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로그 | 미디어로그 | 방명록  

‘지켜야 할 약속’과 ‘가야 할 먼 길’

김형오(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버킷 리스트>(모건 프리먼, 잭 니콜슨 주연)라는 영화가 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노년의 두 남자가 병실을 뛰쳐나와 여행길에 오른 뒤 살아생전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지우고 또 새로 만들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아 나가는 로드 무비이다.

한국 영화 <해바라기>(김래원 주연) 역시 교도소에서 갓 출감한 청년이 낡은 수첩에 적어 놓은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 배경에 깔고 있다.

이들의 수첩은 어떤 소망들로 채워져 있을까.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버킷 리스트>), 김밥 싸 들고 소풍 가기, 문신 지우고 대중목욕탕 가기(<해바라기>) 등 일견 평범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절실하고 소중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두 영화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버킷 리스트’는 크고 작은 ‘꿈의 목록’ ‘희망의 리스트’이다. 또한 나는 앞으로 이런 삶을 살겠다는 약속과 다짐, 의지와 신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길은 ‘행복’을 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버킷 리스트는 종착역이 ‘행복’이라고 적힌 여러 장의 티켓과도 같다.

 

영화 버킷리스트 포스터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서 해피엔딩의 주인공을 꿈꾼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고 싶어 한다. 내가 다녀간 세상에 무언가 의미 있는 흔적, 가치 있는 이름으로 남겨지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버킷 리스트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성취를 하려면 도전해야 하고, 꿈을 이루려면 꿈을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도달하지 못하면 어떠리.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훗날 적어도 그 꿈에 몇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버킷 리스트의 주인공은 김구 선생이다. 고등학교 때 『백범 일지』 부록으로 수록된 「나의 소원」이란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던가. 백범의 버킷 리스트는 오직 하나였다. 첫째도 ‘대한 독립’, 둘째도 ‘우리나라의 독립’, 셋째도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었다.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내 과거의 칠십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도 이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성하려고 살 것이다.”

 

나에게도 버킷 리스트가 있다. 크게는 손가락 다섯 개 안쪽으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소소한 것까지 나열한다면 웬만한 수첩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어떤 목록은 이미 이루어 지워진 것도 있고, 앞으로 새롭게 써나갈 항목도 있으리라.

나는 그 리스트를, 나의 소망인 동시에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나와의 약속도 있고 가족과의 약속, 국민과의 약속도 있다. 시대와의 약속, 역사와의 약속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남은 생을 온전히 이 소망을 이루고 이 약속을 지키는 데 바칠 생각이다. 그 중 몇 가지를 여기에 적어 본다.

 

영어 스피치.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뒤늦게 배워 보려고 애는 쓰고 있지만 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귀도 잘 안 들리고 입도 쉽게 안 열린다. 외교학과 출신에 국회 외통위 소속으로서 영 체면이 안 서는 노릇이다.

2010년 3월, 제122차 IPU총회 대표연설을 하는 모습


그래도 기회만 닿으면 나는 영어로 스피치를 하고 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개막된 아시아정당국제회의, 그리고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할 때도 영어를 사용했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주한 외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국내 행사에서 축사를 할 때도 나는 웬만하면 영어로 스피치를 하고 있다. 어느 날 그럴싸한 자리에서 그럴싸한 내용으로 적어도 5분은 머리를 숙이지 않은 채 (원고를 보지 않고) 영어 스피치를 하는 꿈은 그래서 내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을 차지하고 있다.

 

아내와 손잡고 여행 다니기.

바쁘다는 핑계로 좀처럼 가족 여행을 할 기회가 드물었다. 국회의장 재임 시절의 공식적인 해외 순방, 국정감사 기간을 틈탄 우리 땅 탐방에 몇 차례 아내를 동반한 것이 고작이다. 그때마다 소녀처럼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탐방의 결과물인 두 권의 책(『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을 쓰는데도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여행이란 투자 대비 효과가 아주 큰 ‘생산적 소비 활동’이다. 심신 건강 유지에도 여행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 정계에서 은퇴해 시간이 자유로워지면 아내와 손을 잡고 추억과 낭만, 충전과 활력을 얻기 위해 자주 길을 떠날 생각이다. 그 여행길에 가끔은 손자손녀들도 같이 데려가고 싶다.

 

『비잔틴 최후의 날』(가제).

이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써 보고 싶은 대하(大河) 장편실록이다. 그 작업을 위해 나는 수많은 자료들을 섭렵했고, 지도에는 없는 도시 ‘이스탄티노플’에 세 번 다녀왔다. 이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의 합성어, 내가 개념 짓고 명명한 도시이다. 현재의 이스탄불과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화해’와 ‘공존’의 상징 언어이다.

세계사의 물길을 바꾼 기념비적인 사건…. 1453년 이슬람 세력(오스만 투르크)이 기독교 세력(비잔틴 제국)을 포위한 채 총공격을 감행한 콘스탄티노플 전쟁은 세계 전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였다. 이 전쟁으로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서양의 세계사에서는 대단히 소홀하게 취급되고 동양의 사학자들은 별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 ‘역사적 대사건’의 집필에 감히 도전하고 싶다. 서양의 굴욕도, 이슬람의 오만도 아닌 진실의 편에 서서 써 보고 싶은 것이다. 나의 체력·능력·상상력·정의감을 남김없이 소진할 그런 시간이 주어지기를 나는 간절히 기대한다. 좀 더 자세한 내용과 취지를 알고 싶다면 내 블로그(www.hyongo.com) 에 들어와 보기 바란다. 

고향의 작은 집에서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기.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지만, 나이 들수록 고향과 옛 친구들이 그립다.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더욱 더 또렷이 보이고 선연하게 떠오르는 것이 어머니와 고향이다.

내 고향 고성에 작은 집을 짓고 채마밭의 푸성귀가 시들지 않을 만큼 자주 들르고 머물며 노년을 보내리라. 이미 늙어버린 어린 벗들과 어울려 밭에서 갓 따온 상추를 된장에 푹 찍어 막걸리 한두 잔을 나누는 것도 내 버킷 리스트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신을 지키면서 정치 발전 이루어 내기.

정치를 시작한 이래로 나는 언행일치와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다. 그 바탕 위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나라, 내가 만들고 싶은 지역구를 설계하고 실행에 옮겨왔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정치, 거짓말과 덮어씌우기를 안 하는 정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 국민과 함께 울고 웃는 정치, 이상만이 아닌 현실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신념을 최고 가치로 삼는 정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정치…. 나는 그런 정치인으로 내 정치 인생을 마무리 짓고 싶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의 흐름이 조성될 때마다 무력감과 좌절감이 찾아온다.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며 안간힘을 쓴다. 그러면서 ‘다시 웃으며 시작하자’ 다짐하곤 한다.

2010년 12월, 본오복지관에서

헬렌 켈러의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 보라. 내일이면 후각을 잃을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 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보지 못할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그렇다, 마지막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은 그래서 모두 소중하다. 『탈무드』에서도 “모든 날들을 생애의 첫날처럼 그리고 마지막 날처럼 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후회 없는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살다 보면 내 삶의 고삐가 느슨해지고, 신념의 나사못이 헐거워졌음을 느낄 때가 있다. 각성과 다짐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경구처럼 한 편의 시를 떠올리곤 한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이다. 그 시의 마지막 부분을 나지막이 읊조리면 새 힘이 솟으면서 나의 버킷 리스트가 다시금 살아난다.

“숲은 사랑스럽지만 여전히 깊고 어둡다. /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신동아> 2011년 4월호 별책 부록에 수록된 글입니다.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프라미스 2011.03.22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읽고 나니 나도 수첩을 사고 싶어집니다.
    나와의 약속, 가족과의 약속, 세상과의 약속을 하고 싶어집니다.
    호야님, 버킷 리스트 꼭 이루세요~~~.

