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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부대의 소말리아 해적 소탕을 격려하며

당연한 것을 당연히 했다, 그러나 참 장하다


최영함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던 삼호주얼리호에 대한 구출 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신년 벽두에 반갑게 전해져 왔다. 박수를 보낸다. 이 쾌거는 천안함 피폭과 연평도 포격으로 울적해 있던 국민들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었으며, 말랑말랑하게 보였던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비로소 회복시켰다. 참으로 대견스럽다.


  우리 국군이 외국에서 교전을 벌여 적의 인명을 살상한 것은 베트남전 이후 처음이다. 해적과 인질이 함께 있는 선박에 진입해 별다른 피해 없이 구출 작전에 성공함으로써 우리 군은 패기와 기개 그리고 뛰어난 교전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목숨을 건 비장한 각오로 작전에 투입된 장병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2009년 7월, 해적퇴치 훈련 모습


  그러나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 보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건만 그 동안 소홀히 했던 일을 이번에 당연히 한 것이다.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번 구출 작전의 성공으로 다시는 해적들이 우리를 넘볼 수 없다? 천만의 말씀!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해적의 복수 책동이 예상된다. 철저히 대비하고 단호히 맞서야 한다. 우리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면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본때를 확실하게 보여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때 이후라야만 적들이 우리를 무서워하고 넘볼 수 없으리라. 우리는 이번에 어떤 인질이나 테러에도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을 거라는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앞으로도 바다의 무법자들이 감히 대한민국 선박을 건드릴 엄두를 못 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약자에게는 너그러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권익과 인명을 해치려 한다면 그 어떤 행위도 단호히 응징한다는 것을 대한의 남아들이 온몸으로 명백하게 보여 주었다. 그대들이 지켜낸 것은 대한민국의 긍지요 자존심이다. 그대들이 자랑스럽다. 앞으로 희생이 따르더라도 지킬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암튼 장하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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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캐리비안 2011.01.21 2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대한 남아 파이팅!

  2. 필승해군 2011.01.22 10: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정말 멋지다!!!!
    해적들 이제 상대를 봐가며 날뛰겠네

    한편으론 해적들의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고

  3. 모개 2011.01.24 01: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려운 국가담론 갖다붙이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국가는, 조폭보다는 나아야 한다.
    조폭도 뜯어가면 보호해주는데...
    잘했다, 청해부대.


우리의 영웅들, 잊지 않겠습니다.


국회방송 '국회는 지금' 2010년 4월 26일 방송내용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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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은 4월 26일 해군 제2함대의 천안함 46용사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였습니다.

분향하는 김형오 국회의장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가운데 만난 어린 상주의 손을 잡고 이내 말문이 막혔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던 저 역시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다 보고 계실거야. 힘 내길 바란다."

어떤 말로 유가족의 찢어지는 그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잡은 손을 더욱 꼭 쥐어봅니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분향소를 나서는 마음이 착잡하기만 합니다.

차창을 때리는 굵은 빗줄기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의 영웅들,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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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화자 2010.04.26 21: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천안함 침몰 용사들!! 당신들은 너무나도 멋진 용사들 이었습니다.
    46명의 용사들은 우리의 영웅이였습니다.
    바다의 품으로 돌아가신 용사들을 애도 합니다.
    부디 좋은곳으로 가셔서 영혼이라도 대한 민국을 지켜 주십옵소서!!
    그리고 고귀한 희생은 대한 민국 국민들은 결코 잊지 않을것 입니다,

해군 천안함 침몰로 실종된 장병들을 구조하던 중 안타깝게도 한주호 준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故人이 된 한준위에 대해 무공훈장 추서 여부가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입니다.

나라를 위해 힘쓰고 공을 세운 이들에게 주어지는 훈장, 그 유래와 역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겠습니다.






