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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3) >

이제 마지막 회인 1997년이군요.

3. 1997년 한국시리즈

1997년 정규시즌 5대 선수
홈런왕 포함 3관왕에 최연소 MVP 이승엽
다승왕 포함 투수 부문 3관왕 김현욱
타격왕 포함 타자 부문 3관왕 김기태
구원왕 야생마 이상훈
그리고 30-30클럽에 도루왕을 기록한 우승팀 해태의 이종범

1997년 한국시리즈는 말 그대로
이종범으로 시작해서 이종범으로 끝난, 이종범을 위한 시리즈였습니다.

설명 전에 잠시 이례적인 일이 있었는데요.
한국시리즈 1차전은 정규시즌 우승팀의 홈인 광주가 아니라 잠실에서 먼저 열렸습니다.

당시 규정이 이상했기 때문인데요.

서울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경우, 1,2차전은 잠실에서 치른다.

마침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온 LG의 연고가 서울(잠실)이었거든요.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잠실은 해태에겐 제 2의 홈이라고 할 만큼 팬들이 많이 찾아오셨거든요.

자, 그럼 97한국시리즈의 이종범을 찾아 떠나볼까요?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1차전 - 기선 제압의 선봉에 서다 ]

1차전 초반부터 이종범의 맹활약은 시작됐습니다.

3회 2사에 볼넷으로 출루한 이종범은 김용수의 예리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2루를 훔쳤고
2번타자 장성호의 볼넷 때 포수 김동수가 지나치게 이종범을 의식하다
공을 빠트려(패스트볼) 3루에 무혈입성했습니다.

이렇게 배터리가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LG는
최훈재에게 적시타를 맞고 선취점을 내주고 맙니다.

이후 LG의 반격으로 1:1 동점이 된 5회 2사에 등장한 이종범,
김용수의 변화구 실투를 받아쳐 좌중간으로 역전 아치를 그려냈죠.
당시 1루를 향하면서 두 팔 벌려 스스로 감격한 모습, 기억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장수들끼리 1:1 대결을 펼친 뒤,
그 결과에 따라 전투의 승부가 압도적으로 기울어져 버리죠.

그 당시 해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봉에 선 이종범이 공격의 물꼬를 터주자 나머지 선수들도 덩달아 힘이 난 듯
너도나도 방망이가 터지기 시작했고 결국 6:1로 1차전을 잡아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해태는 9번 김종국을 제외한 선발타자 전원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이종범은 수비에서도 2루수 김종국과 함께 병살타 3개를 이끌어내며
키스톤 콤비로서 찰떡 궁합을 과시했습니다.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3차전 - 결정적인 한 방, 기울어진 시리즈 ]

'비수를 꽂는다'는 뜻이 무엇인지 보여준 3차전이었습니다.

3차전은 광주에서 열렸습니다.
해태는 조계현, 강태원으로, LG는 손혁, 김기범, 차명석으로 짠물투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1:1로 동점이던 7회말 1사 1루 상황,
LG는 간판투수이자 마무리인 이상훈 카드를 꺼내듭니다.
이상훈과 이종범... 두 거물의 맞대결이 최고의 무대인 한국시리즈에서 펼쳐진 것이었죠.

이 승부에서 이기는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었습니다.
한국시리즈 전체 판도를 좌우할 만큼 말이죠.
그런데 이 승부는 어떻게 됐을까요?

결국 이종범이 역전 결승 2점홈런으로 사실상 승부에 종지부를 찍어버렸죠.
6회 전타석에서 차명석에게 뽑아낸 동점홈런까지 포함, 연타석홈런 기록까지 달성했습니다.

* 한국시리즈 연타석홈런 - 한국시리즈 3차전 (1997년 10월 22일, 역대 3번째)
  기존 기록자들 - 김성한(1989년), 이건열(1991년)

* 한국시리즈 최다홈런 - 3개 (당시 기준으로 타이)
  당시 기존 기록자들 - 김유동(1982년), 김성래(1986년)
  현재 한국시리즈 최다홈런 - 4개, 우즈(2001년)


97년 한국시리즈 이종범의 공을 높이 살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실상 시리즈의 맥이 되는 1차전, 3차전을 잡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두 번째 엘지가 자랑하던 주요 투수력을 홈런포로 모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당시 에이스-핵심불펜-마무리이던 김용수, 차명석, 이상훈을 각각 차례로 말이죠.
(1차전 - 김용수, 3차전 - 차명석, 이상훈)

* 1997년 LG 트윈스 주요 투수
97김용수 : 177이닝 12승 투수로 11승을 거둔 임선동과 함께 원투펀치.
97차명석 : 기교파 투수이긴 했지만 당시 정현욱, 전병두와 같은 핵심 불펜투수로 구원 11승
97이상훈 : 47세이브포인트로 당시 시즌 세이브포인트 기록을 세움
(세이프포인트 = 구원승 + 세이브, 2004년부터는 세이브만 계산함)

→ 당시 LG는 10승 투수가 김용수, 임선동, 차명석, 이상훈으로 4명이었습니다.


