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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안에서 빛나야 진짜 보석이다

스마트폰으로 스케치한 이영미술관의 진짜 보물들


김형오


한 개인이 사재를 털어 운영하는 곳. 이영미술관(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은 자체 시설도 크고 훌륭할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풍광 또한 이만한 곳이 드물 것 같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세미술관이 기차역을 개조해 지어졌듯이, 이영미술관은 2001년 돼지우리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300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던 돈사(豚舍)가 지금은 그보다 두 배가 넘는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거듭났으니, 다산성(多産性)인 돼지의 축복을 받은 걸까? 장미꽃밭으로 변신한 전남 구례의 쓰레기 매립장처럼 이영미술관은 역발상의 신선한 성공 모델이다.

다음은 내가 이영미술관에서 찾아낸, 다른 여느 미술관에서는 볼 수 없는 진짜 보물들이다. 아이폰으로 스케치한 사진들이라서 퀄리티는 조금 떨어지지만, 이영미술관이 얼마나 매력 넘치는 곳인가를 알게 해주기에는 모자람이 없으리라. 진짜 보석은 가슴 안에서 반짝인다. 내 후각과 미각과 시각과 촉각과 청각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 그날의 기억들은 지금도 내 가슴 한 기슭에서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그 공감각적 보물찾기에 동행해 보자.

보물 1 : 금강산도 식후경, 밥상 위의 행복

▲빨갛게 달구어진 장작이 타고 있는 가마솥! 오늘 무슨 잔칫날인 줄 알았다. 이렇게 큰 무쇠 가마솥이 펄펄 끓고 있다니…. 우리를 기쁘게 해주려고 김이환 관장님이 준비를 단단히 하셨다. 모락모락 새어나오는 김에서 풍기는 구수한 냄새에 저절로 발목이 붙잡혔다. 저 안에서는 무엇이 익고 있는 걸까?

▲부뚜막과 나무 선반 등이 옛날 시골 부엌을 떠올리게 한다. 행주며 그릇들은 또 얼마나 정겹고 소박한지…. 뚜껑을 살짝 열어 놓은 이 가마솥 안에서도 밥 냄새가 구수하다. 오, 해피 데이! 장작불 가마솥에서 갓 지어낸 밥과 국을 맛보게 될 줄이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지푸라기로 엮은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온돌방에서 도란도란 맛있는 점심 식사를 했다. 갑자기 이 집 된장과 간장 맛이 궁금해졌다.

▲놋그릇과 도자 접시, 가마솥에서 나온 밥과 국, 통영에서 전영근 화백이 가져온 싱싱한 생굴과 맛깔스런 김치, 접시에 다소곳이 담긴 장떡(밥상 위쪽)…. 황제의 밥상이 부럽지 않은 소담스런 성찬이다.

보물 2 : 설치미술과 정물화, 휴식 같은 산책

▲뱃속을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본격적인 탐방에 나설 시간.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듯하여 가 보니 이제 막 볏이 돋기 시작한 토종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닭장이 나온다. 그런데 이 녀석들, 낮잠이라도 즐기고 있는 듯 꼼짝을 안 한다. 주인이 가끔씩 자리를 옮겨 주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작대기를 걸쳐 세워 놓은 저 지게는 또 얼마 만에 보는가. 검불이나 곡식 따위를 긁어모으던 나무 갈퀴 두 개가 소품처럼 지게 위에 얹혀 있다. 멋진 설치미술 작품이 따로 없다.

