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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가요대전, KBS 가요대축제, MBC 가요대제전

연말 시상식과 가요축제를 보면서 문득 "예전 가요계의 모습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변진섭, 이승철, 박남정, 현철, 주현미 vs 소녀시대, 다비치, 애프터스쿨, 카라, 브아걸, 티아라

 

1989년의 최고 인기가수들과 2009년을 대표하는 걸그룹들을 놓고 보니 격세지감이라 느낍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두 번 변했을 가요계도 많은 일들이 있었겠죠?

과연 20년 전의 가수들은 어떤 노래들을 불렀을까요?
1989년의 가요판은 누가 주도했을까요?
그 당시와 지금의 가요계 분위기는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 양쪽의 공통점은 각각 1989년, 2009년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는 것. 그리고 <소녀시대>란 곡을 불렀다는 것

 
 

'남자가수-오빠부대' vs '걸그룹- 삼촌팬'

 

2009년 가요계의 가장 큰 특징은 '걸그룹의 강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과 몇 년전까지 '아이돌 스타'라고하면 미소년 그룹와 오빠부대를 떠올렸지만 2007년에 탄생한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걸그룹의 인기를 주도해 나간 후, 걸그룹은 유래 없는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게다가 원더걸스는 <노바디>를 앞세워 미국 빌보드 메인차트 100위에 오르는 활약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걸그룹의 성장에는 삼촌팬들을 위시한 남성팬들의 증가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걸 느끼게 해 준 대표적인 사례가 소녀시대의 <Gee>입니다. 공개녹화장에서 소녀시대가 이 노래를 부르는 중 따라부르는 남자팬들의 우렁찬 목소리를 여러분들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Gee Gee Gee Gee~ Baby Baby Baby~"

 

오빠부대의 소프라노급 환호성과는 다른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군대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이 광경은 이제 음악방송 녹화장에서도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 1989년 가요계를 주도했던 3인방. 변진섭, 이승철, 박남정


2009년에 걸그룹이 가요계를 휩쓸었다면 20년 전의 대중음악은 어땠을까요? 1989년의 가요계 판도는 올해의 양상과 정반대였습니다. 양수경, 이선희, 이상은 등 여자 가수들이 있었지만, 남자 가수들의 위세가 대단했죠.

1989년의 초반을 장식한 것은 변진섭이었습니다.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 <너무 늦었잖아요>를 히트 치며 가요계를 주도해 나갔죠. 그 당시 경쟁곡은 조성모와 이승환의 리메이크 하기도 했던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었습니다. 박남정의 기역자 춤으로 유명한 <널 그리며>와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도 인기를 끌었죠.

5월 전후로부터 이승철의 대활약이 시작되었습니다. 1989년 최다 음반 판매고를 올린 그는 <마지막 나의 모습>,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를 앞세워서 연중 흥행 돌풍을 이어갔습니다. 마약 스캔들이 터지고 방송 불가 등의 핸디캡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습니다.

조용필도 10집을 발표했으나 역시 스캔들이 터지면서 칩거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것이 가요계의 군웅할거시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신인 가수들이 치고 나갈 틈새가 더 커졌기 때문이죠.


▲ 조용필(좌)이 스캔들로 주춤한 사이 <여름날의 추억>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이정석(우)


늦여름 이후로 이정석의 <여름날의 추억>, 황치훈의 <추억 속의 그대>가 크게 유행한 노래가 되었고, 이후 김흥국을 지금에까지 있게 해 준 최대히트곡 <호랑나비>가 후반기에 등장했습니다. 그의 호랑나비춤은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죠. 

 
이렇게 남자가수들의 강세가 이어지는 데에는 오빠부대의 공로가 컸습니다.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원조격인 조용필, 이승철의 팬클럽이 여전히 건재한 것을 보면 당시 그들의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메세지, 인터넷 카페가 없던 시기에 팬레터는 가수와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죠



'발라드' vs '댄스음악'

 

2009년 가요계의 뒤흔든 장르는 댄스음악입니다.