훈장의 유래와 역사


훈장(Order)는 국가나 사회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국가에서 그 공적을 표창하기 위하여 수여하는 표장(章)으로 라틴어 "Ordo"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 "Ordo"는 특정한 의무를 지고 있거나 일정한 규칙을 따르던 제한된 계층의 이들을 일컫었습니다. 유럽에서 교황이 최고권력을 갖고 있던 시대에 성직자 혹은 특수 계층 가운데 그들의 신분을 표시할 수 있게 복장과 장식 등을 대중들과 달리 하였는데, 이것이 훈장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1100년대 유럽에서는 십자군을 조직하여 회교도와 싸웠습니다. 특히 성지인 예루살렘은 회교도의 습격을 막고 성지를 방문하는 참배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사단이 조직되었는데, 이 기사단의 대원들은 특수한 검은 옷을 입고 십자형의 표시가 있는 휘장을 가슴에 달았다고 합니다.

당시 서구인들은 이 휘장을 달고 있는 것을 영예로운 것으로 여겨 존경하였고, 후에 국가가 공로가 있는 자를 표창하기 위해 휘장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훈장의 시초였습니다.



한국의 상훈제도의 역사


상훈(賞勳)은 '상과 훈장' 혹은 '훈공을 가리어 상을 준다'는 뜻입니다.

- 서훈 : 훈등과 훈장을 내림
- 서임 : 벼슬자리를 내림
- 추서 : 사람이 죽은 뒤, 생전의 공훈에 따라 서훈, 서임함

우리 나라의 상훈제도는 부족국가시대부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전젱에 공이 있는 자에게 말과 노비를 상으로 주기 시작한 데에서 연유한다고 합니다. 삼국시대에는 무공을 세운 자, 효자, 열녀, 국난 공신 등에 대하여 식읍과 관직을 내렸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고공사, 조선 초기에는 공신도감에서 상을 내렸는데, 조선 중기 이후에는 충훈사(忠勳司)를 충훈부(忠勳府)로 승격시킨 뒤, 국가를 위하여 희생되거나 공훈을 세운자를 예우하고 이들을 위하여 사당을 세우고 제를 올렸고, 또한 이들을 기리는 책을 펴내어 만인의 귀감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근현대적 훈장제도의 효시는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개칭한 뒤 광무 4년 1900년 4월 17일 칙령 제 13호로 '훈장조례'를 제정-공포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당시 훈장은 금척대훈장, 이화대훈장, 태극장, 자웅장으로 4종류였다가 팔괘장, 서성대훈장, 서봉장의 3종류가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나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훈장은 사라지게 됩니다.

일제 하에서 독립한 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독립과 건국에 공로가 있는 선열을 기리기 위하여 근현대적 상훈제도가 폐지된 지 40년 만인 1949년 4월 27일에 새로운 상훈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건국공로훈장령"이 제정-공포하는 것을 필두로 9개의 훈장령을 제정-공포하였고, 1963년 12월 14일 새로운 상훈법을 제정하여 각개별 법령으로 운영되던 각종 훈장령을 폐지하고, 새로운 상훈법을 통합하여 오늘날의 단일 법률 체제로 개편하였습니다. 이후 몇 차례 관련 규정을 개정하면서 현재에 이르렀죠.



한국 훈장의 종류


무궁화훈장,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무궁화훈장을 제외하고는 5등급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일부 글에는 과학기술훈장이 빠져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훈장은 2001년 신설되었습니다. 훈장보다 한 단계 아래 격인 포장 역시 훈장과 종류는 같습니다.)


1. 무궁화훈장
우리 나라의 최고훈장으로 대통령에게 수여하며, 대통령의 배우자,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 또은 우리 나라의 발전과 안전보장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전직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도 수여

2. 건국훈장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한 자나 국기(國基)를 공고히 함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전직 우방원수 및 그 배우자에게 수여
→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3. 국민훈장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무궁화장, 모란장, 동백장, 목련장, 석류장

4. 무공훈장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
→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

5. 근정훈장
공무원(군인,군무원 제외) 및 사립합교의 교원으로서 그 직무에 정근하여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청조, 황조, 홍조, 녹조, 옥조

6. 보국훈장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에가 수여
→ 통일장, 국선장, 천수장, 삼일장, 광복장

7. 수교훈장
국권의 신장 및 친선에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광화대장(외국의 수상급 이상)-광화장(외국의 대사급 이상), 흥인장, 숭례장, 창의장, 숙정장

