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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3일 이후 나흘째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아니, 잠이 오지 않는다. 연평도가 불탔다. 대한민국이 공격당했다. 제대를 앞둔 씩씩한 병사와 만 스무 살도 안 지난 앳된 소년 해병이 희생됐다. 영문도 모른 채 민간인이 죽었고 재산이 불탔다. 주민들은 40년 전 지어진 낡은 대피소에서 추위에 떨며 캄캄한 밤의 공포를 이겨내야 했다. 아, 이것이 내 어릴 적 말로만 듣던 내 부모형제들의 6.25가 아닌가, 나는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1371명 주민 중 26일 현재 연평도에는 28명만 남아 있다고 한다. 연평도가 초토화되는구나. 사람 없는 섬은 주인 없는 섬이 된다. 북한이 노린 것이 이거였을까. 서해 5도의 운명이 촌각을 다툰다. 대한민국이 위기다.

  어제 국방부 장관이 바뀌었다. 경질과 내정이 하루 만에 이루어졌다. ‘전쟁 중엔 장수를 바꾸지 않는 법’이라는데 사안의 중요성과 시급성이 반영됐다. ‘MB는 숙고형 인사 스타일’이라는 세평과 달리 신속한 결정이었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훌륭한 군인이었고, 장관으로서도 성실히 업무를 수행했다. 고위 공직자 중 드물게 보는 청빈에다 안정감 있는 외모로 신뢰감을 주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운이 없었다. 그가 마음먹은 대한민국 국방현대화계획을 추진할 겨를도 없이 외침에 시달려야 했다. 천안함의 눈물이 가시기도 전에 터진 연평도 불바다는 그를 더 이상 그 자리에 있게 할 수가 없었다. 두 번의 전투에서 국군이 패한 것이다. 기습도발로 감행된 억울하기 이를 데 없는 전투였지만 패배는 패배다. 이 쓰라린 패배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국방장관은 어쩌면 이 전투의 책임선상에서 벗어나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현장 지휘관도, 작전과 군령의 책임자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옷을 벗는 길이 그가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군과 후배 군인들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것이 또한 그가 살아온 군인의 길이다.


  대한민국은 대내적으로 책임을 물었다. 그것도 최고의 책임을 지게 했다. 그러나 정말 책임을 져야 할 자는 뻔뻔스럽게도 가증스런 이빨을 드러내고 계속 으르렁댄다. 우리는 침략자에 대해 한 번도 책임을 물은 적이 없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경고는 풍선이다. 그 동안 우리의 경고는 풍선놀이하면서 폭탄이라고 떠드는 꼴로 저들에게 우습게 비쳤다. 어쩌면 수십 번을 당하고도 단 한 번 응징하지 못한 세계 유일의 나라인지 모른다. 그랬기 때문에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지 않았느냐는 언어유희는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 벌써 무너졌어야 할 정권을 연명시켜준 유화책은 이제 걷어치워야 한다. ‘강성대국 선군정치’는 한국의 어정쩡한 대북정책이 지속되는 한 가장 효과적인 대남정책이요, 김부자(金父子) 정권연명 정책이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북한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김정일의 입에서 사과 성명이 나올 때까지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 데드라인(시한)을 못박아야 한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외교는 헛껍데기란 것은 국제정치의 상식이다. 김정일이 외교적으로 국제적으로 해결해야 되겠다고 스스로 통감하도록 실질적․구체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국지전이 전면전 된다고, 강경대응하면 서울은 불바다 된다고, 전쟁광 놀음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북한 주장의 판박이 같은 소리 이제 좀 그만하자. 국민이 죽어가고 영토가 불바다 되는데 한심한 갑론을박하는 나라의 말로가 어땠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보복과 응징이란 단어가 박물관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면 당장 실행해야 한다. 국방장관 경질이 내부 국면 수습용이어서는 안 된다. 새 국방장관의 기용은 북한에 대한 경고여야 한다. 그가 또 정치논리의 희생양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나오게 하려면 이 시점에서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입힌 만큼 응징하는 길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우리의 국방력이 훨씬 우월하다. 훈련도 많이 했다. 사기도 높다. 전략만 잘 세우면 된다. 시원찮은 일부 민간 전문가연하는 분들이여, 더 이상 북한에 떨지 말라. 언제까지 북한 입장만 헤아릴 것인가. 떨고 있는 쪽은 남이 아니라 북이다. 체제붕괴까지 이르는 타격력을 우리가 가진 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신임 국방장관이 임용되기엔 시간이 좀 걸린다. 신구 장관 교체 기간이 국방 안보의 취약 기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방 최고 책임자의 경질이 북한에 대한 경고로서 효력을 발휘하려면 당장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국가 보위의 강력한 의지와 냉철한 전략만 있다면 지금이 북한을 응징할 절호의 기회다.