  2. 선플라워 2011.03.29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를 웃게 하는 건 희망입니다"
    영화 포스터 카피가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그 희망을 무참히도 짓밟힌 한 젊은이,
    그 처절한 몸부림이 생각나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내 목에 밧줄이 놓이기 전에>란 책이 있습니다만,
    나는 인생의 <그린 마일>을 걸어가기 전에
    과연 무엇을 꼭 하고 싶고 해야 할 것인가,
    그런 것들을 이 글 읽으며
    다시금 되새겨 보았습니다.

  3. 갈림길 2011.03.30 07: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버트 프로스트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이었을까.
    <가지 않은 길>이었을까.
    어떤 이들에게는 가지 않은 길이
    버킷 리스트로 남기도 한다.

  4. 저리보고 2011.04.01 08: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언제부터 인가 "버킷 리스트"라는 단어를
    맘에 들었습니다. 저도 수첩에 나와 가족과의 약속
    우리 회원님들과의 약속을 "버킷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버킷 리스트의 크고 작은 "꿈의목록"을
    희망의 리스트, 또한 나는 앞으로 이런삶을 살겠다는
    약속과의 다짐,의지와 신념의 표현,이런 단어가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께 배우고 좋아 하게 되었나봅니다.

  5. 비스킷 2011.04.07 08: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같고 바삭바삭 고소한 비스킷 같은 내 버킷 리스트를 위하여!

  6. 스마일어게인 2011.04.24 1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과 수녀님의 함박웃음이
    봄날 순백의 목련꽃처럼 참으로 화사하십니다.

사진과 함께 하는 이스탄티노플 역사 기행 4
                              - 전쟁의 한복판에서 전하는 종군 기자 리포트



   ‘술탄’이란 아이디를 쓰는 분이 나의 네이버 블로그에 두 개의 덧글을 남겨 놓았습니다. ‘이스탄티노플’ 이야기 1, 2편을 읽고 나서입니다. 몇 줄 발췌해 옮겨 보면….


  “지금까지 내가 아는 한 누구도 이처럼 이스탄불을 철저히 뒤지고 오스만 제국의 영광이자 비잔틴 제국의 오욕인 1453년 5월 29일의 역사를 깊은 영혼과 가슴으로 파고들었던 이는 흔치 않았다.

  이스탄티노플! 이런 이름은 이 도시에 빠져들어 작은 돌길을 거닐며 지난 세월의 바람 소리와 1550년 역사가 켜켜이 쌓인 성벽과 자유자재로 대화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이름이다. 바로 공존과 화해의 이름이다.

  이 도시의 오랜 돌과 바람과 역사는 그들의 아픔과 사연을 온몸으로 읽어내려 준비된 한 인간에게 드디어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 같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너무 기대된다. 이스탄티노플!!! 앞으로 나도 이 도시를 그 분의 저작권 허락을 받아 이렇게 부르고 싶다.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1453년의 생생한 전투 장면을 마치 생중계하듯이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것도 너무 잘난체하는 전문가의 어려운 설명이 아니라, 제법 유명한 한 공직자의 해박한 지식과 철저한 고증으로 전해주는 묘미가 더하다.”

 

  아이디(술탄)를 클릭했더니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의 블로그로 연결되더군요. 대한민국 최고의 이슬람 전문가. 내가 터키로 떠나기 전 자문도 해주었던 이 교수로부터 그런 과분한 칭찬을 듣고 보니 힘이 불끈 나면서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나로선 벅차기만 한 이 프로젝트에서 발을 빼기가 이제는 힘들어졌구나 싶어서입니다.

  정말입니다. 이희수 교수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격려와 관심이 아니었더라면 퇴근을 새벽 한 시 이후로까지 미루어가며 사진을 고르고 캡션을 다는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내가 이름 지은 도시 ‘이스탄티노플’은 무제한 사용을 허가합니다. 한 푼의 저작권료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많이만 사용해 주십시오. 간혹 저작권자를 언급해 준다면 더없는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누구라도 ‘이스탄티노플’을 이름 부르는 순간 우리는 시장(市長)도 없는 그 도시의 명예시민이 되는 겁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백마를 탄 술탄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3중 성벽을 가리키며 강력한 함락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창과 칼과 활과 도끼로 무장한 채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여덟 명의 호위병들은 술탄의 최정예 부대인 예니체리 복장을 하고 있다. 파노라마 박물관 전면 벽화 제작에 참여한 화가들이 각자 자기 얼굴을 따서 그렸다고 한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오늘은 처음 소개하는 ‘사진 같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뒤에 또 언급하겠지만 ‘이스탄티노플’에 새로 생긴 세계 최대의 ‘파노라마 극장’에 있는 어마어마한 그림의 중요 장면들을 한 컷씩 설명하면서 세계사를 바꾼 1453년 5월 29일, 그 치열했던 전쟁의 현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내가 전사(戰士)가 되어 전장의 한복판에 뛰어든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오직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고 죽여야만 존재할 수 있는, 전쟁의 그 무자비한 야성 본능이 실감나게 펼쳐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정리하다 보니 땀으로 목욕을 한 채 황성 옛터와 허물어진 성곽 사이를 걷고 또 걷던 나와 우리 일행들 모습이 그립게 떠오릅니다. 어쩌면 콘스탄티노플 공격을 위한 작전 지도를 만들려는 오스만의 병사들처럼 우리는 테오도시우스의 성벽과 그 주변을 샅샅이 탐사했습니다.


  이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들이 여러분을 550여 년 전 격전의 현장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라면서 육지 성곽 편의 마감 인사를 갈음합니다. 다음 편은 골든 혼 성곽으로 이어집니다.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곳은 크게 세 군데입니다. 블라케르나에 황궁의 끝 부분에서 카리시우스 문까지, 거기서 성 로마노스 군문까지, 또 거기서 레기움 문 근처까지가 집중 포화를 받았습니다. 리쿠스 강을 중심으로 1킬로미터에 이르는 메소테이키온 성벽 지역은 그 중에서도 핵심부였습니다. 공격과 수비 모두 이곳에 집중되었습니다. 방어군 입장에서 가장 취약점이 많았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술탄(메메드 2세)은 이곳 성벽 400미터 앞에 본진을 쳤고, 전투시에는 성벽 코앞까지 가서 병사들을 독려했습니다. 비잔틴군으로 하여금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고 인해전술로 밀어 부쳤습니다. 황제(콘스탄티누스 11세) 역시 이곳을 자기 무덤이라 생각하고 병사들과 한 몸이 되어 싸웠습니다. 파노라마 극장의 전투 장면들도 바로 여기를 중심 배경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화염의 위력인가. 보병과 기마병을 총동원해 온갖 무기를 앞세우고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진격하는 오스만 투르크군 병사들에게 비잔틴군이 불 폭탄 세례를 퍼붓고 있다. 오스만 병사들과 함께 그들이 타고 온 말들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채 화형식(火刑式)을 당하고 있다.
창검을 들고 방패·갑옷·투구 등으로 무장한 기병들은 (유럽 및 아시아 지역에서 총동원되다시피 한) 오스만 정규군이다. 흰 두건을 쓴 정예 예니체리 부대들도 칼날을 번뜩이며 무서운 기세로 내닫고 있다. 오른쪽으로 복장과 무기가 각양각색인 비정규군 바시바조우크(Bashi-bazouks)의 모습도 보인다. 그 뒤로는 오스만 투르크군의 막사 수천 개가 비온 뒤 죽순 돋듯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막사와 투석기 너머로 아득히 보이는 것이 금각만(골든혼)이다.

