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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간에 개막전은 설레입니다. 여러 달 동안 경기를 볼 수 없었는데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 시즌 개막전 때마다 신들린 듯 팀을 이끌어주는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 선수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개막전에 맹활약을 펼쳤던 인상적인 선수들을 모아봤습니다.




2000년 현대 퀸란 vs LG 테이텀

3루수 수비가 발군이었던 현대 용병 퀸란은 원래 방망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타율이 높은 선수는 아니었죠. 그러나 한 방에 있어서는 시즌의 처음과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그는 개막전에서 1회 3점포, 2회 1점포, 2점포를 작렬하며 개막전 스타가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줬죠. 또한 한국시리즈 MVP에 뽑히며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더구나 현대-한화(대전)의 개막전은 양팀 스코어 17:10의 난타전이었는데 무려 14개의 홈런이 쏟아지며 역대 한 경기 최다홈런(종전 11개)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시즌 중에 퇴출되었지만 테이텀 역시 퀸란 못지 않게 개막전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사직에서 펼쳐진 롯데와의 개막 1차전에서 선제결승홈런을 포함해 전타석 출루에 3타수 3안타 2홈런 4타점의 괴력을 선보였죠. 테이텀의 맹활약에 힘입어 엘지는 12:5로 낙승을 거뒀습니다.

개막 2차전에서 13k 완봉승을 거둔 김진웅과 최다안타 신기록을 수립한 장종훈도 잘했지만 인상적인 면에 있어서는 두 용병 선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1년 삼성 마르티네스-이승엽 vs 두산 장원진-우즈

개막 1차전에서 이승엽과 마르티네스는 각각 2점홈런, 1점홈런을 터뜨리며 한화를 4:3으로 제압했는데, 이들 콤비의 진면목은 2차전서도 드러났습니다. 1회부터 만루홈런으로 시작한 마르티네스는 4회에도 3점홈런을 작렬하며 4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한 이승엽과 함께 12:3의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이승엽-마르티네스 홈런 커플은 훗날 대기록 수립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되었죠. 역대 최초로 4연속타자 홈런이라는 기록이 수립되었는데 그 주인공은 이승엽, 마르티네스, 마해영, 바에르가까지 4명이었습니다.

2번 장원진 - 3번 우즈도 대단했습니다. 해태와 잠실벌에서 펼쳐진 개막 1차전에서 우즈는 7회에 병살타를 기록하며 역전 기회를 날려버렸지만, 9회말에 끝내기 2점홈런을 작렬하여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냈습니다. 다음 날에도 우즈는 5타수 3안타 2타점을 과시하며 역대 최고 용병이라는 찬사가 허명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장원진의 활약이 있었죠. 1차전에서 2:3으로 뒤진 상황에서 7회에 동점 적시타를 날려 팀을 살려내며 5타수 2안타 2타점, 다음 경기에서도 5타수 4안타 3득점을 기록하여 테이블 세터로서 더 없는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2002년 한화 송진우 vs 기아 키퍼

송진우와 키퍼는 2002년에 다승왕 경쟁을 펼쳤던 사이입니다. 이 두 선수는 개막 3연전에서 나란히 인상적인 투구로 팬들을 기쁘게 했죠.

특히 2000~2001년 모두 개막전을 두산에게 내줬던 기아(전 해태)는 2002년만큼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왔습니다. 결국 두산과의 3연전을 모두 싹쓸이하며 지난 앙금을 씻어내는대 성공했죠. 그 중심에는 키퍼가 있었습니다. 야구에서는 다득점이 펼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1:0의 투수전도 묘미가 있습니다. 개막 2차전에 선발투수였던 키퍼는 1회말에 정수근-장원진에게 연속타자 안타를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으나 이후 22타자 연속 범타를 이끌어내어 8이닝 3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영원한 회장님 송진우는 키퍼보다 더 빛나는 투구를 펼쳤습니다. 8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최기문에게 안타를 맞기 전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롯데 타선을 봉쇄했습니다. 결국 2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하여 프로통산 7번째 개막전 완봉승, 개인적으로는 통산 10번째 완봉승을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이날 승리로 당시 선동열이 세운 146에 단 1승차로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2003년 기아 리오스-키퍼 vs 삼성 이승엽-마해영

2002시즌에도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한 기아는 2003년에도 개막 2연전을 모두 거머쥐었습니다. 그 1등공신은 바로 용병투수들이었죠. 리오스가 개막전에서 7이닝 8피안타 1실점으로 2003시즌 마수걸이 승리를 올린 뒤, 키퍼는 2003년에 이어서 또 다시 개막 2차전에서 6 2/3이닝의 호투를 펼쳐 연승행진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역시 용병투수가 맹활약을 하면 그만큼 경기가 쉽게 풀리는가 봅니다.

기아가 용병투수의 합작이 돋보였다면, 삼성은 토종 강타자 듀오의 방망이가 빛났습니다. 이승엽과 마해영은 각각 개막 1,2차전에서 닮은 꼴 활약을 펼쳤습니다. 개막전 첫날 이승엽은 절친한 친구인 박명환을 상대로 1회, 3회에 각각 연타석 투런포를 앞세워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면 다음 날에는 마해영이 구자운을 상대로 2회, 4회에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전 시즌 한국시리즈 MVP의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특히 개막 2차전에서 마해영은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의 활약으로 통산 10번째 2000루타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2004년 삼성 오리어리 vs 한화 송진우

기아-두산의 개막 1~2차전에 등판한 투수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기아를 거쳐 두산 유니폼을 입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죠. 개막 1차전은 리오스-키퍼의 대결이었고, 2차전에는 두산에서 레스가 등판했습니다. 기아(해태)에서 두산으로 옮겨간 순서는 레스, 키퍼, 리오스가 되겠군요.

2004년 개막전에 빛난 선수는 송진우가 있습니다. 전년도 한국시리즈 MVP인 현대 정민태와 맞대결을 펼친 그는 7이닝 무실점의 역투를 펼치며 4:1로 이겼습니다. 2002년 개막전을 연상시킬 만큼 호투였습니다. 4회까지 노히트 노런이었는데다 7회말까지 단 2안타만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투를 펼쳤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그는 다음 시즌(2005년)에도 개막전 선발투수로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또 다른 개막전의 영웅은 삼성의 용병 오리어리였습니다. 개막전에서 3회에 좌전안타를 날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데 이어 3:4로 뒤지던 7회에 동점홈런을 터뜨리며 제 몫을 해냈습니다. 다음 날 경기에서도 비록 팀은 패했지만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3타점을 책임지며 개막 2연전에서만 3홈런을 폭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활약은 오래 가지 못한 채, 결국 퇴출되고 말았죠.


2005년 삼성 심정수 vs SK 김재현

2004시즌을 마친 뒤 최고의 이슈는 삼성의 100억 FA선수 영입(심정수, 박진만)이었습니다. 2005년 개막전부터 심정수의 위력은 여지 없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미 개막 1차전에서 3타수 3안타 1타점으로 방망이 솜씨를 가다듬었던 그는 개막 2차전 1회에도 그랜드슬램을 기록하며 거포의 위력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각인시켰습니다. 개막 2연전 동안 심정수가 기록한 8연타석 출루(5타수 5안타 5타점)는 신기록이었습니다.

심정수와 동갑내기이자 FA 자격으로 이적한 김재현은 새로운 팬들에게 맹타로서 첫 인사를 보냈습니다. 1차전에서 SK는 현대를 상대로 비록 5:5로 비겼지만 1홈런을 비롯해 6타수 2안타 3타점을 폭발한데다 2차전에서도 2:2로 동점이던 상황에서 승부의 균형을 깨는 우전적시타를 터뜨려 결승점을 만들어냈습니다. 개막 2연전에서 10타수 4안타 4타점을 작렬한 김재현은 이적 후에도 역시 '클러치히터', '캐넌히터'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94년 우승을 경험했던 그는 각서파문 끝에 팀을 옮기고 2007년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기도 했죠.






2006년 SK 시오타니 vs 삼성 권오준-오승환

시범경기부터 이목을 끌었던 일본인 용병 시오타니는 불행히도 KIA전에서 장문석의 투구에 맞아 왼손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퇴출되고 말았죠. 그러나 개막전에서 보여준 그의 맹활약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문학에서 펼쳐진 현대와의 개막전에서 4회말에 선제 2점홈런으로 결승타를 기록한 데 이어 다음 날 2차전에는 끝내기홈런을 포함해 무려 5타수 3안타 4타점을 쏟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죠.