 

걸그룹들이 펼치는 춤과 노래는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고 있습니다. 이들 걸그룹들은 단순히 음악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영입 0순위의 고객들이죠. 그들이 보여주는 춤을 비롯한 다양한 장기는 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비록 '아이돌 스타', '댄스음악', '걸그룹'으로의 획일화가 우려된다는 일각의 목소리도 있습니다만 2000년대 이후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추이가 바뀐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 소녀시대, 원더걸스와 함께 올해 걸그룹의 강세를 말해주는 애프터스쿨, 티아라


이에 비해 1989년은 지금처럼 비디오형 가수보다는 오디오형 가수가 좀 더 강세였죠. 박남정, 김완선, 소방차와 같이 춤-노래에 모두 능한 가수들도 있었지만, 발라드의 강세를 뒤집을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발라드 가수들이 인기를 끌면서 화보 촬영 등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높여갔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주류 매체가 되면서 시청각에 영향을 미쳤지만, 당시에는 TV 못지 않게 라디오가 강세였던 시기였죠. 일부 잡지에서는 작사가, 작곡가 등의 순위를 따로 올리기도 했었구요.


▲ 이선희, 이지연과 함께 1989년을 빛낸 여자가수들. 춤짱인 김완선, <DDD>의 김혜림, 탤런트 출신 가수 지예



 '솔로' vs '그룹'

1990년대 초중반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댄스음악을 대중음악의 주류로 끌어올린 시조격이었다면, HOT, 젝스키스 등의 남자아이돌 그룹은 본격적으로 정착화시킨 그룹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09년부터 걸그룹의 강세가 눈에 띄는 가운데, 남성그룹에서 여성그룹으로의 이동이 있었을 뿐,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아이돌 댄스그룹'의 위세는 더욱 강화되는 추세입니다.
 

물론 2000년대의 남녀 솔로가수들도 자기 영역을 구축하며 꾸준한 인기를 차지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의 대중음악 경향과 비교해본다면 상대적으로 그룹이 대세라고 하겠습니다.



▲ 인기스타 최수종과 <내 아픔 아시시는 당신께>를 부른 조하문은 처남-매부지간


이에 비해 1989년 무렵에는 그룹보다는 솔로에 집중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룹으로 가요 차트에 이름을 올린 가수라면 소방차, 무한궤도(신해철)였고, 얼마 후 그들도 해체의 수순을 밟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죠. 그리고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매니지먼트 체계를 갖고 있지 않았던 시기여서 그룹보다는 솔로가 보다 이점이 있었습니다.

1989년의 대중가요는 양질에 있어서 본격적으로 발전이 이루어지던 때였는데, 이 시기가 지나고 1990년대에 들어서자 '싱어송라이터'들이 대거 등장하여 가요계의 중심에 서게 되었죠. 그러면서 솔로와 그룹의 형태도 좀 더 다양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룹에 따라서는 객원가수가 앨범의 타이틀 곡을 부르기도 했죠. 

1989년에는 이전의 시대까지 지배해오던 판에서 벗어나 신인급 솔로가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그들이 가요계에 태풍이 되자 가요계 내에서도 양질의 발전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국민들이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면서 문화적 욕구가 조금씩 꿈틀대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1989년과 1988년에 다크호스로 돌풍을 일으킨 주역 <호랑나비>의 김흥국과 <담다디>의 이상은


과거 연말 가요시상식을 떠올리며


1990년대 중반까지 연말 TV 가요대상은 시대 분위기에 비해 보수적이었습니다. 다른 가수들에 비해 출연빈도, 노래가 방송에 나간 회수 그리고 음반판매량에서도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주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곡이나 가수들이 연말 시상식에서는 외면 받은 측면이 있었죠.
 

특히 KBS는 좀 더 보수적인 경향을 띄었습니다.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계를 휩쓸었지만, 대상을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죠. 그리고 KBS에서 댄스음악으로서 대상을 처음 수상한 곡은 1995년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었고, 댄스그룹으로서 첫 가요대상은 1998년 <빛>을 부른 HOT였습니다.


▲ 이승환과 신해철은 헤어스타일 빼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네요


1990년대 초반까지 매주 방영된 가요프로그램과는 달리 연말 가요시상식에서는 트로트와 비트로트로 나뉘는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그리고 트로트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어드밴티지가 있었습니다.

1989년에도 그러했습니다. 변진섭, 이정석, 이승철, 황치훈, 김흥국와 같은 가수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러나 결과는 달랐습니다.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서는 주현미가, KBS에서는 현철이 각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물론 이승철은 후반기에 마약 사건이 터지면서 방송 출연에 타격을 받았죠.)