* 그리스 화염 : 'Greek Fire'로 불리던 화염 방사기 방식의 불 폭탄. 콘스탄티노플 방어에 탁월한 진가를 발휘했다. 이 전쟁 800년 전부터 사용되어 육상·해상·지하 땅굴전 등에서 위력을 나타냈다. 발화재는 지하 석유류에서 채취해 썼지만 정확한 제원(諸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피아(彼我)조차 구별할 수 없는 아수라장 전쟁터. 공격에 나선 오스만 보병들의 등 뒤에서 대포는 무자비하게 작렬했다. 목숨은 도구에 불과할 뿐, 오로지 전진 또 전진이었다. 물러서거나 도망치려는 순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군의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무너지는 성벽더미와 함께 두 제국의 병사들이 서로 뒤섞여 성 아래로 아득하게 추락하고 있다. 나뭇잎처럼.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전투는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죽느냐 죽이느냐, 무너뜨리느냐 지켜내느냐. 해자(垓子/垓字)는 이미 메워지고 성벽은 허물어졌다. 오스만 투르크군과 비잔틴 제국의 병사들이 외성벽을 사이에 둔 채 사생결단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림 왼쪽 끝 가운데 성벽에는 대포알이 박혀 있다. (아직도 성벽 어딘가에 대포알이 박혀 있다는 파노라마 박물관장의 말을 듣고  우리는 그 대포알을 찾아 얼마나 성곽을 헤매고 다녔던가?!) 주탑마저도 휑하게 구멍이 나 버렸다.
*공성탑(攻城塔)으로는 불길이 치솟고 하늘은 자욱한 포연(砲煙)으로 뒤덮였다. 정규군 뒤에서 출격 준비를 마친 최정예 예니체리군이 함락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제국의 수도로 군림했던 이 도시의 운명도 여기서 끝나고 마는 것인가.

 

* 공성탑 : 오스만 투르크 쪽에서 비잔틴 제국의 성 안으로 진격하기 위해 성벽 높이와 대등하게 만든 사다리 구조를 지닌 탑. 목재를 썼으므로 만들기 쉽고 옮기기 편했던 반면 튼튼하지 못하고 불에 잘 타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수차례에 걸친 비자틴군의 기습으로 여러 대가 파괴되어 실제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보름달(5월 24일)이 뜬 뒤로 닷새가 지나 달이 **터키 국기 모양으로 기울어가던 5월 29일 새벽, 화염과 포연이 콘스탄티노플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캄캄했던 밤하늘이 대포와 그리스 화염 불기둥으로 인해 대낮같이 밝아졌다. 그림 왼쪽 주탑 위는 거인 하산이 진두지휘하는 30명의 결사대가 콘스탄티노플 성에 올라가 최초로 오스만 투르크의 깃발을 꽂는 장면. 붉은색 오스만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쌍두 독수리가 그려진 비잔틴 국기는 성벽 아래로 떨어질 듯 매달려 있다. 콘스탄티노플을 주요 상업 기지로 삼고 있던 동맹국 베니스의 상징인 '성 마르코의 사자'도 이 순간 같은 운명을 맞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 오스만 영웅은 비잔틴군의 강렬한 저항으로 온몸에 화살과 돌 세례를 받고 장렬하게 최후를 맞고 만다. 승리에는 영웅적 희생이 따르는 법. 성벽 함락의 결정적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

* 보름달 : "보름달이 떠 있는 한 성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구전이 당시 널리 전파돼 있었다. 이날(5월 24일)은 공교롭게도 월식까지 있었다.
** 터키 국기 : 터키 국기는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고 이는 오스만 투르크 군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파괴된 성벽 사이로 정규군을 앞세운 최정예 예니체리군이 깃발을 나부끼며 물밀듯이 성 안으로 쳐들어가고 있다. 함성과 말발굽 소리가 대포 소리와 뒤섞여 하늘을 찢어발길 것만 같다. 술탄(메메드 2세)은 첫 성곽 돌파자에게는 큰 포상을 내리고, 모든 병사들에게 3일간의 도성 약탈권을 보장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오른쪽 중앙에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비잔틴의 상징인 독수리상도 곧 날개가 꺾인 채 추락하겠지.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파노라마 박물관에 그려진 *우르반의 대포와 대포알. 오스만 병사들이 발포 준비를 하고 있다. 거포는 포신 길이가 8미터 이상이었고 돌로 된 포탄은 600킬로그램을 넘는 무게였다. 헝가리인 대포 기술자 우르반을 고용한 술탄의 전략은 탁월했다. 헝가리는 당시 비잔틴 편이었고 우르반은 비잔틴 황제 밑에서 일했었다. 그러나 네 배의 급료와 충분한 대포 제작비를 지원하겠다는 술탄 쪽으로 기꺼이 몸을 팔았다. 우르반은 결국 전쟁터에서 죽고, 유럽의 강국 헝가리는 그 후 오스만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역사는 아이러니인가, 냉혹한 것인가.

* 우르반의 대포 : 우르반의 거포(巨砲)는 한 번에 세 발에서 일곱 발까지밖에는 쏘지 못했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화약이 포신을 달구어 열도 식히고 대포를 정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완책으로 거포와 함께 작은 대포들이 동원되어 성벽 파괴의 결정타 역할을 했다.


 

파노라마 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맨 앞 페이지 왼쪽 아래에 박물관장과 함께 찍은 내 사진이 방문 소식과 함께 올라 있었다. 그날 나는 방명록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오스만 투르크와 술탄 메메드 2세의 용기와 지혜, 그리고 포용과 관용의 정신이 오늘도 위대한 터키 국민들에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파노라마 박물관은 지난해 1월 31일 문을 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360도 반원형의 파노라마 극장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건물 내벽 전체가 하나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그림 크기로도 세계 최대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카메라로는 그 전경(全景)을 한 컷에 담을 수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극장 측의 양해 아래 부분부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캡션 역시 마찬가지. 내가 읽고 겪고 보고 들은 지식은 물론 약간의 상상력까지 동원해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임을 밝혀 둔다.

▲ 군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우르반의 대포와 대포알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가장 큰 거포는 모두 소실되고 그보다 작은 대포들만 남았다. 그래도 이 대포는 무게가 자그마치 15톤(포신 길이 424센티미터, 구멍 지름 63센티미터)에 이른다. 내 몸 하나쯤은 거뜬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이다. 대포알은 285킬로그램. 그러니 이보다 두 배 이상 더 크고 무거웠을 우르반의 거포는 어떠했을까. 이런 대·중·소 대포들로 49일 동안 쉬지 않고 포를 쏘아댔으니 제아무리 철옹성인들 온전할 수 있었으랴
.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군사 박물관 대형 홀에서 감상한 오스만 군악대(메흐테르, Mehter)의 연주. 지축을 뒤흔드는 우렁찬 북과 피리 소리로 자국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면서 비잔틴 병사들을 주눅 들게 한 심리전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깃대를 들고 있는 두건 쓴 단원들은 예니체리 복장을 하고 있다.
오스만 군악대는 세계 전사(戰史) 상 최초로 등장한 군악대로서 현대 군악대의 효시이다. 서구 열강 군악대도 모두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나는 군사 박물관에서 그 웅장한 연주 소리를 들으면서 동시에 550여 년 전 아야 소피아를 비롯한 비잔틴 제국 크고 작은 교회들의 종소리를 들었다. 시공을 초월해 한 쪽 귀로는 오스만 군악대 연주를, 다른 한 쪽 귀로는 비잔틴 교회 종소리를 듣고 있었다. 오스만군이 대포를 쏘며 진격해 오면 콘스탄티노플 교회들의 종이란 종은 일제히 간절한 염원이 담긴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당시 전황(戰況)을 기록한 그리스인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 종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는 오스만군의 대포 소리와 그보다 더 요란한 군악대 소리에 묻혀 버렸다고 한다. 성을 지키는 군사들은 물론 성 안의 시민들 또한 얼마나 위압감과 전율을 느꼈겠는가.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테오도시우스의 성벽 복원도를 참조해 다시 그린 그림. 황금문에서 제2군문(벨그라드카프) 사이의 3중 성벽을 입체적으로 재현했다. 1000년 넘게 아무도 뚫지 못했던 과학과 공학, 그리고 인간의 땀의 결정체이다. (아래의 성곽 사진들과 비교하면서 보기 바란다.)
그림에 표기된 수치에서 보듯이 스티븐 런치만과 시오노 나나미는 성곽 규모 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외성벽의 높이(런치만 7.5m, 나나미 10m), 내성벽의 높이(런치만 12m, 나나미 17m), 내성벽 주탑의 높이(런치만 18m, 나나미 20m 이상)에서도 두 사람은 조금 엇갈린다. 런치만은 학자고 나나미는 작가다. 내 눈대중으로는 내성벽 주탑은 20m 이상 되어 보였다. 탑과 성곽의 규모는 위치에 따라 조금씩 모양과 크기가 달랐다. 외성벽의 주탑과 내성벽의 주탑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어 있다.


