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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故 임수혁 선수의 모교인 '봉천초등학교'입니다.
원래 그는 방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에 다이어트 삼아 운동을 하다보니
결국 5학년 때 야구부가 있는 봉천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사이에도 그의 모교에서는 후배 야구선수들이 맹활약하고 있었고
또 다른 후배들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운동장을 거닐며 故 임수혁 선수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노라니
가장 기억에 남은 3경기가 떠올랐습니다.


▲ 스포츠조선 2000년 4월 19일자



1999년 플레이오프 최종 7차전 (대구) - 기적 같은 대역전극의 초석이 되다

1승 3패로 몰린 롯데가 내리 2연승을 하며 최종 7차전을 맞이했습니다.
이승엽, 김기태, 김종훈의 홈런을 앞세운 삼성이 5:3으로 앞서고 있었죠.

2점차 뒤진 9회초를 맞이한 롯데.
공필성의 안타로 회생의 불씨를 살린 뒤 임수혁이 대타로 들어섰습니다.

임수혁은 바깥쪽 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른 뒤,
무언가 직감한 사람처럼 두 팔을 번쩍 들며 1루로 달려갔죠.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홈런!!!

이 동점포에 힘을 얻은 롯데는 연장전에 터진 김민재의 적시타에 힘입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동점홈런의 가치가 높았던 것은 상대투수가 최고의 마무리 임창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플레이오프 경기'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야구팬들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새긴 임수혁은 타격에 소질이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공격형 포수로 호쾌한 방망이를 과시하던 그가 그라운드를 떠난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이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무척 슬프군요.

과연 그가 쓰러진 당일,
무슨 일이 있었길래 팬들이 좋아하는 한 선수를 하늘 나라로 보내야 했던 것일까요?



▲ 스포츠서울 2000년 4월 19일자



2000년 4월 18일 (잠실) - 돌아오지 못한 그라운드

임수혁의 소속팀 롯데는 LG를 맞아 잠실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2회초에 유격수 유지현의 실책으로 출루한 임수혁은 우드의 안타 때 2루를 밟게 되었죠.
7번타자 조경환의 타석 때 갑자기 쓰러진 그는 더 이상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병상에 눕기 전까지 임수혁은
1992년 부정맥의 판정과 함께 운동을 해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심장질환약을 복용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쓰러진 뒤 5분 안에는 누군가에 의해 심장 마사지가 시행됐어야 했는데
10분이 넘도록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이른 것이었죠. 
이후 임수혁은 10년간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 스포츠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습니다.
임수혁의 부친인 임윤빈씨의 "제 2, 제 3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당부에 걸맞을 만큼
당직의사제도를 비롯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쨌든 이 사고 후 며칠 간 경과를 보니 더 이상 임수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됐구나 싶었습니다.



▲ 일간스포츠 2000년 4월 19일자 (당시 분위기와 열악한 야구 환경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대구) - 꿈에서라도 통했다면

2002년 한국시리즈(삼성-LG)는 작년 한국시리즈(기아-SK)와 더불어서
역대 한국시리즈 가운데 가장 극적인 명승부로 기억합니다.

특히 최종전(6차전) 9회말을 시작할 때까지 9:6으로 엘지는 승기를 잡고 있었고 
삼성은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이승엽의 3점포와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시리즈 기간 동안 맹타를 휘두른 마해영은 MVP에 선정됐습니다.

"(임)수혁이 형이 병상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운동을 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극적인 끝내기홈런을 날린 마해영의 소감 중 한 구절입니다.
(당시 삼성은 마해영의 맹활약 덕분에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습니다.)

최종전 전날 임수혁의 꿈을 꿨던 마해영은 아침에 일어난 뒤
좋은 징조라 생각하며 그라운드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역대 손꼽히는 한국시리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낸 주인공이 됐던 것이죠.



▲ 역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끝내기홈런을 작렬한 마해영 -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임수혁과 마해영은 대학(고려대), 상무에서 한솥밥을 먹은 절친한 선후배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롯데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팬들은 이들을 두고 '마림포'라고 불렀습니다.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에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고
선수협 문제 등으로 마해영은 삼성으로 이적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마림포를 볼 수 없게 되었죠.

그래서 2002년 한국시리즈 MVP가 된 마해영의 소감이 더욱 인상 깊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수혁 선수가 병상에서 일어난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 궁금했지만
이제는 영영 아무 말도 들을 수 없게 되었군요.



▲ 월간 베이스볼 1998년  


임수혁은 1998년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돌아봤을 때 가장 불만스러운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야구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것."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자상한 가장이었다고 합니다.

사고가 났던 당일, 상경하기 전에 임수혁은 스킨로션을 사기 위해 부인과 함께 백화점을 들렀습니다.
모처럼 데이트의 분위기를 즐겼던 그는 부인에게 "일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해서 미안하다"며
"원정경기를 마치면 모처럼 다 함께 영화 한 편 보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때가 의식을 갖고 있던 임수혁이 부인과 함께 했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경기장에서의 비보를 들게 된 부인은 아이들에게 차마 아빠의 슬픈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아빠가 멀리 전지훈련을 떠났다"며 둘러댔다고 합니다.



▲ 손문상 화백의 <얼굴> 중 '돌아오지 않는 주자 임수혁' 편
(지난 7일 이 그림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글귀가 새겨졌더군요.)



이후 10년간 병상을 지키고 살림살이에 육아까지 맡아
고생만 한 임선수의 부인과
그 고통을 함께 안은 가족들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지더군요.


임수혁이 병상에서 일어나 그라운드를 누비길 기대했던 
많은 야구인들과 팬들의 바람도 이제 물거품이 됐습니다.

'제 2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 '제 1의 임수혁'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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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9 15: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치료가 조금만이라도 빨랐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정말 안일한 야구의료체계에 한숨만 나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09 16: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은 말씀입니다.
      응급처치라는 건 시각을 다투는 거라
      사고가 터지고 5분 안에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데.
      아직 우리 나라는 멀었다는 느낌입니다.

      야구장 문제도 그렇고.
      전담의사제도도 제대로 시행되는 건 광주 밖에 없다고 하고.

  2. BlogIcon 커피믹스 2010.02.09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포츠에 무지한 저는 그런 사연이 있는줄 몰랐네요
    안타깝습니다. 응급처치만 했어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10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 발인을 했다는데,
      이제 병상의 모습조차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민방위 훈련 가면 응급처치에 관한 부분을 교육받는데
      임수혁 선수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챔피언이 앉은 돈방석은 얼마짜리? (3)

이기면 롤렉스 시계를 준다?




지난 (1), (2) 편에 이어  
다음 알아볼 시대는 1990년대입니다.

1990년대를 양분했다고 할 수 있는 팀은 LG 트윈스입니다.
해태가 4차례 우승을 했고, LG는 한국시리즈 4차례 한국시리즈 진출해서 2번 우승했죠.
 
그 중 1994년 LG 트윈스입니다.

1994년 LG 트윈스는 역대 우승팀 가운데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했던 팀이고

신인 3인방 대박에 여러 가지 이슈를 몰고 다닌 팀이었죠.

 

더구나 LG는 선수 지원과 복지에 대해 가장 선진화된 구단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타구단의 부러움을 샀었죠.

 

프로야구에서 현대식 전용연습장과 숙소를 구축한 최초의 구단이 LG 트윈스였습니다.

LG의 챔피언스파크-챔피언스클럽는 1993년에 모두 완성됐고,

1996년에 만들어진 삼성의 경산볼파크보다 3년이나 빨랐죠.

 

LG는 8억여원의 파격 보너스를 지급했었는데, 당시까지 사상 최고액이었다고 합니다.

 

그 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1994년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보너스

▷ 한국시리즈 직전까지 4억2천8백만원

▷ 우승배당금 2억5천만원

▷ 우승기념 구단 추가보너스 1억5천만원

▶ 우승보너스 총액 8억2천8백만원


뿐만 아니라 이미 지급한 보너스들도 상당했는데요.

포스트시즌(한국시리즈 포함) 이전에 지급됐던 각종 보너스,
즉, 페넌트레이스 당시 지급했던 보너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94년 LG 트윈스의 정규시즌 중 각종 보너스


▷ 월별 성적에 따른 메리트(4~9월) = 8천5백만원

▷ 2천만원 이하 저액연봉 선수를 위한 인센티브 = 5천7백만원

▷ 전반기 우승보너스 = 7천1백만원

▷ 정규시즌 1위 보너스 = 2억원

▶ 정규시즌 각종 보너스 총액 = 4억1천3백만원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2천만원 이하 저액 연봉 선수들을 위한 인센티브입니다.
대체로 고액 연봉자들이 팀 기여도가 높지만 적은 연봉을 받고 뛰는 선수들에게도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당근책이었죠.


LG는 우승한 뒤, 보너스 잔치 외에도
야구 관계자, 그룹 관계자, 재계 인사 등을 동원해서 우승 기념 리셉션을 치렀다고 하네요.

여기에 드는 경비는 1억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우승팀의 모기업들이 관련 상품에 대해 대폭 할인 행사도 했었죠.
즉, LG의 경우, 우승 기념으로 가전 할인 행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4년전인 1990년에는 LG가 프로야구, 프로축구를 석권했었죠?
그 때도 각종 할인행사를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94년 LG 트윈스의 우승 장면


다음은 2009년까지 해태의 마지막 우승이었던 1997년으로 가보겠습니다.

 

해태와 LG가 맞붙어 해태가 4승1패로 챔피언이 됐는데요.

그 시즌까지 포스트시즌 역대 최고 입장 수입(약 29억1천만원)을 기록했습니다.


그 덕택에 해태도 1997년 당시로서는 역대 최다 우승배당금 8억7천만원을 확보했죠.

종전까지 기록은 1995년 OB가 챙긴 7억6천7백만원이었습니다.

 

1996년 우승배당금 5억9천만원 중 경비를 제외한 5억1천만원 선수 몫으로 돌렸는데
1997년은 이보다 좀 더 많은 7억 안팎의 보너스가 풀렸다고 합니다.


 

1998년은 현대와 LG가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는데요.

여기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습니다.
 

