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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의 위기가 더욱 깊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설 연휴를 앞두고 노사 모두에게 극한 대치보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기를 권유했습니다. (쇳소리, 용접소리 울리는 한진중공업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더 악화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노조의 과격 시위를 두둔하거나, 영하의 추위에 떨고 있는 노동자들과 사원 아파트에서 쫓겨나는 가족들을 동정해 감상적 차원의 문제 제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진실은 무엇인가? 과연 무엇이 정의인가?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인가를 함께 모색하고 밝혀 보자는 것입니다. 

사측이 구조조정의 이유로 내세우는 물량 미확보, 영도조선소의 시설 경쟁력 저하의 주된 원인은 경영 부실이고, 그 책임은 경영진에게 있습니다. 경영진의 핵심이 사주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사주와 경영진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근로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해서야 되겠습니까.

한진중공업 채길용 지회장, 금속노조 부양지부 문철상 지부장

한진중공업 채길용 지회장, 금속노조 부양지부 문철상 지부장이 지난달 31일 영도 조선소 단결의 광장에서 열린 전 조합원 보고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

진실로 묻겠습니다.

사주측은 경영개선과 물량확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사주측은 경영 부실 문제 해결을 위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였습니까? 파트너인 근로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쓴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수주물량을 단 한 건도 확보하지 못 한 건지 일부러 안하는 건지, 과연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 걸까요?

저는 친기업적 시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에 미친 대기업의 역할을 높게 평가해 왔습니다. 그래서 기업에 대한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은 옳지 않다는 신념으로 양측의 원만한 합의를 기대했습니다. 제 지역구의 문제여서 더욱 가슴 아프고 안타까웠지만 개입을 극도로 자제해 온 것도 그래서입니다.

한진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호황을 누리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한진중공업 조선부문 구조조정에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 2003년 사측의 구조조정에 맞서 김주익(전 지회장) 열사가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 85호 크레인.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출처: 민중의 소리)

그러나 대화 시도조차 하지 않는 한진중공업 사주측의 무성의한 태도에 대해 부산시민과 국민은 큰 실망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이라는 한 기업 때문에 우리나라 대기업 전체의 도덕성마저 심각하게 매도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양자 합의의 기회는 이제 놓친 것 같습니다. 정부도 더 이상 노사 당사자만의 문제로 방관하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검찰이 직접 나서서 한진중공업의 진실을 밝힐 때입니다. 사주와 경영진에게 책임이 있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만약 정부 차원의 조사가 미진하다면 그 때는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진실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한진중공업은 부산시민과 대한민국이 키운 기업입니다. 사주만의 회사도, 노동자만의 회사도 아닌 우리 모두의 기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합니다.

※최근 한진중공업은 노조 측 관계자 192명을 고소하고, 사원아파트까지 비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상여금 지급도 미루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문제해결이 될 수 없습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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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깜공 2011.03.04 19: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만, 부산영도구민으로선 늦은감이 있네여?
    구 민심을 아실테죠? 의원님~ 지발 선언에 그치시질 말기를....
    오늘 환노위 여당의원들은 퇴장?
    한진중~ 조선공사~ 진실은 밝혀져야합니다`
    수빅조선소 수주넘치고~ 본사는 제로?
    삼척동자라도...
    분명 꿍꿍이가 있겠죠?
    걍 단순한 놀리로 봐도~

  3. 불꽃레드 2011.03.04 2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씨 당신이 현실에 대해서 얼마나 아신다고 그런말씀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기가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솔직히 2003년 이후 노동조합 힘이 강해진 이후 현장에서 직영 노동자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한번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동시에 여러 사회책임을 가지고 있겠지만, 회사의 존립이 어려운 상태에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수빅물량을 가지고 온다고 하더라도, 직영 노동자들 정신상태에서 과연 제대로된 배를 건조할 수 있을지 의문시됩니다. 입사 후 직영 노동자님들을 쭈욱 봐왔습니다. 아침 8시에 조회하고 어슬렁 어슬렁 8시 30분 경 현장에 도착해서 30분 있다가 9시경에 현장 컨테이너에 휴식하러 오십니다. 9시 경 부터 10시 40분까지 휴식을 취하시다가 10시 40분 부터 한 40분 일하시다가 식사하시러 가십니다.
    식당문 열기도 전에 줄을 쫘아악 하고 서십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셨길래... 그렇게 배가 고프셨을까요. 점심식사 후 1시에 어슬렁 어슬렁 현장에 가십니다. 오후도 오전과 별다를 바 없습니다. 5시 경부터 퇴근 준비를 하십니다. 정상근무는 하루 9시간 즉 08:00 ~ 18:00(점심시간 1시간 제외) 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에 일하시는 시간이 과연...
    이런 상황에서 노동생산성을 논할 수 있는가요? 물론 그동안 열심히 일하셨던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동자님들과 노동계약을 한 사주 입장에서 과연 이 회사를 계속 하고 싶을까요? 입장을 바꿔서 한번 생각해보세요. 수주물량이 확보된다손 치더라도 현재 이 엿같은 회사 분위기때문에 일할만한 사람은 다 떠나고 있습니다. 정상화 되더라도 많이 어려울 겁니다. 현재 상태에서는 공멸입니다. 제발좀 정신 좀 차리세요 들!!!! 그리고 참 장하시네요. 현직 국회의원님!! 불난집에 부채질하시고... 진실이라. 진실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 밝혀질 겁니다.

