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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단상>

선거를 위한 ‘봄’이 아닌 미래를 위한 ‘봄’을 생각하자

한미FTA가 당최 진전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국회로 가서 여야 지도자를 만나겠다고 한다. 예정일은 15일인데 야당 쪽에선 선물을 가져와야 만나겠다는 태세다. 그날 만남이 성사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채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했다.


한미FTA로 인해 국회는 시위대와 경찰버스로 둘러싸였다. 집무실은 항의성 전화가 빗발쳐 업무를 못 볼 지경이다. 다짜고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욕설과 폭언은 다반사다. 팩스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외통위(외교통상통일위원회) 의원들을 ‘매국 18인’으로 매도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서도 집단적 인신공격과 비방‧협박성 글들이 난무한다. 조직적 테러와 다름없다. 사태가 이럴진대 야당 의원들은 웬만한 용기로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힘든 상황이다. 절충안조차도 동의 표명한 순간 집단폭력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소신조차 밝히기 힘든 우리 국회의 자화상이다.

나는 FTA 주무위원회인 외통위 소속으로 FTA에 대해 좀 아는 편이다. 한미FTA를 놓고 많은 협상과 토론이 외통위에서 있었다. 끝내 끝장을 보지 못한 ‘끝장토론’까지 했다. FTA 추진 역사 또한 꽤 오래다.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추진됐으며, 내가 야당 원내대표 시절(2006-07)에도 공사석에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요구받았고 답변도 했다. “좋은 FTA를 체결하자” “선대책 후국회동의”가 한결같은 답변이고 입장이었다. 야당이었지만 한미FTA 자체를 반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농업대국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농축산업의 피해는 불가피하다. 그 피해대책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주관심사요 중점논의 대상이었다. 나는 또 여야 막론하고 농어촌 지역 의원들이 포진해 있던 당시 농해위(농림해양수산위원회, 현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이어서 이 문제를 직접 논의하고 지도부로서 입장도 표명했다.


정권이 바뀌고 여야 간 공수도 바뀌었다. 그러나 농축산 대책 논의는 여야 없이 적극적이었다. 당초 21조원 규모였던 피해대책 금액이 이 과정에서 22조원으로 늘어났다. 대규모 추가 지원책도 논의되고 있다. 한미FTA를 꼭 처리하겠다는 의지표현이다. 사실 난 이렇게 피해대책금의 증액에만 신경 쓰는 데는 내심 찬동하지 않는다. 농어촌 자립과 경쟁력 확보에 중점을 두지 않고, 일단 우는 아이 달래놓고 보자는 식으로 가니 말이다. 90년 초 개방화의 파고에 대비해 천문학적 금액을 지원했다. 문민정부 87조, 참여정부 119조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20여년이 흘렀건만 별 효과가 없다. 농어민 소득이 증대되거나 농어촌 삶의 질이 향상되거나 농어업 경쟁력이 크게 강화되지도 않았다. ‘밑 빠진 독 물 붓기’가 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농정개혁을 수립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FTA에 가장 반대해야 할 농축산업 쪽은 오히려 조용한 편이다.

절대 없다던 재협상까지 하고, 어이없는 협정문 번역 오류로 외통부는 곤욕을 치렀지만 국회에 사과하고 일단락됐다.(반대론자들은 아직도 이것을 좋은 공격의 빌미로 삼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여야가 바뀌었으니 입장은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야당, 특히 민주당의 입장은 참으로 이해가 안 된다. 당내의 다수 의원이 암묵적으로 FTA가 불가피하다는데도 당 지도부는 막무가내다. 지도부가 소속의원들의 투쟁력만 부추기는 한 결코 수권정당이 될 순 없다. 국회는 대화와 타협의 장이 아닌 선동과 투쟁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도부의 말 바꾸기와 태도 변화는 경이로울 정도다.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지사일 때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잘한 것은 한미 FTA다”라고 했던 당대표는 이제 와서 “이익균형이 깨졌으니 받아드릴 수 없다”고 한다. 추진 당시 통일부장관이었고 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이가 지금은 “FTA는 을사늑약이고, 추진자들은 제2의 이완용”이란다. 당시 산자부장관으로 매우 친기업적이었던 사람도 강경반대파로 돌아섰다. 의원들로서는 선거가 다가오고 공천이 눈앞에 있으니 강경지도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FTA를 성사시키려는 온건합리파의 노력은 정말 가상하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도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결실을 맺기 어려울 것 같다.