1998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현대와 LG가 뜻밖(?)의 장외혈전이 있었습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LG 구본무회장이 그런 말을 했다죠?

 

"만일 우승컵을 되찾아온다면 수훈갑에게 가장 아끼는 시계를 벗어주겠다!!!"

 

문제의 그 시계는 '롤렉스' 시계로 시가로 8천만원 상당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당시 현대 강명구 사장은 정몽헌 구단주에게 건의를 했고

급기야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투수, 타자 각각 1명에게 그랜저XG를 걸었다니

감독, 선수 뿐만 아니라 야구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한마음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시리즈 MVP가 받을 경품은 EF소나타였거든요?
구단주가 내건 그랜저XG보다는 오히려 한 등급 아래의 차종이었다는 것.

이런 걸 보면 우승을 위한 경품 전쟁도 야구 경기 못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98한국시리즈의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현대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죠.
현대 유니콘스는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우승배당금 6억원을 포함해
총 10억원의 우승보너스를 챙겨, 당시로선 "역시 현대!!!"라고 할 만큼 파격적이었습니다.

다음 시즌인 99년에 한화도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우승 보너스 규모가 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하니 우승이 좋긴 좋나 봅니다.

이상 3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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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hoebe 2009.10.31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들 야구시킬걸 그랬네요.ㅎㅎㅎㅎ

  2. 순신이 2009.10.31 1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켜스케이팅 시키세요...야구는 한물 갔음..

  3. probe 2009.10.31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겨시킬 바엔 축구가 낫지.
    피겨는 김연아급 아니면 꽝.

  4. SCV 2009.10.31 1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보니 푸훕~~~~~~~
    전성기 찬호팍 연봉이 웬만한 축구스타 연봉을 능가할걸여?
    김연아가 잘해서 국위선양은 인정.
    근디 돈을 생각하면 야구만한게 업음.
    차라리 골프면 모를가?

    • 소나무 2009.10.31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두 성공을 전제로 하신 거겠죠
      성공하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이 더욱 많을거 같군요

  5. 순신이 2009.10.31 17: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네요..성공했을 때 얘기죠...어릴 때 유도하는 동네 형한테 '형은 왜 국가대표 아니냐'고 물어봤다가 맞아죽을 뻔했던 경험이 있죠..그 형 대답이 "넌 우리나라 전체에서 공부 제일 잘하냐?" 였거든ㅇㅅ..

  6. BlogIcon 아라누리 2009.10.31 2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그 당시에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2009년과 2002년 한국시리즈 공통점 10가지

이 글에 앞서 열심히 싸워준 우승팀 기아와 준우승팀 SK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들의 혼신을 다한 플레이가 명승부를 이끌어냈습니다.

극적으로 우승한 기아도 대단했고, 지칠 줄 모르는 근성의 SK도 놀라웠습니다.
기아에겐 축하를, SK에겐 위로를 보냅니다.

당신들이 있어 야구팬으로서 행복했습니다.
문득 야구를 보는 순간, 2009년과 2002년과 닮은 꼴이 있어서 정리를 해봤습니다.




[ 2009년과 2002년 한국시리즈 최종전 공통점 10가지 ]

1. 최종전 9회말 1사에 끝내기 홈런으로 한국시리즈 종료

→ 나지완의 끝내기 솔로포로 종료 vs 이승엽-마해영 랑데뷰 대포로 종료


2. 준우승팀 사령탑이 김성근 감독

→ 2009년 SK 감독 vs 2002년 엘지 감독

(패장이지만, 이 분 참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명승부도 적수가 강해야 명승부라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3. 우승팀이 최종전에서 역전하기 전까지 뒤지고 있었던 최대점수차는 4점차

→ 기아 1:5에서 역전 vs 삼성 5:9에서 역전


4. 최종전에서 우승팀 3번타자의 결정적인 홈런이 터짐

→ 9회말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 vs 9회말 이승엽의 동점 3점홈런


5. 최종전에서 먼저 3점을 낸 팀이 준우승

→ SK가 5회초에 3:0으로 리드 vs LG가 2회초에 3:0으로 앞섬



6. 우승팀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 이번의 경우, 타이거즈는 V10이지만, 기아 인수 후엔 한국시리즈 첫 우승

삼성도 당시 한국시리즈는 첫 우승


7. 우승팀의 최종전 선발투수가 초반 강판

→ 구톰슨 3이닝 2자책 vs 전병호 1 2/3이닝 2자책


8. 준우승팀이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치르고 올라옴

→  SK는 두산을 2패 후 3연승 vs LG는 기아를 3승 2패로 이김


9. 우승팀 4번타자도 제 몫을 다함

→ 타율 0.320 6득점 5타점의 최희섭 vs 한국시리즈 MVP 마해영


10. 정규시즌 우승팀이 한국시리즈 1차전 이기고 우승

→ 기아 승률 0.609로 1위 vs 삼성 승률 0.636으로 1위


다시 한 번 기아에 우승을 축하드리고, 명승부의 파트너였던 SK에게도 위로의 박수를 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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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랭빠 2009.10.25 02: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갸팬입니다.
    이런 한국시리즈보니 02년과 비슷하다는 생각들었어요.
    정리된것을 보니 의외로 공통점이 많았군요.

  2. 파라독스 2009.10.25 0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코시는 일부 장면에서 양 팀 모두 씁쓸한 면이 있었습니다.

    • BlogIcon 칸타타~ 2009.10.25 03: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소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어도 다 끝난 경기이니
      좋은 쪽으로 서로 생각했으면 합니다.
      승부에서는 적이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는
      감독, 선수 간에는 동업자의 관계잖아요.
      앞으로 야구는 계속될 테니 서로 너그럽게 봅시다. ^^

  3. 목포의눈물 2009.10.25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오늘 기아 우승의 기쁨에 취했는데.. 이글 보니 김성근이란.. 사람의 운명도.. 기구하네요.

  4. SK는 2009.10.25 16: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K는 오락에 나오는 끝판왕 같더군요...
    죽여도 죽어도 안죽습니다.
    김광현 박경완 전병두가 빠졌는데 이정도라니
    진짜 대단한거 같아요... 내년에는 더 강해질것 같아서 더 무섭습니다.
    어떻게 이런 팀을 만든건지 김성근 감독님 진정 존경스럽네요..

    • BlogIcon 칸타타~ 2009.10.26 0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래 김성근 감독은 이기는 야구보단 지지 않는 야구를 추구하잖습니까?
      그러니 지더라도 상대방의 진을 빼놓는 것 같습니다.
      준우승 인터뷰에서 내년에는 "상대방이 더 싫어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공언했으니
      내년에도 어느 팀이건 SK와의 경기는 쉽지 않겠네요. ㅎㅎㅎ

  5. 호랑이군단 2009.12.15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기아타이거즈 팬 인데요.제가 한국시리즈를 거의다 봤거든요?기아가 잘 하긴 하지만
    sk와이번스는 맨날 초반에 못하고 후반에 잘하더라요?
    플레이오프떼도 두산한테 처음에 2번연속 졌다가 후반에 다시 2번연속으로 이기고 한번 더 이겨서 한국시리즈를 진출한거잖아요.그리고 기아전에서도 후반에서 잘 하던데.한국시리즈5차전에는 로페즈의 완봉투와 나주환의 실책까지 겹쳐서 진 거고.그래도 두팀 다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잘 했어요~~~~~~~~~~~~~~~~~~~~~~~~~~~~~~~

  6. 호랑이군단 2009.12.15 14: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아타이거즈의 조범현감독과SK와이번스의 김성근감독님 모두 수고하셨어요.^^~~~~~~~~

  7. 사자군단 2010.05.20 19: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있는것 같은데요
    끝내기를 기록한 둘 다 우타자 였던것.
    우승의 발판을 만들어준 타자들(이승엽, 최희섭)은 모두 좌타자구요.
    그리고 이승엽 최희섭 모두 1루수 입니다.
    ㅎㅎ 제생각이지만 맞지 않나요??

  8. 삼성이여 영원하라 2010.07.12 05: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있습니다
    마무리 이승호가 던진 공과
    이상훈이 던진 공이 모두
    직구였다는 것입니다

  9. 사자군단 2010.07.28 21: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성이여 영원하라 님 Sk 마무리 채병룡이었는데...? 그리고 직구가 아니라 체인지업이었어여 2009시즌은 .... 모르시나 보내염


다행이다 SK, 아쉽다 KIA, 그 동상이몽의 6차전 경기평

- 벼랑 끝에서 살아올라온 SK : 이호준의 결승선제포, 이승호-채병용의 철벽계투
- 승부를 끝내지 못한 KIA : 아쉬운 김상현의 파울 타구, 최희섭의 건재함 과시



1. 원투펀치로 4승을 거두고자 했던 기아

(1) 윤석민의 아쉬운 패전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원투펀치가 각각 2승씩 합작해서 우승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만일 6차전에서 윤석민이 이겼다면 새로운 역사가 이뤄졌을 겁니다.

그러나 이날 윤석민은 2차전의 역투와는 다른 경기내용을 보였어요.
2회부터 3이닝 연달아 실점을 내주며 패전투수가 됐습니다.
특히나 비교적 낮게 제구된 공조차도 여러 차례 통타 당했던 게 눈에 띄더군요.

2회의 이호준 홈런
3회의 박재상 2루타
4회의 이호준 안타(이후 득점), 조동화의 적시타

흥미로운 것은 위의 결정타 맞은 구질이 죄다 변화구였다는 것.


(2) 아깝다~! 김상현

기아는 1회 1사 2루에 이용규가 출루한 뒤, 견제사로 아웃되며 출발이 좋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윤석민의 고전 속에 4회초 직전까지 0:2로 기아가 뒤지고 있었구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맞이한 4회초 1사 2루, 동점 찬스~!
모처럼 김상현이 기가 막히게 밀어친 타구가 그만 노란 기둥을 살짝 벗어나고 맙니다.
결국 비디오 판독 끝에 '파울'로 최종 확정됐죠.

야구에서 경기가 안 풀린다는 건 이런 것이죠.
김상현의 파울 타구가 홈런이 됐다면 경기의 향방은 오리무중이 되는 건데 말이죠.