▲투박한 장독 위에 올려놓은 나무를 엮어 만든 소쿠리에서는 모과가 상큼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십리 밖에서도 모과향이 느껴질 것만 같다. 그대로가 한 폭의 아름다운 정물화이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 함이던가. 정원 한 편에 300년 세월을 살았다는 벽오동나무가 잎을 죄다 떨어뜨린 채 겨울날 채비를 하고 있다. 내년 봄 잎사귀들이 무성하게 신록을 자랑할 때 그 진수를 보러 다시 와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백일홍나무(‘배롱나무’로도 불린다)를 만났다. 혹한의 겨울에 대비해 두터운 외투로 몸을 감싸고 있다. 그 뒤로는 빈 독인지 속이 꽉 찬 독인지 궁금해지는 배가 볼록한 독들이 백일홍 나무를 응시하고 있다. 혹은 수호하고 있는 걸까? 백일홍의 꽃말은 ‘가 버린 친구를 그리워함’이다. 문득 지난여름 난분분난분분 낙화했을 꽃들이 그리워졌다. 백일홍은 나뭇가지 틈새를 살짝만 건드려도 겨드랑이를 공습당한 새색시처럼 몸을 파르르 떤다 해서 일명 ‘부끄럼나무’ 혹은 ‘간지럼나무’로도 불린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독들이 ‘너희 정치인들도 우리를 본받으라’는 듯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도열해 있다. 저 안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나하나 열어 보고 싶게 만든다.

▲나무판자를 깔아 놓은 산책로. 우리는 정담을 나누며 이 길을 산책했다. 돌담 위에 나란히 얌전하게 포개져 앉아 있는 것들은 고풍스런 기왓장들이다. 7천 평의 넓은 면적을 훨씬 더 넓게 쓰는 것은 공간 활용을 그만큼 잘했다는 얘기다.

보물 3 : 깜짝 공개, 보물창고의 문을 열다

▲이제부터는 진짜 보물창고 탐방이다. 보통 사람들은 여기 이런 보물들이 숨어 있는 줄 짐작도 못할 텐데 우리 부부에게는 특별히 공개했다. 사진 속에서 빛나고 있는 공예 작품은 여덟 사람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면 딱 좋을 것 같은 전통 자개상이다. 통영 명인의 얼과 혼이 깃든 명작.

▲상다리는 사자 모양이다. 네 귀퉁이에서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 네 마리가 튼튼하게 상을 받치고 있다. 천년을 써도 결코 부러지지 않을 것같이 위풍당당하다.

▲자개로 만든 용이 구름을 헤치고 밥상 위로 날아오를 기세다.

▲육중해 보이는 사자의 다리와 발목에는 아름다운 매화가 활짝 꽃잎을 열고 있다.

▲선반 위에 놓인 놋그릇과 찻잔. 50명 정도가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놋그릇엔 하나하나마다 인장을 찍어 외부 반출을 막았다. 요즘엔 닦기가 좀 쉬워졌겠지만 그래도 웬만한 정성 없이는 관리하기 힘든 그릇들이다.

▲보물 중의 보물을 발견했다. 이 보물들을 보고 온 뒤로 며칠 동안 얼마나 배가 부르던지…. 이게 뭔가? 맞다, 분명 전혁림 그림이다. 그런데 그 소재는? 김이환 관장 왈, ‘제주도 문짝’이란다. 허걱, 제주도 문짝 그대로를 캔버스로? 실제로 문이 열리고 닫힌다. 제주도 나무인 만큼 재질이 딱딱하다. 다른 나무보다 그림 그리기가 더 까다롭다. 그 대신 변치 않는다. 참 신기하고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제주도 문짝을 캔버스로 삼은 작품 앞에서 아내와 찰칵! 쪽문인 듯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이다.

▲나룻배 모양 목기에 담아낸 저 현란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붓놀림! 그 옆에 붉은 글씨로 ‘全爀林’이라고 화가의 한자 이름을 써 놓았다.

▲통영의 목공예 명장이 만든 3층장에 전혁림 화백이 이미지와 색을 입힌 아주 특별한 작품. 이런 소장 가치가 높은 걸작은 대대손손 보관을 잘해야 될 텐데, 공개해도 괜찮은 건지 조금 걱정스럽다.

▲보물들을 향해 열심히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는 내 모습이 유리창에 투영되었다. 사진 찍기란 어쩌면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인지도 모른다.