민주당의 복잡한 당내 사정도 한몫 단단히 거들고 있다. 서울시장 재보선 후에 당 밖 세력의 흡수‧통합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지나치게 그들의 눈치를 본다. 그래서 자꾸만 강경하게 나간다. 고육지책으로 노무현 대통령 당시 합의했던 ISD조항(투자자-국가소송제도)을 들고 나와 재개정 전에는 동의 못하겠다고 한다. 합의 당시 “투자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합리적인 제도”로 높게 평가했던 ISD가 이제는 독소조항으로 탈바꿈됐다. 말도 안 되는 억측과 논리비약, 괴담까지 등장한다. “ISD가 없어지면 미국 투자자들은 한국 법정에서만 이의제기를 할 수 있어 우리의 사법주권이 확립된다”는 논리지만 그야말로 맹점투성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조건으로 우리 투자자들은 미국 법정에서만 재판을 받는다. 미국의 대한투자보다 한국의 대미투자가 훨씬 많다. 이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한국인을 국제중재재판소가 아닌 미국법정에만 서게 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이 국민의 재산과 권익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할 노릇이고 공당이 할 일인가. 할 말이 없으니 국제중재재판소는 미국이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중재재판관은 압도적으로 미국인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중재재판은 한국측 1인, 미국측 1인, 제3국 1인, 이렇게 구성한다. 그리고 미국 기업이 국제중재에 제소하여 이긴 사례보다 진 경우가 더 많다(승소 15, 패소 22).

더 이상 통하지 않자 이젠 우리의 의료보험, 공공요금 등 별별 것들이 다 ISD 제소 대상이라 한다. 한마디로 협정문조차 안 읽어 본 사람들의 몰상식한 상상력에 불과하다. 모르면 물어보고 공부해야 하는데 억측만 갖고 밀어붙인다. 또 재협상(재재협상)하기 전엔 안 된다 하고, 총선 후 이긴 당이 결론짓자고도 한다. 참 뻔뻔스럽다. 언제는 미국이 FTA 처리하기 전엔 안 된다고 했던 이들이 이처럼 쉽게 말을 바꾼다. 미국 상하 양원을 통과하고 미 대통령이 서명한 FTA를 재협상, 재재협상하자는 것은 국제적 무식의 소치다. 망신거리, 조롱거리밖에 안 된다. 지금 처리하면 이것이 총선심판의 잣대가 될 터인데 굳이 총선 뒤로 미루자는 것은 무조건 시간부터 끌고 보자는 전략이다. 한마디로 미국이 싫고 한국이 무역선진국이 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수구적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또 양식 있는 진보주의자들은 왜 침묵을 지키고 있을까. 세계 경제의 흐름이 자유무역체제로 가고 한미FTA에 긴장한 일본이 FTA와 유사한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를 미국과 서두르고 있는 형편인데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 오는 것도 싫다고 한다. 그렇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야당과 접촉하라고 강요했던 사람들이 말이다.


국회 외통위는 열흘 넘게 야당 당직자로 보이는 이들에게 점거당해 있다. 회의는 원천봉쇄 당했다. 회의장 밖에서 불법이든 편법이든 알아서 하라 한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국회가 불법폭력에 점거․유린당해도 속수무책, 수수방관이다. 이들 불법폭력 세력들이 ‘민주주의’를 소리 높이 외쳐댈 땐 실소가 나온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의 탄핵 정국이나 ‘미디어법’처럼 직권상정을 유도해 국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이들에겐 국익도 미래도 안중에 없다. 오직 권력욕만 가득할 뿐이다. 광우병 촛불시위로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던 이들이 이젠 끝장을 보겠다는 속셈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위기다. 정권 하반기 청와대는 힘이 빠지고 집권당은 무기력하고 선거는 가까워온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들이 잘못 짚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국이 산다. 이보다 더한 위기도 극복해온 우리가 아닌가. FTA는 이래저래 한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 거듭 강조하건대 내년 봄 총선이 아닌 ‘대한민국 미래의 봄’을 생각하자.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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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SD 2011.11.13 13: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 ISD는 말한다.
    이(I)놈의
    쉐(S)끼들
    뒈(D)져라!

  2. ddd 2011.11.13 13: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봄이되면 넌 없어. 그만 좀 지껄이라..

  3. 김재민 2011.11.17 1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속이 비어 시끄러운 철깡통 같이 대안 없는 반대만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금 처해있는 여당의 입장을 잘 해아리는 소리없이 지켜보는 국민들이 있기에 힘내시길 바랍니다.