  4. 먹고살기 2011.03.08 0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회사가 안팎으로 시끄러우니 자연스레 회사 관련 뉴스를 찾아보게 됩니다.
    그러다 얼마 전 ‘진짜인가?’ 하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다름 아니라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의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영도에서 5선의 신망 두터운 국회의원님이자, 전 국회의장까지 지내신 김형오 국회의원님의 기자회견 장면은 그야말로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제가 알기로 ‘자율적 노사관계’를 원칙으로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으시기로 유명하신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께서 이런 발언을 하실 정도면 한진중공업이 길을 잘못 가도 한참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밝히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희 아버지는 30 여년간 한진에서 근무하시면서 최고의 배를 당신이 만들고계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셨던 분입니다. 불꽃레드님이 하는 말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희 아버지들의 노력을 비하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정당하게 법 테두리 안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데 불법적으로 해고를 통보하고 오갈 데 없는 사원아파트 가족들에게 일방적으로 퇴거명령서를 통보하고 1년 넘게 월급을 못 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이젠 상여금도 지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1년을 월급을 못 받으니 그 고통을 상상이나 하실 수 있겠습니까?

    노동자들은 폭도가 아닙니다. 세금 꼬박꼬박 잘 내고 ‘조선기술 대한민국이 세계 1등’이라는 뉴스 하나만으로도 뿌듯하게 작업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무슨 범죄자 인 냥 그 모두를 고소고발하고 경찰서에 불려 다니게 만들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무슨 큰 죄를 지었습니까?
    회사에서 자르면 그냥 아무 말 없이 나가야 됩니까?
    정녕, 평생을 바친 삶의 터전을 망해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영도조선소는 누구의 것이 아닙니다. 부산시민의 것이고 영도 주민들의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영도조선소를 살려내도록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께서 지지 응원해 주십시오.
    저희 아버지께 힘을 주십시오.

  5. 째째하다 2011.03.09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에 한진에 근무했었던 터라 한진사태에 관심이 많이갔엇는데...요즘 그 회사가하는거 보면 진짜가관이군요. 하긴...협력업체 일년에 딱 두번주는 십여만원 정도되는 상여금 떼먹을 때 부터 조짐이 보인거였네요.
    솔직히 지금까지 이젠 내가 몸 담은 회사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안타까워만하고 있었는데, 의원님의 라디오 인터뷰도 들으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겟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원님을 응원하겠습니다. 한진사태에 꼭 많은 도움을 주십시오.

  6. 신부...아직은... 2011.03.09 08: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알콩달콩 신혼살림을 차렸을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비신랑의 정리해고로 인해서 결혼을 잠시 미루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하면 이젠 화도 안나고 그저 답답할 따름입니다.
    제 나이 이젠 서른도 넘어서 버렸습니다. 빨리 결혼 해서 아기도 많이 낳아서 애국도하고 싶습니다!
    의원님! 이번 일이 빨리 해결되어서 우리 신랑 될 사람이 어깨 당당하게 펴고 결혼 할 수 있도록 힘을 써주십시오.
    저도 의원님 열열히 지지하겠습니다!!!!

  7. 노동자 2011.03.09 08: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성명서를 사주와 경영진이 꼭 봣으면합니다 그리고 김형오전국회의장님께서도 함번의 발언으로만 그치지않으시고 끝까지 귀를 기울여주셨으면합니다

  8. 나도나도 2011.03.09 1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김형오 의원님 라디오 방송을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햇던 것보다 한진중공업이 심각하고, 이건 누가 봐도 회사의 나쁜 의도가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의원님 처럼 노조의 강성은 조금 변화되지 않아야 하는가란 생각을 하고, 지나친 파업은 좋지 않게 생각하지만, 지금은 회사가 근로자들을 강성으로 만들고 있는것 같습니다.
    제가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라도 할 수있는 모든걸 동원해서 억울함을 분출할 거 같습니다.
    의원님 말씀대로 이건 한 회사의 일일 뿐이아니라, 부산시민 전체의 문제입니다.
    의원님께서 한 번 말을 밷은 이상 책임을 지고 해결책을 촉구하실거라 생각합니다.
    안그래도 안좋은 경제 상황에 이런 일은 빨리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한진중공업 직원분들 모두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9. 힘내자 2011.03.09 1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주와 경영진이 이 글을 본다고 뭔가를 느끼고 바뀔 인간들이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는 오지 않았겠죠.
    모두 힘을 합해서 김형오 전 위원장이 이 문제를 국회로 끌고 가게 힘을 줍시다.

