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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년 격돌한 술탄·황제… 다시 쓴 문명 충돌의 역사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 김형오 지음 | 21세기북스 | 488쪽 | 2만8000원



    "(초판을 낸 뒤) 20여권의 책을 새로 샀다. 페리둔 에메젠 교수의 근작을 터키어 전공자 세 분에게 의뢰해 완역하다시피 한 다음 꼼꼼히 살폈고, 네덜란드에서 발간한 콘스탄티노플 함락 당시 생존자 7명의 증언록을 해부하듯이 읽어나갔다." 성벽을 때리는 대포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아비규환의 참혹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이 책은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145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격돌하는 전쟁기(記)다. 천년을 지속한 동로마 제국은 이슬람을 대표하는 튀르크의 침공 앞에서 최후의 숨을 몰아쉰다. 국회의장을 지낸 저자가 이 문명 충돌의 전쟁에 대한 정밀화 같은 책을 낸 것이 4년 전. 그는 이번에 전면 개정판을 출간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명멸을 거듭한 국가 사회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교훈을 수없이 얻고, 또 쉽게 잊어버린다"고 말한다.



    유석재 기자




    [2016-11-05 조선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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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사오삼 2016.11.06 1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분과 감동 속에 술탄과 황제의 마지막 장을 덮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더 깊어진 개정판, 설렘과 기대감을 갖고 예스24에 주문했습니다.

    2. BlogIcon 유근준 2017.09.20 1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한 저술에 몇 군데 옥의 티가 발견되어 교정을 올립니다.

      1. 101쪽 아래에서 2번째 줄 '轉求'를 '傳求'로
      2. 123쪽 아래에서 2번째 줄 'Basillica'를 'Basilica'로
      3. 153쪽 아래에서 5~6번째 '서로 마가'를 '서로가'로
      4. 237쪽 각주 아래에서 3번째 줄 "고말했"을 "고 말했"으로
      5. 243쪽 위에서 7번째 불 '백번 천 번'을 '백 번 천 번' 또는 '백번 천번'으로
      6. 99쪽 각주 아래에서 2번째 줄 "'해협의 칼날(Strait-Blocker)' 또는 '목구멍의 칼날(Throat-Cutter)'"을 '해협의 차단기(Strait-blocker) 또는 '목구멍의 칼날(Throat-cutter)'"로의 변경을 검토하심이 어떠실까요? 왜냐하면 '칼날'이라는 동어반복이 신경쓰이고 하이픈(-) 뒤의 글자는 소문자로 하심이 낫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책 속으로] 동로마 최후의 날 빛난 두 군주의 품격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김형오 지음, 21세기북스
    504쪽, 2만8000원


    1453년 5월29일에 대한 미시사다. 동서문명의 교차로인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튀르크에 함락되고 동로마로도 불렸던 비잔티움 제국(330~1453)이 1123년 만에 명맥이 끊어진 날이다. 오스만의 술탄 메흐메드 2세(1432~1481, 재위 1444~1446, 1451~1481)가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1405~1453, 재위 1449~1453)가 버티고 있는 천년 고도를 점령하기 위해 50여 일간 벌인 사생결단의 기록이 세밀화처럼 묘사된다. 비잔티움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벽돌 삼아 군주의 리더십 비교라는 건축물을 지었다. 이 책은 2012년 출간된 『술탄과 황제』의 개정증보판이다. 지은이(김형오 : 전 국회의장)는 “초판은 주로 서양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면 개정판에는 터키 사료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균형잡힌 시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한 독특한 형식은 여전하다.

