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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한국박물관 국제학술대회 기조발표문>




대한민국 문화 국격과 박물관의 역할


-개인적 경험을 중심으로 한 단상과 소견-



 

김형오 | 부산대 석좌교수, 전 국회의장

 

박물관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인류의 지혜 창고입니다. 초고밀도 압축 파일입니다. 박물관에 가면 나는 타임머신을 탄 듯 시공간을 넘나들며 역사 문화 예술 기행을 하곤 합니다. 박물관에서는 시간이 왜 그리도 빨리 흐르는지요. 타이베이 고궁(故宮) 박물관에서 이제 본격적 관람을 할까 했더니 동행한 해설자가 벌써 약속한 두 시간이 지났다 해서 나머지는 혼자 관람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해 여름에 본 신안 해저 유물전도 그랬습니다. 652년 동안 바다 밑에 잠들어 있던 24000여 점의 유물을 제대로 보기엔 하루해가 턱없이 짧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라 때 빚은 백자 접시의 단풍 든 나뭇잎 그림에 적힌 당()나라 궁녀의 오언절구(五言絶句) 1·2(·)구가 담담히 폐부를 찔렀습니다. “유수하태급(流水何太急) 심궁진일한(深宮盡日閑); 흐르는 물은 어찌 저리도 급한가. 깊은 궁궐은 종일토록 한가한데


오늘의 기조 발표는 박물관을 사랑하고 즐겨 찾는 한 인문학도의 개인적 경험을 중심으로 한 단상이나 소견, 제안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흐르는 한 조각 나뭇잎이 큰 강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발견되지 않은 또 다른 접시에 분명히 쓰여 있을 그 궁녀의 시처럼, 내가 띄워 보내는 이 은근한 붉은 잎이 여러분의 폭넓은 가슴에 잘 도달되기를 바랍니다. [3·4(·); “은근사홍엽(慇懃謝紅葉) 호거도인간(好去到人間)”]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이란 말이 있습니다. 적과 흑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스탕달이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 성당(Basilica of Santa Croce)에서 미술품을 보다가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황홀경을 경험한 데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뛰어난 예술 작품 앞에서 압도당하고 마는 현상이라 합니다.


20091, 이스탄불에서 아야소피아 박물관을 처음 방문한 순간, 나 역시 강렬한 스탕달 신드롬을 겪어야 했습니다. 1500년 전, 기중기도 컴퓨터도 상상할 수 없던 시대에 하늘 높이 매달린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돔은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화려하고 정교한 모자이크, 기하학적이면서도 웅장 유려한 대리석 벽과 기둥들, 건물의 배치며 장식품 하나하나가 모두 감탄을 자아내는 걸작이었습니다. 게다가 거기에 깃든 역사적 숨결과 체온을 대하고 나면 감동은 증폭됩니다. 스탕달도 만약 이 건물을 보았더라면 또 다시 무릎에 힘이 빠지는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요. 하기야 이 건물의 건립자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Iustinianus the Great, 재위 527~565)도 성당 봉헌식 날 감격에 겨워 솔로몬, 내가 당신을 이겼노라!”(“Solomon, I Have Outdone Thee!”)라고 외쳤다니, 그 순간만큼은 황제 역시도 스탕달 신드롬에 사로잡혀 있었나 봅니다. 수백 번 지진을 겪고도 고전적 위용을 자랑하는 아야소피아는 현대 건축가들에게까지 불가사의로 남아 있습니다.


