같은 사진’이 나온다. 고도(古都)의 실체를 느끼기 위해 찾는 이는 우리 말고는 없는 것일까.


▲2중 성문 맨 안쪽 성문 벽에 매달아 놓은 대포알. 저 정도 크기라면 1453년 전쟁 당시에는 작은 대포알에 속했으리라. 성문 통과 가능 높이는 2.5미터이고 폭은 2.9미터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그 옆에 세워져 있다.


▲아랍어로 표기된 글자라서 해독을 못하는 게 아쉬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봐도 정확한 뜻을 아는 이가 없었다. 1453 파노라마 박물관에서 보았던 성벽에 박힌 대포알 아닌가?

 





▲날은 어두워져 가는데도 열심히 성곽을 탐사하는 우리 일행에게 현지인들이 한 곳을 가리키며 자꾸 저 안으로 들어가 보라 한다. 그래, 가 보자! 눈에 잘 안 띄는 벽과 벽 사이를 지나 30미터쯤 걸어가자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반 지하 석굴(?)이 나타났다. 내성에 딱 붙어 있는 조그만 교회다. 출입구 옆에는 걸인들이 잠자리로 삼아 몸을 눕힌 듯 더러운 소파 위에 천 조각이 어지럽다. 이 문 안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어둠침침한 반 지하 공간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부조(浮彫)물들. 비잔틴 교회인 모양이다. 눈높이에 비잔틴 시대의 십자가가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휴대하고 간 랜턴과 집시 풍의 사내가 빌려준 촛불을 켜들고 구석구석 발밑을 비추어가며 대리석 석곽들의 사진을 찍었다. 사내는 촛불 값으로 건네준 5터키리라(우리 돈으로 4,5천 원)를 받아 들고는 횡재했다는 듯이 신바람이 나서 맥주를 사 마시러 갔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파괴된 주탑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내부 구조를 한 눈에 엿볼 수 있다. 막힌 아치형 구조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주탑의 뒤쪽(안쪽)임을 말해 준다.


▲내성 안쪽 풍경. 돌로 된 성벽과 나무로 지은 가옥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성벽의 틈 사이로 뿌리를 내린 채 자라고 있는 나무와 풀들의 저 강인한 생명력!


▲레기움 문(메블라나카프) 위 석벽 틈 사이로 잡초가 둥지를 틀고 있다. 석벽에 새겨진 글씨는 로마자 표기라서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다만 석벽 맨 위 앞머리의 글자가 ‘콘스탄티누스’로 시작되고 있음을 어림짐작할 수 있을 뿐.


▲콘스탄티노플 전쟁 당시의 병사들이 총검으로 무장을 했듯이 나는 녹음기‧지도‧카메라를 늘 탐사에 지참했다. 등에 멘 배낭에는 또 다른 ‘비밀 병기’들이 숨어 있다.


▲무너질락 말락 위태롭게만 보이는 성벽 아래 풀밭에서 이 도성의 시민인 듯한 한 사내가 길게 누워 낮잠을 즐기고 있다. 1500년을 지탱해 온 난공불락의 성벽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야 있겠느냐는 듯이….


▲레기움 문에서 톱카프(성 로마노스 시민문)를 향해 가는 길. 어느새 날이 저물어 성벽 위 조명등에 불이 들어왔다. 오른쪽 하늘로는 포물선을 그리며 한 마리 새가 날고 있다. 비잔틴 제국 깃발에 그려져 있던 쌍두 독수리의 환생은 아니겠지? 성벽 너머로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1453년 당시의 함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주탑을 관통한 저 구멍은 혹시 대포가 뚫고 지나간 자국? 성벽에 혹시 박혀 있을지도 모를 대포알을 찾는 사람처럼 우리 일행은 성곽 이곳저곳을 샅샅이 헤집고 다녔다.