▲ 진행자로 유명했던 임백천은 <마음에 쓰는 편지>라는 곡을 불렀죠.
그는 이경규와 <일밤>을 같이 진행한 바도 있고,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 속은 적도 있었죠. "얼레리꼴레리~"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트로트의 위상이 달라지고 가요계의 인기 주도층이 10~20대쪽으로 쏠리자, 트로트가 연말시상식에 설 자리가 매우 좁아졌습니다. 그래서 MBC의 경우에는 1998년부터 4년간 10대가수가요제를 30대 이하-이상을 나누어서 시상하기도 했었습니다. 이후 가요시상식에 대한 과열 양상과 비난 여론이 일어나자 시상식은 폐지가 되고 가요축제 형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연말 가요시상식은 흥행성에 있어서 대중들의 이목을 끌만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각종 시상식이 그 의미가 퇴색되어감에 따라 회의론도 커졌습니다. 상에 대한 기준이 일관되고 명확하지 않는 이상, 연말에 상을 놓고 겨루는 가요프로그램에 대한 명분은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연말 가요프로그램은 평소에 보았던 가수들의 재탕에서 탈피해서 다양한 이벤트와 실험을 통해 신선한 음악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건 1989년과 2009년의 가요계 분위기를 비교해봤는데,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데뷔 3년차 이하급의 신예 가수들이 가요계를 주도했다는 것이죠.


< 사진 출처 : 포토뮤직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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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펨께 2009.12.31 0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것도 세대차인지 아시는 분은 조용필과 어디선가 들은 서태지씨 밖에 없는것 같네요.
    글 잘 보고 갑니다.
    새해에는 더욱 행운이 깃드시기를 바랍니다.

    • BlogIcon 칸타타~ 2009.12.31 0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1989년은 저도 학생시절이죠.
      예전과 요즈음의 가요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아무튼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

  2. BlogIcon Phoebe 2009.12.31 0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9년은 고등 학교 갓 졸업한 뽀송뽀송한 아가씨였어요.ㅎㅎㅎ
    옛날 분들 오랜만에 사진으로 보네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3. BlogIcon 반광선 2009.12.31 07: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9년도..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ㅋㅋㅋㅋㅋㅋ

  4. BlogIcon 악랄가츠 2009.12.31 17: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초등학교도 가기 전이예요! ㅎㅎㅎㅎ
    당시에는 아이돌은 커녕, 그룹가수도 극소수였는데 ㅎㅎㅎ
    너무 어려서인지 기억이 날듯 말듯 해요! ㅎㅎㅎ

  5. 민君 2012.05.25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엄청 촌스럽네요 흥국이 아져씨도 젊고 89년이면 국민학이였네연 지금은 30대 아져씨 ... 나이가 드니 이 나이에 사랑 타령으로 가사가 떡칠된 노래 부르기도 거시기하고 이렇게 점점 노인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ㅋ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할 순간을 3가지 꼽으라 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선 '내가 아끼는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이 나로 인해 근심 잊고 행복해 하는 순간'.
두 번째가 '내가 혹은 내가 응원하던 사람(혹은 집단)이 숙원을 달성하는 순간'.
마지막으로 '멋진 공연 삼매에 빠져 있는 순간'


▲ 어느 업체가 무상으로 제공한 손세정제팩. 팩의 가운데를 접으면 톡~하고 세정액이 튀어나옵니다.


몸을 홀대했더니 온몸이 종합병원으로 둔갑해서 링거에 의지하는 상황까지 갔습니다. 
겨우 정신이 들자 회복기의 몸을 간신히 추스려 평소에 좋아하던 이승철의 콘서트장으로 달려갔죠.

여전히 불편한 몸 때문에 2시간의 공연은 견디기 힘들었지만, 마음만큼은 행복했습니다.
이것이 '삶의 에너지'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 준  콘서트~!

이승철의 <로맨티카>

지금부터 그 환상의 무대로 빠져 보겠습니다.




공연 직전, 무대 양 쪽에서 나오는 동영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러 걸그룹이 각각 한 팀씩 등장하며 "평균 연령 21.X세",  "평균 연령 22.X세"라고 나오다가
마지막에 40대의 이승철이 등장하자 삼촌-조카뻘 나이 차이 때문에 폭소가 터졌습니다.

곧이어 동영상을 통해 2009년 골든디스크 수상 소감을 이야기하는 이승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가 1989년, 2004년 그리고 올해 수상했는데, 10년 뒤에 이 상을 다시 타겠습니다."


