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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대항전으로서 용호상박인 한국과 일본이지만
그러나 양국 프로야구 우승팀 맞대결에선 2승 5패로 일본이 앞서있습니다.

하지만 경기에 따라 대한민국이 기대 이상의 경기를 한 경우도 있고
좋은 내용을 펼치고도 패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2000년대 한일 프로야구 우승팀 맞대결 정리)

1. 2005년 코나미컵 (삼성 vs 지바 롯데)

◎ 예선전 : 시구 김일융 - 시타 선동열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삼성

0

0

0

0

0

2

0

0

0

2

지바 롯데

3

0

0

1

2

0

0

0

X

6


양 팀 감독은 모두 10승 투수를 선발로 내세웠죠. 고바야시는 12승 6패(평균자책점 3.30)였는데 바르가스는 10승 투수이긴 했지만 함량 미달의 기량을 갖고 있었습니다. 중국전, 싱농(대만)전을 잡는데 주력하고 결승전을 노려보겠다는 심산임이 드러난 상태였죠.

경기 초반 지바 롯데의 기세는 무서웠습니다. 1번 니시오카의 3루타에 이어 2번 일본시리즈 MVP인 이마에가 적시타를 날려 간단히 선취점을 뽑았죠. 이후 프랑코, 사브로가 연달아 출루하며 다시 1점 추가한 상황에서 이승엽의 희생플라이로 3:0을 만들었죠. 4회에도 하시모토에게 1점홈런을 허용하는 등 바르가스는 5이닝 6실점을 기록했습니다. 때문에 경기 중반까지도 0:6으로 끌려가는 경기를 펼쳐졌죠.

다행히 바르가스 뒤에 나온 강영식-권오준-오승환-임동규가 호투 퍼레이드를 펼치며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선발투수 고바야시에게 타선이 묶인 가운데 양준혁이 삼성의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0:6으로 뒤진 6회초 1사 2,3루에서 우전적시타를 터뜨려 2점을 쫓아갔거든. 안타수 10-8로 상대적 우세를 거두고도 패한 경기여서 아쉬움은 더했습니다.

경기를 마친 뒤, 선동열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승엽 타석에 오승환을 올린 것에 대해 TV 중계를 보고 있을 한국팬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맞대결은 결국 오승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초구 직구 뒤 변화구를 던져서 이승엽이 2루수 플라이로 물러났으니까요.

▲ 2006년 코나미컵 당시 모습. 삼성은 아쉽게도 05~06년 일본 우승팀에게 모두 패하고 말았습니다.


◎ 결승전 : 시구 - 장훈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니혼햄

0

0

0

1

0

4

0

0

2

7

삼성

0

0

0

1

0

0

0

0

0

1

중국과 싱농을 격파하고 다시 만난 삼성과 지바 롯데. 그러나 이번에도 지바 롯데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삼성은 이 경기에서도 안타수 13-6의 우세를 살리지 못하고 패했습니다. 결국 집중력에서 갈린 한 판이었죠.

삼성이 초반에 선취점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1회초에 1번 박한이의 2루타로 무사 2루 기회를 맞이했으나 강동우가 번트를 댄 것이 투수 정면에 가는 바람에 2루 주자가 3루에서 아웃되고 말았죠. 그런데 다음 타자 양준혁이 안타가 나왔으니 삼성으로선 얄궂은 흐름이었습니다.

찬스 뒤에 위기, 위기 뒤에 찬스라는 말처럼 위기를 넘긴 지바 롯데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1회에 프랑코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뽑았죠. 3회엔 베니의 2타점 적시타, 5회엔 와타나베의 2점홈런까지 집중력 있는 공격을 펼쳐 산발적인 공격에 그친 삼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선동열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배영수가 이기려는 마음이 너무 앞선 것이 패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4이닝 5실점은 결코 에이스다운 성적이 아니었죠.

안지만-강영식-권오준-오승환의 계투가 성공하자 반격의 기회도 찾아왔습니다. 9회초에 박석민이 안타와 상대실책으로 득점권에 출루한 뒤 박한이의 적시타로 1점을 쫓아갔고, 김종훈과 김한수의 안타를 추가하여 3:5로 좁혔습니다. 그러나 추격이 너무 늦은 게 문제였죠. 5번 김대익이 퍼시픽리그 구원왕인 고바야시에게 삼진으로 무릎을 꿇으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 2006년 코나미컵에서 해설자로 나선 이승엽. 박한이가 장난을 걸고 있는 모습이군요.