▲톱카프로 가기 직전에 만난 외성벽의 모습.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 철골로 버팀대를 세워 놓았다. 거리에는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고, 저만치 성벽 너머로 모스크의 미너렛(첨탑)이 뾰족하게 깎은 연필처럼 하늘을 가리키며 서 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도로 보는 탐사 경로

3편에서는 육지와 바다(마르마라 해)가 만나는 지점 근처에 있는 비상문부터 톱카프 직전(갈색 사각형 부분)까지를 사진에 담았다. 1편과 2편이 지도상으로 볼 때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탐사한 기록이라면, 3편은 지도 맨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탐사한 내용이다.

*하늘색 사각형 부분1편(지도에는 없는 도시 ‘이스탄티노플’에 가다), 분홍색 사각형삼각형 부분2편(사진과 함께 하는 ‘이스탄티노플’ 역사 기행)의 탐사 경로이다.

※1453년 당시 지도에 비해 현재 크게 달라진 4가지 포인트

1. 붉은색 표시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가로질러 흐르던 리쿠스 강은 지금은 복개되어 새 도로(아드난 멘데레스 불와르)가 나 있다.


2. 초록색 표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 부근에서 시내로 새 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밀렛 자떼시(Millet Caddesi). ‘시민의 도로’란 뜻이다.


3. 파란색 표시
마르마라 해변을 옆에 끼고 기찻길이 펼쳐져 있다. 이 레일 위로 파리에서 이스탄불 사이를 오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가 달린다. 그 종착역 겸 시발역이 바로 시르케지 역이다.


4. 노란색 표시
마르마라해 바다 성벽은 매립으로 해안 성벽이 돼 버렸고, 또 일부는 철도와 자동차 도로 등이 생기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노란색은 바다를 매립한 부분.


※ "이스탄티노플"에 대해 포스팅한 모든 내용은 지속적으로 수정/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용 가운데 오류나 다르게 알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지적 바랍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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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것이궁금하다 2010.09.02 23: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혼이 지는 성벽 너머로
    사라진 두 남녀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미스터리 이스탄티노플

  2. 알밥 2010.09.03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현장에 가보지 않아도 될 만큼 생생한 사진에 감탄 또 감탄...잘 보고 갑니다....
    감사!!

  3. 아프선프 2010.09.03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명록에 답변해주셈~~

  4. 콜럼버스 2010.09.04 17: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탄티노플, 참 기발한 조어입니다.
    어감으로 보나 의미로 보나 매우 적절한 용어랄까요?
    신생어 사전에 등록될 것 같습니다.

  5. 두륜 2010.09.06 1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터키 여행이 대단히 인상 깊으셨나 보네요.....

  6. 불국사 2010.09.09 10: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은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가봐여... 터키하면 지난 월드컵 축구, 한국전쟁참전 등 정서적으로 우리와 매우 가까운나라... 하지만 지리적으로 너무 멀고 우리경제와도 직접적 관련이 없을 것 같은데... 의장님의 글을 보면서 바로옆 나라처럼 자세히 재미있게 소개해 주시니 지금 제가 세월을 거슬러 그곳에 있는 느낌입니다. 사진중에 가방매고 모자쓴 뒷모습이 의장님이죠? 뒷모습은 학생같네요. 5탄도 빨리 올려주세욧!!!! 기다립니다.

  7. 비잔티움 2010.09.09 1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탄티노플? 콘스탄불? 앞에게 낫네요... 그이름 바로 지은거예요? 아님 오래 고민해서 지은건가요? 암튼 기발한 상상!!!

  8. BlogIcon 전자돌이 2010.09.21 0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대하지만 섬세하며 복잡하지만 알기쉽게 풀어쓴, 1453년 성벽의 흙내음과 골든혼의 바다내음, 그리고 대포소리와 화약냄새가 아련히 느껴지는 생생한 포스팅입니다!! 개인적으로 공부중인데 너무나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9. 옴니버스 2010.11.18 08: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곽을 따라 함께 걷고 난 듯 다리가 저릿저릿한 느낌이군요.
    멋진 가상 체험 공간입니다.

  10. 리얼리스트 2010.11.23 08: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땀냄새 물씬 풍기는 리얼 포스팅!
    인문학의 향기에 젖어들게 하는구나.

