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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여적(餘滴)=길 위에서의 이삭줍기②
꼬라오 마을에 ‘희망꽃’ 피운 꼬레아의 우정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Cusco) 외곽에는 꼬라오(Ccorao)라는 이름의 작은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해발 3700미터 높이에 있는 원주민 마을입니다. 꼬라오, 왠지 정겹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어쩌면 꼬레아(Corea, 한국)와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발음을 떠나 이 마을은 실제로 우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6년 전부터 봉사단원을 파견해 희망의 씨앗을 심고, 또 꽃을 피워가고 있는 마을이니까요.


▲ 꼬라오 도자기 학교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 맨 위에 큰 글씨로 ‘비엔베니도스(Bienvenidos)’라고 써 놓았다. 우리말로 “환영합니다”라는 뜻이다. KOICA 앞치마를 두르고 도예 작업 중인 한국 여성, 페루 국기와 나란히 걸린 태극기 그림이 눈길을 끈다.

▲ 손에 손에 태극기와 페루 국기를 든 어린이들이 마을 어귀까지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반기듯이 스스럼없이 내 품으로 달려들었다. 체온이란 따뜻한 것이다.


▲ 어른들도 참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성긴 이빨을 그대로 드러낸 채 해맑은 웃음으로 반겨 맞아 주었다. 옷은 비록 남루해도 태극기는 눈부시게 깨끗하다. 의료 지원 및 봉사를 좀 더 강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월 17일, 우리 팀은 바쁜 일정을 쪼개어 꼬라오 마을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무상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서 G20 국가에 걸맞은 기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꼬라오 마을은 우리의 원조 사업으로 현지 주민들 삶의 질이 높아진 대표적인 성공 모델입니다.

▲ 산세바스티안 시의 훌리안 로카 시장이 조끼 비슷하게 생긴 원주민들의 전통 의상을 내게 입혀 주었다. 기온이 낮아 조금 쌀쌀한 느낌이었는데 잘됐구나 싶었다. 행사 내내 그리고 페루를 떠날 때까지 나는 이 조끼를 입고 다녔다.


▲ 98%의 호기심에 2%의 경계심이 담긴 눈빛으로 우리 일행을 바라보는 두 여자 어린이. 아마도 자매인 듯싶다. 그 뒤로는 우리가 선물로 가져온 쌀 포대가 쌓여 있다. 흑백으로 찍었더라면 50~60년대 우리의 시골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페루는 우리에게 중남미 지역 제1의 지원 대상국이면서 또한 전 세계적으로 봉사단을 가장 많이 파견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지원 규모는 약 861만 달러. 중점 지원 분야는 교육 및 보건 의료, 인적 자원 개발 등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지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참 부족합니다.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너무 미미해 수치로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일본과 우리의 GDP 차이가 6배라면, 대외 원조 규모는 다시 그 1/10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 중절모를 쓴 할머니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나는 머리에 원주민들이 준 전통 모자인 ‘츠요’를 쓰고 있다. 원래는 귀가 살짝 덮이도록 좀 더 내려 써야 하는 모자란다. 할머니는 무릎 위에 아기를 안 듯 쌀 포대를 안고 있다.


▲ 오늘은 꼬라오 마을의 잔칫날이나 마찬가지다.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보려고 몰려나왔다. 주민들 입가에선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그만큼 우리 한국의 봉사단원들이 순수함과 진정성으로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리라.


  KOICA(이사장 박대원)는 옛 잉카 문명의 중심지로서 약 3천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꼬라오에 2004년 처음 도자기 학교를 세웠습니다. 잉카 전통 자기에 한국식 유약 바르는 법을 가르쳤는가 하면, 판로를 개척하고 마케팅 기법도 전수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꼬라오 마을은 관광객 수가 늘어나고 도자기 매출액이 껑충 뛰어올라 주민들의 소득 또한 증대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비바 꼬레아”를 연호해가며 그렇게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친근하게 대해 주었나 봅니다.

▲ 고산 지대라서 걸음도 천천히 걷고 힘쓰는 일은 하지 말라 했는데 하도 많이 아이들을 안아 주다 보니 나중엔 숨이 가쁘고 팔이 저릿저릿했다. 그래도 마음은 뿌듯했다. 유년기로 돌아가 어릴 적의 나를 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 교복인 걸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빨간 티를 입고 환영을 나왔다. 붉은 악마 악동을 연상시키지만 붉은색은 페루의 국기 색이고 국민 색이다. 뒷줄 왼쪽부터 김영우 의원, 외통위 전홍조 국장, 한병길 페루 대사, 황진하 의원, 훌리안 로카 시장, 나 김형오, 에스테반 꼬라오 마을 대표, 최병국 의원.


  KOICA는 현재 내년에 완공할 계획으로 100만 달러의 예산을 지원해 꼬라오 마을에 감자가루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도자기 전시장과 마을회관도 확충할 예정입니다.

▲ 선물로 쌀 140포대를 준비해 와 꼬라오 마을 대표인 에스테반 씨에게 전달했다. 130여 가구가 한 포대씩 나누어 가질 분량이다. 문득 한국전쟁 직후 미군이 나누어 주던 옥수수가루 포대를 받으려고 번호표를 손에 든 채 교회 앞마당에 줄을 서 기다리던 우리 동네 어른들 모습이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 우리도 답례로 꼬라오 마을 주민들이 준비한 선물을 받았다. 손에 들고 있는 선물들이 각양각색이다. 왼쪽부터 장봉순 코이카 소장, 김영우 의원, 황진하 의원, 나, 훌리안 로카 시장, 최병국 의원, 한병길 페루 대사.


  나는 이 마을에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천사 같은 두 여성을 만났습니다. 권은주씨와 김아람씨. KOICA 단원인 그녀들은 미혼으로서 1년 남짓 꼬라오에 머물며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 도자기 학교 마당에서. 내 어깨 너머로 잉카의 도예가가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조각상이 보인다.


▲ 잉카 전통 스타일의 도자기에 유약을 바른 완성품을 감상하고 있다. 왼쪽부터 코이카 봉사단원 권은주씨, 황진하 의원, 최병국 의원, 나.