 

2. 2006년 코나미컵 (삼성 vs 니혼햄)

◎ 예선전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니혼햄

0

0

0

1

0

4

0

0

2

7

삼성

0

0

0

1

0

0

0

0

0

1

2005년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잡은 삼성. 그러나 지바 롯데와 만났을 당시보다 더 힘든 경기를 펼쳤습니다. 에이스 배영수가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한데다 무릎 수술 후 겨우 뛰기 시작한 심정수까지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죠. 2006년 한국시리즈는 4,5,6차전이 연장전으로 펼쳐졌기 때문에 2005년에 비해 삼성이 컨디션 면에서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경기에서 가장 빛났던 것은 일본시리즈 MVP 이나바(니혼햄)이었습니다. 세기뇰이 여권 문제로 출전하지 못한 가운데 4번에 배치된 이나바는 4회초 2사에 선제 1점홈런을 터뜨렸고, 1:1 동점이던 6회초에도 역전 결승타를 날리며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날 승부처는 1:1로 동점인 6회초. 좌완 강영식이 좌타자 3명을 상대로 모두 실패하여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이후 등판한 권오준도 불을 끄는데 실패했죠. 밀어내기 볼넷과 적시타 등을 허용하여 점수가 1:5까지 벌어졌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강영식 투입에 대해 논란이 있었습니다. 구위가 좋은 권혁을 먼저 썼어야 했다는 이야기들이 쏟아졌으니까요.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선동열 감독은 "감독의 권한"이라고 못 박으며 투수교체 실패에 대해 일축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날 권혁은 2이닝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를 펼쳤기 때문이죠.

삼성의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만팀 라뉴와의 경기에서 임창용이 2:2에서 린즈성에게 결승솔로포를 맞고 2:3으로 말았죠. 결국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하고 3위에 그쳤습니다.

▲ 2007년 코나미컵에서 sk는 예선전에 주니치를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3. 2007년 코나미컵 (SK vs 주니치)

◎  예선전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SK

0

0

0

1

0

2

3

0

0

6

주니치

0

0

0

0

0

0

2

1

0

3

창단 8년만에 첫 우승의 감격을 누린 SK는 코나미컵에 임하는 자세도 삼성 때와는 달랐습니다. SK는 삼성이 참가할 때보다 적극적으로 일본 타도를 외쳤습니다. 결실은 예선전부터 드러났습니다.

주니치는 우즈 등 몇몇 주력 맴버가 빠진 상황이었지만 SK는 첫 경기부터 강수를 뒀습니다. 삼성이 결승전에 주력하기 위해 예선전에 약한 선발로 탐색전을 펼친 것과는 대조적으로 SK는 첫 경기에 김광현을 투입했습니다. 주니치도 팀 내 최다승(14승) 투수였던 나카다를 투입했죠. 2007년 김광현은 시즌 중엔 큰 활약이 없었으나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 에이스 리오스와 맞대결에 승리하며 대형 신인다운 면모를 드러냈던 바 있습니다. 이 경기에서도 그의 상승세는 이어졌습니다. 6 2/3이닝 1실점으로 주니치 타선을 틀어막아 승리를 안겼습니다.

5회까지 SK 김광현은 무실점, 주니치 나카타는 1실점을 각각 기록하며 투수전 양상을 띄었습니다. 6회부터는 타격전으로 전환되며 SK는 6~7회에 5득점, 주니치도 7~8회에 3득점을 올렸죠.

이 경기에서 선취점을 올린 쪽은 SK였습니다. 김재현이 선봉에 섰습니다. 그는 4회에 선두타자로 나와 2루타를 날린 뒤, 이진영의 2루 땅볼을 주니치 1루수 아라이가 글러브에서 펌블하는 사이에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6회에도 우중월 2루타로 1타점을 추가하여 한국시리즈 MVP로서의 위용을 유감없이 과시했죠. 뒤이은 이진영의 1타점 안타와 8회에 터진 이재원, 이호준의 적시타를 각각 보태어 SK가 6:3으로 승리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이날 인터뷰에서 "일본에겐 지기 싫었다"라고 운을 뗀 뒤 "1차전을 잡아 목표를 50%는 일군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김광현의 1차전 기용에 대해서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1차전 선발로 뛸 테니 준비하라"고 지시했었다고 합니다.

▲ 2007년 코나미컵에서 레이번은 썩 만족스러운 투구를 펼치진 못했습니다.


◎ 결승전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주니치

0

1

0

0

2

2

0

0

1

6

SK

2

0

0

0

0

1

0

2

0

5

과연 결승전다운 명경기였습니다.

1회말에 정근우, 이호준이 볼넷을 골라 출루하며 만든 2사 1,2루 기회를 마련한 후, 이진영의 우전안타, 박재상의 좌전안타로 2점을 선취했습니다. 주니치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SK 선발투수 레이번은 4회에 이노오우에게 허용한 1점홈런 외에는 역투를 펼쳤으나 5회 1사 후에 다네시게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준 뒤 흔들리기시작했습니다. 급기야 후지이가 동점 2루타를 작렬했고, 아라이의 땅볼 때 3루 주자가 홈을 밟아 2:3으로 역전이 됐습니다.