보물 4 : 조각품들은 말한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미술관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눈길을 사로잡은 조각 작품들. 찬찬히 뜯어보니 정말 예사롭지 않다. 특이하게도 모두 하나같이 제목이 없다. <무제(無題)>라는 타이틀조차 달지 않았다. 작가가 아예 짓지 말라고 했다 한다. 그 까닭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만 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내 작품에는 어떤 해석이나 설명도 사양한다.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느껴지는 대로 느껴 달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김춘수 시인의 <꽃> 중 이런 구절이 생각났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와 동시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의 이름은 한용진. 1934년생으로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교수로 있다가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을 무대로 활동 중이다. 자연석에 최소한의 손질만 해서인지 그의 작품은 인위적이지 않고 투박하다. 자연과 일체를 이룬다. 맨 위 사진(두 번째, 세 번째 사진은 부분 촬영)에 담긴 조각 작품은 작가가 특별히 애착이 깊어 완성된 날 막걸리 한 사발을 붓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충남 보령 지역의 청석을 탑처럼 쌓아 세워 놓았다. 돌 하나의 무게만도 무려 5톤. 아침저녁으로 그 빛깔이며 질감, 이미지 등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그대, 부디 이영미술관에 가시거들랑 이 모든 제목 없는 작품들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그대만의 이름을 불러 주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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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영소백합 2011.12.13 16: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사님과 오붓한 모습이 보기가 좋네요.

  2. 볼록렌즈 2011.12.20 1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술관 전체가 거대한 미술작품인 것 같아요.
    관장님의 안목과 센스가 참 대단하십니다.

통영의 하늘과 바다를 사랑한 사람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을 만나다 3


김형오


도자기 옆에 있는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목어(木魚) 모양 그네? 김이환 관장 부인 신영숙 여사가 사찰의 대들보와 기둥을 그대로 가져와 소재로 쓴 일종의 설치 미술이다. 오래 된 나무라야 변질․변색․변형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대들보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목어는 그네 타기가 아니라 종을 치기 위한 것. 배치가 절묘하다. 뒤편의 도자기가 마치 범종처럼 보인다.


전혁림 화백 하면 누드화를 빼놓을 수 없다. 청년기는 물론 아흔 넘어서도 여체를 즐겨 캔버스에 옮겼다. 이번 회고전(2012년 2월 28일까지 연장 전시 중)에서도 15X19cm 크기의 목판 85조각에 저마다 다른 포즈를 하고 있는 누드화를 아교로 타일처럼 벽에 붙여 놓은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앞서 <만다라>와는 달리 테두리가 튀어나오도록 하지 않고 사각 평면이라서 그림 그리기는 한결 수월했을 듯. 무식한 내가 "젊었을 때 누드화 많이도 그렸네요"라고 했더니 90 넘어 그린 최신 누드작이란다.(2007년부터 2008년까지 이태 동안 작업) 여기서 한 가지 팁. 이 개개의 유화 작품들엔 전 화백의 영문 사인 ‘JEON’이 들어가 있다. 2004년까지는 ‘CHUN’을 쓰다가 그 이후로 바꾸었다고 한다.

▲ 이 작품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 눈 밝은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보았겠지만 이 누드의 맨 오른쪽은 세 개의 목판으로 구성돼 있는 반면 왼쪽은 두 개여서 비대칭을 이룬다. ‘Balance of Unbalance’를 추구한 걸까? 노! 사실은 목판이 하나 모자라서 그런 거란다. 메인 부분에서 하나를 빼면 이가 빠진 듯 균형이 깨질 테고, 그래서 맨 왼쪽을 두 조각으로 배치했다는 얘기. 가만, 그러고 보니 오른쪽은 세로 그림인 반면 왼쪽은 가로 그림이다. 구도가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건 아마도 그래서인 듯.


전 화백은 고향 통영의 하늘과 바다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회고전에 걸린 2005년 작품 <통영항>에는 작가의 절절한 통영 사랑이 화폭 가득 묻어나 있다. 1000호짜리(600X300cm) 대작이다. 이만한 크기면 보통 여러 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여 작업하기 마련인데 전 화백 작품에는 이음매가 없다. 독일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한 캔버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유화 물감을 썼는데 작품 한 점 당 물감 값만도 2000만 원이나 들었단다.