이미 삼성과 5차전을 치르면서 지친 LG 트윈스로서는
그들이 자랑하던 투수력이 일거에 무너지는 바람에
3차전 이후 내리 연패를 당하며 시리즈가 끝나고 맙니다.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5차전 - 유종의 미 ]

드디어 왕좌에 등극한 5차전이었습니다.


4차전 승리로 사실상 승부가 기울어졌지만,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말처럼
마지막 마침표 하나를 찍을 때까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죠.

* 한국시리즈 최다도루 - 13개 (93년 7개, 96년 4개, 97년 2개로 타이)
  기존 기록자 - 이순철 13개

0:1로 뒤진 3회에 김종국이 볼넷을 골라 출루한 뒤, 이종범은 안타로 터뜨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일단 이종범이 나간다는 건 상대팀에겐 매우 불안한 실점 위기임을 뜻했죠.

실제로 LG에서 한국시리즈의 유일한 승리투수였던 임선동도 흔들릴 수 밖에 없었고
장성호 내야 땅볼, 최훈재의 2루타 등으로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LG는 여기에서 빼앗긴 승기를 되돌리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끓었죠.

시리즈 내내 공격, 주루 뿐만 아니라 수비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인 이종범은
5차전 승리를 통해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MVP에 오릅니다.
팀 동료 이대진과의 경쟁에서 총 45표 중 33표를 차지했습니다.


< 에피소드 >
한국시리즈 5차전의 승리투수는 故 김상진 투수였습니다.
그 당시 역대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을 기록했죠.
그러나 아쉽게도 위암으로 너무 일찍 야구팬 곁을 떠나버렸죠.
1999년 6월 10일, 만 22세의 나이로.

1997년 한국시리즈를 볼 때마다 이종범의 맹활약, 이상훈의 아픔, 故 김상진의 역투
이 세 가지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더군요.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그동안 이 시리즈를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의 이종범
(1) 1993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2) 1996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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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r.번뜩맨 2009.10.20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선수군요. 잘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2. BlogIcon 달콤시민 2009.10.20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는 잘 모르지만.. 이종범 선수는 알아요!
    아버지가 해태타이거즈 팬. 지금은 기아..
    초등학교때는 화창한 토요일에 학교 다녀오면 2시부터 늘~~ 티비에서 야구만 해서 좀 싫었었는데 ㅜㅜ
    어느정도 크면서 박찬호 선수도 알게되고, 최희섭 선수도 알게되고, 좋아하는 선수가 생기니까 잘은 몰라도 야구도 좋아하게 되더라구요.
    가장 안타까운건, 저희 동네 야구팀이 없다는거 흑흑 ㅜ

  3. ㅎㅎㅎ 2009.11.26 1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 제일 잘하는 사람은 1번타자인줄 알았던 시절....그립습니다.

  4. 박종욱 2010.02.03 1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좋네요 잘보고갑니다 퍼갈게여


<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2) >

자~ 드디어 1996년입니다.

해태와 이종범의 1996년 한국시리즈를 정리해보겠습니다.


▲ 출처 : KBO

2. 1996년 한국시리즈

1996년 정규시즌 5대 선수
* 투수 3관왕이자 MVP 고무팔 구대성
* 다승왕, 탈삼진왕의 독고탁 주형광
* 30-30클럽의 신인왕 괴물 박재홍
* 타격왕 포함 3관왕 양준혁
* 그리고 도루왕에 20-20 클럽을 달성한 우승팀 해태의 이종범

사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이종범보단 투수진의 활약이 컸습니다.
해태 못지 않게 현대가 투수진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었죠.
정명원 같은 경우만 봐도 한국시리즈 최초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을 정도니까요.
(오히려 이종범은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훠~얼씬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래도 우승의 주인공은 해태 타이거즈였습니다.
3차전 완봉승 포함 2승 1세이브, KS MVP였던 이강철
정민태와 맞대결에서 사실상 1승 1무를 펼친 조계현
2경기에서 7이닝 이상 소화한 이대진

이 선수들이 주역이었죠.