8. 산업훈장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금탑, 은탑, 동탑, 철탑, 석탑

9. 새마을훈장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자립장, 자조장, 협동장, 근면장, 노력장

10. 문화훈장
문화예술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문화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금관, 은관, 보관, 옥관, 화관

11. 체육훈장
체육발전에 공을 세워 국민체위향상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청룡장, 맹호장, 거상장, 백마장, 기린장

12. 과학기술훈장
과학기술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
→ 창조장, 혁신장, 웅비장, 도약장, 진보장




故 한준위의 무공훈장 추서 여부를 떠나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많은 이들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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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펨께 2010.04.02 18: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탐진강 2010.04.03 15: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간인 어선 선원 9명이 사망 실종인데 군은 나 몰라라 하는 듯한 코멘트를 하더군요.
    너무 비양심적이고 무책임한 처사라는 생각입니다.

  3. BlogIcon www.ski-clubs.fr 2015.04.10 15: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시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열린 정례기관장 회의에서 4월 임시국회 및 천안함 침몰사건 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고 허용범 국회대변인이 밝혔다.

비 내리는 3월의 마지막 날, 국회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작년 10월부터 추진되었던 백령도 초등학생 국회방문이 마침내 성사된 것이었죠.
백령초등학교, 북포초등학교, 대청초등학교, 소청초등학교에서 109명의 어린이와 9분의 선생님이 국회를 방문했습니다.

제288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를 방청한 어린이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조용히 하자는 의미로 손가락을 입에 대고 방청석에 들어섰습니다.

어린이들을 소개하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소개말에 회의장의 의원들은 손을 흔들어 반겨주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소개에 자리를 고쳐 앉아 자신들을 환영하는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며 어린이들은 더욱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어린이들도 우리에게) 손 좀 흔들어 주세요~" 라는 의원들의 요청에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본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최근 발생한 사고에 대해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했습니다.

"지금 백령도는 비가 오고 있습니다. 서울 날씨도 흐립니다.
 그러나 언제나 흐린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밝은 해가 솟아오르게 되어 있습니다.
 백령도 어린이 여러분, 선생님 여러분, 학생 여러분, 주민 여러분 그리고 대한민국 해군과 국군장병 여러분!
 힘내십시오. 희망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본회의 의사진행발언 도중 이견을 가진 의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고가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회의장을 바라보았고, 의원들 사이에서도 "어린이들 앞에서 자제하자"는 외침이 나왔습니다.

짧은 방청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어린이들은 "(의원들의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무서웠다.", "지루했다."고 소곤거리며 방청석을 빠져나갔습니다.

대청초등학교 5학년 송성진 어린이는 "회의장이 무척 넓고 멋있었어요. 국회의장님 말씀대로 천안함 실종된 군인아저씨들이 어서 무사히 돌아오면 좋겠어요." 라고 방청소감을 밝혔고, 대청초등학교 6학년 김다빈 어린이"처음보는 국회의 회의장 모습이 무척이나 신기했고, 방청을 할 수 있어 좋았어요. 국회의원 아저씨들 말씀처럼 어서 천안함을 구조했으면 좋겠어요." 라고 방청소감을 남겼습니다.

<방청을 마치고 박상은 의원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대청초등학교 어린이들>

천안함 실종장병들의 무사귀환은 어린이들의 방청소감처럼 온 국민의 바람입니다.
구조작업 중에 순직한 故한주호 준위의 유가족 여러분께 위로와 애도의 말씀을 전하며, 천안함 실종자 가족 여러분께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힘내시길 기원합니다.

                                                                                                        (사진촬영: 국회 미디어담당관실)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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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6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0.04.16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BlogIcon www.kc57.fr 2015.04.10 15: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시 국회의장 집무실에서 열린 정례기관장 회의에서 4월 임시국회 및 천안함 침몰사건 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고 허용범 국회대변인이 밝혔다.