청와대 인왕홀에도 전혁림 화백이 그린 1000호짜리 <통영항>이 걸려 있다. 이 작품은 가로 길이가 좀 더 길어 7m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그렸다는데, 그래선지 미륵산이 크게 부각돼 있다. 노 대통령이 미륵산 용화사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한려수도 300리>도 1000호 대형 작품이다. 이 그림의 탄생 배경 또한 의미심장하다. 전 화백은 1983년 <통영항>이란 100호 작품을 그려 통영시청에 걸었다. 그러나 그 정도 크기로는 뭔가 부족하다 싶었다. 살아 있을 적에 통영항과 한려수도를 좀더 넓은 캔버스에 제대로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의 <통영항>을 참고 삼아 필생의 역작에 매달렸다. 자신의 얼과 혼을 모두 쏟아부었다. 이 얼마나 수려하면서도 섬세하고 또한 다이내믹한가. 이렇게 멋진 ‘한려수도 조감도’를 그려낼 사람은 전 화백 말고는 없으리라. 헬리콥터 위에서 내려다본 듯 생생한 풍경이다. 1967년에 개통된 운하교가 통영시와 미륵도(산양읍)를 가로지르고, 통영항에는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릴 적 내가 통영에만 가면 꼭 찾곤 했던 남망산에서 바라보이는 섬과 화가의 눈에만 역력히 각인된 섬들이 그 특색만을 살린 채 화려하게 경연을 펼친다. 남해, 삼천포, 연화도, 욕지도, 한산도, 거제도, 가덕도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여러 섬들이 코발트블루의 바다 위에 떠 있다. 통영수산금융조합 서기로 근무하며 그 일대 섬이란 섬은 모두 섭렵한 전혁림 선생이 섬의 특징을 뽑아냈기에 눈 밝은 사람이라면 금방 그 섬들을 찾아낼 수 있다.

▲ 한려수도 300리

한려수도 300리 부분(좌)

한려수도 300리 부분(중)

한려수도 300리 부분(우)


 

미술의 전혁림을 비롯해 통영은 예술 분야에서 불세출의 거장들을 많이 배출했다. 음악의 윤이상, 문학의 유치진․유치환․김춘수․이영도.박경리 등이 바로 그들이다.

내 어릴 때 통영에서 본 가장 크고 웅장한 건축물은 세병관(洗兵館)이다. 그 일곱 기둥 사이로 통영항이 전개된다. 자연 만물이 살아 숨쉬고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뛰어논다. 햇살과 바람, 섬과 산과 하늘, 그리고 배들이 노닌다. 

추상화의 절정인 말기 작 <세병관 일곱 기둥 사이로 본 통영항>에는 통영이 낳은 걸출한 예술인들의 창작혼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김춘수의 꽃, 유치환의 바다, 윤이상의 오선지, 이영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히노끼(편백)나무 화판에 스며들어 있다. 영화에 빗대자면 ‘오마주’ 같은 작품이다. 일곱 개의 기둥 사이로 펼쳐진 통영항이라. 참 발상 자체가 담대하고 파격적이다. 두 개의 기둥 사이라면 몰라도 누가 감히 일곱 개의 기둥 사이로 보는 통영항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인 눈으로는 동시에 그런 풍경을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오로지 전 화백 같은 거장의 심미안만이 볼 수 있는 영역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노라면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수많은 이야기들이 돌출한다. 몇 권의 책에 담길 내용들을 1000호짜리 캔버스에 압축하고 집약했다. 숨은 에피소드 하나. 맨 오른쪽 반달 모양 공간에도 무언가를 그려 넣으려 했는데 끝내 못 채우고 작가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이 작품이 더욱 인상 깊이 남는다. 저 빈 공간을 보고 있노라면 물감으로 얼룩진 작업복을 입고 치열하게 붓을 놀리고 있는 생전의 노화백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련해지곤 한다.