▲ 3중 성벽의 위용이 한 눈에 느껴진다. 지역에 따라 약 45~90m 간격으로 주탑이 세워져 있었다. 황제는 외성을 전(前)방위로 해서 통로②에 전병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정규군만도 8만 명에 육박하는 오스만군에 맞서 정규군·비정규군·외인부대·시민군까지 모두 합해도 채 7000명이 안 되는 병력으로 대항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성 주탑을 배수진으로 성곽의 모든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열쇠를 황제에게 맡겼다. 들어온 이상은 못 나간다! 목숨을 담보로 내건 결사항전의 각오였다. 황제와 고위 관료, 주요 지휘관들은 말을 타고 통로를 누비고 다니며 전투를 지휘하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지형에 따라 폭의 차이는 있지만 통로②는 런치만이 말한 것처럼 내 눈에도 12~18m는 족히 되어 보였다.

* 정규군만도 8만 명 : 8만 명 설은 런치만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전쟁에 총동원된 투르크군의 병력을 20만 혹은 30만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투입된 병력 총규모를 16만 정도로 추정하는 이들이 많다.



▲ 성 로마노스 군문에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으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한 내성벽.
이 성이 어떻게 1500년 그 오랜 세월을 버텨 왔는가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성벽을 눈여겨 보라. 맨 밑에는 잔돌, 그 위엔 흙, 그 위엔 벽돌, 벽돌과 벽돌 사이엔 또 흙, 그런 식으로 축조되어 있다. 그 사이사이에 강력한 접착제가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앞으로도 1500년은 너끈히 버텨낼 것 같지 않은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45~90m의 간격을 두고 주탑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는 제2군문 입구이다. 이 늠름한 3중 성벽 구조의 위용을 보라. 감히 범접할 수 있겠는가. 오른쪽 내성의 주탑들은 파괴된 모습이지만 군문은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 블라케르나에 황궁(테플 사라이) 끝자락에서 본 성벽의 주탑 모습. 여기도 오스만군의 집중 공격이 퍼부어진 곳, 바꾸어 말하면 비잔틴군 방어의 최일선 중 하나였다. 부서진 주탑 너머로 골든혼 건너편 카슴파샤 지역과 멀리 갈라타 지역이 보인다.


▲ 방어용 주탑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아군끼리의 소통과 왕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1453년 당시에는 이 사진에서 보이는 보호 철책은 설치돼 있지 않았다.


▲ 해자가 있던 자리. 지금은 메워져 밭으로 변해 있다. 해자는 육지 성벽 전체에 걸쳐 팠다. 수심이 깊은 곳은 20m에 이르렀지만, 어떤 곳(예 : 블라케르나에 지역)은 물은 흐르지 않고 구덩이만 파둔 곳도 있었다. 성으로 진격해야 하는 공격군 입장에서는 우선 해자 통과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오스만군은 기를 쓰고 해자를 메운 반면, 비잔틴군은 다시 파내는 데 전력을 쏟았다. 채우고 비우기의 연속이었다. 오스만군은 참호를 만들고 도성 침투용 지하 터널(땅굴)을 뚫느라 파낸 흙을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해자를 메우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면 비잔틴군은 밤중에 몰래 그 위치에 그리스 화염과 폭약을 설치해 폭파시켰다. 그러는 사이 두 제국의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무심히 밭을 갈고 있는 저 농부는 그런 해자의 아픈 역사와 기구한 사연을 알고 있을까.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해자가 있던 자리임을 짐작하게 해주는 지하수로(배수관). 성벽 복원도의 빨간 동그라미 친 부분을 참고할 것.


▲ 부서진 외성벽 주탑을 지나 내성벽 주탑 쪽으로 가고 있는 아베크족. 그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주탑 꼭대기에 올라 비잔틴군과 오스만군 간에 오가던 살육의 화살이 아니라 연인 앞에서 사랑의 활시위를 당기는 시늉을 해보이는 건 아닐까.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도로 보는 탐사 경로

4편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의 종합편이므로 1, 2, 3편 탐사 경로를 망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군사 박물관(탁심 광장에서 북쪽으로 1km 거리)과 1453 파노라마 박물관(톱카프역 바로 뒷편)이 추가되었다.

*하늘색 사각형 부분1편, 분홍색 사각형삼각형 부분2편, 갈색 사각형 부분 3편의 탐사 경로이다.

※1453년 당시 지도에 비해 현재 크게 달라진 4가지 포인트

1. 붉은색 표시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가로질러 흐르던 리쿠스 강은 지금은 복개되어 새 도로(아드난 멘데레스 불와르)가 나 있다.


2. 초록색 표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 부근에서 시내로 새 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밀렛 자떼시(Millet Caddesi). ‘시민의 도로’란 뜻이다.


3. 파란색 표시
마르마라 해변을 옆에 끼고 기찻길이 펼쳐져 있다. 이 레일 위로 파리에서 이스탄불 사이를 오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가 달린다. 그 종착역 겸 시발역이 바로 시르케지 역이다.


4. 노란색 표시
마르마라해 바다 성벽은 매립으로 해안 성벽이 돼 버렸고, 또 일부는 철도와 자동차 도로 등이 생기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노란색은 바다를 매립한 부분.


※ "이스탄티노플"에 대해 포스팅한 모든 내용은 지속적으로 수정/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용 가운데 오류나 다르게 알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지적 바랍니다.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애독자 2010.09.08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읽고사진들을보면서
    이스탄티노플
    그도시의매력에
    점점빠져들고있습니다

  2. 피플 2010.09.08 13: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 우물에서의 은어낚시! 이스탄불이라는 우물에서 등비늘 반짝이는 은어들을 많이 낚으신 것 같군요. 물속을 헤엄치는 은어를 반짝이는 총알에 비유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 시인의 시를 떠올려보면 , 이스탄불을 구석구석 탐사한 일행의 모습이 은어를 닮아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3. 두륜 2010.09.08 14: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감상평을 남길만한 지식은 없지만 가슴으로 느낄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탄티노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다음에 꼭 그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해야 겠네요...
    "이스탄티노플"의 명예 시민으로서....^^

  4. BlogIcon 너서미 2010.09.08 15: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이스탄불에 갔을 적에
    다리 하나를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갈라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것만큼이나 이 땅을 둔 각축전도 치열했더군요.
    이번 포스팅을 보니 보다 더 실감납니다.

  5. 오디세이 2010.09.09 0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노라마 극장 그림들과 그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필자의 글솜씨가 압권입니다.
    이스탄티노플, 감동의 도가니입니다.

  6. 이우종 2010.09.09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타는 탐구욕 과 활활 끓고있는 그 열정에 심심한 존경을 보냅니다. 감히 시늉이라도 해볼까 하고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더욱 흥미진진한 얘기 기대해봅니다. 건강도 살펴가며 하시기 바랍니다.

    • 호야 2010.09.09 1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격려 감사합니다 이스탄티노플이란 내가 명명한 도시에 스스로 빠져서 공무 틈틈이 시간내어 전심전력하고 있소 대작 수작소리는 못듣겠지만 힘들여 쓰는 역작인것 만은 분명하오 아직도 쓰고 싶은 게 하 많이 남았으니 건강 챙겨가며 하겠습니다

  7. 중독 2010.09.30 18: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그랗게 생긴 대포알을 보니 대포알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쩜 저렇게 동그랗고 예쁘게 만들었죠?
    대포 한번 쏘고 다시 주워다 쏘지는 못했을텐데.
    전쟁동안 쉼없이 대포를 쏘았다니, 대포알 갖고 다니기도 엄청 힘들었겠어요.
    송편을 잘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고 하는데, 동그랗게 대포알을 만든 석공(?석공이 만들었겠죠?)의 딸도 예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ㅋㅋㅋㅋ 아들이 잘생겼으려나?