역전에 성공한 주니치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이번 코나미컵에서 큰 활약이 없었던 이병규의 방망이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던 것이죠. 6회에 선두타자 나카무라의 볼넷 이후, 좌측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작렬했던 것이죠. LG시절 한 때 사제지간이었던 김성근-이병규 두 사람에게 묘한 여운을 남기는 한 방이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재일동포 출신으로 대한민국 프로팀 감독인 입장과 한국인으로서 일본프로야구에 몸담은 선수의 입장이 묘하게 교차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2:5로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지만 SK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6회에 김재현의 1점홈런과 8회 2사에 터진 이진영의 투런포에 힘입어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었죠.

운명의 9회. 주니치는 9회초 대타 우에다가 볼넷을 골라나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SK 구원투수 로마노가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이바타에게 중전적시타를 맞아 결국 5:6로 분패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패했지만 SK는 우리 나라 프로야구가 일본의 수준급팀과 겨뤄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그것을 증명한 2007년 코나미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2007년 코나미컵에서 주니치가 우승한 모습입니다. 이병규의 2점 홈런이 커보이는 경기였습니다.


4. 2008년 아시아시리즈 (SK vs 세이부)

◎ 예선전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세이부

1

0

0

0

2

0

0

0

0

3

SK

0

1

0

3

0

0

0

0

X

4

2007년 코나미컵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칼을 갈았습니다.

이번에도 SK는 단단히 준비하고 나왔지만, 선취점의 주인공은 세이부였습니다. 아카다의 우중간 2루타 이후 히라오의 선제적시타가 터졌던 것이죠.

그러나 SK에는 승운이 따랐습니다. 2회말에 선두타자로 나온 박재홍이 친 타구가 좌측 폴을 비켜나가는 듯했는데, 3루심이 홈런으로 판정을 했던 것. TV 중계 화면에서는 파울에 가까운 타구였습니다.

동점을 이룬 SK는 4회에 화력을 집중시키며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선두타자 이진영의 중전안타 이후 이재원이 친 타구가 좌측 폴을 강타했던 것이었죠. 이번엔 의심할 것 없는 확실한 홈런이었죠. 그리고 박재홍의 볼넷과 김강민의 중전안타로 만든 1사 1,2루 상황에 박재상이 좌전적시타로 1점을 추가했습니다.

이날 SK는 집중적으로 좌측으로 타구를 날렸는데, 특히 박재상의 좌전적시타 때에 2루 주자 박재홍이 다소 무리하게 홈을 팠던 것은 계산된 작전이었습니다. SK 전력분석원이 좌익수 쿠리야마의 어깨가 약하다는 것을 간파한 덕택이었거든요.

그러나 선발 김광현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5회에 2번 구리야마, 1번 히라오의 연속적시타를 맞고 4:3까지 추격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김성근 감독은 선발 김광현을 내리고 윤길현을 투입하여 급한 불을 껐습니다. 이후 양 팀은 치열한 계투작전을 통해 단 한 점도 추가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5회까지 나온 4:3의 점수가 굳어지며 SK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 경기를 마친 뒤 김성근 SK 감독은 "상대 좌완선발에 대응한 타순이 맞아 떨어졌고, 불펜투수들이 제 몫을 다했다."고 평했고, 와타나베 세이부 감독은 김광현을 칭찬하며 동시에 박재홍의 홈런 판정에 대해 대만-중국 심판의 자질 문제를 거론했었습니다.

세이부와 텐진을 잡으며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꿈꿨던 SK는 대만 퉁이 라이온즈를 상대로 비기거나 2점차 이내로 패할 경우 결승행이 확정되었으나 뜻밖의 4:10 패배를 당하며 아시아 정상을 향한 도전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 양국 최다우승팀 간의 맞대결로 주목받았는데, 요미우리가 승리했습니다.


5. 2009년 한일클럽챔피언십 (기아 vs 요미우리)

◎ 단판전

팀명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9회

점수

요미우리

0

0

0

0

0

1

7

0

1

9

기아

1

0

3

0

0

0

0

0

1

4

주력 용병 로페즈, 구톰슨이 빠지고, 윤석민과 이용규가 군문제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에서 기아로선 고전이 예견된 한 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 출발은 기아가 좋았죠.