이 건물은 기독교 성당(Hagia Sophia)에서 이슬람 모스크(Ayasofya), 다시 박물관(Ayasofya Müzesi)으로 변신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침략과 수난의 역사를 보듬으며 평화와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 서양과 동양, 콘스탄티노플과 이스탄불, 과거와 현재가 별다른 충돌 없이 한 건물 안에서 화해와 공존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 뒤로 수없이 이 박물관을 찾았고, 최고의 전문가로부터 깊이 있는 설명을 들으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아야소피아에 대한 강연 요청이 올 만큼 지식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나는 일부러 짬을 내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문학관 등을 찾곤 합니다. 2년 전 이맘때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초청 강연을 하러 보스턴에 갔습니다. 마음이 설렜습니다. 전직 국회의장으로서 한국 정치에 관한 강연도 나로선 뜻 깊은 일이었지만, 나를 설레게 한 것은 보스턴 미술관(Boston Museum of Fine Arts)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고갱(P. Gauguin)의 그림을 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거기 머문 사흘 동안 날마다 미술관을 찾아가 고갱 그림 앞에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를 되뇌며 작품과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는 관장의 배려로 <모나리자>(Mona Lisa)를 바로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모나리자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몰려 있는 수많은 관람객들에게 미안하여 선뜻 나서지 못하자 그들은 오히려 얼른 관장 안내에 따르라고 웃으며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같은 해에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이 일본 덴리대(天理大) 도서관에서 잠시 빌려와 전시했던 안견(安堅)<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를 보러 갔던 생각이 나더군요. 장사진(長蛇陣)을 이룬 관람객들 틈에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옆방에서 상설 전시 중인 진본 같은 사본을 충분한 설명을 들으며 조용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국제회의를 박물관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주변에 종종 전파해 왔는데 실제로 201011월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의 첫 공식 행사가 바로 이곳,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습니다.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들은 빗살무늬토기,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등 찬란한 문화유산을 감상하며 리셉션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같은 시각 각국의 퍼스트레이디들은 서울 용산 리움미술관에 모여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날엔 창덕궁과 한국가구박물관 등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체험했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매스컴을 통해 지구촌 곳곳으로 중계되었습니다. 이처럼 세련되고 품격 높은 문화 마케팅이 또 어디 있을까요. 외국을 공식 방문하는 귀빈이라면 그 나라 주요 박물관은 반드시 들르는 문화 외교의 관행을 정립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은 가장 머물고 싶은 곳입니다. 심사가 번잡할 때도 그곳에만 가면 안정감을 되찾고 세상을 포용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국보 78, 83)을 전시할 때면 반드시 만나러 갑니다. 그윽한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는 아집과 이기심에 젖은 내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무아지경의 심연(深淵) 가까이 갔다가 돌아 나오면 편안해진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는 곳, 그곳이 바로 박물관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박물관과 관련해 아름다운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벌써 20여 년 전 일입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이었던 옛 중앙청을 허무는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웠습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건물이었기 때문에 부수어 버린다는 거였습니다. 나는 내가 소속한 당의 대통령이 내건 핵심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다가 정치적인 어려움도 겪었지만, 지금도 그 소신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건물은 사라져도 역사는 남는 법, 과거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다 해서 일제 침략의 역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멕시코시티의 아즈텍 신전은 처참하게 부서지고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이 들어섰습니다. 반면에 앞서 말한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유목 전통의 정복자가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활용했습니다. 두 문명, 두 종교가 공존합니다. 어느 쪽이 더 문명적인가요. 때로는 숨기고 싶은 치부나 깊게 파인 상처까지도 보듬고 가는 것이 참된 역사이며 올바른 태도라고 믿습니다. 역사란 영욕과 명암이 있기 마련이며, 그것은 또한 미래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부끄러워할 역사는 있을지 몰라도 대체할 역사란 없습니다. 경복궁 복원을 위해서라면 중앙청 건물은 자리를 옮겨서라도 보존해야 옳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공포한 곳을, 정부 수립 장소를, 불과 5(1945~1950)사이에 일본 제국기(미 군정기·북한 인공기·한국 태극기가 차례로 펄럭였던 세계사적 격동의 현장을 영원히 잃어버렸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다 피 흘린 자국도, 전쟁과 독재의 총탄 흔적도, 군부 집권의 방패가 되었던 탱크 자취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총독부보다는 대한민국 중앙청으로 훨씬 오래 있었지만 일제의 잔재라고 부숴 버리면서 한국 근대사도 함께 지우려 했던 것입니다.


박물관은 감동과 창조적 상상력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을 오스만과 비잔티움, 두 제국 군주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춰 조명한 술탄과 황제(The Sultan & the Emperor)의 초판과 개정판을 쓸 때도 이스탄불에 있는 박물관들은 나에게 깊은 울림과 강렬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그곳 군사 박물관에서 마주친, 560년 전의 낡고 볼품없는 쇠사슬 몇 줄이 이 책의 주인공 술탄 메흐메드 2세를 내 머릿속에서 부활시켰습니다. 쇠사슬 방책에 가로막혀 항구 진입에 실패한 술탄은 배를 끌고 산을 넘는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항구와 도성을 점령하고 드디어 세계사의 물길을 바꾸었습니다. 역사의 현장 역시, 살아 숨 쉬는 박물관입니다. 나는 당시의 피어린 전투 상황을 엮어내려고 유네스코 헤리티지인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 건립한 장대한 삼중 성벽(Theodosius Triple Walls)30번 넘게 찾아갔습니다. 하루 온종일 성벽 안과 밖, 아래와 위를 뒤적인 적도 있습니다. 그 바보 같은 열정이 내 책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기록과 수집은 인간(Homo Sapiens)의 욕구요 본능인 것 같습니다. 기원전 288년에 수집 가능한 당대의 모든 문서 자료 수십 만 점을 보관했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양피지(Pergamena)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한 페르가몬 도서관, 대단한 애서가였던 에페스의 켈수스와 그의 아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서관. 비록 도서는 사라졌지만 남아 있는 유물과 잔해 속에서 고대인의 높은 정신문화를 느끼게 됩니다. 박물관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함께 호흡하고 또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908년 창경궁 안에 설립된 제실박물관을 효시로 친다면, 우리나라 박물관의 역사는 110년에 못 미칩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박물관의 존재 가치에 눈을 뜬 개화 사상가들이 있었습니다. 박영효는 건백서(建白書)(1888)에서 조선의 자주독립과 부국강병책 중 하나로 박물관 설립을 주장했습니다. 서유견문(西遊見聞)(1895)을 쓴 유길준은 박물관을 일컬어 천하 각국의 고금물산을 그 대소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전부 수집하여 사람의 견문과 지식을 넓히기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지금의 박물관 개념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탁월한 통찰입니다.