2006년은 KBO 역사상 최다홀드(32홀드), 최다세이브(47세이브) 신기록이 수립된 시즌입니다. 1차전에서 패한 삼성은 5:5로 팽팽했던 6회말에 선두타자 박한이의 결승홈런이 터지자 권오준-오승환이 마운드에 올라 롯데 타선을 제압하고 시즌 첫 승을 생겼습니다. 권오준-오승환의 철벽계투 콤비는 2006년 삼성의 아이콘이었을 뿐만 아니라 '삼성은 6회까지만 야구하면 된다'는 공식을 만든 장본인이었는데, 그 효시가 개막 2차전이었습니다.


2007년 롯데 손민한 vs KIA 장성호

2001이후로 당시까지 6년간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한 설움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선봉이 서겠다고 공언했던 손민한은 현대를 상대로 한 개막전부터 롯데의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8이닝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를 펼친 그는 팀의 주장이자 에이스로서의 자존심도 세웠습니다. 첫 단추를 잘 풀어낸 롯데는 장원준, 이상목이 잇달아 선발승을 챙기며 현대와의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롯데에 손민한이 있었다면, 기아에는 장성호가 있었습니다. 1차전에서 LG 박명환의 호투에 힘입어 1차전을 내준 기아는 장성호를 앞세워 2,3차전을 내리 이겼습니다. 2차전 1:0으로 앞선 3회에 2점홈런을 작렬하며 승기를 잡았고, 3차전에서도 2:1로 박빙이던 7회에 또 한 번 2점포를 가동하여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2008년 롯데 이대호 vs 삼성 철벽계투

이대호의 방망이가 롯데의 개막 2연승을 이끌었습니다. 1차전에서 5타수 4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11:1의 대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2차전에서는 1회에 선제적시타를 날린 뒤 3회에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이틀 동안 무려 9타수 7안타 6타점의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2007년에도 3연승으로 개막전을 시작한 롯데는 2008년에도 2연승으로 쾌조의 출발을 보였는데, 투타에 손민한, 이대호라는 확실한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롯데와 함께 2연승의 주인공이 된 삼성은 철벽계투진의 활약이 컸습니다. 권혁, 안지만, 오승환이 이틀 연속 호투쇼를 펼쳤던 것이죠. 1차전에서는 3 1/3이닝 무실점, 2차전에서는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의 지키는 야구는 선동열 감독이 삼성에 취임한 이후 마무리 오승환을 중심으로 권혁, 안지만, 정현욱, 권오준이 나누어맡아 이뤄온 팀 컬러입니다.


2009년 두산 김동주 vs 롯데 김주찬

기아와의 잠실 개막전을 싹쓸이한 두산의 1등 공신은 바로 김동주였습니다. 양 팀 에이스 김선우와 윤석민은 4회까지 1:1의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습니다. 먼저 무너진 쪽은 기아였습니다. 선발 윤석민이 5회에 2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하는가 싶었는데 이종욱, 오재원에게 연속안타, 고영민에게 4구를 허용했죠. 2사 만루에 등장한 김동주가 싹쓸이 2루타를 터뜨리며 승부를 뒤바꿔놨습니다. 이후 김현수, 왓슨의 적시타마저 연달아 터진 바람에 승부는 거기서 끝났죠. 2차전에서도 김동주는 2:1로 간신히 앞선 8회에 승부에 쐐기를 박는 1타점 2루타를 날리어 간판타자로서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개막 2연전 1승 1패를 거둔 롯데의 김주찬은 승패에 관계없이 독야청청했습니다. 1차전에 1번타자로 출전한 그는 투수 앞 안타를 터뜨린 뒤 조성환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선취점을 올렸고, 7회에는 역전 결승 2루타를 날리어 3:2로 짜릿한 승리의 영웅으로 우뚝 섰습니다. 다음 2차전에서 그의 소속팀 롯데는 1:10으로 대패를 당했지만 김주찬은 첫 타석 안타를 포함하여 4타수 2안타를 날리어 팀의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더 많은 개막전 야구 영웅들이 있었지만 모두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야구가 계속되는 이상 더 많은 개막전 영웅이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욱 기대되는 2010년 프로야구. 과연 어느 팀이 마지막에 웃게 될까요?

 

(사진 : 스포츠서울)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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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펨께 2010.03.28 1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야구를 구경한지도 한참이나 되였네요.

  2. BlogIcon 악랄가츠 2010.03.29 0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산전에 소녀시대가 시구하더니,
    엄청난 경기를 보여주며 이겨버렸네요! ㄷㄷㄷㄷㄷㄷㄷ
    소녀시대가 Oh를 부르며 응원하였으니...
    이길 수 밖에 없는 게임이었네요! ㅎㅎㅎㅎ



이곳은 故 임수혁 선수의 모교인 '봉천초등학교'입니다.
원래 그는 방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에 다이어트 삼아 운동을 하다보니
결국 5학년 때 야구부가 있는 봉천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사이에도 그의 모교에서는 후배 야구선수들이 맹활약하고 있었고
또 다른 후배들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운동장을 거닐며 故 임수혁 선수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노라니
가장 기억에 남은 3경기가 떠올랐습니다.


▲ 스포츠조선 2000년 4월 19일자



1999년 플레이오프 최종 7차전 (대구) - 기적 같은 대역전극의 초석이 되다

1승 3패로 몰린 롯데가 내리 2연승을 하며 최종 7차전을 맞이했습니다.
이승엽, 김기태, 김종훈의 홈런을 앞세운 삼성이 5:3으로 앞서고 있었죠.

2점차 뒤진 9회초를 맞이한 롯데.
공필성의 안타로 회생의 불씨를 살린 뒤 임수혁이 대타로 들어섰습니다.

임수혁은 바깥쪽 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른 뒤,
무언가 직감한 사람처럼 두 팔을 번쩍 들며 1루로 달려갔죠.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홈런!!!

이 동점포에 힘을 얻은 롯데는 연장전에 터진 김민재의 적시타에 힘입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동점홈런의 가치가 높았던 것은 상대투수가 최고의 마무리 임창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플레이오프 경기'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야구팬들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새긴 임수혁은 타격에 소질이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공격형 포수로 호쾌한 방망이를 과시하던 그가 그라운드를 떠난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이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무척 슬프군요.

과연 그가 쓰러진 당일,
무슨 일이 있었길래 팬들이 좋아하는 한 선수를 하늘 나라로 보내야 했던 것일까요?



▲ 스포츠서울 2000년 4월 19일자



2000년 4월 18일 (잠실) - 돌아오지 못한 그라운드

임수혁의 소속팀 롯데는 LG를 맞아 잠실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2회초에 유격수 유지현의 실책으로 출루한 임수혁은 우드의 안타 때 2루를 밟게 되었죠.
7번타자 조경환의 타석 때 갑자기 쓰러진 그는 더 이상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병상에 눕기 전까지 임수혁은
1992년 부정맥의 판정과 함께 운동을 해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심장질환약을 복용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쓰러진 뒤 5분 안에는 누군가에 의해 심장 마사지가 시행됐어야 했는데
10분이 넘도록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이른 것이었죠. 
이후 임수혁은 10년간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 스포츠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습니다.
임수혁의 부친인 임윤빈씨의 "제 2, 제 3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당부에 걸맞을 만큼
당직의사제도를 비롯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쨌든 이 사고 후 며칠 간 경과를 보니 더 이상 임수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됐구나 싶었습니다.



▲ 일간스포츠 2000년 4월 19일자 (당시 분위기와 열악한 야구 환경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대구) - 꿈에서라도 통했다면

2002년 한국시리즈(삼성-LG)는 작년 한국시리즈(기아-SK)와 더불어서
역대 한국시리즈 가운데 가장 극적인 명승부로 기억합니다.

특히 최종전(6차전) 9회말을 시작할 때까지 9:6으로 엘지는 승기를 잡고 있었고 
삼성은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이승엽의 3점포와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시리즈 기간 동안 맹타를 휘두른 마해영은 MVP에 선정됐습니다.

"(임)수혁이 형이 병상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운동을 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극적인 끝내기홈런을 날린 마해영의 소감 중 한 구절입니다.
(당시 삼성은 마해영의 맹활약 덕분에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습니다.)

최종전 전날 임수혁의 꿈을 꿨던 마해영은 아침에 일어난 뒤
좋은 징조라 생각하며 그라운드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역대 손꼽히는 한국시리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낸 주인공이 됐던 것이죠.