 

사진과 함께 하는 이스탄티노플 역사 기행 2
                              - 타임머신 타고 550여년 전으로

▲ 작열하는 여름 햇살을 받으며 지대가 낮은 격전지를 향해 걸어 내려갔다. 멀리 성곽 위로 오스만 투르크의 깃발에서 유래한 현대 터키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성 로마노스 군문(제 5군문) 앞에서.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 성로마노스 군문 입구 석벽에는 비잔틴 시대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 있음직한데 해독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 저 허물어진 성벽은 아마도 세월의 탓이겠지만, 1453년 당시 치열했던 격전이 휩쓸고 간 뒤의 모습도 저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 격전지 성벽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리라. 한 쌍의 청춘남녀가 이 더운 날 몸을 밀착시킨 채 다정하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 성 로마노스 군문에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을 향해 올라가는 길. 성 안쪽의 풍경이다. 그 옛날 먼지를 일으키며 말발굽 소리 요란하게 말들이 달렸을 길이 지금은 아스팔트로 바뀌어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있다.


▲ 외성 위를 탐사하고 있다. 우뚝 솟은 건 내성의 주탑이다. 인도와 풀밭으로 바뀐 오른쪽엔 해자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성곽의 안과 밖 그리고 위를 입체적으로 탐사했다. 사흘 내내 이런 식으로 다녔지만 성곽 탐사 관광객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술탄 메메드 2세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모습.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 제국 함락 사흘째 되던 날 오후, 스물한 살 술탄이 예니체리 군단의 삼엄한 호위 아래 대신들과 장군들, 이슬람교 고승들까지 거느리고 카리시우스 성문(에디르네카프)을 지나고 있다. 술탄의 행선지는 아야 소피아. 말발굽 아래로 피를 흘리며 어지럽게 쓰러진 비잔틴 병사들의 시신이 처참했던 전투 상황을 웅변해 준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 ‘이스탄불 정복자 협회’에서 톱카프 성문 벽에 부착해 놓은 안내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는 내 네이버 블로그에 이런 해석을 달아 놓았다. "1453년 5월 29일 화요일 아침, 정복자 파티의 군대는 대포를 쏘아 부서진 이 근처의 공백을 통해 이스탄불로 진입하였다."
톱카프는 ‘대포·포탄(톱)이 지나간 문(카프)’이란 뜻으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펼쳐진 곳 중 하나이다. 무너뜨리려는 자들과 지켜내려는 자들의 결사항전, 그 현장에 서자 나도 자못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 톱카프 성문 앞 분위기. 복원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성벽의 엄청난 두께를 실감할 수 있다. 왼쪽 벽에 화살표와 함께 파란색 페인트 글씨로 쓴 "WC"는 낙서인가, 화장실 안내문인가.


▲ 톱카프에서 제 4군문을 지나 레기움 문(메블라나카프)을 향해 가는 길. 복원된 성벽 모습이 감동을 반감시킨다.


 

▲ 성곽 탐사 도중 날이 저물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십자가가 세워진 뾰족 지붕 아래서 은은한 종소리가 부드럽게 발목을 잡으며 이제 그만 쉼표의 시간을 가지라고 속삭였다. 그래도 나는 행군을 멈추기가 아쉬웠다.

 

▲ 마르마라해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구시가지 전경. 왼쪽 끝은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가운데는 아야 소피아(하기야 소피아)이다. 해변에 서 있던 비잔틴 시대의 등대는 현대식 등대로 바뀌어 있다. 내가 탄 배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끝나고 마르마라해가 시작되는 지점을 지나고 있다. 등대 오른쪽으로 해안 성벽이 보인다. 해안 성벽 탐사와 아야 소피아 이야기는 다음에 또 사진과 함께 소개할 생각이다. (기대하시라!)


▲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블루 모스크 전경. 이 도시에 있는 수백 개의 모스크 가운데서 블루 모스크는 첫눈에 알아보기가 가장 쉬운 이슬람 사원이다. 6개의 첨탑(미너렛)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유일한 모스크니까. 마르마라 바다에서 정면으로 바라볼 때 블루 모스크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인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해냈다.  