 해병 전우들이 영결식장에서 부른 해병대가는 내 얼굴을 눈물범벅으로 만들었다. 바로 그때, ‘에비타’란 애칭의 아르헨티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이 33세 젊은 나이에 세상과 작별하며 자국 국민들에게 남긴 한 마디가 폐부를 찌르며 파고들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이 말은 같은 제목의 노래로 만들어져 그 나라 국민들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심금을 울렸다. 순국 용사들의 충정도 저와 같았으리라. 대한민국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그래, 울지 않으련다. 나는 애써 눈물을 닦고 순국 용사들을 위해 기도하며 다짐한다. 그대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하리라.

  “우리가 있어야 북한이 허튼 짓을 못한다”면서 마지막까지 연평도에 남겠다는 결의를 보인 주민들이 든든하고 존경스럽다. 작렬하는 포화 속에서 두려움 없이 응전하며 조국을 지킨 용사들에게도 치하와 격려를 보낸다. 애국심으로 무장한 젊은 피들이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다. 해병대 파이팅! 육해공군 파이팅! 대한민국 파이팅!

  ※P.S. 사흘 동안 수십 통의 편지를 썼다, 트위터에. 팔로워들과의 논쟁도 서슴지 않았다. 일종의 사명감이라 생각하며 젊은 논객들과 ‘계급장’ 떼고 맞붙었지만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답답했다. 우리 사회가 어찌 이리 돼 버렸을까. 연평도 해병과 민간인들의 죽음을 지구 저 반대편 일인 줄 아는 그들은 평화주의자도 무엇도 아니다. 반전 논리도 너무나 빈약하고 앞뒤가 안 맞는다. 내가 그들을 설득 못 시켜서 안타까운 게 아니라 그들의 헝클어진 국가관과 비뚤어진 사회의식이 걱정스럽다.

  그래도 위안은 있다, 희망은 살아 있다. 나의 뜻을 지지해 준 의로운 사람, 순수한 국민들도 많다. 더러는 엉뚱한 주장도 있지만 적어도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래, 이 순수한 젊은 미래가 있는 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들이 있기에 이 글을 마친 나는 충혈된 눈으로 다시 트위터를 하러 간다.



북한문제에 대한 내 신념이 바뀐 거냐고 묻는 분들에게

  한나라당 내에서도 나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사람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자극적인 발언이나 행위를 남과 북이 서로 하지 말자고 한결같이 주장해왔다.

  2004년 신의주 용천 폭파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야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었지만 여야 정치인 중 가장 먼저 도와주자고 제안했었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단체에 잠시 몸담기도 했고 평양도 다녀왔다. 평화 통일의 그날을 위해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신뢰 회복 후에 본격 협상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요시 정치인들 간의 대화 접촉도 주선할 용의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금강산 피살사건, 임진강 댐 무단방류에도 반성치 않더니 천안함을 가라앉히고 연평도까지 유린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 남북의 공존을 위해서도 이건 안된다. 용납할 것이 있고 못할 것이 있다. 나는 더 이상 관용할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이건 안 된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중국의 6자회담 제안에 대한 입장

  중국은 28일 오후 5시 30분경(한국 시간) 12월 초 6자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중국 외교부가 정례 기자회견 외에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국제사회의 비등하는 비판여론에 중국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의 제안에 청와대는 사실상 거절했다. 청와대의 반응은 당연하다.

  나는 원칙적으로 회담에 찬성한다.
  그러나 이번 연평도 사태를 유야무야 덮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회담이 돼서는 안 된다. 회담에 앞서 북한의 진정성 있는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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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함무라비법전 2010.11.27 16: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시원시원한 논조의 글입니다.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입니다. MB가 꼭 이 칼럼을 읽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2. 조선중앙통신 2010.11.27 19: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금 전 북한이 "민간인 사망 사실이라면 매우 유감"이라 첫 공식 표명했다고 속보 뜸. 의장님 과격한 발언에 겁먹었나?

  3. 불면의밤 2010.11.28 0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 며칠 편안한 잠을 이루었다면 당신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다.
    지금은 25시간 두 눈 부릅뜨고 깨어 있어야 할 시간!

  4. 받들어총 2010.11.29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단 한 뼘이라도 인공기가 흩날리는 일이 없도록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5. 찔러총 2010.11.30 0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차렷총, 세워총, 받들어총, 찔러총, 길게찔러총!
    지금은 가물가물한 군대 시절 총검술을
    막대기를 들고서라도 연습해 보아야겠다.

  6. 모개 2010.12.01 0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 서정우하사 그리고 문광욱이병....

    내게는 그들의 나이를 지나가는 딸들이 있습니다.
    사루비아 꽃잎처럼 달짝지근한 그 얇은 입술에 입맞춤하며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인생의 숨은 그림 찾기에 젊은 날을 다 보내고도 아깝지 않았고,
    시무룩한 얼굴로 집 나서던 아이 뒷모습이 눈에 밟히는 날엔 도종환시인의 시(詩), '흔들리며 피는 꽃'을 핸드폰에 보내놓고 아이가 봤을라나, 구겨진 맘은 좀 펴졌을라나.... 종일 조바심 냈던
    내 이름은, '엄마'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며 젖으며 피웠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며 피는 꽃' 全文)

    사람들은 흔들리고 젖으며 피어난 꽃봉오리만 품평하지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비바람에 꽃대가 부러지진 않을까, 연한 이파리에 생채기가 남진 않을까... 꽃이 피는 내내 함께 흔들리고 몽땅 젖으며 늘 서성이는 사람들입니다.