▲ 세병관 기둥 사이로 본 통영항

세병관 기둥 사이로 본 통영항 부분(좌)

세병관 기둥 사이로 본 통영항 부분(중)

세병관 기둥 사이로 본 통영항 부분(우)



2010년 7월 12일, 전혁림 화백 49재를 맞아 창원 MBC는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바다에 지다>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주관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영미술관은 몇 달 전 방영된 KBS 주말 드라마 <사랑을 믿어요>의 세트장으로 사용되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전혁림 화백의 작품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자주 비친 건 당연한 사실. 예술은 역시 인생보다 훨씬 더 생명력이 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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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디스트 2011.12.12 14: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저 놀라운 여체미학.
    모든 모델들이 포즈도 다를뿐더러 얼굴과 체형 또한 각양각색이다.
    85개의 누드가 에로티즘의 미학을 발산한다.

춤추는 도자기, 노래하는 도자기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을 만나다 2

김형오


<만다라>에 빠져 있는 내 손을 잡고 김이환 관장은 “우리 집에서 제일 자랑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하신다. 뭘까?

내 키보다 더 큰 2m 높이는 됨직한 거대한 도자기가 주변을 압도한다. 첫눈에 전혁림 화백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색깔․선․면 처리가 투박한 듯 날렵하고, 무거운 듯 가볍다. 산과 바다, 하늘과 땅, 새와 온갖 것들이 춤추고 노래한다. 거대한 입체 캔버스 위에서 사고가 자유를 만끽한다. 도자기라는 정해진 틀에 닫혀 있으면서 또한 열려 있다. 참 오늘 미술 공부 많이 한다. 아니, 전혁림의 미술관, 작품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이 도자기는 전 화백이 강화의 도자기 요에 직접 가서 그린 작품이란다. 두 점을 그렸는데 한 점은 아깝게도 가마에서 꺼내다가 파손되어 이것밖에 없다고 한다. 이 큰 도자기에 연로하신 몸으로 어떻게 작업하였을지 자못 궁금하다. 전 화백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거대한 도자기가 물레 틀에서 조금씩 돌아가고, 화백께선 붓을 들고 영감과 예술혼을 그 위에 펼쳐나가셨단다. 아드님 영근 화백은 그런 아버님 자세를 흩뜨리지 않으려고 뒤에서 허리춤을 꽉 붙잡고 도와드렸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 두 가지! 첫째, 빙 둘러 그림을 그리고 선과 무늬를 넣었는데 마치 자로 잰 듯 시작과 끝이 딱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직접 확인해 보았다. 맨 윗부분만 보더라도 삼각형 무늬가 같은 크기로 반복되고 있다. 가로줄도 색깔의 짙고 옅음은 있지만 비뚜로 되지는 않았다. 오늘 여기서 많이 듣는 말, ‘일필휘지’다. 그랬다, 도자기는 덧칠을 할 수 없다. 색을 빨아들이므로 한번 붓질한 자리에 또 칠하면 금방 표가 나고 보기도 안 좋기 때문이다. 일필휘지로 해와 달, 물고기와 새를 그려내며 선생님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두 번째 놀라움. 이 거대 도자기 그림을 완수하는 데 불과 2시간도 안 걸렸다는 것이다. 설마하니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아드님이 지칠까 하여 빨리 끝냈을 리는 없을 테고, 평소 작가의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창조의 욕구가 그대로 발산된 것 같다.

도대체 전 화백은 어찌 이리 창조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신가. 어디서 모티프를 구하시는가? 추상인 듯 구상이고, 구상인 듯 추상이다. 아드님 왈, “아마도 독학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모든 것이 작품의 소재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신영숙 여사는 한술 더 뜬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초월하신 분”이란다. 아드님이나 제자나 극진한 존경과 사랑이 묻어나온다.

