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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이렇게 저렴한 방이 다 있구만."

학생시절 일이었습니다. 자취하던 원룸을 떠나 돈을 절약해볼까 하고 이사한 곳은 오래된 2층집이었습니다.

방값도 생각보다 쌌던데다 이전에 살던 사람이 급히 나가는 바람에 냉장고, 장롱, 세탁기가 남아있어서 별도로 구매하지 않고 옵션을 갖춘 원룸처럼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도배도 깨끗하게 되어 있었고 말이죠.

그러나 이 집은 저에게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아래의 자료사진은 제가 살던 집과 연관이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난간 없는 위험한 통로


이사하는 날부터 저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습니다. 짐을 안고 2층을 오르내리는데 대문 위쪽 복도에 난간이 없었던 것이죠. 원룸에서 살아온 것에 익숙해왔던 저로서는 그 점을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실제로 눈 온 뒤 복도가 얼거나 술 취한 상태에서 걸을 경우, 굉장히 위험합니다.

중학생시절 사귄 한 친구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 다녀오던 중 자신의 집 2층에서 떨어졌는데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버렸습니다. 만일 그 당시에 난간이 있었다면 그런 참담한 변은 당하지 않았겠죠. 그러니 사소한 안전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단열재 없는 집

이사한 뒤 한파가 몰아칠 무렵, 보일러를 가동했는데도 기대했던 것만큼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안 곳곳을 살피던 중 다른 건물들과 벽의 두께가 차이가 있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집이 너무 오래되어서 지을 때 단열재를 제대로 쓰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맙소사~!

그러니 보일러를 웬만큼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서 있으면 냉방이었고 누워야 난방이 됐습니다. 입김을 불면 그게 보일 정도였죠. 단열재가 없어서 괴로운 건 여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건 집에 아니라 찜통이더군요.
 
이사한 뒤, 다음 집에서는 겨울 내내 보일러를 중간 이상 맞춰놓고 생활해 본 적 없었고 여름 내내 에어콘 한 번 안 틀고 살았으니 실로 '비교체험 극과 극'이었죠. 난방비도 이 집(구옥)과 이후의 집은 배나 차이가 났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냉난방시에 집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달았습니다.

(세탁실도 추위에 취약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겨울에 빨래하려면 얼어있는 세탁기 배수구를 녹이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탁기 크기와 세탁실 구조도 중요합니다. 세탁기가 작으면 이불 빨래가 아니더라도 불편함이 있습니다. 요즈음 원룸에는 드럼세탁기가 많은데 일반세탁기보다 헹굴 때 신경을 더 써야 합니다.)



곰팡이와의 전쟁


단열재 없는 집이 가져다주는 문제는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집 안팎의 온도 차이를 견디지 못한 벽지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 올림픽이 열린 것이었죠. 현관문 주변부터 시작된 곰팡이의 습격 때문에 원래 도배지가 검정색이었나 싶을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장농, 책상 등이 놓인 뒷쪽이나 방의 구석진 곳 역시 어김없이 곰팡이 천국이 됐죠. 알레르기 질환이나 호흡기가 안 좋은 분들에겐 곰팡이가 특히 안 좋다는 것. 다들 아시죠? 



바람도, 도둑도 막지 못하는 창문


이런 집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서 집에 있는 구멍 곳곳을 틀어막아야 했습니다. 낡은 나무 문틈 사이로 시원한(?) 겨울 바람이 방문해주신 덕택에 문풍지를 사서 발랐죠. 큰 도움은 안 됐지만요.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 무렵에 바로 아랫 집에 강도 미수사건이 일어났던 것이죠. 도둑이 이웃집에 침입하려고 방범창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순간, 자고 있던 아가씨가 이를 발견하고 놀라서 소리 지르는자 곧바로 도망가버렸던 겁니다. 그래도 방범창이 있어서 범행이 미수에 그칠 수 있었던 케이스입니다.

이 일이 있은 뒤, 비상연락망을 구축하는 것마냥 이웃집 아가씨와 통성명도 하고 전화번호도 주고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저희 집 창문을 살펴봤습니다. 이 창문은 2층 복도에 통창의 형태로 있었는데, 1층방처럼 방범창이 있기는 커녕 그냥 뜯고 들어올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훔쳐갈 물건도 없긴 했지만, 씁쓸했죠.



얼굴 없는 집주인

이 문제들을 집주인에게 알리는 것도 참 힘들었습니다. 집주인은 멀리 지방에 살고 있었는데다 전화 통화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죠. 집주인은 재개발을 위해 집을 소유하고 있었던 터라 인근 부동산과 이웃집 아주머니가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었거든요.