(3) SK가 쉽게 이기게 내버려둘 순 없다.

0:3 상황에서 SK도 더 이상 달아나지 못하자, 정규시즌 1위팀의 저력이 여기서 나타납니다.
그 단초는 SK 고효준이 제공했습니다.

안치홍이 3번 연속 헛방망이질로 삼진 당할 때만 해도 "이렇게 끝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고효준이 급격히 난조를 보이며 이현곤, 김원섭에게 연속안타를 허용하니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죠.

4번 최희섭이 기아의 자존심을 세워줬습니다.
중전적시타를 날려 2:3까지 추격을 한 것이었죠.
볼카운트가 불리한 상황에서 터진 적시타여서 그 의미가 더 깊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기아가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었지만 이재주, 김상현의 타격이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그래도 9회에 우익수 이종범이 3루로 가던 주자 최정을 멋진 송구로 잡아낸 건 정말 대단했습니다. 
기아가 저력 있는 팀임을 과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2. 벼랑 끝에 가면 살아나는 SK

(1) 무조건 초전박살, 선봉에 선 베테랑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운 SK는 무조건 초반부터 앞서가야 했죠.
그동안 부진했던 이호준이 6차전 선봉에 섰습니다.

2회에 윤석민의 낮은 변화구를 걷어올려 담장 너머로 훌쩍 넘겨버렸죠.
뿐만 아니라 2:0으로 앞서던 4회에 다시 낮은 변화구를 공략해 안타를 작렬했고
조동화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귀중한 점수를 뽑아냈죠.

김재현의 활약이 떨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이호준의 활약은 팀에 큰 힘이 됐죠.
이호준과 더불어 박재상, 조동화 등이 윤석민의 변화구를 공략하여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2) SK 3득점의 의미

SK가 윤석민을 상대로 2,3,4회에 뽑은 득점 방식은 야구에서 대표적인 경우들이란 거죠.

2회 이호준 홈런 (1:0)
3회 박재상 2루타 + 정근우 희생번트 + 박정권 희생플라이 (2:0)
4회 이호준 안타 + 나주환 희생번트 + 조동화 적시타 (3:0)

SK가 강하다는 건 언제든 다양한 득점 방식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1점씩 저렇게 쏙쏙 빼먹으면 당하는 팀 입장에선 약오르면서도 1점, 1점이 멀어보이거든요.


(3) 무난하게 끝날 경기, 혼돈에 휩싸이다.

송은범이 일단 5이닝을 막았고, 이승호도 2이닝을 무난히 소화해서
경기는 3:0으로 그냥 끝날 듯했으나 결국 고효준이 또 사고를 치고 맙니다.

김성근 감독은 고효준을 키 플레이어라고 이야기했는데,
고효준의 부진이 SK를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6차전도 다름 아니었죠.
8회초에 등판하여 첫 타자 안치홍을 쉽게 삼진 잡은 뒤,
3안타를 맞아 3:2까지 쫓긴데다 역전주자까지 내보내놓고 강판당햇습니다.

순식간에 경기가 이렇게 되니, 낙승의 분위기가 싹 사라져버렸습니다.
채병용이 올라와서 급한 불은 꺼서 승리를 거두긴 했습니다.

그러나 7회말에 정근우의 도루 실패도 그렇고,
8회말에 박재상의 안타 때 1루 주자 최정이 3루에서 아웃된 건
SK가 달아날 흐름에서 자꾸 발목이 잡히니 쉽게 이길 경기에도 천신만고를 겪어야 했던 거죠.



3. 7차전 전망

더 이상 갈 곳 없는 승부에 이르렀습니다.
이젠 뭐 분석이고 전망이고 의미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사실 유리하고 불리하고도 없습니다.

양 팀 모두 가진 것을 다 쏟아부어야 해요.
선발, 중간, 마무리의 개념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타자건 주자가 없으면 테이블 세터처럼, 주자를 둔 상태면 누가 됐든 중심타자처럼
그렇게 야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간단하게 선발투수에 대해 언급하자면, 양 팀 모두 조금씩 걱정이 되는 투수들입니다.
시즌 후반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던 기아 구톰슨은 지난 3차전에 불안함을 노출했고
포스트시즌의 SK 글로버는 한 타순이 돌 무렵 3~4회부터
구위, 구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부분이 보였습니다.

만일 선발투수가 난조를 보인다면, 결국 교체타이밍과 교체선수의 활약이 승부처가 되겠죠.
그리고 낮경기라는 변수도 있으니 그 점도 중요하구요.

기아, SK 혹은 SK, 기아

양 팀 룰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원없이 야구하시길 바랍니다.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할 만큼 말이죠.

그게 양 팀 팬들을 위한 도리일 것입니다.
양 팀 모두에게 좋은 경기를 위해 힘을 불어넣을까 합니다. 화이팅~!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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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순신 2009.10.24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행인 건 뭐고, 아쉬운 건 뭐요? 참 나 원...나 원 참!!

  2. ㅁㅁㅁ 2009.10.24 10: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 이순신이란사람 쳐보쇼. 님 쫌 이상하네? 뭐하는사람임????????

    • BlogIcon 맹태 2009.10.24 1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내용도 포스팅 되어 있습니다.
      2009 희망탐방 내용 가운데 찾아보시면..

      http://www.hyongo.com/910
      http://www.hyongo.com/851

      백과사전(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b17a3711b)
      이순신 (조선 장군) [李舜臣]
      1545(인종 1)~1598(선조 31).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지내며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바다를 제패함으로써 전란의 역사에 결정적인 전기를 이룩한 명장이며, 모함과 박해의 온갖 역경 속에서 일관된 그의 우국지성과 고결염직한 인격은 온 겨레가 추앙하는 의범(儀範)이 되어 우리 민족의 사표(師表)가 되고 있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 하지만 시대적으로 보아 이순신 장군님은 아니신거 같습니다.

  3. 이순신 2009.10.24 15: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경영을 세 번 불러봐~ 그럼 이순신이 나타날거다,....ㅋㅋㅋ

논란의 잔치가 된 한국시리즈 5차전

"앞으로도 회자될 일 많은 5차전이겠네요."

이번 한국시리즈 5차전을 두고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또한 이번 한국시리즈를 보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떠올리고 싶습니다.
누구든 응원하는 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수록 판정이나 상황에 따라 예민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지나치게 첨예한 대립, 상대방에 대한 힐난이 지속되면
야구를 즐기는 수준을 넘어서버리니, 격한 감정과 반목은 조금 내려두시는 건 어떨까요?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출처 : KBO

1. 경기 총평

논란이 있는 부분들을 제쳐두고
경기 내용만 봤을 때, 5차전은 '로페즈의 원맨쇼'였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한국시리즈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일 기아의 우승으로 끝난다면 한국시리즈 MVP 0순위는 '로페즈'라고 꼽으렵니다.

지금 로페즈를 보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선수가 있거든요.
98년 현대 정민태. 딱 그 모습이 생각납니다.
원투펀치인 윤석민까지 대구를 이뤄봐도 그 당시 현대는 정명원이 있었으니 딱 들어맞죠.

*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마지막 완봉 = 1996년 3차전 이강철 (10월 19일)
*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마지막 완투 = 1997년 5차전 김상진 (10월 25일, 1실점)
* 타이거즈가 당한 한국시리즈 마지막 완봉 = 1996년 4차전 정명원 (10월 20일, 노히트노런)

상대적으로 SK의 경우, 투수진이 바닥이 난 가운데서도 카도쿠라가 비교적 역투를 했으나
타선 지원이 전혀 없었고 정우람이 고비를 못 넘긴 것이 패인이었습니다.

SK 입장에서는 상대 에이스가 신들린 듯 던지는데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하는 거니까요. 그나마 7회에 맞이한 1사 2,3루의 기회를 살렸어야 했는데, 결국 그 고비를 못 넘긴 게 뼈아팠죠.

* 1989년 (현행 포스트시즌 체제) 이후 단일 한국시리즈에서 2승 이상 거둔 투수
1990년 김용수 2승 (1,4차전 승리투수), 1991년 선동열 2승 (1,4차전 승리투수)
1992년 박동희 2승 (1,5차전 승리투수), 1993년 조계현 2승 (1,5차전 승리투수)
1993년 선동열 2승 (6,7차전 승리투수), 1995년 김경환 2승 (4,5차전 승리투수)
1996년 이강철 2승 (3,6차전 승리투수), 1997년 이대진 2승 (1,4차전 승리투수)
1998년 정민태 2승 (1,4차전 승리투수), 1999년 정민철 2승 (1,4차전 승리투수)
2000년 김수경 2승 (1,7차전 승리투수), 2000년 박명환 2승 (5,6차전 승리투수)
2001년 이혜천 2승 (2,3차전 승리투수), 2003년 정민태 3승 (1,4,7차전 승리투수)
2004년 신철인 2승 (8,9차전 승리투수), 2005년 하리칼라 2승 (1,4차전 승리투수)
2006년 배영수 2승 (1,4차전 승리투수), 2008년 정우람 2승 (2,3차전 승리투수)


2. 논란의 바다에 뛰어들어볼까?

서두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한 것은 "내 이야기가 정답이다." 그런 뜻이 아님을 밝힙니다. 다만 "입장에 따라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혹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걸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되, 비교적 중립된 입장을 견지하려 합니다.


(1) 뜨거운 감자 - 이용규의 스퀴즈번트

이용규의 스퀴즈번트에 대해 이야기할까 합니다.
해당되는 야구 규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6.06 다음의 경우 타자는 반칙행위로 아우트가 된다.

(a) 타자가 한쪽 발 또는 양쪽 발 모두를 완전히 타자석 밖에 두고 타격을 했을 때.