자세히 보면 도자기도 예사롭지 않다. 광주 도자 엑스포에서 대상을 수상
한 도예작가 손호익씨에게 특별 의뢰하여 강화도 초지진의 도요지에서 구워낸 것이다. 아, 아깝고 또 안타깝다. 같은 크기의 작품 한 점이 도요에서 나오다가 파손돼 버리다니!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 어릴 적 영도다리 건너에 '대한도기'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자기 공장이 있었다. 전 화백은 일찍이 거기에서 몇년 동안 직접 도자기를 빚었다. 통영 미륵산 자락에 자리잡은 전혁림미술관에는 전 화백이 직접 빚은 도예 작품 수십 점이 소장되어 있다.

전혁림은 통영의 물길이고 또한 상징이다. 통영 시내 주요 아파트 벽면과 절개지, 그리고 도로변에서는 그의 붓자국이 생생한 그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 화백의 작품들을 확대 모사해 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지만, 사실은 나폴리를 '서양의 통영'이라 해야 맞다. 우리 국토에 이토록 아름다운 산하(山河)가 있다니! 그 통영을 전혁림은 붓으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의 캔버스는 유한과 무한의 경계가 없다. 모든 것을 담아내고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그런 그가 100세를 4년 앞두고 떠나갔다. 하지만 통영은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의 숨결과 체취는 통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통영시와 통영시민들의 문화의식, 그 수준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통영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 자랑스러운 도시다. 그 핵심, 심장부에 전혁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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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필 2011.12.11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가의 한 획은 일필휘지가 되건만
    나의 졸필 한 줄은 왜 일필휴지가 되는가.

<뉴 만다라>, 시작도 순서도 없는 무한 세계 이상향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을 만나다 1

김형오

좋아하는 작가의 혼이 깃든 작품을 보고 좋은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음식과 멋진 풍경 속에서 사람 이야기, 인생살이 같은 담소를 나눈다면 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이영미술관에서 이 모든 즐거움을 한꺼번에 채울 수 있었다. 행복한 날이었다.

이영미술관을 찾았다. 근 3년만이다. 다소 쌀쌀한 날씬데도 김이환 관장님 내외가 직접 맞으셨다. 마침 내가 오는 시각에 맞춰 통영에서 반가운 손님 한 분도 막 도착했다. 전혁림 선생의 아들이자 고인 이름의 미술관을 씩씩하게 운영하고 있는 서양화가 전영근 관장이다. 너무 반가웠다. 새벽시장 가서 내게 맛보이려고 통영 갯내음이 싱싱한 생굴도 한 박스 사 들고 왔단다. 그 살갑고 섬세한 마음에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공원처럼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을 뒤로 하고 미술관 내부로 직행했다.

전혁림 1주기 기념전(‘나는 전혁림이다’)에서 나를 처음 맞이한 것은 거대한(?) 만다라였다.(<뉴 만다라>, 목기에 유화, 2007년) 가로 세로 각 20cm 정도의 나무판 1050개가 하나의 작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물론 목기 하나하나가 작품이니 1050개의 작품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뉴 만다라>의 탄생 배경을 알고 나니 작품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이영미술관의 또 다른 주인 신영숙 여사의 노고가 보통이 아니었다.(이영미술관은 김이환의 ‘이’, 부인 신영숙의 ‘영’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시골에선 아직도 손님에게 떡이나 과자 또는 찻잔을 올릴 때 쓰는 나무 그릇이랄까, 나무 받침 같은 것(목기)을 수십 개씩 들고 가 전혁림 화백에게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냥 가정집에서 쓰는 나무 그릇이 아니라 시골집 오랜 대들보(120년 이상 된 조선 소나무)를 구해 자르고 깎고 다듬어 깨끗이 마름질하고 못질 하나 없이 똑같은 규격의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내라 했으니 목수의 노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신 여사 말이, 질 좋고 두꺼운 오래된 대들보라야 목기를 만들어도 뒤틀리지 않고 그림도 잘 그려지기에 구하느라 참 고생도 많았고 까다로운 주문에 목수들 또한 구슬땀을 쏟았다고 한다. 어렵게 만든 목기를 통영의 선생님께 들고 가 여기에다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한 이가 신 여사니 어찌 보면 두 사람의 공동작, 신영숙 기획․제작에 전혁림 주연․감독이랄까. “나무를 캔버스로 삼은 그림은 덧칠해선 안 되고 붓 잡으면 단 한 번에 그려야 제대로 되는데 선생님의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했다”는 게 신 여사의 설명이다.