▲ 역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끝내기홈런을 작렬한 마해영 -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임수혁과 마해영은 대학(고려대), 상무에서 한솥밥을 먹은 절친한 선후배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롯데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팬들은 이들을 두고 '마림포'라고 불렀습니다.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에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고
선수협 문제 등으로 마해영은 삼성으로 이적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마림포를 볼 수 없게 되었죠.

그래서 2002년 한국시리즈 MVP가 된 마해영의 소감이 더욱 인상 깊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수혁 선수가 병상에서 일어난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 궁금했지만
이제는 영영 아무 말도 들을 수 없게 되었군요.



▲ 월간 베이스볼 1998년  


임수혁은 1998년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돌아봤을 때 가장 불만스러운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야구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것."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자상한 가장이었다고 합니다.

사고가 났던 당일, 상경하기 전에 임수혁은 스킨로션을 사기 위해 부인과 함께 백화점을 들렀습니다.
모처럼 데이트의 분위기를 즐겼던 그는 부인에게 "일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해서 미안하다"며
"원정경기를 마치면 모처럼 다 함께 영화 한 편 보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때가 의식을 갖고 있던 임수혁이 부인과 함께 했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경기장에서의 비보를 들게 된 부인은 아이들에게 차마 아빠의 슬픈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아빠가 멀리 전지훈련을 떠났다"며 둘러댔다고 합니다.



▲ 손문상 화백의 <얼굴> 중 '돌아오지 않는 주자 임수혁' 편
(지난 7일 이 그림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글귀가 새겨졌더군요.)



이후 10년간 병상을 지키고 살림살이에 육아까지 맡아
고생만 한 임선수의 부인과
그 고통을 함께 안은 가족들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지더군요.


임수혁이 병상에서 일어나 그라운드를 누비길 기대했던 
많은 야구인들과 팬들의 바람도 이제 물거품이 됐습니다.

'제 2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 '제 1의 임수혁'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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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9 15: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치료가 조금만이라도 빨랐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정말 안일한 야구의료체계에 한숨만 나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09 16: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은 말씀입니다.
      응급처치라는 건 시각을 다투는 거라
      사고가 터지고 5분 안에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데.
      아직 우리 나라는 멀었다는 느낌입니다.

      야구장 문제도 그렇고.
      전담의사제도도 제대로 시행되는 건 광주 밖에 없다고 하고.

  2. BlogIcon 커피믹스 2010.02.09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포츠에 무지한 저는 그런 사연이 있는줄 몰랐네요
    안타깝습니다. 응급처치만 했어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10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 발인을 했다는데,
      이제 병상의 모습조차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민방위 훈련 가면 응급처치에 관한 부분을 교육받는데
      임수혁 선수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최근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아이폰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습니다.
출시일을 예측하는 기사만으로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정도였지요.


(출처: 내가 그림, 애플사의 로고와 관련한 모든 권리는 애플사에 있습니다.)
애플의 예전 로고, 요즘은 입체적이고 세련된 모습으로 바뀌었지요.
과연 한입 베어먹지 않은 온전한 사과였다면..애플의 이미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_^


▒ 도대체 iPhone 이 뭐길래?!! Apple 이 뭐길래!!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이폰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아이폰이라는 조금 특별한 휴대전화보다 애플에 열광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금 특별하다는 이유로 열광한다면..굳이 아이폰이 아니어도 상관 없겠죠..?)

애플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의 차원을 넘어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애플의 이미지에 열광하는 것이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애플에 대한 신뢰라고 할 수 있겠죠.
LC475, 넌 여전히 깜찍하구나...
 
제가 처음으로 애플을 접한 것은 LC475라는 모델명의 매킨토시 컴퓨터였습니다.
정말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매킨토시 입문' 같은 책을 보며 그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할까요? ^^;;;)
매킨토시 관련 서적들에는 '매킨토시는 꿈이 있는 컴퓨터' 같은 문구가 가득해서 왠지 매킨토시가 한대 있으면 정말 내 꿈이 모두 이루어질 것 같았거든요. (매킨토시를 갖는 것이 꿈이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LC475를 연모하던 마음은 사춘기 소년의 열병처럼, 재키림이라는 VJ가 광고하던 매직스테이션을 사자마자 사라져 버렸지만요.ㅋ

그리고 애플을 접했던 적이 언제였던지..
아!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온 애플의 로고를 보고서, 책까지 사서 공부(?)하던 매킨토시를 떠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 애플 컴퓨터의 꿈..? 무슨 꿈?

1984년 1월 22일, 미국 슈퍼볼 중계 때 방영된 애플의 광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같은 암울하고 통제받는 사회를 거부하는 의미라고 합니다. (60초에 50만불!!)


왜 애플에는 꿈이 있다고 했을까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해서 어이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애플의 개발자들이 "쓰기 쉬운 컴퓨터,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컴퓨터, 정보를 나누며 서로 돕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컴퓨터"를 만들고자 하는 이상(理想)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GUI(Graphic User Interface)는 정말 획기적인 발상이었지요.
마우스를 움직여, 그림으로 표현된 파일을 실행시킨다는 개념 자체가 새로운 것이었으니까요.
지금이야 말을 못하는 아기들도 마우스를 붙잡고 게임을 한다고 하는데, 애플이 아닌 호환 PC(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입니다)는 주로 명령어를 일일이 타이핑하는 MS-DOS 기반이었거든요.


▽ 더보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용하기 편한 컴퓨터'를 만들려는 개발자들의 '꿈'이 있다고 하지 않았을까요?
"Windows XP를 쓰느냐, Vista를 쓰느냐"의 고민을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먹을까?"라고 비교한다면,당시의 "애플(매킨토시)를 쓰느냐, IBM PC를 쓰느냐"의 고민은
"짜장면을 먹을까, 짜파게티를 먹을까?"에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선택이 어렵다는 점에서 비교해 보았습니다. 전 짜파게티도 좋아하거든요.ㅋ)

젊은 이상주의자들이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그 열정이 애플이라는 회사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제품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물론, 중간 중간 그런 흐름이 끊겼던 적도 있었지만요.)



▒ 내가 애플에 열광하는 이유

사실 애플의 매킨토시 개발자들이 품었던 그 꿈은, 금속재질로 멋있게 빛나는 요즘의 맥에서 느끼기는 좀 힘든 것 같습니다. 애플스토어에서 볼 수 있는 맥북에어나 iMac에서 젊은이들의 열정보다는, 부족할 것 없는 세련된 도시 남자의 모습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커피숍에서 컴퓨터 하는 세련된 도시남자 이미지....??

요즘들어 불고 있는 아이폰 열풍은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얼리어답터의 이미지이죠.

공통점은 있습니다.
예전의 매킨토시가 IBM호환 컴퓨터와는 다른 독특한 디자인과 OS를 갖고 있었던 것 처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앞선 무엇인가를 소유했다는 자부심이라고 할까요? (애플 매니아분들께서는 연대의식까지 느끼기도 한답니다. 예전의 MUG; 맥유저모임처럼 말이죠. 아이팟의 경우는 좀 흔하긴 합니다만..)

"디자인은 마케팅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네, 제가 애플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디자인입니다.
그냥 디자인이 아닌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죠.
그냥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이 아니라 '갖고 싶고, 나도 한번 써보고 싶은 디자인' 입니다.

애플 역시 A/S나 기술적 부분(이를테면 내장형 배터리)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그것을 감수하면서도 애플을 다시 선택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는 것도, 하루 이틀 만에 얻은 결과가 아닐 것입니다.

"애플은 역시..!"


▒ 대접받고 싶으면, 대접하라.

얼마 전, 출근길에 받은 무가지에서 국내 휴대전화 업계의 광고성 기사를 보았습니다.
제목이 "토종이 더 쎄네~!" 였는데, '토종'을 언급한 것 부터 아이폰에 대한 견제가 눈에 보이더라구요.
가격까지 인하하여 기존 구입자로부터 원성을 샀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검색하다보니 이런 기사도 있네요.
[기자수첩] 삼성전자, 아이폰 견제 백태 
(삼성측에서도 반박할 여지가 충분히 있는 기사이지만,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경쟁사에서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아이폰(애플)에 열광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Mac(컴퓨터), iPod, iPhone 등으로 심플한 제품군을 가진 애플과, 반도체부터 아파트까지 다양한 것을 취급하는 재벌기업은 그 깊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iPod 모델입니다..^_^

iPod만 있을때는 단순한 MP3 플레이어라고 여겨서 주력제품군인 휴대전화의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러면 옙이 섭섭할텐데..