[原註] 타자가 타자석 밖에서 투구를 쳤을 때(페어나 파울 상관없이)는 아우트가 선고된다. 심판원은 고의사구(故意死球. Intentional Base on Balls)를 던질 때 투구를 치려고 하는 타자의 발(足)의 위치를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타자석에서 뛰어 나가거나 걸어나가면서 투구를 쳐서는 안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g) 노아우트 또는 1아우트에서 주자가 득점하려고 할 때 타자가 본루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비측의 플레이를 방해하였을 경우. 2아우트일때는 인터피어로 타자가 아우트가 되어 득점은 기록되지 않는다.( 6.06(c) , 7.09(a) , (d) 참조)

[註1] 본항에서 말하는 "본루에서의 수비측의 플레이"라 함은, 야수(포수 포함)가 득점하려고 하는 3루주자에 태그하려고 하는 플레이, 그 주자를 쫓아가서 태그하려고 하는 플레이 및 다른 야수에 송구하여 그 주자를 아우트 시키려고 하는 플레이를 말한다.

[註2] 이 규정은 노아우트 또는 1아우트에서 3루주자가 득점하려고 할 때, 본루에서의 야수의 플레이를 방해하였을 때의 규정이고, 3루주자가 본루로 향해 출발만을 하였을 경우라든가, 일단 본루쪽으로 향하였으나 도중에서 되돌아가려고 할 경우에는 타자가 포수를 방해하는 일이 있더라고 본항은 적용되지 않는다.

(예) 포수가 공을 잡아서 주자에게 태그하려고 하는 플레이를 방해하거나, 스퀴즈 플레이때 타자가 타자석 밖으로 나와서 번트를 시도하여 공을 방망이에 맞혀 반칙타구를 하거나, 정규로 투수가 투수판에서 발을 빼고 주자를 아우트 시키려고 송구한 공(투구가 아닌 공)을 타자가 치거나, 본루에서의 수비를 방해하였을 경우 방해행위를 한 타자를 아우트로 하지 않고, 수비이 대상인 3루주자를 아우트로 하는 규정이다.

분명히 이용규가 스퀴즈번트할 당시 발이 타자석 밖에 있었고, 스퀴즈 상황이었습니다.
고의사구는 피치아웃을 의미합니다. 인위적으로 공을 버렸다는 뜻이니까요.
또한 스퀴즈 상황에서의 투수의 투구는 주자를 아웃시키는 송구의 역할을 겸하죠.

따라서, 상황을 극복한 이용규의 재치는 높이 살 만하나, 이는 오심이라고 봅니다.
단, 이에 대해 SK측에서 별다른 항의는 없었습니다.

▲ 출처 : KBO


(2) 또 한 번 터진 문제 - 김상현의 수비방해

다음은 김상현의 수비방해 논란입니다.
이 부분은 이용규건과는 성격이 다른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수비방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 부분은 원칙적인 야구 규약에 관한 부분보다는 관례가 더 일반화된 룰이었죠.
마치 법과 판례가 있다면, 판례가 일반화된 형국이다 그렇게 보는 거죠.

사실 김상현의 동작을 수비방해라고 하게 되면
여태까지 시즌 중에 치렀던 수많은 유사 사례들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걸까요?
더구나 김상현의 방해동작은 비교적 베이스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야구를 봐도 이런 경우는 허다합니다.)

주자인 김상현의 발이 유격수 나주환의 발을 건드렸다면
원칙적으론 수비방해의 성격을 띌 수도 있으나
통상의 병살 상황에 비해 고의성이나 과함이 도드라질 정도도 아니었죠.
따라서 수비방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김성근 감독의 항의에 대해 저는 그렇게 해석하고 싶네요.
김성근 감독 입장에서 판정에 대한 불신, 로페즈에 고전하는 부분에 있어서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더구나 경기는 점점 기아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죠.
SK 입장에서는 신체적 접촉이 있었기 때문에 항의할 만한 여지는 있었습니다.
다짜고짜 "이 영감쟁이 왜 또 항의하느냐?" 그렇게까지 몰아서 보고 싶진 않구요.
어느 팀 감독이든 팬이든 자기 선수가 발에 걸리는 걸 보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다만 퇴장건은 좀 아쉽습니다.)

▲ 출처 : KBO


4. 6차전 전망

자, 일단 기아가 한 발 앞서갔습니다.

그리고 SK에겐 또 하나의 큰 과제인 윤석민이 남아있게 됐네요.
기아로선 원투펀치의 활약만으로도 한국시리즈를 거머쥘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습니다.

6차전의 가장 큰 승부처는 뭐니 뭐니 해도 이것 아닐까요?

'SK가 윤석민을 공략할 수 있느냐?', '윤석민이 SK 타선을 봉쇄할 수 있느냐?'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 선동열과 조계현이 각각 2승씩을 합작한 전례는 있는데
과연 그게 6차전에서성사될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기아 입장에서는 끝낼 거면 6차전이 더 확률 높아보입니다.
만일 6차전을 내주게 된다면, 기아도 로페즈, 윤석민 없이 경기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SK 입장에서도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므로 총력전으로 가야 겠죠.
선발 송은범이 등판할 예정이지만, 여차하면 글로버, 이승호도 출격대기를 해야 할 것이구요.

투수전 양상이 되면 결국에는 공격이든 수비든 주루든 집중력 싸움입니다.
더구나 양 팀 투수들이 좋기 때문에 상식적으로는 다득점 상황이 나오긴 어렵죠.
(물론 야구는 알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6차전도 양 팀의 명승부를 기대해보겠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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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감찬 2009.10.23 09: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쩝.......심판 판정, 뭐가 옳은 거요,대체...

    • BlogIcon 칸타타~ 2009.10.23 1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용규건은 오심, 김상현건은 큰 문제 없는 판정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이용규건은 SK측의 항의도 없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죠.
      더 이상 오심이나 혹은 그런 논란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2. mhlove 2009.10.23 09: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용규 스퀴즈 번트에 관한 부분을 오심이었다고 단정하는건 조금 무리가 있는건 아닌지요..
    타격시 배트박스를 벗어나는 타격을 하는 박재홍의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국내타자들이 번트를 댈때 대부분은 한쪽 발이 배터박스를 이탈하는데요~
    이것이 규정상 위반이기는 하지만 슬라이딩의 경우와 같의 관례이기 때문에 무리가 없었던 거지요
    미리 배터박스를 벗어난것이 아니고 피치아웃 상황에서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지는 공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심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관점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한 관점의 차이를 비교해 주셨으면 더 좋을 것 같네요

    • BlogIcon 칸타타~ 2009.10.23 10: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mhlove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보내기번트할 경우에는 이런 일이 적은데 비해
      기습번트시에 배터박스를 이탈하는 혹은 이탈의 가능성이 있죠.

      그런데 이 경우는 통상의 상황과 다른 경우이고 좀 더 과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개인적으론 그 부분에 있어서 저는 오심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규약에 구체적으로 명시가 되어있는데다
      스퀴즈 플레이는 2루 슬라이딩의 경우에 비해 흔한 광경은 아니죠.
      단, SK측의 항의가 없었다는 점도 이 상황에서는 빼놓을 수 없겠죠.

      판정에 있어서 어디까지 용인되느냐 그게 늘 논란의 핵심이죠.
      그래서 심판의 재량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절대적으로 어떻다고 말하긴 어려운 거죠.
      제가 오심이라고 판단했던 것은 개인적 관점에 불과합니다.
      논란이라고 제목에 단 것도 그런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죠.
      따라서 어투가 다소 단정적인 부분에 대한 것은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끝으로 관점의 차이에 있어서 언급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 mhlove 2009.10.23 1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5차전이 너무 논란의 중심으로 가는 것 같아서 글을 적어봤습니다.
      한국시리즈 무대라 그런지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3. 1 2009.10.23 11: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블로그의 주인장은 김형오 국회의장 인가요? 아니면 그냥 사진만 올려놓으신 건가요??

  4. BlogIcon 칸타타~ 2009.10.23 11: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연히 의장님이 이 블로그의 주인장입니다만, 저희는 팀블로그 형식으로 컨텐츠를 올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국회의장실 비서진입니다. ^^
    정치포털 블로그를 지향하지만,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이슈들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그 타이밍은 수시로 변경된다고 말씀드릴 수 있죠.

    정치적 쟁점이 강한 시기에는 정치적 이슈를,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다른 이슈를 폭넓게 다루면서
    국민들과 소통하는게 <만사형통 김형오> 블로그의 컨텐츠가 지향하는 바입니다.

    요즈음 팀블로그, 링블로그는 블로그스피어에서 일반적이며 자주 쓰이는 형식입니다.
    포털 사이트 daum의 <열린 편집자 코너>나 naver의 <오픈캐스트>는
    그보다 더 확장된 개념이라 할 수 있겠네요.

    홈페이지를 만들어놓고 방문자를 기다렸던 게 <소통 1세대>라면,
    <소통 2세대>는 블로그 세상에 직접 뛰어들어 네티즌에게 말을 거는 양상이라고
    쉽게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다.

    흔히 <소통 3세대>를 소셜네트워크. 즉, 트위터 등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만,
    트위터 등은 아직 그 효과나 운영이 확증된 바 없어 보입니다.
    물론 잘 활용하면 폭발력은 어느 정도 됩니다만......

    좋은 질문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들러주세요. 보다 알찬 콘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

한국시리즈 중간평가 및 향후 관전포인트

[ 1~2차전(광주) 정리 ]

원투펀치 앞세운 기아의 기선 제압
SK의 지독한 1~2차전 징크스

올 시즌 화려한 선발진으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던 기아는 홈에서 2연승을 차지할 때만 해도 시리즈를 조기에 끝낼 수 있을 만큼 기세등등했습니다. 기아가 자랑하는 원투펀치인 로페즈-윤석민은 각각 8이닝, 7이닝을 소화하며 승리를 이끌었죠. 또, 폭발적인 득점력을 과시하지 않았지만 이종범, 최희섭이 각각 1~2차전 적시에 결정타를 날려주며 투타 모두 안정세를 유지했습니다.

▲ 출처 : KBO

반면에 SK는 이번 한국시리즈에 엔트리에 올라온 송은범이 보강됐음에도 불구하고, 2차전에서 5이닝을 채우지 못하는 등 전반적으로 선발투수들의 이닝 소화가 적었던 것은 문제였죠. 때문에 많은 불펜투수들이 희생을 치르고도 소득 없는 경기를 펼쳐야 했습니다. 타선 역시 김재현, 이호준 등 베테랑 타자의 부진 속에 SK 특유의 응집력이 아쉬웠습니다. 특히 2차전의 경우, 기아보다 2배나 많은 10안타를 치고도 졸전을 펼쳤습니다.