의원들의 오버액션과 카메라의 함수관계

“제스처 정치, 쇼맨십 정치에 마침표를 찍자”


김형오(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토요일 아침 신문들을 훑어보다가 민망해졌다.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상정을 극렬하게 비난하는 야당 의원들 사진 때문이다. 많은 신문들이 1면 혹은 정치면에 그 사진들을 큼지막하게 실어 놓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진 속에 크게 부각된 의원이 정작 FTA 관련 상임위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는 회의장에 나타나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면서 훼방을 놓았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런 그의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이런 풍경은 사실 전혀 낯설지 않다. 그 동안 질리도록 반복되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익숙해져 있다. 국회의장 재임 시절만 돌아보아도 수많은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가 20년 가까이 몸담고 지켜보았지만 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우리 국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문제는 신문 지면이나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그런 자신들 모습을 전혀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그런 기회가 자주 오기를 바라고 있었던 사람처럼 행동한다.


출처: 한국일보



그럴 때마다 나는 “연예인과 정치인은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 말고는 모든 기사와 뉴스들을 반가워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결코 과장으로 들리질 않는다. 실제로 언론사 카메라가 플래시를 터뜨리면 그때까지 가만있다가도 마치 감독의 “레디 액션!” 지시를 받은 배우처럼 갑자기 삿대질을 하고 멱살을 잡고 마이크를 빼앗고 고함을 치는 등 오버액션하는 정치인들 모습을 심심찮게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런 오버액션과 쇼맨십을 소속 정당에 대한 충성도로 평가하고 공천에 반영하는 일은 앞으로 없어져야 한다. 지역구의 일부 충성스런 지지자와 당원들은 그런 행위를 두고 맹목적인 아부를 할지 모르지만 이는 한국 정치에 후진 기어를 넣는 일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밤새워 토론하는 대신, 선명성을 내세우고 강경 투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이가 부각된다면 그것이 바른 정치인가. 국민이 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지를 모른 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언어와 몸짓만 화려한 ‘제스처 정치’, ‘쇼맨십 정치’가 판을 치는 한 정치 발전은 요원하다.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를 놓고 생각해 보면 답이 명백해진다. 삿대질하는 안철수, 멱살잡이하는 박원순이 상상이 되는가. 변화와 자성을 요구하는 민의를 가슴에 각인하고 진정으로 겸손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자멸이다.


국민들 눈에는 그런 몸짓이 자칫 ‘할리우드 액션’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 망신을 사거나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축구 경기에서도 벌칙이 강화되어 할리우드 액션, 시뮬레이션 액션을 한 선수에게는 옐로 카드(경고)는 기본이고 심한 경우 레드 카드(퇴장)에 벌금까지 물리는 세상 아닌가.

언론에도 당부하고 싶다. 그런 정치인들은 투사가 아니다. 신념에 찬 용기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오버액션과 쇼맨십에 렌즈를 들이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말기 바란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 의회가 방송 장면과 보도 사진에 얼마나 많은 제약을 두는 줄 잘 알지 않는가. 이같이 볼썽사나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보도한다면 오히려 통렬하게 비판하고 질타하는 캡션이나 기사가 따라 붙어야 하는 게 아닐까.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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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류배우 2011.09.18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중부양의 달인인 줄만 알았더니 삿대질도 달인이셨군요.
    강기갑 의원은 전방위 상임위원인가 봅니다.

  2. 심판 2011.09.18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얄팍하게 할리우드 액션이나 쓰는 놈들은 기갑 부대를 동원해서라도 국회 밖으로 추방시켜라!

  3. 리사이틀 2011.09.19 0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명쾌한 지적입니다.

  4. 헬레나 2011.09.19 18: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 국회의원님은 그래도 대한민국의 공인인데,국민이 볼때에 불쾌감은
    주지말아야 되는 그런 위치에 있으시다고 봅니다.
    삿대질과 얼굴에 개성이 있으셔서 자기 개인은 좋겠지만
    우리 국민은 텔레비젼 보면서 다 한마디씩 말합니다.
    젊은 사람 얼굴에 수염은 왜? 기르시는지?
    정말 보기에 안좋다는 국민이 많습니다.
    보좌관들은 귀를 막고 사시는지? 좋은말만 올리시는지?
    삿대질의 달인 이군요, 강**의원...

  5. 병만이 2011.09.21 07: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인님, 공중부양의 달인님, 저한테도 한 수 가르쳐주세요.
    개그콘서트 <달인을 만나다> 소재가 궁합니다요.