각설하고, 1991년부터 실시된 지방자치 제도는 수많은 박물관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습니다. 강원도 영월은 박물관의 고장입니다. 사진, 곤충, 음향, 지리, , 화석, 다구(茶具), 도자(陶瓷), 민속악기, 민화, 불화(佛畫), 종교미술, 인도미술, 아프리카미술, 현대미술, 김삿갓문학, 동굴생태. 그야말로 호명하기도 숨찬 박물관들의 박물관’(?)이 바로 영월입니다. 게다가 단종의 귀양지인 청령포(淸泠浦), 그가 묻힌 장릉(莊陵) 등 역사의 애절한 현장 박물관도 있습니다. 인구 5만여 명당 한 개의 박물관(2015년 기준 전국 982-미술관 202개 포함)을 보유한 대한민국에서, 주민 수가 고작 4만 남짓인 작은 고을이 무려 26(20173월 기준)의 박물관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이 다채로운 박물관들의 매력에 힘입어 지난해 여름휴가 만족도 조사에서 전국 종합 1위를 차지한 영월은 박람회 및 포럼 개최 등을 통해 국제적인 박물관 특구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장 시절, 국정감사 기간을 틈타 국토 기행의 일환으로 영월을 다녀온 나는 아끼던 사진기 두 대를 동강사진박물관에 기증했고, 당시 군수로부터 내 이름을 붙여 상설 전시하겠다는 감사 편지를 받았습니다.


내가 20년간 국회의원으로 일한 부산 영도는 신석기인들이 거주하던 패총(貝塚, 조개무지) 지역으로, 이곳에 살던 민가를 이전하고 전시관과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그 바로 옆에 아시아 최초로(세계 최초인지도 모릅니다) 해양박물관을 힘들여 지었습니다. 조개잡이 하던 아득한 선조의 땅에 대양 개척의 의지와 여망을 담아 보았습니다.

나에게 박물관은 배움터이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공중 도시, 잉카 최후의 요새인 페루 마추픽추(Machu Picchu)는 돌 하나, 집 한 칸, 길 한 쪽, 밭 한 뙈기가 예사롭게 설계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2400m의 이 황량한 고원에 살았을까요? , 도피, 치료, 영생, 은신, 휴양, 개간(開墾) 등등의 단어들과 함께, 현대 과학자들이 풀어야 할 인간 존재의 근원에 접근하는 열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핏 해보았습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마야(Maya)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기자(Giza) 피라미드를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시대와 지역 등 모든 것을 달리하는 두 문명 사이에서 이질성을 뛰어넘는 동질성을 발견하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카탄 반도에 있는 마야 문명의 상징 치첸이트사(Chichén Itzá)를 방문했을 때는 공원 박물관장이 한국계여서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다름 아닌 애니깽’(Anniquin / Henequen; 용설란의 일종)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이민자들의 후예였던 거지요. 어려운 형편임에도 한글학교를 운영하고 독립운동 비자금까지 쾌척했던 그들의 의로운 삶, 그 증표들을 메리다(Mérida)제물포 거리옆에 그들이 손수 세운 조촐하지만 위대한 박물관에서 직접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웠습니다.


카이로 국립 박물관과 룩소르(Luxor:al-uqṣur) ‘왕들의 계곡에서 본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를 통해서는 뜻하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영생을 추구하며 엄청난 피라미드를 건설하던 파라오들도 결국은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그때 그의 심장은 마트(Ma'at; 정의와 진리의 여신)의 깃털처럼 가벼워야 했습니다. ‘깃털보다 가벼운 심장이라는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를 푼 순간, 나는 정치 현장을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술탄과 황제라는 작품을 그 빈 마음에 심혈을 기울여 채울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에 갈 때마다 나는 이 귀중한 문화유산을 후세에 남기고 전한 선인들께 감사하게 됩니다. 전주에 있는 경기전(慶基殿), 그 안에 복원한 전주사고(全州史庫)를 보면서도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화를 면한,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매우 큰 사고입니다. 전주사고가 없었더라면 조선의 역사가 이토록 생생하게 존재했을까요. 태조 어진(御眞)과 몇 백 권에 이르는 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가마에 싣고 내장산으로 가 깎아지른 절벽 위 암굴에 모셔 놓고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다시 그것을 싣고 강화도로, 묘향산으로 옮긴 선비들의 지극 정성과 피나는 노력이 없었더라면 전주사고본도 왜적에 의해 소실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 뒤로도 갖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그때마다 실록을 지키려는 눈물겨운 안간힘 끝에 기적처럼 후세까지 전해져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이 조선왕조실록은 서울대 규장각(奎章閣)에 보관 중입니다. 나는 지금 서울대 규장각 운영위원으로 있습니다만, 처음 참여 요청이 왔을 때는 많이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전란 중에도 실록을 지켜낸 선조들의 간절한 몸짓을 생각하며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수락했습니다.


