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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09 독일에서 여권위조범으로 오인받은 사연 (20)

2004년 겨울, 친구(남자)와 유럽여행을 떠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독일의 OO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친구(여자)와 만나기로 했는데, 배고픈 배낭여행자에게 휴대전화가 있을 리 만무하였고, 친구와 이메일을 통해 'O월 O일에 OO역에서 연락할께~'라고 약속을 한 상태였지요.

▒ 노숙인들과의 따뜻한 시간

오전 7시쯤 약속한 역에 도착했지만, 이른 아침부터 연락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 1~2시간 기다렸다가 연락을 하기로 하고 쉬어갈 곳을 찾았습니다. 추운 겨울이어서 자리를 물색하다 보니 칸막이가 있는 조그만 승객 대기실을 발견했는데...

바람도 막을 수 있고,... 현지 노숙인 분들이 빼곡하게 누워계셔서...;;; 따...따뜻...할 것 같았습니다.

"배낭여행인데 찬밥 더운밥 따지냐, 이런 것도 좋은 경험이다." 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잠들어있는 노숙인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침은 먹어야 하니까 가방의 식빵과 잼을 꺼내 펼쳐놓고, 빵에 잼을 바르고 있는데 어느샌가 초록색 제복의 독일 경찰 두 명이 입구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반팔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습니다만...)


영화에 나오는 나쁜 이미지의 덩치 큰 독일 경찰(게슈타포?), 딱 그 모습이었어요.
경찰들은 약간 주저하면서 우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도 노숙인 틈에서 빵에 잼을 바르는 두 명의 동양인들이 이상해 보이긴 했을 테니까요.

경찰의 등장이 내심 마음이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쿨한척 노숙인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자다가 깨어난 노숙인들에게 봉변(빵을 뺏긴다든가...ㅋ)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경찰들은 괜히 노숙인들을 살펴보는 척 주변을 서성거리다 머쓱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여권 좀 보여줄래?"

우리는 왜 그걸 인제야 물어보느냐는 듯 여권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의 여권을 보던 경찰들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여권의 두께를 비교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지만, 우리는 꿀릴게(?) 없었기 때문에 빵에 잼을 발라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
제 친구는 당시 ROTC 장교임관을 앞둔 상태라 군미필자로 단수여권을 발급받은 상태였고,
저는 병역을 마친 후여서 5년 기한의 복수여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 단수여권? 복수여권?

☞ 더보기 클릭!



당연히 제 복수여권은 친구의 단수여권보다 페이지 수가 많았지요.
경찰들은 우리가 가진 여권의 장수가 다르다며 여권을 훼손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영어로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난 군대를 다녀와서 여권이 5년짜리인데, 얘는 아직 군대를 안 가서 일회용 여권이야. 그래서 페이지가 차이가 나는거야."
"응? 그게 말이 돼?"
"음,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한국 정부가 그렇게 하는걸 어떡해."
"그럴리가 없어. 너도 한국인이고, 너도 한국인인데 여권이 다른건 이해할 수가 없어. 위조 여권이거나 훼손된 여권 같은데?" (<- 그럴듯한 논리. 공감할 뻔 했음.)
"아냐, 아냐. 잘 봐봐. 훼손된 흔적이 없잖아."

경찰들은 종이가 접히는 안쪽 부분을 찬찬히 살피며 여권이 훼손된 흔적을 찾았습니다만 너무나 멀쩡한 여권 때문에 우리는 '여권을 정교하게 위조한 서투른 여권 위조범'이 되어 경찰서까지 가게 됐습니다.


▒ 독일 파출소

경찰서에는 직원들이 막 출근을 시작하고 있었고, 우리는 안쪽에서는 문이 열리지 않는 경찰서 대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떨리기도 했지만, 잘못이 없으니 곧 처리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경찰서 내부의 게시물도 찬찬히 둘러보고,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구텐 모르겐!' 하고 어설픈 인사를 건네며 최대한 쿨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습니다. 셀카도 찍었지요.ㅋ (메모리카드 에러로 다 날림..ㅠ)

게슈타포를 떠오르게 하는 커다란 덩치의 경찰서 직원들은 출근하면서, 우리를 한 번씩 쳐다보고 지나가며 한마디씩 했습니다.

"얘네들 뭐야?"
"어. 한국인들인데 여권 위조범 같아. 한 놈은 군인이었고, 한 놈은 곧 육군장교가 된대."
"뭐? 이런 조그만 애들이 장교가 된다고? 푸하하. 근데 뭐 이리 편하게 있어?"