  10. 마누라 2011.03.09 1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때껏 법 한번 어긴적 없고 세금 밀린적도 없는 내 남편에게 고소고발에 경찰소환이라니!!! 그저 웃음만 나올뿐입니다.
    우리 신랑이 무엇을 잘 못했기에 열심히 일한 회사에서 이런 대우를 받는거죠?
    의원님, 진짜 진상을 밝혀서 무엇이 잘못 된것인지....왜 이렇게 된것인지 꼭 밝혀주십시오.
    졸지에 우리 남편을 범죄자로 만든 이 상황에 어디에 분통을 터트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1. 옳아요 2011.03.09 1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경영학과 졸업한 사람이고, 쌍용차에서처럼 노동조합의 폐해도 많이 보았지만 이번 건은 정말 사주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때입니다.
    다른 국내 조선소들은 위기설 속에서도 효율성있게 꾸려가고 있습니다. 어찌 한진중공업만 이 모양입니까.
    의장님이시에 어설픈 노동자 편들기라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는 사주의 도덕적 해이를 깨뜨리기 위해 힘을 실어 주셔야 합니다. 정치라는 것이 경제만큼이나 빠르고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지만, 결국은 올바른 길을 맨 뒤에서 마지막으로라도 지지하는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신있게 옳은 길을 가시는 의장님을 존경하고 지지합니다.

  12. NiceGuy 2011.03.09 12: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진중공업... 예전에는 부산의 청년들이 취직하면 선망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기업... 왜?? 대한민국 사람들의 아직 대기업이라면 무조건 선호하는 정서가 깔려있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한진중공업은 부산 시민 모두가 악덕기업,언제 망할지 모르는 기업,미래가 없는 기업 이라고 단 2년만에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시민들의 의식자체가 바뀌게 된것은 노동자의 책임도 아니고 전적으로 경영자들의 경영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경영한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사회적 책무를 지키지 않고 거짓으로 일관하며 어떤회사는 직원들을 가족과 같이 여긴다지만 여기는 단지 기계의 소모품과 같이 직원들을 관리하는데 어느 누가 선호하는 기업이 겠습니까? 단지 한진중공업이 서비스업계도 아니고 당연히 내수를 주로하는 생산기업도 아니기때문에 시민들의 원망은 의식도 하지않은채 직원들은 소모품 취급하고 경영진의 배만 채우기위한경영을 하여도 수주에는 아무 상관없기 때문에 경영자를 제외한 모두를 모른채하고 경영하는데 정부에서 그리고 국회에서 모른척한다면 그정부 그국회는 정말이지 있는사람들을 위한 정부와 국회가 아닌가... 대다수의 국민이 어찌되든 무시한채!!!
    제가 경영학 공부할때 경영 법칙중 이런게 있었습니다. 매출의 상위10퍼센트의 고객이 나머지 90퍼센트 고객보다 매출액이 일반적으로 높다 그래서 상위사람(단골)들에게 헤택을 주며 잡아야한다는 법칙!! 그렇지만 국가는 기업이 아니지 않습니까?? 국민은 1인 1주권이며 모두를 위한정치 그것이 힘들다면 다수를 위한 정치를 해야되지않겠습니까?? 김형오의원님 이글을 보신다면 여야를 떠나서 친기업주의를 떠나서 전국회의장까지하신 경력과 책임감으로 다수를 위한 그러한 정치를 해주십시요!! 그것이 진정한 올바른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진중공업사태 진상이 밝혀질 수 있게 노력해주십시요!!!

  13. BlogIcon 투쟁 2011.03.09 13: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산 영도의 국회의원 으로서 정말 지역 민심 정확하게 경청하시고 국민을 위한 아니 영도 주민을 위한 정치를 하신다면 한진중공업 현사태를 관망하고만 계시겠습니까 ...민심이 천심이라 했습니다 왜 이렇게 지역 주민들의 아품을 헤아려 주질않으시는지요 더이상 시간이 없다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영도 경제를 살리고 부산경제 생각 하신다면 좀더 빨리 한진중공업의 불법정리 해고를 국회환경노동위원회에서 근기법24조1항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타당한지 조사해주십시요 회사 정말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만행들을 더이상 자행하지못하도록 그리고 힘없고 배운것없다고 노동자들 피팍한는 행위 할수없게 국회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얼마전 의원님께서 소신있는 기자회견 내용을 접했습나다 고맙고 존경합니다 꽃샘추위에 건강하시길바랍나다

  14. 오길평 2011.03.09 13: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진중공업 불법정리해고와 구조조정사태에 대해 노동조합은 2년간 김형오국회의원님께 호소를 하였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근래에 와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진경영주에게 잘못된 경영을 하고 있다고 질책을 하고 국회차원에서 진상조사를 해야한다는 말씀 고맙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나라당과 청와대 및 이명박대통령께 호소를 하여 조남호회장이 영도조선소를 정상화와 정리해고철회를 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십시요.
    지금은 발언이 아닌 실천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해고는 한진노동자들을 살인하는 행위입니다.

  15. 길라임 2011.03.09 1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르다. 라는 말이 있듯이 김형오 국회의원님의 말씀이 메시지로만 끝나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진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영도지역주민의 바람과 염원을 저버리지 마시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꼭 해결될 수 있도록 김형오 국회의원님께서 힘을 써 주십시오.

  16. 나모 2011.03.09 14: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식으로 정리해고가 가능하다면 모든 대기업이 사람 마음대로 다 자르겠네? 어차피 비정규직 900만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먹고살기 힘든 이 공정사회에, 88만 원 세대들이 무엇을 해야 먹고 사는게 가능해질까? 뭐, 대기업 회장들이 한달에 88만원으로 살 수 있다면 우리도 살 수 있겠지만...