미소년 같던 이 양반이 내년이면 데뷔 25주년을 맞는다니, 정말 세월은 화살과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리고 이어진 동영상에서 그룹 <부활>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쭈욱 펼쳐졌습니다.



▲ 드디어 공연 시작???


강렬한 음악과 함께 댄서들이 힘찬 춤사위를 발산하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습니다.


(공연 중에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찍을 수 없었던 점 이해바랍니다.)


▲ 공연을 위해 조명이 꺼지기 전후의 모습


오프닝 이벤트가 끝날 무렵, 무대 뒷편에서 서서히 떠오른 한 사람.

바로 이승철이었습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로 강렬하게 시작한 무대로 잠실실내체육관 전체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이승철이 <검은 고양이>를 부를 때, 간주 중에 레이저를 난사한 부분은 화려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또, 그가 한 팔을 들고 관객석을 향해 회전하며 인사하는 장면은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죠.

<가까이 와봐> 를 통해 가수와 팬이 하나 되는 무대로 빼놓아선 안 될 백미였죠.


이승철은 20여년간 자신의 곁을 지켜준 스탭들과 팬클럽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신나는 곡을 3연타로 터뜨린 이승철은 돌연 분위기를 바꾸었습니다.
조명이 어두워지고 잔잔한 음악이 깔린 뒤, "It's hard"가 화면에 뜨자
저는 이번 곡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죠.

<사랑 참 어렵다>

그렇게 한동안 조용한 분위기로 이어지는가 했으나 그것은 제 예상과는 달랐죠.
곧바로 제가 좋아하는 <이 순간은 언제까지나>로 분위기 전환~!

"끝없이 반짝이는 잠실에서~"

제 옆 자리에는 40대로 보이는 부부가 있었는데, 이 좋은 분위기 속에서 부부싸움이 일어난 겁니다. 
아주머니는 한껏 흥이 났건만, 아저씨는 공연에 적응을 못하는 눈치였죠.

참다 못한 아줌마의 한 방~!

"놀러 왔으면 제대로 놀다 갑시다. 쫌~!"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마구 쳐다보니 눈치가 보였던 아저씨.
 "에라~ 모르겠다." 하시더니 그 다음부터는 박수치고 폼 잡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ㅎㅎㅎ

그렇습니다. 공연장에 와서 양반 행세하고 간다고 해서 누가 대접해주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 이승철은 공연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좋은 곳에 쓰고 있더군요


이승철의 콘서트는 국내에서 지금껏 5년 연속 최다관객 매진 중이라고 합니다.
그는 20년 동안 자신의 콘서트 때문에 120여명의 스탭들이 매년 설 명절을 제대로 보낸 적이 없는데, 
이런 최고의 스탭들이
 있어서 자신이 더 빛날 수 있었다며 공적을 돌리는 미덕도 빠트리지 않았죠.

(이번 서울 공연 1회당 7천명 X 4일 = 이번 콘서트 투어 서울 관객 2만8천명)

또한 이승철은 팬클럽에 대한 고마움도 장난끼 섞인 표현으로 대신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전성기 때엔 뽀송뽀송하던 소녀팬들이 자신을 맞아주었었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더니 지금은 팬클럽 회장 나이가 마흔이라고 하면서 팬클럽 이름이 '새침떼기'라고 탄식하더군요.

그러자 팬들로부터 박장대소가 터져나왔죠.


어쩌겠습니까? 이승철 당신이나 당신의 팬인 우리들이나 이젠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것을 ㅋㅋㅋ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 나라에도 머지 않아 3대가 같이 볼 수 있는 공연이 탄생할 것 같습니다.

(규모 있는 팬클럽을 가진 가수 중에 조용필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팬클럽을 가진 가수가 이승철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 헤어져야 할 시간


역시 이승철을 말하는 곡이라면 <마지막 콘서트>, <희야>죠.

이번 공연에서 <마지막 콘서트>의 전주는 하모니카 연주로 꾸며졌습니다.
열광적인 분위기는 어느 새 사라지고 고요함만이 가득한 가운데 
서서히 흘러나오는 이승철의 감미로운 목소리.

노래가 흐르자 저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노래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죠? 피아노 간주.
그리고 클라이막스 "밖으로 나가 버리고오오오오오오오오~~~~~~~~~~~~~~~~~~~~"

(전성시절 이 부분에서 영화 <파리넬리>의 한 장면처럼 여학생들이 실신했다는 전설이 있는 것 아시죠?)