20159, 한국의 대표적인 근대화가 전혁림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그분의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경기도 이영미술관에서 개최할 때 그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90세가 넘어서도 작품 활동을 하신 노화백께 100세 축하 기념전은 내가 모시겠다고 했는데 96세에 그만 돌아가셨습니다. 약속도 지킬 겸 거장의 작품 세계를 여러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습니다. 오늘도 저 하늘에서 통영 바다를 그림으로 노래하고 계실 그분께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돌이켜보면 20년 의정 활동을 하면서 나는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고 되찾는 일에 나름대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국회의장 시절에는 공관에 8폭 병풍을 그대로 복사한 <화성능행도>(華城陵行圖)를 걸어 놓고 외국 손님을 맞을 때마다 자랑하곤 했습니다. 200811월 프랑스를 공식 방문했을 때는 그 나라 상하원 의장을 잇달아 만나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들의 반환을 강도 높게 요청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양국 대통령간의 합의(201011, G20 정상회의)가 이루어지고 이듬해 5, 마침내 297권의 의궤 반환이 완료됩니다. 빼앗긴 지 145년 만의 귀환입니다. 5년 주기로 갱신해야 하는 대여 형식이긴 하지만, 프랑스 국내 사정과 우리의 실리를 적절한 선에서 절충해 얻어낸 외교적 성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 박물관(Asian Art Museum of San Francisco)은 좀 실망했습니다. 아시아 밖에 있는 세계 최대의 아시아 작품 전시관은 시청과 마주보는 시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한국인 기증자 이종문 기념홀이라는 커다란 명문(銘文)이 자랑스럽게 나를 맞이했지만, 막상 전시된 한국 유물은 바로 옆의 일본이나 중국관에 비해 많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관장으로부터 현대 작품도 전시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귀국하자마자, 친분 있는 도예장(陶藝匠)에게 특별히 의뢰해 만든 커다란 달항아리를 보냈습니다. 박물관으로부터 고맙다는 공식 접수 편지를 받았지만 샌프란시스코로 시집보낸 달항아리를 아직 만나러 가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나는 국회의장 재임 중에 외국 정상이나 고위 인사로부터 받은 기념품과 선물 170여 점을 모두 국회에 기증했습니다. 11대부터 17대까지 전임 의장들의 기증품 합계보다 더 많은 숫자입니다. 퇴임을 앞두고 이 기념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 국회에서 특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다양하고 폭 넓은 의회 정상 외교의 모습을 국민에게 상징적으로 알리면서, 이 기증품들이 또 하나의 국회 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별도로 코스타리카 전·현직 국회의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그 나라 관련 서적 188권도 국회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문화유산을 떠올릴 때마다 가장 답답하고 안타깝고 가슴 아픈 것은 반구대 암각화 문제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암각화는 지독한 물고문을 당하며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고래잡이를 한 증표인 작살 박힌 고래, 새끼를 등에 업은 어미 고래를 비롯해 여러 모습을 한 인간과 각종 동식물들이 흔적이 옅어지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국회의장 시절에만도 두 차례 현장 답사를 다녀와 그 심각성을 백방으로 알리고 물에서 빨리 건져낼 대책 마련을 외쳤지만 공염불이 되고 말 상황입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선사시대의 기념비적 문화유산인 이 암각화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가 문화를 논할 자격이 있을까요.


최악의 실수라는 오명을 남긴 공주 무령왕릉 발굴처럼 졸속으로 해서도,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天馬圖)처럼 보존을 허술히 해서도 안 됩니다. 반구대 박물관에 전시된 모형도의 실물은 지금도 대곡천 사연댐 물밑에 잠겨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재 보호에 관한 두 가지 날카로운 대립에 직면합니다. 첫째는 문화재는 물론 그 주변 일대에 어떠한 손상이나 변경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주의적 입장이고, 둘째는 시대와 주변 환경에 따라 적절한 변경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각자가 자기주장만 하고 있는 사이에 반구대 암각화는 서서히 질식당하며 처참한 형태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긴 조상에게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할 우리 후손에게도 면목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역사에 죄를 짓고 있는 건 아닌가요.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했기에 반으로 잘린 자식의 시체를 갖기보다는 산 채로 남에게 주는 편을 택했던 솔로몬의 재판법정에 선 생모의 심정으로, 문화재위원과 관계자 여러분들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합니다.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일찍이 문화 국가 건설을 주창하셨습니다. 선생은 1947년에 발표한 나의 소원이란 글을 통해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백범 선생께서는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인 70년 전 이미 문화 국가를 꿈꾸고 설계하셨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예지가 빛나는 선각자다운 면모입니까. 그때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지만 문화를 제대로 지키고 발전시키고 계승해 나간다고 할 수 있을지, 그 무엇보다도 정성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습니다.


박물관은 나라의 얼굴입니다. 브랜드이며 국격입니다. 인류의 공통 자산이고 문명의 발자취입니다. 앞으로 인류가 걸어갈 길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박물관과 문화 정책, 그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모색하고 탐구하는 뜻깊은 토론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박물관 애호가로서의 순정한 편력기, 소박한 소견을 이쯤에서 마칠까 합니다. 귀담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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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문화유산???"