  6. 스위프트 2011.09.24 16: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 전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상정 관련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회의 모습을 보고 탄식하는 글을 보내왔다. 고함과 삿대질이 난무하는 회의장을 두고 그는 "언어와 몸짓만 화려한 '제스처 정치' '쇼맨십 정치'가 판을 치는 한 정치 발전은 요원하다.…삿대질하는 안철수, 멱살잡이하는 박원순이 상상이 되는가"라고 말했다. 기성 정치권은 이대로 가다간 자멸하고 말 것이란다."
    (부산일보 9월 23일자, 김종명 칼럼 '왜 저들이 작아 보일까'에서)

    상대적으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우뚝 커 보이는구나.
    난쟁이 나라에 온 걸리버처럼.

  7. 여단장 2011.09.30 0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령한다.
    기갑이는 복귀하라.
    꼴값 그만 떨어라.

국정감사 여적(餘滴)=길 위에서의 이삭줍기③
지구 반대편에서 묵념과 헌화로 그대들을 추모하다
(콜롬비아)




“60년 전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알지도 못하는 작은 나라를 위한
 그대들의 고귀한 헌신을 대한민국 국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콜롬비아 군인들의 한국전쟁 참전을 기리기 위한 기념탑 앞에서 묵념과 헌화 등 추모식을 마친 다음 내가 대표로 방명록에 남긴 글입니다.

▲ 똑같은 복장,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군인들. 헬멧에 헌병대를 뜻하는 PM(la Policía Militar, 영어의 Military Police)이 새겨져 있으며, 손에는 소총이나 악기 등을 들고 있다. 잠시 후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걸까.

▲ 보고타 시내 중심부에 있는 국방대학교에 웬 석가탑? 양 옆에는 태극기와 콜롬비아 국기가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 레드 카펫이 펼쳐져 있다. 마주보고 도열한 병사들과 그 오른쪽에 있는 군악대가 잠시 후 어떤 의식이 엄숙하게 진행될 것임을 예고해 준다.

▲ 하단부에 붙어 있는 현판, 거기 새겨진 한글이 이 석가탑을 닮은 조형물의 정체를 설명해 준다. 1973년 5월 19일, 대한민국 국민이 콜롬비아 군에 기증한 ‘한국전 참전 기념탑’인 것이다.


지난 10월 14일, 재외 공관 국정감사를 위해 콜롬비아에 간 우리 팀은 보고타 시내 심장부에 위치한 국방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탑에 참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이 기념탑은 1973년 5월 19일 보고타 시내 중심부(Calle 100/Cra 15)에 설치되었지만, 도로 공사로 인해 1997년 3월 19일 국방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왔습니다.

▲ 우리는 묵념으로 한국전쟁 당시 세계 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숨진 콜롬비아 군인들을 추모했다. 콜롬비아 국방대학교 부총장인 알베르토 호세 노게라 장군이 내 옆에서 거수경례로 예를 갖추고 있다.


▲ 국기에 대한 경례. 왼쪽부터 김영우 의원, 최병국 의원, 알베르토 호세 노게라 장군, 나, 홍성화 콜롬비아 대사, 황진하 의원, 송민순 의원. 심장의 박동이 손바닥으로 전해져왔다.


콜롬비아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 국가로 구성된 국제연합(UN)군 가운데서 중남미에서는 유일하게 군대를 보낸 나라입니다. 파병 규모는 보병 1개 대대, 해군 구축함 1척, 연인원 4314명이었고, 그밖에 의류 500벌 등을 원조했습니다. 전사자는 214명, 부상자는 438명. 그러니까 예닐곱 명 중 한 명꼴로 죽거나 부상을 당한 셈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말입니다. 적도 가까운 콜롬비아에 살던 그들은 한국의 혹독한 겨울 추위와도 모진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 한국전 참전 기념탑 앞에서 찰칵! 앞줄 왼쪽부터 황진하 의원, 홍성화 콜롬비아 대사, 나, 알베르토 호세 노게라 장군, 최병국 의원, 김영우 의원. 뒷줄 왼쪽은 전홍조 외통위 국장, 오른쪽은 김근준 콜롬비아 대사관 국방무관.


▲ 묵념과 헌화 등 추모 행사를 마치고. 알베르토 호세 노게라 장군의 손은 여전히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우리도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러나 뜨거운 태양의 나라 콜롬비아 군인들답게 남미인 특유의 열정과 용맹성으로 적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전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들은 특히 화천·금화·연천 등 중부 전선에서 맹활약을 했습니다.