클라이막스 부분을 부를 때 이승철의 파워나 호흡이 예전만 못하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콘서트>를 통해 언제든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감동의 콤보 <듣고 있나요>는 가느다란 조명으로 묘한 분위기로 이끌어간 가운데
이미 <마지막 콘서트>에 흠뻑 빠져든 팬들을 감동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곡 중간에 살짝 허스키한 창법으로 애절함을 극대화시킨 건 절묘한 테크닉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그리고 노래 마지막에 "그대 지금 듣고 있~나요" 라고 살짝 흐느끼는 부분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곡에 빠져들었던 사람이라면 이 말 안 하고 못 배겼을 겁니다.

"와~ 정말 이건 최고다~!"


▲ 콘서트 마치고 모두 함께 인사할 때 모습. "그냥 여기에 눌러 앉아서 즐기면 안 되나요?"


공연의 모든 장면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서 나머지 부분을 간추려 정리하는 정도로 마칠까 합니다.
뭐~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겠습니까?

빠른 템포의 <희야>에서 한 쪽 팔을 올리고 엔딩할 때, 이승철의 실루엣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장면 보면서 노래를 잘하는 가수 이상으로 '팬을 매료시킬 줄 아는 가수'임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오늘도 난>에서 노래하다 말고 이승철은 코믹한 뻣뻣춤을 춰서 관객들을 웃기기도 했습니다.
참~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노래들도 나왔고,
곡명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열광의 도가니에 다시 한 번 빠트릴 뽕짝 2곡도 등장했었죠.

어느 콘서트에서든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세션맨들의 장기자랑인 각 포지션별 솔로 연주도 볼거리죠.
아~ 특별히 어느 커플을 위한 이벤트도 있었네요.

어휴~ 아직도 이야기할 것이 많아서 정리가 안 됩니다.
어쨌건 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많은 곡이 팬들의 가슴 속에 간직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승철 콘서트가 멋진 무대 매너만큼이나 감동적이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위 사진은 최근에 시작한 MBC 일밤 <단비>의 한 장면입니다.
아프리카에는 더러운 물로 인해 질병을 앓거나 혹은 먼 곳으로 물을 길어오다가 사고를 당하여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밤 제작진에서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우물 파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죠.

이승철은 지난 17년 동안 매년 수익 일부를 심장병 어린이를 도와
올해로 100명의 심장병 어린이가 혜택을 받았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승철은 이번 콘서트에서 심장병 어린이 돕기와 함께
아프리카 오지 사람들을 위해
우물을 파기 위한 모금도 함께 기획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승철과 일밤이 같이 하는 것인지는 저도 자세히 모릅니다. 어쨌건 좋은 일이란 공통점이 있군요.)




지난 주에 일밤 <단비>에서는 우물 1호가 탄생했더군요.

이번 이승철 콘서트에서도 심장병 어린이 돕기와 함께 아프리카 우물 파기 수익금 모금을 위해
DVD, CD 한 장씩 담긴 책자와 가방을 함께 팔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아래 가방의 그림은 이승철의 따님이 그린 것이라고 하네요.
저 그림처럼 우물 속에 핀 사랑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두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 언급했던 3가지가 하나로 모여 금상첨화가 되는 느낌입니다.

한껏 즐긴 공연의 수익금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의 숙원인 우물을 만들 수 있다면
물 때문에 고생하던 그들도 더 이상 걱정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아름다운 이면을 통해서 이승철의 공연이 보다 멋진 이유가 설명되겠죠?





집에 도착해서 좋은 일에 쓰일 '가방과 책자'를 살펴보고 있던 중
문득 이승철이 마지막으로 부른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








[사족] 이승철을 연호하는 팬들 (동영상 - 잠실실내체육관 1~3층)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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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보안세상 2009.12.28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승철님은 정말 노래를 쉽게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엠씨더맥스의 이수님도 그렇고...