우리 업체들도 세계 각지에서 애플처럼 든든한 지지층을 갖는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러기 위해서는 할 일이 참 많겠지만, 우선은 소비자들이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토종으로 대접받고 싶다면, 토종에게 더욱 잘 해야 합니다.
대접받고 싶으면, 대접해 주십시오.
기술력이 됐든, 감동이 됐든 말입니다.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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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White Rain 2009.12.03 0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제가 자다가도 아이맥. 세수 하다가도 아이맥. 밥 먹다가도 아이맥..하면서 그 열병을 앓고 있답니다.
    조만간 장만할 거에요.ㅋㅋ

    • BlogIcon 맹태 2009.12.03 0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흐헝헝헝...저도 아이맥...
      완전 갖고 싶어요..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 낡은 컴퓨터도 아이맥으로 바꿔드리고 싶어요..^_^

  2. 엘쥐맨 2009.12.03 0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슴다..국내기업 , 특히 샴쑝 정신차려야함다..ㅋㅋ

    • BlogIcon 맹태 2009.12.03 0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엘지도...열심히 하셔야겠죠...
      소녀시대까지 모델로 썼는데...판매가 부진한 것은 소녀시대 탓은 아니겠죠...ㅎㅎㅎ

  3. 오예 2009.12.03 09: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위에있는 한정판 빨강아이팟나노 저도 있지요.!
    아이팟은 갖고있어도 또 신모델이 나오면 갖고싶고..갖고싶고..그런거 같아요.ㅠㅠ
    아이팟미니도..나노도..터치도..있는데...이제 아이폰만 가지면 되는걸까요?ㅋㅋ
    애플사에서 보상판매가 되면 참..좋겠다는 생각.......

  4. BlogIcon 달콤시민 2009.12.03 10: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애플은 정말 그 디자인으로 워너비 ^^

    몇년 전에 여기 사진으로 올려주신 아이포드를 겟한적이 있었어요.. 엄청 자랑도 하면서 ㅎ 잘 썼는데 내장 배터리가 다 되더니 교체하려면 국내 mp3가격이 들더라구요 헉.. 그래서 그 뒤로 굿바이 하기 했는데 여전히 저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에요~

    국내 아이폰 출시 관련해서 엄청 화제와 이슈이긴 한데 사실 국내 제품들도 경쟁력을 함께 갖춰야할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국내 통신사와의 이해관계도 참 문제가 많았죠.

    암튼 기존의 관행을 깨줄 애플의 앞으로를 기대합니다~! ^^

    • BlogIcon 맹태 2009.12.03 1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달콤시민님.

      맞아요, 배터리 교체가 아이팟의 가장 큰 문제 ㅠㅠ
      어떻게 생각해보면 애플에서도 그걸 노려서, 새 제품 구매로 연결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어쨌거나 애플은 아름다워요....

  5. 오잉 2009.12.03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아이폰은 보기만해도
    사용하고싶어지는 디자인이에요 침넘어간다는~-_-;ㅋㅋㅋ
    저는 요금제때문에 고민해도 아이폰만보면 정말 너무사고싶다는ㅠㅠ
    이기회에 삼성이 정신좀차렸으면좋겠네욯ㅎ

    • BlogIcon 맹태 2009.12.03 12: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성뿐만이 아니죠..

      국내 기업들 언론 플레이로 위기를 넘기는 것은...
      이제는 인터넷 발달로 이런 것도 잘 통하지 않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행인 것 같네요.

      특별히 언론플레이 안해도 사람들 관심 끄는 애플이 대단한것 같애요.

  6. BlogIcon julian 2009.12.03 11: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블로그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7. BlogIcon i-on-i 2009.12.03 1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는 광고나 언론 플레이만으로는 승부 할 수 없다는것을 인지해야할 시간이 아닐런지요?
    끝까지 광고와 언론으로 무마시키려고 한다면 소비자들은 점점 대기업 제품들을 멀리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된 제품을 가지고 정정당당히 싸울 생각을 하지 않는 대기업들에게 소비자들의 힘을 보여줄때가 아닌가 합니다.
    아직까지도 삼성의 광고성 기사가 엄청나게 나오는군요..ㅡ,.ㅡ

    • BlogIcon 맹태 2009.12.03 1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i-on-i님.

      맞아요. 정말 기술력으로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기업문화가 정착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 기업들의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더욱 많아질텐데 말이죠..

  8. BlogIcon Phoebe 2009.12.03 1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울 남편한테 아이폰 보다 삼성 옴니아가 더 좋다고 우겨서 울 남편 옴니아 쓰는데...
    그냥 알아서 사게 놔둘걸 그랬나보네요.ㅎㅎㅎ

    • BlogIcon 맹태 2009.12.03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피비님, 저도 글은 썼지만 옴니아나 아이폰을 사용 못해봐서.
      전 개인적으로 전화기는 전화기의 용도에 충실한게 좋다고 생각해서 아이폰도 그닥 마음에 들진 않는답니다.
      그냥 아이팟 사용하면서 만족할래요~

  9. 이상한 2009.12.03 14: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팝 최신 mp3를 사려고 했지만 가격이 ㅜ.ㅜ

  10. BlogIcon 502 2009.12.03 2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슈퍼볼 광고 동영상 링크 해놨습니다. 참고하면 좋을것 같군요.
    스틸컷이랑은 느김이 확연히 틀릴테니요..
    http://blog.daum.net/web502/4226943

    • BlogIcon 맹태 2009.12.04 07: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502님.
      감사합니다.
      광고분야에서도 아주 유명한 광고이죠.
      애플은 정말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기업 같아요.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11. 애플 2009.12.04 01: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플이 소스공개만 했어도 세계적으로 안정된 OS를
    모든 프로그램과 호환해서 잘쓰고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IBM이 소스 공계로 많은 컴퓨터 회사들이 호환기종을 선보이고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윈도우라는 불안전한 OS를 써왔습니다.
    맥OS에 써본 분들(아무래도 그래픽관련분야의 분들이 많겠죠?)은
    윈도우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잘 아실겁니다..
    지금 윈도우7이 나와서 안정적이고 빠르다고 하는데 비스타보다는 나은것
    같습니다..하지만
    아직도 안정적이고 빠른 OS는 맥OS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애플에서 폰을 만들어서 그속에
    안정적인 OS와 웹프로그램으로 3D까지 잘 조화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화로움으로 창조된
    아이폰이 나왔으니 당연히 사랑받을수 밖에 없겠죠?
    또한 소비자를 봉으로 알고 스펙다운시키고 요금과다하게
    쓰게 만드는 이통사와 제조사의 마케팅과는 좀 다른 부분도
    한몫할수있었겠죠...

    • BlogIcon 맹태 2009.12.04 0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애플님.
      완전 공감합니다.
      저도 어서..자금을 마련해서 맥을 사용해보고 싶은데..
      가끔 길가다가 거리에 설치된 광고판에 윈도우 오류 화면 떠있는거 보면 ㅋㅋㅋ
      IBM이 소스를 공개한 것도, 애플이 소스를 공개하지 않은 것도 뭐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 안정적인 OS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부분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장문의 좋은 내용의 댓글 감사합니다.^_^

  12. BlogIcon 엘고 2009.12.04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폰 웬지 같고싶어지네요~~매니아층이 많은가봐요 ㅎㅎ

  13. BlogIcon 보안세상 2009.12.04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은 단지 애플의 세련미에 취해서

    좋아하는 듯한 모습이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수많은 어플리케이션도 무시할 순 없지만

    디자인은 애플에게서 절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 같네요 ㅋ

    • BlogIcon 맹태 2009.12.05 2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포스팅 하면서 예전에 매킨토시의 그 아련한(?) 향수가 떠올랐어요.

      저 사진에 나온 책들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다시 봤는데, 의외로 오른쪽의 "왜 매킨토시인가"라는 책은 컴퓨터 업계의 판도를 꽤 비슷하게 예측했더라구요.

      재밌게 다시 보았습니다.ㅎㅎ

  14. BlogIcon 탐진강 2009.12.05 1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플은 문화와 디자인의 예술과도 같은 듯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입니다.
    문화란 곧 소프트웨어와 애플리케이션이 만드는 것 같습니다.
    우린 껍데기만 잘 만들잖아요.
    정부도 소프트웨어를 키울 전략을 만들어야 합나다.
    언제까지 삽질이나 하드웨어만 만들 건가요?

    • BlogIcon 맹태 2009.12.05 2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습니다!!!
      무언가 통일된 색깔이 있는 제품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제품에서 느껴지는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런 것..
      아, 이걸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진작 했었겠죠..ㅠ
      깊이 공감합니다.