▲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전쟁 당시의 갤리선 선장이 된 심정으로 유람선을 타고 해상 전투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스티븐 런치만의 책(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에서 읽은 해상 전투 상황을 조류의 흐름과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가며 더듬어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지도로 보는 탐사 경로.
카리시오스문 일대▶제 5군문▶성 로마노스 시민문▶제 4군문 일대(분홍색 사각형 부분) 아야소피아▶블루모스크▶등대(분홍색 삼각형 부분)
를 사진에 담았다. 블루 모스크·아야 소피아·등대가 담긴 사진은 마르마라 바다 위 유람선에서 찍은 전경이다.
* 하늘색 사각형 부분은 1편(☞지도에는 없는 도시, 이스탄티노플에 가다)에 소개한 탐방경로이다.


※1453년 당시 지도에 비해 현재 크게 달라진 4가지 포인트

1. 붉은색 표시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가로질러 흐르던 리쿠스 강은 지금은 복개되어 새 도로(아드난 멘데레스 불와르)가 나 있다.


2. 초록색 표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 부근에서 시내로 새 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밀렛 자떼시(Millet Caddesi). ‘시민의 도로’란 뜻이다.


3. 파란색 표시
마르마라 해변을 옆에 끼고 기찻길이 펼쳐져 있다. 이 레일 위로 파리에서 이스탄불 사이를 오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가 달린다. 그 종착역 겸 시발역이 바로 시르케지 역이다.


4. 노란색 표시
마르마라해 바다 성벽은 매립으로 해안 성벽이 돼 버렸고, 또 일부는 철도와 자동차 도로 등이 생기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노란색은 바다를 매립한 부분.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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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킬리만자로의 표범 2010.08.30 1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이 시원해지는 사진과 재기발랄한 캡션.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입니다.

  2. 페이스북 2010.08.30 23: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오노 나나미 책 표지에 써 있는 글귀가 새삼 떠오릅니다.
    "국가의 적은 안팎에 있다.
    적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해 주는 것은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방위력
    그리고 상대 국가와의 우호 관계이다."
    대한민국의 일부 철부지 젊은이들,
    가슴에 새겨야 할 금언입니다.

  3. 돌솥밥 2010.08.31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터키가 참 많은 감동을 지닌 나라 혹은 관광지라는 걸 사진을 보고 느끼게 됩니다. 그만큼 굴곡이 많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우리나라도 다 허물어버리지만말고 좀 보존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좋은 기억이든 안 좋은 기억이든 , 다 남겨서 교훈으로 삼는 아량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좋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땡스!!

  4. 인디아나고 2010.08.31 09: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드벤처 무비
    주인공이 되신 것 갈군요
    이스탄티노플
    3탄도 기대됩니다

  5. BlogIcon 전자돌이 2010.08.31 17: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사진은 인디아나존스 같아요 ^^) 점점더 흥미진진해 지는군요!

  6. 유근준 2010.08.31 20: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의 인간에 대한 순수함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소양과 열정이 정말 부럽습니다.

  7. BlogIcon crys1964 2010.09.02 1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과 글 잘 보았습니다. 트위터로 의장님을 안 후 이제 그동안 몰랐던 부분도 알면서 좀 더 의장님을 알게 되네요. 기자생활을 하셔서 탐사활동에 더 관심이 있으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타고난 학구열이 강하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많은 감동 받았구요. 앞으로도 의장님의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8. 두륜 2010.09.06 1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더운 날씨에 유적을 땀 흘려가며 둘러 보시는 모습이 인상 깊네요...
    여행 하시는 동안 역사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으신것 같습니다...
    무한부득(無汗不得) 땀 흘리지 아니하면 얻을 것이 없다....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 좋습니다...

  9. 두바퀴 2010.10.17 09: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저 먼 시간과 공간으로 날아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가는 모습이 감탄스럽습니다.
    이 시리즈가 끝날 때쯤에는 저도 뭔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느낌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