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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이종범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습니다.
양준혁 선수, 허구연 해설자에 이어 야구인으로서는 3번째 출연이군요.

▲ 2009시즌 우승 후, 이종범

올 시즌 우승한 뒤,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이종범.

타이거즈도, 타이거즈 선수로서의 이종범도
12년 만에 든 트로피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감개무량하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것이겠죠?

'바람의 아들', '야구 천재'라는 별명을 가진 이종범
그를 말해주는 명장면 베스트 5를 꼽아봤습니다.


1988년 청룡기 우승

 

▲조선일보 1988년 7월 5일자 - 광주일고 청룡기 우승

이종범은 학생야구시절부터 '영웅'의 면모를 갖고 있었나 봅니다.

고교 3학년이던 1988년 청룡기 결승전.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와 호남 최고 명문 광주일고가 맞붙었습니다.

막상막하의 승부가 벌어진 가운데 군산상고가 11회말 2사까지 4-3으로 앞서고 있었죠.
앞선 타자의 안타성 타구가 아웃이 되며 2아웃까 1,3루로 패색이 짙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여기에 양팀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희비가 걸려있었습니다.
타석에 이종범이 등장했죠.

그런데 그는 야구천재라는 별명에 걸맞는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극적인 끝내기 2루타로 벼랑 끝에 몰린 팀을 구하고 우승 트로피를 껴안았습니다.

 

1994년 타격왕 등극

1993년 데뷔 첫 해에 양준혁, 이종범은 각각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나눠가졌습니다.
이종범은 1993년 한국시리즈 MVP가 되면서
신인왕을 타지 못한 아쉬움을 해소했다고 이야기했죠.

야구에서는 신인 2년차 징크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인 때 맹활약한 선수가 데뷔 후 2년째가 되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데뷔 2년차 이종범은 오히려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 활약을 펼쳤습니다.
일명 '종범신'이라 일컫게 된 시즌입니다.

▲ 역대 통산 기록에서 이종범을 능가할 선수가 거의 없죠. 특히 공수주를 모두 포함하면.
(어떤 포지션이든 소화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선수)

역대 통산 기록도 놀랍지만, 1994년은 한국야구에서 보기 힘든 기록들이 쏟아졌습니다.
대표적인 것만 꼽아봐도 이렇습니다.

▷ 단일 시즌 역대 최다안타 - 196안타
단일 시즌 역대 최다도루 - 84도루
단일 시즌 2번째 높은 타율 - 0.393 (1982년 백인천 이후 최고 타율)

(이종범은 그 외에도 숱한 기록들을 갖고 있습니다.)

  

1997년 한국시리즈 맹활약

1993년 한국시리즈 MVP
1994년 시즌 MVP
1997년 30-30 클럽 (30홈런-30도루)

그리고 1993, 1996, 1997년 우승

여기서 무엇을 더 이루겠습니까?

▲ 조선일보 1997년 10월 23일 - 한국시리즈 3차전

이미 모든 걸 누린 다 누려본 이종범에게 당시의 한국야구는 좁은 무대였다고 할까요?
1997년 한국시리즈는 일본 진출 직전에 유종의 미를 거둔 자리였습니다.
그의 신들린 플레이에 해태는 9번째 우승을 차지했죠.

상대팀 LG 트윈스가 자랑하는 선발-중간-마무리 투수를 상대로
모두 홈런을 쏘아올렸습니다.


에이스인 김용수, 최고의 중간계투 차명석, 구원왕 이상훈.
당시에는 하나같이 자기 분야에서 정상급 투수들이었죠.