1회말에 볼넷을 골라 출루한 뒤 도루에 성공한 이종범은 나지완의 적시타로 홈을 밟아 선취점을 따냈습니다. 변화구를 강타한 나지완의 타구는 유격수 사카모토의 다이빙캐치에도 불구하고 중견수 마츠모토 앞에 당도했던 거죠. 5회말에도 4타자 연속안타로 2점을 추가하여 경기 초중반을 기아의 흐름으로 장식했습니다.

이런 타선의 지원에 힘입은 양현종은 날개를 단듯 호투행진을 이어갔습니다. 이날 좌타자를 상대할 때 주력으로 삼은 바깥쪽 직구는 구위, 구속, 제구 모두 일품이었습니다. 특히 요미우리는 6명의 좌타자가 나왔는데, 이승엽을 제외하면 모두 양현종에게 삼진을 당했을 정도니까요. (이날 이승엽은 좌중간 2루타 2개를 터트리며 이름값을 했습니다)

한 타순을 돌고 볼배합을 바꾸던 때에 빛났던 것은 양현종의 체인지업이었습니다. 이미 기가 눌려있던 요미우리 타자들은 직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순간 '짜잔~'하고 등장한 기습적인 체인지업에 제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경기 중반이 되자 전력투구를 한 양현종은 조금씩 구위가 떨어졌고, 이날 전타석까지 삼진 2개를 당했던 오가사와라가 중월 1점홈런을 내줬습니다. 결국 세 번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타격이었습니다.

여기서 홈런 맞고 바로 양현종이 강판된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바뀐 연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가 부상이 아니라면) 좀 더 길게 가는 게 어땠을까 싶었거든요. 불펜투수가 미덥지 못했다면 결국 선발에서 좀 더 끌어줬었야 하지 않았는가 라는 고민은 7회를 맞이하면서 더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7회초 선두타자 가메이를 필두로 무사 1,2루를 만들어준 것이 화근이었죠. 아베의 역전홈런, 라미네즈의 적시타 등을 포함해 타자 일순하며 무려 7점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아시아 최강 타선의 면모가 한 이닝에 드러난 것이었죠. 다른 한 편으로는 좌완 불펜투수가 부족했던 기아의 약점이 부각된 경기이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 KBO연감, 네이버 yourswiss님, sancorea님 블로그)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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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또준 2009.11.18 22: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우승팀이 일본우승팀을 이긴건 스크뿐이네요.

  2. BlogIcon 보안세상 2009.11.19 09: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게임은 잘하다가 갑자기 7점 주면서 무너진게 너무 아쉬워요 ㅠ

[ 한일 챔피언쉽 경기평 ]

기아가 기선 제압을 했으나, 역시 요미우리는 강했습니다.

기아가 양현종의 호투와 나지완의 3타점에 힘입어 초반을 주도했으나, 요미우리의 강타선을 불펜이 이겨내지 못해 9:4로 역전패 당했습니다.



초반 흐름은 기아가

두 용병 로페즈, 구톰슨이 빠지고, 윤석민과 이용규가 군문제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에서 기아로선 고전이 예견된 한 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 출발은 기아가 좋았죠.

1회말에 볼넷을 골라 출루한 뒤 도루에 성공한 이종범은 나지완의 적시타로 홈을 밟아 선취점을 따냈습니다. 변화구를 강타한 나지완의 타구는 유격수 사카모토의 다이빙캐치에도 불구하고 중견수 마츠모토 앞에 당도했던 거죠. 5회말에도 4타자 연속안타로 2점을 추가하여 경기 초중반을 기아의 흐름으로 장식했습니다.

이런 타선의 지원에 힘입은 양현종은 날개를 단듯 호투행진을 이어갔죠. 이날 좌타자를 상대할 때 주력으로 삼은 바깥쪽 직구는 구위, 구속, 제구 모두 일품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공이면 어느 팀의 누구와 맞붙어도 손색없을 만큼 좋았거든요. 특히 요미우리는 6명의 좌타자가 나왔는데, 이승엽을 제외하면 모두 양현종에게 삼진을 당했을 정도니까요.

한 타순을 돌고 볼배합을 바꾸던 때에 빛났던 것은 양현종의 체인지업이었습니다. 이미 기가 눌려있던 요미우리 타자들은 직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 순간 '짜잔~'하고 등장한 기습적인 체인지업에 제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요미우리 타자들이 타이밍을 제대로 못 맞춰서 휘청거리는 모습은 흡사 '취객'에 비유할 만했습니다.



기아 불펜의 약점을 파고든 요미우리

비록 요미우리가 양현종에게 고전했지만 전력투구를한 양현종은 조금씩 구위가 떨어졌고, 이날 전타석까지 삼진 2개를 당했던 오가사와라가 중월 1점홈런을 내줬습니다. 결국 세 번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타격이었습니다.