페스는 수도인 라바트에서 동쪽으로 약 200km 떨어져 있는 인구 100만의 모로코 4대 도시 중 하나입니다.

A.D.789년 최초의 왕조인 이드리스 1세가 페스강의 동쪽에 도시를 건설하면서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금 보이는 올드 메디나로 불리는 옛 시가지를 통해 이슬람 세계의 독특한 양식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약 1000여개의 미로와 같은 골목에는
8세기부터 형성된 시장, 공관, 학교, 주택가가 밀집되어 있습니다.

이 올드 메디나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럼 8세기의 자취가 남아있는 페스의 올드 메디나로 떠나 보겠습니다.




지금 보이는 문은 '부 즐루드'입니다.
페스 알발리의 서쪽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1913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남대문과 남대문시장이 함께 있는 풍경이라고나 할까요?




이 문은 안팎으로 아라베스크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바깥쪽은 페스를 상징하는 청색 타일이, 안쪽은 이슬람을 상잭하는 녹색 타일로 꾸며져 있습니다.
청색과 녹색이 단조로울 수 있는 건물의 색에 개성을 불어넣는 느낌입니다.




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물시계가 복원되고 있는 건물이 보이네요.
복원이 완료되면 어떤 모습일 지 궁금합니다.


그러면 모로코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시장의 풍경을 한 번 둘러보실까요?


( ◁◁ ▷▷ 표시된 부분을 좌우로 누르시면 다양한 사진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금빛 쟁반을 사려고 했으나 너무 비싸서 돌아서버렸습니다.
배짱 좋던 상인들은 돌아서려는 우리 일행을 보자 다급한 나머지 흥정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가격이 마구 떨어지더군요.
바가지를 씌우려했다는 느낌 때문에 구매하는 걸 포기했습니다.




원래 아랍 사람들은 대체로 사진 찍는 것에 대해 썩 내켜하지 않습니다. 
사진 찍히는 순간 자신에게서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기 때문이죠.

왼쪽에 있는 상인이 가게 사진 찍어도 좋다고 허락했으나
카메라로 조준하는 순간 나머지 사람들이 난처해 하는 모습입니다.
(촬영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을 둘러보니 가게에서 직접 차도르를 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능숙하고 빠른 동작과 손때 묻은 낡은 기계가 오랫동안 차도르를 짜온 역사를 말해주더군요.




우연히 마주친 한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었습니다.
상점 주인은 흔쾌히 관광객이 부탁한 사진을 찍어주네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녀에게 관대한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ㅎㅎㅎ




길을 지나가는데 사진 한 장 찍고 가라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한 종류의 꼬치만 팔고 있는 할아버지의 맑고 선한 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 항상 볼 수 있는 음료를 한 가지 꼽는다면
그것은 바로 '콜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성에게 엄격한 이슬람 문화권에서
서구의 상징인 콜라에 섹시한 여자 모델까지 곁들여 보니 이색적입니다.




시장의 골목을 따라가다가 보면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좁은 골목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서 거닐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죠.

저~ 길 끝으로 가면 무엇이 나올까요?
이 시장 안의 큰 길에 나 있는 골목 곳곳을 바라볼 때면, 긴 인생의 한 줄기를 보는 듯했습니다.




마침 비석 가게가 보였습니다.




석공이 열심히 망치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시끌벅적한 시장 분위기 속에도 글자 하나 하나 새기는데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비석들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공통의 문구가 있다고 합니다.

"모든 영혼은 죽음을 맛보리라."

특별하지 않은 문구였지만,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요?




사원 앞의 기둥인데 겉표면이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손을 대고 소원을 말하면 들어준다고 합니다.

저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멋지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는 돈을 넣고 소원을 비는 곳인데,
무료보다 유료가 소원을 이루는데 좀 더 효험이 있을까요? ㅎㅎㅎ




오래전부터 와인보다 나은 물맛을 자랑한다는 식수대입니다.
과연 어떤가 싶어 물맛을 봤는데, 특별하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외람된 이야기지만 우리 나라만큼 물맛 좋은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세계 전체를 놓고 봐도 산 좋고 물 좋은 곳이 흔하지는 않죠.





머리 높이로 문 앞에 뻗어있는 나무는 경계목입니다.

과거에 이 경계목으로 둘러쳐져 있는 공간은 신성한 곳으로 인정되었던 치외법권지역이었습니다.
설령 범죄자가 이곳에 들어오게 되더라도 치안요원들이 체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세월의 무게는 속이지 못하는 걸까요?
올드 메디나 곳곳에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나무로 된 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보는 개인이 점포를 유지하기 위해 투자하기도 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설치비용을 지원받기도 한다더군요.




생생한 시장의 풍경은 각 시대상이 담겨있어서 그 자체가 역사고증물이었습니다.