    '그 꽃같은 아이들'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조국이 부르면 천금 같은 자식도 내어놓아야 하는 엄마들에게 분단국의 현실이 비로소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이 산하(山河), 오지 곳곳에서 밤을 지새울 아이들과 함께 이 밤, 엄마들은 잠들지 못합니다

포격을 당한 연평도 / 출처: 연합뉴스


11월 23일,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기습적인 포격으로 2명의 해병대원과 2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였습니다.

유가족 위로하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 / 출처: 연합뉴스


25일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한 김형오 전 의장은 연평도 포격과 관련하여 트위터를 통해 트위터 이용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김 전 의장과 의견을 같이 하는 분도, 혹은 다른 의견을 내어 주시는 분도 계시지만 종종 인신공격에 가까운 험담을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인신공격은 자제해 주세요~

아래는 연평도 포격 이후 최근 3일간, 그 어느때보다도 열심히 트위터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김형오 전 의장의 트위터 화면을 캡쳐하여 편집한 일부입니다.



※ 관련기사 ☞  정치인 트위터에서도 `안보논쟁' 치열
※ 김형오 전 의장 트위터 바로가기 ☞ www.twitter.com/hyongo



해병대 故서정우 하사, 故문광욱 일병, 민간인 희생자 故김치백 님과 故배복철 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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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ldustns 2010.11.26 2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 우리의 통일을 바라지않으며 방해만 할건되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하고 국민은 뭉쳐서 중국 물건 않사고 사용하고 있는중국
    물건버리기라도 해야 하는것 아닐까
    중국이 감싸고 우리정부가 확실한 보복을 하지않으니 북은 날뛰고 중국은지들
    잇속챙기고 그리고 북에 쌀 주자고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목소리낸 사람들
    그들의 가족에게 북에서 포라도 발사해다면 어떤 심정일까
    아직도 북을 동족이라 생각하는가 북한 사람들도 우리를 동족이라부르는가
    그들은 아숴울때 그때도 우리를 동족이라말하지않는다
    정부는 왜 강력한보복을강구하지못하나 미덤을 못주니 연평도 주민들이
    터전을버리지 않는가 이스라엘처럼 우리국인 한명죽이면 북한군백명죽이는 그런자세면 이북이 연평도에 그럴수 있다는 생각도 못했었거다

  2. 전쟁불사 2010.11.27 15: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주가 고비입니다. 전쟁을 각오하고 긴장해야 합니다. 의장님 같은 분이 있어 든든합니다.


연평도에서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두 해병 영웅과
고귀한 생명을 잃은 희생자 분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그대들의 넋은 겨레의 혼불이 되어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악을 응징하지 못하면 악에 짓밟히고 맙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해야 합니다.

憂國과 愛國으로 이 난국을 헤쳐 나갑시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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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국충정 2010.11.25 1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명복을 빕니다.
    다시는 도발하지 못하도록 처절하게 응징해야 합니다.

  2. 김화자 2010.11.26 0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두 영웅의 명복을 빕니다.

  3. 김화자 2010.11.26 0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국을 지키다 산화한 두 영웅의 명복을 빕니다.

  4. 초전박살 2010.11.26 0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가 끓습니다, 피가 가슴 밖으로 분수처럼 솟구치려 합니다.
    내 오른손 둘째손가락은 늘 격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하는 ‘이스탄티노플’ 역사 기행 8
-전쟁의 전초 기지 루멜리 히사르

  그 전쟁은 선전포고도 없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언어나 문자를 통한 공식 선언만 생략되었을 뿐 그 자체가 무시무시한 선전포고였는지도 모릅니다.

▲ 루멜리 히사르 입구에서. 증명사진처럼 돼 버렸지만 나로선 두 번째 방문이다. 이런 차림으로 다니니 참 편하고 좋다.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돌들이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루며 성벽을 구성하고 있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문 양 옆에 매달린 갓등도 제법 운치가 있다. 옛날에는 여기에 수문장이 지켜 서 있었겠지?

  *1452년 4월 15일, 콘스탄티노플 사람들은 드디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음을 확인하고는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전해 겨울부터 보스포루스 해협의 유럽 쪽 가장 협소한 지역에서 크고 작은 돌들을 한 곳에 모으며 뭔가를 준비하던 오스만의 군사들이 술탄 메메드 2세의 지휘 아래 본격적으로 요새를 새로 짓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루멜리 히사르’(Rumeli Hisar, ‘유럽의 성’이란 뜻)가 그 주인공입니다.