특히 3차전 이상훈에게 친 홈런은 그야말로 백미였습니다.
그 장면 하나가 해태의 우승과 LG의 눈물을 말해주는 단적인 부분이었죠.
(전 타석에선 차명석을 상대로 홈런을 쳐서 연타석 홈런)


2001년 복귀전 출전

일본 주니치에서 뜻하는 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한국야구는 여전히 그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프로야구는 흥행 면에서 침체 국면에 있었는데
그가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야구판이 살아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 뉴스위크 한국판 2001년 8월 21일 - 이종범 복귀 효과

비록 복귀전에서는 5타수 1안타에 불과했지만,
그가 다니는 곳에는 관중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그를 향한 야구팬들의 관심이 높음을 증명했죠.
그의 복귀는 호남 야구팬 뿐만 아니라 전국 야구팬으로 하여금 관심을 이끌어냈습니다.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 2002년 08월 석사학위 논문 (김찬권)

 
그의 복귀에 대해 이렇게 논문까지 나오는 걸 보면
그는 결코 평범한 선수는 아니었나 봅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예전과 같은 폭발적인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보다 성숙한 플레이로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2006년 WBC 한일전 맹활약

대한민국 야구의 자랑스러움을 한껏 뽐냈던 WBC대회.
김태균, 이범호, 봉중근 등이 빛난 제 2회 대회(준우승)도 대단했지만,
그 바탕에는 제 1회 대회 때 4강에 오르며 얻은 자신감에 힘입은 바가 컸습니다.

당시 1회 대회를 이끌어간 선수는 박찬호, 이승엽, 그리고 이종범이었습니다.
역시 해 줄 선수가 해줬죠.

실제로 이 선수들은 제 1회 WBC 올스타에 선정되어
메이저리거, 일본야구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 2006 WBC에서 결승 2타점 2루타를 치고 좋아하는 이종범

일본에서 열린 WBC 1차 예선 한일전은 흔히 '도쿄대첩'이라 불립니다. 

일본야구의 심장부인 도쿄돔에서
이승엽의 역전홈런과 구대성-박찬호의 역투로 3-2의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역전 홈런의 바탕에는 이종범의 출루가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으로 자리를 옮겨서 2차 예선 한일전에서 이종범은
일본 최고 마무리 후지카와를 상대로
통쾌한 좌중간 2루타를 작렬하며
또 한 번의 승리를 대한민국에 바쳤습니다.


일본 진출 실패에서의 설움을 떨쳐내는 감격스러운 장면이었죠.

 

▲ 이종범의 두 팔 든 포효를 보면 타이거즈의 기상이 느껴지네요


얼마 전 기아의 우승으로 이제 이종범은 선수로서 여한이 없을 겁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선수생활 잘 마무리하고
지도자가 되어서도 한국야구를 위해 계속 힘써주길 바랍니다.



< 지난 한국시리즈에서 이종범의 활약상을 보시고 싶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 한국시리즈 이종범의 활약상
1993년 한국시리즈의 이종범
1996년 한국시리즈의 이종범
☞ 1997년 한국시리즈의 이종범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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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재박 2009.11.26 1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한 후배입니다. 기아 타이거즈 감독 시켜야합니다ㅑ...

  2. BlogIcon 드자이너김군 2009.11.26 1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종범씨 진짜 멋져요~ 이제 지도자가 되시나 보군요. 화이팅!

  3. BlogIcon pennpenn 2009.11.26 15: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종범은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그의 승승장구를 빕니다.

  4. 사이봉 2009.11.26 2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wbc 에서도 어느 투수가 나와도 기죽지 않고 척척 쳐내는 모습 보기 좋더군요.

  5. BlogIcon 조 범 2009.11.27 0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 이종범 선수 신인시절부터 계속 팬이였었습니다.
    정말 일본에서 부상당하기 직전까지 종범신의 포스는 엄청났습니다.
    한화 정민철투수였던가요?? 그때 9회 끝내기 만루홈런도 그랬었고...
    이상훈 선수에게 쳤었던 홈런도 그렇구요....
    정말 엄청난 센스, 재능 그리고 피나는 노력이 있어서 종범신이라고 불리우죠~
    어제 무릎팍보고 다음주까지 어떻게 기다릴지 걱정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6. 지나가다 2009.11.27 00: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이 블로그와 아주 성격이 안맞는 기사인데 낚시하려고 작정을하고 올린건가요?