▲ 방명록에 글귀를 남기고 있는 내 손끝이 조금 떨렸다. “60년 전 지구의 반대편에 알지도 못하는 작은 나라를 위한….” 태극기와 콜롬비아 국기가 그런 내 손끝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슬프고 또 아름다운 수많은 이야기들이 탄생되었습니다. ‘전쟁고아 윤우철 스토리’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1953년 7월, 한국전쟁이 끝나고 콜롬비아로 귀환하는 한 병사의 군용 백 속에는 남자아이 하나가 숨을 죽이고 웅크린 채 숨어 있었습니다. 나중에 ‘인간 밀수’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희대의 고아 수송 작전, 일명 ‘더블 백 작전’의 시작입니다. 주인공은 콜롬비아 보병 대대 상사였던 아우렐리우노 가욘과 아홉 살 난 한국의 전쟁고아 윤우철.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로부터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 달 간의 긴 항해 끝에 한국에 도착해 중부 전선 최전방에 배치된 가욘 상사는 어느 날 막사 쓰레기장 근처에서 추위와 허기에 지친 어린 우철을 발견, 그 뒤로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니며 보살핍니다. 그러는 사이 정이 깊이 들어 전쟁이 끝나면 콜롬비아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데려갈 방법이 없어 소년을 군용 백 속에 숨긴 채 미군 수송선에 올라타고 28일 만에 콜롬비아 땅에 닿았습니다. 그러고는 양아버지가 되어 우철에게 카를로스 아르트로 가욘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 뒤 우철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삼성 콜롬보재단의 후원으로 1999년 5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국에 와 극적으로 친누나를 만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11년 전 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어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 참전 기념탑 밑에는 우리가 바친 꽃다발이 숨진 군인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꽃이 시들어도 그 향기는 오래오래 머물러 있으리라.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에 참전한 콜롬비아 군인들. 그들은 전쟁이 끝나 고국으로 돌아간 뒤로도 영예롭게 그 이름을 빛냈습니다. 2명의 국방장관을 비롯해 참모총장 등 군의 요직에 대거 진출, 콜롬비아 국방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고 합니다.

출처: NEWSIS

▲ 거북선을 본떠 만든 한국전 참전 기념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서 콜롬비아 군인들이 한국전 참전을 위해 출항했던 카르타헤나 항구에 2008년 11월 1일 건립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인천시 서구 가정동 콜롬비아 공원 안에는 콜롬비아 대대 참전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1974년 9월 24일에 건립된 이 기념비 주변은 꽃과 나무들로 단장돼 있어 시민들의 쉼터 역할도 해주고 있다.


또한 한국전 참전 군인과 그 후손들은 콜롬비안 안에서 대표적인 친한(親韓) 인사 그룹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콜롬비아 정부 역시 북핵 문제 등 북한 관련 이슈가 대두될 때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우리 입장을 지지해온 든든한 우방국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더욱더 우의와 신뢰 그리고 협력 관계를 돈독히 다져 나갈 것을 기대하고 다짐해 봅니다.

▲ 1955년 3월 23일 콜롬비아에서 발행된 한국전 참전 기념우표 세트. 광복 이후 우리나라를 소재로 만들어진 최초의 외국 우표이다. 우표 중앙에는 콜롬비아 군장을 넣고 왼쪽엔 콜롬비아 국기, 오른쪽엔 태극기를 그려 놓았다. 그 밑으로는 낙동강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다리를 고쳐 주고 있는 콜롬비아 군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출처: 신문스크랩

▲ 콜롬비아 최대 일간지 ‘EL TIEMPO’가 11월 2일자 신문에 보도한 기사 스크랩. 국회 외통위 소속 남미 국정감사 팀의 한국전 참전 기념탑 추모 행사 내용을 싣고 있다. 이 소식은 콜롬비아 국영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서도 보도되었다.


※P.S. 지난 10월 13일 콜롬비아 대사관 국감을 통해 내가 요청했던 서면 자료가 도착했습니다. 다음은 내가 질의했던 ‘참전 용사 후손들의 취업 지원 대책’에 대한 대사관 측의 답변을 간추린 내용입니다.
  ▶ 한글 교육 연수 기회 확대.
  ▶ 한국에서의 학위 연수 및 장학생 프로그램 참여 기회 확대.
  ▶ 학위 과정이나 직업 훈련을 마친 참전 용사 후손들에게
     인센티브나 가산점을 주어 국내 기업 및 콜롬비아 현지 진출 한국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 및 알선.