가까이에서 본 만다라 (화보집에서 재촬영)

처음에는 한 300점 정도 그릴까 했는데 목재 구하는 어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뀐 건 전 화백께서 목기에 그림 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좋아하셨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점차 숫자가 늘어나 5백 점, 8백 점, 드디어 1천 점을 넘게 되었다고 한다. 생전에 좀 더 많이 그려서 남겨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전관장의 목소리에 묻어있다.통영에는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더니 60점 있다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만다라>와 <충무항> 두 점을 청와대에 비치하고 싶어 했으나, 일반 그림은 다시 그릴 수 있어도 이 작품은 다시 만들 수 없어 거절했다 한다.

마침 미술관은 잠시 어린이들이 왁자지껄 지나갔고 드문드문 관람객이 다녀갔을 뿐 넓은 공간에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아 설명도, 감상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김 관장님은 관람 통제선 안으로 우리를 데려가 콧김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작품을 한 점 한 점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촬영 금지인데도 특별히 나한테는 사진 찍어도 좋다고 했지만 기념사진 외에는 감히 찍을 수가 없었다. 고인에게 누가 될 것 같아서.

왼쪽부터 김이환 관장, 신영숙 여사, 나와 아내, 전영근 관장


비슷하긴 해도 똑같은 것이 단 한 점도 없다. 검정을 비롯해 파랑 빨강 노랑 등 원색에 선 원 면 점 세모 네모 타원 곡선 직선과 무늬를 적당히 배열해 놓은 것 같다. 김이환 관장 말씀을 듣고 나니 골무 비녀 반짇고리 베개보 같은 우리 어머니․할머니가 즐겨 사용했던 물품과 물고기 바다 새 나비 하늘 구름 같은 통영 이미지, 우리나라의 독특한 형상을 연상시키는 빛깔과 모양도 나타난다. 한국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색다른 느낌, 언젠가 꿈꾸어 왔던 이상향, 인류가 지향하는 그 무엇과 연결되어 세계성을 띠고 있다. 소박하고 순순한 이 통영 향토 작가의 꿈과 연륜, 천재성이 나무판에 대담하게 펼쳐진다.

화보집에서 재촬영

단순한 나무 평면이라도 그리기가 만만찮을 텐데 45도(?) 각도로 비스듬한 네 모서리를 일필휘지로 그려낸 대담성과 입체 구조물에 평면 그림의 대조가 신비로우면서도 그 자체로 입체미를 이룬다. 한글 ㄷ자 모양으로 세 벽면을 가득 채워 관람객을 만다라의 그림 세계로 빨아들이고 있다. 왜 1050점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선 1천 점 이상이면 무한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ㄷ자 구조물을 특별히 만들었지만 언젠가 뉴욕 대형 미술관에 전시할 때는 한 벽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싶다고 했다.

기독교도인 전혁림 화백에 의해 불교의 사상이 한국의 전통과 통영의 빛깔로 버무려졌다. 수많은 대들보가 사용되었는데 대들보 질감에 따라 바탕색이 다르고 순서도, 시작도 따로 없단다.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죽음의 춤>이 떠올랐다. 캡슐에 든 2만 3000여 개의 모형 알약을 작가의 배열 순서대로 배치하느라 큐레이터들이 진땀을 뺐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적어도 그런 수고는 필요 없다. 그러나 1050개의 작품이 빚어내는 무한 세계 이상향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 내가 바라보는 1/1050의 만다라가 바로 시작이고 또 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4년 8개월 걸렸다는 이 작품을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다.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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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동 2011.11.30 09: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보집에서 재촬영.
    사진 찍기를 허락했으나 고인에게 누가 될까봐 플래시를 터뜨리지 못하고
    화보집에 렌즈를 댄 님의 마음 씀씀이가 아름답습니다.