어느 날 운 좋게 집주인과 간신히 통화하면서 현재 집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집주인은 정색을 하며 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방범창은 되어 있고, 난방과 단열제는 문제 없으며, 도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곰팡이가 생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우기더군요.

이웃 사람들을 통해 집주인은 이전의 세입자에게도 이런 식으로 대했으며, 오래 전부터 집에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재개발 기간도 꽤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을 구실로 집을 고쳐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접했습니다. 제 경험을 미뤄봤을 때 집주인이 직접 살피는 집들은 아무래도 다르더군요.



집주인의 횡포

계약기간 한 달 전에 재계약하지 않고 이사할 거라고 전하자, 집주인은 사람이 빨리 나가고 빨리 들어오면 좋다고 하더니, 제가 부동산에 방을 내놓으면 복비(부동산 중개수수료)는 자신이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방을 내놓은 지 3일만에 새로운 계약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연락하기 힘든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집주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계약이 됐다며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죠. 그리고는 돌연 복비 부담을 세입자인 제가 부담해야 한다며 말을 바꿨습니다. 계약기간이 1년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죠. 법적으론 그렇지만, 복비에 대해 구두로 합의를 본 상황을 이렇게 뒤집으니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니 집주인은 보증금에서 복비를 떼고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며칠 후, 새로운 세입자가 이 집과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집과 계약해버리는 바람에 집주인이 위약금을 챙기게 된 겁니다. 그러자 집주인은 또 다시 말을 바꿨습니다. 이제 다른 새로운 계약자가 나타나면 계약기간을 못 채워도 복비를 감면해주겠다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휴~



이사 가기 직전에 연달아 터진 사고


이사 날짜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3대 고장이 몰아쳤습니다. 우선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았죠. 다행히 사소한 고장이어서 돈 들이지 않고 고칠 수 있었지만, 다음 날 수리 완료 전까지 냉동실 같은 방에서 잠들어야 했습니다. 보일러를 고치고 나자 이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누전차단기를 다시 달았지만 이틀을 못 가서 또 고장이 났죠. 두 번째 누전차단기를 달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죠. 화장실 변기가 막힌 겁니다. 뚫어뻥이나 하수구 뚫는 용액을 사서 해결해봐도 안 되는 것이었죠. 오히려 2층에 있는 두 집의 화장실은 모두 오물이 역류되어 엉망이 되어버렸으니, 난민이 따로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사 때문에 방에는 짐을 잔뜩 쌓아두고 있었으니 참으로 가관이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변기가 막힌 게 아니라 변기로 이어지는 관이 막힌 것이었습니다. 결국 거액(?)을 들여 하수구청소업체를 부르고 나서야 해결이 됐습니다. 더 많은 세입자를 받기 위해 2층 한 집을 둘로 나누기 위해 무리하게 화장실 공사를 한 것이 문제였죠. 변기와 연결된 관이 기형이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하수구청소업체측에서는 이런 일이 또 다시 발생할 수 있으니 집주인과 상의해서 변기와 연결된 관을 고쳐라고 권하더군요.

그저 싸게 살고자 했던 욕심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이 희생되어서 가슴 아팠습니다. 이사 가는 그 날까지.




지금 생각해도 이런 집에 어떻게 살았는가 싶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당장의 돈을 아끼고자 택한 집이었건만, 도리어 추가 비용을 치르게 됐던 것은 아쉽더군요. 문득 '소탐대실'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집에 살지 않으리라 맹세한 뒤에는 더 이상 집 때문에 고생하는 일을 겪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고생 끝에 얻은 경험들이 저에겐 소중한 재산이 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집을 보는 눈도 나아졌구요.

대부분 사람들이 적은 돈을 가지고 좋은 집을 골라야 하는 고민 때문에 집을 고를 때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살피게 됩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절약에 몰두한 나머지 혹시 모를 비용들을 간과할 수 있으니 이런 점을 꼼꼼히 체크하셨으면 합니다. 특히 자취 경험이 부족한 분들에겐 이런 점들이 좋은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집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은 그 무엇보다도 살기 편한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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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드자이너김군 2010.01.04 17: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집은.. 정말 맘편히 쉴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서 가끔 씁슬할때가 많아요. ㅎㅎ
    저도 자취생활을 한적이 있는데 자취생은 정말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는..^^