  ▶ 참전 용사 후손을 채용하는 현지 기업에 세제 혜택 등 부여.
  ▶ 대사관과 KOTRA가 콜롬비아 직업훈련청(SENA) 등과 협조,
     주재국내 각 직업 훈련 기관의 교육 및 취업 정보 제공.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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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클라우제비츠 2010.11.08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지만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말이 생각납니다.
    국감 여적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2. 국화꽃향기 2010.11.09 03: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고 나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콜롬비아를 비롯해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16개 국 국제연합군 전사자들에게 깊숙이 감사드리며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3. BlogIcon 너서미 2010.11.09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을 보고 마음이 숙연해지는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힘들 때 다른 나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이제는 우리도 다른 힘든 나라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4. BlogIcon 무좀엔PM 2010.11.09 14: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윤우철 스토리"...
    아 이런 일도 있었군요...

    정말 6.25전쟁, 한국전쟁은...시대의 아픔이자 민족의 비극이었습니다.

  5. 트라이앵글 2010.11.10 1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멕시코 애니깽, 페루 꼬라오 마을, 콜롬비아 한국전 참전 기념탑.
    연작 3편으로 이어진 국정감사 여적,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삭 줍는 소쿠리가 가득 찬 느낌입니다.

  6. 나이스 2010.11.12 09: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국회의원 홈피나 블로그에 들어가도
    아마 이런 식의 글은 올라 있지 않겠지요?
    국정감사의 새로운 모델을 보는 것 같습니다.

  7. 트렁크 2010.11.19 08: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더블백 속의 소년> 저도 본 기억이 납니다.
    정말 감명 깊은 다큐멘터리였어요.
    영화 소재로도 괜찮을 듯.

  8. 즉각대응 2010.11.23 18: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보보다, 자주국방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북한 주석궁에 미사일 포격을 가해서라도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9. 현충일아침 2011.06.06 0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향, 헌화, 묵념으로 호국 영령들을 추도하며
    지구 반대편 은인들을 함께 기립니다.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국정감사 여적(餘滴)=길 위에서의 이삭줍기②
꼬라오 마을에 ‘희망꽃’ 피운 꼬레아의 우정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Cusco) 외곽에는 꼬라오(Ccorao)라는 이름의 작은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해발 3700미터 높이에 있는 원주민 마을입니다. 꼬라오, 왠지 정겹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어쩌면 꼬레아(Corea, 한국)와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발음을 떠나 이 마을은 실제로 우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6년 전부터 봉사단원을 파견해 희망의 씨앗을 심고, 또 꽃을 피워가고 있는 마을이니까요.


▲ 꼬라오 도자기 학교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 맨 위에 큰 글씨로 ‘비엔베니도스(Bienvenidos)’라고 써 놓았다. 우리말로 “환영합니다”라는 뜻이다. KOICA 앞치마를 두르고 도예 작업 중인 한국 여성, 페루 국기와 나란히 걸린 태극기 그림이 눈길을 끈다.

▲ 손에 손에 태극기와 페루 국기를 든 어린이들이 마을 어귀까지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반기듯이 스스럼없이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체온이란 따뜻한 것이다.


▲ 어른들도 참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성긴 이빨을 그대로 드러낸 채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 맞아 주었다. 옷은 비록 남루해도 태극기는 눈부시게 깨끗하다. 의료 지원 및 봉사를 좀 더 강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월 17일, 우리 팀은 바쁜 일정을 쪼개어 꼬라오 마을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무상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서 G20 국가에 걸맞은 기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꼬라오 마을은 우리의 원조 사업으로 현지 주민들 삶의 질이 높아진 대표적인 성공 모델입니다.

▲ 산세바스티안 시의 훌리안 로카 시장이 조끼 비슷하게 생긴 원주민들의 전통 의상을 내게 입혀 주었다. 기온이 낮아 조금 쌀쌀한 느낌이었는데 잘됐구나 싶었다. 행사 내내 그리고 페루를 떠날 때까지 나는 이 조끼를 입고 다녔다.


▲ 98%의 호기심에 2%의 경계심이 담긴 눈빛으로 우리 일행을 바라보는 두 여자 어린이. 아마도 자매인 듯싶다. 그 뒤로는 우리가 선물로 가져온 쌀 포대가 쌓여 있다. 흑백으로 찍었더라면 50~60년대 우리의 시골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페루는 우리에게 중남미 지역 제1의 지원 대상국이면서 또한 전 세계적으로 봉사단을 가장 많이 파견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지원 규모는 약 861만 달러. 중점 지원 분야는 교육 및 보건 의료, 인적 자원 개발 등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지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참 부족합니다.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너무 미미해 수치로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일본과 우리의 GDP 차이가 6배라면, 대외 원조 규모는 다시 그 1/10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 중절모를 쓴 할머니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나는 머리에 원주민들이 준 전통 모자인 ‘츠요’를 쓰고 있다. 원래는 귀가 살짝 덮이도록 좀 더 내려 써야 하는 모자란다. 할머니는 무릎 위에 아기를 안 듯 쌀 포대를 안고 있다.


