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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여적(餘滴)=길 위에서의 이삭줍기
‘애니깽’,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름 

 

※읽기 전에 잠깐!
  ‘여적(餘滴)’이란 ‘글을 다 쓰거나 그림을 다 그리고 난 뒤에 남은 먹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칼럼은 얼마 전 막을 내린 국정감사, 그 뒷이야기쯤으로 해석해도 무방하겠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국감 얘기를 쓰려는 건 아닙니다. ‘길 위에서의 이삭줍기’란 표현에서 보듯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소속 의원으로서 남미(멕시코·콜롬비아·페루)로 출장을 갔던 길에 짬짬이 만난 의미 있는 여정을 네티즌들과 공유하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내 아이폰이 카메라와 녹음기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사진 상태가 썩 좋지 않음을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일부는 자료 사진입니다.)


  1905년 4월 4일 일본의 인력 송출 회사가 모집한 한인 1033명이 영국 상선에 몸을 싣고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 5월 16일 멕시코 유카탄 주의 중심 도시인 메리다 시에 도착합니다. 이로부터 저 잔혹한 멕시코 이민 1세대, ‘애니깽’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멕시칸 드림이 멕시칸 악몽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진 애니깽 소재 연극(왼쪽)과 영화(오른쪽)포스터. 1997년 개봉한 <애니깽>(김호선 감독, 장미희·임성민 주연)은 제작 기간 3년, 제작비 30억 원, 출연진 1만 여 명이 동원된 대작으로 34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연극과 뮤지컬(원작 김상렬)로도 만들어져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김선영의 3부작 대하소설『애니깽』,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도 애니깽을 소재로 하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메리다 시에 도착한 우리 팀은 한인 후손들의 증언과 이민사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통해 멕시코 이민 1세대 선조들의 슬프고도 감동적인 삶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사진들을 고르고 녹음을 듣고 관련 자료를 찾으면서 나는 다시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일입니다. 1905년은 나라의 운명이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혼미하고 위태로울 때였습니다. 가난에 찌든 농민과 도시 노동자, 그리고 변화를 갈망하던 이들에게 조국은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못하는 존재가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과 영국인 브로커의 감언이설에 속아 한 조각 희망을 움켜쥐고 정든 고향을 등지게 됩니다.  



▲ MBC에서 멕시코 이민 100주년을 맞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속에 비친 에네켄 농장. 100여 년 전 출신성분이 각양각색인 한인들은 노예 사냥꾼들의 사탕발림에 속아 지구 반대편으로 망망대해를 건너왔다. 저 무성한 에네켄 잎들은 그들의 애환을 기억하고 있을까. 

애니깽은 스페인어 ‘에네켄(Henequén)’의 한국식 발음 언어. 당시 메리다 지역 경제의 중심을 차지했던 에네켄은 *용설란(龍舌蘭)의 일종으로 이민자들은 모두 이 에네켄 잎을 잘라 모아 다발로 묶은 뒤 가공 공장으로 옮기는 일(펭카)에 투입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음이 ‘애니깽’으로 변하고 그 의미가 확장돼 나중에는 22개 에네켄 농장에 분산 배치되어 노예처럼 일하던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키가 2미터에 이르고 줄기와 가시가 억센 열대 선인장. 잎 모양이 용의 혀(龍舌) 같다 해서 우리말 이름은 용설란(龍舌蘭)이다. 초록색 이파리에 강도와 끈기가 강한 섬유질이 함유돼 있어 롤러로 으깬 후 펄프를 긁어내어 굵고 질긴 선박용 로프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20세기 초에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해운업이 호황을 누려 특히 수요가 급증했다. 온대 지방에선 관상용으로 키우지만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 1백년 만에 꽃이 핀다 해서 ‘세기의 식물(Century Plant)’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데, 꽃을 피우고 나면 곧 죽는다고 한다.





▲ 2005년 메리다 시내 중심부에 세워진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탑. 메리다 시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동네의 컨벤션 센터 앞에 조성되었다.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인회 목사가 디자인했다. 그래서인지 세련된 맛이 덜하다. 탑 맨 꼭대기에는 양옆으로 에네켄 이파리를 뜻하는 상징물이 솟아 있다. 중앙에 있는 자석 모양 조형물은 유나이티드(United), 즉 연합·단합을 상징한다. 탑을 받치고 있는 5층 계단식 석조물은 원래 3단으로 설계되었지만 준비한 석재가 남은 데다가 좀 더 튼튼하고 위엄 있게 보이려고 2층을 더 높여 지었다고 한다. 기념탑 앞에서 찍은 인물 사진은 왼쪽부터 올센 부회장, 나(김형오), 울리세스 박 회장이다. 한인 후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메리다에는 한-멕 우정병원도 지어져 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멀리 두고 온 가족들과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고국으로 돌아갈 길은 영원히 차단되고 말았습니다. 부초(浮草)와 같은 유랑 난민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허위 광고와 사기 계약에 의한 불법 이민의 실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들은 *까레이스키와는 또 다른 형태의 유민이었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고려인, 高麗人)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1937년에서 39년 사이 스탈린은 일본과 밀약하여 독립운동의 근거지(배후지)를 말살시키려고 17만 명이 넘는 우리 동포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고려인들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생명력으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집단 농장을 경영해  소련 내 소수 민족 가운데서 가장 잘사는 민족으로 뿌리를 내렸다.