  8. BlogIcon BlueMiR 2012.02.10 2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고 갑니다~
    그림좀 몇개 퍼가겠습니다~


8월 1일부터 9박 10일의 일정으로 터키를 방문하고 오늘 돌아왔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피곤한 가운데 터키의 아름다운 풍광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이동 중에 만난 예쁜 어린이와의 기념사진으로 간단한 인사를 마칩니다.
터키 이야기는 여독이 풀리는대로 차차 정리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길에서 만난 어린이와 잠든 고양이 ^_^


터키 고양이 더보기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케말파샤 2010.08.11 13: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터키에서 어떤 느낌을 하나 가득 담아오셨는지 궁금해집니다. 블로그에 시리즈물로 올려주실 것을 기대해봅니다. ^^

  2. 해피송송 2010.11.04 14: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가가 너무 귀여워요 ^^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의 3부 광장을 찾았습니다.
파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 그리고 짙은 초록색의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아~ 이래서 브라질 국기가 파랑, , 노랑색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3부 광장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3부의 최고 기관들이 마주 보도록 설계된 열린 광장입니다. 3부가 조화롭고 독립적으로 기능한다는 의미로 각 건물을 균형있고 조화롭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를 설계한 Lucio Costa는 3부 광장이 "왕이 없는 베르사이유"가 되기를 희망하며 이 광장을 설계했다고 해요. 그만큼 웅장하기도 하고, 화려하기도 한 볼거리가 많은 도시가 바로 브라질리아입니다.

광장에는 같은 학교에서 나온듯한 아이들이 무리지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명이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포루투갈어로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눈치를 보니 아마도 "어디서 왔어요?" 이런 것 같았습니다.

"코리아. 코리아. 아임 프롬 코리아."
(CF에서는 이러면 얼굴 새하얀 백인이 어색한 발음으로 '대한민국' 해주던데요..^^;;)


그러자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저와 처음 이야기를 나눈 아이가 친구들에게 저를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한국인이래." 라고 했겠지요.
그러자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쏘리. 아이 캔낫 스피크 포르투귀스. 아이 캔 스피크 잉글리쉬."

"잉글리쉬?"

"응. 잉글리쉬."

그러자 다시 친구들에게 저를 "꼬레아노(?)"라고 소개했던 처음 아이가 다시 저를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잉글리쉬! 잉글리쉬!" (영국인이래! 영국인!)


앗. 이게 아닌데!

"노노노. 아임 코리안. 아이 스피크 코리안 앤 잉글리쉬.
 유 스피크 포루튀기스. 아이 스피크 코리안."

(아니. 난 한국인이고 한국말이랑 영어를 말할 수 있다고.
 넌 포루투갈어 말하고, 난 한국말 말하고.)


"씨.씨." (아, 알았어. 알았어.)

"유, 스튜던트?" (너희 학생이니?)

"씨. 스튜던트." (응, 학생이야.)

"피크닉?" (소풍 온거야?)

"음...음..."(아니...)

"스터디? 아웃사이드 클래스?" (수업? 야외수업?)

"씨. 씨." (어, 맞어맞어.)

어느 새, 주변엔 아이들이 한가득 모여들었습니다.


"바이 바이!"
(그래,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렴. 반가웠어.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국에도 놀러와. 부모님께도 안부 전해드리고...
 참!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선전을 기원할께!)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미소는 만국공통어가 아닐까요?

Posted by 맹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서경덕 성신여대 객원교수와 가수 김장훈의 독도 광고가 뉴욕 타임스퀘어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국가 현안을 민간 차원에서 광고하는 것은 세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독도를 광고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분쟁지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점)도 있기 때문에,
이번 광고는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라는 것보다, 문화/관광의 방향에서 접근하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 "Visit Dokdo"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땅♪" 하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한 이 광고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Hawaii, this is part of America. (하와이는 미국의 영토입니다.)
Sicilia, this is part of Italy.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의 영토입니다.)
Bali, this is part of Indonesia. (발리는 인도네시아의 영토입니다.)
Dokdo, this is part of Korea. (독도는 한국의 영토입니다.)


This is Dokdo, the beautiful island of Korea. (한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를 방문하세요.)




분쟁지역임을 알리기 보다는 '문화,관광'의 방향에서 접근하여,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알리겠다는 의도인데..
관광지로서의 독도를 광고하고 있습니다.

독도를 방문하는 것(입도)은 2005년 입도허가제에서 입도신고제로 변경되어 독도를 방문하는 절차는 예전보다 간소화 되었습니다. (동도와 서도 가운데 일반관광객은 동도에만 입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Visit Dokdo"라고 광고할만큼 독도를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독도에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번 광고가 우리의 만족만을 위한 광고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독도 시설물 현황>



■ 하와이, 시칠리아, 발리 그리고 독도?

과연 "외국인"을 대상으로 "관광지"로 광고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을까요?
행여라도 타임스퀘어의 독도광고를 보고 올 여름 휴가로 "독도 여행"을 계획하는 외국인이 있다면 어떻게 하죠?
(하와이, 시칠리아, 발리와 함께 등장하는 '독도'는 '휴양지'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습니다.

독도의 상징성으로 인해 우리 국민들이야 어느 정도의 불편함도 감수하며 독도를 찾겠지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광고까지 하기엔 - 독도의 관광인프라는 아직 한참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요.

어쨌거나 참신한 내용으로 독도를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독도를 알리는 것은 매우 인상깊은 일입니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다음 광고는 좀 더 현실적인 내용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광고를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말이죠. ^^;;

서경덕 성신여대 객원교수님과 가수 김장훈님을 비롯한 광고를 준비하신 모든 분들의 수고에 깊은 감사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Posted by 맹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3.03 06: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큰 휴양지로 인식하면 곤란하겠네요! ㄷㄷ

  2. 칠성파 2010.03.03 0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일이긴 한데 생각을 좀 더 깊게 해야될 사안이군여..성질난다고 무조건 사시미칼을 빼들면 안되겠죠?? ㅋㅋ

  3. BlogIcon 무예24기 2010.03.03 08: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도는 한번 더 가고 싶은 곳인데 너무 멀어요

  4. BlogIcon Bacon 2010.03.03 0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지적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뭐.. 일종의 궁여지책이 아니었을까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독도 크루즈를 끼고 관광 상품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5. 행인3 2010.03.03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접근 방법이 조금 억지 스럽다는 것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자연인의 신분으로 그렇게 노력 하는 동안...
    뭐 하셨습니까..???
    도대체 뭐 하시다가 이제서야....????

    • BlogIcon 맹태 2010.03.03 16: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슨 말씀이신지?

    • 관지신행 2010.03.06 2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행인3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치가의 블로그라면 관광을 실현시킬수 있는 대승적자세로 접근해야지
      지금까지 무엇하고 있다가 희한한 제목의 관심끌기용 댓글입니까?
      무엇이 오해의 소지입니까?
      저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며 행여라도 만일 있다면,
      말로만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떠벌일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열정을 가지고 진지하게 해결해야할 과제아닌가요?

    • 행인4 2010.03.08 1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전 동의 못하겠습니다
      독도를 '관광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자구요?
      그곳은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 보다는 보존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따라서 '휴양지'를 떠올리도록 광고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지요.
      시칠리아, 발리, 하와이처럼 휴양지가 될 수 있는 사이즈도 아니구요.
      광고 자체는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관지신행..쯧쯧

    • ㅋㅋㅋㅋㅋㅋ 2010.03.08 1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건도대체 뭔..ㄷㄷㄷ
      독도를 관광지로 만들자고요??
      독도 근처라도 가보시기라도 하셨나요??