SK에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이래 포스트시즌 1차전 패배는 상식이 되어버렸고, 1~2차전 패하는 것도 별로 놀라울 일이 아닌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포스트시즌도 예외는 아니었죠.

* 김성근의 SK가 치른 포스트시즌 1~2차전
2007한국시리즈 2패 뒤 4연승
2008한국시리즈 1패 뒤 4연승
2009플레이오프 2패 뒤 3연승
2009한국시리즈 2패 뒤 2연승 + ?


[ 3~4차전(문학) 정리 ]

배수진 친 SK의 기사회생
원정 전패의 수모를 겪은 기아

한국시리즈 3~4차전은 자리를 옮겨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펼쳐졌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SK 입장에선 필사적일 수 밖에 없었죠.

원래 궁지에 몰린 팀이 반격을 할 때 가장 우선되는 것이 선취점이고 그 다음이 대량득점입니다. SK는 그 길을 충실히 갔습니다. 3차전 초반부터 두들겨 5회초에 이미 8:0을 이뤘습니다. 결국은 이것이 4차전 승리의 교두보까지 마련한 셈이 됐죠. 비록 SK는 투수진을 보면 내일이 없는 야구가 되어버렸지만, 그걸 보완해줄 방망이가 살아난 것은 고무적이죠.

▲ 출처 : KBO

상대적으로 기아는 홈에서 벌어놓은 것을 다 까먹고 말았습니다. 특히나 역대로 타이거즈는 한국시리즈 3차전을 패한 적이 없었던 팀이었습니다. 그 법칙에서 처음으로 예외가 발생한 거죠.
(자세한 건 아래 표를 참고)

* 역대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3차전 성적 - 8승 1무 (팀명 뒤쪽이 홈)
1983년 MBC 3-5 해태
1986년 해태 6-5 삼성
1987년 삼성 2-4 해태
1988년 해태 3-0 빙그레
1989년 빙그레 0-2 해태
1991년 해태 4-1 빙그레
1993년 해태 2-2 삼성
1996년 해태 5-0 현대
1997년 LG 1-5 해태
→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최초로 패배
→ 이 8승 중 5승의 상대 감독이 김영덕(삼성 2차례, 빙그레 3차례)

어쨌건 중요한 것은 기아가 홈에서 했던 만큼 원정에서 자기 야구를 펼치지 못했다는 겁니다. 로페즈, 윤석민에 비해 구톰슨은 기대에 못 미쳤고, 양현종은 호투에도 승운이 따르질 않았죠. 더구나 타선 역시 승부가 SK쪽으로 기울어지고 난 뒤에 뒤늦게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3~4차전 모두 불펜투수들이 기대에 못 미친 것이 문제였죠. 특히 3차전에서 구톰슨이 내려간 뒤, 서재응이 제 역할 못한데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건 팀에게 악영향을 끼쳤죠. 4:0에서  무사 만루를 만들어놓고 밀어내기 사구를 2개씩이나 준 건 베테랑급 선수로서 이해가 안 되는 플레이였습니다. 거기에 정근우와의 다툼 속에 벤치 클리어링까지. 2승을 먼저 거둔 기아가 벤치 클리어링을 해서 얻을 이득이 별로 없었으므로, 서재응이 참았어야 했습니다.

SK가 매 경기 투수 소진이 극심한 상황였기에 3차전에서 기아 불펜투수들이 최소 실점으로 묶었다면, 기아가 비록 패했더라도 SK가 4차전에서 보다 더 힘든 경기를 펼쳤겠죠.


[ 5차전부터(잠실)의 경기 관전포인트 ]

아쉬움이 큰 기아, 그래도 원투펀치는 건재
투수진 소진이 큰 SK, 팀웍과 분위기는 회복세

5차전 이후 전망을 단적으로 내리자면, 그래도 기아가 유리합니다. 투수력에서 여전히 차이가 나니까요. 그러나 유리한 것과 이기는 것은 별개의 것이죠. 유리해서 이길 수도 있고, 유리함을 살리지 못하면 패할 수도 있는 게 야구입니다. 더욱이 광주도, 문학도 아닌 중립지 잠실로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양상을 띌 가능성도 있습니다.

5차전 이후는 아래 4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시면 흥미로울 겁니다.

1. 선발투수

우선 5~6차전 선발 예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차전 로페즈 (투구수 122개) vs 카도쿠라 (투구수 73개)
2차전 윤석민 (투구수 110개) vs 송은범 (투구수 59개)

1~2차전 승리한 로페즈, 윤석민이 5~6차전 출격 가능성이 높으므로 기아가 유리합니다. 다만 당시 투구수가 많았던 것이 5~6차전에서 어떻게 작용할 지 변수가 될 수 있겠죠. 두 번째 등판에서 SK 타선의 적응력과 송은범의 회복 여부도 눈여겨 볼 부분입니다.

2. 테이블 세터

지금까진 SK가 기아보다는 이 부분에서 조금 더 앞서고 있습니다. 기아는 2번타자 고민에 빠졌고, 이용규도 기대에 비해 활발한 타격을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기아의 강점인 중심타선을 살리기 위해선 테이블 세터에 공격의 키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3. 불펜투수

SK는 지쳐있는 것, 기아는 미덥지 못한 것. 이것이 양 팀의 고민거리죠. 기아의 경우, 선발투수가 6이닝 미만에서 강판될 경우, 누가 막을 것이냐가 중요하죠. SK는 김광현, 전병두 공백이 너무 크죠. 현재 매 경기 투수 총동원령이라 당일 투수의 컨디션과 김성근 감독의 교체 타이밍이 절대적인 변수가 되겠죠.

4. 장타력 폭발 여부

투수전으로 가든, 타격전으로 가든 장타의 존재는 어마어마합니다. 지금까지 터진 홈런포 숫자는 SK가 5개, 기아가 2개입니다. 5차전부터는 큰 잠실구장을 쓴다는 게 홈런 생산에 있어서 마이너스 요인이지만, 상대적으로 양 팀 투수들의 체력은 점점 떨어질테니 장타의 가능성을 높게 볼 수도 있을 겁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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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츄리닝 2009.10.21 2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기 두번째 찾아오는데.. 잼있는 글들이 좀 있네요..

    야구글 보러왔다가 경찰고깃국보고 놀랐다는..

  2. BlogIcon 칸타타~ 2009.10.21 21: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찾아주셔서 감사하구요. 앞으로 더 재미있는 곳이 될 테니 기대하세요.

<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3) >

이제 마지막 회인 1997년이군요.

3. 1997년 한국시리즈

1997년 정규시즌 5대 선수
홈런왕 포함 3관왕에 최연소 MVP 이승엽
다승왕 포함 투수 부문 3관왕 김현욱
타격왕 포함 타자 부문 3관왕 김기태
구원왕 야생마 이상훈
그리고 30-30클럽에 도루왕을 기록한 우승팀 해태의 이종범

1997년 한국시리즈는 말 그대로
이종범으로 시작해서 이종범으로 끝난, 이종범을 위한 시리즈였습니다.

설명 전에 잠시 이례적인 일이 있었는데요.
한국시리즈 1차전은 정규시즌 우승팀의 홈인 광주가 아니라 잠실에서 먼저 열렸습니다.

당시 규정이 이상했기 때문인데요.

서울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경우, 1,2차전은 잠실에서 치른다.

마침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온 LG의 연고가 서울(잠실)이었거든요.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잠실은 해태에겐 제 2의 홈이라고 할 만큼 팬들이 많이 찾아오셨거든요.

자, 그럼 97한국시리즈의 이종범을 찾아 떠나볼까요?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1차전 - 기선 제압의 선봉에 서다 ]

1차전 초반부터 이종범의 맹활약은 시작됐습니다.

3회 2사에 볼넷으로 출루한 이종범은 김용수의 예리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2루를 훔쳤고
2번타자 장성호의 볼넷 때 포수 김동수가 지나치게 이종범을 의식하다
공을 빠트려(패스트볼) 3루에 무혈입성했습니다.

이렇게 배터리가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LG는
최훈재에게 적시타를 맞고 선취점을 내주고 맙니다.

이후 LG의 반격으로 1:1 동점이 된 5회 2사에 등장한 이종범,
김용수의 변화구 실투를 받아쳐 좌중간으로 역전 아치를 그려냈죠.
당시 1루를 향하면서 두 팔 벌려 스스로 감격한 모습, 기억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장수들끼리 1:1 대결을 펼친 뒤,
그 결과에 따라 전투의 승부가 압도적으로 기울어져 버리죠.

그 당시 해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봉에 선 이종범이 공격의 물꼬를 터주자 나머지 선수들도 덩달아 힘이 난 듯
너도나도 방망이가 터지기 시작했고 결국 6:1로 1차전을 잡아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해태는 9번 김종국을 제외한 선발타자 전원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이종범은 수비에서도 2루수 김종국과 함께 병살타 3개를 이끌어내며
키스톤 콤비로서 찰떡 궁합을 과시했습니다.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3차전 - 결정적인 한 방, 기울어진 시리즈 ]

'비수를 꽂는다'는 뜻이 무엇인지 보여준 3차전이었습니다.

3차전은 광주에서 열렸습니다.
해태는 조계현, 강태원으로, LG는 손혁, 김기범, 차명석으로 짠물투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1:1로 동점이던 7회말 1사 1루 상황,
LG는 간판투수이자 마무리인 이상훈 카드를 꺼내듭니다.
이상훈과 이종범... 두 거물의 맞대결이 최고의 무대인 한국시리즈에서 펼쳐진 것이었죠.

이 승부에서 이기는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었습니다.
한국시리즈 전체 판도를 좌우할 만큼 말이죠.
그런데 이 승부는 어떻게 됐을까요?

결국 이종범이 역전 결승 2점홈런으로 사실상 승부에 종지부를 찍어버렸죠.
6회 전타석에서 차명석에게 뽑아낸 동점홈런까지 포함, 연타석홈런 기록까지 달성했습니다.