  애니깽들은 당나귀보다도 더 처량한 신세였습니다.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가시에 찔려가며 *중노동을 했습니다. 하루 1만 개의 할당량을 못 채우면 채찍이 사정없이 온몸을 훑었습니다. 독기를 가득 품은 방울뱀들도 발밑에서 이들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산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1905년 중국인 허후이(河惠)의 편지가 황성신문에 실리면서 한인들의 비참한 처지가 고국에 알려졌다. 그는 “이곳 토인이 지구상 5, 6등 노예란 소리를 듣는데 한인은 그 밑의 7등 노예가 되어 영원히 우마(牛馬)와 같다”고 그 참상을 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고종 황제는 눈물지으며 동포들을 빨리 송환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미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뒤라서 외부협판 윤치호의 멕시코행도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약속된 임금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헐값으로 살인적인 노동과 착취에 시달리면서 값싼 술로 고통과 시름을 달래려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메리다 시에 ‘제물포 거리’(아래 사진 설명 참고)가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지상 낙원 멕시코에 가면 일당 1원30전에서 3원까지 보장한다고 황성신문에 모집 광고를 냈지만 실제로는 하루 35전밖에 주지 않았다. 그나마 하루 식대 20전을 떼고 지급했다.

 

▲ 메리다 시의 중심부인 산티아고 광장 앞에 위치한 이 ‘제물포(인천) 거리’는 가슴 뭉클한 탄생 배경을 갖고 있다. 에네켄 농장의 한인 광부가 이 동네 한 바에서 술만 마시면 곧잘 “제물포, 제물포, 제물포!”를 외쳐댔고, 그러면 주위 사람들도 같이 외치곤 했다. 바의 주인은 왜 그리 구슬프게 ‘제물포’를 연호하는지 까닭을 물었고, 그 절박한 외침이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로 시작되는 흑인 영가(한 늙은 흑인 노예가 고향 버지니아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은 미국 가곡)의 사연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감동한 주인은 주점 상호를 ‘제물포’로 바꾸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일대 거리 이름도 아예 ‘제물포 거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왼쪽 건물이 바로 ‘제물포’ 술집. 현재는 정부 소유 전당포(멕시코 전당포들은 모두 국영이란다)로 운영되고 있다.
 

  1909년, 4년간의 ‘노예 계약’이 끝나 권리를 찾으려 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돼 갔습니다. 이듬해 한일합병이 되자 이들은 국적마저, 돌아갈 조국마저 상실해 버렸습니다. 무능하고 무력한 식민지 조선에 의해 이들은 역사에서조차 버려지고 지워진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쿠바로 재이민을 갔습니다. 물론 그 모든 비극의 이면에는 한인들의 하와이 이민을 막으려는 일제의 교묘한 음모와 야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민 비자에도 한인들의 출생지는 조선인데, 국적은 일본으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일본 외무성 비밀문서를 통해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 제물포 거리에 붙어 있는 현판. 2007년 10월 15일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에서 설치했다고 새겨져 있다.(왼쪽 사진) 이민사 박물관 벽에 걸려 있는 낡고 얼룩진 태극기. 그 옆에 나란히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을 걸어 놓았다.(오른쪽 사진) 

  그러나 멕시코 100여 년 이민사는 좌절과 절망의 역사만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도전과 개척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현장에서 한국 근현대 이민사의 깊은 수렁을 벗어나 건강하게 움트고 있는 새로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멕시코 전역에서 에네켄처럼 굳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3만 명의 한인 후손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이들은 각계각층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계·법조계·학계·의료계·예술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로 떠오르거나 성공 신화를 써나가는 주인공들도 있습니다.  



▲ 1905년 4월 4일, 한인 1033명을 태운 영국 상선 ‘일포드(ILFORD)’호가 뱃고동을 울리며 제물포항을 떠났다.(위 사진) 배에 탄 사람들은 나름대로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배와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40여 일간의 고된 여정(우리는 비행기로 가는데도 20시간 가까이 걸렸다) 끝에 도착한 지구 건너편, 낯선 대륙에서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아래 사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탕수수밭의 꿈은 순식간에 가시밭 현실로 바뀌어 있었다. 한 사람 당 에네켄 잎 1만 장을 채취해야 그날 하루 작업이 끝났다.

   현재 6세대까지 내려온 한인의 후손들은 멕시코 전역에 3만 명 남짓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메리다가 5000명으로 가장 많고, 멕시코시티 2000명, 티후아나 1500명 순입니다. 이들은 6개 지역 별로 한인 후손회를 결성하고 있습니다. 유카탄 주 인구 200만 중 100만 명이 메리다에 거주하는 걸 감안하면, 메리다 지역에는 주민 200명 중 한 명 꼴로 한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후손 숫자는 센서스에 의한 것이 아닌 추정치입니다. 그만큼 살기가 각박했다는 반증이지만, 정확한 통계는 또한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나는 메리다 시에 머무는 동안 거리 곳곳에서 저 사람 혹시 한인 후손이 아닐까 싶은 얼굴들을 심심찮게 만났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친근감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 농장 관리인들은 말을 타고 다니며 게으름을 피우거나 일손이 더딘 노동자들을 보면 가차 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방울뱀에 물려 죽은 한인들도 많았다. 4년만 일하면 큰돈을 벌어 금의환향할 수 있다던 이들의 꿈은 허물어져 내린 지 오래였다. 