    술탄은 광야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8만의 오스만군은 체계적으로 공격전에 투입됐다. 1악장에선 비정규군인 아잡과 바쉬보주크를 먼저 보내 적에게 타격을 줬다. 유럽 기독교 지역 출신이 태반인 이 부대는 급여를 받기 위해 지원한 용병으로 이뤄졌다. 이들의 뒤로는 용병들의 퇴각을 막기 위한 독전대가 배치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허름한 장비의 보병 뒤로 뛰어난 무장을 갖춘 비밀경찰인 NKVD(내무인민위원회) 부대를 배치해 후퇴하는 병사를 사살한 잔학극의 원형이다. 2악장으로 소아시아 지역에서 모집한 아나톨리아군과 유럽 지역에서 데려온 루멜리군이 투입됐다. 경쟁관계인 두 부대는 죽기살기로 싸웠다. 마지막 3악장에선 술탄 근위대인 최정예 예니체리가 나섰다. 정복지 기독교인 가정에서 어린이를 데려와 무슬림으로 개종시키고 교육해 군인으로 기른 엘리트 부대다.

                      정복자 술탄 메흐메드 2세의 초상화. 이슬람 학자풍 의상·터번을 애용했다.

                          [사진 21세기북스]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에서 술탄은 군인들에게 최고의 보상과 명예를 약속했다. 대제국을 건설한 오스만의 과학적 용병술이다.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술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유스티아누스 대제가 건설한 하기야소피아 교회 내부를 파괴하고 있던 병사를 쫓아내고 이를 반달리즘으로부터 구한 일이다. 병사들에게 보상으로 허용했던 약탈기간도 줄였다. 제국은 말 위에서만 통치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1세는 나라를 잃은 군주가 어떻게 최후를 맞아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그는 군주임을 나타내는 모든 표식을 버렸다. 한 명의 병사가 된 그는 말에 박차를 가해 오스만군의 한복판으로 돌격했다. 곁을 지키던 부하들도 최후를 함께했다. 이들은 목숨으로 명예를 지켰다. 술탄과 황제의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긴다.



    [S BOX] 안에서 무너진 비잔티움, 황제의 동생까지 적과 내통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나라에 외교란 무의미한 연명치료일 뿐이다. 비잔티움이 이를 잘 말해준다. 몰락 직전의 비잔티움은 오스만튀르크에 조공을 바치는 것은 물론이고 술탄이 원정에 나서면 군대까지 제공해야 했다. 황제 요한네스 5세는 술탄이 소아시아의 잔존 기독교 세력을 몰아내는 토벌전을 벌이자 병력을 보내 도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 마누엘을 술탄 무라드 1세의 궁전에 볼모로 보내기까지 했다. 비잔티움의 정체성은 열정의 기독교 신앙도, 로마의 영광도 아니었다. 오로지 생존이었다.

    심지어 황족 분쟁으로 차기 황제를 결정하지 못하자 술탄에게 지명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황제의 동생 데메트리오스는 1442년 오스만 군대를 빌려 콘스탄티노플로 진군하기까지 했다. 무너지는 나라는 안부터 썩어 문드러지는 법이다. 비잔티움 몰락의 교훈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2016-11-05 중앙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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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클라우제비츠 2016.11.06 17: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기꺼이 다시 읽겠습니다.

    2016-11-30 한국경제


    [책마을] 1453년 비잔티움 최후의 날…

                두 군주의 사생결단 '난중일기'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김형오 지음 / 21세기북스 / 504쪽│2만8000원 


    1453년 5월29일, 백마를 타고 성벽이 무너진 콘스탄티노플로 입성하는 술탄 메흐메드 2세. 오스만 궁정화가 파우스토조나로의 그림. 21세기북스 제공


    “패자(敗者)의 역사는 기록되지 못한다.” 역사를 읽고 쓰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격언이다. 대부분 역사의 붓은 이긴 자의 손에 쥐어지기 때문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사진)은 지난달 말 출간한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에서 이 같은 ‘전가의 보도’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 책은 2012년 출간한 《술탄과 황제》의 전면 개정판이다. 지난해까지 38쇄를 찍은 스테디셀러를 ‘뼈대만 남기고 다 바꿨다’고 할 만큼 다시 썼다.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국지적·미시적인 수정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며 “인체로 치면 피부 이식뿐만 아니라 성형과 정형도 동시에 하고 싶었다”고 했다. 가장 중점을 둔 건 박진감과 정확성이다. 초판 3장에서 자신이 쓴 정복 전쟁 해설 부분을 빼는 대신 균형을 지키기 위해 서구 측 기록뿐만 아니라 터키 쪽 역사 기록도 더욱 많이 살펴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각종 그림과 지도, 연표 등 다양한 부록을 실었고, 독자의 편의를 위해 부록의 QR코드도 별도로 마련했다. QR코드는 독자들을 1453년 당시의 현장으로 이끄는 ‘타임머신’이다. 