* 한국시리즈 연타석홈런 - 한국시리즈 3차전 (1997년 10월 22일, 역대 3번째)
  기존 기록자들 - 김성한(1989년), 이건열(1991년)

* 한국시리즈 최다홈런 - 3개 (당시 기준으로 타이)
  당시 기존 기록자들 - 김유동(1982년), 김성래(1986년)
  현재 한국시리즈 최다홈런 - 4개, 우즈(2001년)


97년 한국시리즈 이종범의 공을 높이 살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실상 시리즈의 맥이 되는 1차전, 3차전을 잡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두 번째 엘지가 자랑하던 주요 투수력을 홈런포로 모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당시 에이스-핵심불펜-마무리이던 김용수, 차명석, 이상훈을 각각 차례로 말이죠.
(1차전 - 김용수, 3차전 - 차명석, 이상훈)

* 1997년 LG 트윈스 주요 투수
97김용수 : 177이닝 12승 투수로 11승을 거둔 임선동과 함께 원투펀치.
97차명석 : 기교파 투수이긴 했지만 당시 정현욱, 전병두와 같은 핵심 불펜투수로 구원 11승
97이상훈 : 47세이브포인트로 당시 시즌 세이브포인트 기록을 세움
(세이프포인트 = 구원승 + 세이브, 2004년부터는 세이브만 계산함)

→ 당시 LG는 10승 투수가 김용수, 임선동, 차명석, 이상훈으로 4명이었습니다.


이미 삼성과 5차전을 치르면서 지친 LG 트윈스로서는
그들이 자랑하던 투수력이 일거에 무너지는 바람에
3차전 이후 내리 연패를 당하며 시리즈가 끝나고 맙니다.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5차전 - 유종의 미 ]

드디어 왕좌에 등극한 5차전이었습니다.


4차전 승리로 사실상 승부가 기울어졌지만,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말처럼
마지막 마침표 하나를 찍을 때까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죠.

* 한국시리즈 최다도루 - 13개 (93년 7개, 96년 4개, 97년 2개로 타이)
  기존 기록자 - 이순철 13개

0:1로 뒤진 3회에 김종국이 볼넷을 골라 출루한 뒤, 이종범은 안타로 터뜨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일단 이종범이 나간다는 건 상대팀에겐 매우 불안한 실점 위기임을 뜻했죠.

실제로 LG에서 한국시리즈의 유일한 승리투수였던 임선동도 흔들릴 수 밖에 없었고
장성호 내야 땅볼, 최훈재의 2루타 등으로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LG는 여기에서 빼앗긴 승기를 되돌리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끓었죠.

시리즈 내내 공격, 주루 뿐만 아니라 수비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인 이종범은
5차전 승리를 통해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MVP에 오릅니다.
팀 동료 이대진과의 경쟁에서 총 45표 중 33표를 차지했습니다.


< 에피소드 >
한국시리즈 5차전의 승리투수는 故 김상진 투수였습니다.
그 당시 역대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을 기록했죠.
그러나 아쉽게도 위암으로 너무 일찍 야구팬 곁을 떠나버렸죠.
1999년 6월 10일, 만 22세의 나이로.

1997년 한국시리즈를 볼 때마다 이종범의 맹활약, 이상훈의 아픔, 故 김상진의 역투
이 세 가지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더군요.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그동안 이 시리즈를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의 이종범
(1) 1993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2) 1996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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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r.번뜩맨 2009.10.20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선수군요. 잘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2. BlogIcon 달콤시민 2009.10.20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는 잘 모르지만.. 이종범 선수는 알아요!
    아버지가 해태타이거즈 팬. 지금은 기아..
    초등학교때는 화창한 토요일에 학교 다녀오면 2시부터 늘~~ 티비에서 야구만 해서 좀 싫었었는데 ㅜㅜ
    어느정도 크면서 박찬호 선수도 알게되고, 최희섭 선수도 알게되고, 좋아하는 선수가 생기니까 잘은 몰라도 야구도 좋아하게 되더라구요.
    가장 안타까운건, 저희 동네 야구팀이 없다는거 흑흑 ㅜ

  3. ㅎㅎㅎ 2009.11.26 1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 제일 잘하는 사람은 1번타자인줄 알았던 시절....그립습니다.

  4. 박종욱 2010.02.03 1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좋네요 잘보고갑니다 퍼갈게여


<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2) >

자~ 드디어 1996년입니다.

해태와 이종범의 1996년 한국시리즈를 정리해보겠습니다.


▲ 출처 : KBO

2. 1996년 한국시리즈

1996년 정규시즌 5대 선수
* 투수 3관왕이자 MVP 고무팔 구대성
* 다승왕, 탈삼진왕의 독고탁 주형광
* 30-30클럽의 신인왕 괴물 박재홍
* 타격왕 포함 3관왕 양준혁
* 그리고 도루왕에 20-20 클럽을 달성한 우승팀 해태의 이종범

사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이종범보단 투수진의 활약이 컸습니다.
해태 못지 않게 현대가 투수진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었죠.
정명원 같은 경우만 봐도 한국시리즈 최초의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을 정도니까요.
(오히려 이종범은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훠~얼씬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래도 우승의 주인공은 해태 타이거즈였습니다.
3차전 완봉승 포함 2승 1세이브, KS MVP였던 이강철
정민태와 맞대결에서 사실상 1승 1무를 펼친 조계현
2경기에서 7이닝 이상 소화한 이대진

이 선수들이 주역이었죠.

▲ 출처 : MBC ESPN (1996년 한국시리즈 최종전 당시 3루타를 치고 기뻐하는 장면입니다.) 

그럼 당시 이종범의 주요 활약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도루 1개를 더하며 
역대 한국시리즈 기록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한국시리즈 5경기 연속도루 (1993년 10월 22일 4차전 ~ 1996년 10월 16일 1차전)
→ 역대최다 타이 (장효조, 1984년 9월 30일 1차전 ~ 10월 6일)

이종범은 2차전에서 3회에 선제 1타점 적시타를 포함해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는데, 팀이 더 이상 추가점을 내지 못해 연장전에 이르렀죠.
이것도 당시로서는 기록에 올랐습니다.

한국시리즈 최장시간 경기 4시간 35분 (1996년 2차전)
→ 1996년 한국시리즈 당시까지는 신기록 (현재 기준으로는 역대 4위)
→ 현재 한국시리즈 최장시간 경기는 2006년 한국시리즈 5차전(삼성:한화) - 5시간 15분(15회)

최종전이 되어서야 이종범은 그다운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1회에 기습번트 안타로 출루한 뒤, 이어 도루를 시도했는데,
경험이 부족한 상대 포수의 악송구를 틈타 3루까지 진루했습니다.
후속타자인 홍현우의 내야 땅볼 때 홈을 파고들어 손쉽게 1점을 뽑아냈죠.

이후 9회 2사 1루에서 좌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터뜨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이후에 스스로 감격해하는 그 모습이 아직도 떠오르네요
.


< 에피소드 >

1996년 당시 해태의 상황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전합니다.
(종범신의 한국시리즈 활약상이 쬐끔 미진했지만, 이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96년 해태는 실제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1994년은 디펜딩 챔피언이었지만 준플에서 패했고, 1995년은 가을 잔치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선동열의 해외진출, 김성한의 은퇴로 팀의 구심점을 잃었고
전문가들조차도 1996년에 3강 후보를 전년도 3강이었던 OB, LG, 롯데를 꼽았죠.
오히려 해태와 쌍방울은 약체로 분류했었습니다.
(시즌 종료 후 그 두 팀은 나란히 정규시즌 1,2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시범경기는 꼴찌, 정규시즌 들어가서도 5월 중순까지 꼴찌였습니다.
흔히 명장은 위기에 강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김응룡 감독의 리더쉽이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면 사람들이 선동열, 김성한 없어서 그랬다고 할 텐데,
그러면 여태까지 그렇게 우승하는 동안 너희들은 뭐한 거냐?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어?
지금까지 해태라는 팀이 누구 몇 명의 팀이었어?"

이 말에 자극을 받은 해태 선수들은 힘을 내어 승승장구를 했고
급기야 7월 31일 현대를 제치고 페넌트레이스 1위를 달리게 됩니다.
1993년 9월 27일 이후 1047일만의 쾌거였죠.

7월 한 달 간 15승 1무 5패, 8월에는 10연승 등의 저력을 보였기에
그 기세가 결국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양심적으로 1996년 한국시리즈는 이종범이란 이름에 비해선 활약상이 쬐끔 약했습니다.
저도 그래서 어떻게.. 알려드리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네요. ;;;

(1), (2)편으로 만족 못하신다면 (3)편에서 끝내줄 것을 약속드립니다.

물론 (1), (2)편으로 만족하셔도 (3)편을 보실 것을 권합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에서의 이종범
(1) 1993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3) 1997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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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돌뼈 2009.10.19 08: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라 2탄!!!!!!!!!! 96년에 그런일이 있눈줄 몰랐는뎅.
    강철옹이 잘했던 해군화.