  2. BlogIcon Phoebe 2010.01.04 17: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콩은 단열도 안되잇고 보일러도 안되있어서 앉으나 서나 냉골이랍니다.T-T
    얌체 같은 집주인 때문에 열 많이 받으셨겠네요.
    여자들 같았으면 살기가 무서웠겠어요.
    빙판길 조심하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 BlogIcon 칸타타~ 2010.01.04 17: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홍콩도 그렇군요.
      좋은 집주인들도 많이 계시지만
      자기 집인데도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놓곤
      세입자 골탕 먹인 그 집주인 생각하면 정말 밉더군요.
      그나저나 오늘 퇴근길과 내일 출근길이 더 걱정입니다. ㅎㅎㅎ

  3. BlogIcon 악랄가츠 2010.01.04 1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역시 싼 게 비지떡이라고 ㅜㅜ
    너무 싼 집은 한번 의심해봐야겠네요! ㅜㅜ

    • BlogIcon 포도봉봉 2010.01.04 2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예전에 엄청 싼 집 속아서 들어갔어요. 집주인 아줌마가 너의 주방이란다 했는데 알고 봤더니 모든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동주방이더라고요. ㅠㅠ
      결국 6개월만에 나왔더랬죠. 흠흠..

따끈따끈한 온돌 아랫목과 난로 위 주전자, 모닥불 속 군고구마와 뜨거운 코코아...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11월 셋째 주, 월요일입니다.
이번 주 내내 추위가 계속된다고 하니 그 어느 때보다 온기가 그리운 한 주가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온기가 되고 싶은 만사형통이 전하는 11월 셋째 주 넷 브리핑, 함께 보실까요?

#‘만사형통’만의 시리즈물이 나왔어요.

지난주 만사형통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시리즈물의 연재입니다.


첫번째 시리즈인 '개헌론 20문 20답' 김형오 국회의장이 늘 강조해 온 ‘개헌’에 대한 궁금증을 함께 풀어보는 코너인데요.
개헌의 필요성과 내용, 효과 등을 문답식으로 알기 쉽게 구성했습니다.

(1)헌법 개정 왜 필요한가요?
(2)왜 굳이 어려운 헌법 개정을 해야 하나요?

이와 함께 세상 모든 분야를 정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치로 본 세상만사’ 시리즈도 함께 연재됩니다.

정치9단 침팬지들의 ‘권력투쟁 잔혹사’

#만사형통, 국회에는 무슨 일이?


일본의 ‘신사(神社)’가 한국에 있다? 이것이 무슨 얘기인지 궁금하시다면
침략신사 야스쿠니, 한국의 신사는 어땠을까?

국회를 점령한 똑똑한 강아지와 걸그룹 카라의 멤버 ‘니콜’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카라 ‘니콜’보다 강아지가 100배 더 좋은 이유

를 참고하세요.

#이슈가 궁금하세요? 만사형통을 보세요.

이슈가 있는 곳에 만사형통이 있습니다.
서해교전 발발과,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인 교차상영의 문제점, 전국민을 들었다가 놓은 ‘루저’ 발언까지, 발 빠르게 움직이는 ‘만사형통’이 바라본 지난 주 이슈들입니다.

서해교전 발발, 참혹했던 연평해전의 상흔
‘하늘과 바다’ : 영화 상영관의 불편한 진실
고딩‘루저’의 교향곡 <말죽거리 잔혹사>
청년백수, 드라마와 영화 속 슬픈 루저들  
중년남성의 ‘루저’ 판타지 <남자의 서쪽>

#만사형통, 생활 속 불합리를 조명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생활 속 불합리에 대한 이야기, 만사형통이 함께 합니다.

신림동 고시촌, 전지현이 예뻐 보였던 하루
10년 차 커리어우먼, 사표를 내야만 한 사연은?

#만사형통, 웃음 비타민으로 건강까지 생각한다.

세상만사, 뉴스만 보면 머리가 아픈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당신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 만사형통 웃음비타민.

막힌 변기를 손으로 뚫은 사연
달마가 교회에 간 까닭은? 

추운 날씨입니다.
모두들 건강 조심하시고 이번 주도 만사형통과 쭈욱~함께 하는 것, 다들 아시죠?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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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r.번뜩맨 2009.11.23 1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내년에는 모두가 만사형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군대 훈련소에서의 일입니다.

화장실 청소가 시작되는 시각부터 점호 종료 시까지 화장실 사용을 할 수 없었습니다.
화장실은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해야만 하는 일종의 거룩하고 신성한 곳이었습니다.