▲ 서울에서 가져온 특별선물을 꼬라오 마을의 두 한국인 천사에게 전달하고 있다. 뭘까요? 힌트! 내 이름 석 자 중에서 한 글자와 똑같은 음식이다. 왼쪽부터 장봉순 코이카 소장, 한병길 페루 대사, 최병국 의원, 권은주씨, 나, 김아람씨, 황진하 의원, 김영우 의원.


  그 일이 얼마나 힘겨울는지 경험해 본 나는 잘 압니다. 왜냐면 꼬라오는 해발 3500~3700미터를 넘나드는 고산 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이 해발 2744미터입니다. 백두산보다도 1000미터나 더 높은 곳, 웬만한 식물은 서식조차 할 수 없는 까마득한 고지대에서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가난한 산골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있는 아담한 체구의 앳된 두 여성….
  게다가 환경은 얼마나 열악한지요. 목욕은 거의 하지 않고, 옷도 한번 입으면 해질 때까지 갈아입지 않는다는 원주민 마을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이 더욱 더 대견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 꼬라오 마을의 전통 공예품이나 의복·장신구·도자기 등을 파는 가게. 우리가 머문 한 시간 반 동안 관광버스가 8~9대는 올 정도로 홍보가 잘 돼 있었다. 도자기 전시 판매장은 이 사진 왼쪽에 있다.


▲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한 채 헤어지기 전에 찰칵! 뒤에 있는 버스는 관광객들이 타고 온 것이다. 우리는 마을 입구에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서 왔다. 이미 앞 사진들에 나온 인물들이라서 개별적인 소개는 생략한다. 다만 오른쪽에서 세 번째, 가방을 허리 아래로 내려뜨린 이 미모의 여성은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시는 분 연락 바람.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힘이고 가능성입니다. 나는 그 연약해 보이는, 그러나 누구보다도 강인한 그녀들에게서 내 조국의 눈부신 미래상을 보았습니다. 21세기를 선도해 나갈 젊은이들의 맑은 열정과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정감사로 떠난 출장길에서 만난 그녀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마을에 머무는 동안 열 번도 넘게 외쳤던 구호를 다시 한 번 외쳐봅니다. “비바, 페루! 비바, 꼬레아!, 비바, 꼬라오!”

▲ 작별의 순간이 다가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서로가 아쉬워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사실 여기 오기 전날 밤부터 우리는 고산병 예방약도 먹고, 주의를 단단히 들었습니다. 절대로 뛰지 말 것, 무거운 것 들지 말 것, 어지럽거나 구토가 나면 곧바로 연락할 것…. 그러나 원주민들의 뜨거운 환영과 따뜻한 환대 덕분인지 우리는 전날의 주의 사항도, 여기가 백두산보다 1000미터나 높은 곳이란 사실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마치 그들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혹은 지리산 계곡 같은 곳에서 반갑게 만난 지인처럼 금세 친해져 격의 없이 어울렸습니다.


▲ 노란 손수건 대신 태극 깃발과 페루 깃발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어떤 할머니들은 우리를 만나 너무 기쁘다며 눈물을 흘렸었다.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는 할머니들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일까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작별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원주민들은 어김없이 그 자리에 서서 계속 깃발을 흔들며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차례의 재촉 끝에 우리는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한 뒤 타고 온 버스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런 우리 뒤를 원주민들의 눈길과 마음이 아주 멀리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이 모두가 KOICA의 두 천사들 덕분입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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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퍼민트 2010.11.04 13: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블로그가 아니면 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의장님이 보고 온 두 천사에게 정말 존경어린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이제 우리도 경제 규모와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코리아의 이미지를 세상에 심어야 할 때입니다.

  2. 비엔나 2010.11.04 14: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른들도 '천진난만함'을 간직하고 있는 신비의 마을이군요!
    그 곳에 가면 모두 순수해 지나 봅니다.
    호야님 맑은 표정에서 느껴지네요.

  3. 해피송송 2010.11.04 14: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 어른아이 할 것없이 모두 얼굴이 발그레 하네요

  4. 사랑한가득 2010.11.05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땟국물이 흐르는 개발도상국가의 아이와 아저씨, 할머니들을
    사랑으로 품어 안은 모습이 내 마음을 울립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 쓸 수 없는 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정치도 그런 마음으로 하시겠지요?

  5. 코카콜라 2010.11.05 15: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을 읽으며, 사진 속의 얼굴들을 보며
    가슴이 캐시미론 이불을 덮은 듯 따뜻해졌습니다.
    사랑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듬뿍 느껴지는 글과 사진들입니다.
    아직도 저런 순수의 마을이 있다니,
    인류는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6. Sunny 2010.11.05 16: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속의 얼굴들은 순수하고 이국적이지만, 저들의 일상은 팍팍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으로는 행복지수는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보구요. 물질이 행복을 담보해주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품격을 유지시켜주는 물질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전쟁과 가난을 극복해낸 부모님세대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비바 의장님이십니다.!!Sunny는 진선희과장의 닉네임입니다^^

    • 김형오 2010.11.05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Sunny 영문도 한글도 이름도 얼굴도 이쁘군요 일은 또 얼마나 잘하는지. 힘든 곳에 수행해 온갖 사전 준비와 뒤치닥거리를 깔금하고 말끔하게 처리하는 능력에 우리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더 큰 발전있기를!! 호야

  7. 김형오 2010.11.05 17: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늦가을 추위를 녹이듯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길상사 법정스님 열반 다비 때 나는 우리 겨레의 한없는 사랑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사랑이 없는 정치 사랑이 없는 인생은 무의미합니다
    나는 인간을 사랑하기 위하여 정치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증오의 불씨를 꺼버리기 위하여 소명감을 갖고 정치를 합니다
    여러분의 진정한 사랑 애국하는 마음을 존중합니다 호야

  8. 르네상스 2010.11.06 08: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취와 체온이 느껴지는 블로깅입니다.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배어납니다.

  9. 2010.11.26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국정감사 여적(餘滴)=길 위에서의 이삭줍기
‘애니깽’,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름 

 

※읽기 전에 잠깐!
  ‘여적(餘滴)’이란 ‘글을 다 쓰거나 그림을 다 그리고 난 뒤에 남은 먹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칼럼은 얼마 전 막을 내린 국정감사, 그 뒷이야기쯤으로 해석해도 무방하겠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국감 얘기를 쓰려는 건 아닙니다. ‘길 위에서의 이삭줍기’란 표현에서 보듯이,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소속 의원으로서 남미(멕시코·콜롬비아·페루)로 출장을 갔던 길에 짬짬이 만난 의미 있는 여정을 네티즌들과 공유하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내 아이폰이 카메라와 녹음기 역할을 대신했습니다. 그래서 사진 상태가 썩 좋지 않음을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일부는 자료 사진입니다.)