  17. 길손 2011.03.09 14: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 국회의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경영에 의한 잘못을 노동자에게만 전가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한진중공업에 의한 소비경제가 영도에서는 활발한 편이었는데 요즘은 거의 얼어 붙었습니다. 영도경제를 다시 일으키려면 무엇보다 한진중공업이 정상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형오 국회의원님께서 한진중공업이 정상화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모든 부산 시민의 바람입니다.

  18. 무소유 2011.03.09 15: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 국회의원님 옳은 말씀입니다. 단순히 노사관계를 넘어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한진중공업 문제를 방치하셔서는 안됩니다. 돈 몇푼 더주고 덜주고의 문제가 아니라 해고의 문제입니다. 해고는 살인이라 했습니다.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14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단순히 목숨을 잃은 게 아니라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해고가 왜 살인과 같은 맥락인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쌍용차와 같은 운명이 예고된 한진중공업입니다. 한나라당 내 다른 의원님들도 설득 해 주시고 환노위에서 밝혔듯 진상조사단 구성에 힘을 실어 주십시오. 국회의장까지 지내신 경험과 강직한 신념이 합해진다면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영도에서 여러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만큼 서민들을 잘 보듬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번에도 노동자들의 눈물을 외면하지 마시고 힘이 되어 주십시오. 김형오 국회의원님의 좋은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19. Surya 2011.03.09 17: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진중공업에서 일하시는 모든 근로자분들이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길 간잘히 바랍니다...

  20. 김흥순 2011.03.09 17: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오랜시간 저희를 방치해 두셨습니다..이제 다시 예전처럼 모든 근로자가 웃으며 쇳소리나는 한진중공업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21. 영도구민 2011.03.15 1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하차도 안되고 한진중공업도 안되면 선거가 안되니 이제 나서는 건가요? 급하긴 급했나보군요.지하자도는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실종된 해군 장병들이 버텨주고 또한 구조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해군 초계함 침몰의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정확한 침몰 원인이 밝혀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뢰 폭발에 의한 침몰 가능성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그것 역시 단언하기에는 이른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며칠 언론의 보도에 오르내리고 있는 기뢰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간단히 조사를 해봤습니다.

(기뢰탐색함,무인기뢰탐색기에 관한 소식도 들려오는데, 부디 한 명이라도 더 구조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기뢰에 의해 피해를 입는 모습




★ 기뢰의 어원

기뢰는 '기계수뢰'에서 비롯된 말이며, 폭약을 용기 속에 넣어 해상에서 폭발시키는 무기입니다.



헬기에 의한 기뢰 추적




★ 기뢰의 전략적 가치

현대 해상전은 각종 미사일, 잠수함, 항공모함 등이 등장하지만 고비용이라는 점 때문에 제대로 갖추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이죠. 이에 비해 기뢰는 가장 싼 가격으로 해상전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더구나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다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기뢰 기술을 이전하고 있어서 해군 전력이 약한 나라에게는 저렴한 전략무기로서 가치를 갖고 있는 셈이죠.
 

■ 과거 이란-이라크전 당시 FFG-58이란 군함의 피해 사례
- 구형 기뢰 가격 : 약 1,500 달러
- 군함 수리 비용 : 약 5,200만 달러

■ 걸프전 미국 이지즈 순양함의 피해 사례
- 이라크 기뢰 가격 : 약 3,000 달러
- 순양함 수리 비용 : 약 1,500만 달러



걸프전, 이라크전에서 회수된 기뢰들


 

★ 기뢰의 종류
■ 부설 위치에 따른 종류
▷ 부유 기뢰 : 물 위에 떠 다니면서 적함정에 부딪힐 때 충격 혹은 전기-화학 작용에 의해 폭발
▷ 계류 기뢰 : 원하는 곳에 머물지 않는 기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거운 추를 달아서 폭발
▷ 매장 기뢰 : 해저 바닥에 침전물이나 모래 등으로 묻음
▷ 해저 기뢰 : 일정한 수심에서 감응 센서를 이용하여 폭발
■ 점화 방식에 따른 종류
▷ 조종기뢰 : 유선을 깔아서 부설된 기뢰를 함정이나 육지에서 기폭시킴
▷ 접촉기뢰 : 표적함정과 직접 부딪혀야만 발화되며 폭발
▷ 감응기뢰 : 함정 주변에서 발생하는 자기, 음향, 압력 등의 물리량을 감지하여 폭발
- 자기 감응 기뢰 : 모든 함선은 일정한 자장을 갖고 있는데, 이 움직임을 감지하여 폭발
- 음향 감응 기뢰 : 함정이 움직일 때 수반되는 각종 소음을 감지하여 폭발
- 압력 감응 기뢰 : 선체의 움직임에의한 미세한 수압을 감지하여 폭발
▷ 지능형 기뢰 : 원하는 시기에 폭발하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발을 멈추는 것이 가능
특정 선박을 골라서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



구한말 신식무기 공장이었던 번사창



 