처음에 훈련소에 가면 긴장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변비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흐르다 보면 신호가 왔을 때 바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놓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대에서 키가 가장 큰 친구(1번)를 화장실 오장이라고 불렀습니다.
화장실 오장은 소대장 훈병/향도훈병과 더불어 소대 내에서 교관들이 아는 척 해주는 권력(그것을 권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마는)을 갖고 있어서 경외의 대상이었죠.

화장실 당번은 키가 큰 순서로 구성되어서 좀 무섭게 느껴졌는데,
청소시간에 화장실 사용을 못 하도록 위압감을 줘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어쨌거나 전 다급한 신호를 받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그나마 좀 친하다고 생각되는 화장실 당번에게 사용을 요청했습니다.

화장실 청소가 말끔하게 다 끝났다고 난색을 보이는 화장실 당번에게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고 당부하고서
키가 큰 화장실 오장의 눈을 피해 한 칸을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일을 마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럴 수가!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여서였을까요.

휴지가 섞이지 않은 100% 순수함만으로 변기가 막혀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제가 있던 신병교육대에는 우습게도 변기를 뚫는 압축기도 없었습니다.
화장실이 막히면 소화전의 소화호스를 사용해 변기를 뚫었는데, 그 엄청난 수압으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방식이었지요.

소화호스를 사용하면 물기 한 점 없이 말끔히 청소된 이 거룩한 공간을 나의 순수함으로 더럽히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시각은 8시 50분. 동기들은 이미 점호대형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소화호스를 사용할 시간도, 그 뒷정리를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화장실 당번은 물론이고, 화장실 오장과 소대장 훈병, 아니 나아가 우리 소대 전체,
아니 우리 중대 전체, 아니 동기 전체가 잠을 못 잘 수도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이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화장실 오장의 눈을 피해 자리를 마련해준 동기를 곤경에 빠트릴 수 없었습니다.
곧이어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화장실 당번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다 안 쌌나? 빨리 나온나."

"응? 좀 기다려라. 다 쌌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저에겐 아무런 도구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쓰자. 생각해라. 생각해라.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해..!'

팔을 걷고 변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샘이 깊은 물이란 이럴때 쓰라고 생긴 표현일까요?
활동복이 젖지 않도록 소매를 어깨까지 끌어올려 민소매 옷처럼 만들었지만,
제 순수함이 더해져 넘칠 듯이 불어난 물은 어깨까지 적셨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드리며 손끝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습니다.

(후비적 후비적..)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심정이 이러했을까요?
꿀렁꿀렁~ 서서히 내려가는 변기를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동기들아, 기뻐해 줘! 너희는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지금 우리는 큰 위기를 넘겼다!'

어깨까지 젖은 물기를 다른 한 손으로 모두 털어내고, 활동복 소매를 내리고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문을 나섰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문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당번이 화장실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가고,
전 쓴웃음을 지으며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야! 세면대도 쓰면 안된다!"

뒤따라 나온 화장실 당번이 걸레 한 장을 들고 황급히 제 뒤를 따라와 세면대의 물기를 닦아냈습니다.

"꼭 써야 된다.."

물기를 닦는 동기를 앞에 두고 차마 어깨까지 닦을 수는 없었습니다. 손을 닦고 점호를 받았지요.
다행히 그날 점호에서 화장실 청소상태에 대한 지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

자세한 묘사는 생략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할 누군가를 위해 조언하자면

"더럽혀진 손은 씻으면 됩니다."

단, 깨.끗.이.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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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전이 2009.11.11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흠흠... 그래도 수세식 화장실을 썼구나... 난 푸세식의 그 알싸한 냄새에 고생했었는데... ㅋㅋ

    • BlogIcon 맹태 2009.11.11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푸세식이면 뚫을 필요도 없었을텐데 말입니다..흠흠

      너무 많이 쌓여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은 있어요..
      아, 생각만해도 끔찍하네요. 거긴 정말 손 못넣어요..아무리 씻으면 된다고 하지만...;;;;

  3. 유성이 2009.11.11 1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겨울철 똥 깨보신분..ㅋㅋ 얼음똥 녹을때 캬~~

  4. 'ㅁ' 2009.11.11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엥.. 여기가 김형오 국회의장님 블로그인가요?
    개인적으로 국회의장님 팬인데..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5. 29년전 논산 2009.11.11 1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옛날엔 똥장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쪼그리고 앉는 수세식이었고 막혔을 때,
    그 때 똥장인 나도 손으로 뚫은 적이 있었죠.
    목표 의식이 강하고, 당위성이 확립되고나면
    손으로 막힌 똥을 뚫는 것에는 아무러한 거침이 없습니다.
    더럽다는 생각도 안들죠.