▲ 출처 : MBC ESPN (1996년 한국시리즈 최종전 당시 3루타를 치고 기뻐하는 장면입니다.) 

그럼 당시 이종범의 주요 활약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도루 1개를 더하며 
역대 한국시리즈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한국시리즈 5경기 연속도루 (1993년 10월 22일 4차전 ~ 1996년 10월 16일 1차전)
→ 역대최다 타이 (장효조, 1984년 9월 30일 1차전 ~ 10월 6일)

이종범은 2차전에서 3회에 선제 1타점 적시타를 포함해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는데, 팀이 더 이상 추가점을 내지 못해 연장전에 이르렀죠.
이것도 당시로서는 기록에 올랐습니다.

한국시리즈 최장시간 경기 4시간 35분 (1996년 2차전)
→ 1996년 한국시리즈 당시까지는 신기록 (현재 기준으로는 역대 4위)
→ 현재 한국시리즈 최장시간 경기는 2006년 한국시리즈 5차전(삼성:한화) - 5시간 15분(15회)

최종전이 되어서야 이종범은 그다운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1회에 기습번트 안타로 출루한 뒤, 이어 도루를 시도했는데,
경험이 부족한 상대 포수의 악송구를 틈타 3루까지 진루했습니다.
후속타자인 홍현우의 내야 땅볼 때 홈을 파고들어 손쉽게 1점을 뽑아냈죠.

이후 9회 2사 1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터뜨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이후에 스스로 감격해하는 그 모습이 아직도 떠오르네요
.


< 에피소드 >

1996년 당시 해태의 상황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전합니다.
(종범신의 한국시리즈 활약상이 쬐끔 미진했지만, 이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96년 해태는 실제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1994년은 디펜딩 챔피언이었지만 준플에서 패했고, 1995년은 가을 잔치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선동열의 해외진출, 김성한의 은퇴로 팀의 구심점을 잃었고
전문가들조차도 1996년에 3강 후보를 전년도 3강이었던 OB, LG, 롯데를 꼽았죠.
오히려 해태와 쌍방울은 약체로 분류했었습니다.
(시즌 종료 후 그 두 팀은 나란히 정규시즌 1,2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시범경기는 꼴찌, 정규시즌 들어가서도 5월 중순까지 꼴찌였습니다.
흔히 명장은 위기에 강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김응룡 감독의 리더쉽이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면 사람들이 선동열, 김성한 없어서 그랬다고 할 텐데,
그러면 여태까지 그렇게 우승하는 동안 너희들은 뭐한 거냐?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어?
지금까지 해태라는 팀이 누구 몇 명의 팀이었어?"

이 말에 자극을 받은 해태 선수들은 힘을 내어 승승장구를 했고
급기야 7월 31일 현대를 제치고 페넌트레이스 1위를 달리게 됩니다.
1993년 9월 27일 이후 1047일만의 쾌거였죠.

7월 한 달 간 15승 1무 5패, 8월에는 10연승 등의 저력을 보였기에
그 기세가 결국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양심적으로 1996년 한국시리즈는 이종범이란 이름에 비해선 활약상이 쬐끔 약했습니다.
저도 그래서 어떻게.. 알려드리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네요. ;;;

(1), (2)편으로 만족 못하신다면 (3)편에서 끝내줄 것을 약속드립니다.

물론 (1), (2)편으로 만족하셔도 (3)편을 보실 것을 권합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에서의 이종범
(1) 1993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3) 1997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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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돌뼈 2009.10.19 08: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라 2탄!!!!!!!!!! 96년에 그런일이 있눈줄 몰랐는뎅.
    강철옹이 잘했던 해군화.