    일반인들이 노래방에서 부르면 1절부터 가성 들어가죠 ㄷㄷㄷ

    • BlogIcon 칸타타~ 2009.12.28 13: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힘을 빼고 부르면서 음을 넘나드는 것이 자유자재더군요.
      그러면서 감정이입까지 완벽하니.
      게스트 없이도 혼자서 거의 풀로 소화하는 체력도 프로였습니다.
      물론 힘을 빼고 노래를 부르니 스테미너 조절도 되는 것이겠죠.
      몸매를 봐도 자기 관리를 잘한 것 같더군요.
      (요즈음도 담배를 피는지는 모르겠지만)

  2. BlogIcon Phoebe 2009.12.28 12: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젊은 시절에 한창 인기가수였는데
    아직도 여전히 좋은 노래 들려주고 계시네요.^^

    • BlogIcon 칸타타~ 2009.12.28 2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90년대 초중반까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이승철인데
      지금은 완숙미가 더해지니 더욱 음악적 역량이 풍부해진 느낌입니다.

  3. 2009.12.28 15: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채민 2010.02.10 0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두 이승철씨의 공연을 봤는데 그때의 감동을 디테일하게 간결하게 잘 쓰셨어요^^
    공연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느낄수 있을것 같습니다.
    자신의 위치에서 팬들의 사랑을 사회에 환원할 줄 아는 진정한 스타 , 노래로 승부를 거는 이승철씨이기에
    부동의 공연예매 1위를 하시는거겠죠^^

김현식은 천재적인 가수였다. 그의 대표곡 <내 사랑 내 곁에>는 따라 부르다보면 절로 목이 메는  ‘눈물샘 자극형’ 노래 가운데 으뜸일 것이다.  1958년생, 아마도 그가 생존해있었다면 우리 나이로 쉰 두 살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19년째인 2009년 늦가을, 대한민국 이곳저곳에서 <김현식 추모>열풍이 감지되고 있다. ( 그는 1990년에 너무도 일찍 이 세상을 떠났다.)


“새끼손가락 걸며 영원하자던 그대는 지금 어디에,  그대를 사랑하며 잊어야 하는 내 맘은 너무 아파요” 로 시작되는 그의 히트곡 <추억 만들기>를 한 방송국 콘서트에서 열창하던 후배가수 김장훈은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본 네티즌들은 숙연해짐과 동시에 선후배 사이의 끈끈한 정을 인터넷 세상에서 높이기리고 있는 중이다.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에서는 가수 이승철과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전태관이 김현식의 생전의 모습을 회고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 후배가수들에게 김현식은 ‘정많고 화끈했던 현식이 형’으로 남아있었다.


그런 가운데, 김현식의 아들 김완제가 가수로 데뷔했다는 소식에 인터넷 세상이 또 한번 후끈 달아올랐다.  ‘불멸의 가수 김현식의 아들이 가수가 되었다‘는 소식은 촉촉한 단비처럼 반갑기만 하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감동적이지 않은가?



가수 김현식과 후배 김장훈의 눈물 덕분에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있다. 
박중훈, 안성기 주연의 <라디오 스타>.


이 영화에 까메오로 출연한 바 있는 김장훈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 스타 가수의 쇠락과 부활을 그린 감동 스토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생각나게 한 원인은 아마도 ‘눈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착한 영화‘였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일급수의 눈물을 오랜만에 흘려볼 수 있었노라” 며 극찬에 극찬을 되풀이했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는 200만명 관중 동원에 만족해야만 했다.  2006년 가을 개봉 전후 ‘1,000만명 같은 200만명 동원’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던 영화 <라디오 스타>를 감상해보자.



- 갑(甲)과 을(乙)의 관계성에 대한 최루성 고찰 <라디오 스타>

 

대한민국에서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옛날엔 내가 갑(甲)이었노라....헌데 지금은 을(乙)이 되고 말았노라...그리하여 무시로 씁쓸한 마음이어라....”


(직장인 또는 사업자들은) 짐작할 것이다. 갑과 을이란 말에 담긴 형언하기 어려운 그 무게감을.


                ▲ 어느 누구에게나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은 있다.  그런데, 정말일까?  

영화 속 주인공 최곤(박중훈)은 88년도 가수왕이었음이 일생 최대 영예인 ‘추억을 먹고 사는’ 한물 간 인물이다. 영화 초반 그는 과거에 자신이 갑(甲) 중의 갑(甲)이었음을 내내 붙잡고 살아가며, 주변사람들과 사사건건 충돌하는 나약하고 불쌍한 인물로 그려진다.