★ 기뢰의 역사

(기뢰 부설 - 기뢰를 설치하는 것, 기뢰 소해 - 기뢰를 해체하는 것)

최초로 알려진 기뢰는 1776년 미국발명가 데이비드 부쉬넬에 의해 발명되었는데, 당시에는 '어뢰'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당시 부쉬넬의 '기뢰'는 부유체에 달려있는 방수처리된 맥주통에 장약을 넣어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기뢰는 1777년에 영국 함대를 파괴하기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사용되었으나 적합한 기폭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800년대에 들어서 로버트 펄튼과 사무엘 콜트가 부쉬넬의 기뢰를 개량한 것이 미국남북전쟁에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남부군의 함포공격으로 침몰한 북부군 선박은 9척인데 비해 기뢰를 통해서 소실된 북부군 선박은 27척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기뢰는 러일전쟁에서도 전과를 올렸습니다. 러시아 측은 '페트로파블로브스크', '포베다'라는 두 척의 전함이, 일본 측은 '야시마', '하추세'라는 함정이 각각 기뢰에 의해 피격되었습니다.


■ 1~2차 세계대전

1차세계대전에 접어들면서 기뢰는 한 단계 진일보 하게 됩니다. 접속식 기뢰에서 벗어나서 자기감응기뢰가 개발되었고, 그에 맞게 기뢰 탐색-소해 기술이 개발되고, 그에 맞는 기뢰 부설 및 소해 전문부대가 창설되었습니다.

2차세계대전에서도 기뢰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독일은 대서양 수송선단을 타겟 삼아 잠수함의 의한 어뢰공격 혹은 기뢰공격을 펼쳤고, 나아가 폭격기를 이용한 기뢰부설작전까지 개발하여 연합군을 괴롭혔습니다. 이에 미국 등 연합군은 기뢰 방어를 위해 무려 13,000여척의 선박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제 1차 세계대전 : 약 30만개 기뢰 부설 → 약 1천척의 선박 피해
제 2차 세계대전 : 약 70만개 기뢰 부설 → 약 3200여척의 선박과 잠수함 침몰


■ 한국전쟁 - 인천상륙작전

한국전쟁에서도 북한군은 적극적인 기뢰작전을 펼쳤는데, 유엔군은 부족한 소해전 전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뢰 제거에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천 앞바다에 대형함정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북한군의 기뢰작전에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천 앞바다의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것이 호재였죠. 썰물일 때 기뢰가 수면 위로 노출되는 것을 손쉽게 사격으로 파괴하여 기뢰의 피해를 최소화했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상륙작전이 보다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 조선시대에도 기뢰가 있었다?

조선말 대원군은 1866년부터 1876년 사이 신무기를 기발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수뢰포'였습니다. 서양 군함을 격파할 신무기로 개발한 것으로 기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실제로 1867년 가을에 서울 노량진에서 조선판 기뢰인 '수뢰포'의 실험이 있었는데, 고종을 비롯한 관리들과 백성들이 이 광경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당시에 강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배가 수뢰포를 맞고 성인키 10배까지 공중으로 솟구치며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이에 대한 실험 기록은 있지만 실전 배치와 전과에 관한 기록이 없고, 유물로도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해군의 기뢰부설함이자 소해함인 원산함




기뢰는 가격에 비해 성능이 우수한 무기입니다. 더구나 저개발국가에게는 적은 돈을 들이고도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치 있는 무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전면전보다 게릴라전, 국지전 양상을 띄는데다 기뢰가 더욱 더 지능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기뢰 소해작전 능력에 대한 중요성도 증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디펜스 타임즈(2009년 1월호)에 소개된 소해전력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1980년 이전에 확보한 블루버드급 소해정 8척 (미군이 제공)
1980년대 중반에 자체적으로 강경급 소해정 개발, 현재 6척 (520톤)
1990년대 중반에 블루버드를 교체하기 위해 양양급 소해함 3척 (730톤) 건조
2000년대 양양급 소해함 추가 건조 대신 소해헬기 도입 사업 진행 중
그리고 원산급 기뢰부설함(소해함) 1척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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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hoebe 2010.03.29 1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보니 전쟁때 쓰는 무기인데 갑자기 섬찟해 지네요.
    차라리 다른 이유 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이유야 어찌됐든 실종자 부터 빨리 찾아야 할것 같아요.

    • BlogIcon 칸타타~ 2010.03.29 1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자료조사를 하면서 이렇게 무서운 무기들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부디 실종자들이 생존하고 또한 구조되어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 BlogIcon www.kmenslow.fr 2015.04.10 15: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유가 98/9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뮌헨에 0:1로 뒤지고 있다가
    추가시간 3분 안에 2골을 넣어 극적인 역전승을 일컫는 말이었죠.


(운이 좋게도) 낯선 땅을 남들보다 앞서 밟게된 사람들의 시각은 대체로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개개인에 따라 (또는 그가 배우고 습득한 문화에 따라) 낯선 나라를 향한 눈높이는 제각각일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대로라면 대체로 이렇지 않을까 싶다.

1. 흠...내가 노다지를 발견한 모양이군. 몽땅 챙겨볼까나~
2. 엇, 이런 곳이 있었네. 이 사람들을 좀 알고싶군. 내가 뭐 도와줄 일은 없을까?