    • BlogIcon 칸타타~ 2009.11.27 09: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팀 블로그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둘러보면 아시겠지만
      김형오 의장에 관련된 부분부터
      사회 전반의 이슈를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7. 왜 야구신이라고 하는지... 2009.11.27 0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타격, 도루, 수비....3박자를 고루 갖춘 선수이자 거의 완벽히 해냈으니...신이라 하는 거겠죠~

    무릎팍에 나온거 보고 너무 재밌었고, 좋았어요~

    쫌 많이...아쉬운건,,,,명 호수비 장면이 안온거....(시간할애 문제인지, 자료를 못찾은건지..ㅠ)

    옛날 티비에서 경기할때 해설자들이 그 장면(후수비)을 보면 꼭 이런말을 했었는데...
    '메이져리그에서나 보던 멋진 수비다'
    어떤때는 화면정지를 해 가면서
    수비자세, 송구,,,,조목조목 분석했었던 장면이 떠 오르네요~~~

    혹시, 그거 보신분들....기억나시나요?~~ㅎㅎ

    • BlogIcon 칸타타~ 2009.11.27 0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이종범의 다재다능함을 좋아했습니다.
      수비에서도 어려운 타구도 비교적 잘 잡아내는 그런 선수였죠.
      보통 유격수 계보를 논할 때도 김재박-류중일-이종범-박진만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8. 남자이야기 2009.11.27 02: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똑똑하네 블로거 주인장이.....ㅎㅎㅎ..........................이 말만 남기고 가오...

  9. 뉴라이트 2009.11.27 07: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우 신선하고 활기차게 운영되는 블로그군요...정치인 웹사이트의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네요..화이팅!!!

    • BlogIcon 칸타타~ 2009.11.27 09: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어떤 정파건 결국 사람이라는 단어에서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공간이 김형오 의장과 정치를 비롯해
      다른 분야들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곳이길 바랍니다.

  10. 아씨.. 2009.12.03 14: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쩐지 조선일보가 판을 친다 했더니만.. 제일 위의 배너를 못봤네....
    이종범 선수 좋아하는데 블로그에 있는 기록도 왜곡된 걸로 보이네요. -_-

    • BlogIcon 칸타타~ 2009.12.03 16: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을 다시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조선일보 관련된 것은 고교시절 청룡기와
      97년 한국시리즈 두 가지 뿐입니다.

      게다가 청룡기는 조선일보가 주최 대회입니다.
      자사 주최 결승전에서 잘한 선수를 왜곡할 근거는 없다고 보이는데요?
      오히려 뉴스거리가 되니 좋아했을 것 같군요.

      그리고 각종 기록들은 KBO와 논문을 통한 것이구요.
      기록은 KBO 가면 누구나 검색이 되는데 왜곡을 할 이유가 없죠.

      조선일보에 대해 잘못된 부분을 비판하는 것과
      조선일보니까 무조건 왜곡되어 보인다는 것은
      확연히 다른 것 아닐까요?

      (정말 왜곡했다면 비판을 가하셔도 됩니다.)