실종된 해군 장병들이 버텨주고 또한 구조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해군 초계함 침몰의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정확한 침몰 원인이 밝혀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뢰 폭발에 의한 침몰 가능성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그것 역시 단언하기에는 이른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며칠 언론의 보도에 오르내리고 있는 기뢰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간단히 조사를 해봤습니다.

(기뢰탐색함,무인기뢰탐색기에 관한 소식도 들려오는데, 부디 한 명이라도 더 구조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기뢰에 의해 피해를 입는 모습




★ 기뢰의 어원

기뢰는 '기계수뢰'에서 비롯된 말이며, 폭약을 용기 속에 넣어 해상에서 폭발시키는 무기입니다.



헬기에 의한 기뢰 추적




★ 기뢰의 전략적 가치

현대 해상전은 각종 미사일, 잠수함, 항공모함 등이 등장하지만 고비용이라는 점 때문에 제대로 갖추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이죠. 이에 비해 기뢰는 가장 싼 가격으로 해상전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더구나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다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기뢰 기술을 이전하고 있어서 해군 전력이 약한 나라에게는 저렴한 전략무기로서 가치를 갖고 있는 셈이죠.
 

■ 과거 이란-이라크전 당시 FFG-58이란 군함의 피해 사례
- 구형 기뢰 가격 : 약 1,500 달러
- 군함 수리 비용 : 약 5,200만 달러

■ 걸프전 미국 이지즈 순양함의 피해 사례
- 이라크 기뢰 가격 : 약 3,000 달러
- 순양함 수리 비용 : 약 1,500만 달러



걸프전, 이라크전에서 회수된 기뢰들


 

★ 기뢰의 종류
■ 부설 위치에 따른 종류
▷ 부유 기뢰 : 물 위에 떠 다니면서 적함정에 부딪힐 때 충격 혹은 전기-화학 작용에 의해 폭발
▷ 계류 기뢰 : 원하는 곳에 머물지 않는 기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거운 추를 달아서 폭발
▷ 매장 기뢰 : 해저 바닥에 침전물이나 모래 등으로 묻음
▷ 해저 기뢰 : 일정한 수심에서 감응 센서를 이용하여 폭발
■ 점화 방식에 따른 종류
▷ 조종기뢰 : 유선을 깔아서 부설된 기뢰를 함정이나 육지에서 기폭시킴
▷ 접촉기뢰 : 표적함정과 직접 부딪혀야만 발화되며 폭발
▷ 감응기뢰 : 함정 주변에서 발생하는 자기, 음향, 압력 등의 물리량을 감지하여 폭발
- 자기 감응 기뢰 : 모든 함선은 일정한 자장을 갖고 있는데, 이 움직임을 감지하여 폭발
- 음향 감응 기뢰 : 함정이 움직일 때 수반되는 각종 소음을 감지하여 폭발
- 압력 감응 기뢰 : 선체의 움직임에의한 미세한 수압을 감지하여 폭발
▷ 지능형 기뢰 : 원하는 시기에 폭발하거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발을 멈추는 것이 가능
특정 선박을 골라서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춤



구한말 신식무기 공장이었던 번사창



 

★ 기뢰의 역사

(기뢰 부설 - 기뢰를 설치하는 것, 기뢰 소해 - 기뢰를 해체하는 것)

최초로 알려진 기뢰는 1776년 미국발명가 데이비드 부쉬넬에 의해 발명되었는데, 당시에는 '어뢰'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당시 부쉬넬의 '기뢰'는 부유체에 달려있는 방수처리된 맥주통에 장약을 넣어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기뢰는 1777년에 영국 함대를 파괴하기 위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사용되었으나 적합한 기폭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1800년대에 들어서 로버트 펄튼과 사무엘 콜트가 부쉬넬의 기뢰를 개량한 것이 미국남북전쟁에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남부군의 함포공격으로 침몰한 북부군 선박은 9척인데 비해 기뢰를 통해서 소실된 북부군 선박은 27척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기뢰는 러일전쟁에서도 전과를 올렸습니다. 러시아 측은 '페트로파블로브스크', '포베다'라는 두 척의 전함이, 일본 측은 '야시마', '하추세'라는 함정이 각각 기뢰에 의해 피격되었습니다.