  2. 아티스트 2011.12.08 13: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술평론가 수준의 평문, 놀랍습니다.
    마침 연장 전시가 되고 있다니 주말에 시간 내어 전혁림을 만나러 갈까 합니다.

지난 29일 국회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바로 김형오 국회의장의 책,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의 저자 수익금 전액을 결식아동 지원단체에게 전달한 행사인데요.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가 결식아동들을 위한 따뜻한 한 끼 식사로 다시 태어난, 그 희망의 현장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희망편지’ 속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 모였어요.

 



이 날 행사에는 이소연 광릉사무소장, 김이환 이영미술관장, 정해룡 통영예총회장, 농원종택 이성원 박사 등 김형오 국회의장으로부터 희망편지를 받은 수신인 4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의 무덤인 장릉에서 문화해설을 맡고 있는 이갑순 해설사.

이갑순 해설사는 이 날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강원도에서 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국회에 와봤다는 이 해설사는 “지난해 김형오 국회의장이 장릉을 방문하셔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해 주셨는데 그 기원이 올해 6월 이뤄졌어요. 기회가 되신다면 다시 한번 장릉을 방문하셔서 국민을 위해 기원해주세요. 의장님이 기원하시는 일은 모두 이뤄지는 것 같아요”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 날 행사의 최연소 참가자인 이선제 군도 훌쩍 자란 모습으로 김형오 국회의장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 군은 “의장님을 다시 뵙게 되서 정말 반가웠어요. 올해에도 희망탐방을 떠나신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건강하게 잘 갔다 오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희망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책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가 인연이 돼 모인 사람들.

이 분들이 모두 오늘 희망 현장의 빛나는 주인공입니다.


#‘희망편지’ 속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이 날 행사는 이익선 씨의 사회로 이영미술관 김이환 관장, 가사문학관 이정옥 해설사, 농암종택 이성원 박사가 김형오 국회의장과 함께 희망편지에 대한 답신과 희망편지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함께 나누는 시간으로 꾸며졌습니다.

 이익선 씨의 맑은 목소리가 오늘 희망 행사의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이름과 부인의 이름, 가운데 자를 따서 지은 미술관 이름에 보통 분이 아니다라는 생각했다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소개에 김이환 관장은 “의장님의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를 읽고 우리나라에 이런 글을 쓰는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화답했습니다.



뒤에 이어 소개된 가사문학관 이정옥 해설사는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낭송하자 이정옥 해설사가 ‘별 헤는 밤’으로 재치있게 답했습니다.

이어서 이 해설사는 김형오 국회의장을 ‘친정 오라비’, ‘기생 오라비’라고 부르며 유쾌한 입담으로 좌중을 사로잡았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우리 땅 생생 탐방기에서 가장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로 꼽은 농암주택.

그곳에서의 인연이 이 날의 행사로 이어진 이성원 박사는 책을 꼼꼼히 따지며 보좌관 대필 의혹을 제시하다가 마지막 편지글에 이르러서는 ‘이 글은 김 의장만이 쓸 수 있는 글인데 너무나 잘 썼다’며 김 의장의 글 솜씨를 극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의 저자수익금인 1000만 원을 전액 결식아동 지원단체에 기부하면서 이 날의 행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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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이 '다시, 희망입니다' 행사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이날 행사는
    이익선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아 매끄러운 진행 솜씨를 선보였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이영미술관 김이환 관장과 함께 '2008생생탐방' 당시의 일을 
   설명하고 있다.

▲'다시, 희망입니다' 참석자들이 김형오 국회의장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이날 행사의 스타 게스트는 단연 가사문학관 이정옥 해설사였다. 이정옥 해설사는 10분 남짓 시와 가사를 낭송하며 청중들에게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저자수익금 전액을 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

▲농암 17대 종손 이성원 박사와의 환담. 이성원 박사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글에 대해
    수준높은 평론을 해 청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수덕사 옹산 주지스님(좌)와 해인사 선각 주지스님(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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