▲ 오늘은 꼬라오 마을의 잔칫날이나 마찬가지다.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보려고 몰려나왔다. 주민들 입가에선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그만큼 우리 한국의 봉사단원들이 순수함과 진정성으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리라.


  KOICA(이사장 박대원)는 옛 잉카 문명의 중심지로서 약 3천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꼬라오에 2004년 처음 도자기 학교를 세웠습니다. 잉카 전통 자기에 한국식 유약 바르는 법을 가르쳤는가 하면, 판로를 개척하고 마케팅 기법도 전수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꼬라오 마을은 관광객 수가 늘어나고 도자기 매출액이 껑충 뛰어올라 주민들의 소득 또한 증대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비바 꼬레아”를 연호해가며 그렇게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친근하게 대해 주었나 봅니다.

▲ 고산 지대라서 걸음도 천천히 걷고 힘쓰는 일은 하지 말라 했는데 하도 많이 아이들을 안아 주다 보니 나중엔 숨이 가쁘고 팔이 저릿저릿했다. 그래도 마음은 뿌듯했다. 유년기로 돌아가 어릴 적의 나를 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 교복인 걸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빨간 티를 입고 환영을 나왔다. 붉은 악마 악동을 연상시키지만 붉은색은 페루의 국기 색이고 국민 색이다. 뒷줄 왼쪽부터 김영우 의원, 외통위 전홍조 국장, 한병길 페루 대사, 황진하 의원, 훌리안 로카 시장, 나 김형오, 에스테반 꼬라오 마을 대표, 최병국 의원.


  KOICA는 현재 내년에 완공할 계획으로 100만 달러의 예산을 지원해 꼬라오 마을에 감자가루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도자기 전시장과 마을회관도 확충할 예정입니다.

▲ 선물로 쌀 140포대를 준비해 와 꼬라오 마을 대표인 에스테반 씨에게 전달했다. 130여 가구가 한 포대씩 나누어 가질 분량이다. 문득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나누어 주던 옥수수가루 포대를 받으려고 번호표를 손에 든 채 교회 앞마당에 줄을 서 기다리던 우리 동네 어른들 모습이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 우리도 답례로 꼬라오 마을 주민들이 준비한 선물을 받았다. 손에 들고 있는 선물들이 각양각색이다. 왼쪽부터 장봉순 코이카 소장, 김영우 의원, 황진하 의원, 나, 훌리안 로카 시장, 최병국 의원, 한병길 페루 대사.


  나는 이 마을에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천사 같은 두 여성을 만났습니다. 권은주씨와 김아람씨. KOICA 단원인 그녀들은 미혼으로서 1년 남짓 꼬라오에 머물며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도자기 학교 마당에서. 내 어깨 너머로 잉카의 도예가가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 보인다.


▲ 잉카 전통 스타일의 도자기에 유약을 바른 완성품을 감상하고 있다. 왼쪽부터 코이카 봉사단원 권은주씨, 황진하 의원, 최병국 의원, 나.


▲ 서울에서 가져온 특별선물을 꼬라오 마을의 두 한국인 천사에게 전달하고 있다. 뭘까요? 힌트! 내 이름 석 자 중에서 한 글자와 똑같은 음식이다. 왼쪽부터 장봉순 코이카 소장, 한병길 페루 대사, 최병국 의원, 권은주씨, 나, 김아람씨, 황진하 의원, 김영우 의원.


  그 일이 얼마나 힘겨울는지 경험해 본 나는 잘 압니다. 왜냐면 꼬라오는 해발 3500~3700미터를 넘나드는 고산 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이 해발 2744미터입니다. 백두산보다도 1000미터나 더 높은 곳, 웬만한 식물은 서식조차 할 수 없는 까마득한 고지대에서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가난한 산골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있는 아담한 체구의 앳된 두 여성….
  게다가 환경은 얼마나 열악한지요. 목욕은 거의 하지 않고, 옷도 한번 입으면 해질 때까지 갈아입지 않는다는 원주민 마을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이 더욱 더 대견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 꼬라오 마을의 전통 공예품이나 의복·장신구·도자기 등을 파는 가게. 우리가 머문 한 시간 반 동안 관광버스가 8~9대는 올 정도로 홍보가 잘 돼 있었다. 도자기 전시 판매장은 이 사진 왼쪽에 있다.