대충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경찰들은 한국 대사관에 전화하여 알아보겠다고 했는데, 마침 설날이어서 한국 대사관도 휴무일이었습니다. (흐헝헝..) 기다리고 있을 친구에게라도 연락해서 유창한 독일어로 설명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지만, 이런 비참한 모습으로 도움을 청하기에는...남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겠다!'

쿨한척 있고 싶었지만 초조한 마음으로 하릴없이 대사관의 연락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무혐의!!!! 석방!!!! 친구보고 두부 사오라 그래!!!!

오전 9시쯤 되어서 대사관 당직직원과 연락이 되었고, 이상 없는 여권임을 확인하고서야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권을 받아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한 줄의 문구!

"이 여권은 총 48면임 This passport contains 48 numbered pages."

"야, 이거 봐. 여기 이렇게 쓰여 있잖아!"

그러자 나를 더욱 허탈하게 만드는 그 경찰의 말.
"응, 안그래도 너희 대사관에서도 맨 뒷페이지를 확인하라고 해서, 나도 그걸 봤어. 잘 가~!"

'흑흑, 문이나 열어 줘...'

여권의 맨 뒷면에는 해당 여권이 몇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는지 적혀있습니다.
아마도 단수여권, 복수여권 제도 때문에 저처럼 '여권위조범'으로 오해를 받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겠죠?
혹시라도 이런 일을 당하실 땐, 여권 맨 뒷페이지를 보여 주세요..!
(유니폼을 입지 않고 경찰을 사칭하는 사기꾼에게 여권 소매치기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구요~^_^)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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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Reignman 2009.12.09 08: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일에는 단수여권이 없나봐요. ㅎㅎ
    해외에 자주 안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일회용 여권이 딱인데..
    재밋는 사연입니다. ㅎㅎ

    • BlogIcon 맹태 2009.12.09 08: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Reignman님.

      네, 우리나라 이외에도 단수여권이 있는 나라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독일 경찰들은 확실히 이해를 못하더라구요.
      사실 그 경찰들 말대로 '병역필인지 미필인지'로 여권을 다르게 발급하는게 말이 안된다는 것도 공감이 가기도 하고...

      물론 우리나라가 징병제라는걸 모르니까 그랬겠죠..?

  2. BlogIcon 丹良 2009.12.09 0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네요~~~~
    저도 여권들고 이곳저곳 많이 가봤지만....
    여권이 총 몇페이지인지 처음알게 되었습니다...ㅎㅎ

    • BlogIcon 맹태 2009.12.09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丹良님. (한문 맞죠?ㅋㅋ)
      여권 페이지는 종류별로 다르니까 맨뒷장을 확인하세요~
      제 여권은 전자여권 발급되기 직전의 여권인데 48장이네요.^_^

  3. BlogIcon 커피믹스 2009.12.09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쿠야 큰일 날뻔 했군요
    고생하셨어요. 그게 여행의 묘미아니겠어요.

    • BlogIcon 맹태 2009.12.09 0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 안녕하세요 커피믹스님
      맞아요. 처음엔 저런 상황들이 두렵고 떨리고 그랬었는데, 나중에는 '에이~ 사람 사는거 뭐 다 똑같지~' 하는 생각에 잘못이 없는 경우에는 당당하려....노...노력...하고 있습니다...;;;

  4. BlogIcon Phoebe 2009.12.09 09: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 여권인줄 오해 받았다는 분도 계시던데요.ㅎㅎㅎ
    왜 하필 노숙자 무리에 껴계셨어요.ㅎㅎㅎ
    그래도 금방 나오셨으니 웃을수 있는 추억이지요.^^.

    • BlogIcon 맹태 2009.12.09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피비님
      외국인들한텐 한국이라고 하면 북한인지 남한인지 물어보더라구요..
      하긴 저도 어렸을 땐, 아프리카라는 나라가 있는줄 알았으니까요.ㅋㅋ

  5. BlogIcon 달콤시민 2009.12.09 10: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저도 올해 독일여행을 다녀왔는데요, 독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딱딱하고 빠른 독일어로 계속 저에게 가방을 열으라고, 영수증을 보이라고, 이 영수증을 설명하라고.. 하는데.. 제 뒤엔 사람들이 줄 서있고 말은 못하고 얼굴은 빨개지고..
    15년 로망 독일여행, 독일 도착하자마자 서러워서 울뻔했어요.. 흑흑 ㅜㅜㅜㅜㅜ
    (사실은 나라망신시키진 않았을까 걱정이...ㅋㅋ)

    • BlogIcon 맹태 2009.12.09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달콤시민님.
      한국말로 설명해 버리지 그러셨어요.
      독일 경찰들 덩치가 커서 그런지 왠지 좀 사람 위축시키는 능력이 있는거 같아요.ㅋ

  6. 엘쥐맨 2009.12.09 1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일車는 왜 세계시장에서 가장 좋은 차로 인정받을까요? 그거 아시는 분????

