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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故 임수혁 선수의 모교인 '봉천초등학교'입니다.
원래 그는 방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에 다이어트 삼아 운동을 하다보니
결국 5학년 때 야구부가 있는 봉천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사이에도 그의 모교에서는 후배 야구선수들이 맹활약하고 있었고
또 다른 후배들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운동장을 거닐며 故 임수혁 선수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노라니
가장 기억에 남은 3경기가 떠올랐습니다.


▲ 스포츠조선 2000년 4월 19일자



1999년 플레이오프 최종 7차전 (대구) - 기적 같은 대역전극의 초석이 되다

1승 3패로 몰린 롯데가 내리 2연승을 하며 최종 7차전을 맞이했습니다.
이승엽, 김기태, 김종훈의 홈런을 앞세운 삼성이 5:3으로 앞서고 있었죠.

2점차 뒤진 9회초를 맞이한 롯데.
공필성의 안타로 회생의 불씨를 살린 뒤 임수혁이 대타로 들어섰습니다.

임수혁은 바깥쪽 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른 뒤,
무언가 직감한 사람처럼 두 팔을 번쩍 들며 1루로 달려갔죠.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홈런!!!

이 동점포에 힘을 얻은 롯데는 연장전에 터진 김민재의 적시타에 힘입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동점홈런의 가치가 높았던 것은 상대투수가 최고의 마무리 임창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플레이오프 경기'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야구팬들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새긴 임수혁은 타격에 소질이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공격형 포수로 호쾌한 방망이를 과시하던 그가 그라운드를 떠난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이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무척 슬프군요.

과연 그가 쓰러진 당일,
무슨 일이 있었길래 팬들이 좋아하는 한 선수를 하늘 나라로 보내야 했던 것일까요?



▲ 스포츠서울 2000년 4월 19일자



2000년 4월 18일 (잠실) - 돌아오지 못한 그라운드

임수혁의 소속팀 롯데는 LG를 맞아 잠실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2회초에 유격수 유지현의 실책으로 출루한 임수혁은 우드의 안타 때 2루를 밟게 되었죠.
7번타자 조경환의 타석 때 갑자기 쓰러진 그는 더 이상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병상에 눕기 전까지 임수혁은
1992년 부정맥의 판정과 함께 운동을 해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심장질환약을 복용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쓰러진 뒤 5분 안에는 누군가에 의해 심장 마사지가 시행됐어야 했는데
10분이 넘도록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이른 것이었죠. 
이후 임수혁은 10년간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 스포츠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습니다.
임수혁의 부친인 임윤빈씨의 "제 2, 제 3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당부에 걸맞을 만큼
당직의사제도를 비롯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쨌든 이 사고 후 며칠 간 경과를 보니 더 이상 임수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됐구나 싶었습니다.



▲ 일간스포츠 2000년 4월 19일자 (당시 분위기와 열악한 야구 환경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대구) - 꿈에서라도 통했다면

2002년 한국시리즈(삼성-LG)는 작년 한국시리즈(기아-SK)와 더불어서
역대 한국시리즈 가운데 가장 극적인 명승부로 기억합니다.

특히 최종전(6차전) 9회말을 시작할 때까지 9:6으로 엘지는 승기를 잡고 있었고 
삼성은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이승엽의 3점포와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시리즈 기간 동안 맹타를 휘두른 마해영은 MVP에 선정됐습니다.

"(임)수혁이 형이 병상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운동을 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극적인 끝내기홈런을 날린 마해영의 소감 중 한 구절입니다.
(당시 삼성은 마해영의 맹활약 덕분에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습니다.)

최종전 전날 임수혁의 꿈을 꿨던 마해영은 아침에 일어난 뒤
좋은 징조라 생각하며 그라운드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역대 손꼽히는 한국시리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낸 주인공이 됐던 것이죠.



▲ 역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끝내기홈런을 작렬한 마해영 -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임수혁과 마해영은 대학(고려대), 상무에서 한솥밥을 먹은 절친한 선후배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롯데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팬들은 이들을 두고 '마림포'라고 불렀습니다.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에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고
선수협 문제 등으로 마해영은 삼성으로 이적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마림포를 볼 수 없게 되었죠.

그래서 2002년 한국시리즈 MVP가 된 마해영의 소감이 더욱 인상 깊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수혁 선수가 병상에서 일어난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 궁금했지만
이제는 영영 아무 말도 들을 수 없게 되었군요.



▲ 월간 베이스볼 1998년  


임수혁은 1998년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돌아봤을 때 가장 불만스러운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야구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것."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자상한 가장이었다고 합니다.

사고가 났던 당일, 상경하기 전에 임수혁은 스킨로션을 사기 위해 부인과 함께 백화점을 들렀습니다.
모처럼 데이트의 분위기를 즐겼던 그는 부인에게 "일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해서 미안하다"며
"원정경기를 마치면 모처럼 다 함께 영화 한 편 보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때가 의식을 갖고 있던 임수혁이 부인과 함께 했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경기장에서의 비보를 들게 된 부인은 아이들에게 차마 아빠의 슬픈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아빠가 멀리 전지훈련을 떠났다"며 둘러댔다고 합니다.