    • 관지신행 2010.03.10 1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Visit Dokdo" The beautiful island of Korea.
      이 얼마나 멋진 발상입니까. 서경덕교수님과 김장훈님께 무한감사와 신뢰를 보냅니다.
      독도 방문은 많은 연구와 준비가 필요합니다.환경보호차원은 최우선적인 것이고 외교적인측면 학술적인측면 관광적인측면 경제적인측면등 폭넓은 검토와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비아냥이 아닌 열정과 진지함을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두서없지만 두가지방향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먼저 학문적 학술적인 방문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세계적으로 독도에만 있는 것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자연, 생태, 생물, 관광등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학자들의 연구방문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이것은 국제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방문입니다.한국을 통해서 들어가고 한국을 통해서 연구업적이 발표되고 우리가 모르는 관광의 가치도 발견해보고 독도에 관해 다양한 것을 한국을 통해 활성화하고 정리해 나아가는 것입니다.방문을 통해서.

      이를 바탕으로 관광의 범위 내용이 결정되어 대중 또는 외국인의 관광이 시작된다면 두번째로 우산국 즉 울릉도와 연계된 관광프로그램을 만들고 독도관광을 위한 특별한 배를 만들었으면합니다.비행기를 싣고 다니는 항공모함이 있고,수영장을 갖춘 호화유람선이 있고 축구장의 몇배 크기의 유조선도 있는데, 세계에 회자될 수 있는 멋지고 독특한 독도관광전용의 배, 즉 '코리아 독도'호를 만드는 것입니다. 환경보호차원에서 꼭 필요한 범위에서만 입도하고 모든 것은 배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동도와 서도 사이에 정박했을 때 이 배는 해상호텔, 갑판은 입도하지 않고도 동일한 효과를 볼수 있는 야영장, 주변의 풍광을 유람할 수있는 소규모 배를 자체적으로 갖춘 선착장역할 등을 수행하여, 관광의 효과는 배가하고 독도의 자연을 최대한 보호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배에는 우리의 역사 문화 예술 공연 산업등 한국을 알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정말로 품위있고 격조높게 설치하고 외국어도 잘하고 친절하고 사명감있는 젊은이들을 배치하여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수 있도록 관광을 돕게합니다.경제적으로 울릉도 관광과 연계하여 많은 일자리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돈이 문제가 되겠지요.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어떠한 사람들의 지나친 이기심으로 곳곳에 필요하지도 않은 국제공항을 만드는데 수천억을 쓰고, 사용하지도 못한채 썩어가는 공항의 유지보수를 위해 또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하여 속쓰린 것보다는,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경쟁적으로 비효율적인 지방청사를 짓는 것보다는, 이를 절약해서 우리의 빼어난 조선기술로 세상에 하나뿐인 코리아독도호를 만들어 세상에도 알리고 일자리도 생긴다면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요?.Visit Dokdo에 기인한 행복한 브레인스토밍일 뿐입니다.

    • BlogIcon 맹태 2010.03.11 1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의견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관지신행님의 '브레인 스토밍'도 감사드리고, 보존을 주장하신 행인4님의 의견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내용에도 밝혔듯이 광고를 제작하신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다만 관지신행님께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 관광과 관련된 광고가 나오려면, 관지신행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런 인프라가 준비된 후에 광고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이 포스팅을 쓴 목적이었습니다. (관광을 하지 말자는게 아니라요..^^)
      준비된 이후에 손님을 초대해야지, 맞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손님을 초대하면 기분이 나쁠테니까 말입니다.^^

      환경보존을 잘 하면서, 독도를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관지신행 2010.03.15 1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맹태님,맹태님,사랑하는 맹태님
      일본의 후쿠다 수상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를 (교과서 해설서에)쓰지않을 수 없다고 통보하자 한나라당 이명박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요구했답니다. 댓글이 만개이상 달리고 난리입니다. 또한 이제는 정부까지 나서서는 '독도 광고, 문제있다'고 하는데 세상을 큰눈으로 보시는 김형오님도 한나라당이시니 같은 의견이신가요? 그래서 저의가 딴곳에 있으면서 빙 돌려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나요? 저는 소시민이지만 억장이 무너집니다.정치하시는 분들 이래도 되시는 겁니까?

    • BlogIcon 맹태 2010.03.15 18: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관지신행님-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독도는 우리 땅임이 확실합니다.
      포스팅에서 지적한 것은 '광고의 내용(관광지로 홍보하는 것)'의 문제점이지, 독도가 우리 땅이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의가 딴 곳에 있다니요. 그렇게 해석하시면 제 마음도 답답할 뿐입니다.
      방문은 마땅히 홍보해야할 일이지만 '시칠리아' '발리' '하와이'와 같은 휴양지로서의 성격이 없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입니다!!

    • 관지신행 2010.03.15 2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로 슬픔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하염없이 흐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이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이는 버틴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챙피하고 부끄럽습니다. 김연아로 얻은 한국인의 자긍심이 한달도 못되서 자괴감으로 무너지나요. 눈물이 앞을 가려 자판을 치기도 힘드는군요. 어디다 이야기 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언론은 장악되어 언로가 봉쇄되어있습니다. 댓글이 십만건이나 달린 현안은 외면한채 언론은 김길태짜장면이나 보도합니다.그 많던 정치인들은 왜 가만히 숨죽이고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민족의 삶은 뒤로한채 현해탄밑에 해저터널공사가 쉬쉬하는 가운데 은밀하게 진행된다는 것도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어떻게합니까. 난 어떻게 합니까.요 며칠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면서 멍하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나 어떻게 살아가지. 나 어떻게 살아가지. 나 어떻게 살아가지 .나 살아가야 하나.살아봐야 고통만 더할 뿐인데. 나 살아가야하나.살 필요가 있을까

  6. rfdres 2010.03.05 1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3곳에 2번 올리면 무슨 만화가 나와요.그거보삼

  7. ejasi 2010.03.05 13: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3곳에 2번 올리면 무슨 만화가 나와요.그거보삼

  8. 호박옛다 2010.03.05 16: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도를 가려면 울릉도를 가야 하잖아요. 울릉도 관광과 독도 관광은 한세트라고 생각해야죠.
    너무 걱정 안하셔도 될 듯

  9. 쟈빵 2010.03.10 16: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고기법중의 하나인데 너무 깊숙히 파고 드신듯 .... 자동차 광고에 미녀가 왜 나올까효??? ... ^^;

    • BlogIcon 맹태 2010.03.12 1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어떤 광고기법이지요?
      미녀가 나오는 것은 자동차 광고뿐만이 아니죠.
      Beauty-Beast-Baby 는 유명한 것이니까 알 것 같습니다만..^_^;;;

친한 친구와 함께 3박 4일의 일정으로 중국 상하이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머물던 숙소 뒷편의 모습, 전 이런 모습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_^)

짧은 기간동안 즐겁고 유쾌한 추억이 많았지만, 이른바 '꽃뱀' - 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 '꽃지렁이' 정도의 표현이 적절하겠네요  - 이라고 할 수 있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바가지 상술과 소매치기를 경험했습니다.

그 사연과 나름의 예방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꽃지렁이~

도착한 날, 상하이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낮잠을 좀 잔 후에 저녁 5시쯤 되어서 숙소를 출발했습니다.
상하이 중심가인 '신천지'라는 곳에 이르러 신세계(新世界)라는 커다란 간판을 바라보며 "저 신세계가 한국 백화점 신세계냐 아니냐"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여인 두명이 다가왔습니다.

유창한 중국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길래, 저는 영국본토 발음으로 답했습니다.
"아이 캔 낫 스피크 차이니즈. 아임 어 코리안."

그러자 우리만큼 짧은 영어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들은 근처의 작은 도시 출신인데 자신들도 상하이에 처음으로 관광을 왔다며 함께 다녀도 괜찮겠냐고 물었습니다.
어차피 말도 안통하고, 어설픈 영어지만 중국인 가이드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그러자고 했습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현지인의 친절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고, 혹시 문제가 있더라도 남자인 우리가 달리기는 더 빠를 것이라는 생각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지요.