  국적도 모두 멕시코고 모국어를 잊은 후손들이 거의 다지만, 그래도 ‘아버지·어머니·할머니·할아버지’ 등의 호칭과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한국어로 할 줄 알았습니다. <아리랑>이나 <애국가>를 부를 줄 아는 후손들도 드물지 않다더군요. 5세대, 6세대를 내려왔지만 한국인의 모습만큼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이민 1세대 중에 여자는 2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아 현지 원주민 여성들과의 결혼이 잦다 보니 혼혈도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 1905년 5월 멕시코 도착 직후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위). 짚신과 한복 차림이 눈길을 끈다. 멕시코 이민사 100여 년을 통틀어 가장 오래 된 한인 1세대들의 기념사진이다. 앳된 소년의 모습까지도 보인다.
반면에 태극기를 배경으로 찍은 아래 사진은 위 사진보다는 좀 더 세월이 흐른 뒤인 것 같다. 남녀 아이들 옷차림이 비슷하면서도 단정한 걸로 보아 한글학교 교사들과 찍은 기념사진 같기도 하다. 위 사진과 아래 사진에는 아마도 동일 인물이 있겠지만 내 눈썰미로는 찾기 어려웠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샘솟는 사진들이다.
내가 아이폰에 담아온 이 사진들은 모두 한인 후손들이 가보처럼 간직해 오다가 박물관에 기증한 자료들이다.

  그날 메리다 시의 심장부에 있는 이민사 박물관에서 무엇보다도 나를 감동시킨 것은 한인 1세대들의 독립운동, 그 흔적들입니다. 설명을 해준 박물관장 *제니 장 씨도 이 대목을 얘기할 때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열정에 차 있었습니다. 애니깽이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숭고한 이름인 것은 그런 숨은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1세대, 2세대 애니깽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한인 국민회와 연결고리를 갖고 주권을 상실한 조국의 독립운동 비자금을 대는가 하면, 광복 후에도 조국의 불우한 동포들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한글학교를 세워 후손들에게 모국어와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려고 애썼습니다. 그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말입니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오래 된 우리말 책들이 나의 감동을 증폭시켰습니다.

*Genny Chans Song. 이민 1백주년을 기념해 2005년에 문을 연 이민사 박물관의 관장인 그녀는 한인 후손이다.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열강하듯 설명을 해주었는데 간간이 한국어(낱말 수준)를 섞어 썼다. 마이 아버지 정, 마이 어머니 송, 마이 할아버지, 마이 딸 식으로 가족 관계를 얘기할 때는 특히 그랬다. 이들은 이름 뒤에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쓴다. 조상이 고씨 성이면 코로라, 최씨 성이면 산체스로 쓰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제니 정 관장은 변호사인 아들 명함 뒤에 자기 이름과 주소를 적어 주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그녀가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서 순백으로 빛나고 있는 추억들. 나비넥타이를 맨 다섯 명의 청년은 예쁜 드레스 차림의 아가씨들과 합동 결혼식(약혼식?)을 올리고 있는 걸까? 화동을 들러리 세운 결혼식과 아마도 목사가 주례를 선 듯한 예식 장면도 보인다. 3대 아홉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찍은 듯한 가족 사진은 단란하고 행복한 모습이다. 이때만 해도 한국인들끼리의 결혼이 드물지 않았었나 보다. 

  한 순간 케네디 대통령의 명언이 내 머리를 스쳤습니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라.” 

  멕시코 이민 1세대들은 국가로부터 혜택이나 도움은커녕 냉혹하게 버림받은 존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조국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고 또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 내 심금을 울린 초창기 이민자들의 나라 사랑 증표들. 발행일자가 1918년 12월 5일로 되어 있는 신한민보(1909년 2월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민 단체가 창간한 대한인 국민회의 기관지) 호외.(위 왼쪽) 대한인 국민회 입회 증서.(위 오른쪽) 대한인 국민회 총회에 낸 의무금 증서.(아래 왼쪽) 1946년 고국의 헐벗고 굶주린 동포 난민을 구제하자며 모은 성금 장부.(아래 오른쪽) 

  그런 그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민주국가와 국민은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재외 교포들도 우리 국민들입니다. 앞으로는 투표권도 갖게 됩니다. 나는 재외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만큼 대한민국도 재외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이민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한국의 전통 각시 인형들. 화사한 한복 차림에 부채춤을 추고 있다.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교민들은 모두 소중한 우리 국민, 우리 핏줄들입니다. 과거를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열어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더욱 활발한 인적·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역할을 다하자고 다짐하며 나는 메리다 시를 떠났습니다.

  멕시코 대사관 국감을 통하여 우리는 한인 후손들 문제에 대해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 한인 이민 1백주년 기념탑이 너무 초라하다는 겁니다. 이 기념탑과 더불어 한인 이민사 박물관에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3만여 한인 후손들은 우리에게도 소중한 인적 자원입니다. 이들을 할아버지의 나라, 대한민국과 좀 더 가까워지게 해야 합니다. 그 방안으로 이들에게 한글 교육과 직업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을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만들면 어떨까요. 그리하여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향상된다면 국력도 그만큼 신장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여러분 의견은 어떻습니까.



P.S. 한인회장 울리세스 박과 부회장 올센(어머니 성이 이씨인 이 두 분은 친척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민사 박물관 관장인 제니 장씨가 끝까지 동행하며 친절한 안내와 열정에 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 분들이 안내한 현지 음식점에서 우리는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조그만 선물로 성의 표시를 했을 뿐인데도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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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y Can 2010.10.27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로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국정감사 카메라는 남미에 안 따라갔나요?
    이런 현장을 생중계했더라면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한 국감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애니깽,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름의 주인공들은
    어쨌든(Any) 할 수 있다(Can)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애니캔(AnyCan)이란 별칭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2. 가을국화 2010.10.27 1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 안팎으로 한 많은 역사를 가진 민족이 우리 민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 이상 이런 비운의 역사를 쓰지 않기 위해서
    보다 강하고 당당한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3. 모개 2010.10.27 1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글이었습니다.
    투박하고 빛 바래진 사진들이 이 서사(敍事)의 진정성을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김형오 전 의장께선 학자같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학자같다는 말씀이 틀렸다는게 아니라 국정에 임하는 자세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외교, 통상, 국방, 영토, 원전, 종교, 개헌 ....
    어떤 문제이건 시류를 따르기보다는
    꾸준한 연구와 깊이있는 검토의 결과물을 내놓고 화두를 던지는 분이 아닌가싶습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하고싶어하는 분들이 롤모델로 삼아야 할 분이 아닌가 싶고.