▲ 손문상 화백의 <얼굴> 중 '돌아오지 않는 주자 임수혁' 편
(지난 7일 이 그림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글귀가 새겨졌더군요.)



이후 10년간 병상을 지키고 살림살이에 육아까지 맡아
고생만 한 임선수의 부인과
그 고통을 함께 안은 가족들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지더군요.


임수혁이 병상에서 일어나 그라운드를 누비길 기대했던 
많은 야구인들과 팬들의 바람도 이제 물거품이 됐습니다.

'제 2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 '제 1의 임수혁'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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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9 15: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치료가 조금만이라도 빨랐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정말 안일한 야구의료체계에 한숨만 나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09 16: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은 말씀입니다.
      응급처치라는 건 시각을 다투는 거라
      사고가 터지고 5분 안에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데.
      아직 우리 나라는 멀었다는 느낌입니다.

      야구장 문제도 그렇고.
      전담의사제도도 제대로 시행되는 건 광주 밖에 없다고 하고.

  2. BlogIcon 커피믹스 2010.02.09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포츠에 무지한 저는 그런 사연이 있는줄 몰랐네요
    안타깝습니다. 응급처치만 했어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10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 발인을 했다는데,
      이제 병상의 모습조차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민방위 훈련 가면 응급처치에 관한 부분을 교육받는데
      임수혁 선수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매년 화재로 인해 소방관들은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대형화재로 소방관들이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니 
국민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김형오 의장은 지난 주에 구세군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진 데 이어
이번 주에는 앞서 언급한 고마운 소방관들이 근무하는 곳, 관악소방서를 찾았습니다.


관악소방서에 도착한 김
의장은 여러 국회의원과 소방관계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현지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관악소방서의 관할지역에는
좁은 골목길을 둔 주택가도 많은데다
관악산, 서울대학교에
고시원, 원룸이 밀집된 고시촌이 있어서
화재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소방관들이 신경써야 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겠죠?


김형오 의장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는
소방관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방명록에도 새겨 넣었습니다.


이 방명록을 보며,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소방관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현황보고를 들은 우리들은 자리를 옮겨서 소방장비가 전시된 곳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김형오 의장은 소방관 복장과 헬맷을 착용하더니 이렇게 외쳤습니다.

"출동~!"


김형오 의장도 이렇게 복장과 장비를 갖추고 나니 영락없는 소방관이군요.
그런데 이 차림새를 보는 순간, 최근에 있었던 '희망탐방' 때가  떠오르지 않으세요?
기억 안 나신다구요?


좌측 사진은 '백두산부대' 방문했을 때 군복 입었던 모습,
우측 사진은 '대한제강(부산)' 견학 당시 화생방 훈련 복장(?)을 착용했던 장면입니다.

이제는 기억나시죠?

직접 입어보고 써보고 느껴봐야 만족하는 
김형오 의장의 체험 본능(?)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ㅎㅎㅎ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나니 허기지더군요.
반갑게도 점심식사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뉴는 갈비탕~!


점심식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소방서에서 먹는 갈비탕은 어떤 맛이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식사를 마친 뒤, 우리들은 오성종 소방장(좌)와 이상무 소방교(우)를 통해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 상황에 대한 고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김형오 의장은 이번에 상정된 예산안이 통과되면
지방교부세의 형태로 내려갈 것이므로,

내년부터 3교대 근무가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소방관들의 바람만큼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보다 더 나아지길 기대해봅니다.


맛있는 갈비탕 식사를 마친 뒤, 
우리들은 관악소방서로부터 두 가지 선물을 받았습니다.

(값진 선물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하나의 선물은 '불새'라는 도자기(좌)인데,
찻잔에 119를 형상화한 것으로
솜씨 좋은 관악소방서 서장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심폐소생술 절차와 방법을 담은 타올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뇌는 단 몇 분만 산소 공급이 끊겨도 그 기능을 상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심폐소생술을 통해 죽음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일은 없을 겁니다.
저도 타올에 새겨진 심폐소생술을 숙지해서 응급시에 조치할 수 있도록 대비하겠습니다.


식당을 나온 우리들은 소방관 여러분들과 함께 기념촬영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 의장님 너무 빨리 일어나셨어요. 다시 찍을게요~"


"다시 찍겠습니다. 김~치~" 찰칵~!


김형오 의장은 관악소방서 소방관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버스에 올랐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방문에 신경써주신 관악소방서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손쓸 수 없는 재해를 겪게 됐을 때
국민들이 마지막으로 믿는 것은 바로 소방관 여러분들뿐입니다.

소방관 여러분들 힘내십쇼~! 화이팅~!!!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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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드자이너김군 2009.12.22 11: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의미 있는 곳에 다녀 오셨군요.
    소방관들이 너무 홀대 받는것 같아서 전 가끔 가슴이 아플때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