▲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한 채 헤어지기 전에 찰칵! 뒤에 있는 버스는 관광객들이 타고 온 것이다. 우리는 마을 입구에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서 왔다. 이미 앞 사진들에 나온 인물들이라서 개별적인 소개는 생략한다. 다만 오른쪽에서 세 번째, 가방을 허리 아래로 내려뜨린 이 미모의 여성은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시는 분 연락 바람.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힘이고 가능성입니다. 나는 그 연약해 보이는, 그러나 누구보다도 강인한 그녀들에게서 내 조국의 눈부신 미래상을 보았습니다. 21세기를 선도해 나갈 젊은이들의 맑은 열정과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정감사로 떠난 출장길에서 만난 그녀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마을에 머무는 동안 열 번도 넘게 외쳤던 구호를 다시 한 번 외쳐봅니다. “비바, 페루! 비바, 꼬레아!, 비바, 꼬라오!”

▲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가 아쉬워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사실 여기 오기 전날 밤부터 우리는 고산병 예방약도 먹고, 주의를 단단히 들었습니다. 절대로 뛰지 말 것, 무거운 것 들지 말 것, 어지럽거나 구토가 나면 곧바로 연락할 것…. 그러나 원주민들의 뜨거운 환영과 따뜻한 환대 덕분인지 우리는 전날의 주의 사항도, 여기가 백두산보다 1000미터나 높은 곳이란 사실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마치 그들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혹은 지리산 계곡 같은 곳에서 반갑게 만난 지인처럼 금세 친해져 격의 없이 어울렸습니다.


▲ 노란 손수건 대신 태극 깃발과 페루 깃발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어떤 할머니들은 우리를 만나 너무 기쁘다며 눈물을 흘렸었다.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는 할머니들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일까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작별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원주민들은 어김없이 그 자리에 서서 계속 깃발을 흔들며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차례의 재촉 끝에 우리는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한 뒤 타고 온 버스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런 우리 뒤를 원주민들의 눈길과 마음이 아주 멀리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이 모두가 KOICA의 두 천사들 덕분입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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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퍼민트 2010.11.04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블로그가 아니면 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의장님이 보고 온 두 천사에게 정말 존경어린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이제 우리도 경제 규모와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코리아의 이미지를 세상에 심어야 할 때입니다.

  2. 비엔나 2010.11.04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른들도 '천진난만함'을 간직하고 있는 신비의 마을이군요!
    그 곳에 가면 모두 순수해 지나 봅니다.
    호야님 맑은 표정에서 느껴지네요.

  3. 해피송송 2010.11.04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 어른아이 할 것없이 모두 얼굴이 발그레 하네요

  4. 사랑한가득 2010.11.05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땟국물이 흐르는 개발도상국가의 아이와 아저씨, 할머니들을
    사랑으로 품어 안은 모습이 내 마음을 울립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 쓸 수 없는 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정치도 그런 마음으로 하시겠지요?

  5. 코카콜라 2010.11.05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읽으며, 사진 속의 얼굴들을 보며
    가슴이 캐시미론 이불을 덮은 듯 따뜻해졌습니다.
    사랑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듬뿍 느껴지는 글과 사진들입니다.
    아직도 저런 순수의 마을이 있다니,
    인류는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6. Sunny 2010.11.05 16: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속의 얼굴들은 순수하고 이국적이지만, 저들의 일상은 팍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으로는 행복지수는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보구요. 물질이 행복을 담보해주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품격을 유지시켜주는 물질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전쟁과 가난을 극복해낸 부모님세대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비바 의장님이십니다.!!Sunny는 진선희과장의 닉네임입니다^^

    • 김형오 2010.11.05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Sunny 영문도 한글도 이름도 얼굴도 이쁘군요 일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힘든 곳에 수행해 온갖 사전 준비와 뒤치닥거리를 깔금하고 말끔하게 처리하는 능력에 우리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더 큰 발전있기를!! 호야

  7. 김형오 2010.11.05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늦가을 추위를 녹이듯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길상사 법정스님 열반 다비 때 나는 우리 겨레의 한없는 사랑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사랑이 없는 정치 사랑이 없는 인생은 무의미합니다
    나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하여 정치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증오의 불씨를 꺼버리기 위하여 소명감을 갖고 정치를 합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사랑 애국하는 마음을 존중합니다 호야

  8. 르네상스 2010.11.06 0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취와 체온이 느껴지는 블로깅입니다.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배어납니다.

  9. 2010.11.26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