비린내가 나는 가죽 염색장(태너리)까지 거치며 시장을 거의 다 둘러볼 때쯤이었죠.
고개를 숙이며 요리 조리 피하며 걷고 있던 찰나에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다급히 외쳤습니다.

"(칸타타~님) 거기에 있는 X 밟았어요. 으~"

저 역시 철퍼덕하는 느낌이 감지됐습니다.
다른 발자국도 있는 것을 보니 이미 저보다 앞선 피해자들이 있었더군요.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누가 이런 문화 유적에다 X칠을 한 거야?'

속으로 투덜거리며 걷고 있는 순간, 짜잔~하고 등장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당나귀였습니다.

제가 밟은 것은 바로 당나귀의 배설물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좁은 시장 골목에서 적재량과 기동성을 함께 발휘할 수 있는 것 중에
당나귀만한 교통수단은 없었습니다.




저는 당나귀가 지나가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수십 년, 수백 년 전에도 어느 상인의 당나귀가 이렇게 짐을 나르고 있었을 테니까요.

실로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습니다.




(덧붙임)



여러 광고 표지판 속에 당나귀(혹은 노새)에 대한 주의표지판이 보이는 것도
그만큼 당나귀가 많이 다니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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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커피믹스 2010.01.27 11: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ㅎㅎ 당나귀 똥이었군요.
    똥만 조심하면 볼게 참 많네요.
    아 여행가고 싶다.

    • BlogIcon 칸타타~ 2010.01.27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다니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아래를 보고 걷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똥은 거의 지뢰 수준입니다. 모르고 밟게 된다는~)

      아직 페스 올드 메디나 사진은 이게 전부가 아님을 밝힙니다.
      내일 혹은 모레쯤에 2탄 나갈 겁니다.

  2. BlogIcon 켄닉 2010.01.27 12: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슬람 권의 문화를 보여주는 사진이 많아서 재밌게 봤습니다.
    한국에 앉아서 이런거 감상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

    당나귀... 똥... -_-;;;
    당나귀가 무슨 죄겠습니까 ㅜ_ㅜ 밟은 사람이 슬픈거죠.
    똥만 조심하면 되는 거군요... [ 바닥 보며 가야 할지도.. ]

    2탄 기대해 보겠습니다 !

    • BlogIcon 칸타타~ 2010.01.27 1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나귀 똥을 밟은 건 당시에는 기분 나빴지만
      지나고 보니 행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말씀대로 못 보고 밟은 사람의 부주의함 때문이죠. ㅋ

  3. 김상홍 2010.01.27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소한 아랍의 뒤거리는 우리네와 다를바가 없네요
    사람들이 착한것 같은데 자살폭탄테러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세계의 문화중 아랍에 대한 이해가 된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로 힘들지는 않았는지요.
    늘 건강을 기원합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1.27 18: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 감사합니다.

      편서풍대에다 지중해성 기후라 썩 춥지는 않았습니다.
      좀 춥다고 하면 늦가을 날씨였구요.
      그게 아니면 여느 가을 날씨 비슷했죠.

      사실 아랍권 나라들이 테러의 오명을 쓰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대체로 선량하죠.

  4. BlogIcon casablanca 2010.02.19 19: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스도 다녀 가셨네요.^^
    미로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게 설명을 해주셨네요.
    위의 댓글처럼 테러집단이라고 잘못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서 걱정이네요.
    서방의 일방적인 뉴스에 세뇌되어 있는 모습들인것 같아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태양의 아들 잉카전> 개막식에 참석한 김형오 국회의장 

 


                                                                          ▲ 12.10(목),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사진 설명]

12월 10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태양의 아들 잉카전>에 참석한 김형오 국회의장이 
관람을 마치고 로페즈 주한페루대사, 국립중앙박물관장 등과 축배를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국내외 박물관이라면 빠지지 않고 방문한 경험이 있는 '박물관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세계 문화유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도 유명한 정치인입니다.

박물관은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징검다리같은 장소이며, 현실과 이상을 이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박물관을 찾은 국회의장의 모습에는 이런 뜻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사진-국회미디어담당관실/ posted by 국회대변인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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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저는 참 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일어나지 못하는 저를 깨워 학교에 보내기 위해 부모님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했었죠.

이렇게 잠이 많은 저도 단 하루, 일요일 아침에는 누가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일요일 아침에 하는 ‘일요특선만화’를 챙겨보기 위해서였는데요.

아침마다 스스로 일어나 잠옷차림으로 TV앞에 앉아 있는 저를 볼 때마다 엄마는 정말 속이 터졌다고 하시더라고요.

학창시절을 지나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저의 만화 사랑은 이어지고 있는데요.
지난 토요일, 미키마우스부터 도날드 덕, 아기공룡 둘리, 태권V, 달려라 하니, 아톰, 스머프 등등 내가 사랑하는 만화 캐릭터들을 한 자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다녀왔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화에 대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 속 추억의 만화여행을 지금부터 출발합니다. ^^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위치한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
관람료는 어른 4000원, 어린이 3000원이고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1000원만 추가로 내면 우리나라 최초의 애니메이션 전용상영관인 아니마떼끄에서 상영하고 있는 만화 영화('명탐정 코난 칠흑의 추적자'를 상영하고 있더군요. ㅠ ㅠ)도 관람할 수 있지만 저는 시간이 없어 패스했습니다.
 
