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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4.26 역사와 문화예술의 보고, 진주박물관 (4)
  2. 2011.04.26 논개의 숨결 서린 진주성에서 (3)

임진왜란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진주성 안에 1984년 문을 연 국립진주박물관은 지역 박물관 중 경주박물관 다음으로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 역사와 문화예술의 보고입니다. 경남 지역 역사문화실과 임진왜란실, 그리고 기증 문화재를 전시한 두암실을 비롯해 기획 전시실, 야외 전시실, 3D 입체 영화관, 체험 학습실, 정보 자료실, 강당 등을 적극 활용해 다채로운 특별전과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친절한 안내와 재치 있는 해설로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게 해준 진화수 국립진주박물관장, 장일영 진주문화예술재단 부이사장께 감사드립니다. 내 아이폰이 찍은 사진으로는 질감이 안 살아나는 유물은 박물관에서 펴낸 도록을 캡처해 올렸습니다.
 

국립진주박물관 전경.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우리나라 현대건축의 거목 김수근 선생(1931~1986)의 설계로 지어졌다. 사람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건축에 반영했던 김수근 선생은 우리나라 목탑을 형상화해 이 건물을 구상하고 설계했다고 한다.

 

보물 제168호 청자매화대나무학무늬 매병. 활짝 핀 매화와 푸른 대나무 이파리 위로 두 마리 학이 날갯짓을 하며 날고 있다. 경남 하동에서 출토되었으며 12세기 후반 고려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백자대나무무늬병. 17~18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긴 원통형 병은 조선 시대 후기에 많이 만들어졌지만 이 작품처럼 몸체를 다시 대나무 마디 형으로 깎은 것은 희귀한 예다. 여기에 다시 대나무를 그려 넣어 운치를 더했다. ‘대나무 속의 대나무’ 병이다.

 

가야 유물인 수레바퀴모양토기. 이 토기에 부착된 수레바퀴는 무덤에 함께 묻혔던 사람의 영혼을 저승 세계로 무사히 운반하는 염원을 담은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 위로 삐죽 솟은 시계태엽 모양의 장식은 손잡이였을까. 표면에 고사리 문양이 새겨져 있다.

 

선조가 내린 한글 교서. 임금이 친필로 쓴 한글 교서로는 유일한 예가 아닐까 싶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에 피난 가 있던 선조는 포로가 되어 일본군에 협조하던 백성들을 회유하기 위해 읽기 쉬운 한글로 교서를 내렸다. 그 중 한 구절, “왜를 잡아서 나오거나 왜가 하는 일을 자세히 알아서 나오거나 잡힌 사람을 많이 더불어 나오거나, 이러한 공이 있으면 양인과 천민을 막론하고 벼슬도 줄 것이니, 너희는 조금도 전에 먹던 마음을 먹지 말고 빨리 나오너라.”

 

바닷가 마을의 저녁노을을 그린 어촌석조(漁村夕照). 중국 호남성 동정호 아래 소수와 상강이 합쳐지는 곳의 여덟 군데 절경을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중 한 폭이다. 경남 사천 출신 두암 김용두 선생(1922~2033)이 일본에서 사재를 털어 수집한 우리 문화재를 기증해 만든 두암실에 전시돼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거금을 주고 구입했다고 한다.

 

소상팔경도 중 한 폭인 원포귀범(遠浦歸帆). 먼 포구로 돌아오는 돛배를 그린 작품이다. 이밖에도 소상팔경도는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산마을(산시청람, 山市晴嵐), 안개 낀 절의 저녁 종소리(연사모종, 燃寺暮鐘), 소수와 상강에 내리는 봄비(소상야우, 瀟湘夜雨), 동정호수에 비친 가을 달(동정추월, 洞庭秋月), 모래펄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평사낙안, 平沙落雁), 저녁 눈 내리는 강과 하늘(강천모설, 江天暮雪) 등을 화폭에 담고 있다.

 

국립진주박물관 방명록에 내가 쓴 글귀. “역사의 古都(고도), 경남의 자존심, 글로벌 世界(세계)의 礎石(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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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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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당개 2011.04.26 18: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덤으로 한자 공부도 많이 하고 갑니다~~~

  2. 연보라 2011.05.04 15: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김용두 선생 일화는 일전에 EBS에 소개된적도 있었지요...
    나라 보물을 귀히 여기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주십시요

  3. 왕그니 2011.05.06 14: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떤 지역이나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면 박물관에 가보라는...
    의장님 문화 사랑이 느껴집니다..^*^

  4. 헬레나 2011.05.07 23: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 국립 진주 박물관에 방명록에
    쓰신 ,역사의 古都, 경남의 자존심,
    글로벌 世界의 礎石, 글귀가 마음에 와 닫습니다.