  11. BlogIcon Glenn Merdeiros 2011.08.11 13: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名物論的可視觀星德雲綠>"중세명왕기"{The Neomus Rexonic Kings in Middle Age}
    -von,Glenn Merdeiros(Neunzgern)
    [Too Far Gone. If It's Hard to Stop for Gain Rescources.]
    "1)조물주이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태초에 궁창을 만들고 뱀과 인간을 동시에 공존하여 살길 바라시고 만물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바 이는 오늘날 구름속에 보석낀 안개처럼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오래참으시고 영광의 자리로 인도하려 하시느니라.2)사람이 어찌 밥새끼로 영적인 갈구의 욕구를 채울 수있단 말인가 가로되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나이를 먹을때까지 선한본능과 악한본늠을 지녀 선한사람들은 주된 하나님품으로 길을 인도하시고 악한 자들은 전통의 쓴부리를 답습하여 사상적으로 악독을 품고 온갖 악행으로 마음을 빼앗기느니라.3)오늘날
    현대인들에겐 권력과 명예욕으로 가리워져 루터와 칼빈교리가 예수님보다 더 위로 자리하고 있음을 너희들은 각성하라 하더라.4)사람이 어찌 떡과 포도주로만 살 수 있으리요 이는 너희의 갈증을 무한히 부어주려 함이니라.5)역사적으로 볼때는 중세는 암흑기로 구별되어있지만 군세와 정세의 알력적인 사투가 어떻한지 볼 지어다.6)중세에 압도적으로 강한 세력과 정잭가로 알려진 자들은 "헨리1세", "스페인의 페드릭1세와 올랜도대재", "로마의 도미니크 1세와 후안 로드리게스 왕" 있었으며 또 "독일의 빌헤름1세가"들이 바로 중세를 주름잡는 세도가였느니라.7)그런데 용이 아닌 수호신이 중세시대에 있었는데 이는 그리이스신화에서 등장하는 "Frigon"아닌 실제 한마을을 공중폭격기로 불바다로 만든 장본인이니라 하느니라."
    -(끝)Glenn Merdeiros(Neunzgern)


<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2) >

자~ 드디어 1996년입니다.

해태와 이종범의 1996년 한국시리즈를 정리해보겠습니다.


▲ 출처 : KBO

2. 1996년 한국시리즈

1996년 정규시즌 5대 선수
* 투수 3관왕이자 MVP 고무팔 구대성
* 다승왕, 탈삼진왕의 독고탁 주형광
* 30-30클럽의 신인왕 괴물 박재홍
* 타격왕 포함 3관왕 양준혁
* 그리고 도루왕에 20-20 클럽을 달성한 우승팀 해태의 이종범

사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이종범보단 투수진의 활약이 컸습니다.
해태 못지 않게 현대가 투수진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었죠.
정명원 같은 경우만 봐도 한국시리즈 최초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을 정도니까요.
(오히려 이종범은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훠~얼씬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래도 우승의 주인공은 해태 타이거즈였습니다.
3차전 완봉승 포함 2승 1세이브, KS MVP였던 이강철
정민태와 맞대결에서 사실상 1승 1무를 펼친 조계현
2경기에서 7이닝 이상 소화한 이대진

이 선수들이 주역이었죠.

▲ 출처 : MBC ESPN (1996년 한국시리즈 최종전 당시 3루타를 치고 기뻐하는 장면입니다.) 

그럼 당시 이종범의 주요 활약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도루 1개를 더하며 
역대 한국시리즈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한국시리즈 5경기 연속도루 (1993년 10월 22일 4차전 ~ 1996년 10월 16일 1차전)
→ 역대최다 타이 (장효조, 1984년 9월 30일 1차전 ~ 10월 6일)

이종범은 2차전에서 3회에 선제 1타점 적시타를 포함해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는데, 팀이 더 이상 추가점을 내지 못해 연장전에 이르렀죠.
이것도 당시로서는 기록에 올랐습니다.

한국시리즈 최장시간 경기 4시간 35분 (1996년 2차전)
→ 1996년 한국시리즈 당시까지는 신기록 (현재 기준으로는 역대 4위)
→ 현재 한국시리즈 최장시간 경기는 2006년 한국시리즈 5차전(삼성:한화) - 5시간 15분(15회)

최종전이 되어서야 이종범은 그다운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1회에 기습번트 안타로 출루한 뒤, 이어 도루를 시도했는데,
경험이 부족한 상대 포수의 악송구를 틈타 3루까지 진루했습니다.
후속타자인 홍현우의 내야 땅볼 때 홈을 파고들어 손쉽게 1점을 뽑아냈죠.

이후 9회 2사 1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터뜨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이후에 스스로 감격해하는 그 모습이 아직도 떠오르네요
.