  *강성했던 비잔틴 제국은 점점 쇠락하여 15세기 무렵에는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 일부에만 통치력이 미칠 정도로 왜소해져 있었다. 100만을 헤아리던 도성의 인구도 5만 명이 채 안 되게 줄어들어 있었다. 반면 오스만 투르크는 아나톨리아 반도를 장악하고 발칸 반도로 진출한 뒤 비잔틴의 남은 영토를 잠식해 나가 콘스탄티노플을 ‘육지 속의 섬’으로 만들어 버렸다.

▲ 바다 위 유람선에서 바라본 루멜리 히사르의 전경. 장엄하고도 웅장하다. 성벽 길이는 250여 미터, 높이는 15~33미터, 두께는 3~6.5미터에 이른다. 3개의 큰 성탑과 9개의 작은 탑을 공격과 수비에 모두 유리한 구조로 연결해 놓았다. 술탄 메메드 2세가 직접 설계 및 감독을 맡아 5000명에 이르는 인부와 병사들을 독려해가며 지었다고 한다. 술탄은 하릴 파샤, 자가노스 파샤, 사루자 파샤 등 세 명의 중신이 분담해 책임지고 공사하도록 지시함으로써 경쟁을 유발해 공사의 완성도와 진척 속도를 높였다. 성탑의 이름도 축성한 신하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콘스탄티노플은 그 당시 요즘으로 치면 자유무역지대 비슷한 기능을 하던 무역항으로서 제노아와 베니스 상인들을 비롯해 아라비아·아르메니아·유대인 등 오리엔트 지역의 여러 민족들이 해상 무역 경쟁을 벌이던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비잔틴 제국은 날로 강성해지는 오스만 투르크의 눈치를 살펴가며 명맥을 겨우 잇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알라신도 부수지 못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던 난공불락의 성벽만을 수호신처럼 의지한 채 말입니다. 다행히 오스만의 전임 술탄 무라드 2세는 통치 기간 중 1422년 콘스탄티노플 도성을 포위하려던 시도가 무위로 끝난 이후 경제적 이득만 취할 뿐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하지는 않았습니다.

▲ 루멜리 히사르의 늠름한 위용. 건너편 아시아 쪽 연안에는 아나돌루 히사르가 자리해 있다. 왼쪽으로 해협을 길게 가로지른 다리는 보스포루스 제2대교인 *파티 대교. 정복자(파티) 술탄 메메드 2세를 기념해 이름을 붙였다. 옛날 같았으면 바다와 가까운 주탑 위에서 대포알이 저 흰 배를 겨누고 날아갔으리라.

  *원래 이름은 파티 술탄 메메드 대교로 1988년 여름에 개통되었으며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현수교이다. 아시아와 유럽 대륙 양단에 세워진 교각 거리는 1090미터, 중앙 수면에서 다리까지의 높이는 64미터, 대교의 폭은 39미터로 왕복 8차선 도로이다. 아시아에서 유럽 쪽으로 갈 때는 차량 통행료가 무료이나 유럽에서 아시아 쪽으로 들어올 때는 통행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무라드 2세의 급사로 1451년, 그의 열아홉 살난 아들 메메드 2세가 *다시 술탄의 자리에 오르자  상황은 급격히 변했습니다. 이 야심만만한 젊은이는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시작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야망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루멜리 히사르는 말하자면 그 정복을 위한 상징 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이 말했듯이 이 도시는 ‘모든 세계 정복의 열쇠이자 세계의 지정학적 심장부’인 보스포루스 연안에 위치해 있었으니까요.

   *메메드 2세는 이례적으로 두 차례의 술탄 재위 기간을 갖고 있다. 1444~1446년, 1451~1481년. 전임 술탄인 무라드 2세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기 위해 1444년, 고작 열두 살인 아들 메메드 2세에게 정식으로 양위를 하고 은퇴했다. 하지만 내각과 군대가 거만하고 고집 센 소년 지도자에게 불만이 많은 데다가 유럽 국경 지대의 분란이 끊이지 않아 여론과 정치적 필요에 의해 다시 권좌에 복귀했다. 그리고는 5년 뒤 무라드 2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메메드 2세는 두 번째로 술탄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성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지어졌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완공일이 8월 31일이라니 겨우 넉 달 반 만에 그 거대하고 견고한 성을 구축한 셈입니다. 이로써 *보스포루스 해협은 루멜리 히사르와 **아나돌루 히사르, 두 개의 거센 손아귀에 의해 목을 움켜잡힌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술탄은 마주보고 있는 두 성에 군대와 대포를 배치함으로써 해협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거머쥐게 되었고 비잔틴 제국의 보급로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위한 강력한 교두보가 마련된 셈입니다.

  * 보스포루스는 터키어로 보그하즈. 동음이의어로서 ‘목구멍’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당시 투르크족들은 루멜리 히사르를 ‘보그하즈 케센’이란 별칭으로도 불렀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칼날’ 또는 ‘목구멍의 칼날’이란 살벌한 뜻이다.