콜롬부스는 어느쪽이었을까?  잘은 몰라도 아마 1번이 아니었을까? 콜롬부스 그가 지하에서 억울하다고 항변해도 별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세계사 시간에 그렇게 배워버렸으니까....

그러나, 서양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콜롬부스 일당 같지는 않았나보다.

"카톨릭 선교사니까 당근 그랬겠지" 라고 그가 소속된 집단의 도덕성에만 높은 점수를 주기에는 이 사람 너무 따뜻하고 마음결이 곱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착한 남자, 그의 이름은 노르베르트 베버. 출생지 독일. 소속은 베네딕도 선교회.



                      ▲1911년 조선 제1차 방문때의 베버 신부 일행(가운데 말 탄 사람이 베버신부)

베버 신부는 정말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사랑했었나보다. 그가 남긴 글 일부를 옮겨보자. ( * kbs스페셜 홈페이지 내용 일부를 옮겼음)

" 1911년에 내가 그리도 빨리 사랑에 빠졌던 한국과 이별할 때 작별의 아픈 마음으로 대한만세를 불렀었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넘게 지나갔다.....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한국과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가져오게 되었다. "


               ▲ 1911년, 식사중인 베버신부 일행 (왼쪽 두 번째 베버신부)


베버 신부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찾은 독일의 신부였다(1911년). 예술가, 문화 인류학자였던 그는 당시 4개월간 한국을 여행하면서 사람들의 문화와 삶을 400페이지가 넘는 글과 사진으로 생생하게 기록했다. 이후 베버 신부는 한국을 잊지 못하고 14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아 한국 문화에 대한 방대한 영상기록을 남긴다 (1925년).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1970년대 말, 독일 남부 뮌헨 근처의 한 수도원 지하실 공사 중 필름뭉치가 발견되었다. 15,000M분량의 35mm 필름은 한국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농업,수공업, 풍습, 명절, 예식 등을 자세히 기록한 한편의 영화였다.
 
그 영화의 제목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 1920년대에 촬영 되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한 화질의 그 필름 전편이 <kbs스페셜>을 통해 2010년 2월21일 모습을 드러냈다.  


               ▲ 1911년, 장죽(담뱃대)을 피우는 베버신부 일행 (오른쪽 끝 베버신부)


이 필름을 방송하게해준 독일 베네딕도회의 저작권을 존중해, kbs스페셜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개사진 3장만을 덧붙임을 양해바란다. 대신에 '다시보기'를 링크한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리고, 이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보면서 종교적 시각을 개입시켜 왈가왈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베버신부와 그의 신앙에 대한 냉소는 일단 거두어주길바란다. 100년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100년전 필름을 통해 살펴보자는 것 뿐이니까...

그런 면에서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냉소와 폄하는 솔직히 좀 지나친 감이 있다. 
아니 그런가??  
  


                                                                                                             

           ▶▶ kbs스페셜 다시보기   http://www.kbs.co.kr/1tv/sisa/kbsspecial/vod/index.html

                                                            
                                                                                                                                         < 끝 >




                                                                                                                         posted by 백가이버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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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신민화 정책을 위해 신사제도를 가장 잘 정비한 곳이 조선이다."

현재 국회도서관에서 열리는 '침략신사, 야스쿠니' 기획전에서 가장 눈에 띈 문구였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신사'였고, 일제가 조선을 침탈한 역사가 있었으니 조선 도처에 '신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전시회를 보면서 일본은 왜 한국(조선)에 신사를 세웠는지, 그 신사들이 어디에 세워져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 국회도서관에서는 11월 5~14일 10일간 '침략신사, 야스쿠니'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 일본의 침략전쟁 그리고 신사 ]


메이지 유신으로 정권을 잡은 신정부는 정치적 기반이 미약하였습니다. 그래서 반대세력을 제압하고 국민들을 결속시키기 위해 대외팽창정책을 선택했습니다. 상품시장과 원료공급지 확보를 위해서는 아시아에 대한 지배의 야욕을 꿈꿨고, 그것이 침략전쟁을 부추겼습니다.  

▲ "황국신민이 되려면 신사참배를 하라(?)" 참으로 기가 막힌 말입니다.

침략전쟁의 주된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조선이었죠. 그 조선을 발판삼아 대륙으로의 확장을 꾀하기 위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웠고, 이 과정에서 '천황'에 대한 충성심과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뿌리 깊게 심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바로 '신사(神社)였습니다.


[ 한국의 신사들 ]

그러면 우리 나라에 가장 먼저 세워진 신사는 어디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 용두산 신사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일본의 신사는 부산에 세워진 '용두산 신사'입니다.

일본인의 입국-교역을 위해 왜관이 부산항에 설치되던 때가 1678년 3월. 당시 대마도 영주가 용두산에 한일을 오가는 배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금도비라(金刀比羅)신을 모신 것이 용두산 신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1894년에 거류지신사로 개칭했고, 1899년 규모를 확장해 용두산 신사로 개칭했습니다. 