본격적인 전시관이 아닌 박물관 안 로비부터 다양한 조형물들이 관람객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엄청 큰 아톰이 팔짱을 낀 채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네요. 원래는 쪼끄만 놈이...

▲우리나라 토종 캐릭터인 둘리와 홍길동도 나란히 나란히~~ 둘리의 혓바닥은 여전하군요.

자 그럼, 본격적인 전시관 관람을 시작해 볼까요?

▲영화 렌즈 통으로 된 입구. 마치 딴 세상으로 들어가는 터널처럼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들어가자 마자, 우리를 반기는 것은 어느 나른한 오후 만화를 그리다 잠에 빠진 애니머이터의 모습입니다.
꿈을 하나 하나 이어붙이는 작업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꿈나라로 간 애니메이터의 모습, 보기만 해도 나른해 집니다.

 ▲어느 애니메이터의 나른한 오후.

1층 전시관은 애니메이션의 기원과 탄생, 발전 과정 등 애니메이션의 역사 소개와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특히, 국내 최초의 장편만화 영화인 '홍길동'을 찍었던 카메라와 영화필름, 각본 등은 물론 그 당시 나왔던 장난감 등 너무나 진귀한 자료들은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 뿐만 아니라 그 당시를 살았던 분들의 추억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해 보였습니다.

한 마디로 눈이 즐거운 전시관이라고나 할까요. ^^

▲국내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촬영한 카메라. 카메라 앞에 놓여 있는 동글동글한 최초의 홍길동 캐릭터가 보이시죠?

▲철인28호, 고질라, 보트를 탄 밀림의 왕자 레오 등 정말 신기한 피규어들이 즐비합니다.

▲황금박쥐는 들어봤는데 황금날개는 처음 봅니다. 황금날개 필름과 각본.

▲소파 방정환 선생님의 '77단의 비밀'을 원작으로 한 만화영화. 홍길동은 본 기억이 있는데 '77단의 비밀'은 기억에 없네요. ㅠ ㅠ  혹시 보신 분 계신가요?

1층 전시관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옛날 6.70년대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거리인데요.
70년대 만화가게부터 옛 종로3가 극장(단성사)의 모습, 사진관과 작은 담배가게까지...
정말 작은 것 하나 꼼꼼히 신경 썼다는 것이 느껴지는, 무엇 하나 놓칠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6.70년대 만화가게와 극정 거리가 재현된 공간입니다. 극장에서는 홍길동이 상영되고 있군요.

만화가게 안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주판 알을 튕기며 돈 계산에 여념이 없는 주인 아저씨. 손님이 왔는데 전혀 아는 척을 하지 않으시네요.

▲난로 위에 놓여 있는 철도시락통들은 겨울철 난로가의 빠질 수 없는 풍경입니다.

자, 무엇을 볼까~가게 안을 한번 둘러 볼까요?

▲긴다리 아저씨는 우리가 흔히 아는 키다리 아저씨겠죠? 돌려88돌이는 무엇일까요?

▲돌려88돌이가 여기에도 있네요. 당시 한 인기했던 책인가 봅니다. 

▲'최고봉! 너의 꿈은 뭐냐?'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만화 제목입니다. 내용이 정말 궁금하지만 읽어 보지는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런 추억의 만화들을 박물관이 아닌 곳에서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만화 가게 안에서 만화책 쌓아놓고 보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풍경이네요.

▲만화 가게 옆 은하 사진관.

1층 전시관이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소개한다면 2층 전시관은 일본과 미국, 유럽을 비롯해 중국, 북한 등 제 3국의 애니메이션까지 전세계 애니메이션 자료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세계의 애니메이션. 세계 만화캐릭터들로 꾸며진 지구본입니다.

▲지구본을 자세히 보면 애니메이션 캐릭터들로 이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마스도, 곰돌이 푸우도 있네요.

▲북한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북한관. 북한의 어린이들도 만화를 보면서 꿈을 키우겠죠?

▲일본관 입구를 지키는 타이거 마스크.

▲춘천시의 캐릭터들로 꾸며진 춘천관이 따로 마련돼 있네요. 애니메이션 박물관부터 오는 2010년 개교하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까지. 앞으로는 춘천 하면 닭갈비가 아닌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는 날이 오겠죠?  

▲미국관에서 만난 다양한 미키 마우스. 저 봉제인형은 1930년에 만들어졌으니 거의 80살 된 할아버지입니다.

이외에도 특별 기획전으로 '만남과 소통의 player - 게임과 애니메이션의 만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게임으로 너무나 유명한 리니지 2의 캐릭터들과 제작 과정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애니메이션 전문 박물관인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은 기존의 딱딱한 박물관이 아닌 직접 캐릭터도 만들어보고 체험해 볼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즐거운 박물관이었습니다.