지도를 살펴가며 번화가를 쭉 걸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길가의 중국어 간판에 대한 설명부터 중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연예인, 한국 드라마 이야기도 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시내 중심을 벗어나 걷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방명주 (사진출처☞ 여기)

이제 헤어질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는 이제 동방명주를 보러 갈꺼야. 너희는 어디로 가니?"
"동방명주? 지금 이 시간에 거기까지 걸어가긴 멀어."
"괜찮아. 우린 빨리 걸어갈 수 있어. 뛰어갈 수도 있어."
"아냐. 우린 거기까지 못 가."
"그래. 그럼 너흰 너희 가고 싶은 곳으로 가. 우린 동방명주 보러 갈께."
"그럼 차나 한잔 하고 가자."

친구와 저는 상의를 했습니다. 오래동안 걸었더니 우리도 다리가 아팠거든요.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약간의 경계심도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이 이끄는 곳으로 가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 그럼 저기 보이는 스타OO에서 차 한잔 하고 가자."
"스타OO? 거긴 커피숍이잖아. 거기서 파는 것은 커피야. 너희에게 중국의 차를 소개해 주고 싶다."

우리가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길가에서 조금 떨어진 허름한 찻집을 가리키며 "저기 어떠냐?"고 했습니다. 솔직히 차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중국 문화를 소개해 주고 싶어하는 현지인의 친절을 거절할 명분도 딱히 없었습니다. 게다가 즉석에서 결정한 곳이니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으악! 이게 뭐야!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곳은 허름한 TV가 한대 놓인 곳에 4명의 인원이 일렬로 벽을 보고 앉아야 하는 좁은 방이었습니다. 노래방도 아니고..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메뉴를 가져오길래 저렴한 가격의 녹차를 주문하고, 그녀들도 마실 것을 주문했습니다.
뻘쭘하게 앉아서 추억의 영어단어를 끄집어내며 약 10분을 보냈습니다.
할 말도 없고 더 이상 꺼낼 영어단어도 없어서 이제 정말 일어나자고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래. 오늘 참 반가웠어. 나중에 또 지나다 만나면 아는척 하자. 우린 이제 동방명주에 가봐야 할 것 같아."
"벌써? 그러지말고 맥주 한잔 하는게 어때?"
"아냐. 우린 오늘 도착해서 지금 많이 피곤한 상태라 술을 마실 수 없어."
"딱 한잔만 하면 되잖아."


이러는 사이 다행히(?) 멀쩡하던 친구의 바지가 갑자기 찢어졌습니다.

'야, 나 바지 엉덩이 터졌어. 빨리 들어가자!'
(옆에 그림이 제 친구는 아닙니다. 할로윈 코스튬 보고 따라 그린 그림이예요. 친구야, 미안~ ㅠㅠ)

"미안해. 우리 지금 꼭 들어가야겠다."

아쉬워하는 그녀들을 뒤로하고 계산서를 받았는데 무려 여행경비의 1/3에 해당하는 요금이 나왔습니다.
그녀들이 마시던 차에 들어있던 찌끄레기가 인삼이었답니다.

"뭐야! 너가 이거 시켰어? 이건 우리가 계산할 수 없어!"

그러자 문 밖의 종업원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앗! 이런 거였구나!)
난 어차피 중국어를 모르니 계속 그녀들을 다그쳤습니다. 한국남자 매너 없다고 소문나도 어쩔수 없었습니다.

"더치페이 몰라? 더치페이? 너희가 마신건 너희가 계산해!"

그러자 그녀들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그럼 반반씩 내면 안되겠냐'고 했습니다. 화가 났지만, 분명 한패일듯한 문 밖의 종업원들과 영업실적(!)을 제대로 올리지 못한 그녀들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동정심도 느껴졌습니다. 어쩌다 우리를 잡아서...
(우리가 돌아간 이후에 종업원들에게 혹시 혼나는건 아닐까. '꽃뱀'으로써 그녀들이 아닌, 처음 그녀들의 소개처럼 작은 도시에서 올라온 '순박한 아가씨'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반반씩 내더라도 우리의 여행경비에 비하면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그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계산을 하고 다시 중심가로 돌아갈때까지 그녀들은 자신들도 관광객이라는 알리바이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함께 따라왔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무척이나 미안해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습니다.
(이것까지 계산된 행동이라면..으아, 정말 무섭지만 진심이었다고 믿고 싶네요.)

처음 만났던 번화가까지 와서야 그녀들은 어느 상점을 구경하겠다고 하며 헤어졌습니다. - 아마 본거지인 그 찻집으로 돌아갔거나, 다른 먹잇감을 찾으러 갔겠죠.

꽃지렁이 예방수칙

1. 여행객 티를 내지 않는다!
- 저희는 그 번화한 곳에서 지도를 펴들고 두리번 거리고 있었습니다;; 완전 먹잇감!

2. 과도한 친절은 경계한다!
- 이건 좀 슬프네요. 친절을 경계해야 하다니.
  제 생각에도 길 잃은 외국인들에게 길을 설명하기 힘들땐 직접 안내해주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이건 각자 눈치껏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3. 안내하는 곳으로 절대 (순순히) 따라가지 않는다!
- 특히 제 경우처럼 상점 같은 곳으로 안내한다면 의심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혹 그곳이 랜덤하게 선택된 곳이라고 생각해더라도 치밀한 계산일 수 있어요.
  아니면 여러 가게와 계약을 맺었을지도 모르는 일.

4. 주문 내용을 확인한다!
- 혹시 따라가게 되었더라도, 주문시 각자의 음식은 각자 계산할 것임을 확인하고,
  지불해야 할 금액을 확인한다.




2. 소매치기~

여행의 마지막 날, 상하이의 코리아타운을 구경하러 갔습니다. 느즈막한 오후였는데, 변두리여서 그런지 인적도 드문데다가 어둑어둑해지니 무섭기도 했습니다.
딱히 볼만한 구경거리가 없어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갈 생각으로 식당을 찾고 있는데, 누군가 가방을 뒤에서 잡아 당기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이국적으로 생긴 한 청년이 제 가방 지퍼를 열고 손을 집어 넣고 있다가 저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손을 빼고 저를 앞질러 갔습니다.
어릴적 삥 좀 뜯겨봤는데도, 뒤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바람잡이로 보이는 4~5명의 청년들이 제 뒤에서 시선을 가리고 있다가, 소매치기에 실패한 동료를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으며 서 있었구요. 앞질러간 청년은 민망했는지 다시 방향을 바꿔 일행들 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전 황당하기도 하고, 뒤에서 웃고 있는 청년들에게 느껴지는 치욕스러운 감정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고 서있다가 소리쳤습니다.

"야!!!!!!!!!"

그러자 다시 방향을 바꿔 굳은 표정으로 제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야, 야. 그냥 가자. 참어. 참어."
친구가 말렸지만 거기서 등을 보이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아서 (사실 등 보였다가 맞을까봐;;)
가만히 서서 그들을 노려보았습니다.

그 청년은 제게 중국어로 뭐라고 말을 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사과하는건가...?)

그래서 악수를 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제 친구랑도 악수 하고, 뒤따라 온 일당과도 악수 했습니다.
마치 유명인사와 악수 하듯이 소매치기 일당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저와 제 친구의 손을 잡고 악수했습니다.

(갑작스레 펼쳐진 화해와 감동의 물결?? 아, 이게 뭐지???)

후에 중국에서 오랜 시간 유학을 한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너 죽을뻔 했다'고 하더라구요.
보통 그런 친구들은 칼을 품고 다닌다고, 심기를 건드리면 정말 위험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악수까지 했으니 우린 이미 친구?ㅋㅋ

소매치기 예방수칙

1. 가방은 꼭 앞으로 맨다.
- 전 가방을 뒤로 매고 있었어요.;;; "제 가방 보실래요?!" <- 이런 의미나 마찬가지.

2. 가방 속 내용물을 꺼내기 어렵게 배치한다.
- 전 작은 우산을 가방 맨 위에 올려놓았었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물건에 손을 못 댔더라구요.
   우산을 치우려다가 걸렸던 것 같아요.