    재외동포 참정권 등, 제도의 시행과정에선 당면한 문제들의 예민한 모서리도 함께 드러날 것입니다. 이미 일부 재외교포들은 혼인을 통해 한국인이 되고서도 그 2세와 함께 다문화가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어렵사리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국적이나 참정권 문제 등등 현안이 있을 때마다
    고민없이 끊고 맺고 가닥을 잡아나갈 게 아니라
    이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그들에게 누구이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해야겠다는 생각 해보았습니다.


    이 홈피가 던지는 여러가지 질문들,
    제게 그랬던 것처럼 많은 분들의 가슴에 느낌표와 물음표를 남길 것 같습니다.

    • 윷걸 2010.11.01 2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학자적인 식견과 탐구욕, 문필가적인 감성과 구성력이 순금처럼 혹은 순은처럼 반짝입니다.

  4. atman 2010.10.27 1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 안녕하세요?
    슬픈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었습니다.
    G-20의장국이니하는
    전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도록
    이런 내용을 국민들이 많이 알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합니다.

  5. 휴머니스트 2010.10.28 0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은 남다른 휴머니스트인 것 같습니다.
    21세기 미래의 정치는 그런 휴머니스트가 이끌어가야 합니다.
    어떤 드라마나 휴먼 다큐멘터리보다도 감동적인 포스팅이었습니다.

  6. 규현 2010.10.29 0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도 안통하고 길도 모르고 할 수 있는건 오직 에네켄 잎 만장을 채취하는것 뿐.
    하지만 이것은 비단 역사속의 일이 아닙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농장에서 일하며 영어를 배우는 젊은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애니깽들처럼 노예살이는 아니지만은요.
    국력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 포스팅입니다.

  7. 일필휘지 2010.11.03 0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적으로 쓴 글이 내 마음을 온통 물들였습니다.
    먹물의 진액만 벼루에 남았던 모양입니다.

  8. 김형오 2010.11.03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니깽 이야기"에 이렇게 뜨거운 반응 주셔셔 감사합니다. 바쁜 틈틈이 이것만은 꼭 함께 공유했으면 해서 올린글입니다.여적으로 올렸지만 사실 국정감사란 이런 곳,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악 조사 개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여건이 그렇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나는 외국에서 만나는우리 동포 우리 핏줄의 그 끈끈함과 저력을 느끼고 존경하게 됩니다. 제글에 감동받으셨다하는데 저는 오히려 여러분의 격려 말씀이 제 눈가를 적십니다 그동안의 피로가 눈녹듯합니다 함께 고생한 제 보좌진들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여러분 격려에 힘입어 에니깽의 문제 개선에 힘쓰는 한편 여적으로 또 다른 글 한편 올릴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9. 필링 2010.11.04 0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성과 이성과 지성의 삼두 마차가 이끌어가는 수레에는
    참으로 값지고 탐나는 보석들이 가득 실려 있습니다.
    여적으로 올릴 예정이라는 또 한 편의 글이 기대됩니다.

  10. 에스프리 2010.11.07 0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용설란 가시에 찔려, 방울뱀에 물려, 농장주의 채찍질과 무자비한 학대에 시달려
    외롭게 숨져간 한인 1세들에게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후손들의 번영과 행복을 빕니다.

  11. 화룡점정 2010.11.08 0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먹물이 말라가는 벼루에서 마지막 먹물을 찍어 당신이 그려낸 것은
    용의 눈, 그것이었습니다.

  12. 각시인형 2010.11.13 08: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 어느새 눈물이...
    용설란 잎사귀에 그런 슬픈 사연이 숨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13. BlogIcon 박주현 2012.01.25 0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곧 멕시코로 일을 하러 떠나게 되는 섬유디자이너입니다. 멕시코와 관련된 애니깽에 대한 이야기를 한비야 선생님의 책을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애니깽" 검색을 통해 이 글을 읽게되었는데, 멕시코에 가게 되면 꼭 이민사 박물관에 다녀와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한국인이라는데에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지난 100년간 우리의 선조들이 일구어낸 오늘날이 너무 자랑스럽네요...

 

▲ 백령도 어린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국회 본관 로텐더홀)

김형오 국회의장 초청으로 국회를 방문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1일 오후 김 의장의 직접 안내를 받아 본회의장을 40여분 동안 견학했습니다.


인솔교사 9명을 포함해 118명의 이들 어린이 방문단은 오후 2시쯤 국회의사당 3층의 로텐다 홀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을 만나 “반갑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인사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그 자리에서 국회 의사당에 대해 직접 소개한 뒤 백령도를 지역구로 갖고 있는 박상은 의원(한나라당 인천 중구동구옹진군)과 함께 직접 어린이들을 인솔해 본회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 국회 본회의장으로 어린이들을 직접 안내하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

본회의장에서 의원 발언대에 선 김형오 국회의장은, “여러분을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 그리고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하며, “미래의 국회의원을 꿈꾸는 어린이는 이번 방문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아울러 좋은 꿈을 꾸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고 격려했습니다.

▲ "부모님,선생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알겠죠?"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에서 김형오 의장)

김형오 국회의장은 백령도, 대청도 및 소청도 남녀 어린이 대표들을 일일이 의원 발언대에 세워 인사말을 할 수 있게 하였는데, 어린이들은 어색하지만 또박또박하게 “앞으로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등 자신의 포부와 소감을 밝혔습니다.

▲ "미래에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어린이들은 이번 기회에 많이 배우세요"...."네~ 의장님!!"