    • BlogIcon 맹태 2009.12.09 10: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엘쥐맨님.
      그거 아시는 분이 과연 이곳에 댓글을 남겨주실지 모르겠습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차도 없거든요.

    • 맑은하늘 2010.01.01 16: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휴 잘보내고 계시죠. 아이들 목욕보내고 혼자 심심하네요. 참고로 딸들이라 집사람과만.. 독일차가 명차에 속하긴 하지만 종류별로 가기 다른 대접을 받고있죠. 명차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그런 차를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이 잘되어있어서 그렇습니다. 또 독일국민성이 기계류들을 직접 다루는데 재미를 아는 종족이라 차도 자가수리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물론 수리비가 비싸서 그렇기도 하지만.. 아우토반은 속도제한이 없는 구간에서는 도로가 아주 완만합니다. 오르막도 멀리서부터 서서히 오르게 설계되어있고 커브길도 우리나라처럼 급하지 않답니다. 자연스레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차를 만들수 있겠죠. 빠른차가 좋은 차냐고 하실 분들 계시지만 실제로 빠르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든 차가 좋은차 입니다. 빠르게 달린다는 말은 고속에서 안정성이 높다는 의미이고 또한 그 속도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운전자가 최대한 안전하게 지켜진다는 의미거든요. 아우토반에서 사고가 한두번 났겠습니까? 그런 데이터들이 모이고 모여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더 나은 기술로 발전시키는 것이죠. 자동차회사들이 고속주행용 트랙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그런 이유죠. 그냥 무난하게 타는 용도의 승용차들도 다 그런 식의 기술개발을 통해서 이루어진 결과물들이랍니다.

  7. BlogIcon 드자이너김군 2009.12.09 11: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하핫.. 이런.. 웃지못할 에피소드군요.
    근대 저도 여행을 몇번 다녔는데, 몇 페이지 짜리라고 적혀 있는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ㅎ

    • BlogIcon 맹태 2009.12.09 1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드자이너님.
      ㅋㅋ진작 알았으면 처음에 물어볼때 대답했을텐데 말이예요. 그래도 독일 경찰서(파출소) 구경 언제 해보겠어요.ㅋ

  8. BlogIcon 怡和 2009.12.10 0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로 당황스러우셨겠어요.
    외국에서는 단수나 복수제도가 거의 없나보네요.
    요즘에는 미필도 복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저도 아직 미필인데, 5년짜리 복수여권 사용중이랍니다.^^

    • BlogIcon 맹태 2009.12.10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怡和님
      (한문 찾느라 고생했어요..ㅋㅋ)

      아, 요즘은 미필도 복수여권 신청이 가능하군요!
      외국의 경우는 잘 모르겠는데..사실 의사소통도 잘 안되고..병역 때문인지 이해를 잘 못하더라구요.ㅋ

  9. 구텐 탁~ 2009.12.10 1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맹태님은 살면서 재미난 경험이 많으신거 같아요.
    그림도 재미나고 무슨 만화보는거같아요^^

    앞으로도 기대할께요!수고하세요~

    • BlogIcon 맹태 2009.12.10 14: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구텐 탁~님
      제가 포스팅한 것들을 다 보셨나봐요.ㅋ
      사실 제 포스팅에는 심오한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답니다..
      다시 한번 잘 살펴보시고, 깨달음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아, 물론 농담입니다...;;)
      감사합니다~

  10. Sonnim 2018.09.09 1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독일은 징병제 폐지 직전이었습니다. 1958년에서 2010년 3월 군번까지 독일에서는 징병제가 실시되었습니다. 독일읔 한국처럼 경찰 등 공무원이 대학을 졸업하고 3년간 노량진에서 공부한 다음에 임용되는 경우도 아니고 IT시스템이 사실상 없지요.한국처럼 널리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도 아닙니다. 니륙국으로 여러 나라와 연결되어 있어서 여권을 발급받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이제 많이 낙후되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