4월 21일, 참진주아카데미 특강을 위해 진주를 찾았습니다. 수주 변영로 선생의 시 <논개>의 첫 연을 외우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강연 시작 전에 잠깐, 또 끝난 뒤에 30분 남짓 진주성에 들렀습니다. 진주성은 외적을 막기 위해 삼국시대부터 조성된 성으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의 충혼이 서린 곳입니다. 의기 논개가 몸을 던진 촉석루 아래 의암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남강 물결 위에 돛단배가 떠 있는 아름다운 봄날 오후의 진주성 풍경을 내 아이폰으로 스케치했습니다.

 

촉석루(矗石樓)의 촉(矗)은 곧을 직(直)자 세 개가 모여 이루어진 동체회의문자(同體會意文字)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논개가 곧은 마음으로 곧게 떨어져 내림으로써 역사를 곧게 세운 누각이라서 곧을 直자 세 개 矗石樓인가?

 

논개의 낙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을 촉석루. 봄바람에 날리는 벚꽃 잎들이 왠지 논개의 구국혼처럼 느껴졌다. 논개의 숨결이 서린 촉석루 바로 옆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있다. 촉석루는 논개가 왜장을 안고 몸을 던진 날, 꽃다운 청춘을 삼킨 남강을 내려다보며 애통해 했으리라.

 

의암사적비가 서 있는 의기논개지문. 1740년 경남우병사 남덕하가 비각을 세웠으며, 비문에는 논개의 순국 정신을 기리는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다. “그 바위 홀로 서 있고 그 여인 우뚝 서 있네. / 이 바위 아닌들 그 여인 어찌 죽을 곳을 찾았겠으며 / 이 여인 아닌들 그 바위 어찌 의롭다는 소리 들었으리요. /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하리.”

 

논개가 몸을 던진 의암에서 모형 황포돛배가 떠 있는 남강을 배경으로 찰칵! 원래는 위험한 바위란 뜻의 위암(危巖)이었는데, 논개의 순국 이후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의암(義巖)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바람에 날리는 넥타이가 풍향과 풍속을 짐작하게 해준다.

 

진주성은 본래 토성이었으나 1379년 진주목사 김중광이 잦은 왜구 침범을 막기 위해 석성으로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직후에는 성의 중앙에 남북으로 내성을 쌓았다. 일제의 훼손으로 외성의 자취는 많이 사라지고, 지금은 내성만 복원해 놓은 상태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호인 영남포정사(嶺南布政司). 전망이 아름다워 망미루(望美樓)라고도 불린다.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창건하여 경상남도 관찰사 감영의 정문으로 사용하였으며, 경남도청이 옮겨 가기 전까지는 도청의 정문으로도 쓰였다.

 

진주대첩으로 청사에 빛나는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1592년 10월에 침공한 왜적 2만 대군을 불과 3800여 병력으로 이마에 적탄을 맞아가며 6일간의 공방전 끝에 크게 무찔러 이겼다. 그 공으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상에서 나랏일을 근심하다가 39세를 일기로 진주성에서 순절했다. 그리고 이듬해 6월, 진주성은 왜적에게 함락되었다.

 

1927년 남강에서 바라보며 찍은 촉석루.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지만 이런 사진들을 기초 자료 삼아 1960년, 시민들의 성금으로 복원되고 재건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누대인 촉석루는 전시에는 지휘소로 쓰이고, 평시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영남 제일의 명승이다.

 

진주성의 정문인 공북문(拱北門). 임금 계신 북쪽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 올려 공경한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 2002년 홍예식 2층 다락루로 복원되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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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암기력 테스트 2011.04.26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교과서에서 배운 지 30년도 넘었건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걸 보면
    이 시가 가슴에 스며 화석처럼 굳어졌나 봅니다.
    촉석루 구경, 덕분에 잘했습니다.

  2. 이동기 2011.04.26 18: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불렀던 노래<논개> 가사가 생각납니다.

    몸 바쳐서 몸 빠쳐서 떠내려간 그 푸른 물결 위에...

  3. 헬레나 2011.04.26 2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랑! 장택상 전 국무총리님의 "성어"가 생각 납니다.
    江流石不轉! 강물은 흘러도 그안의 돌은
    물결 따라 이리저리 구르지 않는다 는 말씀이 생각 납니다.
    "강류석불전" 전 국회의장님!의 자상함이 사진으로 느껴집니다.
    진주 "촉석루" 구경 잘 했습니다.
    저는 진주 남강 유등축제에 회원님들과,다녀 왔습니다.
    밤에 갔다와서 "촉석루"는 구경 못 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