전날 국회 본회의가 열렸을 때 4층 방청석에서 아래를 잠시 내려보았던 어린이들은 오늘 본회의장에 직접 들어가보자 모든 것이 신기한 듯했습니다. 천진스러운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의원석에 앉기도 하였고,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서로 경쟁하듯이 사인을 해 달라며 종이를 내밀기도 하는 등 정겨운 모습이 펼쳐졌습니다.

 

▲ "저도 싸인 해 주세요! 저도요!" / "줄을 서시오~"

▲ 김형오 국회의장도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 어린이들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


원래 본회의장 내부 입장은 외국 귀빈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되나, 이번에는 어려운 여건속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백령도 어린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특별히 배려했습니다.

 ▲ 어린이들과 정겹게 손을 맞잡은 김형오 국회의장

▲ 어린이들이 김형오 의장을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싸인을 부탁하는 등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들 어린이 초청 행사는 작년 9월 11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백령도 군부대를 방문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요청해 이루어졌습니다. 당초 이들의 방문은 작년 11월 초에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신종플루 여파로 연기되었다가 이번에 성사되었습니다.

전날 오전 서울에 도착한 어린이들은 국회본회의장 참관, 청와대 방문, 한강 유람선 탑승, 63빌딩 관람, 인천대교 및 인천공항 관람 등 다채로운 일정을 보내고 내일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 다음에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단체 기념사진 찰칵!  ( 국회본관 로텐더홀 계단)

▲ 헤어지기 전, 미처 싸인을 못 받은 어린이들의 요청에 싸인을 해주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과 박상은 의원.

(사진촬영: 국회 미디어담당관실)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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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4.02 06: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아직 못가봤는데 ㄷㄷㄷㄷ

  2. 임클라스 2010.04.02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맹태님 수고 많으십니다. 의장님도 저 많은 아이들 일일히 싸인해 주셨으려면 힘드셨겠네요~ ㅎㅎ
    의장님도 백령도 아이들도 모두 즐거운 시간처럼 보입니다.

  3. 백년도 간 아이 2010.04.02 18: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저가 백년도 에서 전도할라고 갔는데,저가 그때봤던 오빠가 나왔네요~~ 정말 영광입니당...

    • BlogIcon 맹태 2010.04.02 1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백년도 간 아이님~ ^_^
      반갑습니다.
      발음으로는 백년도라고 들리기도 하지만, 백령도가 맞습니다.^^
      백령도에서 만난 오빠를 사진으로 보게 되어서 무척 반갑겠어요. 국회에서 함께 만났으면 더욱 반가웠을텐데요.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하세요~
      감사합니다 ^_^

  4. BlogIcon www.paris-renovation-92.fr 2015.04.10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시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열린 정례기관장 회의에서 4월 임시국회 및 천안함 침몰사건 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고 허용범 국회대변인이 밝혔다.

비 내리는 3월의 마지막 날, 국회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작년 10월부터 추진되었던 백령도 초등학생 국회방문이 마침내 성사된 것이었죠.
백령초등학교, 북포초등학교, 대청초등학교, 소청초등학교에서 109명의 어린이와 9분의 선생님이 국회를 방문했습니다.

제288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방청한 어린이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조용히 하자는 의미로 손가락을 입에 대고 방청석에 들어섰습니다.

어린이들을 소개하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소개말에 회의장의 의원들은 손을 흔들어 반겨주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소개에 자리를 고쳐 앉아 자신들을 환영하는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며 어린이들은 더욱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어린이들도 우리에게) 손 좀 흔들어 주세요~" 라는 의원들의 요청에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본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최근 발생한 사고에 대해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했습니다.

"지금 백령도는 비가 오고 있습니다. 서울 날씨도 흐립니다.
 그러나 언제나 흐린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밝은 해가 솟아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백령도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 여러분, 학생 여러분, 주민 여러분 그리고 대한민국 해군과 국군장병 여러분!
 힘내십시오. 희망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본회의 의사진행발언 도중 이견을 가진 의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고가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바라보았고, 의원들 사이에서도 "어린이들 앞에서 자제하자"는 외침이 나왔습니다.

짧은 방청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어린이들은 "(의원들의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무서웠다.", "지루했다."고 소곤거리며 방청석을 빠져나갔습니다.

대청초등학교 5학년 송성진 어린이는 "회의장이 무척 넓고 멋있었어요. 국회의장님 말씀대로 천안함 실종된 군인아저씨들이 어서 무사히 돌아오면 좋겠어요." 라고 방청소감을 밝혔고, 대청초등학교 6학년 김다빈 어린이"처음보는 국회의 회의장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했고, 방청을 할 수 있어 좋았어요. 국회의원 아저씨들 말씀처럼 어서 천안함을 구조했으면 좋겠어요." 라고 방청소감을 남겼습니다.

<방청을 마치고 박상은 의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대청초등학교 어린이들>

천안함 실종장병들의 무사귀환은 어린이들의 방청소감처럼 온 국민의 바람입니다.
구조작업 중에 순직한 故한주호 준위의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와 애도의 말씀을 전하며, 천안함 실종자 가족 여러분께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힘내시길 기원합니다.

                                                                                                        (사진촬영: 국회 미디어담당관실)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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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6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0.04.16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www.kc57.fr 2015.04.10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시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열린 정례기관장 회의에서 4월 임시국회 및 천안함 침몰사건 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고 허용범 국회대변인이 밝혔다.