■ 살아있는 신(神), 천황

메이지정부는 '천황' 중심의 정치를 선언하고
제국 헌법에서 '천황은 태초부터 하나의 혈통이며 신성불가침하다'고 규정하면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모두 천황 아래 두었다.
전래 민간신앙인 '신도'의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이를 '천황' 중심 국가종교로 재편했다.

- '침략신사, 야스쿠니' 기획전 중 -

일본은 이런 신사들을 어떤 형태로 확장해나갔을까요?

1876년 조선을 강제로 개항케 한 일본은 개항지를 중심으로 일본인의 이주를 확대했습니다. 이에 부산, 원산, 인천 등 개항장에 외교관이 주재하고 일본인 거류지가 설정되었습니다. 각 거류지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조선의 국권이 미치지 못했죠. 신사도 이 지역 공원에 주로 지어졌고, 이 지역들을 시발점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죠. 일본의 조선 침탈이 깊어지는 만큼 신사도 늘어났습니다. 

▲ 조선신궁풍경도

이들 중 일제 침략신사의 목적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바로 '조선신궁'입니다. 일본은 이곳을 식민통치의 성지(聖地)로 삼았다고 합니다. 1909년 통감부는 단군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함께 모신 조선신궁을 건립코자 했습니다. 그러나 '한일병합' 이후에는 아마테라스만 모신 신궁 건설을 1912년 추진해서 1925년에 완공했습니다. 

※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 :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으로 일본의 시조 신으로 아마테라스라는 이름의 의미는 '하늘에서 빛나다'라는 뜻입니다.
 
▲ 조선신궁을 하늘에서 본 사진(좌), 조선신궁 입구에 세워진 위압적인 황국신민서사주(우)

▲ 좌측 제일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평양신사, 대구신사, 군산신사, 강원신사

▷ 평양신사는 조선신궁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고 하는데, 평양은 신사참배거부운동의 중심지였답니다.
▷ 대구신사는 관찰사 이용익이 천황에게 절하는 요배전 건설을 막기 위해 달성서씨들에게 뽕밭을 일구게 했으나 일본 거류민회 부회장, 도구라와 박중양 등의 반대로 개간이 중지되면서 1906년 11월에 준공됐습니다. 

▲ 청주신사(좌), 광주신사(우)


▷ 청주신사는 조선인 최초로 신직(神職)에 오른 이산연이 근무했던 곳입니다. 이산연은 '일본인 이상의 조선인'이란 말이 자자할 정도로'황민화 정책'의 최일선 있었던 인물로, 그는 일본인과도 동등한 최고의 물자배급을 받았는데, 당시 도지사급의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 창씨개명과 신사 ]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벌인 대표적인 악행 중 하나가 바로 창씨개명이었습니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 민족 말살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이죠.

■ 신사에서 취해진 학생들의 창씨개명

교사가 학생들을 신사에 끌고 가 일본의 신들과 천황에게 보고하는 신전보고식을 거행했다. 교사가 신전에서 학생들의 새로운 일본명 명부를 신직(神職)에 건내면 신주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읽는다. 학생들은 그 때 신사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노래와 같은 곡조로 신주가 축사를 읊조리고, 그 후 전원이 일어서서 신전을 향해 최고 경례를 해서 '일본명'으로 새롭게 바꿨다.

 - '침략신사, 야스쿠니' 기획전 중 -


[ 맺음말 ]

역사 속에는 여러 가지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선택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면은 계승-발전시켜야 하고, 부끄러운 부분은 되풀이 되지 않게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번 '
침략신사, 야스쿠니' 기획전을 통해 일제가 행한 일들을 떠올리니 참으로 치욕적이었습니다. 최근까지 자행된 일본 총리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더욱 분개할 수 밖에 없는 것도 같은 이유겠죠.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에는 여전히 일본 군국주의의 흔적과 아시아인의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신사의 역사를 봐서도 그러하거니와, A급 전범과 뜻하지 않게 묻힌 아시아인이 합사되어 있기 때문이죠.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에 집착하는 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평화는 허울 뿐일 것입니다.

▲ 4개 지역의 합사자 유족과 시민단체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8월 행사를 가졌는데 그 때 그려진 그림

현재 한국, 대만, 일본 등 4개 지역의 합사자 유족과 시민단체가 '야스쿠니 무단합사 철폐'를 요구하는 소송이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무고하게 묻힌 일부 아시아인의 넋이 '일본의 대외침략의 성전(聖戰)에 목숨 바친 영혼'으로 둔갑되었기 때문이죠.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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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라누리 2009.11.13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 푸르게 날아 2009.11.13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일인명사전 보고 분개했었는데 이거를 보니깐 또한번 폭팔하네요.

  3. 촌철살인 2009.11.13 1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한번 일본을 생각하게 된네요..

  4. BlogIcon 저녁노을 2009.11.13 1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의 암울한 역사....
    해결점을 찾기는 쉽지 않은 것 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5. BlogIcon 탐진강 2009.11.13 2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군요..
    친일파들을 설치고 다니는 것도 국회 차원에서 막아야 하는데 여전히 우리는 과거 친일파 반역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이렇게 지적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고 더욱 더 많은 활동을 부탁드립니다.