■ 1~2차 세계대전

1차세계대전에 접어들면서 기뢰는 한 단계 진일보 하게 됩니다. 접속식 기뢰에서 벗어나서 자기감응기뢰가 개발되었고, 그에 맞게 기뢰 탐색-소해 기술이 개발되고, 그에 맞는 기뢰 부설 및 소해 전문부대가 창설되었습니다.

2차세계대전에서도 기뢰의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독일은 대서양 수송선단을 타겟 삼아 잠수함의 의한 어뢰공격 혹은 기뢰공격을 펼쳤고, 나아가 폭격기를 이용한 기뢰부설작전까지 개발하여 연합군을 괴롭혔습니다. 이에 미국 등 연합군은 기뢰 방어를 위해 무려 13,000여척의 선박이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제 1차 세계대전 : 약 30만개 기뢰 부설 → 약 1천척의 선박 피해
제 2차 세계대전 : 약 70만개 기뢰 부설 → 약 3200여척의 선박과 잠수함 침몰


■ 한국전쟁 - 인천상륙작전

한국전쟁에서도 북한군은 적극적인 기뢰작전을 펼쳤는데, 유엔군은 부족한 소해전 전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기뢰 제거에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천 앞바다에 대형함정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었던 상황에서 북한군의 기뢰작전에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반대의견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천 앞바다의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것이 호재였죠. 썰물일 때 기뢰가 수면 위로 노출되는 것을 손쉽게 사격으로 파괴하여 기뢰의 피해를 최소화했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상륙작전이 보다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 조선시대에도 기뢰가 있었다?

조선말 대원군은 1866년부터 1876년 사이 신무기를 기발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수뢰포'였습니다. 서양 군함을 격파할 신무기로 개발한 것으로 기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실제로 1867년 가을에 서울 노량진에서 조선판 기뢰인 '수뢰포'의 실험이 있었는데, 고종을 비롯한 관리들과 백성들이 이 광경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당시에 강 한 가운데에 떠 있는 작은 배가 수뢰포를 맞고 성인키 10배까지 공중으로 솟구치며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이에 대한 실험 기록은 있지만 실전 배치와 전과에 관한 기록이 없고, 유물로도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해군의 기뢰부설함이자 소해함인 원산함




기뢰는 가격에 비해 성능이 우수한 무기입니다. 더구나 저개발국가에게는 적은 돈을 들이고도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치 있는 무기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전면전보다 게릴라전, 국지전 양상을 띄는데다 기뢰가 더욱 더 지능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기뢰 소해작전 능력에 대한 중요성도 증대되고 있다고 합니다.

디펜스 타임즈(2009년 1월호)에 소개된 소해전력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1980년 이전에 확보한 블루버드급 소해정 8척 (미군이 제공)
1980년대 중반에 자체적으로 강경급 소해정 개발, 현재 6척 (520톤)
1990년대 중반에 블루버드를 교체하기 위해 양양급 소해함 3척 (730톤) 건조
2000년대 양양급 소해함 추가 건조 대신 소해헬기 도입 사업 진행 중
그리고 원산급 기뢰부설함(소해함) 1척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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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hoebe 2010.03.29 13: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어보니 전쟁때 쓰는 무기인데 갑자기 섬찟해 지네요.
    차라리 다른 이유 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이유야 어찌됐든 실종자 부터 빨리 찾아야 할것 같아요.

    • BlogIcon 칸타타~ 2010.03.29 13: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자료조사를 하면서 이렇게 무서운 무기들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부디 실종자들이 생존하고 또한 구조되어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2. BlogIcon www.kmenslow.fr 2015.04.10 15: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유가 98/9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뮌헨에 0:1로 뒤지고 있다가
    추가시간 3분 안에 2골을 넣어 극적인 역전승을 일컫는 말이었죠.


2함대 방문 마지막 방문 코스는 윤영하함이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윤영하함에 승선해 "그대의 눈물, 겨레의 혼불되다."라는
감명 깊은 문구를 방명록에 남겼습니다.