여기서 홈런 맞고 바로 양현종이 강판된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바뀐 연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가 부상이 아니라면) 좀 더 길게 가는 게 어땠을까 싶었거든요. 불펜투수가 미덥지 못했다면 결국 선발에서 좀 더 끌어줬었야 하지 않았는가 라는 고민은 7회를 맞이하면서 더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7회초 선두타자 가메이를 필두로 무사 1,2루를 만들어준 것이 화근이었죠. 아베의 역전홈런, 라미네즈의 적시타 등을 포함해 타자 일순하며 무려 7점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볼 때, 아시아 최강 타선의 면모가 한 이닝에 드러난 것이었죠.

요미우리 타선에 선발 라인업에만 좌타자가 6명이나 배치된 상황에서 좌완 선발 양현종이 내려간 뒤, 미더운 좌완 중간계투가 없었던 것이 패인이기도 합니다. 이 점은 앞으로 기아의 숙제이기도 합니다.

■ 요미우리 선발 라인업에 등장한 좌타자
2번 마츠모토
3번 오가사와라
5번 가메이
7번 아베
8번 이승엽
9번 후루키


역시 명불허전

이종범과 이승엽은 역시 달랐습니다. 제 1회 WBC 한일전에서 한국 승리의 주역인 두 선수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장기를 뽐냈습니다. 이종범은 1회, 5회에 출루한 뒤 모두 득점하여 1번타자로서 제 몫을 다했고, 도루와 멀티히트도 기록했죠. 이승엽 역시 좌중간으로 2개의 2루타를 날리며 앞으로 부활의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양국 시리즈 MVP도 대단했죠. 1회와 5회에 중전적시타로 3타점을 터뜨린 나지완이나 3:1로 뒤진 7회에 3점 홈런으로 단숨에 전세를 뒤집은 아베나 한일 각국 시리즈 MVP로 손색 없는 방망이를 과시했습니다. 서로 장군멍군한 셈이었죠.



경기의 하이라이트(?)

그러나 이 경기에서 제가 흥미롭게 본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지난 WBC에서 우츠미는 이용규의 머리를 맞히는 공을 던져 빈축을 산 바 있습니다. 당시 이용규의 분노에 찬 눈길이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이번 한일챔피언쉽에선 그 우츠미가 4회말에 마운드를 밟았습니다. 상대할 첫 타자는 최희섭. 초구를 던지기 무섭게 번개 같이 날아간 최희섭의 타구는 우쯔미의 얼굴을 스치듯 지나며 중전안타로 연결됐습니다. 우츠미 입장에서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죠.

여기서 허구연 해설위원 한 마디가 걸작이었습니다.

[ 최희섭 선수가 그러겠어요. "용규야 잘 보고 있냐?" ]


(사진 출처 : http://www.sanspo.com/baseball/baseball.htm)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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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직바 2009.11.15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승여비는 역시 한국용인가봐용....한국선수들 공은 잘 치더군요ㅕ..ㅋㅋ

    • BlogIcon 칸타타~ 2009.11.15 12: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럴 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승엽은 메이저리그 다승왕 출신에게 홈런을 친 적도 있어요.
      뿐만 아니라 wbc 멕시코전에서도 15승 투수한테 홈런 친 적 있구요.
      이런 경우에는 메이저용이 되는 건가요? ㅎㅎㅎ

  2. BlogIcon Mr.번뜩맨 2009.11.15 22: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아쉬운 경기였다는.. ^ ^그래도 서로가 열심히 해준 덕분에 볼만했습니다.

"황국신민화 정책을 위해 신사제도를 가장 잘 정비한 곳이 조선이다."

현재 국회도서관에서 열리는 '침략신사, 야스쿠니' 기획전에서 가장 눈에 띈 문구였습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 바로 '신사'였고, 일제가 조선을 침탈한 역사가 있었으니 조선 도처에 '신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전시회를 보면서 일본은 왜 한국(조선)에 신사를 세웠는지, 그 신사들이 어디에 세워져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 국회도서관에서는 11월 5~14일 10일간 '침략신사, 야스쿠니'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 일본의 침략전쟁 그리고 신사 ]


메이지 유신으로 정권을 잡은 신정부는 정치적 기반이 미약하였습니다. 그래서 반대세력을 제압하고 국민들을 결속시키기 위해 대외팽창정책을 선택했습니다. 상품시장과 원료공급지 확보를 위해서는 아시아에 대한 지배의 야욕을 꿈꿨고, 그것이 침략전쟁을 부추겼습니다.  

▲ "황국신민이 되려면 신사참배를 하라(?)" 참으로 기가 막힌 말입니다.