  15. 국내폰 2009.12.05 20: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일 어이없는게
    스펙다운해서 들어오는 휴대폰들입니다
    어이가없어서 원...
    전 그거때문이라도 한국폰 쓰기 싫어지더라구요
    뭔가 차별받는 느낌 외국계기업은 자국이나
    외국이나 똑같은 사양이던대

    • BlogIcon 맹태 2009.12.05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비단 휴대폰 뿐만 아니라
      자동차는 그런 이유로 말들이 많잖아요.

      외국에선 기본사양으로 판매하는 것들이 우리나라에선 옵션 붙여야 하고..
      외국에서 거주하시던 분들은 그곳에서 국내기업 신차 구입해서(단, 한국내 생산된 것) 들여오는게 세금감면 받고 그러면 더 싸게 먹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억울하죠..ㅠ

  16. BlogIcon Mr.번뜩맨 2009.12.05 2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애플을 보면 베어먹은 사과처럼 형식적이지 않고 뭔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이미지가 많이 느껴집니다. ^ ^

  17. BlogIcon pennpenn 2009.12.07 11: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대체 아이폰이 뭐기에 이 난리들인지
    이제야 알겠네요~

    • BlogIcon 맹태 2009.12.07 12: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pennpenn님.
      주변에도 하나둘씩 아이폰을 구입한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아! 국내 아이폰 1호 개통자도 제가 아는 형님.ㅋㅋ) 정말 디자인에서 먹어주는(?) 것 같아요.
      1호 개통자 인터뷰를 보니 점파인증?을 받을 때, 휴대전화가 아니라 '복합기기'여서 검사비용이 엄청나게 들뻔 했다는 내용도 있더라구요.

      저도 좀 탐나긴 하는데....아직 지금 쓰는 폰 할부금도 끝나지 않아서.ㅋ

  18. 딩요 2009.12.22 17: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내기업들도 애플사와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할때인것같습니다
    기계를 팔때에 단순히 그 기계 자체를 파는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을 판다는 자세가 오늘날의 애플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가대항전으로서 용호상박인 한국과 일본이지만
그러나 양국 프로야구 우승팀 맞대결에선 2승 5패로 일본이 앞서있습니다.

하지만 경기에 따라 대한민국이 기대 이상의 경기를 한 경우도 있고
좋은 내용을 펼치고도 패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2000년대 한일 프로야구 우승팀 맞대결 정리)

1. 2005년 코나미컵 (삼성 vs 지바 롯데)

◎ 예선전 : 시구 김일융 - 시타 선동열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삼성

0

0

0

0

0

2

0

0

0

2

지바 롯데

3

0

0

1

2

0

0

0

X

6


양 팀 감독은 모두 10승 투수를 선발로 내세웠죠. 고바야시는 12승 6패(평균자책점 3.30)였는데 바르가스는 10승 투수이긴 했지만 함량 미달의 기량을 갖고 있었습니다. 중국전, 싱농(대만)전을 잡는데 주력하고 결승전을 노려보겠다는 심산임이 드러난 상태였죠.

경기 초반 지바 롯데의 기세는 무서웠습니다. 1번 니시오카의 3루타에 이어 2번 일본시리즈 MVP인 이마에가 적시타를 날려 간단히 선취점을 뽑았죠. 이후 프랑코, 사브로가 연달아 출루하며 다시 1점 추가한 상황에서 이승엽의 희생플라이로 3:0을 만들었죠. 4회에도 하시모토에게 1점홈런을 허용하는 등 바르가스는 5이닝 6실점을 기록했습니다. 때문에 경기 중반까지도 0:6으로 끌려가는 경기를 펼쳐졌죠.

다행히 바르가스 뒤에 나온 강영식-권오준-오승환-임동규가 호투 퍼레이드를 펼치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선발투수 고바야시에게 타선이 묶인 가운데 양준혁이 삼성의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0:6으로 뒤진 6회초 1사 2,3루에서 우전적시타를 터뜨려 2점을 쫓아갔거든. 안타수 10-8로 상대적 우세를 거두고도 패한 경기여서 아쉬움은 더했습니다.

경기를 마친 뒤, 선동열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승엽 타석에 오승환을 올린 것에 대해 TV 중계를 보고 있을 한국팬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맞대결은 결국 오승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초구 직구 뒤 변화구를 던져서 이승엽이 2루수 플라이로 물러났으니까요.

▲ 2006년 코나미컵 당시 모습. 삼성은 아쉽게도 05~06년 일본 우승팀에게 모두 패하고 말았습니다.


◎ 결승전 : 시구 - 장훈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니혼햄

0

0

0

1

0

4

0

0

2

7

삼성

0

0

0

1

0

0

0

0

0

1

중국과 싱농을 격파하고 다시 만난 삼성과 지바 롯데. 그러나 이번에도 지바 롯데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삼성은 이 경기에서도 안타수 13-6의 우세를 살리지 못하고 패했습니다. 결국 집중력에서 갈린 한 판이었죠.

삼성이 초반에 선취점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1회초에 1번 박한이의 2루타로 무사 2루 기회를 맞이했으나 강동우가 번트를 댄 것이 투수 정면에 가는 바람에 2루 주자가 3루에서 아웃되고 말았죠. 그런데 다음 타자 양준혁이 안타가 나왔으니 삼성으로선 얄궂은 흐름이었습니다.

찬스 뒤에 위기, 위기 뒤에 찬스라는 말처럼 위기를 넘긴 지바 롯데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1회에 프랑코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뽑았죠. 3회엔 베니의 2타점 적시타, 5회엔 와타나베의 2점홈런까지 집중력 있는 공격을 펼쳐 산발적인 공격에 그친 삼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선동열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배영수가 이기려는 마음이 너무 앞선 것이 패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4이닝 5실점은 결코 에이스다운 성적이 아니었죠.

안지만-강영식-권오준-오승환의 계투가 성공하자 반격의 기회도 찾아왔습니다. 9회초에 박석민이 안타와 상대실책으로 득점권에 출루한 뒤 박한이의 적시타로 1점을 쫓아갔고, 김종훈과 김한수의 안타를 추가하여 3:5로 좁혔습니다. 그러나 추격이 너무 늦은 게 문제였죠. 5번 김대익이 퍼시픽리그 구원왕인 고바야시에게 삼진으로 무릎을 꿇으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 2006년 코나미컵에서 해설자로 나선 이승엽. 박한이가 장난을 걸고 있는 모습이군요.

 

2. 2006년 코나미컵 (삼성 vs 니혼햄)

◎ 예선전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니혼햄

0

0

0

1

0

4

0

0

2

7

삼성

0

0

0

1

0

0

0

0

0

1

2005년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잡은 삼성. 그러나 지바 롯데와 만났을 당시보다 더 힘든 경기를 펼쳤습니다. 에이스 배영수가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한데다 무릎 수술 후 겨우 뛰기 시작한 심정수까지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죠. 2006년 한국시리즈는 4,5,6차전이 연장전으로 펼쳐졌기 때문에 2005년에 비해 삼성이 컨디션 면에서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가장 빛났던 것은 일본시리즈 MVP 이나바(니혼햄)이었습니다. 세기뇰이 여권 문제로 출전하지 못한 가운데 4번에 배치된 이나바는 4회초 2사에 선제 1점홈런을 터뜨렸고, 1:1 동점이던 6회초에도 역전 결승타를 날리며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날 승부처는 1:1로 동점인 6회초. 좌완 강영식이 좌타자 3명을 상대로 모두 실패하여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이후 등판한 권오준도 불을 끄는데 실패했죠. 밀어내기 볼넷과 적시타 등을 허용하여 점수가 1:5까지 벌어졌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강영식 투입에 대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구위가 좋은 권혁을 먼저 썼어야 했다는 이야기들이 쏟아졌으니까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선동열 감독은 "감독의 권한"이라고 못 박으며 투수교체 실패에 대해 일축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권혁은 2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쳤기 때문이죠.

삼성의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만팀 라뉴와의 경기에서 임창용이 2:2에서 린즈성에게 결승솔로포를 맞고 2:3으로 말았죠. 결국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하고 3위에 그쳤습니다.

▲ 2007년 코나미컵에서 sk는 예선전에 주니치를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3. 2007년 코나미컵 (SK vs 주니치)

◎  예선전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SK

0

0

0

1

0

2

3

0

0

6

주니치

0

0

0

0

0

0

2

1

0

3

창단 8년만에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린 SK는 코나미컵에 임하는 자세도 삼성 때와는 달랐습니다. SK는 삼성이 참가할 때보다 적극적으로 일본 타도를 외쳤습니다. 결실은 예선전부터 드러났습니다.