새로운 대화와 소통 창구로
<블로그 형오닷컴 (www.hyongo.com)>을 선택했습니다. 새롭게 단장했는데 어떤가 싶어 짬을 내어 찬찬히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올라온 콘텐츠를 살펴보던 중 '아이들이 싫어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라는 다소 생뚱맞은 제목이 눈에 띄더군요. 이건 무슨 소린가 싶어 클릭했더니만 바로 내 얘기 아니겠습니까. 아니, 아이들이 나를 싫어한다구요?

그 옆에 현장에서 찍은 사진까지 ‘떠억’ 올려놓아 확인사살(?)까지 확실히 해두었더군요. 이거 꼼짝 못하게 당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장 증거라며 올라온 사진.

그리고 기사 아랫부분에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패턴의 사람과 그 양태를 매우 분석적으로 설명해두었더군요. 그 글이 지적하는 사람 또한 바로 ‘나’였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난 뒤, ‘네티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김형오 좀 이상한 사람이구만”, 또는 “자기 약점을 드러내 역으로 인기를 노리는 꼼수 아냐?” 등등의 웅성거림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관련기사 링크)

솔직히, 글을 읽고 난 뒤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변명은 좀 해둬야겠습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분석 내용은 내가 생각하는 사실과 좀 차이가 있으니까요.

현장을 바삐 둘러보던 나도 미처 알지 못했고, 나를 수행하던 참모들(블로그 필진 포함) 역시도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몇 마디 적어봅니다. 기분 좋은 지적에 대한 즐거운 반론이니 흔쾌하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2009 희망탐방> 방문지인 ‘인천 세계도시축제’ 현장을 ‘주마간산’격으로 바쁘게 누비고 다녔습니다. 워낙 넓은 공간이라 대충 보는데도 시간이 꽤 많이 걸리더군요.

문제의 장소에 왔을 땐, ‘이미 준비된(?)아이들’ 열차에 앉아있었는데 표정들이 영 안 좋더군요. 아마 오랫동안 우리들을 기다렸던 모양이지요. 우리들이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야만 움직이는 친환경 어린이 열차였는데, 내가 그렇게 열심히 페달을 밟았는데도 아이들이 영 반응이 없더군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빨리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이 그 열차에 앉아 우리들이 오기를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  어른 입장에선 불과 몇 분일 수 있지만, 아이들에겐 굉장히 긴 시간이었겠지요. 아이들에게 우리 일행은 아마도 귀빈이 아니라 엄마아빠와의 즐거운 시간을 빼앗은 방해꾼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현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블로거들의 지적을 보고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엄마,아빠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참모진들에게 몇 가지 당부합니다

#1. 나는 인위적인 것을 싫어합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줄 알았더라면 부모들께 사과하고 부모들과 아이들이
     함께 ‘친환경 자전거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했을 겁니다.

#2. 앞으로도 위에서 언급한 그런 상황이 예정되어 있을 땐, 참모 여러분들이 단호하게 수정해주십시오.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으면 그 상황을 내게 알리고 함께 논의합시다.

#3. 블로그 편집진여러분,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부분 놓치지 말기 바랍니다. 다만 한 가지, 생각
     해보니 아이들은 내가 오기 전에 이미 기분이 나빠져 있었습니다. 이 점을 저나 여러분이 그 때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도착했을 때 또는 우리가 자전거 페달을 밟기 직전의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
     증명(?)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끝으로 모델이 되어준 아이들과 엄마, 아빠들에게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아이들과 함께 늘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블로그 형오닷컴 www.hyongo.com> 이 세상에 선을 보인지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젊은 감각을 믿고 온전히 참모진들에게 맡겼는데 다채로운 내용으로 볼 때 여러모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더군요.

일정수준에 오르면 틀림없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매우 활기찬 블로그가 될 것 같군요. 물론 나도 블로그를 통해 네티즌 여러분과 자주 대화를 할 예정입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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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변인 2009.10.11 2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에서 보듯이, 저도 그때 궤도차에 올라가 있는 아이들 표정을 보았는데,
    정말 재미없어 하더군요.
    너무 빨리 지나간 상황이어서 미처 깊은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런 인위적 상황연출은 앞으로도 없어야겠지만,
    의장님 말씀대로 판단이 잘 서지 않으면 즉각 상황을 알리고 의견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2. 김호섭 2009.10.12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왔다가 잘보고 갑니다. 아이들의 표정에 이런 숨은 뜻이 있었다니 ㅋㅋㅋ

    • BlogIcon 포도봉봉 2009.10.12 1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저도 몰랐던 사실인데 의장님 쓰신 글을 보고 알게 됐습니다. 김호섭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3. BlogIcon 흠.. 2009.10.12 1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이 변명이 아니길..
    진심이고 진실이길 앞으로 기대해보겠습니다~
    이 블로그를 통해서 ^^

혹시 이런 경험 있으세요?
다른 사람의 품에서는 방긋방긋 잘 웃던 아이가 나만 보면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리는... 그런 민망한 경험.
저는 이런 일(특히 주위에 아이 엄마라도 있는 날에는 그 민망함이 더욱 커지죠.~^^;)을 겪을 때마다 '내가 애한테 무슨 잘못을 했나'부터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심지어 '내 얼굴이 무섭게 생겼나?' 등 별별 생각들이 다 떠오르는데요. ~ㅠ ㅠ

지난 9일 인천에서의 희망탐방 중 김형오 국회의장님도 바로 이런 난감한 경험을 겪게 됩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장도 피해갈 수 없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사람.
한번 상황을 통해 살펴볼까요?


인천세계도시축전 녹색성장관에서 자전거 발전기를 체험하고 계시던 국회의장님. 의장님이 자전거를 돌리자 아이들이 탄 기차가 레일 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기차가 가까이 다가오자, 의장님은 너무나도 해맑은 미소로 아이(맨 앞 주황색 옷 아이를 주목해 주세요.)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는데요.
여기서 참고로 평소 의장님은 외손자를 둔 할아버지로 아이들을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안녕~~아이에게 정답게 말을 거는 김형오 국회의장님.>


헉~~아이가 쳐다도 보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방송사 카메라도 있는데 민망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혹시 아이가 보지 못했을까, 직접 앞으로 나와 손을 내미는 김형오 국회의장.