  ** Anadolu Hisar, ‘아시아의 성’이란 뜻으로 메메드 2세의 조부인 술탄 바예지드가 1394년 보스포루스 해협의 아시아 쪽 연안에 지은 요새. 바예지드는 당시만 해도 비잔틴 황제의 승인 아래 이 성을 지었다. 하지만 메메드 2세는 그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루멜리 히사르를 신축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항의의 뜻으로 도성 안에 있던 600명가량의 투르크 인들을 붙잡아 감금했지만 곧 부질없는 짓임을 깨닫고는 모두 석방했다.

▲ 원근법과 건물 구도를 무시하고 그린 두 요새 그림. 위쪽 성채가 아나돌루 히사르, 아래쪽 성채는 루멜리 히사르이다. 각각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가장 폭이 좁은(650여 미터) 동쪽과 서쪽 연안에 마주보고 서 있다. 비슷한 크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루멜리 히사르의 규모가 훨씬 더 크고 높다.

▲ 루멜리 히사르에서 찍은 아나돌루 히사르의 원경(遠景). 아시아와 유럽이 이 좁은 해협(650미터~3.6킬로미터)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진다. 주탑 위로 빨간색 터키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두 성채의 크기가 그것을 지은 두 사람, 할아버지와 손자의 서로 다른 야망의 크기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 그 앞 바닷가에 네모와 세모의 조합으로 건축된 집들이 마치 레고로 지은 듯 예쁘고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술탄은 포고령을 내려 보스포루스 해협을 오가는 모든 선박으로 하여금 요새 앞에 멈추어 검문을 받도록 했습니다. 명령을 어기는 배는 침몰시킨다면서 위협적인 대포 3문을 바다와 가장 가깝게 지은 탑에 배치시켰습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나는 지금 루멜리 히사르의 스케치풍 그림과 요새의 구조도를 들여다보고 있다. 본문과 캡션에 이미 설명해 놓은 내용이지만 영문 표지판 내용이 궁금하다면 비록 내 몸으로 조금 가려지긴 했지만 영어 공부 삼아 한번 읽어 보기 바란다.

  11월 초 흑해에서 출항한 두 척의 베니스 선박이 정지 명령을 거부했다가 대포의 공격을 받았으나 용케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2주 후 똑같은 시도를 하던 세 번째 선박은 포탄에 맞아 침몰하고 선장과 선원들은 포로로 잡혀 참수를 당해야 했습니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삽시간에 공포의 바닷길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와 함께 술탄의 콘스탄티노플 공략 시점도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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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탑의 내부. 나선형 회전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게 되어 있다. 지하까지 합해 6층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입구로 들어가 오른쪽엔 위로 올라가는 층계가, 왼쪽엔 지하로 내려가는 층계가 배치되어 있다. 비잔틴 시대의 대리석이 사용되었다. 탑 안으로 비쳐든 햇살이 훌륭한 조명기사 역할을 해주어 멋진 예술 사진이 만들어졌다.

  우리 일행은 그 살벌했던 보스포루스 해협을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유람선을 타고 통과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와 주변 풍경, 그리고 요새는 난생 처음이라고 감탄을 거듭하면서…. 하지만 어느 순간 저 우뚝 솟은 루멜리 히사르 성 위에서 대포알이 우리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다는 상상을 하자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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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안쪽에 1452년 당시와 그 이후 실전에 사용되었던 오스만의 대포들을 진열해 놓았다. 테오도시우스의 3중 성벽을 공격했던 큰 대포는 보이지 않았다. 거포는 성벽 위에 올려놓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발포하면 그 반동으로 성벽이 훼손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 섹시한 대포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는 영화 제목이 갑자기 떠오르게 하는 묘한 모양의 대포알이 돌기둥 위에 놓여 있다. 가운데에 홈을 파 놓은 까닭은 아마도 밧줄에 묶어 성벽 위로 끌어올리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 바다를 향해 쏘던 대포 발사대 구멍. 지금은 무성하게 자란 나뭇잎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지만 나뭇잎 저편은 바다이다. 내부 벽이 화염의 흔적인 듯 그을음으로 까맣게 덮여 있다.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에서 흔히 보았던 것처럼 여기도 안쪽 구멍이 넓고 바깥쪽 구멍은 좁은 형태이다. 그러니까 방어와 공격 모두를 유리하게 만든 구조이다.

  실제로 우리는 루멜리 히사르의 가장 높은 성탑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올라가 보았습니다. 그 당시 병사들이 대포와 화살을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쏘았는지 실감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참 아슬아슬했습니다. 난간도 없는 가파른 계단을 걸어 올라갈 때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모험한 보람이 있었지요. 전망이 탁 트인 보스포루스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발 밑은 비록 아찔했지만 술탄이 왜 여기에 요새를 구축했는지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은 그 무시무시했던 루멜리 히사르가 박물관 겸 야외 공연장으로 탈바꿈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쟁과 평화는 동전의 양면이었습니다.

  그런 예는 많습니다. 이스탄티노플 이야기 5편에서 소개한 갈라타 타워도 오랜 기간 군사용 감시탑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나이트클럽과 레스토랑으로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 보스포루스 해협은 물살이 빠르고 거세다. 바다 표면에 울퉁불퉁 주름이 잡혀 있다. 대포알이 배를 스치기만 해도 전복될 것 같은 느낌이다. 큰 대포알이라면 배 근처에만 떨어져도 선박이 요동을 쳤을 것 같다. 중견 작가 한승원씨의 「그 바다, 끓며 넘치며」라는 해양 소설 제목이 문득 생각난다. 저 멀리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보스포루스 제1대교가 보인다.