< 에피소드 >

1996년 당시 해태의 상황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전합니다.
(종범신의 한국시리즈 활약상이 쬐끔 미진했지만, 이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96년 해태는 실제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1994년은 디펜딩 챔피언이었지만 준플에서 패했고, 1995년은 가을 잔치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선동열의 해외진출, 김성한의 은퇴로 팀의 구심점을 잃었고
전문가들조차도 1996년에 3강 후보를 전년도 3강이었던 OB, LG, 롯데를 꼽았죠.
오히려 해태와 쌍방울은 약체로 분류했었습니다.
(시즌 종료 후 그 두 팀은 나란히 정규시즌 1,2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시범경기는 꼴찌, 정규시즌 들어가서도 5월 중순까지 꼴찌였습니다.
흔히 명장은 위기에 강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김응룡 감독의 리더쉽이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면 사람들이 선동열, 김성한 없어서 그랬다고 할 텐데,
그러면 여태까지 그렇게 우승하는 동안 너희들은 뭐한 거냐?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어?
지금까지 해태라는 팀이 누구 몇 명의 팀이었어?"

이 말에 자극을 받은 해태 선수들은 힘을 내어 승승장구를 했고
급기야 7월 31일 현대를 제치고 페넌트레이스 1위를 달리게 됩니다.
1993년 9월 27일 이후 1047일만의 쾌거였죠.

7월 한 달 간 15승 1무 5패, 8월에는 10연승 등의 저력을 보였기에
그 기세가 결국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양심적으로 1996년 한국시리즈는 이종범이란 이름에 비해선 활약상이 쬐끔 약했습니다.
저도 그래서 어떻게.. 알려드리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네요. ;;;

(1), (2)편으로 만족 못하신다면 (3)편에서 끝내줄 것을 약속드립니다.

물론 (1), (2)편으로 만족하셔도 (3)편을 보실 것을 권합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에서의 이종범
(1) 1993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3) 1997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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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돌뼈 2009.10.19 08: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라 2탄!!!!!!!!!! 96년에 그런일이 있눈줄 몰랐는뎅.
    강철옹이 잘했던 해군화.

  2. BlogIcon 맹태 2009.10.19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종범신의 활약이 미약한 때도 있었네요.

    종범신이기 때문에- 다른 선수가 그랬다면 실망했을텐데

    '와, 이런 인간적인 매력도 있구나!'..ㅋㅋㅋ

  3. BlogIcon 윤석구 2009.10.19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면 사람들이 선동열, 김성한 없어서 그랬다고 할 텐데,
    그러면 여태까지 그렇게 우승하는 동안 너희들은 뭐한 거냐?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어?
    지금까지 해태라는 팀이 누구 몇 명의 팀이었어?" < 이말 때문에 자극을 받아서 꼴찌에서 치고 올라갔다구요?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픽션에 불과한 소리죠. 무슨 애들도 아니고, 팀 전력이 말한마디때문에 꼴찌에서 후반에 치고 올라가 1위를 한다는게 스포츠에서 말이 됩니까?
    1996년 해태가 초반 꼴지를 달리다가 치고 올라간것은 1995년부터 방위복무중이었던 이종범과 이대진이 1996년에 전역 한후 복귀한 후부터 치고 올라가 정규시즌 1위를 한겁니다.
    방위첫해인 1995년에 이종범은 홈경기만 출전할수 있었는데(규정이 그랬음) 당시 해태 선발투수들은 광주 홈경기에 등판하려고 서로 다툰것은 유명한 일화죠. 왜냐면 이종범이 광주경기만 출전할수 있었으니
    까.. 무슨 만화책에서 팀의 4번타자가 여자문제로 부진하자, 감독이 그걸 알고 "너란 놈이 이것밖에 안돼냐? 라는 한마디에 - 그 선수 엄청난 고민 - "그래 감독님 말씀이 맞았어"- 여자친구에게 성공해서 만나자고 이별을 통보함-여자친구 울면서 "니가 성공할길 바랄께- 한국시리즈에서 그 선수 역전홈런을 치자 관중석에서 헤어진 여친 눈물을 글썽임- 경기후 진한 포옹을 하며 엔딩... 뭐 이런 스토리네요.
    말한마디에 꼴찌에서 1위를 했다..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되죠.