 
이런~~아이는 끝까지 거부하고 얼굴마저 외면하는 군요.

민망하셨는지 의장님은 바로 자리를 뜨셨습니다.
저는 그 뒤 아이가 엄마에게 다급하게 이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저 아찌가, 저 아찌가~~"
도대체 저 아찌가 뭐를 했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한동안 의장님이 떠나간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저 아찌"를 외치더군요.

그래서 검색해봤습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타입!! 두둥~~

- 첫째,  눈 마주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안경 낀 사람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안경 알에 빛이 반사돼 눈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아이들에게 미움받는 당신, 혹시 안경을 꼈다면 다음부터 아이들을 만날때는 벗어보세요.

-둘째, 아이들은 자신보다 덩치가 큰 사람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자, 위 사진을 다시 보면 아이 앞에 서 계신 의장님. 덩치가 엄청 커 보이죠? 
아이를 만났을 때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앉아 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이들에게 호감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셋째, 아이들은 비대칭보다 대칭을 좋아한다 합니다.
그래서 얼굴도 대칭으로 생긴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데요.
여기서 잠깐, 얼굴이 대칭이라는 것은 곧 미인, 미남이라는 뜻인데...
결론은 결국 외모가 중요하다는 얘기이군요. ㅠ ㅠ

  
이것이 진리는 아닙니다. 이런 설도 있지만 아이들이 낯설어 하는 것은 그 아이 본인의 특성이지 일반화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고 하네요.

대한민국 국회의장도 어쩌지 못하는 아이들의 취향입니다. 아이들이 싫어한다고 움추려들지 말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더 따뜻하게 다가가면 어떨까요.

요즘 나영이 사건 등 너무나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애정과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POST BY 포도봉봉 
(국회의장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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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셀피 2009.10.12 1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저도 저런 경험 있어요 ㅡ,.ㅡ 애들이 나한테만 오면 울어버리는... 정말 기분 드러웠는데...흠

  2. 촌철살인 2009.10.12 19: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안경을 껴서 애들이 싫어하나...ㅋㅋ

  3. 네눈박이 2009.10.13 0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잠자리 안경을 껴 보세요~~

10월 9일, 세종대왕님이 우리에게 소중한 한글을 선물해 주신 날입니다.
그래서 이번 제 3차 희망탐방은 나라의 소중함과 미래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일정으로 준비했는데요.
바로 평택과 인천, 우리나라의 미래인 서해를 책임지고 있는 두 도시입니다.
평택과 인천에서 찾은 3번째 희망 탐방이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떠나기 전 의장님 공관에서 찍은 코스모스. 가는 길마다 우리는 반겨주는 꽃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한 컷 찍었습니다.  *의장님께서 코스모스가 아니라 구절초라고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 화초에 대해 애정과 관심이 많으신 의장님이십니다. 예전에도 야생화에 대해 설명해 주셨는데. 화초맹인 제가 오늘 또 하나 배우네요.>

#그대의 눈물, 겨레의 혼불되다.


<필승함대, 제2함대.>

첫번째 방문지는 평택에 위치한 '해군 제2함대'입니다.


<늠름한 해군 장병들의 힘찬 경례를 받았습니다. 너무나 든든한 우리 해군, 멋있다~>

해군2함대 사령부 지휘통제실(군사2급비밀을 취급하는 곳이라고 합니다.)에서 김동식 2함대사령관으로부터 간단한 군사 현황 보고를 들었습니다.
보고 후 의장님은 지난번 백령도 방문 당시 어민들로부터 받았던 민원을 제2함대에 전달했습니다.


<보고 후 백령도 어민들의 민원을 2함대에게 전달하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

김동식 사령관 : "우리 영해를 침범 불법조업을 하는 중국어선과 북한어선이 증가하고 있어 큰 문제입니다."

김형오 국회의장 : "지난번 백령도 방문 때 어민들도 이에 대해 하소연했습니다. 어민들이 NLL에 어초를 놔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는데 어초를 설치해도 군사적으로 문제가 없겠습니까?"

김동식 사령관 : "검토해 보겠습니다."

간단한 현황 보고 후 바로 이동한 곳은 제1연형해전 전승비와 2연형해전 전적비.


2002년 6월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당시, 차가운 바다 서해에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친 6명의 대한민국 해군장병들이 있었습니다.
제2연평해전 순국용사들의 넋을 기리며...



제2연평해전에서 침몰했던 참수리-357호정과 당시 현장을 보존해 놓은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들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 합니다.
나라를 지키고 순국한 6명의 영웅들,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서해를 지키는 고속함 윤영하함.>
연평해전의 영웅, 고 윤영하 소령이 서해를 지키는 고속함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대들이 지킨 조국, 그 미래를 이어가는 것은 이제 남은 우리의 몫이겠죠.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회생의 힘찬 엔진 소리, 그 땀의 현장.

다음 방문지는 77일의 장기 파업 이 후, 회생의 엔진을 힘차게 돌리고 있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입니다.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 당연한 얘기겠지만 차입니다. 쌍용차가 자랑하는 SUV 차량들이 공장 로비에 전시돼 있었습니다.