  6. FA신청선수 2009.11.11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께서 변기를 손으로 뚫은 사병처럼 막혀있는 우리정치를 시원하게 뚫어주시면 좋겠습니다.

  7. 심퉁이 2009.11.11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구.참별희안한추억도다있습니다.똥얘기하면 참으로잊지못할일이있죠 37녀전에안동역에매점옆에선물상자에 똥을싸서 포장해논분찾습니다. 전지금도그때를잊지못하고있습니다 아무도보는이도없고시간도
    많이지니고 아,누가잊어버리고간게틀림없구나싶어 조심히풀었드니 꽝꽝얼은 똥덩어리였습니다.
    지금41된 조카가저달라고 우는바람에 풀었다가 일생에 잊지못할가슴에똥덩어리 추억을갖게됬습니다.

    • BlogIcon 맹태 2009.11.11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 웃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똥도 포장하면 그럴싸하다는 교훈.
      깜짝 놀라셨겠어요. 조카님께서도 상처 받으셨을듯..(당시 4살이셨을텐데...ㅠㅠ)

  8. 한영희 2009.11.11 13: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비를 잘헤쳐 나갔네요
    그런데 군대에선 알고보면 그것보다 더 심한 것도 무수히 많다고 들었어요
    제 아들은 부모님 면회때 화장실 청소를 맨손으로 암모니아가 덕지덕지 붙은 것을 동전으로 긁으라고 해 그렇게 했답니다 군대의 고생을 생각해 집에서도 일을 좀 거들면 좋겠는데 힘드나봅니다

    • BlogIcon 맹태 2009.11.11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소변기 찌든 때 제거하는 것을 스켈링 작업한다고 했었는데, 그것도 종종 하는 일이죠.

      집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저도 이등병때는 '왜 내가 부모님께 하는 것보다 선임들에게 더 잘하고 있는걸까?'라는 생각에 사회에서의 모습을 반성했는데..

      막상 전역하고 보니 또..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군대에서 더욱 강하게(!) 청소를 시키는 것 같아요.
      안그러면 사회에서 하듯이 '안할테니까'요..

      (흠흠..씁쓸~하네요.ㅋ)

  9. ㅋㅋ 2009.11.11 14: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중부전선 철책에서 있었던 일인데용...
    왜 화장실을 언덕빼기에 만들어 놔가지고...
    똥지게 메고 옮기다가 자뿌라지는 선임병을 봤었음...
    제가 이등병 때라...웃지도 못하고...어찌나 당혹지럽던지...
    똥지게 메고 언덕에서 나자뿌라지는 거 안봤으면 말을 마삼...ㅋ

    • BlogIcon 맹태 2009.11.11 14: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으악! '어깨'까지는 말도 못 꺼내겠네요.
      정말 이등병때 웃음 터질거 같은데 참는 것도...정말 난처하셨겠어요.ㅋㅋ
      넘어지셨던 선임분도 두고두고 향기나는(?) 추억이겠네요.ㅋ

  10. 능수 2009.11.11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정겨운 글을 봅니다.
    30여년전....논산훈련소....훈련병 시절...그 당시는 푸세식 화장실이었는데.....
    나참.........화장실을 못들어가게 지키고있느 동료 훈련병
    정말 대단한 끗발이었어요...그 친구들....
    사정사정해야 화장실 한번 쓰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던 시절 이었지요.
    글쎄...한번은
    화장실에갖는데....옆 화장실에서..
    두녀석이 두런두런하기에 궁금해서
    살며시 보니까.....이런 참..............
    화장실에 밥 수저를 빠트리고 건져보려고..
    두런거리고 있지 뭡니까???
    그 시절에는 수저를 고무줄에 끼워서 주머니에 매달고 다녔는데....
    지금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울껄요...아마
    밥 수저 잃어버리면 밥도 못먹고....얼차려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래도 그 시절은 정감이 흐르던 시절이었지요//
    다시올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립네요...

  11. BlogIcon 달콤시민 2009.11.11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다행이네요.. 제가 이 포스팅을 식후에 봐서..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천만다행이에요 기억력이 3초라서 이 블로그를 덮는 순간 잊을 거라서... 아아악

    정말 군대란 곳은...뜨아아아 ㅜㅜ

  12. ㅋㅋㅋ 2009.11.11 16: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대 배치 받아서도 손바닥만한 걸레 하나가지고 화장실 광내던 기억 나네요...