    저자는 섣불리 심판자나 변사로 나서지 않는다. 그저 독자들이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관찰자일 뿐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에서 공격자와 방어자로 맞섰던 오스만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티움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이 책에서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지 않는다. 각각 군주로서 지켜야 할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온몸을 던진 인물들일 뿐이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구분도 없다. 

    메흐메드 2세와 콘스탄티누스 11세는 각각 공격과 항전을 독려하는 연설을 통해 자신의 신념과 리더십을 드러낸다. 메흐메드 2세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들기 위해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그는 “그대들 앞에는 현생의 전리품과 내세의 낙원이 기다리고 있다”며 “그러나 만약 탈영을 시도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그가 새의 날개를 가졌다 할지라도 내 응징의 칼날보다는 빠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이상과 헌신을 추구한다. 그는 신하들에게 “신앙과 조국, 하느님의 대리자인 황제, 가족과 벗들을 위해 싸운다”며 “다시 한번 신앙의 동지로서, 의기투합한 형제로서 여러분의 의무를 다해주길 부탁한다”고 명한다.

    책의 분량은 많지만 구성은 단순하다. 프롤로그와 1부, 2부, 에필로그가 전부다. 하지만 단출한 짜임 속에 내용은 알차고도 체계적으로 들어가 있다. 1부는 1453년 5월29일부터 1453년 6월1일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난 일들을 세밀히 묘사하며 옛 제국의 멸망과 동시에 이뤄진 새 제국의 탄생을 논한다.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정복 이후 어떻게 이 도시를 오스만 제국의 중심으로 변모시켜 나가는지, 정적들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등을 중심으로 논한다.


    압권은 2부 ‘황제의 일기와 술탄의 비망록’이다. 이 부분은 저자가 터키 이스탄불에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창조한 팩션이다.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성을 강력히 수비하며 황제로서의 책임과 인간적 불안을 처절히 묘사한 일기,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바다와 산을 넘어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한 21세의 젊은 술탄 메흐메드 2세의 비망록을 한 편씩 나란히 배치했다. 콘스탄티누스 11세가 남긴 일기에, 메흐메드 2세는 비망록으로 답했다.



    저자는 전쟁의 처절한 현장에서 부딪친 두 군주의 고뇌를 관찰자적 시각을 지키며 담담하고도 냉정하게 전한다. 그는 “이 글은 동서 문명의 교차로인 이스탄불에서 종군기자가 된 심경으로 써 내려간 54일간의 격전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전쟁의 주역이었던 오스만의 술탄과 비잔티움의 황제, 두 제국의 리더십에 대한 치열한 탐구”라고 밝혔다. 

    저자가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을 더해 만든 합성어 ‘이스탄티노플’에 그런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는 “이스탄불의 전신은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라며 “현재의 이스탄불과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내가 개념 짓고 명명한 이스탄티노플”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은 전쟁도, 걸출한 인물도, 문명도 멀리 바라보면 기나긴 역사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일부에 불과한 사실과 인물’들이 역동적으로 역사를 창조하고, 무너뜨리고, 또다시 세운다는 역설을 함께 알려준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문화는 오스만제국과 유럽에 매우 큰 영향을 줬다. 비잔티움 제국의 몰락과 오스만 제국의 중흥은 중세가 끝나고 근세가 시작되는 계기의 하나였다. 역사에서 영원불멸한 존재는 없다. 책 표지에 꽃향기를 맡는 모습의 메흐메드 2세와 아마 현존 유일일지도 모를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초상이 나란히 그려져 있는 게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16-11-03 한국경제 - 책마을]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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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에술탄 2016.11.06 1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탄티노플, 그 격전의 현장으로 책과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