제 2 연평해전 전적비에서 헌화식을 마친 후여서
다소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 때, 단체촬영을 하던 중 분위기를 급반전시키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덩치 좋은 한 장병이 갑자기 추켜든 푯말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웃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라고나 할까요 ^^

사진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왜 사람들은 푯말의 앞 부분을 보고 웃을 수 밖에 없었을까요?  다음 사진 보시죠. 짠~

다름 아닌 '참치~!'  클로즈업 해보겠습니다.

ㅎㅎㅎ 가까이서 보니 더 웃기네요.

어디서 이런 걸 만들었는지~ 이 푯말을 만든 2함대 장병, 당신을 '센스쟁이'로 임명합니다.



이런 좋은 분위기에 한층 밝아진 의장님, 장병들과 악수하는 모습에서도 여유가 묻어납니다.


여러 면에서 도움을 주신 2함대 장병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필승~!"
 

                                                 Posted by 칸타타
(국회의장 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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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콩콩 2009.10.12 16: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숙한 군대지만 국회의장을 상대로 저런 푯말을 만들기도 하는군요.
    재밌네요.

  2. 사과과즙 2009.10.12 16: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군이라 참치인가요?
    육군은 김치?
    공군은 날치?

  3. 분식점 2009.10.12 16: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치김치찌개 먹고 싶다.

  4. BlogIcon 칸타타~ 2009.10.14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5. BlogIcon 악랄가츠 2009.11.17 2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앜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거 만든 장병은 포상휴가 받았겠지요? >.<
    훈훈한 이야기네요 ㅎㅎ

제가 있던 군대 훈련소에서는 유급제도가 있었습니다.
0점에서 시작해서 100점의 과실점수를 받으면 유급이 되어 훈련소 생활을 한 번 더 받는 구조였습니다.
과실점수를 주는 유형은 다양했습니다.

1. 수류탄 투척

수류탄 훈련에 앞서 귀가 닳도록 주의사항을 교육받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훈련용 수류탄을 전방으로 투척하는 훈련이 진행됐습니다.
훈련용이라서 인명을 살상할 만큼의 위력은 없지만, 폭발은 하기 때문에 꽤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풍채 좋고 사람 좋아 보이는 해병대 원사(계급)님께서 교육을 담당하시고 훈련을 진행하였습니다.
훈련이 중간쯤 진행되고 있을 무렵 교관이 한 명의 훈련병을 가리키며 소리를 쳤습니다.

"야! 너! 던져! 던져! 빨리 던져!"

당황한 그 동기는 짧은 시간 동안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교관을 향해 (훈련용)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고,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정적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교관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연기 속에서 스르르 나타났습니다.
(훈련용이기 때문에 놀라긴 했지만 다치진 않았습니다.)


"전부 대가리 박아!"

우리는 실제 수류탄은 던져보지도 못한 채, 철모에 머리를 박고 그날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과실점수 5점을 받았습니다.

 


2. 이함훈련

배에서 탈출하는 훈련을 이함훈련이라고 합니다.
높은 다이빙대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리는 훈련인데요,
덩치가 커다란 동기 한 명이 자신은 죽어도 못 뛰겠다고 했습니다.

한참 동안 얼차려를 받고 온 그 동기는 무척이나 해맑은 표정으로 대열로 돌아왔습니다.


그 동기는 과실점수 20점을 받았습니다.

 

3. 기타 등등

그 밖에도 청소불량 10점, 지나가다 경례 안 하면 10점, 이런 식으로 과실점수는 쌓여만 갔습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과실점수의 명확한 기준이 없어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이었습니다.
과실점수를 기록지에 표기하여 주말에 과실자 훈련을 받았는데, 과실점수가 없으면 그 시간을 이용해 편지를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과실점수를 받지 않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과실을 만회하기 위한 양호라는 것도 있었는데요, 양호점수는 과실점수보다 매우 뜸하게 주었습니다.
과실제도를 통해 실제 유급이 되는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옥 같은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느끼는 유급에 대한 공포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영혼이라도 팔겠어!"