  물론 그 반대인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전쟁이 나면 평화롭던 학교 교실은 포로수용소가 되고 운동장은 적들의 제식 훈련장이 되고 극장은 야전 병원이 되는 경우는 우리도 이미 60년 전에 겪지 않았습니까.

▲ 스탠드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루멜리 히사르는 요즘 종종 야외 공연장 및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특히 한여름 밤에는 터키의 톱스타들이 연주하는 음악과 함께 축제의 불꽃들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콘스탄티노플 전쟁의 전초 기지였으며 그 뒤 포로수용소 역할도 했던 이곳이 이제는 평화의 공원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역사는, 그리고 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서고금의 전쟁에 관한 격언 중 음미할 만한 몇 개를 소개합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전쟁 이야기와도 맥락이 닿는 금언들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라.”-로마 격언
  “국력은 방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침략에 있다.”-아돌프 히틀러
  “항상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야말로 전쟁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맨토르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전쟁은 있을 것이다.”-알버트 아인슈타인
  “전쟁의 세계에는 두 마디 단어밖에 없다. 이기느냐, 지느냐.”-윈스턴 처칠
  “휴전은 다음 전쟁의 서곡에 지나지 않는다.”-이승만
  “전쟁은 정치와 외교의 연장이다.”-칼 폰 클라우제비츠


▲ 루멜리 히사르의 야경. 군사 요새라기보다는 동화의 나라 같은 느낌이다. 왠지 오늘 밤 저 성 안에서는 환상적인 공연과 함께 연인들의 로맨스가 무르익고 있을 것만 같다. 아래사진 왼쪽으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 주는 보스포루스 제1대교가 시시각각으로 빛깔을 달리 하며 ‘이스탄티노플’의 밤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많은 격언들이 평화를 지키는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준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방위력, 자주국방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주변 국가, 이해 당사국들과의 신뢰 및 우호 협력 관계 역시 너무나 중요함을 이어지는 다음 편(9편)에서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 석양이 보스포루스를 곱게 물들였다. 이스탄티노플의 부유층이 자가용처럼 이용하는 요트로 보이는 이 배는 해 저무는 바다를 미끄러져 보금자리를 찾아 가고 있다. 그림엽서 같은 풍경이다. 하지만 이 바다, 1452년과 1453년, 그땐 결코 이렇게 평화롭지 않았다. 이스탄티노플 이야기 9편에서는 종군 기자가 된 심정으로 그 당시 격렬했던 해상 전투의 현장으로 배를 몰고 가 볼 생각이다.

 

▲지도로 보는 탐사 경로
 이 지도는 15세기 후반 콘스탄티노플의 모습을 담고 있다. 현대 지도를 쓸까 하다가 비록 축적과 원근감은 애매하지만 바다 모양이 뚜렷하게 강조되어 있어 등장시켜 보았다. 왼쪽 육지 성벽 옆 해자 모양도 바다를 연상시킬 정도로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 아래는 마르마라 바다, 콘스탄티노플과 갈라타 사이를 흐르는 건 골든혼이다. 오른쪽 위의 해협이 바로 보스포루스이다. 보스포루스 왼쪽 연안은 유럽, 오른쪽 연안은 아시아다. 따라서 루멜리 히사르(왼쪽 동그라미)와 아나돌루 히사르(오른쪽 동그라미)는 대략 저 위치쯤에 있었을 것이다.

※ "이스탄티노플"에 대해 포스팅한 모든 내용은 지속적으로 수정/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용 가운데 오류나 다르게 알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지적 바랍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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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와바다 2010.10.06 08: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뷰티풀!
    이스탄티노플, 보면 볼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반할 수밖에 없는 도시입니다.

  2. 조나단 2010.10.06 09: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탄티노플
    그 망명하고픈 도시!

  3. 술취한 술탄 2010.10.06 11: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봉박두 기다리던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로 이야기가 흘러가는군요.
    본문에서 말했듯이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동전의 양면처럼 승리에 취한 오스만군의 모습 불안과 공포에 떨었을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네요.
    다음편 부터는 본격적인 해상전투가 그려질 예정이라니 더욱더 이스탄티노플에 빠져들것만 같습니다.

  4. BlogIcon 너서미 2010.10.06 11: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길고 잘 기획된 시리즈물을 블로그로 볼 수 있다는 건
    독자들에겐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보통 이런 것들은 책 외에는 볼 수 없는데 말이죠.
    더구나 블로그에서 깊은 조사에 의한 컨텐츠가 드문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5. BlogIcon 술에물탄 2010.10.06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벌써 8편이 올라왔군요.
    야경도 참 아름답고, 아시아와 유럽을 구분짓는 장소라는 점이 신비(?)스럽네요.
    그리고 그곳의 역사를 품고 있는 오래된 성벽들..
    참 매력적이네요.