    • BlogIcon 맹태 2009.10.19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맞는 말씀이네요.
      그래도 감독님의 말씀도 어느정도 자극이 되기는 했겠죠.
      동기부여가 된 선수도 분명 있었을테고.

      암튼 '만화책 주인공'으로 예를 들어주셔서 빵 터졌습니다.ㅋㅋㅋ
      방위병 출전규정에 대한 것은 참 재미있는 일화네요.
      감사합니다.^_^

    • BlogIcon 칸타타~ 2009.10.19 1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극적인 효과를 넣기 위해 포장을 한 건 사실입니다.
      저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해결됐다는 건 아니지만
      김응룡의 리더쉽 속에 분명히 선동열, 김성한 없이 치고 나가고자 하는 면이 있었죠.

      포장의 본 뜻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윤석구님께서 주장하듯 전혀 어불성설일 정도는 아니죠.
      당시 감독으로서도 대물급 선수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심했던 흔적들이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1996년 스포츠신문 3월~4월초 내용들을 보시면
      해태에 대해 하위권으로 전망한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문가들이 3강 3중 2약 혹은 3강 2중 3약 정도로
      평가했던 기억이나네요.
      그 중 해태는 중위권 혹은 하위권에 평가됐죠.

      (시즌 직전 전문가 예상 속에는 방위병으로 잠시 빠진 걸 시즌 전부라 계산하진 않았을테구요.
      방위병의 핸디캡 속에 5월 중순까지 해태가 6~8위를 전전하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던 점은
      당시 언론이나 팬들에겐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죠.
      다름 아닌 해태인데.)

      시범경기 성적도 안 좋았고 시즌 초반 출발이 안 좋으니 예견됐다는 기사도 있었고
      혹은 해태 이렇게 무너지나? 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죠.

      그리고 이종범이 방위복무 출전의 거의 마지막 세대였죠.
      원래 방위병 복무하면 홈 경기만 출전할 수 있었거든요.
      그게 1996년 시즌 중에 전역을 했죠.
      (1995년 이종범의 성적이 약했던 것도 방위 복무로 인한 출전 제한 때문이었죠.)

      1996년에 방위병 출전금지 조항이 생겼고,
      방위병 자체도 사라지면서 방위병의 홈 경기 출전도 영영 사라집니다.

      제가 이종범, 이대진 등이 방위병 복무한 걸 몰라서 안 넣은 게 아님을 밝힙니다.
      불혹이 된 이종범의 한국시리즈 맹활약에 감동 받아서 쓴 글이므로 이해바랍니다.

  4. BlogIcon 칸타타~ 2009.10.19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위병 이야기 나왔으니 말인데요.
    한국 프로야구의 마지막 방위였던 선수를 꼽아보겠습니다.
    시기가 약간 다르지만 거의 끝물(?) 방위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죠.
    위에 언급한 이종범, 이대진에 송구홍, 유지현, 박종호, 김한수, 정민철 정도가 기억나네요.

  5. 나불나불 2011.01.27 2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가지 잘못 표기해 놓으신게 있네요~ 1994년 해태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준플레이오프 자체를 치루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3위와 4위가 4경기(맞나)차 이상 벌어지면 준플없이 곧바로 플레이오프를 치룬다는 규정이 있었고, 4위 해태는 3위와 4경기 이상 벌어지며 준플레이오프를 하지 못했습니다... ㅎㅎㅎ


<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1) >


역시 이종범은 명불허전이더군요.

지난 KS 1차전의 2차례의 결정적인 적시타는 그가 날아다니던 90년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90년대 이종범은 말 그대로 신(神)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90년대 최고 타자는 양준혁, 90년대 최고 야수는 이종범"

90년대 이종범은 당시 야수가 보여줄 수 있는 궁극에 도달한 선수였고
더욱이 그는 큰 무대에 설수록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던 영웅이었습니다.

