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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古典> 

崔仁勳의 『광장』

피카소에게 피가 물감이었듯

최인훈의 잉크 또한 心血이었다

   

金炯旿(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이다. 그런 선언적 찬사가 전혀 과장되게 들리지 않을 만큼 『광장』은 전후 한국 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랬다, 『광장』은 1960년대 벽두에 그날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새벽 4시의 사이렌 소리처럼 잠든 의식을 뒤흔들어 깨우며 등장했다.
 

나에게도 『광장』은 육중한 감동을 동반하고 찾아왔다. 전율 그 자체였다. 내 청춘의 독서, 그 맨 윗줄에는 『광장』이 있다.

4.19 혁명의 해인 1960년 11월에 탄생한 『광장』을 내가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뒤 대학에 들어가 두 번쯤 더 그 작품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60년대와 70년대 학번 치고 『광장』의 세례를 받지 않은 인문학도가 몇이나 될까.

『광장』 이후 나는 한동안 최인훈의 소설에 매료되어 살았다. 『구운몽』『회색인』『총독의 소리』 등 어떤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보다도 더 예리한 시선으로 현실을 진단하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해부해내는 그의 작품들에 몰입했다. 작중 인물들과 더불어 고뇌하고 번민했다.


지금도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은 『광장』이 그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시대에 검열의 칼날, 판금의 덫을 용케 피해 왔다는 사실이다. 지하 밀실의 백열전등 아래서 남몰래 읽어야 했을 것 같은 소설이 햇빛 아래 광장에서 팔리고 읽혔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지하 시인의 『황토』와 『타는 목마름으로』, 현기영의 『순이 삼촌』,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 등 숱한 문학 작품들이 불온서적이란 오명을 쓰고 날개가 꺾였다. 남정현의 『분지(糞地)』는 반미 용공적이라는 죄목으로 작가가 구속까지 당했던 시대였다.

그런 상황에서 『광장』은 어떻게 비켜 서 있었을까. 그 까닭은 아마도 검열자들이 『광장』을 이념적 선동보다는 러브 스토리와 철학적 사색에 무게를 두고 저울질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방적 찬양이 아닌, 남한과 북한을 양비론적인 시각에서 다룬 것도 방어막 역할을 했으리라. 아니면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예컨대 판금 도서로 묶어 버리면 지하의 필독서가 되어 훨씬 더 파급 효과가 커질 거라 생각해 애써 외면해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줄거리를 간추려 보자.

철학도인 주인공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혹독한 고문을 받은 뒤 ‘광장 없는 사회’인 남한을 탈출해 이북으로 간다. 그러나 그곳 또한 명준이 꿈꾸던 사회는 아니었다. 혁명의 탈을 쓰고 있지만 광장에서 밀실로 이어지는 길이 없고, 광장에는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꼭두각시 인민들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다고 남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국립극장 발레리나인 은혜만이 유일한 삶의 이유고 희망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명준은 낙동강 전선에서 간호병이 된 은혜를 만나 사랑을 이어 나가지만 그녀는 뱃속에 명준의 아기를 가진 채 전사하고 만다. 전쟁 포로가 된 명준은 휴전 이후 체제의 선택권이 주어지자 중립국으로 가기를 희망한다. 이제는 좁아질 대로 좁아져 자신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면적이 전부인 광장에 서서 명준은 인도 캘커타로 가는 배를 타고 있다. 그 배를 따라오는 두 마리 갈매기. 그 모습에서 명준은 어느 순간, 숨진 은혜와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딸, 그 환생을 본다. 망명지는 정해졌다. 명준은 배에서 행방불명된다. 사랑을 찾아 바다로 몸을 던져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중립국도 아닌, 그들만의 광장으로 망명의 길을 떠난 것이다.

김현은 이 작품을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암초에 걸려 자살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한 지식인의 외로운 자기 성찰”이라고 한 줄로 요약했다. 동의하고 공감한다. 다만 부연하자면 나는 주인공 이명준의 자살을 ‘망명’이란 단어를 써 표현하고 싶다. ‘사랑’에게로의 망명. 명준이 탄 뱃길에 동행하는 두 마리 갈매기가 암시하는 ‘연인 은혜와 사랑의 결실인 딸’, 그들과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이 고독한 청년은 바다로, 그러니까 하늘나라로 망명을 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체제 갈등이 없는 그 나라로….