침략전쟁의 주된 대상 중 하나가 바로 조선이었죠. 그 조선을 발판삼아 대륙으로의 확장을 꾀하기 위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웠고, 이 과정에서 '천황'에 대한 충성심과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뿌리 깊게 심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바로 '신사(神社)였습니다.


[ 한국의 신사들 ]

그러면 우리 나라에 가장 먼저 세워진 신사는 어디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 용두산 신사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일본의 신사는 부산에 세워진 '용두산 신사'입니다.

일본인의 입국-교역을 위해 왜관이 부산항에 설치되던 때가 1678년 3월. 당시 대마도 영주가 용두산에 한일을 오가는 배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금도비라(金刀比羅)신을 모신 것이 용두산 신사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1894년에 거류지신사로 개칭했고, 1899년 규모를 확장해 용두산 신사로 개칭했습니다. 

■ 살아있는 신(神), 천황

메이지정부는 '천황' 중심의 정치를 선언하고
제국 헌법에서 '천황은 태초부터 하나의 혈통이며 신성불가침하다'고 규정하면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모두 천황 아래 두었다.
전래 민간신앙인 '신도'의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이를 '천황' 중심 국가종교로 재편했다.

- '침략신사, 야스쿠니' 기획전 중 -

일본은 이런 신사들을 어떤 형태로 확장해나갔을까요?

1876년 조선을 강제로 개항케 한 일본은 개항지를 중심으로 일본인의 이주를 확대했습니다. 이에 부산, 원산, 인천 등 개항장에 외교관이 주재하고 일본인 거류지가 설정되었습니다. 각 거류지는 치외법권 지역으로 조선의 국권이 미치지 못했죠. 신사도 이 지역 공원에 주로 지어졌고, 이 지역들을 시발점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죠. 일본의 조선 침탈이 깊어지는 만큼 신사도 늘어났습니다. 

▲ 조선신궁풍경도

이들 중 일제 침략신사의 목적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 바로 '조선신궁'입니다. 일본은 이곳을 식민통치의 성지(聖地)로 삼았다고 합니다. 1909년 통감부는 단군과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함께 모신 조선신궁을 건립코자 했습니다. 그러나 '한일병합' 이후에는 아마테라스만 모신 신궁 건설을 1912년 추진해서 1925년에 완공했습니다. 

※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 :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으로 일본의 시조 신으로 아마테라스라는 이름의 의미는 '하늘에서 빛나다'라는 뜻입니다.
 
▲ 조선신궁을 하늘에서 본 사진(좌), 조선신궁 입구에 세워진 위압적인 황국신민서사주(우)

▲ 좌측 제일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평양신사, 대구신사, 군산신사, 강원신사

▷ 평양신사는 조선신궁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고 하는데, 평양은 신사참배거부운동의 중심지였답니다.
▷ 대구신사는 관찰사 이용익이 천황에게 절하는 요배전 건설을 막기 위해 달성서씨들에게 뽕밭을 일구게 했으나 일본 거류민회 부회장, 도구라와 박중양 등의 반대로 개간이 중지되면서 1906년 11월에 준공됐습니다. 

▲ 청주신사(좌), 광주신사(우)


▷ 청주신사는 조선인 최초로 신직(神職)에 오른 이산연이 근무했던 곳입니다. 이산연은 '일본인 이상의 조선인'이란 말이 자자할 정도로'황민화 정책'의 최일선 있었던 인물로, 그는 일본인과도 동등한 최고의 물자배급을 받았는데, 당시 도지사급의 대우를 받았다고 합니다.


[ 창씨개명과 신사 ]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면서 벌인 대표적인 악행 중 하나가 바로 창씨개명이었습니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는 민족 말살책의 일환이었기 때문이죠.

■ 신사에서 취해진 학생들의 창씨개명

교사가 학생들을 신사에 끌고 가 일본의 신들과 천황에게 보고하는 신전보고식을 거행했다. 교사가 신전에서 학생들의 새로운 일본명 명부를 신직(神職)에 건내면 신주는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읽는다. 학생들은 그 때 신사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노래와 같은 곡조로 신주가 축사를 읊조리고, 그 후 전원이 일어서서 신전을 향해 최고 경례를 해서 '일본명'으로 새롭게 바꿨다.

 - '침략신사, 야스쿠니' 기획전 중 -


[ 맺음말 ]

역사 속에는 여러 가지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선택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면은 계승-발전시켜야 하고, 부끄러운 부분은 되풀이 되지 않게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번 '
침략신사, 야스쿠니' 기획전을 통해 일제가 행한 일들을 떠올리니 참으로 치욕적이었습니다. 최근까지 자행된 일본 총리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더욱 분개할 수 밖에 없는 것도 같은 이유겠죠.