그 신들린 이종범의 90년대 한국시리즈 활약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열혈 야구팬인 저로선 그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 출처 : KBO

1. 1993년 한국시리즈

1993년은 대물급 신인들이 잔치를 펼친 시즌이었습니다.
이종범도 강력한 신인왕 후보였죠.

야수로서는 이종범, 양준혁, 투수로서는 이상훈, 박충식

이것만 해도 "기라성 같다"는 말에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죠.
93년에는 양준혁은 거의 MVP급 활약을 했고, 박충식은 14승에 한국시리즈 15이닝 완투.
또한 94년이 되자 신인 2년차 징크스라는 말도 이들에겐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종범은 거의 4할 타율의 타자, 이상훈은 18승 다승왕이 됐으니까요.
양준혁도 3할을 쳤고, 박충식은 200이닝대 14승 투수가 됐었으니까요.

▲ 오래 전에 떠돌던 사진이라 출처를 알 수 없어서 따로 표기하지 못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히 94년부터 이종범은 야수 중에서 단연 최고가 되는데
저는 그 최고가 될 시발점을 93년 한국시리즈로 봅니다.

사실 이종범은 한국시리즈 3차전까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리즈가 무르익어갈수록 드디어 이종범의 진가는 발휘되기 시작했죠.
공교롭게도 4차전까지 불리하던 해태가 승기를 잡아가던 것도
이종범이 살아나던 5차전부터였습니다.

4차전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1타점 2루타를 터뜨리며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5차전 1:0이던 3회말, 좌전안타로 출루한 이종범은 2루, 3루 도루를 연거푸 성공하기에 이릅니다.
이른바 "이종범 출루 = 3루타" 공식의 막을 연 것이었죠.

일명 "이종범식 휘젓기"는 상대팀의 전 수비수들을 긴장케 만들었는데요.
후속타자였던 홍현우가 2루수를 겨우 넘어가는 외야 플라이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종범의 발을 의식한 우익수 이종두가 급하게 서두르다 에러를 범해 1점을 헌납하고 말았죠.

특히 팽팽한 투수전 속에 1:0에서 2:0이 되느냐, 1:1이 되느냐는 큰 차이였습니다.
왜냐하면
 해태는 1승 1무 2패로 열세였기 때문에 여기서 패하면 벼랑 끝으로 몰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 상황에서 팀의 분위기를 이끈 선수는 다름 아닌 이종범이었죠.

여기서 이종범이 남긴 기록 한 가지를 보시겠습니다.

한국시리즈 1경기 최다도루 - 3개 (1993년 10월 24일 한국시리즈 5차전)


한국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은 7차전, 그 주인공 역시 이종범이었습니다.

1회에 우전안타로 쳐낸 뒤, 2루를 훔쳤고, 홍현우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선취득점을 일궈냈죠.

3회에도 빠른 발을 활용해 내야안타를 만들어낸 뒤, 역사에 남을 몇 가지 기록을 남겼습니다.

한국시리즈 도루 7개 - 역대 최다타이 (84년 장효조 7개)
한국시리즈 최다연속도루 성공 7개 - 신기록

1:0으로 앞선 4회에도 2사 1,2루 상황에서 좌익선상 적시타를 날려 승세를 굳혀갔습니다.

이런 이종범의 맹활약은 한국시리즈 MVP 투표에도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전체 48표 가운데 45표를 휩쓸었거든요.
신인왕을 놓친 아쉬움을 한국시리즈 MVP로 보답받는 순간이었습니다.

< 에피소드 >

당시 해태:삼성의 한국시리즈는 역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었습니다.

* 역대 1위 - 1993년 10.25일 MBC 한국시리즈 32.1%
* 역대 5위 - 1993년 10.21일 KBS 1TV 한국시리즈 26.2%

이런 시청률이 가능했던 건 말 그대로 별들의 잔치였기 때문이었죠.
5차전의 암표는 7~8만원을 호가했다고 하는데, 당시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상당한 금액이었죠.