  1905년 4월 4일 일본의 인력 송출 회사가 모집한 한인 1033명이 영국 상선에 몸을 싣고 인천 제물포항을 출발, 5월 16일 멕시코 유카탄 주의 중심 도시인 메리다 시에 도착합니다. 이로부터 저 잔혹한 멕시코 이민 1세대, ‘애니깽’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멕시칸 드림이 멕시칸 악몽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 같은 제목으로 만들어진 애니깽 소재 연극(왼쪽)과 영화(오른쪽)포스터. 1997년 개봉한 <애니깽>(김호선 감독, 장미희·임성민 주연)은 제작 기간 3년, 제작비 30억 원, 출연진 1만 여 명이 동원된 대작으로 34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연극과 뮤지컬(원작 김상렬)로도 만들어져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김선영의 3부작 대하소설『애니깽』,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도 애니깽을 소재로 하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메리다 시에 도착한 우리 팀은 한인 후손들의 증언과 이민사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통해 멕시코 이민 1세대 선조들의 슬프고도 감동적인 삶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사진들을 고르고 녹음을 듣고 관련 자료를 찾으면서 나는 다시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5년 전 일입니다. 1905년은 나라의 운명이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혼미하고 위태로울 때였습니다. 가난에 찌든 농민과 도시 노동자, 그리고 변화를 갈망하던 이들에게 조국은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못하는 존재가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과 영국인 브로커의 감언이설에 속아 한 조각 희망을 움켜쥐고 정든 고향을 등지게 됩니다.  



▲ MBC에서 멕시코 이민 100주년을 맞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속에 비친 에네켄 농장. 100여 년 전 출신성분이 각양각색인 한인들은 노예 사냥꾼들의 사탕발림에 속아 지구 반대편으로 망망대해를 건너왔다. 저 무성한 에네켄 잎들은 그들의 애환을 기억하고 있을까. 

애니깽은 스페인어 ‘에네켄(Henequén)’의 한국식 발음 언어. 당시 메리다 지역 경제의 중심을 차지했던 에네켄은 *용설란(龍舌蘭)의 일종으로 이민자들은 모두 이 에네켄 잎을 잘라 모아 다발로 묶은 뒤 가공 공장으로 옮기는 일(펭카)에 투입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음이 ‘애니깽’으로 변하고 그 의미가 확장돼 나중에는 22개 에네켄 농장에 분산 배치되어 노예처럼 일하던 이민자들과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키가 2미터에 이르고 줄기와 가시가 억센 열대 선인장. 잎 모양이 용의 혀(龍舌) 같다 해서 우리말 이름은 용설란(龍舌蘭)이다. 초록색 이파리에 강도와 끈기가 강한 섬유질이 함유돼 있어 롤러로 으깬 후 펄프를 긁어내어 굵고 질긴 선박용 로프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20세기 초에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해운업이 호황을 누려 특히 수요가 급증했다. 온대 지방에선 관상용으로 키우지만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 1백년 만에 꽃이 핀다 해서 ‘세기의 식물(Century Plant)’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데, 꽃을 피우고 나면 곧 죽는다고 한다.





▲ 2005년 메리다 시내 중심부에 세워진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탑. 메리다 시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동네의 컨벤션 센터 앞에 조성되었다.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인회 목사가 디자인했다. 그래서인지 세련된 맛이 덜하다. 탑 맨 꼭대기에는 양옆으로 에네켄 이파리를 뜻하는 상징물이 솟아 있다. 중앙에 있는 자석 모양 조형물은 유나이티드(United), 즉 연합·단합을 상징한다. 탑을 받치고 있는 5층 계단식 석조물은 원래 3단으로 설계되었지만 준비한 석재가 남은 데다가 좀 더 튼튼하고 위엄 있게 보이려고 2층을 더 높여 지었다고 한다. 기념탑 앞에서 찍은 인물 사진은 왼쪽부터 올센 부회장, 나(김형오), 울리세스 박 회장이다. 한인 후손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메리다에는 한-멕 우정병원도 지어져 있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 희망은 사라졌습니다. 멀리 두고 온 가족들과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고국으로 돌아갈 길은 영원히 차단되고 말았습니다. 부초(浮草)와 같은 유랑 난민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허위 광고와 사기 계약에 의한 불법 이민의 실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들은 *까레이스키와는 또 다른 형태의 유민이었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고려인, 高麗人)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1937년에서 39년 사이 스탈린은 일본과 밀약하여 독립운동의 근거지(배후지)를 말살시키려고 17만 명이 넘는 우리 동포들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고려인들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굴의 의지와 강인한 생명력으로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를 개척하고 집단 농장을 경영해  소련 내 소수 민족 가운데서 가장 잘사는 민족으로 뿌리를 내렸다.


  애니깽들은 당나귀보다도 더 처량한 신세였습니다.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가시에 찔려가며 *중노동을 했습니다. 하루 1만 개의 할당량을 못 채우면 채찍이 사정없이 온몸을 훑었습니다. 독기를 가득 품은 방울뱀들도 발밑에서 이들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산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1905년 중국인 허후이(河惠)의 편지가 황성신문에 실리면서 한인들의 비참한 처지가 고국에 알려졌다. 그는 “이곳 토인이 지구상 5, 6등 노예란 소리를 듣는데 한인은 그 밑의 7등 노예가 되어 영원히 우마(牛馬)와 같다”고 그 참상을 전했다. 이 소식을 들은 고종 황제는 눈물지으며 동포들을 빨리 송환하라고 지시했지만 이미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뒤라서 외부협판 윤치호의 멕시코행도 끝내 좌절되고 말았다.


  *약속된 임금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헐값으로 살인적인 노동과 착취에 시달리면서 값싼 술로 고통과 시름을 달래려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메리다 시에 ‘제물포 거리’(아래 사진 설명 참고)가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지상 낙원 멕시코에 가면 일당 1원30전에서 3원까지 보장한다고 황성신문에 모집 광고를 냈지만 실제로는 하루 35전밖에 주지 않았다. 그나마 하루 식대 20전을 떼고 지급했다.