    잘보고 갑니다~

  6. 쏘시오 2010.10.06 15: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탄에게 목젖같은 저 콘스탄티노플성은 '목엣 가시'나 다름없을 것이다. 반드시 빼놓아야 음식을 마음껏 삼킬 수 있는...
    한 때 오리엔트를 지배하던 비잔틴의 말년이 너무나 초라하다. 천년제국이 저렇게
    옹색하게 줄어들 때가지 역대 황제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나...
    비잔틴 최후의 날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7. 히데요시 2010.10.06 16: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순신은 적장이나,존경할만 하오. 후세 누군가는 <칼의 노래>라는 소설로 이순신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켰지만, 뭐니뭐니해도 이순신의 뛰어남은 그의 지혜(기획력)와 추진력일 것이오. 8편으로 이어지는 이스탄불 시리즈에서 상세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어서 좋소이다. but, 비유 또는 알레고리, 즉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과의 연결 또는 21세기 현재와의 구체적 연관성 등이 나타나있다면 가독성이 엄청 높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오. <당시의 터키-임진왜란 당시 조선- 21세기 한국>의 멋들어진 연결고리를 찾을 수만 있다면 말이외다. 잘 읽고가오."

  8. 두륜 2010.10.06 16: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452년 술탄 메머드2세가 콘스탄티노플 공략을 위해 단 4개월만에 지었다는 "루멜리 히사르 요새" 그 웅장함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네요...
    치열했던 전쟁의 전초기지로써 아픈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동화같은 "이스탄티노플"의 아름다운 야경으로 자리잡아 우리에게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게 해 주니 참 아이러니 하네요...
    "치열한 전쟁속의 종군기자"라....^^
    9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9. 코렐리 엄 2010.10.06 19: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 단 두차례의 방문에 이런 작품이 나오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또 주말에 즉시 현장사진 장소대로 방문해 의장님 체취를 느껴 볼까 합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끊임없이 열정을 다해 생생한 역사재현 및 어디에도 없었던 지식전수해 주심에 감동입니다.
    참, 지적해 달라 하신부분,보스포로스 제2교는 왕복 8차선입니다. 제1교는 6차선이고요,또 석양의 보스포로스 사진에 등장한 어선은 세일용 34피트 요트로 보입니다.
    엄청난 감동으로 연일 펼쳐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지식과 경륜과 부드럽고 날카롭고 부담없는 필체에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터키에서 인사올립니다. 꾸벅.

    • 호야 2010.10.07 1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현지 사정에 밝은 엄 전무가 아니라면 발견하기 힘든 두 가지 오류, 곧바로 수정해 놓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멀리서 마음으로 전해져 오는 따뜻한 성원에 힘이 불끈 솟는군요.
      새치를 뽑듯이, 앞으로도 팩트에 어긋나는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 지적해 주기 바랍니다.

  10. 대물 2010.10.07 0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섹시한 대포알? 그 사진과 캡션 읽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의장님은 역시 유머를 아시는 분입니다.

  11. 전자돌이 2010.10.07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평균 일주일에 한번꼴로 올라오는 이스탄티노플 시리즈를 접하면서
    대학생때 교양 수업 듣던 기분이 나더라구요.
    한 열대여섯편 정도 쓰시면 정말 한학기 강의분량이네요 ㅋㅋ
    호야교수님 시험문제는 어떻게 내실 계획이신가요? ^^

    • 팽돌이 2010.10.09 11: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국감으로 외통위 소속인 호야 교수님이 해외 공관 국정감사를 나가신 걸로 압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휴강?
      중간고사 대비해 열심히 복습이나 해야겠습니다.

    • 아나돌이 2010.10.09 11: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긴급 입수! 이스탄티노플 중간고사 주관식 예상 문제!!!
      "콘스탄티노플 정복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던
      루멜리 히사르 맞은편
      아시아 쪽 보스포루스 연안에 있던 요새 이름은?"
      제 아이디(아나돌이)에 힌트가 있습니다.

    • 사과나무 2010.10.14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먼저 답해도 되나요?ㅋㅋ
      정답은 '아나돌루 히사르'입니다!

  12. 거석이 2010.10.26 1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미 거시기 민망한 사진이 있구먼유
    워째 의장님 이미지랑 영..

    • 거시기 2010.10.27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거시기란 무엇이냐.
      크게(巨) 보이는(示) 그릇(器)이란 뜻입니다.
      대물(大物)로 해석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이런 점잖은 유머는 오히려
      블로그의 품격을 높인다고 생각합니다.




[앵커멘트]

입법전쟁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충돌을 벌인 여야가 모처럼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직권상정을 거부하고 대화와 협상을 강하게 요구해온
김형오 국회의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야가 소위 핵심법안 처리를 다음 달 임시국회로 미뤄놨을 뿐이어서
과연 김형오 국회의장이 다음달에는 어떤 선택과 판단을 하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클로즈업 오늘은 김형오 국회의장 초대했습니다.