3. 가방 열리는 부분을 몸의 안쪽으로 돌려 놓는다.
- 열리는 부분의 방향이 한쪽으로 되어있는 가방이라면, 열리는 쪽을 몸쪽으로 돌려놓기만 해도 쉽게 열지는 못하겠죠.

4. 소리가 날만한 물건을 넣어둔다.
- 동전을 조금 넣어 둬서, 가방 속 내용물을 뒤적이면 소리가 나도록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칼로 가방을 찢었을때를 대비할 수도 있구요. 단점은 내가 걸을때도 짤그랑 짤그랑 소리가 난다는 것.

5. 칼날을 넣어둔다.(비추)
- 이건 제가 유럽여행때 소매치기를 한번 당할 뻔 한 후에 썼던 방법인데요, 주머니에 스위스 군용 칼을 날을 펼쳐서 넣어 둡니다. 아쉽게도 효과는 확인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살짝살짝 손을 베었지만요.^_^;;; 일회용 면도날을 여러게 넣어두어도 소매치기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것 같아요. (이런 못된 마음..흑흑)



다음은 외교통상부에서 밝힌 도난/분실 예방책입니다.
* 여권이나 귀중품은 호텔 프론트에 맡기거나 객실 내 금고 또는 안전박스에 보관합니다.
* 그날 사용할 만큼의 현금만 가지고 다닙니다.
* 현금은 지갑과 가방, 호주머니에 나누어 지닙니다.
* 식당에서는 의자에 가방을 걸어두지 마시고 식사하는 동안에는 가방을 본인 무릎 위에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 뒷주머니에는 절대로 지갑을 넣지 마시고 바지 앞주머니나 코트 안주머니에 넣는 것이 안전합니다.
* 가방을 가지고 걸을 때는 어깨로부터 가슴에 가로질러 X자로 맵니다. (<- 앞으로 매세요!)
* 특히 사람이 많은 출퇴근 시간의 기차나 버스 안에서 가방이나 지갑을 조심합니다.
* 모르는 사람이 시간이나 길을 묻는 등 말을 걸어 올 때에는 조심합니다.
* 호텔 프론트에서 체크인 및 체크아웃시 수화물은 반드시 시선이 닿는 곳에 놓거나 일행이 있을 경우 한
사람은 수화물을 지키도록 합니다.

* 범죄 피해를 당했을 경우에는 바로 경찰에 신고하시고, 대사관에 연락하셔서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 외국에서 외교통상부 영사콜센터 연결 방법
   ▶ 현지국제전화번호를 누르시고 800-2100-0404 를 누르시면 무료자동연결이 됩니다.
   ▶ 자동로밍폰은 안내메시지가 뜨더라구요^_^
       자세한 것은 여기로 ☞ 영사콜센터 안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한국으로 연락하셔서 120(다산콜센터?)에 문의하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안내원 분들이 무척이나 친철하게 '무엇이든' 자기 일 처럼 걱정하고, 해결책을 알아봐 주시더라구요.^^
당황한 상황에서 영사콜센터 전화번호가 떠오르지 않으실땐, 한국으로 120 전화하시는 것 잊지 마시고
즐겁고 안전한 여행 즐기시길 바랍니다^_^
Posted by 맹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대갈통 2009.11.21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흐흐...잼잇어요...

    • BlogIcon 맹태 2009.11.21 0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_^
      지금 보면 재미있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ㅋㅋ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요.

  2. 이성진 2009.11.21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 정말 큰일 날뻔 했어요~ 다행이에요 이렇게 좋은 정보를..(아직 해외여행을 안나가봐서.) 저도 조심할께요~ 전 이래서 짱꼴라들이 너무너무 싫어요 읔 @.@ 중국은 절대 안갈거에요! 이젠 사람(자기들 자신)까지 짝퉁이군요.. 하긴 짝퉁물건들,음식들, 모든걸 다 그 사람들이 만드니... 나원참.. 쯧쯧. 몹씁 중국짱꼴라들..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군요.

자꾸만 무거워지는 삶의 무게, 한층 쌀쌀해진 가을 날씨.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한 일상입니다.


잠시라도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기 자유로이 날아가는 새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마침 친구가 드라이브를 제의하길래, 잠시 망설이다 응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그냥 친구가 가자는대로 몸을 맡겼죠.

차창을 타고 들어오는 가을 바람에 머리카락이 헝클어져도 마냥 좋았습니다.


자유로를 씽씽 달려가니 새로운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여긴 어디지?"


바로 말로만 듣던 책의 도시, '파주출판단지'였습니다.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양, 기분이 들뜨더라구요.

그리고는 뒤로 장승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광개토대왕비 같은 이 녀석은 뭐냐?"


이건 어느 출판사 앞에 서있는 책 형상의 탑~!

이쯤되니 호기심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왠지 이 마을을 뒤져(?) 봐야 겠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간간히 차가 지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바람 소리만 들렸습니다.

이윽고 차를 세워 멈춘 곳은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포털사이트(네이버, 다음 등)에서 '파주출판단지'를 검색하면 나오는 그곳입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볼게요.


이곳을 들어서는 순간, 지구의 모든 사람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 아시죠?






게임의 주인공처럼 온 건물을 휘집고 다닌 결과, 득템(得 + item)에 성공했습니다.


이 전단지를 얻는 순간, 초대장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23일(금)부터 25일(일)까지 "파주출판도시 가을 책잔치"가 열린다고 하네요.

행사가 열리면 한 번 가보고 싶은 걸요?

전단지를 보니 과학체험, 만들기체험, 페이스페인팅에 몇 가지 공연도 열린다고 나와있네요.


(이와 함께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도 22일에 개막되어 26일 폐막을 한다고 합니다.)

* 파주출판단지 가을 책잔치 - http://www.pajubookfest.org/main/main.asp 

* DMZ 다큐영화제 -
http://www.dmzdocs.com/


파주출판단지를 돌아보며, 문득 한 단어가 떠오릅니다.

'여유'


구속받지 않고, 방해받지 않아 그냥 나를 내버려둘 수 있는 곳.

한적함 속에 책 한 페이지 넘길 수 있는 곳.

저는 이제서야 그곳을 찾았습니다.


삶의 무게가 짓누르면 다시 이곳을 찾을 겁니다.

떠나는 건 아쉽지만, 그 아쉬움은 다시 이곳으로 이끌겠죠?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궁금이 2009.10.25 1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울에서 출발하면 오래 걸리라나요?

    집이 목동인데.

  2. BlogIcon 달콤시민 2009.10.28 15: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꺄아아아~~ 파주출판단지 엄청엄청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멋지게 다녀오셨네요~ 우왕 짱!
    게다가.. DMZ 영화제까지 홍보해주셨어요! 킹왕짱 감사~~! (저 너무 뒷북이죠 ^^;; )


 

그제 세미나 명목으로 남미로 출국했다가 외유성 출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공공기관 감사 21명이 여행을 중단하고 조기에 귀국하기로 했습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여객기 사정 등을 감안해 최대한 빨리 귀국하기로 했다면서 이들은 국내 여론이 나쁘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번 출장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혈세관광이라고 비판하면서 국회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추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MBC TV 2007-05-16 12:00]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16일 공공기관 감사들의 남미 여행과 관련, "이과수 폭포에 혁신세미나를 하기 위해 갔다는, 웃음도 나지 않는 희대의 사건이 생긴 것은 정권말기 권력누수를 넘어 혈세낭비가 심각한 상황을 얘기해준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들은 `노무현(후보) 선대본부'에 얼쩡이던 사람, 열린우리당 출신이라는 게 최고 직책인 사람들"이라며 "이런 사람들이 감사 역할이나마 제대로 해줬다면 지적하지 않았을텐데 이런 식으로 권력 말기에 국민혈세를 낭비한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오늘 중 원내 수석부대표간 접촉을 통해 운영위를 비롯한 관련 상임위를 소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TV 2007-05-16 11:43]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