 

▲ 메리다 시의 중심부인 산티아고 광장 앞에 위치한 이 ‘제물포(인천) 거리’는 가슴 뭉클한 탄생 배경을 갖고 있다. 에네켄 농장의 한인 광부가 이 동네 한 바에서 술만 마시면 곧잘 “제물포, 제물포, 제물포!”를 외쳐댔고, 그러면 주위 사람들도 같이 외치곤 했다. 바의 주인은 왜 그리 구슬프게 ‘제물포’를 연호하는지 까닭을 물었고, 그 절박한 외침이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로 시작되는 흑인 영가(한 늙은 흑인 노예가 고향 버지니아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은 미국 가곡)의 사연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감동한 주인은 주점 상호를 ‘제물포’로 바꾸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일대 거리 이름도 아예 ‘제물포 거리’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왼쪽 건물이 바로 ‘제물포’ 술집. 현재는 정부 소유 전당포(멕시코 전당포들은 모두 국영이란다)로 운영되고 있다.
 

  1909년, 4년간의 ‘노예 계약’이 끝나 권리를 찾으려 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돼 갔습니다. 이듬해 한일합병이 되자 이들은 국적마저, 돌아갈 조국마저 상실해 버렸습니다. 무능하고 무력한 식민지 조선에 의해 이들은 역사에서조차 버려지고 지워진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쿠바로 재이민을 갔습니다. 물론 그 모든 비극의 이면에는 한인들의 하와이 이민을 막으려는 일제의 교묘한 음모와 야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민 비자에도 한인들의 출생지는 조선인데, 국적은 일본으로 표기돼 있었습니다. 일본 외무성 비밀문서를 통해 이미 확인된 사실입니다.)

 



▲ 제물포 거리에 붙어 있는 현판. 2007년 10월 15일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에서 설치했다고 새겨져 있다.(왼쪽 사진) 이민사 박물관 벽에 걸려 있는 낡고 얼룩진 태극기. 그 옆에 나란히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을 걸어 놓았다.(오른쪽 사진) 

  그러나 멕시코 100여 년 이민사는 좌절과 절망의 역사만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도전과 개척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현장에서 한국 근현대 이민사의 깊은 수렁을 벗어나 건강하게 움트고 있는 새로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멕시코 전역에서 에네켄처럼 굳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3만 명의 한인 후손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이들은 각계각층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계·법조계·학계·의료계·예술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로 떠오르거나 성공 신화를 써나가는 주인공들도 있습니다.  



▲ 1905년 4월 4일, 한인 1033명을 태운 영국 상선 ‘일포드(ILFORD)’호가 뱃고동을 울리며 제물포항을 떠났다.(위 사진) 배에 탄 사람들은 나름대로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배와 기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며 40여 일간의 고된 여정(우리는 비행기로 가는데도 20시간 가까이 걸렸다) 끝에 도착한 지구 건너편, 낯선 대륙에서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아래 사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탕수수밭의 꿈은 순식간에 가시밭 현실로 바뀌어 있었다. 한 사람 당 에네켄 잎 1만 장을 채취해야 그날 하루 작업이 끝났다.

   현재 6세대까지 내려온 한인의 후손들은 멕시코 전역에 3만 명 남짓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메리다가 5000명으로 가장 많고, 멕시코시티 2000명, 티후아나 1500명 순입니다. 이들은 6개 지역 별로 한인 후손회를 결성하고 있습니다. 유카탄 주 인구 200만 중 100만 명이 메리다에 거주하는 걸 감안하면, 메리다 지역에는 주민 200명 중 한 명 꼴로 한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후손 숫자는 센서스에 의한 것이 아닌 추정치입니다. 그만큼 살기가 각박했다는 반증이지만, 정확한 통계는 또한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나는 메리다 시에 머무는 동안 거리 곳곳에서 저 사람 혹시 한인 후손이 아닐까 싶은 얼굴들을 심심찮게 만났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친근감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 농장 관리인들은 말을 타고 다니며 게으름을 피우거나 일손이 더딘 노동자들을 보면 가차 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방울뱀에 물려 죽은 한인들도 많았다. 4년만 일하면 큰돈을 벌어 금의환향할 수 있다던 이들의 꿈은 허물어져 내린 지 오래였다. 

  국적도 모두 멕시코고 모국어를 잊은 후손들이 거의 다지만, 그래도 ‘아버지·어머니·할머니·할아버지’ 등의 호칭과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한국어로 할 줄 알았습니다. <아리랑>이나 <애국가>를 부를 줄 아는 후손들도 드물지 않다더군요. 5세대, 6세대를 내려왔지만 한국인의 모습만큼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이민 1세대 중에 여자는 200명 정도에 지나지 않아 현지 원주민 여성들과의 결혼이 잦다 보니 혼혈도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 1905년 5월 멕시코 도착 직후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위). 짚신과 한복 차림이 눈길을 끈다. 멕시코 이민사 100여 년을 통틀어 가장 오래 된 한인 1세대들의 기념사진이다. 앳된 소년의 모습까지도 보인다.
반면에 태극기를 배경으로 찍은 아래 사진은 위 사진보다는 좀 더 세월이 흐른 뒤인 것 같다. 남녀 아이들 옷차림이 비슷하면서도 단정한 걸로 보아 한글학교 교사들과 찍은 기념사진 같기도 하다. 위 사진과 아래 사진에는 아마도 동일 인물이 있겠지만 내 눈썰미로는 찾기 어려웠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샘솟는 사진들이다.
내가 아이폰에 담아온 이 사진들은 모두 한인 후손들이 가보처럼 간직해 오다가 박물관에 기증한 자료들이다.

  그날 메리다 시의 심장부에 있는 이민사 박물관에서 무엇보다도 나를 감동시킨 것은 한인 1세대들의 독립운동, 그 흔적들입니다. 설명을 해준 박물관장 *제니 장 씨도 이 대목을 얘기할 때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열정에 차 있었습니다. 애니깽이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숭고한 이름인 것은 그런 숨은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1세대, 2세대 애니깽들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대한인 국민회와 연결고리를 갖고 주권을 상실한 조국의 독립운동 비자금을 대는가 하면, 광복 후에도 조국의 불우한 동포들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습니다. 한글학교를 세워 후손들에게 모국어와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려고 애썼습니다. 그 척박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말입니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오래 된 우리말 책들이 나의 감동을 증폭시켰습니다.