  2. BlogIcon 맹태 2009.10.19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종범신의 활약이 미약한 때도 있었네요.

    종범신이기 때문에- 다른 선수가 그랬다면 실망했을텐데

    '와, 이런 인간적인 매력도 있구나!'..ㅋㅋㅋ

  3. BlogIcon 윤석구 2009.10.19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면 사람들이 선동열, 김성한 없어서 그랬다고 할 텐데,
    그러면 여태까지 그렇게 우승하는 동안 너희들은 뭐한 거냐?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어?
    지금까지 해태라는 팀이 누구 몇 명의 팀이었어?" < 이말 때문에 자극을 받아서 꼴찌에서 치고 올라갔다구요?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픽션에 불과한 소리죠. 무슨 애들도 아니고, 팀 전력이 말한마디때문에 꼴찌에서 후반에 치고 올라가 1위를 한다는게 스포츠에서 말이 됩니까?
    1996년 해태가 초반 꼴지를 달리다가 치고 올라간것은 1995년부터 방위복무중이었던 이종범과 이대진이 1996년에 전역 한후 복귀한 후부터 치고 올라가 정규시즌 1위를 한겁니다.
    방위첫해인 1995년에 이종범은 홈경기만 출전할수 있었는데(규정이 그랬음) 당시 해태 선발투수들은 광주 홈경기에 등판하려고 서로 다툰것은 유명한 일화죠. 왜냐면 이종범이 광주경기만 출전할수 있었으니
    까.. 무슨 만화책에서 팀의 4번타자가 여자문제로 부진하자, 감독이 그걸 알고 "너란 놈이 이것밖에 안돼냐? 라는 한마디에 - 그 선수 엄청난 고민 - "그래 감독님 말씀이 맞았어"- 여자친구에게 성공해서 만나자고 이별을 통보함-여자친구 울면서 "니가 성공할길 바랄께- 한국시리즈에서 그 선수 역전홈런을 치자 관중석에서 헤어진 여친 눈물을 글썽임- 경기후 진한 포옹을 하며 엔딩... 뭐 이런 스토리네요.
    말한마디에 꼴찌에서 1위를 했다..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되죠.

    • BlogIcon 맹태 2009.10.19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맞는 말씀이네요.
      그래도 감독님의 말씀도 어느정도 자극이 되기는 했겠죠.
      동기부여가 된 선수도 분명 있었을테고.

      암튼 '만화책 주인공'으로 예를 들어주셔서 빵 터졌습니다.ㅋㅋㅋ
      방위병 출전규정에 대한 것은 참 재미있는 일화네요.
      감사합니다.^_^

    • BlogIcon 칸타타~ 2009.10.19 1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극적인 효과를 넣기 위해 포장을 한 건 사실입니다.
      저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해결됐다는 건 아니지만
      김응룡의 리더쉽 속에 분명히 선동열, 김성한 없이 치고 나가고자 하는 면이 있었죠.

      포장의 본 뜻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윤석구님께서 주장하듯 전혀 어불성설일 정도는 아니죠.
      당시 감독으로서도 대물급 선수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심했던 흔적들이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1996년 스포츠신문 3월~4월초 내용들을 보시면
      해태에 대해 하위권으로 전망한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문가들이 3강 3중 2약 혹은 3강 2중 3약 정도로
      평가했던 기억이나네요.
      그 중 해태는 중위권 혹은 하위권에 평가됐죠.

      (시즌 직전 전문가 예상 속에는 방위병으로 잠시 빠진 걸 시즌 전부라 계산하진 않았을테구요.
      방위병의 핸디캡 속에 5월 중순까지 해태가 6~8위를 전전하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던 점은
      당시 언론이나 팬들에겐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죠.
      다름 아닌 해태인데.)

      시범경기 성적도 안 좋았고 시즌 초반 출발이 안 좋으니 예견됐다는 기사도 있었고
      혹은 해태 이렇게 무너지나? 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죠.

      그리고 이종범이 방위복무 출전의 거의 마지막 세대였죠.
      원래 방위병 복무하면 홈 경기만 출전할 수 있었거든요.
      그게 1996년 시즌 중에 전역을 했죠.
      (1995년 이종범의 성적이 약했던 것도 방위 복무로 인한 출전 제한 때문이었죠.)

      1996년에 방위병 출전금지 조항이 생겼고,
      방위병 자체도 사라지면서 방위병의 홈 경기 출전도 영영 사라집니다.

      제가 이종범, 이대진 등이 방위병 복무한 걸 몰라서 안 넣은 게 아님을 밝힙니다.
      불혹이 된 이종범의 한국시리즈 맹활약에 감동 받아서 쓴 글이므로 이해바랍니다.

  4. BlogIcon 칸타타~ 2009.10.19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위병 이야기 나왔으니 말인데요.
    한국 프로야구의 마지막 방위였던 선수를 꼽아보겠습니다.
    시기가 약간 다르지만 거의 끝물(?) 방위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죠.
    위에 언급한 이종범, 이대진에 송구홍, 유지현, 박종호, 김한수, 정민철 정도가 기억나네요.