아직도 야스쿠니 신사에는 여전히 일본 군국주의의 흔적과 아시아인의 상처가 남아있습니다. 신사의 역사를 봐서도 그러하거니와, A급 전범과 뜻하지 않게 묻힌 아시아인이 합사되어 있기 때문이죠. 일본이 야스쿠니 신사에 집착하는 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평화는 허울 뿐일 것입니다.

▲ 4개 지역의 합사자 유족과 시민단체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8월 행사를 가졌는데 그 때 그려진 그림

현재 한국, 대만, 일본 등 4개 지역의 합사자 유족과 시민단체가 '야스쿠니 무단합사 철폐'를 요구하는 소송이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무고하게 묻힌 일부 아시아인의 넋이 '일본의 대외침략의 성전(聖戰)에 목숨 바친 영혼'으로 둔갑되었기 때문이죠.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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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라누리 2009.11.13 0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 푸르게 날아 2009.11.13 08: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일인명사전 보고 분개했었는데 이거를 보니깐 또한번 폭팔하네요.

  3. 촌철살인 2009.11.13 11: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한번 일본을 생각하게 된네요..

  4. BlogIcon 저녁노을 2009.11.13 11: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의 암울한 역사....
    해결점을 찾기는 쉽지 않은 것 같네요.

    잘 보고 갑니다.

  5. BlogIcon 탐진강 2009.11.13 2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군요..
    친일파들을 설치고 다니는 것도 국회 차원에서 막아야 하는데 여전히 우리는 과거 친일파 반역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이렇게 지적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고 더욱 더 많은 활동을 부탁드립니다.

  6. BlogIcon 시림, 김 재덕 2009.11.13 20: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
    드 높던 파란 하늘
    너 가고는

    곁 두었으나
    너 느끼지 못 했어

    긴~겨우 지나야
    다시

    내 가슴 속
    아름다운 너에 모습을...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7. 비분강개 2009.11.14 01: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놈들은 우리와 친할래야 친할수 없는 족속들이죠. 개같은놈들

    • BlogIcon 칸타타~ 2009.11.14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너무 열내시진 마시구요.
      항상 일본과 우리 나라는 적절한 긴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호와 경계 모두 같이 생각해야죠.
      그러나 역사는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8. 방문객 2009.11.14 01: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좋은 정보네요.

[ 일본시리즈 결산 ]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짜고 치는 고스톱도 이럴 수 있을까 싶군요.

한미일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각 리그 역대 최다 우승팀들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 팀들의 공통점은 한 동안 우승 반지를 최근 몇 년간 인연이 없었다는 공통점마저 있죠. 최강이란 이름을 달고 다녔던 이들 팀은 최소 7년간 우승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한미일 올 시즌 우승팀

▷ 기아 타이거즈 - 1997년 우승 이후 12년만 (통산 10회 우승)
▷ 뉴욕 양키즈 - 2000년 우승 이후 9년만 (통산 28회 우승)
▷ 요미우리 자이언츠 - 2002년 우승 이후 7년만 (통산 21회 우승)

이 팀들은 전통의 명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말 그대로 와신상담이죠.

기아 타이거즈가 우승컵을 되찾기까지 현대, 삼성, SK 등의 팀들의 우승 헹가레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게다가 구단 매각 이후 2002~2003년에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며 희망을 품었으나 전통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죠. 이후 2차례 가을 잔치에 참가했으나 최강 전력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젊은 피를 수혈하고 최고의 용병을 확보한 후, 부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우승 반지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뉴욕 양키즈는 숙적인 보스턴의 급부상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특히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먼저 3연승을 거둬놓고 내리 4연패 당하고 말았죠. 야구팬들은 "리버스 스윕"이라고 하죠? 그 사건(?) 이후 보스턴은 2차례 월드시리즈를 제패하며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었죠. 양키즈에겐 이런 치욕의 시대도 있었지만, 올 시즌 디펜딩 챔피언 필라델피아를 제치고 다시 왕좌에 올라, "제국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역시 작년에 세이부와의 대결에서 아쉽게 3승 4패로 준우승에 그친데다, 과거 간판타자 마쓰이가 있던 2002년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니혼햄을 꺾고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 3차전 0:2에서 추격의 시발점이 됐던 이승엽의 홈런 장면


2009 일본시리즈를 되돌아보며...

일본시리즈를 앞두고 사람들은 "요미우리의 대포냐? 니혼햄의 기관총이냐?"에 관심을 두었죠. 결국 방망이에서 앞선 요미우리가 패권을 차지했습니다. 요미우리는 2, 4차전 모두 좌완선발투수들이 고전하는 바람에 시리즈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1승 1패, 2승 2패로 각각 동률이 될 때마다 분기점이 된 3, 5차전을 장악한 것이 큰 힘이 됐습니다.