[질문1]

요즘 정치권에는 '김형오 변수'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습니다 .

그리고 '현 정국은 김형오 의장의 의사봉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지난 임시국회의 한 복판에 김의장께서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런만큼 마음 고생이 많았지요?




[질문2]

그 가운데서도 같은 한나라당에서도 비난을 받고 일부 신문에서는 모욕적으로 느낄만큼 비난의 수위를 높였는데 견디기 힘들지 않았습니까?




[질문3]

(얼마전 인터뷰 기사를 봤더니)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이야기 할때 서러웠다고 하셨는데 뭘 가지고 한 이야기입니까?




[질문4]

친정이라 할 수 있는 한나라당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 방법론과 소통의 차이를 강조했습니다 , 무슨 뜻으로 한 것인가요?




[질문5]

김형오 국회의장을 두고 소신있는 지도자란 평가가 있는 반면 너무 야당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런 평가에 동의를 하십니까?




[질문6]

2월 국회에서도 같은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국민 뜻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소신을 피력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뜻이라는게 정확히 숫자로 파악하기가 어려운 만큼 같은 상황이 생기면 역시 직권상정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게 아니냐는 평가가 있습니다.

2월에 또 여당으로부터 방송법등 쟁점법안의 직권상정 요구를 받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질문7]

지난 임시국회로 다시 한번 돌아가보겠습니다.

한나라당의 직권상정 요구를 왜 거부했습니까?




[질문8]

의장 임기가 끝나면 친정인 한나라당으로 돌아갈 텐데 한나라당이나 청와대 뜻을 너무 거스른 것 아닙니까?




[질문9]

직권상정과 관련해서 지난 10월초로 한번 올라가보겠습니다.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던 문국현 대표와 민주당 김재윤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문제는 끝내 제동을 걸었고 추경 예산 부수법안은 직권상정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숫적우위에 자만하지 말라며 한나라당에 쓴소리를 했습니다 .

직권상정에 대해 갖고 있는 나름의 원칙이 있습니까?




[질문10]

하지만 지난 국회상황을 보면 마치 무법천지와도 같은 폭력상황이 있었단 말이지요.

상임위와 본회의장이 점거당하고 그래서 소수의 불법적인 폭력상황이 다수의 권리행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말았는데 이런 식이라면 민주당이 반대하는 법안은 처리가 불가능한 것 아닌가요?




[질문11]

김 의장께서는 이번 국회상황과 관련해서 "폭력에 대해서는 어떤 타협이 없다"는 단호한 원칙을 여러번 천명했습니다.

예전에 보면 이렇게 단호하게 말을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 된 일이 많았습니다.

정말 원칙대로 밀고갈 자신이 있는 것입니까?




[질문12]

질서유지권 발동 가지고도 말이 많았습니다.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고서도 국회본의장에서 농성중인 의원들을 물리적으로 해산시키지 않았단 말입니다.

또 뻔히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 왜 그런 조치에 들어갔느냐 하는 것입니다.




[질문13]

문제는 앞으로 재발방지의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야 모두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도적 개선책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습니까?




[질문14]

국회의장 직속으로 만들어진 제도개선위 개선안과 지금 여야가 협의해야한다고 지적한 것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까?




[질문15]

국회의장 직속으로 제도개선위가 만들어졌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역시 징계를 최종 결정하는 윤리특위에 외부인사는 한사람도 없다는 점입니다.

제식구 감싸기로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이번에도 빠졌단 말이지요?




[질문16]

지난 연말에 공주대학교에서 명예교육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강연내용을 봤더니 21세기를 이끌어갈 힘은 관용의 정치, 관용의 리더십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 정치가 아직도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질문17]

김 의장께서는 취임당시 18대 국회가 반드시 해야할 일 2가지를 지적했습니다.

헌법을 개정하는 일이고 또 한가지는 국회운영제도를 개선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먼저 헌법개정은 18대 국회 전반기에 해야한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 소신에 변함이 없습니까?




[질문18]

지난 5월 촛불집회와 관련해서는 여권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분으로서 이례적으로 먼저 여권내 소통의 문제를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국민과의 소통, 정부내의 소통이 잘 안된다며 초심으로 돌아가야한다고 지적했는데 지금은 소통이 잘 되고 있다고 봅니까?

아니면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고 봅니까?




[질문19]

"직권상정을 회피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김의장이 대권에 뜻이 있고 이를위해 차기엔 당 대표를 노린 복심때문에 야권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사실 그런 것입니까?




[질문20]

국회 회기중에 또 여러의원들이 외국에 나가 골프를 쳤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물론 휴일을 이용했고 사적인 비용으로 갔다온것을 두고 너무 심한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않은 상황이라 더 그럴텐데 국회의장께서도 중동지역 방문을 결정하면서 고심이 컸겠어요?




[질문21]

5선에 당내에서도 알려진 합리주의자, 하지만 한나라당 보수진영으로부터는 너무 개혁적이지 않느냐 이런 평가도 받고 있다는데 동의합니까?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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