*Genny Chans Song. 이민 1백주년을 기념해 2005년에 문을 연 이민사 박물관의 관장인 그녀는 한인 후손이다.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열강하듯 설명을 해주었는데 간간이 한국어(낱말 수준)를 섞어 썼다. 마이 아버지 정, 마이 어머니 송, 마이 할아버지, 마이 딸 식으로 가족 관계를 얘기할 때는 특히 그랬다. 이들은 이름 뒤에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쓴다. 조상이 고씨 성이면 코로라, 최씨 성이면 산체스로 쓰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제니 정 관장은 변호사인 아들 명함 뒤에 자기 이름과 주소를 적어 주었다. 척박한 환경에서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그녀가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서 순백으로 빛나고 있는 추억들. 나비넥타이를 맨 다섯 명의 청년은 예쁜 드레스 차림의 아가씨들과 합동 결혼식(약혼식?)을 올리고 있는 걸까? 화동을 들러리 세운 결혼식과 아마도 목사가 주례를 선 듯한 예식 장면도 보인다. 3대 아홉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 찍은 듯한 가족 사진은 단란하고 행복한 모습이다. 이때만 해도 한국인들끼리의 결혼이 드물지 않았었나 보다. 

  한 순간 케네디 대통령의 명언이 내 머리를 스쳤습니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라.” 

  멕시코 이민 1세대들은 국가로부터 혜택이나 도움은커녕 냉혹하게 버림받은 존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조국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고 또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 내 심금을 울린 초창기 이민자들의 나라 사랑 증표들. 발행일자가 1918년 12월 5일로 되어 있는 신한민보(1909년 2월 1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교민 단체가 창간한 대한인 국민회의 기관지) 호외.(위 왼쪽) 대한인 국민회 입회 증서.(위 오른쪽) 대한인 국민회 총회에 낸 의무금 증서.(아래 왼쪽) 1946년 고국의 헐벗고 굶주린 동포 난민을 구제하자며 모은 성금 장부.(아래 오른쪽) 

  그런 그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민주국가와 국민은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재외 교포들도 우리 국민들입니다. 앞으로는 투표권도 갖게 됩니다. 나는 재외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만큼 대한민국도 재외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이민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한국의 전통 각시 인형들. 화사한 한복 차림에 부채춤을 추고 있다.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 교민들은 모두 소중한 우리 국민, 우리 핏줄들입니다. 과거를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열어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더욱 활발한 인적·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역할을 다하자고 다짐하며 나는 메리다 시를 떠났습니다.

  멕시코 대사관 국감을 통하여 우리는 한인 후손들 문제에 대해 다음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첫째, 한인 이민 1백주년 기념탑이 너무 초라하다는 겁니다. 이 기념탑과 더불어 한인 이민사 박물관에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3만여 한인 후손들은 우리에게도 소중한 인적 자원입니다. 이들을 할아버지의 나라, 대한민국과 좀 더 가까워지게 해야 합니다. 그 방안으로 이들에게 한글 교육과 직업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을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만들면 어떨까요. 그리하여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향상된다면 국력도 그만큼 신장된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여러분 의견은 어떻습니까.



P.S. 한인회장 울리세스 박과 부회장 올센(어머니 성이 이씨인 이 두 분은 친척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민사 박물관 관장인 제니 장씨가 끝까지 동행하며 친절한 안내와 열정에 찬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 분들이 안내한 현지 음식점에서 우리는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리고는 조그만 선물로 성의 표시를 했을 뿐인데도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블로그를 통해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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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y Can 2010.10.27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로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국정감사 카메라는 남미에 안 따라갔나요?
    이런 현장을 생중계했더라면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한 국감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애니깽,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름의 주인공들은
    어쨌든(Any) 할 수 있다(Can)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애니캔(AnyCan)이란 별칭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2. 가을국화 2010.10.27 10: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라 안팎으로 한 많은 역사를 가진 민족이 우리 민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더 이상 이런 비운의 역사를 쓰지 않기 위해서
    보다 강하고 당당한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3. 모개 2010.10.27 12: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글이었습니다.
    투박하고 빛 바래진 사진들이 이 서사(敍事)의 진정성을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김형오 전 의장께선 학자같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학자같다는 말씀이 틀렸다는게 아니라 국정에 임하는 자세의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외교, 통상, 국방, 영토, 원전, 종교, 개헌 ....
    어떤 문제이건 시류를 따르기보다는
    꾸준한 연구와 깊이있는 검토의 결과물을 내놓고 화두를 던지는 분이 아닌가싶습니다.
    정치하는 분들이, 하고싶어하는 분들이 롤모델로 삼아야 할 분이 아닌가 싶고.


    재외동포 참정권 등, 제도의 시행과정에선 당면한 문제들의 예민한 모서리도 함께 드러날 것입니다. 이미 일부 재외교포들은 혼인을 통해 한국인이 되고서도 그 2세와 함께 다문화가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어렵사리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국적이나 참정권 문제 등등 현안이 있을 때마다
    고민없이 끊고 맺고 가닥을 잡아나갈 게 아니라
    이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그들에게 누구이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자문해야겠다는 생각 해보았습니다.


    이 홈피가 던지는 여러가지 질문들,
    제게 그랬던 것처럼 많은 분들의 가슴에 느낌표와 물음표를 남길 것 같습니다.

    • 윷걸 2010.11.01 2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학자적인 식견과 탐구욕, 문필가적인 감성과 구성력이 순금처럼 혹은 순은처럼 반짝입니다.

  4. atman 2010.10.27 1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 안녕하세요?
    슬픈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었습니다.
    G-20의장국이니하는
    전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대한민국의 국격에 맞도록
    이런 내용을 국민들이 많이 알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면 합니다.

  5. 휴머니스트 2010.10.28 0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은 남다른 휴머니스트인 것 같습니다.
    21세기 미래의 정치는 그런 휴머니스트가 이끌어가야 합니다.
    어떤 드라마나 휴먼 다큐멘터리보다도 감동적인 포스팅이었습니다.

