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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도자기, 노래하는 도자기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을 만나다 2

김형오


<만다라>에 빠져 있는 내 손을 잡고 김이환 관장은 “우리 집에서 제일 자랑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하신다. 뭘까?

내 키보다 더 큰 2m 높이는 됨직한 거대한 도자기가 주변을 압도한다. 첫눈에 전혁림 화백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색깔․선․면 처리가 투박한 듯 날렵하고, 무거운 듯 가볍다. 산과 바다, 하늘과 땅, 새와 온갖 것들이 춤추고 노래한다. 거대한 입체 캔버스 위에서 사고가 자유를 만끽한다. 도자기라는 정해진 틀에 닫혀 있으면서 또한 열려 있다. 참 오늘 미술 공부 많이 한다. 아니, 전혁림의 미술관, 작품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이 도자기는 전 화백이 강화의 도자기 요에 직접 가서 그린 작품이란다. 두 점을 그렸는데 한 점은 아깝게도 가마에서 꺼내다가 파손되어 이것밖에 없다고 한다. 이 큰 도자기에 연로하신 몸으로 어떻게 작업하였을지 자못 궁금하다. 전 화백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거대한 도자기가 물레 틀에서 조금씩 돌아가고, 화백께선 붓을 들고 영감과 예술혼을 그 위에 펼쳐나가셨단다. 아드님 영근 화백은 그런 아버님 자세를 흩뜨리지 않으려고 뒤에서 허리춤을 꽉 붙잡고 도와드렸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 두 가지! 첫째, 빙 둘러 그림을 그리고 선과 무늬를 넣었는데 마치 자로 잰 듯 시작과 끝이 딱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직접 확인해 보았다. 맨 윗부분만 보더라도 삼각형 무늬가 같은 크기로 반복되고 있다. 가로줄도 색깔의 짙고 옅음은 있지만 비뚜로 되지는 않았다. 오늘 여기서 많이 듣는 말, ‘일필휘지’다. 그랬다, 도자기는 덧칠을 할 수 없다. 색을 빨아들이므로 한번 붓질한 자리에 또 칠하면 금방 표가 나고 보기도 안 좋기 때문이다. 일필휘지로 해와 달, 물고기와 새를 그려내며 선생님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두 번째 놀라움. 이 거대 도자기 그림을 완수하는 데 불과 2시간도 안 걸렸다는 것이다. 설마하니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아드님이 지칠까 하여 빨리 끝냈을 리는 없을 테고, 평소 작가의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창조의 욕구가 그대로 발산된 것 같다.

도대체 전 화백은 어찌 이리 창조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신가. 어디서 모티프를 구하시는가? 추상인 듯 구상이고, 구상인 듯 추상이다. 아드님 왈, “아마도 독학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모든 것이 작품의 소재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신영숙 여사는 한술 더 뜬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초월하신 분”이란다. 아드님이나 제자나 극진한 존경과 사랑이 묻어나온다.

자세히 보면 도자기도 예사롭지 않다. 광주 도자 엑스포에서 대상을 수상
한 도예작가 손호익씨에게 특별 의뢰하여 강화도 초지진의 도요지에서 구워낸 것이다. 아, 아깝고 또 안타깝다. 같은 크기의 작품 한 점이 도요에서 나오다가 파손돼 버리다니!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 어릴 적 영도다리 건너에 '대한도기'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자기 공장이 있었다. 전 화백은 일찍이 거기에서 몇년 동안 직접 도자기를 빚었다. 통영 미륵산 자락에 자리잡은 전혁림미술관에는 전 화백이 직접 빚은 도예 작품 수십 점이 소장되어 있다.

전혁림은 통영의 물길이고 또한 상징이다. 통영 시내 주요 아파트 벽면과 절개지, 그리고 도로변에서는 그의 붓자국이 생생한 그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 화백의 작품들을 확대 모사해 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지만, 사실은 나폴리를 '서양의 통영'이라 해야 맞다. 우리 국토에 이토록 아름다운 산하(山河)가 있다니! 그 통영을 전혁림은 붓으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의 캔버스는 유한과 무한의 경계가 없다. 모든 것을 담아내고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그런 그가 100세를 4년 앞두고 떠나갔다. 하지만 통영은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의 숨결과 체취는 통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통영시와 통영시민들의 문화의식, 그 수준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통영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 자랑스러운 도시다. 그 핵심, 심장부에 전혁림이 있다.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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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필 2011.12.11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가의 한 획은 일필휘지가 되건만
    나의 졸필 한 줄은 왜 일필휴지가 되는가.

<뉴 만다라>, 시작도 순서도 없는 무한 세계 이상향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을 만나다 1

김형오

좋아하는 작가의 혼이 깃든 작품을 보고 좋은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음식과 멋진 풍경 속에서 사람 이야기, 인생살이 같은 담소를 나눈다면 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이영미술관에서 이 모든 즐거움을 한꺼번에 채울 수 있었다. 행복한 날이었다.

이영미술관을 찾았다. 근 3년만이다. 다소 쌀쌀한 날씬데도 김이환 관장님 내외가 직접 맞으셨다. 마침 내가 오는 시각에 맞춰 통영에서 반가운 손님 한 분도 막 도착했다. 전혁림 선생의 아들이자 고인 이름의 미술관을 씩씩하게 운영하고 있는 서양화가 전영근 관장이다. 너무 반가웠다. 새벽시장 가서 내게 맛보이려고 통영 갯내음이 싱싱한 생굴도 한 박스 사 들고 왔단다. 그 살갑고 섬세한 마음에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공원처럼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을 뒤로 하고 미술관 내부로 직행했다.