단지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미국과 일본의 경우 일찍부터 만화산업이 발달한 만큼 오랜 세월 사랑 받아 온 캐릭터와 이를 활용한 다양한 제품들(장난감 뿐만 아니라 만화캐릭터가 새겨진 전화 카드 등)이 전시 된 반면 우리나라는 절대적으로 캐릭터 제품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만화 대여점과 만화책을 멸시하는 분위기 등으로 많은 만화가들이 자신의 생업인 만화를 접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만큼 이러한 현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만화에 대한 역사부터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 볼 수 있었던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
너무나 즐거운 이 박물관에 우리나라 캐릭터들이 '꽉꽉' 차는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합니다.

바로가기☞ 춘천애니메이션 박물관

Posted by 포도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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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남호 2009.11.23 1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박물관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된걸로 알고 있는데?...

    • BlogIcon 커피향 가득히 2009.11.23 1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그래서 저는 사진 촬영 전에 허락을 받고 찍었습니다.
      여쭤보니깐 박물관 내에서 찍는 인물 사진은 촬영이 가능하지만 전시품 위주의 촬영은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2. BlogIcon 달콤시민 2009.11.23 15: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둘리와 아톰, 미키마우스 캐릭터는 갖고싶네요~~!
    생각해보니 여자아이들이 어릴때 즐겨봤던 만화의 캐릭터들이 뭐였을까 싶기도..
    역시 둘리군요!
    달려라 하니나 영심이 같은 만화도 캐릭터사업을 했었다면 음.. 지금쯤 인형들로 남아 우리들을 향수에 젖게 해줄 것 같기도 한데 조금 아쉬워요.. 영심이는 영화로도 했는데.. 김민종이 나왔던,,? ㅎㅎㅎ

    • BlogIcon 맹태 2009.11.23 16: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람돌이, 빨간머리 앤, 바이오 가족, 메칸더 브이, 고바리안, 우주보안관 장고, 철인28호,...아~ 전부 수입품이네요..

      영심이, 두치와 뿌꾸, 달려라 호돌이, 독고탁, 까치, 머털도사..우리나라 작품도 꽤 많았는데요.
      마케팅의 차이일까요..뽀롱뽀롱 뽀로로 같은 캐릭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BlogIcon 커피향 가득히 2009.11.23 16: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나마 요즘 뽀로로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뽀로로는 4~5세 아이들에게 동방신기와 같은 존재라고 하더라고요. 약국에도 아이들 먹는 약에 뽀로로 캐릭터 있고 그런데 아이들 주사 맞고 막 울다가도 그 뽀로로 캐릭터 사준다고 하면 울음 뚝 하는데 완전 귀여워 죽겠습니다.ㅋㅋㅋ

  3. BlogIcon The Blue. 2009.11.23 2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요일마다 아침잠이 없어지는건 남자어린이들의 공통사항이었군요. ^^

    좋은 곳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한번 놀러가보고 싶네요.

  4. BlogIcon 졸리메니아 2009.11.24 03: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0년대 추억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 같아 쪽지 드립니다.
    현재 80년대 중후반 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보드게임 중
    이번에 '악령도' 라는 게임을 복원하고있습니다. 복원 프로젝트 1, 요괴의성 탈출게임, 2. 런던대추적
    의 성공적 복원에 이은 세번째 프로젝트 입니다.
    뜻있는 회원들로 부터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거의 완성 단계까지 와있습니다. 겨울이 오기전 완성될 듯.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하시는 분은 성함과 원하시는 문구를
    넣어드립니다. 기본 세개 드리니 서프라이징 선물로도 좋습니다^^
    제때 참여하시어 같이 소중한 추억의 물품을 완성시켜 손에 넣는
    짜릿한 감동을 맛보시는데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다음까페 졸리메니아 입니다.

    cafe.daum.net/jollymania

    • BlogIcon 커피향 가득히 2009.11.24 0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오~ 저 보드게임 정말 좋아하는데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참가할려면 카페에 가입하면 되나요? 악령도~~재미있겠네요^^

    • BlogIcon 칸타타~ 2009.11.24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보드게임 좋아해서
      어릴 적에 보드게임 쌓아놓고 했었어요.
      부루마불, 부루마불 트레이드, 인생게임에다 요괴의 성 탈출게임도 있었고.
      1~3천원 안팎의 보드게임도 좋아했죠.
      (지금 온라인 게임으로 치면 RPG게임 같은)
      이 카페 보니 반갑네요.

  5. BlogIcon 라이너스™ 2009.11.24 17: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억의 만화가게라...
    정말 정말 좋네요^^
    저도 저곳에서 잠깐 추억을 느껴보고싶어집니다.마구.ㅎㅎ

    • BlogIcon 포도봉봉 2009.11.24 2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아마 추억을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옛날에 봤던 만화영화 캐릭터들도 만날 수 있고 영화 포스터도 볼 수 있고 전 저곳에서 산삼의 기운으로 지구를 지키는 흰독수리 소년도 만나고 왔답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