주니치는 우즈 등 몇몇 주력 맴버가 빠진 상황이었지만 SK는 첫 경기부터 강수를 뒀습니다. 삼성이 결승전에 주력하기 위해 예선전에 약한 선발로 탐색전을 펼친 것과는 대조적으로 SK는 첫 경기에 김광현을 투입했습니다. 주니치도 팀 내 최다승(14승) 투수였던 나카다를 투입했죠. 2007년 김광현은 시즌 중엔 큰 활약이 없었으나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 에이스 리오스와 맞대결에 승리하며 대형 신인다운 면모를 드러냈던 바 있습니다. 이 경기에서도 그의 상승세는 이어졌습니다. 6 2/3이닝 1실점으로 주니치 타선을 틀어막아 승리를 안겼습니다.

5회까지 SK 김광현은 무실점, 주니치 나카타는 1실점을 각각 기록하며 투수전 양상을 띄었습니다. 6회부터는 타격전으로 전환되며 SK는 6~7회에 5득점, 주니치도 7~8회에 3득점을 올렸죠.

이 경기에서 선취점을 올린 쪽은 SK였습니다. 김재현이 선봉에 섰습니다. 그는 4회에 선두타자로 나와 2루타를 날린 뒤, 이진영의 2루 땅볼을 주니치 1루수 아라이가 글러브에서 펌블하는 사이에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6회에도 우중월 2루타로 1타점을 추가하여 한국시리즈 MVP로서의 위용을 유감없이 과시했죠. 뒤이은 이진영의 1타점 안타와 8회에 터진 이재원, 이호준의 적시타를 각각 보태어 SK가 6:3으로 승리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이날 인터뷰에서 "일본에겐 지기 싫었다"라고 운을 뗀 뒤 "1차전을 잡아 목표를 50%는 일군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김광현의 1차전 기용에 대해서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1차전 선발로 뛸 테니 준비하라"고 지시했었다고 합니다.

▲ 2007년 코나미컵에서 레이번은 썩 만족스러운 투구를 펼치진 못했습니다.


◎ 결승전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주니치

0

1

0

0

2

2

0

0

1

6

SK

2

0

0

0

0

1

0

2

0

5

과연 결승전다운 명경기였습니다.

1회말에 정근우, 이호준이 볼넷을 골라 출루하며 만든 2사 1,2루 기회를 마련한 후, 이진영의 우전안타, 박재상의 좌전안타로 2점을 선취했습니다. 주니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SK 선발투수 레이번은 4회에 이노오우에게 허용한 1점홈런 외에는 역투를 펼쳤으나 5회 1사 후에 다네시게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준 뒤 흔들리기시작했습니다. 급기야 후지이가 동점 2루타를 작렬했고, 아라이의 땅볼 때 3루 주자가 홈을 밟아 2:3으로 역전이 됐습니다.

역전에 성공한 주니치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이번 코나미컵에서 큰 활약이 없었던 이병규의 방망이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던 것이죠. 6회에 선두타자 나카무라의 볼넷 이후, 좌측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작렬했던 것이죠. LG시절 한 때 사제지간이었던 김성근-이병규 두 사람에게 묘한 여운을 남기는 한 방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재일동포 출신으로 대한민국 프로팀 감독인 입장과 한국인으로서 일본프로야구에 몸담은 선수의 입장이 묘하게 교차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2:5로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지만 SK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6회에 김재현의 1점홈런과 8회 2사에 터진 이진영의 투런포에 힘입어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었죠.

운명의 9회. 주니치는 9회초 대타 우에다가 볼넷을 골라나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SK 구원투수 로마노가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이바타에게 중전적시타를 맞아 결국 5:6로 분패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패했지만 SK는 우리 나라 프로야구가 일본의 수준급팀과 겨뤄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그것을 증명한 2007년 코나미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2007년 코나미컵에서 주니치가 우승한 모습입니다. 이병규의 2점 홈런이 커보이는 경기였습니다.


4. 2008년 아시아시리즈 (SK vs 세이부)

◎ 예선전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세이부

1

0

0

0

2

0

0

0

0

3

SK

0

1

0

3

0

0

0

0

X

4

2007년 코나미컵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칼을 갈았습니다.

이번에도 SK는 단단히 준비하고 나왔지만, 선취점의 주인공은 세이부였습니다. 아카다의 우중간 2루타 이후 히라오의 선제적시타가 터졌던 것이죠.

그러나 SK에는 승운이 따랐습니다. 2회말에 선두타자로 나온 박재홍이 친 타구가 좌측 폴을 비켜나가는 듯했는데, 3루심이 홈런으로 판정을 했던 것. TV 중계 화면에서는 파울에 가까운 타구였습니다.

동점을 이룬 SK는 4회에 화력을 집중시키며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선두타자 이진영의 중전안타 이후 이재원이 친 타구가 좌측 폴을 강타했던 것이었죠. 이번엔 의심할 것 없는 확실한 홈런이었죠. 그리고 박재홍의 볼넷과 김강민의 중전안타로 만든 1사 1,2루 상황에 박재상이 좌전적시타로 1점을 추가했습니다.

이날 SK는 집중적으로 좌측으로 타구를 날렸는데, 특히 박재상의 좌전적시타 때에 2루 주자 박재홍이 다소 무리하게 홈을 팠던 것은 계산된 작전이었습니다. SK 전력분석원이 좌익수 쿠리야마의 어깨가 약하다는 것을 간파한 덕택이었거든요.

그러나 선발 김광현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5회에 2번 구리야마, 1번 히라오의 연속적시타를 맞고 4:3까지 추격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김성근 감독은 선발 김광현을 내리고 윤길현을 투입하여 급한 불을 껐습니다. 이후 양 팀은 치열한 계투작전을 통해 단 한 점도 추가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5회까지 나온 4:3의 점수가 굳어지며 SK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경기를 마친 뒤 김성근 SK 감독은 "상대 좌완선발에 대응한 타순이 맞아 떨어졌고, 불펜투수들이 제 몫을 다했다."고 평했고, 와타나베 세이부 감독은 김광현을 칭찬하며 동시에 박재홍의 홈런 판정에 대해 대만-중국 심판의 자질 문제를 거론했었습니다.

세이부와 텐진을 잡으며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꿈꿨던 SK는 대만 퉁이 라이온즈를 상대로 비기거나 2점차 이내로 패할 경우 결승행이 확정되었으나 뜻밖의 4:10 패배를 당하며 아시아 정상을 향한 도전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 양국 최다우승팀 간의 맞대결로 주목받았는데, 요미우리가 승리했습니다.


5. 2009년 한일클럽챔피언십 (기아 vs 요미우리)

◎ 단판전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요미우리

0

0

0

0

0

1

7

0

1

9

기아

1

0

3

0

0

0

0

0

1

4

주력 용병 로페즈, 구톰슨이 빠지고, 윤석민과 이용규가 군문제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에서 기아로선 고전이 예견된 한 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 출발은 기아가 좋았죠.

1회말에 볼넷을 골라 출루한 뒤 도루에 성공한 이종범은 나지완의 적시타로 홈을 밟아 선취점을 따냈습니다. 변화구를 강타한 나지완의 타구는 유격수 사카모토의 다이빙캐치에도 불구하고 중견수 마츠모토 앞에 당도했던 거죠. 5회말에도 4타자 연속안타로 2점을 추가하여 경기 초중반을 기아의 흐름으로 장식했습니다.

이런 타선의 지원에 힘입은 양현종은 날개를 단듯 호투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이날 좌타자를 상대할 때 주력으로 삼은 바깥쪽 직구는 구위, 구속, 제구 모두 일품이었습니다. 특히 요미우리는 6명의 좌타자가 나왔는데, 이승엽을 제외하면 모두 양현종에게 삼진을 당했을 정도니까요. (이날 이승엽은 좌중간 2루타 2개를 터트리며 이름값을 했습니다)

한 타순을 돌고 볼배합을 바꾸던 때에 빛났던 것은 양현종의 체인지업이었습니다. 이미 기가 눌려있던 요미우리 타자들은 직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순간 '짜잔~'하고 등장한 기습적인 체인지업에 제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경기 중반이 되자 전력투구를 한 양현종은 조금씩 구위가 떨어졌고, 이날 전타석까지 삼진 2개를 당했던 오가사와라가 중월 1점홈런을 내줬습니다. 결국 세 번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타격이었습니다.