  5. 나불나불 2011.01.27 2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가지 잘못 표기해 놓으신게 있네요~ 1994년 해태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준플레이오프 자체를 치루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3위와 4위가 4경기(맞나)차 이상 벌어지면 준플없이 곧바로 플레이오프를 치룬다는 규정이 있었고, 4위 해태는 3위와 4경기 이상 벌어지며 준플레이오프를 하지 못했습니다... ㅎㅎㅎ


<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1) >


역시 이종범은 명불허전이더군요.

지난 KS 1차전의 2차례의 결정적인 적시타는 그가 날아다니던 90년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90년대 이종범은 말 그대로 신(神)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90년대 최고 타자는 양준혁, 90년대 최고 야수는 이종범"

90년대 이종범은 당시 야수가 보여줄 수 있는 궁극에 도달한 선수였고
더욱이 그는 큰 무대에 설수록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던 영웅이었습니다.

그 신들린 이종범의 90년대 한국시리즈 활약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열혈 야구팬인 저로선 그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 출처 : KBO

1. 1993년 한국시리즈

1993년은 대물급 신인들이 잔치를 펼친 시즌이었습니다.
이종범도 강력한 신인왕 후보였죠.

야수로서는 이종범, 양준혁, 투수로서는 이상훈, 박충식

이것만 해도 "기라성 같다"는 말에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죠.
93년에는 양준혁은 거의 MVP급 활약을 했고, 박충식은 14승에 한국시리즈 15이닝 완투.
또한 94년이 되자 신인 2년차 징크스라는 말도 이들에겐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종범은 거의 4할 타율의 타자, 이상훈은 18승 다승왕이 됐으니까요.
양준혁도 3할을 쳤고, 박충식은 200이닝대 14승 투수가 됐었으니까요.

▲ 오래 전에 떠돌던 사진이라 출처를 알 수 없어서 따로 표기하지 못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히 94년부터 이종범은 야수 중에서 단연 최고가 되는데
저는 그 최고가 될 시발점을 93년 한국시리즈로 봅니다.

사실 이종범은 한국시리즈 3차전까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리즈가 무르익어갈수록 드디어 이종범의 진가는 발휘되기 시작했죠.
공교롭게도 4차전까지 불리하던 해태가 승기를 잡아가던 것도
이종범이 살아나던 5차전부터였습니다.

4차전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1타점 2루타를 터뜨리며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5차전 1:0이던 3회말, 좌전안타로 출루한 이종범은 2루, 3루 도루를 연거푸 성공하기에 이릅니다.
이른바 "이종범 출루 = 3루타" 공식의 막을 연 것이었죠.

일명 "이종범식 휘젓기"는 상대팀의 전 수비수들을 긴장케 만들었는데요.
후속타자였던 홍현우가 2루수를 겨우 넘어가는 외야 플라이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종범의 발을 의식한 우익수 이종두가 급하게 서두르다 에러를 범해 1점을 헌납하고 말았죠.

특히 팽팽한 투수전 속에 1:0에서 2:0이 되느냐, 1:1이 되느냐는 큰 차이였습니다.
왜냐하면
 해태는 1승 1무 2패로 열세였기 때문에 여기서 패하면 벼랑 끝으로 몰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 상황에서 팀의 분위기를 이끈 선수는 다름 아닌 이종범이었죠.

여기서 이종범이 남긴 기록 한 가지를 보시겠습니다.

한국시리즈 1경기 최다도루 - 3개 (1993년 10월 24일 한국시리즈 5차전)


한국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은 7차전, 그 주인공 역시 이종범이었습니다.

1회에 우전안타로 쳐낸 뒤, 2루를 훔쳤고, 홍현우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선취득점을 일궈냈죠.

3회에도 빠른 발을 활용해 내야안타를 만들어낸 뒤, 역사에 남을 몇 가지 기록을 남겼습니다.

한국시리즈 도루 7개 - 역대 최다타이 (84년 장효조 7개)
한국시리즈 최다연속도루 성공 7개 - 신기록

1:0으로 앞선 4회에도 2사 1,2루 상황에서 좌익선상 적시타를 날려 승세를 굳혀갔습니다.

이런 이종범의 맹활약은 한국시리즈 MVP 투표에도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전체 48표 가운데 45표를 휩쓸었거든요.
신인왕을 놓친 아쉬움을 한국시리즈 MVP로 보답받는 순간이었습니다.

< 에피소드 >

당시 해태:삼성의 한국시리즈는 역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었습니다.