  6. 규현 2010.10.29 0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도 안통하고 길도 모르고 할 수 있는건 오직 에네켄 잎 만장을 채취하는것 뿐.
    하지만 이것은 비단 역사속의 일이 아닙니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농장에서 일하며 영어를 배우는 젊은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애니깽들처럼 노예살이는 아니지만은요.
    국력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 포스팅입니다.

  7. 일필휘지 2010.11.03 0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적으로 쓴 글이 내 마음을 온통 물들였습니다.
    먹물의 진액만 벼루에 남았던 모양입니다.

  8. 김형오 2010.11.03 1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니깽 이야기"에 이렇게 뜨거운 반응 주셔셔 감사합니다. 바쁜 틈틈이 이것만은 꼭 함께 공유했으면 해서 올린글입니다.여적으로 올렸지만 사실 국정감사란 이런 곳,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악 조사 개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여건이 그렇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나는 외국에서 만나는우리 동포 우리 핏줄의 그 끈끈함과 저력을 느끼고 존경하게 됩니다. 제글에 감동받으셨다하는데 저는 오히려 여러분의 격려 말씀이 제 눈가를 적십니다 그동안의 피로가 눈녹듯합니다 함께 고생한 제 보좌진들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여러분 격려에 힘입어 에니깽의 문제 개선에 힘쓰는 한편 여적으로 또 다른 글 한편 올릴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9. 필링 2010.11.04 0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성과 이성과 지성의 삼두 마차가 이끌어가는 수레에는
    참으로 값지고 탐나는 보석들이 가득 실려 있습니다.
    여적으로 올릴 예정이라는 또 한 편의 글이 기대됩니다.

  10. 에스프리 2010.11.07 02: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이 미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용설란 가시에 찔려, 방울뱀에 물려, 농장주의 채찍질과 무자비한 학대에 시달려
    외롭게 숨져간 한인 1세들에게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후손들의 번영과 행복을 빕니다.

  11. 화룡점정 2010.11.08 03: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먹물이 말라가는 벼루에서 마지막 먹물을 찍어 당신이 그려낸 것은
    용의 눈, 그것이었습니다.

  12. 각시인형 2010.11.13 08: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으면서 어느새 눈물이...
    용설란 잎사귀에 그런 슬픈 사연이 숨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어요.

  13. BlogIcon 박주현 2012.01.25 0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곧 멕시코로 일을 하러 떠나게 되는 섬유디자이너입니다. 멕시코와 관련된 애니깽에 대한 이야기를 한비야 선생님의 책을 통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애니깽" 검색을 통해 이 글을 읽게되었는데, 멕시코에 가게 되면 꼭 이민사 박물관에 다녀와야겠어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한국인이라는데에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지난 100년간 우리의 선조들이 일구어낸 오늘날이 너무 자랑스럽네요...

김형오 국회의장의 독도 방문기

김형오 국회의장은 4월 18일 현직 국회의장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전격 방문하였습니다.
"어디쯤 오고 계시려나..?" 접안시설에서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경비대원들의 모습

헬기 착륙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산란기인 괭이갈매기들이 놀라지 않도록 보트를 타고 독도에 접근한 김형오 의장은 독도에 발을 딛기 전, 보트에서 아름다운 독도의 풍경에 할 말을 잊은 듯 했습니다.

접안시설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을 맞이하는 독도경비대원들

독도경비대 건물로 가는 길, 작은 풀 한포기조차 아름답습니다.

"이야~ 너는 독도의 민들레구나!"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도 독도에서 만나니 무척 반갑고 대견스럽습니다.

독도경비대 건물 앞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김형오 국회의장을 맞이하는 독도경비대원들

목청이 찢어져라 우렁찬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호명하는 경비대원.
"좀 작게 해도 괜찮아요. 헬리콥터 소리보다 더 커서 괭이갈매기들이 더 놀라겠다."

그래서 조금 작은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댑니다.
(앞서 목청 찢어져라 호명했던 선임대원분들, 혹시라도 목소리 작게 냈다고 후임들 뭐라고 하지 마세요~^^)

경비대원들이 준비한 시원한 물 한잔으로 건배사를 외쳐봅니다.
"독도는 우리땅!"

"암, 그렇고 말고! 독도는 대한민국 땅!"

독도경비대의 상황을 보고 받은 후, 조근 경비대장을 격려하는 김형오 국회의장.

국회전자도서관 시스템을 확인하는 김형오 국회의장.
경비대원들이 인터넷으로 국회도서관의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또한 국회도서관에서는 300여권의 도서를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순직위령비에 놓여진 국화꽃

이어서 독도 경비업무 중 순직한 분들을 추모하는 순직위령비에 헌화, 참배했습니다.

경계근무 중인 경비대원을 격려하는 김형오 국회의장.


점심식사에 앞서 독도에 울려퍼지는 애국가

바닥태극기 - 하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겠어요.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믿음직한 경비대원들의 모습.


그런데 이 때, 계단 밑에서 무엇인가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힝~ 손님 왔다고 나는 이렇게 묶어두고...안 짖을 자신 있다구요..."
애처로운 눈빛으로 방문단을 바라보는 삽살개 "지킴이"

지킴이를
발견하고 조근 독도경비대장과 지킴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하나~ 둘~ 셋!"

결국 계단 밑에서 해방된 지킴이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지킴이?? ^^


당연하고도 막연하게 "우리땅" 이라고 생각했던 독도에 직접 다녀오고 보니,
더욱 애틋한 마음입니다.

마치 예쁜 여동생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누군가 내 예쁜 여동생을 자기 동생이라고 우기는 것 같아요.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내 동생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기에 무시하거나, 의연히 대처하면 되는 일이지만 - 그래도 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숨길 수 없습니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독도를 경비하는 독도경비대원들의 수고에 깊은 감사를 보냅니다.
(사진촬영에 응해준 권춘구 수경, 전역 준비 잘 하세요~^^)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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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양말을 아십니까?"
(마치 길에서 '도(道)를 아십니까?' 하는 사람이 떠오르는군요.)

보드랍고 폭신한 재질의 양말로, 잠이 잘 오도록 발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의미로 수면양말이라고 합니다.

특이한 재질로 무척이나 따뜻하지만, 미끄러지기 쉽다는 단점도 있는데요, 이 단점을 500% 활용해 장점으로 승화시킨 현장을 발견했습니다..!