  6. BlogIcon 시림, 김 재덕 2009.11.13 2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
    드 높던 파란 하늘
    너 가고는

    곁 두었으나
    너 느끼지 못 했어

    긴~겨우 지나야
    다시

    내 가슴 속
    아름다운 너에 모습을...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7. 비분강개 2009.11.14 0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놈들은 우리와 친할래야 친할수 없는 족속들이죠. 개같은놈들

    • BlogIcon 칸타타~ 2009.11.14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열내시진 마시구요.
      항상 일본과 우리 나라는 적절한 긴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호와 경계 모두 같이 생각해야죠.
      그러나 역사는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8. 방문객 2009.11.14 0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좋은 정보네요.

2009 희망탐방 중 해군사관학교에서 생긴 에피소드입니다.

거북선의 선장은?
충무공 이순신? (해군사관학교,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

해군사관학교에 있는 거북선.
실제 운행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거북선 안에서 만난 조선시대 수군!


북을 치는 이 수군은 앳된 얼굴을 보니, 이등병의 포쓰가!!!


노를 잡고 있는 이 분이 이 거북선을 관리하는 거북선 선장님!!!!


의장님도 노를 저어 봅니다.
조선 수군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


거북선을 둘러보고 기념사진!
"어이! 자네도 이리와서 같이 찍지!" - 북치는 소년을 부르시는 의장님.


해군 이병으로 보이는 북치는 소년도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군 생활을 하면서 당시 참모총장님과 악수를 하고 4박 5일의 휴가를 받았었는데,
이 북치는 소년은 휴가를 얻었을지 궁금하네요.
(만약 휴가 얻었다면 앞으로 거북선 북치는 수병 지원율이 엄청 올라가겠네요.^_^)

조선 수군의 복장을 갖춰 입고 노 젓는 모습까지 재현해 주신 거북선 선장, 부선장님과
모두가 DSLR 카메라를 바라볼 때, 당당히 제 똑딱이 카메라를 응시해 준 북치는 소년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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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ark 2009.10.16 07: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똑딱이나 dsrl이나 사진 나오는데는 문제가 없잖습니까? 북치는 수병은 의장님을 많이 좋아 한 것 같네요.ㅎㅎㅎ

  2. BlogIcon 달콤시민 2009.10.16 1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똑딱이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ㅋㅋ
    한손으로 걸어가면서도 금방금방 찍을 수 있어욧! ㅎㅎ

  3. 대변인 2009.10.16 17: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의장님 모시고 거북선 앞에 있었죠. 블로그 사진에 DSLR이 무슨 소용? 글이 잼있고 감동적이면 그만. 요즘 잘보고 있습니다.

  4. 이민우 2009.10.17 07: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변인이 뭐요? 어디 대변인?

자연의 위대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산책길을 다녀왔습니다.
울산암각화 전시관에서 반구대암각화까지의 생태 산책로가 그 곳인데요.
공룡 발자국 화석이 널려 있고 원시 습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산책길, 함께 걸어볼까요?


13일 울산을 방문한 희망탐방팀. 울산암각화 전시관에 버스를 주차 한 후 현재 수몰된 상태인 우리나라 국보, 반구대암각화(국보 제 285호)를 보기 위해 걸어서 출발.

이곳은 국보인 반구대암각화 못지않게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간직한 생태산책길로 유명합니다.
길이 시작되는 다리 위에 장식된 어여쁜 꽃. 나팔꽃인가요?(의장님, 이 꽃 이름 아시면 알려주세요.)


꽃 너머로 흐르는 작은 강이 보이시죠? 이 강이 우리 산책의 처음과 끝을 쭉 함께 했어요.

산과 산 사이를 구비 구비 흐르는 川(천), 그리고 그 위에 비친 산. 
이 절경 속 하천이 바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뽑힌 대곡천이에요.


아 드디어 공룡 발자국 화석 발견. 저 바위에 찍혀 있는 발자국은 약 1억 년 전에 살았던 공룡들의 것이라네요.
친절한 해설사님이 직접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해 주셨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원시림. 1억 년 전 이곳에는 공룡들이 살았겠죠?


공룡이 사라진 지금, 이곳의 주인은 뱀인가요? 뱀 조심하세요.


바위 위에 새겨진 조선시대 누군가의 글. ‘나 왔다 감’ 뭐 이런 뜻인가요?
이곳 바위들은 대부분이 강도가 약한 퇴적층으로 이뤄져 무언가를 새기기가 좋다고 하네요.
유명한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바위 위 낙서. 조선시대 선비들도 낙서의 유혹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나 보죠?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천연 자연 습지.


이 산책길의 종착지인 반구대암각화에 도착. 
자연이 빚은 예술작품들과 함께 한 생태산책길. 여러분들도 한번 걸어보시죠?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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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승환 2009.10.15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낚서의 유혹이라... 얼마 전에 유럽에 한글로 낚서 되어있는것에 부끄러웠다는 블로거 글이있었는데... 이건 재미 있네요... 낚서 한 조선 시대 선비는 알까요? 먼 훗날 그 낚서를 보고 즐거워 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2. 대변인 2009.10.15 17: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보기엔 유명한 싯귀를 새긴것인데 못난 후손들이 훼손한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