  2. BlogIcon 맹태 2009.10.19 0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종범신의 활약이 미약한 때도 있었네요.

    종범신이기 때문에- 다른 선수가 그랬다면 실망했을텐데

    '와, 이런 인간적인 매력도 있구나!'..ㅋㅋㅋ

  3. BlogIcon 윤석구 2009.10.19 09: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이렇게 무너지면 사람들이 선동열, 김성한 없어서 그랬다고 할 텐데,
    그러면 여태까지 그렇게 우승하는 동안 너희들은 뭐한 거냐? 너희들은 자존심도 없어?
    지금까지 해태라는 팀이 누구 몇 명의 팀이었어?" < 이말 때문에 자극을 받아서 꼴찌에서 치고 올라갔다구요?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픽션에 불과한 소리죠. 무슨 애들도 아니고, 팀 전력이 말한마디때문에 꼴찌에서 후반에 치고 올라가 1위를 한다는게 스포츠에서 말이 됩니까?
    1996년 해태가 초반 꼴지를 달리다가 치고 올라간것은 1995년부터 방위복무중이었던 이종범과 이대진이 1996년에 전역 한후 복귀한 후부터 치고 올라가 정규시즌 1위를 한겁니다.
    방위첫해인 1995년에 이종범은 홈경기만 출전할수 있었는데(규정이 그랬음) 당시 해태 선발투수들은 광주 홈경기에 등판하려고 서로 다툰것은 유명한 일화죠. 왜냐면 이종범이 광주경기만 출전할수 있었으니
    까.. 무슨 만화책에서 팀의 4번타자가 여자문제로 부진하자, 감독이 그걸 알고 "너란 놈이 이것밖에 안돼냐? 라는 한마디에 - 그 선수 엄청난 고민 - "그래 감독님 말씀이 맞았어"- 여자친구에게 성공해서 만나자고 이별을 통보함-여자친구 울면서 "니가 성공할길 바랄께- 한국시리즈에서 그 선수 역전홈런을 치자 관중석에서 헤어진 여친 눈물을 글썽임- 경기후 진한 포옹을 하며 엔딩... 뭐 이런 스토리네요.
    말한마디에 꼴찌에서 1위를 했다.. 이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되죠.

    • BlogIcon 맹태 2009.10.19 1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맞는 말씀이네요.
      그래도 감독님의 말씀도 어느정도 자극이 되기는 했겠죠.
      동기부여가 된 선수도 분명 있었을테고.

      암튼 '만화책 주인공'으로 예를 들어주셔서 빵 터졌습니다.ㅋㅋㅋ
      방위병 출전규정에 대한 것은 참 재미있는 일화네요.
      감사합니다.^_^

    • BlogIcon 칸타타~ 2009.10.19 17: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극적인 효과를 넣기 위해 포장을 한 건 사실입니다.
      저 말 한 마디에 모든 게 해결됐다는 건 아니지만
      김응룡의 리더쉽 속에 분명히 선동열, 김성한 없이 치고 나가고자 하는 면이 있었죠.

      포장의 본 뜻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윤석구님께서 주장하듯 전혀 어불성설일 정도는 아니죠.
      당시 감독으로서도 대물급 선수들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심했던 흔적들이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1996년 스포츠신문 3월~4월초 내용들을 보시면
      해태에 대해 하위권으로 전망한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전문가들이 3강 3중 2약 혹은 3강 2중 3약 정도로
      평가했던 기억이나네요.
      그 중 해태는 중위권 혹은 하위권에 평가됐죠.

      (시즌 직전 전문가 예상 속에는 방위병으로 잠시 빠진 걸 시즌 전부라 계산하진 않았을테구요.
      방위병의 핸디캡 속에 5월 중순까지 해태가 6~8위를 전전하는 것이 현실이 되고 있던 점은
      당시 언론이나 팬들에겐 익숙한 풍경이 아니었죠.
      다름 아닌 해태인데.)

      시범경기 성적도 안 좋았고 시즌 초반 출발이 안 좋으니 예견됐다는 기사도 있었고
      혹은 해태 이렇게 무너지나? 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죠.

      그리고 이종범이 방위복무 출전의 거의 마지막 세대였죠.
      원래 방위병 복무하면 홈 경기만 출전할 수 있었거든요.
      그게 1996년 시즌 중에 전역을 했죠.
      (1995년 이종범의 성적이 약했던 것도 방위 복무로 인한 출전 제한 때문이었죠.)

      1996년에 방위병 출전금지 조항이 생겼고,
      방위병 자체도 사라지면서 방위병의 홈 경기 출전도 영영 사라집니다.

      제가 이종범, 이대진 등이 방위병 복무한 걸 몰라서 안 넣은 게 아님을 밝힙니다.
      불혹이 된 이종범의 한국시리즈 맹활약에 감동 받아서 쓴 글이므로 이해바랍니다.

  4. BlogIcon 칸타타~ 2009.10.19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위병 이야기 나왔으니 말인데요.
    한국 프로야구의 마지막 방위였던 선수를 꼽아보겠습니다.
    시기가 약간 다르지만 거의 끝물(?) 방위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죠.
    위에 언급한 이종범, 이대진에 송구홍, 유지현, 박종호, 김한수, 정민철 정도가 기억나네요.

  5. 나불나불 2011.01.27 2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가지 잘못 표기해 놓으신게 있네요~ 1994년 해태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준플레이오프 자체를 치루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3위와 4위가 4경기(맞나)차 이상 벌어지면 준플없이 곧바로 플레이오프를 치룬다는 규정이 있었고, 4위 해태는 3위와 4경기 이상 벌어지며 준플레이오프를 하지 못했습니다... ㅎㅎㅎ


<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1) >


역시 이종범은 명불허전이더군요.

지난 KS 1차전의 2차례의 결정적인 적시타는 그가 날아다니던 90년대를 떠올리기에 충분했습니다.

90년대 이종범은 말 그대로 신(神)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90년대 최고 타자는 양준혁, 90년대 최고 야수는 이종범"

90년대 이종범은 당시 야수가 보여줄 수 있는 궁극에 도달한 선수였고
더욱이 그는 큰 무대에 설수록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던 영웅이었습니다.

그 신들린 이종범의 90년대 한국시리즈 활약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열혈 야구팬인 저로선 그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입니다.)

▲ 출처 : KBO

1. 1993년 한국시리즈

1993년은 대물급 신인들이 잔치를 펼친 시즌이었습니다.
이종범도 강력한 신인왕 후보였죠.

야수로서는 이종범, 양준혁, 투수로서는 이상훈, 박충식

이것만 해도 "기라성 같다"는 말에서 조금도 모자람이 없죠.
93년에는 양준혁은 거의 MVP급 활약을 했고, 박충식은 14승에 한국시리즈 15이닝 완투.
또한 94년이 되자 신인 2년차 징크스라는 말도 이들에겐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종범은 거의 4할 타율의 타자, 이상훈은 18승 다승왕이 됐으니까요.
양준혁도 3할을 쳤고, 박충식은 200이닝대 14승 투수가 됐었으니까요.

▲ 오래 전에 떠돌던 사진이라 출처를 알 수 없어서 따로 표기하지 못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히 94년부터 이종범은 야수 중에서 단연 최고가 되는데
저는 그 최고가 될 시발점을 93년 한국시리즈로 봅니다.

사실 이종범은 한국시리즈 3차전까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리즈가 무르익어갈수록 드디어 이종범의 진가는 발휘되기 시작했죠.
공교롭게도 4차전까지 불리하던 해태가 승기를 잡아가던 것도
이종범이 살아나던 5차전부터였습니다.

4차전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1타점 2루타를 터뜨리며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5차전 1:0이던 3회말, 좌전안타로 출루한 이종범은 2루, 3루 도루를 연거푸 성공하기에 이릅니다.
이른바 "이종범 출루 = 3루타" 공식의 막을 연 것이었죠.

일명 "이종범식 휘젓기"는 상대팀의 전 수비수들을 긴장케 만들었는데요.
후속타자였던 홍현우가 2루수를 겨우 넘어가는 외야 플라이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종범의 발을 의식한 우익수 이종두가 급하게 서두르다 에러를 범해 1점을 헌납하고 말았죠.

특히 팽팽한 투수전 속에 1:0에서 2:0이 되느냐, 1:1이 되느냐는 큰 차이였습니다.
왜냐하면
 해태는 1승 1무 2패로 열세였기 때문에 여기서 패하면 벼랑 끝으로 몰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죠.
그 상황에서 팀의 분위기를 이끈 선수는 다름 아닌 이종범이었죠.

여기서 이종범이 남긴 기록 한 가지를 보시겠습니다.

한국시리즈 1경기 최다도루 - 3개 (1993년 10월 24일 한국시리즈 5차전)


한국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은 7차전, 그 주인공 역시 이종범이었습니다.

1회에 우전안타로 쳐낸 뒤, 2루를 훔쳤고, 홍현우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선취득점을 일궈냈죠.

3회에도 빠른 발을 활용해 내야안타를 만들어낸 뒤, 역사에 남을 몇 가지 기록을 남겼습니다.

한국시리즈 도루 7개 - 역대 최다타이 (84년 장효조 7개)
한국시리즈 최다연속도루 성공 7개 - 신기록

1:0으로 앞선 4회에도 2사 1,2루 상황에서 좌익선상 적시타를 날려 승세를 굳혀갔습니다.

이런 이종범의 맹활약은 한국시리즈 MVP 투표에도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전체 48표 가운데 45표를 휩쓸었거든요.
신인왕을 놓친 아쉬움을 한국시리즈 MVP로 보답받는 순간이었습니다.

< 에피소드 >

당시 해태:삼성의 한국시리즈는 역대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올렸었습니다.

* 역대 1위 - 1993년 10.25일 MBC 한국시리즈 32.1%
* 역대 5위 - 1993년 10.21일 KBS 1TV 한국시리즈 26.2%

이런 시청률이 가능했던 건 말 그대로 별들의 잔치였기 때문이었죠.
5차전의 암표는 7~8만원을 호가했다고 하는데, 당시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상당한 금액이었죠.


이종범의 또 다른 모습을 보시려 하신다면 아래를 찾아주시면 됩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에서의 이종범
(1) 1996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2) 1997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Posted by 칸타타~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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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lavoswl 2009.10.18 10: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람의 아들이 괜히 붙은 별명은 아니더군요...마흔이라는 나이에도 참 대단한 이종범...해태 시절이 떠오릅니다. 홧팅!!

  2. 호랭빠 2009.10.18 11: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3년이면 내가 코흘리개인데 그당시두 종범신은 날라다녔네여. ㄷㄷㄷㄷㄷ
    암튼 좋은글 잘봤슴니다.

  3. 바람의 조카 2009.10.18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범신의 과거 이력도 화려했네요. 예전 일이라 말만 들었는데 우왕ㅋ굿ㅋ

  4. 삼성팬 2009.10.18 11: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과 당시에 야구봤던 기억이 나는데 이종범은 진짜 너무 힘든 선수였습니다.

    • BlogIcon 칸타타~ 2009.10.18 1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람의 아들이란 말도 때론 약했죠.
      이건 뭐 그냥 태풍이었습니다.