▣ 한겨울에 땀나는 사람들

26일, 김형오 국회의장은 밴쿠버 동계올림픽 참가선수단 격려 방문차 태릉선수촌을 방문했습니다.

체력단련장(월계관)에 들어서자, 건물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기합소리가 가득했습니다.
처음엔...국회의장이 건물에 들어서는 것에 맞춰서 우렁찬 기합을 넣는 줄 알았는데, (마치 군대에서 점검 받을때면 완전 깨끗하게 청소하듯이 말이죠) 체력단련장을 돌아보고 나니, 그것이 단지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체력단련장 안에는 신나는 댄스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참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운동을 즐기면서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음악이 바뀌었습니다.

"노래가 다 안끝났는데 자꾸 바뀌네요?" 라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질문에,
"체력단련을 위한 시간체크용" 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노래가 바뀔때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운동기구를 옮겨다니는 선수들이 보였습니다. 그 뒤에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는 코치님(?)이 있었습니다.


(사진촬영을 위해 곳곳에 길을 막고 서있는 기자분들을 헤치고 다음 운동기구로 이동하던 어느 선수의 "죄송합니다! 비켜주세요!" 하던 다급한 목소리가 기억나네요. 이 자리를 빌려 초를 다투는 훈련프로그램을 소화하는 선수들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었던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수면양말의 놀라운 활용!

체력단련장을 돌아보며 선수들을 격려하는 가운데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빙상종목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멋진 자세로 힘있게 쭉!쭉!


'와..! 스케이트 선수들은 저런 운동기구를 사용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아앗! 이것은!!


표면이 반들반들한 합판 + 수면양말 = 밴쿠버 빙상종목 금메달의 밑거름

운동화 위에 (수면)양말을 신고 힘차게 합판을 내달리는 모습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선수들의 진지한 눈빛은 마치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 태극전사들의 빛나는 선전을 기원합니다..!!!

집에서 편하게 앉아 TV로 경기를 볼 때는 몰랐습니다.
그저 선수들은 선천적으로 소질이 있어서 잘한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줄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단 여러분을 비롯하여, 모든 선수 여러분들이 고된 훈련을 이겨내고 좋은 결실을 맺으시길 기원합니다.
(혹시 좋은 결과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 큰 부담 갖지 마시고 훈련대로만 하시면 어떤 결과라도 좋은 결과일 것입니다. 화이팅..!)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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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달콤시민 2010.01.26 18: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이런 긴박한 순간에 태릉에 다녀오신거에요? 우왕! 짱 부러워요~~~

    근데 국회의장님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지중해에 계시더니 언제 오셔서 태릉을 가셨는지..ㅋㅋ

    • BlogIcon 맹태 2010.01.26 19: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선수들의 모습은 1분 1초가 아쉬워 보였어요.
      지금 흘리는 땀방울이 실전에서 실력으로 나타나겠지요.
      선수들이 시상대에서 흘리는 눈물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아요..^^

      참, 의장님은 어제 오셨구요, 오늘 태릉에 가셨답니다..^_^

  2. BlogIcon 수우 2010.01.27 08: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 어머 ^^: 태능에 선수들을 보러 가셨군요 ~ 어머나 ~ 멋지네용 ㅎㅎ

  3. 우와~ 2010.01.28 0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에 오랜만에 다시 "우생순"영화를 보면서.
    운동선수들이 참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다시 또 느끼게 되는군요.

    벤쿠버올림픽에서도 정말 멋진 성과를 들어내길 바랍니다!!!

  4. BlogIcon gemlove 2010.01.28 0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헐.. 저도 수면양말을 신고 있는데.. 용도는 완전 다르군요 ㄷㄷㄷ

  5. BlogIcon Mr.번뜩맨 2010.01.28 09: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뽀송뽀송하게 발을 유지시켜주는 수면양말이 메달따기의 일등공신이었군요! ^^

  6. BlogIcon 미자라지 2010.01.29 07: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저희집에도 있긴한데..
    발에 열이 많아서 전 못 쓴다는...ㅋ

  7. BlogIcon montreal florist 2010.03.02 0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열심히 땀흘려 훈련하고 있는 선수들 정말 대견하네여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의사 안중근의 유해는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를 그리워하며, 그의 흔적을 찾아나섰던 한국인 사업가 이진학씨는 마침내 2006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에 그의 동상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국 정부의 철수요청으로 11일만에 철거되고,

그리고 3년 뒤인 2009년 9월.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보내달라던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아직 지켜지지 못한채
그의 동상만이 덩그러니 인천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학술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아 공공전시에 부적합하다는 국가보훈처의 입장 때문에
국회 경내에 임시 설치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동상의 얼굴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

그리고 50일 뒤, 고국에서마저 푸대접 받던 안중근 의사의 동상은 마침내 안식처를 찾아 부천으로 떠나갔다. 

그가 떠나던 날의 아쉬운 모습을 담아봤다.




- 50일간 국회 헌정 기념관 앞에 설치되어 있던 안중근 동상

- 동상 이전 작업을 위해 크기를 측정하고 있습니다.

- 동상을 옮기는 데 필요한 작업 도구들

- 누군가 동상을 닦고 있습니다. 떠나보내는 아쉬운 마음 때문일까요?
칫솔을 사용해 구석구석 닦고 계십니다.

- 동상을 실어 나를 차량 겉면에 이렇게 현수막도 설치합니다.

- 동상을 들어 올릴 크레인이 도착했습니다.

- 동상을 들어 올릴 준비를 마치고
- 동상이 들어 올려집니다.
- 바닥에 눕혀진 동상.
- 동상에도 잘 나타난 안중근 의사의 왼손 약지.

- 동상을 고정하고, 태극기로 덮습니다.

- 태극기 위에 부직포로 다시 한번 감싸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랩으로 포장합니다.

- 동상을 고정할 부목을 설치합니다.

- 나무 상자 위에는 무궁화 무늬의 현수막을 덮습니다.

- 지게차로 동상이 들어 있는 상자를 이동 차량에 옮기고 있습니다.

- 국회 헌정기념관을 빠져나가는 차량의 뒷모습.

- 안중근 동상은 사라지고 울타리만 남았네요.

50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떠나간 빈자리가 참 아쉽습니다.


* 관련 포스팅
안중근 의사 - 동상은 한국에, 유해는 공사장에?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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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칸타타~ 2009.10.22 1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네요.