여기서 홈런 맞고 바로 양현종이 강판된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바뀐 연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가 부상이 아니라면) 좀 더 길게 가는 게 어땠을까 싶었거든요. 불펜투수가 미덥지 못했다면 결국 선발에서 좀 더 끌어줬었야 하지 않았는가 라는 고민은 7회를 맞이하면서 더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7회초 선두타자 가메이를 필두로 무사 1,2루를 만들어준 것이 화근이었죠. 아베의 역전홈런, 라미네즈의 적시타 등을 포함해 타자 일순하며 무려 7점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아시아 최강 타선의 면모가 한 이닝에 드러난 것이었죠. 다른 한 편으로는 좌완 불펜투수가 부족했던 기아의 약점이 부각된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 KBO연감, 네이버 yourswiss님, sancorea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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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또준 2009.11.18 2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우승팀이 일본우승팀을 이긴건 스크뿐이네요.

  2. BlogIcon 보안세상 2009.11.19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게임은 잘하다가 갑자기 7점 주면서 무너진게 너무 아쉬워요 ㅠ

[ 전편을 보시려면 여기로 → 챔피언이 앉은 돈방석은 얼마짜리? (1) (바로가기) ]

"옛날에는 우승하면 얼마나 받았을까?"


지난 회에서 2000년대 우승팀의 돈잔치에 대해 다뤘었는데요.
이번 회엔 1980년대 챔피언은 어땠을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겠습니다.

▲ 2009년 우승팀 기아 타이거즈 (출처 : 기아 타이거즈)

올 시즌 타이거즈가 10번째 우승했는데, 타이거즈의 첫 우승은 어땠을까요?
해태가 첫 우승한 1983년에는 포스트시즌이 현재의 제도와는 달랐습니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없이 한국시리즈만 있었죠.
(1984년까지는 포스트시즌 = 한국시리즈였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983년 포스트시즌 입장수입 총액이 2억1천7백만원이었습니다.
2009년에 70억을 돌파한 것과 비교하자면 액면가로는 30배가 훨씬 넘게 차이가 나네요
.

당시 배당금 지급 규모는 이러했습니다.

1983년 우승-준우승 배당금
▷ 해태(우승팀) 2천8백만원
▷ MBC(준우승팀) 2천2백만원

그러면 83년 해태 첫 우승 당시 받은 배당금 2천8백만원이 어느 정도의 돈이었을까요?
현재의 물가와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 저 역시 궁금하더군요
그래서 당시 몇몇 물가의 예를 들어봤습니다.

■ 목동 아파트 (약 100㎡)
1983년 3천~3천5백만원
2000년 5~6억원

■ 월간 여성잡지
1983년 1,500원
2009년 10,000원

■ 정부 쌀 수매가격
1983년 약 5만6천원
2009년 약 14만7천원

비록 품목에 따라 당시와 현재의 가격변동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씀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품목에 따라 적어도 3~4배, 많게는 약 20배 가량 물가의 차이가 있다고 보이네요.

따라서 당시 해태가 차지한 우승배당금 2천8백만원은
지금으로 따지면 대략 3~5억원 규모의 가치가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그러면 1989년으로 가보겠습니다.

▲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모습 (출처 : OSEN 포토뉴스 "그래 나 돌팔이다!" - 해태 주치의 회고록 중)

1989년을 알아보는 것은 3가지 의의가 있습니다.

1. 현행 4강 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시즌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한국시리즈)
2. 해태의 4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을 당시라는 것
3. 올 시즌 우승팀인 타이거즈가 딱 20년 전에도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

포스트시즌 총입장수입
▷ 1989년 약 3억3천7백만원
▷ 2009년 약 70억5천만원

우승보너스 총액
▷ 1989년 해태 1억 3천~5천만원
▷ 2009년 기아 30~40억

대략 우승 보너스 규모가 20배 안팎의 차이를 보이는데요.
2009년 9월 소비자 물가지수를 100으로 봤을 때
20년전인 1989년 같은 월 물가 지수는 42.66이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근거한 소비자 물가지수 비교)

개인별 우승보너스 규모
▷1989년 해태 공헌도 A급 = 6백만원
▷2005년 삼성 공헌도 A급 = 1억원

삼성의 후한 보너스, 당시의 물가 수준 등을 고려했을 때
16년 이후의 일이지만 10배 가량 차이가 나는 금액이군요.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도 야구 선수들에 대한 처우가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와 비교해서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이 있는데요.
1990년대 이후에는 당연시 되어온 해외전지훈련을
당시 해태는 우승 보답 차원에서 약속을 내걸었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에는 해외를 드나드는 일이 요즈음만큼 빈번하지 않았습니다.
경제 상황이 지금과는 달랐던 때여서 해외전지훈련은 시각에 따라 외화 낭비라는 인식도 있었습니다.
1989년에 해외여행 자유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해외전지훈련도 차츰 보편화가 되었습니다.

※ 참고
국내에서 최초로 해외전지훈련을 시행한 구단은 삼성입니다.
1985년에 미국 플로리다에서 했었고, 당시 LA 다저스와 친선경기도 펼친 바 있습니다.


1980년대 우승팀 돈잔치에 관해선 이것으로 마칩니다.

다음 마지막 회에 1990년대 우승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2) 편에서 수치가 중심이었는데
1990년대편에서는 당시에 있었던 에피소드도 좀 더 추가해서 풀어가겠습니다.

다음 회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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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번 우승팀은 얼마짜리 돈방석에 앉게 될까?"

매년 우승팀이 결정될 때마다 야구팬들의 최대 이슈가 되는 이야기죠.

일단 우승 돈잔치라고 하면 항상 선행되는 것이 있었으니
우승배당금이고 그 우승 배당금을 좌우하는 것이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입니다.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의 일정 부분을 우승배당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이죠.

올 시즌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과 기아가 받을 배당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역대 포스트시즌 입장수입 Best 5
(참고: 백만원 단위에서 반올림)

1위 2009년 약 70억5천만원
2위 2008년 약 53억6천만원
3위 2007년 약 36억3천만원
4위 2004년 약 31억2천만원
5위 1997년 약 29억1천만원

현재 기아는 위에서 언급한 약 70억5천만원 가운데 대회 진행비를 빼고 남은 금액 중
정규시즌 1위로 20%에 해당되는 8억4천만원을 받게 되었고
여기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남은 금액의 50%인 16억8천만원도 챙겼습니다.

기아는 우승배당금만 25억2천만원을 챙겨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죠.
2000년대 우승배당금이 통상 6~8억여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배가 넘는 금액입니다.

▲ 기아 타이거즈 우승 당시 모습 (출처 : KBO)

이렇게 우승배당금이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럼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이 늘어난 이유는 뭘까요?
다음과 같은 이유가 가장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2009년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 증가 원인

▷ 역대 2번째로 많은 포스트시즌 경기 수 (16경기, 역대 최다는 2000년 20경기)
→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가 모두 최종전까지 갔음
→ 준플레이오프도 최장 5차전까지인데 4차전까지 펼쳐짐

▷ 한국시리즈 1~2차전을 제외하면 모두 2만5천석 이상의 구장에서 경기했음
→ 역대 2만5천석 이상 경기장에서 최다 경기 치름 (총 16경기 중 14경기, 종전 1995년 13경기)
→ 포스트시즌 최다관중 41만262명 달성 (종전 최다관중 1995년 37만9978명)

▷ 프로야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으로 열기 고조 및 인기팀 기아, 롯데의 급부상
→ 올해 최고의 팀 기아, 작년부터 가을잔치에 선보인 롯데의 인기가 흥행에 기여했음

어쨌건 25억2천만원의 우승배당금에 그룹지원금 등이 더해지면
기아는 역대 최다보너스가 지급(약 30~40억원)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실로 돈잔치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요.

현재까지 역대 단일 시즌 우승으로 최다 보너스를 지급한 구단은 2002년 삼성 라이온즈입니다.
21년이나 한맺힌 한국시리즈 준우승 징크스를 떨쳐내자
구단에서 대대적으로 돈다발을 풀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2002년 삼성의 보너스 지급 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

▷ 포스트시즌 우승팀 배당금 = 7억원
▷ 우승보험금(삼성화재) = 10억원
▷ 그룹지원금 = 13 + @억원 (추정)
▶ 우승보너스 총액 = 30 + @억원

이에 못지 않았던 것이 2005년 삼성이 우승 때입니다.
당시 보너스 규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

▷ 포스트시즌 우승팀 배당금 = 7억여원
▷ 우승보험금(삼성화재) = 20억원
▷ 코나미컵 준우승 배당금 = 3억원
▶ 우승보너스 총액 = 30억원

삼성의 우승보너스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는 우승보험금 때문인데요.
이 우승보험금은 2001년 우승팀인 두산 베어스도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어느 팀이 우승하건 공헌도에 따른 보너스 차등지급을 해왔는데,
당시 삼성은 A등급 1억원, B등급 7천만원, C등급 5천만원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2008년 SK는 우승보너스를 팀 공헌도 불문하고 균일 지급했었죠?