* 역대 1위 - 1993년 10.25일 MBC 한국시리즈 32.1%
* 역대 5위 - 1993년 10.21일 KBS 1TV 한국시리즈 26.2%

이런 시청률이 가능했던 건 말 그대로 별들의 잔치였기 때문이었죠.
5차전의 암표는 7~8만원을 호가했다고 하는데, 당시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상당한 금액이었죠.


이종범의 또 다른 모습을 보시려 하신다면 아래를 찾아주시면 됩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에서의 이종범
(1) 1996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2) 1997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Posted by 칸타타~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clavoswl 2009.10.18 1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람의 아들이 괜히 붙은 별명은 아니더군요...마흔이라는 나이에도 참 대단한 이종범...해태 시절이 떠오릅니다. 홧팅!!

  2. 호랭빠 2009.10.18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3년이면 내가 코흘리개인데 그당시두 종범신은 날라다녔네여. ㄷㄷㄷㄷㄷ
    암튼 좋은글 잘봤슴니다.

  3. 바람의 조카 2009.10.18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범신의 과거 이력도 화려했네요. 예전 일이라 말만 들었는데 우왕ㅋ굿ㅋ

  4. 삼성팬 2009.10.18 1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과 당시에 야구봤던 기억이 나는데 이종범은 진짜 너무 힘든 선수였습니다.

    • BlogIcon 칸타타~ 2009.10.18 1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람의 아들이란 말도 때론 약했죠.
      이건 뭐 그냥 태풍이었습니다.

      일단 출루하면 2루 혹은 3루에 있으니.
      역대 1회 선두타자 홈런 제일 많은 선수이니
      장타면 장타, 주루면 주루, 수비면 수비.
      팔방미인이었죠.

  5. 용택신 2009.10.18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엘지팬이구여.
    이종범이 큰경기에 강하다는걸 알고있었지만
    93코시에서 이런 일이 있는줄은 몰랐어여.
    엘지팬 입장에선 97코시가 더 뼈아팠습니다.
    시리즈물인것 같으니 3편까지 지켜볼께요 ^^
    암튼 잘봤습니다.

  6. 맹태 2009.10.18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왕..종범신..역시 대단합니다.
    양신은 어떻습니까? 칸타타님의 체계적인 분석 기대합니다.^^

  7. 야구를 몰랐을때.. 2009.10.18 1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번 타자는 무조건 홈런도 치고, 수비도 최고에..발도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해태의 팬은 아니었지만..
    이종범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8. BlogIcon PC지존 2009.10.18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글 잘봤습니다
    저는 이종범선수 말도안되는 수비가 기억에 남는군요
    도저히 이해할수없는 수비 ㅋㅋ
    시간되시면 정리좀 부탁드립니다^^

  9. 근데요 2009.10.18 2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위에 저 아저씨 사진은 광고에요? 아니면 저분이 여기 관리자?
    아니면 추종자?;;;
    이런곳에 왠 스포츠 기사?;;;

    • BlogIcon 칸타타~ 2009.10.18 23: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국회의장 비서실에 근무하는 직원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블로그이구요.
      이 곳은 팀 블로그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러 카테고리 중에서 이 곳은 와글와글 정보마당이란 곳입니다.
      대부분 김형오 의장에 관한 주제를 다루지만
      이 란은 직원들 개인적인 문화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글을 적는 곳이구요.
      이종범을 주제로 삼은 건 요즈음 한국시리즈가 치러지는데다
      제가 열혈 야구팬인지라 개인적인 관심사를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죠.

  10. 기파랑 2009.10.18 2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팀블로그인가, 링블로그인가 뭐 그런거 아닌가요??ㅜ 보아하니 국회의장 관계자들 팀블로그에서 따로 작성하는 그런 내용같은데...잘 모르겠네요..자세힌ㄴ....

    • BlogIcon 칸타타~ 2009.10.18 23: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블로그입니다.
      팀 블로그 형태로 운영되고 있고
      와글와글 정보마당이란 카테고리에서 글을 쓴 겁니다.
      이 카테고리는 개인적인 문화 취향에 따라
      직원들의 끼를 발휘하는 공간입니다.
      그에 맞게 제가 열혈 야구팬이라서 글을 올린 겁니다.
      거부감 없이 글을 보시면 됩니다.
      야구팬으로서 야구 글 쓴 것이니까요.

  11. KIA팬 2009.10.19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아 팬으로써 이런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호호

  12. 이강철팬 2009.10.19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 의원실 비서관입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