 

『광장』은 그 동안 수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언급되어졌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직접 쓴 ‘1961년판 서문’만큼 이 작품을 간략하면서도 정확히 묘파한 서평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중 몇 줄을 옮김으로써 『광장』에 대한 이해를 도우려고 한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 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이명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 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파블로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을 일컬어 “모두가 피로 그린 것”이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피카소의 피는 ‘총천연색’이다.

나는 최인훈의 『광장』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피카소에게 피가 물감이었듯이, 최인훈의 잉크 또한 심혈(心血)이었다. 그에게 있어 『광장』의 집필은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다. 그는 ‘심장의 피’를 펜촉으로 찍어 원고지 위에 말렸다.

작가 스스로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 고백했지만, 최인훈은 정말로 애정과 집착을 갖고 『광장』에 매달렸다. 지난해 5월에 발간된 7판까지 공식적인 개작만도 무려 열 번째에 이른다. 그래서 초판과 7판은 여러 모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분량은 물론 내용과 문체, 단어와 토씨까지 확연히 달라졌다. 빼고 덧붙이고 고치고 바꾸고 다듬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판을 거듭할 때마다 서문을 다시 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에는 일곱 개의 서문이 실려 있었다. 『광장』은 아마도 텍스트가 가장 많은 작품이리라. 이는 세계 문학사를 뒤져 보아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 아닐까.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이런 말을 했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 나는 작가가 열 번을 고쳐 쓸 만큼 공을 들인 『광장』이야말로 두 번, 세 번, 아니 열 번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번이 네 번째 독서이다. 

통행금지로 상징되던 군부 독재 시절, 나는 나의 ‘밀실’에서 『광장』을 읽었다. 심금을 울리는 길고 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내 청춘의 새벽이 열렸다.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치인이 된 나는 ‘광장’과 ‘밀실’을 자유롭게 오가고 소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노력해 왔다. 그것이 어쩌면 세상에 나온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광장』이 여전히 나에게 유효한 까닭이다.

그렇다, 분단 상황이 지속되는 한 『광장』은 우리를 억눌러온 이데올로기의 실상을 증언하는 문학으로서 그 존재 가치를 길이 빛낼 것이다. 아니, 통일이 되어 이념적 갈등에서 벗어난 뒤에도 『광장』은 스테디셀러로서 그 문학적 지위를 잃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광장』은 이데올로기와 시대를 뛰어넘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벗들에게 세월이 흘러도 낡거나 퇴색되지 않는 이 매력적인 작품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2002년 서울 월드컵 때 나는 경기장과 거리를 온통 붉게 물들인 붉은 악마들의 물결에서 ‘밀실과 광장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보았다. 그 전까지 소설『광장』의 논리에 틀어박혀 있던 나는 또 한 번 전율했다. 그것은 들불보다 거센 기세로 밀실(IT·휴대폰)에서 전파된 하나의 혁명이었다. 순수하고 자발적인 파워로 문명사적 조류를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붉은 악마의 마력은 마치 블랙홀처럼 온 국민을 광장으로 빨아들였다. 대한민국 곳곳에 ‘콜로세움’이 세워졌다. 로마 시대에 수십 년의 역사(役事)로 건설된 콜로세움이 문명의 이기를 업고 단 몇 시간 만에 들어선 것이다. 광장과 밀실을 통합하는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그 물결의 발원지에 『광장』이 있다.

 

※<월간조선> 2011년 4월호 권말 부록에 수록된 글입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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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루펜슬 2011.03.22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인훈의 <광장>.
    1980년대 한때,
    나 또한 얼마나 그 광장에서 헤매며 길을 찾았던가.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이 탄생한다면
    고은도, 김지하도, 황석영도 아니다.
    마땅히 <광장>의 작가
    최인훈에게 그 영예가 안겨져야 할 것이다.
    <광장>이여, 영원하라.

  2. 망명시민 2011.03.22 16: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작에 걸맞은 명비평문입니다.
    <광장>을 다시 꺼내 읽고 싶어지는군요.

  3. 은둔주의자 2011.03.23 10: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장]에서 [밀실]로
    [밀실]에서 [광장]으로.
    오, 나는 기꺼이
    최인훈이라는 감옥에 갇혀
    청춘의 한때를 서성거렸노라.