      일단 출루하면 2루 혹은 3루에 있으니.
      역대 1회 선두타자 홈런 제일 많은 선수이니
      장타면 장타, 주루면 주루, 수비면 수비.
      팔방미인이었죠.

  5. 용택신 2009.10.18 12: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엘지팬이구여.
    이종범이 큰경기에 강하다는걸 알고있었지만
    93코시에서 이런 일이 있는줄은 몰랐어여.
    엘지팬 입장에선 97코시가 더 뼈아팠습니다.
    시리즈물인것 같으니 3편까지 지켜볼께요 ^^
    암튼 잘봤습니다.

  6. 맹태 2009.10.18 13: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왕..종범신..역시 대단합니다.
    양신은 어떻습니까? 칸타타님의 체계적인 분석 기대합니다.^^

  7. 야구를 몰랐을때.. 2009.10.18 1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번 타자는 무조건 홈런도 치고, 수비도 최고에..발도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해태의 팬은 아니었지만..
    이종범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8. BlogIcon PC지존 2009.10.18 18: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글 잘봤습니다
    저는 이종범선수 말도안되는 수비가 기억에 남는군요
    도저히 이해할수없는 수비 ㅋㅋ
    시간되시면 정리좀 부탁드립니다^^

  9. 근데요 2009.10.18 20: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위에 저 아저씨 사진은 광고에요? 아니면 저분이 여기 관리자?
    아니면 추종자?;;;
    이런곳에 왠 스포츠 기사?;;;

    • BlogIcon 칸타타~ 2009.10.18 23: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국회의장 비서실에 근무하는 직원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블로그이구요.
      이 곳은 팀 블로그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여러 카테고리 중에서 이 곳은 와글와글 정보마당이란 곳입니다.
      대부분 김형오 의장에 관한 주제를 다루지만
      이 란은 직원들 개인적인 문화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글을 적는 곳이구요.
      이종범을 주제로 삼은 건 요즈음 한국시리즈가 치러지는데다
      제가 열혈 야구팬인지라 개인적인 관심사를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죠.

  10. 기파랑 2009.10.18 2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팀블로그인가, 링블로그인가 뭐 그런거 아닌가요??ㅜ 보아하니 국회의장 관계자들 팀블로그에서 따로 작성하는 그런 내용같은데...잘 모르겠네요..자세힌ㄴ....

    • BlogIcon 칸타타~ 2009.10.18 23: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기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블로그입니다.
      팀 블로그 형태로 운영되고 있고
      와글와글 정보마당이란 카테고리에서 글을 쓴 겁니다.
      이 카테고리는 개인적인 문화 취향에 따라
      직원들의 끼를 발휘하는 공간입니다.
      그에 맞게 제가 열혈 야구팬이라서 글을 올린 겁니다.
      거부감 없이 글을 보시면 됩니다.
      야구팬으로서 야구 글 쓴 것이니까요.

  11. KIA팬 2009.10.19 01: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아 팬으로써 이런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호호

  12. 이강철팬 2009.10.19 13: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 의원실 비서관입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


김성근, 김경문이 벗어나지 못한 이색기록


2000년대 후반의 프로야구를 주도해 온 두 팀이라면 단연 SK와 두산을 꼽을 수 있겠죠. 그런 훌륭한 팀을 이끈 두 명장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던 김성근 감독, 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김경문 감독, 두 명장에게서도 벗어나기 힘든 이색기록이 있었으니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野神 김성근 감독이 벗어나지 못한 이색기록 >

천하의 야신, 김성근 감독은 원래 징크스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팀이 연승을 달리면 속옷을 갈아입지 않기도 하고, 우연히 어느 길로 걷다가 그 날 승리하면 패할 때까지 그 길로만 다닐 만큼, 실로 징크스의 백과사전과 같은 야구인이죠.

그런 김성근 감독이 이번 플레이오프까지 치르면서 떨쳐내지 못한 이색기록이 있었네요.

 (한국시리즈는 KS, 플레이오프는 PO, 준플레이오프는 준PO로 줄여 칭하겠습니다.)


1. 천하의 야신, 1차전 승리와 인연이 없네

(1) 한국시리즈 1차전 패배 징크스

김성근 감독이 백전노장임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풀지 못한 것이 있다면,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가 없다는 것이죠.

2002년 KS 1차전 1:4 패 (vs 삼성)
2007년 KS 1차전 0:2 패 (vs 두산)
2008년 KS 1차전 2:5 패 (vs 두산)

흥미롭게도 수석코치이던 1982년 OB시절조차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패하지 않았을 뿐, 승리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982년 KS 1차전 3:3 무 (vs 삼성)


(2) 김성근 vs 김응룡 = 김성근 1차전 패배 + 탈락 ?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 명장이라 할 수 있는 김응룡, 김성근. 두 감독의 맞대결은 모두 3차례 있었는데 모두 김응룡 감독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공교롭게도 김성근 감독이 1차전을 모두 패했죠.

1987년 PO 1차전 3:11 패배 포함 2승 3패로 KS 진출 실패 (vs 해태) 
1989년 PO 1차전 1:10 패배 포함 3연패로 KS 진출 실패 (vs 해태)
2002년 KS 1차전 1:4  패배 포함 2승 4패로 준우승 (vs 삼성)


두 감독 모두 한 번 잡은 승기를 놓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 때문인지 2002년 KS는 치열하면서도 드라마틱했습니다. 전력이 좋았던 삼성의 김응룡 감독은 우승했지만 호되게 당했고, 약체팀을 이끌고 KS까지 올라간 김성근 감독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기적 같은 승부들을 이끌어냈죠.

그래서 탄생한 말이 "야구의 신"입니다. 우승팀 김응룡 감독이 인터뷰 때 약한 전력으로도 선전한 김성근 감독을 추켜세운 말이죠. 실제로 6차전 9회말 2사에서 이승엽-마해영의 쌍포가 터지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누가 우승팀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으니까요.

 

2. 질기다 질겨~! 플레이오프 최종전 징크스

김성근 감독은 6번의 PO에서 5차례나 5차전까지 가는 처절한 승부를 펼쳐왔었습니다. 이기는 야구보다 지지 않는 야구를 하겠다는 김감독의 스타일이 여기서도 묻어나네요. 게다가 상대팀도 만만치 않았음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 예외라고 할 수 있는 1991년조차 4차전이 최종전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연장 승부도 있었으니 어지간해서는 김성근 감독을 꺾을 수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죠.

1986년 PO 5차전 → 2승 3패로 탈락 (vs 삼성)
1987년 PO 5차전 → 2승 3패로 탈락 (vs 해태)
1991년 PO 4차전 → 1승 3패로 탈락 (vs 빙그레, 유일하게 4차전)
1996년 PO 5차전 → 2승 3패로 탈락 (vs 현대)

2002년 PO 5차전 → 3승 2패로 진출 (vs 기아)
2009년 PO 5차전 → 3승 2패로 진출 (vs 두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요. 김성근 감독에게 있어 20세기 PO는 모두 KS 진출 실패, 반면, 21세기의 PO는 모두 KS 진출에 성공했다는 겁니다.

 

< 뚝심의 김경문 감독이 넘지 못한 이색기록 >

1. 김경문 = 주유?

삼국지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죠. 주유의 외마디~

 ‘왜 하늘은 주유를 낳으시고 또 제갈량을 낳으셨는가?'

바로 김경문 감독과 김성근 감독의 관계가 연상되는군요.

김경문 감독은 역대 그 어떤 감독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룬 감독입니다. 올림픽 야구 금메달을 대한민국에 안겼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에서의 대권도전은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김성근 감독의 SK와는 너무도 악연이었죠.

2007년 KS 1~2차전 승리 후 내리 4연패로 준우승
2008년 KS 1차전 승리 후 내리 4연패로 준우승
2009년 PO 1~2차전 승리 후 내리 3연패로 KS 진출 실패

그것도 김경문 감독이 1차전 혹은 1~2차전을 이겨놓고 내려 3연패 혹은 4연패를 해서 결국 목표 달성이 좌절됐습니다.


2. 베어스 홈팬들이 갈망하는 그것은?

김경문 감독이 취임하고 두산이 가을 잔치의 단골 손님이 될 만큼 강자의 위치를 군림했지만 준우승의 아쉬움과 함께 따라다니는 게 있었습니다.

"한국시리즈 잠실 경기 전패 !!!"

2005년 KS 3차전 0:6 (vs 삼성)
2005년 KS 4차전 1:10 (vs 삼성)

2007년 KS 3차전 1:9 (vs SK)
2007년 KS 4차전 0:4 (vs SK)
2007년 KS 5차전 0:4 (vs SK)

2008년 KS 3차전 2:3 (vs SK)
2008년 KS 4차전 1:4 (vs SK)
2008년 KS 5차전 0:2 (vs SK)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한국시리즈 잠실 경기일 경우 두산 베어스의 득점력이 극히 저조했다는 것입니다. 8번의 한국시리즈 경기 중 3득점 이상 경기가 단 한 차례도 없었고, 무득점이 4차례, 1득점이 3차례나 됐군요.

거기에 "vs SK 일 때 이번 PO 포함 잠실 경기 8연패"

팬들을 위해서라도 얼른 이런 기록들 끊어지길 기대합니다. 두산 타자들도 홈에선 분발해주시구요.


3. 산이 깊으면 골도 깊다.

김경문 감독은 정공법을 좋아하면서도 대타 작전 등에도 능하고 선수들의 기동력도 잘 살리는 감독입니다. 이런 화끈한 스타일로 인해 연승과 연패가 극명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위의 경우들처럼 연패도 있었지만 다음과 같은 연승도 있었습니다.

08올림픽 9전 전승
05PO 3전 전승
07PO 3전 전승
08PO 1승 거두고 2연패 뒤 3연승

특히 올림픽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말이 9전 전승이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비록 이런 징크스에 가까운 이색기록들이 있었지만, 김성근, 김경문 두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을 높인 주인공들입니다. 두산 특유의 팀웍과 발야구, SK만이 가지는 조직력과 야구 스타일은 훗날에도 회자되기에 충분합니다.

앞으로도 이 두 명장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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