전혁림 1주기 기념전(‘나는 전혁림이다’)에서 나를 처음 맞이한 것은 거대한(?) 만다라였다.(<뉴 만다라>, 목기에 유화, 2007년) 가로 세로 각 20cm 정도의 나무판 1050개가 하나의 작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물론 목기 하나하나가 작품이니 1050개의 작품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뉴 만다라>의 탄생 배경을 알고 나니 작품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이영미술관의 또 다른 주인 신영숙 여사의 노고가 보통이 아니었다.(이영미술관은 김이환의 ‘이’, 부인 신영숙의 ‘영’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시골에선 아직도 손님에게 떡이나 과자 또는 찻잔을 올릴 때 쓰는 나무 그릇이랄까, 나무 받침 같은 것(목기)을 수십 개씩 들고 가 전혁림 화백에게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냥 가정집에서 쓰는 나무 그릇이 아니라 시골집 오랜 대들보(120년 이상 된 조선 소나무)를 구해 자르고 깎고 다듬어 깨끗이 마름질하고 못질 하나 없이 똑같은 규격의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내라 했으니 목수의 노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신 여사 말이, 질 좋고 두꺼운 오래된 대들보라야 목기를 만들어도 뒤틀리지 않고 그림도 잘 그려지기에 구하느라 참 고생도 많았고 까다로운 주문에 목수들 또한 구슬땀을 쏟았다고 한다. 어렵게 만든 목기를 통영의 선생님께 들고 가 여기에다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한 이가 신 여사니 어찌 보면 두 사람의 공동작, 신영숙 기획․제작에 전혁림 주연․감독이랄까. “나무를 캔버스로 삼은 그림은 덧칠해선 안 되고 붓 잡으면 단 한 번에 그려야 제대로 되는데 선생님의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했다”는 게 신 여사의 설명이다.

가까이에서 본 만다라 (화보집에서 재촬영)

처음에는 한 300점 정도 그릴까 했는데 목재 구하는 어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뀐 건 전 화백께서 목기에 그림 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좋아하셨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점차 숫자가 늘어나 5백 점, 8백 점, 드디어 1천 점을 넘게 되었다고 한다. 생전에 좀 더 많이 그려서 남겨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전관장의 목소리에 묻어있다.통영에는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더니 60점 있다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만다라>와 <충무항> 두 점을 청와대에 비치하고 싶어 했으나, 일반 그림은 다시 그릴 수 있어도 이 작품은 다시 만들 수 없어 거절했다 한다.

마침 미술관은 잠시 어린이들이 왁자지껄 지나갔고 드문드문 관람객이 다녀갔을 뿐 넓은 공간에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아 설명도, 감상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김 관장님은 관람 통제선 안으로 우리를 데려가 콧김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작품을 한 점 한 점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촬영 금지인데도 특별히 나한테는 사진 찍어도 좋다고 했지만 기념사진 외에는 감히 찍을 수가 없었다. 고인에게 누가 될 것 같아서.

왼쪽부터 김이환 관장, 신영숙 여사, 나와 아내, 전영근 관장


비슷하긴 해도 똑같은 것이 단 한 점도 없다. 검정을 비롯해 파랑 빨강 노랑 등 원색에 선 원 면 점 세모 네모 타원 곡선 직선과 무늬를 적당히 배열해 놓은 것 같다. 김이환 관장 말씀을 듣고 나니 골무 비녀 반짇고리 베개보 같은 우리 어머니․할머니가 즐겨 사용했던 물품과 물고기 바다 새 나비 하늘 구름 같은 통영 이미지, 우리나라의 독특한 형상을 연상시키는 빛깔과 모양도 나타난다. 한국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색다른 느낌, 언젠가 꿈꾸어 왔던 이상향, 인류가 지향하는 그 무엇과 연결되어 세계성을 띠고 있다. 소박하고 순순한 이 통영 향토 작가의 꿈과 연륜, 천재성이 나무판에 대담하게 펼쳐진다.

화보집에서 재촬영

단순한 나무 평면이라도 그리기가 만만찮을 텐데 45도(?) 각도로 비스듬한 네 모서리를 일필휘지로 그려낸 대담성과 입체 구조물에 평면 그림의 대조가 신비로우면서도 그 자체로 입체미를 이룬다. 한글 ㄷ자 모양으로 세 벽면을 가득 채워 관람객을 만다라의 그림 세계로 빨아들이고 있다. 왜 1050점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선 1천 점 이상이면 무한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ㄷ자 구조물을 특별히 만들었지만 언젠가 뉴욕 대형 미술관에 전시할 때는 한 벽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싶다고 했다.

기독교도인 전혁림 화백에 의해 불교의 사상이 한국의 전통과 통영의 빛깔로 버무려졌다. 수많은 대들보가 사용되었는데 대들보 질감에 따라 바탕색이 다르고 순서도, 시작도 따로 없단다.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죽음의 춤>이 떠올랐다. 캡슐에 든 2만 3000여 개의 모형 알약을 작가의 배열 순서대로 배치하느라 큐레이터들이 진땀을 뺐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적어도 그런 수고는 필요 없다. 그러나 1050개의 작품이 빚어내는 무한 세계 이상향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 내가 바라보는 1/1050의 만다라가 바로 시작이고 또 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4년 8개월 걸렸다는 이 작품을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다.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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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동 2011.11.30 09: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보집에서 재촬영.
    사진 찍기를 허락했으나 고인에게 누가 될까봐 플래시를 터뜨리지 못하고
    화보집에 렌즈를 댄 님의 마음 씀씀이가 아름답습니다.

  2. 아티스트 2011.12.08 1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술평론가 수준의 평문, 놀랍습니다.
    마침 연장 전시가 되고 있다니 주말에 시간 내어 전혁림을 만나러 갈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