  4. 밀실의독서 2011.03.30 0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요, 나 역시 밀실에서 읽은 것 같은 [광장]이 한 번도 판금 도서로 묶인 적이 없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지식인 소설에 대한 지식인 다운 평문, 잘 읽었습니다.

  5. 그라운드 2011.04.05 1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밤 책장을 뒤져 광장을 꺼내 다시 읽어 보렵니다

  6. 붉은악마 2011.04.05 19: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장과 밀실을 자유롭게 오가고 넘나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의장님, 꼭 만들어 주십시오, 꾸벅.

  7. 왕그니 2011.04.19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밀실에 갇혀 있는 많은 국민들을 광장으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정치인들에게 있지요..^*^

  8. 민초 2011.06.28 0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광장은 시작된다.

  9. BlogIcon UGG Boots On Sale 2012.10.11 11: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멋진 글에 '게임을 안하면 됩니다!' '그게 정답이다!!' 라는 리플을 달면 참 빈곤배 보이겠죠 ^^

  10. BlogIcon find a wedding guest dress on line for cheap 2012.11.02 12: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광장은 시작된다.


박완서 선생님을 추모하며 

아름드리 거목으로 남은 당신

김형오 전 국회의장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별세 소식이 전해진 겨울 아침, 저는 맨 먼저 선생님의 그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전쟁이 남긴 냉혹한 비극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제목입니다. 선생님 떠나신 이 겨울 아침은 혹한이 다소 가셨지만 선생님이 불혹(不惑)에 발표하신 처녀작 ‘나목(裸木)’처럼 왠지 헐벗은 나무로 겨울 벌판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향년 80세. 하지만 선생님은 언제나 ‘현역’이셨습니다. 시대의 어른으로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전범을 보이셨습니다. 당신이 경험한 혹독한 시련을 냉철한 리얼리즘에 입각한 분단 문학으로 승화시켰는가 하면, 여성 문제와 소시민적 삶에도 깊숙이 관심을 기울이셨습니다. 유려한 문체와 섬세한 감각, 게다가 품격 높은 익살과 풍자는 선생님 책에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문학성과 대중성, 양쪽 모두에서 선생님 앞에 세울 만한 작가가 또 있을까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소설 제목들은 그대로가 한 줄의 시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도둑맞은 가난’ ‘창밖은 봄’ ‘배반의 여름’ ‘휘청거리는 오후’ ‘목마른 계절’ ‘도시의 흉년’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 가을의 사흘 동안’ ‘너무도 쓸쓸한 당신’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혼자 부르는 합창’ 등 시집 제목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작품들입니다.
 

20년 전쯤 먼저 떠나신 부군을 기리며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이란 소설을 쓰셨지요? 선생님은 수십, 수백 편의 빛나는 작품을 주렁주렁 매단 ‘아름드리 거목(巨木)으로 남은 당신’이십니다. 나목으로 와서 거목으로 가신 선생님, 삼가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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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눈물이주르륵 2011.01.22 1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별세 소식 듣고 가슴이 아릿했는데
    이 글 읽다가 어느새 눈물이 주르륵...
    선생님은 우리 한국 문단의 거목이셨습니다.
    무성한 이파리와 열매를 남기셨습니다.
    그 그늘 아래서 예술은, 문학은 영원할 것입니다.
    영면을 빕니다.

  2. 국화향기 2011.01.24 0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고의 작가이셨던 선생님
    제 서재에 열다섯 권의
    책으로 남았습니다

  3. 소복소복 2011.01.24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떠나신 날 흰눈이 素服을 입고 소복소복 내려왔습니다.
    온 천지가 하얗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4. BlogIcon 달콤시민 리밍 2011.01.24 1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너무 슬펐어요ㅠㅠ
    어릴 때 학교 선생님이 읽어주셨던
    책이 되게 감명 깊어서 샀었는데
    그게 박완서 선생님의 책이었거든요ㅠㅠ
    진짜 글들이 다 좋았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ㅠㅠ

  5. 모개 2011.01.26 01: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박완서선생님.
    여자 나이 마흔에도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어주었던 선생님.

    (기억에서) 놓여나기 위해 가벼워지기 위해 소설을 썼다던 선생님.
    새가 되고 싶다던 선생님.

    '날아다니고, 짝짓고, 알낳고, 새끼키우고, 총에 맞거나 독극물을 먹을 수도 있는 구체적인 새가 아니라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순간적으로라도 지구의 중력과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황홀한 자유, 비상(飛翔)의 쾌감이 있으면 좋겠다' 던 선생님.