  2. BlogIcon Mr.번뜩맨 2009.10.22 2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정말 안타깝네요.. 참 많이 반성해야할 것 같습니다.

    • BlogIcon 맹태 2009.10.23 0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중근 의사님께 참 부끄럽고 창피한 후손이 된 것 같습니다. 어서 유해도 발굴하여 송환해야 할텐데요.

      혹시 유해 발굴 되더라도..사진의 골격과 맞지 않다고 하지는 않겠죠??

  3. 침팬지 2009.10.22 22: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이런 일이....아까 보니 뉴스에서도 안중근 의사 이야기 나오던데...쩝

  4. 소나기 2009.10.23 0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간에서 만들면 안되고, 공공기관에서 만들면 된다는 식의 <관존민비> 태도부터 뜯어고쳐야 할 듯...
    하는 일도 별로 없이 철밥통 끼고 앉아 논다는 말 듣지 않으려면 잘 하시오, 제발...국민들한테 사랑받는 국민의 진정한 도우미가 되시오...

    • BlogIcon 맹태 2009.10.23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민간에서 만들었지만, 처음에는 고건 전총리도 방문했고 반응이 좋았다는 뉴스기사도 있더라구요..

      '하는 일도 별로 없이 철밥통 끼고 앉아 논다'는 말씀은 조금 과하신것 같고, 국가보훈처에서도 무작정 반대한 것이 아니겠죠. 정말 그랬다면 그냥 효창공원에 설치했겠지만, 국가보훈처에서도 이 건에 대해서 열심히 업무를 진행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대다수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무원=철밥통' 이라고 결론 내리시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 촌철살인 2009.10.23 1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보훈처도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폄하하거나
    소홀히 할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온몸을 다바쳐 조국을 구한 그가
    100년만에 온 고국에서
    홀대 받는 느낌들어 ...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네요...

    • BlogIcon 맹태 2009.10.23 1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상 이전 작업을 지켜보면서 - 동상의 이동을 위해 목 부위에 줄을 걸때나, 나무 상자에 집어 넣을때 기분이 좀 씁쓸하더라구요.

      이제 안중근 동상은 부천시에서 잘 관리해 줄 터이니, 이제 유해를 빨리 찾는 것이 시급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6. 대한제국 2009.10.23 14: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무원=철밥통 이라기보다는 공무원=기계 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요, 공무원 10년이면 이미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생각을 할수 없게 되어버리니까요

    • BlogIcon 맹태 2009.10.23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중근 의사의 동상에 대한 포스팅이었는데,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루스벨트는 "인생이 주는 최고의 상은 가치 있는 일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업무를 하던지 능동적으로 최선을 다 한다면 창의적일 수 있겠지요? ^^

      감사합니다~

  7. 촌철살인 2009.10.23 18: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제국님... 공무원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많은신가 보네요 ~...

    • BlogIcon 맹태 2009.10.23 1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무원만의 이야기는 아니죠.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 지미 카터

  8. BlogIcon 탐진강 2009.10.23 2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중근 의사와 같은 선열들이 존중받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요.
    이상하게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9. 안중근의사동상이 왜 푸대접 받냐구요? 2009.10.24 0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로... 김혐오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 BlogIcon 맹태 2009.10.24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혐오는 누구신가요?
      제가 찾아가서 혼내주도록 하겠습니다.

      국회의장님 성함은 김'형'오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10. 안중근의사동상이 왜 푸대접 받냐구요? 2 2009.10.24 16: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창호"씨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뭐 그릴 놀랄 일이 아니겠지요.

  11. 지금도 왜종시대 2009.10.24 16: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종 흉노가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빨리 왜놈 종자를 몰아내고 안중근 의사가 대접받는시대가 와야 합니다.

    • BlogIcon 맹태 2009.10.24 22: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한민국 헌법 13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13조 ①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

      ②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③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특히 13조 3항 참고해주시기 바라며, 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어떠한 것에 대한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 "왜종/흉노 종자"라는 표현은 납득하기 어렵네요.

      어쨌거나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고민하시는 부분에 있어 참 감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내일은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 BlogIcon 저녁노을 2009.10.26 1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중해야 할 사람을 망각하며 사는 우리들인 듯...

    잘 보고 가요.

  13. BlogIcon mark 2009.10.26 1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상이던 흉상이던 제작을 하려면 실물과 같이 똑 같이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동상의 모습은 얼핏 보아 우리가 그동안 교과서에서 사징에서 본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전혀 다르군요. 기왕 돈들여 만든 것 폐기하기 아깝지만 다시 제작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실물과 닮지 않은 것을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 BlogIcon 맹태 2009.10.26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그런가요?
      실물과 닮지 않았다고해서 의미가 없다는 말씀은 공감하기 어렵네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은 확인할 길이 없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실물과 닮지 않았을것 같아요. 어느 인물이 얼만큼의 명성을 얻은 이후에는 아이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물에서 느껴지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상을 만드는 것이죠. 단지 구체적으로 '닮은' 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념품 가게에서 레이저로 얼굴윤곽의 높낮이를 파악하여 만들어주는 크리스탈 레이저만큼 정확한 것이 없겠죠..?

      사진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생김새를 먼 역사 속의 인물들에 비해 비교적 자세히 알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고요.

      mark님의 말씀에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故윤영하 소령의 흉상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 안중근 의사 동상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 의미 없다'고 하기엔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14. 김꼬르 2010.01.05 14: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1월4일)아침 많은 눈 내렸읍니다.
    부천 안중근공원(구 중동공원)에도 눈이 많이 왔읍니다
    대한민국의 자랑, 안중근의사 동상 위에도 눈이 내렸읍니다

    우리 부천에서 조용히 잘 모시고 있읍니다.
    자주 오셔서, 방문하는 어린이들에게 나라사랑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십시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15. ㅋㅋㅋ 2011.06.07 0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물의 생김새야 어쩔 수 없지만 동상이 너무 초라합니다.
    지나가면서 보면 자꾸 안스러워지는 마음이 들어요.
    역사의 큰 인물을 이렇게 변두리에 안치한 것도 그렇지만
    외형만이라도 좀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단 생각이듭니다.
    그저 마음만이라도 소중히 간직하면 되겠다는 흔한 생각도 들겠지만
    현실이란 벽은 그렇지 않기에 역사의식의 고취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