    요새도 그렇게 시킵니까?

    • BlogIcon 맹태 2009.11.11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저도 이게 시간이 좀 지난 이야기이긴 한데-
      전역할즈음엔 화장실 물기제거를 제대로 안하더라구욧!
      ㅋㅋㅋ군대 이야기의 특징이지만 '나때는 안그랬다~'하는 부분 있잖아요.

      정말 저 이등병때는..물기제거가 생명이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참고로 '다쓴 칫솔'과 '빗자루'를 걸레와 함께 사용했습니다. 청소도구의 비약적인 발전이군요~

  13. 장은근 2009.11.11 17: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동복이란 말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보네요 ㅋㅋ

    DI 와 활동복 색깔을 보니 해군인거 같네요 ^^

    저도 해군훈련소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공감이 마구마구 갑니다 ㅋㅋㅋ

  14. 기억난다.. 2009.11.11 1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대에서 풍선 없다고 풍선 만들라고 하더니
    콘돔 주더라.. 휘밤바..

  15. 근데 2009.11.11 1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뭐하는 블로그죠? 군대 얘기하고 국회의장하고 뭔 상관? 기분좋게 볼려고하다가
    괜히 찝찝해지네요..

    • BlogIcon 맹태 2009.11.11 1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근데님.
      김형오 국회의장 블로그입니다.
      팀블로그로 운영되고 있구요, 이 이야기는 블로그 운영진의 개인경험담입니다.

      기분 좋게 방문하셨는데, 찝찝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내용 자체가 좀 찝찝하다보니...)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

  16. BlogIcon 씨제이 2009.11.11 1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손을 넣어서 뚫어 보았죠 ..맞아요 훈련소에서는 훈련을 강하게하기 때문에 변이 압축되어서 보통 더욱이 첨에는 변비가 많아서 잘 막혀요 제가 한번 논산훈련소에서 화장실 청소 당번이었는데 얼기도 하고 몇개가 막혀있더군요 조금 녹아도 있고 ㅡㅡㅡ저는 내임무에 그걸안뚫으면 지는것같아서 뚫다가 안되어서 개량식이었는데 손을 넣어서 하다보니까 어찌하다가 끝까지 잘안뚫리던것을 뚫은 기억이 납니다 .



    그때 3월 말이었는데도 가끔 얼었던거 같은데 변이 딱딱해서 열개중 4개에서 5,6개는 막혔던것 같아요 제가 한 3,4,5개는 뚫었던거 같아요 ㅋ 참 그런 기억도 있네요 .참 그땐 보초 연습때 누구말대로 혹시 간첩잡아서 포상휴가 갈지도 누가 알아 ,,,하는 좀 이상한 (가능성 없는 ㅡㅡㅡ)그런 상상도 하며 보초연습섯던 기억도 나네요 .,,,,행복하시길 ㅡㅡㅡ

    • BlogIcon 맹태 2009.11.11 1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씨제이님.

      훈련소 화장실이 잘막히는 이유에 대해 상당히 논리적인 분석을 해주셨네요. 설득력 있는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ㅋㅋ

      씨제이님은...동기들에게 참 소중한 존재이셨을 것 같습니다...^_^

  17. 저는 아줌만데 2009.11.11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손으로 뜷습니다. 집에서, 간혹 도구로 옷걸이철사도 쓰지만, 고무장갑끼고 하지요. ㅎㅎ 근데
    그게 제일 빨라요.

  18. 해상병 491기 2009.11.11 2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는 느낌이 해군 출신인가봐요... 화장실 오장, DI, 시퍼런 활동복 모두 해군훈련병의 상징들이죠..

    님이 느꼈을 감정 십분 이해 합니다..

    전..키가 작아..스머프 부대 즉, 식당 식가이고정 차출이었죠..^^

  19. BlogIcon 커피믹스 2009.11.12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웁~~~.
    팔에서 냄새가 며칠동안 사라지질 않았겠군요.
    그러고 보면 인간의 신체부위만큼 훌륭한 도구는 없습니다ㅋㅋ

  20. 이상한 2009.11.12 1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동기들은 이야기 한다는거 너 내옆으로 오지마
    냄새나 꺼져 이런 반응 일껄요 ^^

  21. 사토자키 2009.11.14 0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양반 완죠니 작가네. 아까 달마도 웃기더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죤 웃겨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