조업 재개 이후 쌍용자동차는 빠른 생산 정상화로 올해 총 3만4천대의 자동차 판매를 전망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자금이 많이 부족해 약 1000억 원의 추가 자금 조달이 시급하다고 하더군요.
현재 쌍용자동차가 처해있는 상황과 앞으로의 비전에 대한 현황설명을 들은 후 바로 생산라인으로 이동했습니다.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며 너무나도 바쁘게 일하고 있는 현장 근로자들. 전쟁같았던 파업 당시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근로자들의 손을 잡으며 격려를 하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

한국 최초의 4륜구동차인 코란도 신화를 이룩했던 쌍용자동차.
코란도의 뜻인 Korea can do! 처럼 당신들은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코란도 신화를 만들어내는 그 날을 위해 힘내주십시오!!

#상전벽해 인천, 미래 도시 이야기.

평택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나고 '희망탐방팀'은 바로 인천으로 이동했습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동북아의 비즈니스 중심지로 조성되고 있는 인천 정말 하루 하루가 날마다 새로운 미래 도시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첫 방문지은 갯벌타워. 이곳에서 인천경제자유구역에 대한 비전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갯벌 타워에서 인천의 비전을 들었다면 이제 남은 것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동북아무역센터(NEATT)를 올라갔습니다.
 
<내년 말 준공을 앞두고 있는 동북아트레이트 타워. 66층, 304m(63빌딩은 249m)로 현재 국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입니다.>


55층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인천경제자유구역의 모습입니다. 이미 들어선 높은 건물과 공사를 앞두고 있는 벌판이 공존하는 이곳. 아직 미완성인 그림을 미리 본 듯 하죠?



변화하는 인천의 모습에 모두 빠져든 듯 합니다.

#인천세계도시축전, 세계 도시가 한 자리에 모였다.

숨가쁘게 달려오다보니 어느새 오늘 일정의 종착지인 인천세계도시축전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해가 짧아진 것이 느껴지시죠?   


신종플루 때문에 많은 축제들이 개최를 취소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천세계도시축전도 시민들의 신종플루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철저한 방역 조치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것은 바로 신종플루 예방존.

예방존을 지나 '희망탐방팀'이 가장 먼저 관람한 곳은 바로 녹색성장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녹색에너지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직접 자전거 발전시설을 체험하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
자전거를 굴리자 아이들이 탄 기차가 이동을 하더군요.
우리 가정에도 이런 자전거가 한대씩 있다면 다이어트와 전기요금,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텐데...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녹색성장관에 이어 관람한 세계도시관.
인천의 미래 모습은 물론 천진과 네팔 일본 등 세계 도시 곳곳의 현재와 미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또 세계 일주가 꿈인 제게는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


세계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붉은 단풍의 천진시가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가을의 느낌이 물씬나죠?


너무나도 아름답고 역동적인 민속춤을 직접 보여 주었던 네팔의 무용수들.
이들의 공연을 보느라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의장님의 가장 밝은 미소를 볼 수 있었던 곳이기도 하죠.

시원한 차로 우리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었던 일본관.


모든 일정을 마치고 가 본 인천대교 모습.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긴 이 다리 위에 서 보니 더 이상 과거의 인천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천, 그 속에 우리나라의 희망도 함께 있는 것이겠죠.
우리나라의 소중함과 가능성을 느꼈던 제 3차 희망탐방은 이것으로 모두 마치겠습니다.
그럼 다음 4차 희망탐방까지 모두들 안녕~~ 


POST BY 포도봉봉
(국회의장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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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김형오 국회의장 평택.인천 민생현장 방문(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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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 내일 경기·인천 방문

김형오 국회의장은 내일(10.9) ‘우리땅 희망탐방’의 세 번째 지역인 경기도 팽택과 인천을 잇따라 방문한다. 김 의장의 희망탐방은 국회 국정감사기간인 약 4주간에 걸쳐 이뤄지는 민생 현장 시찰로 지난해‘생생탐방’에 이은 두 번째 국토 순례 이다.

이번 희망탐방은 국정감사기간동안 우리 국민의 삶의 현장, 산업 현장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국회의장으로서 국민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내일 오전 평택에 소재한 해군 제2함대를 방문하여 부대원들을 격려하고, 연평해전 당시의 호국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제1연평해전 전승비와 제2연평해전 전승비에 참배한다. 또한 연평해전 영웅들의 혼이 담긴 참수리-357호와 윤영하 소령을 기린 윤영하함도 함께 둘러볼 계획이다.

이어 김 의장은 지역 산업 현장인 쌍용자동차를 방문하여 생산시스템을 보고받고 체어맨과 로디우스 생산라인을 직접 시찰한다.

김 의장은 오후에 인천 송도로 이동하여 인천지역의 현안에 대해 지역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후 경제자유구역 개발현황을 보고받고 홍보관을 순시한 다음 동북아 무역 경제의 허브로 작동할 동북아무역센터(NEATT)를 방문할 계획이다.

이어 김 의장은 인천세계도시축전 행사장을 방문해 현황을 보고받고 녹색성장관과 세계도시관 등을 돌아보며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형오 의장의 임기 중 인천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로 지난 5월1일 전국을 대표하는 98개 축제가 한자리에 모인‘2009 대한민국축제박람회’개막행사에서 축사를 한 바 있다.
김형오 의장의 이번 인천 방문에는 최거훈 국회의장비서실장, 허용범 국회대변인, 배준영 국회부대변인 등이 수행한다.

※참고 :
△10:00 해군 제2함대 방문
△10:30 제1연평해전 전승비·제2연평해전 전승비 참배
△11:00 참수리-357 및 윤영하함 시찰
△13:00 쌍용자동차 방문 및 체어맨·로디우스 생산라인 시찰
△15:20 인천지역 기자간담회
△16:00 경제자유구역 개발현황
△16:30 동북아무역센터(NEATT) 방문
△17:00 인천세계도시축전 행사장 방문

<끝>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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