반면, 최고 인기 가수였던 주인공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보살피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는 그야말로 을(乙)의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 (물론 2009년 현재 연예계는 ‘노예계약‘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기획사쪽에 주도권이 넘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속 1988년도는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


아무도 찾아주는 사람들이 없어서 미사리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생계를 이어가는 퇴물 가수 최곤(박중훈)은 자신이 을(乙)중의 을(乙)로 퇴락해 있음을 끝까지 인정하지 못한다.


이 때 그를 지지하며 이끌어주는 인물이 바로 매니저인 박민수(안성기).


               ▲ Video  Killed  Radiostar?   '무비스타'가 아닌 '라디오스타'란 말의 의미를 아는가??


- ‘삶은 결코 甲과 乙의 구조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


우여곡절 끝에 강원도 영월의 조그만 방송국 라디오 DJ로 일하게 된 왕년의 가수왕 최곤(박중훈)은 그곳에서 역시나 을(乙)의 인생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만나 더욱 더 좌절하게 된다.


               ▲ '물먹은 인생'들이 시골 한 방송국에 모였다. 그런데 '물먹은 인생'이란 뭘까??

그 인물들이란 다름아닌 이런 부류들.


-춘천이라는 갑(甲)의 도시에서 PD로 일하다 사고를 내고, 을(乙)의 도시 영월로 좌천된 PD (최정윤)


-춘천방송국으로 옮기는 게 꿈인 영월방송국의 기술직 직원들. (부장과 직원)


-노래를 사랑하지만 , 영월이라는 지역적 한계속에서 꿈을 키우는 락그룹 (노브레인)

               ▲ 락 그룹 <노브레인>의 출연은 이 영화의 감초 역할이었다고나 할까??

-어릴 적 가출해 다방 여종업원으로 살아가는 여자 1.2


이런 부류들과 함께 어우러지던 왕년 가수왕 최곤(박중훈)이 결국 발견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 이었다.  

라디오 DJ로 지역적 명성을 키워가던 최곤(박중훈)이 드디어 사람냄새를 맡기 시작했던 것.


     ▲영화속에서 가출 후 다방 여종업원으로 일하는 인물. 누가 이 사람 앞에서 갑과 을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 <라디오 스타> 속에 살아 숨쉬는 ‘의리’와 ‘휴머니즘’

   

영화 후반부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는 최곤(박중훈)이 서서히 삶을 갑과 을의 구조로만 보던 시각을 벗어던진다는 점이다.


평생 단 한 번도 갑(甲)으로 살아보지 못했던 평범 그 자체인 인물들의 삶 속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과 작가가 강조하는 바가 바로 이 점이다)


서울의 방송국 DJ로 스카웃 제의를 받을만큼 일에 인정을 받게 되면서, 그가 깨닫게 된 점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 터. 영화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주인공 최곤(박중훈)의 속마음은 아마도 이런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갑이었던 내가 을로 퇴락했다. 그러나 다시 을에서 갑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영월에 와서 보니 , 단 한 번도 갑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던 인물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살다보니 그들의 삶 속에서 끈끈하고 아름다운 정이 느껴진다. ”


               ▲ 왜 울어? 갑(甲)이 아니어서??  (박중훈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더욱 성숙해졌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철부지 가수왕 최곤(박중훈)이 김밥장사를 한다며 떠나버린 매니저 박민수(안성기)를 방송중에 울먹이며 찾는 대목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참 아름다웠다.


비가 내리는 영월의 방송국 처마 밑. 떠났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돌아온다. 애써 못본채 하는 최곤(박중훈)에게 다가간 박민수(안성기),  갑자기 우산을 펼쳐 최곤(박중훈)의 비막이를 해준다.

               ▲ 두 남자의 이야기는 우산 속에서 마무리된다. 박중훈이 직접 부른 노래와 함께...

그리고 노래가 흐른다.  바로, 이 노래가........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 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사랑한 것도 잊혀 가네요, 조용하게

 알 수 없는 건 그런 내 맘이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 아주 오래전 당신 떠나던 그날처럼 “


 

 

그나저나..................가수 김장훈은 이 영화에서 아주 나쁜 후배로 잠깐 모습을 내비친다.

                                                
                                               나쁜 후배! ^^



                      
                                                                                                                         posted by 백가이버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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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Reignman 2009.11.12 20: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어제 아쉽게도 황금어장을 못봤네요.
    재방송으로 꼭 봐야겠습니다.
    영화 라디오 스타 참 좋은 영화였죠. ^^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