3차전
더구나 3차전, 5차전은 요미우리 특유의 장타력이 돋보인 경기였습니다. 3차전 1회초에 이나바, 2회초에 고야노의홈런으로 앞서 가자 2회말에 이승엽-아베의 백투백 홈런으로 응수했죠. 이런 홈런 공방전은 3:3이 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양 팀 모두 1점홈런으로만 3득점씩 장식하는 진기록이 나오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깨트린 것은 요미우리의 방망이었죠. 5회에 오가사와라의 결승 2타점 2루타, 8회에 쐐기를 박은 아베의 2타점 적시타에 힘입어 3차전을 거머쥐었죠. 

5차전
3차전 패배로 고전했던 니혼햄에겐 치명타가 된 5차전이었습니다. 8회초까지 0:1로 점차 승세를 굳혀가던 중 8회말 선두타자인 이승엽이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면서 분위기가 긴박하게 돌아갔습니다. 대주자 스즈키, 대타 오오미치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여 동점을 만들었죠. 그러나 니혼햄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4번 다카하시가 우월 1점홈런을 날려 다시 전세를 니혼햄으로 되돌렸습니다.


요미우리쪽으로 패색이 짙어가던 9회말. 마운드에 오른 퍼시픽리그 최고 마무리인 다케다는 시즌 무패의 세이브왕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하일성 해설위원의 단골 멘트처럼 "야구는 모르는 것."이었죠. 선두타자인 가메이가 초구에 번개 같이 홈런을 치더니, 이번 시리즈의 영웅 아베의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는 급반전됐죠. 이 순간부터 요미우리에겐 우승이 보이기 시작했고, 니혼햄은 충격에 빠지게 됐습니다.

6차전
6차전 1회말에 다카하시가 요미우리 선발투수 토우노를 강타하는 바람에 투수를 갑자기 교체하는 일이 벌어졌죠. 그러나 그것조차 니혼햄에겐 악재였습니다. 2차전 패전투수였던 우쯔미가 호투를 펼쳤고, 아베의 선제적시타, 오가사와라의 안타 등으로 2점을 뽑아 승기를 잡아갔죠. 반면 니혼햄은 이나바, 니오카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타선이 침묵한 탓에 승부를 뒤집지 못했습니다. 1회말에 토우노를 교체하게 한 다카하시는 크룬에게 삼진을 당하며 일본시리즈 마지막 타자로 남게 됐습니다.


니혼햄 입장에서는 에이스 다르빗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제 몫을 하지 못했기에 더욱 뼈아픈 준우승이었고, 반면 지난 해 7차전까지의 승부에서 세이부에게 패권을 내줘야 했던 요미우리는 니혼햄을 상대로 되갚았습니다. 센트럴리그의 자존심도 다시 세우는 순간이었죠.  


▲ 5차전 아베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이 터지자 좋아하는 요미우리 선수들  

■ 2009 일본시리즈의 영웅, 아베

▷ 1차전
 5, 7회말에 다니와 아베는 연속안타가 발판이 되어 역전승으로 이어짐

▷ 3차전
0:2로 뒤진 2회말에 이승엽과 함께 백투백 홈런으로 동점 만들었고,
5:4로 박빙이던 8회말 2타점 우전적시타로 승부에 종지부를 찍음

▷ 5차전
1:2로 뒤진 9회말에 선두타가 가메이가 극적인 동점 아치를 그린 뒤,
우측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를 마무리 
 
▷ 6차전
양 팀 모두 무득점에 묶인 상태에서 가메이가 2루타를 날린 후,
펜스를 맞히는 2루타로 선제 결승타점을 뽑아냄


▲ 사실상 시리즈를 끝내버린 아베의 5차전 끝내기 홈런 장면. 그는 이번 시리즈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복장(福將) 하라 감독 그리고...

하라 감독은 올해 정말 복이 터졌습니다. WBC 우승에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겸겹사가 따로 없네요.

이제 오는 14일부터 일본 나가사키 빅N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한일 클럽 챔피언십'이 열립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기아 타이거즈가 맞붙을 예정입니다. 이승엽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최희섭, 김상현의 기아 타이거즈의 대결. 너무 기대되는데요. 마음 같으면 뉴욕 양키즈까지 한 자리에 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일본시리즈의 이승엽, 한국시리즈의 김상현은 기대에 못 미친 편이었는데, 이번에 양 팀을 대표해 불꽃 튀는 방망이 대결이 펼쳐지길 기대합니다. 과연 삼성, SK가 코니미컵에서 해내지 못했던 것을 기아가 대신 갚아줄 수 있을 지 주목됩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하이텐션(song20120)님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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