    새가... 되셨나요?

    상처입은 새, 상처입은 청춘의 모습으로 시대를 응시했던 '시선'.
    선생님은 제게 '시선'으로 기억되는 분입니다.

    당신이 낱낱이 기록하며 응시하게 했던 상처와 몰입과 통곡과 위로와 화해....
    생각해보니, '엄마의 말뚝' 이래 선생님의 글과 함께 삼십 년을 지나왔습니다.

    • 걸윷 2011.01.26 10: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자 나이 마흔에서 여든까지
      사십년 그러니까 인생의
      절반을 작가로 살아오신 선생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죽는 날까지
      선생님 독자로
      살다 가렵니다

  6. 묘목 2011.01.26 13: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목과 거목의 그늘 아래에서
    푸릇푸릇 묘목들이 싹틀 것입니다.

  7. 완전한 서사 2011.02.08 08: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사 구조의 완결성에서도 대한민국 최고였던 박완서 작가님.
    작품 자체가 선생님과 우리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윤대녕은 일상을 ‘마른 코딱지’같다고 했다.  윤대녕과 더불어 한국 최고의 소설가로 꼽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구효서!  


며칠 전, 서울의 한 대형서점 한국소설 코너를 뒤져 어렵게 찾아낸 책이 바로 <남자의 서쪽>.  최근 일고 있는 패배자, 루저 논란 탓이었을까? 책장을 넘기다 말고 계산대로 달려갔다. 그리고 밤을 새워 읽었다.

                             △ 구효서 <남자의 서쪽>. 소설 속 주인공은 요즘 말로하면, 100% '루저남'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중년의 로망은 이 시대엔 루저로 가는 지름길이로구나....라는 것.

-꿈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삭막한 시대에 이런 문학작품은 과연 어떤 존재가치를

  지니게 될까........라는 것이었다.


그래도....여전히 꿈을 꾸고 상상을 해야만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소설가는 꼭 필요한 존재들이겠구나, 란 생각에 구효서의 <남자의 서쪽>을 소개한다.  꿈만 꾸고 실행은 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루저로 손가락질 받지는 않을테니까..... ^^



- 중년 남성의 로망은 젊은 여성인가,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인가?


마른 코딱지 같은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나이가 따로 있을까? 대개 길(Road) 위에 서있는 소설과 영화의 주인공들은 젊다. 젊은 마음에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우연을 가장하며 다가오는 이런저런 에피소드에 몸을 맡기며 잔잔한 희망을 찾아나간다.


     △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면서부터 인생을 알았다(?)는 중년들의 증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정말일까?          


그러나, 소설 속 주인공은 40대 중반에 같은 직장의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먼저 관심을 표명하며 다가온 30대 초반의 직장동료와 술을 마시고 호텔방에서 불꽃놀이를 보며 섹스를 한다. 이때부터 남자는 베트남에 출장 갔다 만난 한 남자를 떠올리게 되고, 여자와의 관계가 지속되는 동안 내내 그 남자의 자유로움을 동경한다.


구효서는 이 소설에서 독특한 표현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회고록을 쓰듯 써내려간 <남자의 서쪽>이란 소설은 한 남자에 보내는 편지글 -> 여자와의 만남 등을 묘사한 소설형식 ->편지 ->소설-> 편지 .......등의 형식 교체를 통해 일종의 몽타주 기법을 연상시키며 진행된다.


편지글은 회색톤, 소설형식은 컬러톤 등으로 색조를 달리하며 진행되는 극영화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2008년 출간돼 화제를 불러일으킨 소설가 김다은의 <훈민정음의 비밀> 등에서 본격화된 서간체 문학의 실험형태란 생각이 들 정도로....)


책 페이지로만 보면 155쪽인 이 소설은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특히 편지글 형식에서 보이는 독백조의 표현은 읽는 사람들에게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예를 들면 이런 표현을 들 수 있겠다.