▲ 2005년, 2002년 우승 당시 만들어진 삼성 구단 엠블렘 (출처 : 삼성 라이온즈)

그럼 2000년대 다른 팀들 우승 당시 보너스 지급은 어땠을까요?
먼저 2003년 현대 유니콘스, 2001년 두산 베어스의 우승보너스의 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2003년 현대 유니콘스

▷ 포스트시즌 우승팀 배당금 = 6억원
▷ 구단 자체 보너스 = 4억원
▷ 그룹지원금 = @
▶ 우승보너스 총액 = 10억원 + @원
2001년 두산 베어스

▷ 포스트시즌 우승팀 배당금 = 7억원
▷ 우승보험금 = 8억원 (총 10억원 중 팬서비스용 2억원 제외)
▶ 우승보너스 총액 = 15억원

2001년 두산이 우승을 해서 영광을 누렸지만
당시 삼성이 우승을 했다면 예상 우승보너스는 15~20억원 수준이었다고 하더군요.

▲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의 주역은 여성 여러분들입니다. (출처 : KBO, 9월 2주차 응원피켓 이벤트 당선작)

(이 글에서 산정한 우승보너스 관련된 수치는 언론의 기사, 자료 등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2000년대 우승팀의 돈잔치에 관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면 80~90년대 우승팀은 어땠을까요?
궁금하시다면 다음 편 기대해주세요. 더 재미있을 겁니다.

[ 다음 편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로 → 챔피언이 앉은 돈방석은 얼마짜리? (2)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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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랑말랑 2009.10.29 0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는 일단 우승하고 봐야 되는가봐요.
    한 번 우승으로 쥐는 돈뭉치가 상당하니까요.

    • BlogIcon 칸타타~ 2009.10.29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승하면 감독, 선수, 코치만 보너스를 받는 게 아니죠.
      그 뒤를 받쳐준 프런트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고
      이름 없이 뛰고 있는 2군 선수들에게도 얼마씩 돌아갑니다.
      그 구단 전체를 먹여살리는 역할을 하는 게 우승이죠.

      2005년 삼성의 경우, 2군 선수들에게도 500만원씩 지급했다고 합니다.
      이 금액은 2군 선수 보너스 가운데, 역대 최고 지급액인 걸로 압니다.

  2. 노지심 2009.10.29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3년전쯤부터 재밌어지더군요, 야구가...그전엔 좀 그럭저럭이었는데...언제부터인가 호쾌한 야구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치밀한 야구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오히려 그 점이 더 흥미진진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

2009년과 2002년 한국시리즈 공통점 10가지

이 글에 앞서 열심히 싸워준 우승팀 기아와 준우승팀 SK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들의 혼신을 다한 플레이가 명승부를 이끌어냈습니다.

극적으로 우승한 기아도 대단했고, 지칠 줄 모르는 근성의 SK도 놀라웠습니다.
기아에겐 축하를, SK에겐 위로를 보냅니다.

당신들이 있어 야구팬으로서 행복했습니다.
문득 야구를 보는 순간, 2009년과 2002년과 닮은 꼴이 있어서 정리를 해봤습니다.




[ 2009년과 2002년 한국시리즈 최종전 공통점 10가지 ]

1. 최종전 9회말 1사에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시리즈 종료

→ 나지완의 끝내기 솔로포로 종료 vs 이승엽-마해영 랑데뷰 대포로 종료


2. 준우승팀 사령탑이 김성근 감독

→ 2009년 SK 감독 vs 2002년 엘지 감독

(패장이지만, 이 분 참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명승부도 적수가 강해야 명승부라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3. 우승팀이 최종전에서 역전하기 전까지 뒤지고 있었던 최대점수차는 4점차

→ 기아 1:5에서 역전 vs 삼성 5:9에서 역전


4. 최종전에서 우승팀 3번타자의 결정적인 홈런이 터짐

→ 9회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 vs 9회말 이승엽의 동점 3점홈런


5. 최종전에서 먼저 3점을 낸 팀이 준우승

→ SK가 5회초에 3:0으로 리드 vs LG가 2회초에 3:0으로 앞섬



6. 우승팀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 이번의 경우, 타이거즈는 V10이지만, 기아 인수 후엔 한국시리즈 첫 우승

삼성도 당시 한국시리즈는 첫 우승


7. 우승팀의 최종전 선발투수가 초반 강판

→ 구톰슨 3이닝 2자책 vs 전병호 1 2/3이닝 2자책


8. 준우승팀이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치르고 올라옴

→  SK는 두산을 2패 후 3연승 vs LG는 기아를 3승 2패로 이김


9. 우승팀 4번타자도 제 몫을 다함

→ 타율 0.320 6득점 5타점의 최희섭 vs 한국시리즈 MVP 마해영


10. 정규시즌 우승팀이 한국시리즈 1차전 이기고 우승

→ 기아 승률 0.609로 1위 vs 삼성 승률 0.636으로 1위


다시 한 번 기아에 우승을 축하드리고, 명승부의 파트너였던 SK에게도 위로의 박수를 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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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랭빠 2009.10.25 0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갸팬입니다.
    이런 한국시리즈보니 02년과 비슷하다는 생각들었어요.
    정리된것을 보니 의외로 공통점이 많았군요.

  2. 파라독스 2009.10.25 0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코시는 일부 장면에서 양 팀 모두 씁쓸한 면이 있었습니다.

    • BlogIcon 칸타타~ 2009.10.25 0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어도 다 끝난 경기이니
      좋은 쪽으로 서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승부에서는 적이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는
      감독, 선수 간에는 동업자의 관계잖아요.
      앞으로 야구는 계속될 테니 서로 너그럽게 봅시다. ^^

  3. 목포의눈물 2009.10.25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오늘 기아 우승의 기쁨에 취했는데.. 이글 보니 김성근이란.. 사람의 운명도.. 기구하네요.

  4. SK는 2009.10.25 16: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K는 오락에 나오는 끝판왕 같더군요...
    죽여도 죽어도 안죽습니다.
    김광현 박경완 전병두가 빠졌는데 이정도라니
    진짜 대단한거 같아요... 내년에는 더 강해질것 같아서 더 무섭습니다.
    어떻게 이런 팀을 만든건지 김성근 감독님 진정 존경스럽네요..

    • BlogIcon 칸타타~ 2009.10.26 0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래 김성근 감독은 이기는 야구보단 지지 않는 야구를 추구하잖습니까?
      그러니 지더라도 상대방의 진을 빼놓는 것 같습니다.
      준우승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상대방이 더 싫어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공언했으니
      내년에도 어느 팀이건 SK와의 경기는 쉽지 않겠네요. ㅎㅎㅎ

  5. 호랑이군단 2009.12.15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기아타이거즈 팬 인데요.제가 한국시리즈를 거의다 봤거든요?기아가 잘 하긴 하지만
    sk와이번스는 맨날 초반에 못하고 후반에 잘하더라요?
    플레이오프떼도 두산한테 처음에 2번연속 졌다가 후반에 다시 2번연속으로 이기고 한번 더 이겨서 한국시리즈를 진출한거잖아요.그리고 기아전에서도 후반에서 잘 하던데.한국시리즈5차전에는 로페즈의 완봉투와 나주환의 실책까지 겹쳐서 진 거고.그래도 두팀 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잘 했어요~~~~~~~~~~~~~~~~~~~~~~~~~~~~~~~

  6. 호랑이군단 2009.12.15 14: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아타이거즈의 조범현감독과SK와이번스의 김성근감독님 모두 수고하셨어요.^^~~~~~~~~

  7. 사자군단 2010.05.20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있는것 같은데요
    끝내기를 기록한 둘 다 우타자 였던것.
    우승의 발판을 만들어준 타자들(이승엽, 최희섭)은 모두 좌타자구요.
    그리고 이승엽 최희섭 모두 1루수 입니다.
    ㅎㅎ 제생각이지만 맞지 않나요??

  8. 삼성이여 영원하라 2010.07.12 0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있습니다
    마무리 이승호가 던진 공과
    이상훈이 던진 공이 모두
    직구였다는 것입니다

  9. 사자군단 2010.07.28 2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성이여 영원하라 님 Sk 마무리 채병룡이었는데...? 그리고 직구가 아니라 체인지업이었어여 2009시즌은 .... 모르시나 보내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