이종범의 또 다른 모습을 보시려 하신다면 아래를 찾아주시면 됩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에서의 이종범
(1) 1996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2) 1997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Posted by 칸타타~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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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lavoswl 2009.10.18 1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람의 아들이 괜히 붙은 별명은 아니더군요...마흔이라는 나이에도 참 대단한 이종범...해태 시절이 떠오릅니다. 홧팅!!

  2. 호랭빠 2009.10.18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3년이면 내가 코흘리개인데 그당시두 종범신은 날라다녔네여. ㄷㄷㄷㄷㄷ
    암튼 좋은글 잘봤슴니다.

  3. 바람의 조카 2009.10.18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범신의 과거 이력도 화려했네요. 예전 일이라 말만 들었는데 우왕ㅋ굿ㅋ

  4. 삼성팬 2009.10.18 1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과 당시에 야구봤던 기억이 나는데 이종범은 진짜 너무 힘든 선수였습니다.

    • BlogIcon 칸타타~ 2009.10.18 1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람의 아들이란 말도 때론 약했죠.
      이건 뭐 그냥 태풍이었습니다.

      일단 출루하면 2루 혹은 3루에 있으니.
      역대 1회 선두타자 홈런 제일 많은 선수이니
      장타면 장타, 주루면 주루, 수비면 수비.
      팔방미인이었죠.

  5. 용택신 2009.10.18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엘지팬이구여.
    이종범이 큰경기에 강하다는걸 알고있었지만
    93코시에서 이런 일이 있는줄은 몰랐어여.
    엘지팬 입장에선 97코시가 더 뼈아팠습니다.
    시리즈물인것 같으니 3편까지 지켜볼께요 ^^
    암튼 잘봤습니다.

  6. 맹태 2009.10.18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왕..종범신..역시 대단합니다.
    양신은 어떻습니까? 칸타타님의 체계적인 분석 기대합니다.^^

  7. 야구를 몰랐을때.. 2009.10.18 1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번 타자는 무조건 홈런도 치고, 수비도 최고에..발도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해태의 팬은 아니었지만..
    이종범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8. BlogIcon PC지존 2009.10.18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글 잘봤습니다
    저는 이종범선수 말도안되는 수비가 기억에 남는군요
    도저히 이해할수없는 수비 ㅋㅋ
    시간되시면 정리좀 부탁드립니다^^

  9. 근데요 2009.10.18 2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위에 저 아저씨 사진은 광고에요? 아니면 저분이 여기 관리자?
    아니면 추종자?;;;
    이런곳에 왠 스포츠 기사?;;;

    • BlogIcon 칸타타~ 2009.10.18 23: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국회의장 비서실에 근무하는 직원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블로그이구요.
      이 곳은 팀 블로그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러 카테고리 중에서 이 곳은 와글와글 정보마당이란 곳입니다.
      대부분 김형오 의장에 관한 주제를 다루지만
      이 란은 직원들 개인적인 문화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글을 적는 곳이구요.
      이종범을 주제로 삼은 건 요즈음 한국시리즈가 치러지는데다
      제가 열혈 야구팬인지라 개인적인 관심사를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죠.

  10. 기파랑 2009.10.18 2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팀블로그인가, 링블로그인가 뭐 그런거 아닌가요??ㅜ 보아하니 국회의장 관계자들 팀블로그에서 따로 작성하는 그런 내용같은데...잘 모르겠네요..자세힌ㄴ....

    • BlogIcon 칸타타~ 2009.10.18 23: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블로그입니다.
      팀 블로그 형태로 운영되고 있고
      와글와글 정보마당이란 카테고리에서 글을 쓴 겁니다.
      이 카테고리는 개인적인 문화 취향에 따라
      직원들의 끼를 발휘하는 공간입니다.
      그에 맞게 제가 열혈 야구팬이라서 글을 올린 겁니다.
      거부감 없이 글을 보시면 됩니다.
      야구팬으로서 야구 글 쓴 것이니까요.

  11. KIA팬 2009.10.19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아 팬으로써 이런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호호

  12. 이강철팬 2009.10.19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 의원실 비서관입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