-‘저의 사고라든지 무의식 따위에 어떤 모양새가 있다면 왠지 그 수핵과 흡사할 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

-‘당신이 준 광물질은 저에게 시간과 그것의 초월에 대해서만 생각게 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바다는 1만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1만년 뒤의 내 존재에 대해 생각게
  하는거야’    



이상의 표현들은 구효서의 소설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동경 및 상상’과 ‘시간 개념의 재해석’의 변주로 다가온다. 특히 구효서는 1만년 이란 시간 단위를 현재의 앞 뒤에 배치하고 그 시간적 의미를 되묻는 식으로 독자들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자주 질문하곤 한다. 이 소설에서도 그 시간이란 질문은 여전히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가라앉아 있다 물이 빠지면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베트남의 ‘하롱베이’를 동경한다. 이는 40대 중반까지 가라앉아 있다 떠오른 주인공 자신의 열정(?)과 일탈에의 욕망을 잘 드러내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구효서는 베트남 하롱베이의 유래에서 아마도 그런 연상작용을 일으켰던 게 아닐까?  하롱베이의 유래와 가라앉아 있던 욕망의 비유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 왜 소설가들은 불교를 동경하는가? 


한국의 소설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곤 한다. ‘이제부터는 불교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라고.... 그래서일까? 구효서 역시도 이 소설 속에서 불교적 시각을 슬쩍 끼워넣고 있다. 이런 식이다.


‘우리가 보는 달이라는 것. 그것은 평생 한 면 밖에 볼 수가 없어요.... 내가 말했다. 달의 뒤쪽 세상이라는 것도 분명 있는 것이겠지만, 볼 수 없기 때문에 없는 것과 같아. 그런 거 아닐까. 내 열여섯 이전의 삶이라는 것, 기억이라는 것, 어딘가에는 존재하고 있겠지. 하지만 알 수가 없고, 그래서 없는 것과 같아. 상관없어요. 달의 한 면만을 보고 산다고 해서 불편할 게 없듯, 열여섯 이전의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해서 특별히 불편할 건 없어. 없는 건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저 불꽃들 말야....어둔 하늘에서 자신의 흔적을 어떻게든 남기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구효서가 과연 이런 시각을 어떤 식으로 소설 속에 본격적으로 녹여내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도 2009년 현재 52세이니까...그도 역시 생노병사를 경험하는 '인간 존재'이니까...


결국 이 소설은 동경하던 그 남자가 사실은 주인공 자신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의 줄거리 대신 소설가 구효서의 <남자의 서쪽>에필로그의 일부를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서점에서 꼭 사서 읽어보길 권하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차를 타고 소래 포구며 하일 염전이며 수리산 산자락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누워 노랗게 핀 애기똥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까닭 모를 눈물이 나왔다.


피어나고 스러지는 것, 밤이 오고 아침이 오는 것, 불어오는 서풍에 속절없이 허연 잎을 뒤짚는 거제수나무만이 현실이었고, 그런 것들만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에 맞춰 서캐처럼 허옇게 쏟아져 나오는 빌딩의 남자들은 차마 바라볼 수 없었다.


애써 책상에 앉았다가도 어느새 밤이 오면 무병을 앓는 처녀처럼 양말도 신지 않고 거리를 배회했다. 포장마차에서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들. 술 취한 음성으로 털어놓는 남자들의 하루 무용담을 지나다 들을라치면 내 일이 아닌데도 덜컬덜컥 비통해졌다.


내 나이를 세며, 그들의 나이를 짐작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로 하염없이 고개를 젖혔다. 훌쩍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미 살아온 나날들은 버리는 데만도 또 그만큼의 세월이 필요하리라.


이 삶이 꿈이든 꿈이 아니든 , 그것이 행복이든 행복이 아니든, 어차피 주어진 터전 위에 나서 자라고 늙어가는 것이라면 끝까지 헤어나지 못할 무명에나 풍덩 빠질 것을. 문득 문득 다 소용없어, 소용없어 중얼거리기는 왜 중얼거리게 생겨먹은 것인지 인간이란.


갈수록 우연과 불연속적인 것들에만 눈이 커지고, 지금까지 움켜쥐었던 것들이 거짓말처럼 하찮게 여겨지면서 , 나는 그런 나에게 동조할 만한 남자 하나를 소설에서 만들고 싶었나보다.


남자. 그는 어떻게 떠나는지. 어떻게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는지. 일탈은 과연 꿈인지, 아니면 꿈으로부터 깨어나는 일이 일탈인지.                -1997년 6월 구효서



        

                                                                 
                                                                                                                                                      - posted by 백가이버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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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r.번뜩맨 2009.11.15 2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주로 로망을 대상으로 열심히 꿈을 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