4. 상관 모독

시간이 흘러~ 수료를 얼마 앞두지 않은 어느 날,
정식 군복도 지급받고, 교관들도 우리를 어느 정도 편하게 대우해주며,
훈련소에 갓 들어온 한기수 후임들의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워진 연병장에 정렬하여 앉아 무엇인가 교육을 받던 중에 날카로운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너 이 자식! 상관모독! 과실보고 해! 과실 50점!"

무슨 잘못을 했기에 수료를 코앞에 두고 과실 50점이라니요.

"아닙니다! 교관님, 잘못했습니다!"
"넌 상관을 모독했어!"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교관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고, 그 친구는 무릎까지 꿇었습니다.

"교관님! 50점이면 저 유급입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교관은 너무나 냉혹한 태도를 보이며 급기야 그 동기의 짐까지 싸서 들고 나왔습니다.
1,000여 명의 동기들이 모두 쳐다보는 앞에서 그 친구는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교관에게 매달렸습니다.

"교관님! 잘못했습니다!"

 


코 파다가 교관과 눈이 마주쳤답니다.

사실 훈련소 마친다고 끝이 아닌데, 인생 다 산 듯 행동하는 이등병들이 얼마나 우스웠을까요?
그런 이등병들이 기강이 해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교관님의 극약처방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게 하필 코 파다가 걸린 것이라니, 그 친구도 참 운이 없었지요.

결국, 그 친구는 다시 양호점수를 받아 유급은 면했다고 들었는데,
두 번 다시 함부로(?) 코를 파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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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라누리 2009.11.16 08: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니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래도 훈련 잘 마치고 군대생활도 잘 마치셨잖아요.
    잘보고 갑니다.

    • BlogIcon 맹태 2009.11.16 09: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_^
      당시 교관들이 지금의 제 나이쯤 되었던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참 골치 아팠을거 같아요. 어린 친구들 모아놓고 코 판다고 혼내는 것도 참 쑥쓰러운 일인거 같은데 말이죠.ㅎㅎ

      감사합니다~

  2. BlogIcon 달콤시민 2009.11.16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헉헉 ㅋㅋㅋ
    코파다가 눈 마주쳤는데 상관모독 ㅋㅋㅋㅋㅋㅋ
    이런 과실들은 상관 기분에 따라 결정되는...거..가봐요 하하하

    • BlogIcon 맹태 2009.11.16 0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은 어떤 기준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군복무기간도 짧아져서 훈련소 기간도 좀 줄었다고 하는데..

      ㅋㅋ전 죽어라 뛰어다니고 코도 안파서 과실 0점이었음..

  3. BlogIcon 커피믹스 2009.11.16 1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 코파다가가 제일 웃겨요.
    ㅎㅎㅎㅎㅎ

  4. BlogIcon 김한준 2009.11.25 01: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군출신이십니까??
    과실/양호와 이함훈련은 해군/해병대 밖에 없는줄로 아는데
    약 3년 전 부터 훈련소 기간도 4주로 줄고
    제한배식도 폐지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긴 저도 인터넷서 해군 정보 보지 않았음
    빵빠레 = 야간비상훈련 인걸 몰랐을테니 말입니다.
    저희때만 해도 야간비상훈련은 취침 직후나 길어봐야 취침 30분 후에 했으니까요.
    새벽에 갑자기 하는 것 보단 나았지요.
    이젠 교관/소대장도 빨간 모자가 아닌 파란모자 쓰고요.
    나름 힘들고 불평 많이했던 군생활이지만
    해군 출신들 보면 반갑네요.

    • BlogIcon 맹태 2009.11.25 08: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김한준님.
      음...비밀입니다...ㅋ
      그저 내용으로 짐작해 주시면...^_^

      블로그 방문해보니 한준님 해군출신이신가보네요.
      반갑습니다~

군대 훈련소에서의 일입니다.

화장실 청소가 시작되는 시각부터 점호 종료 시까지 화장실 사용을 할 수 없었습니다.
화장실은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해야만 하는 일종의 거룩하고 신성한 곳이었습니다.

처음에 훈련소에 가면 긴장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변비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흐르다 보면 신호가 왔을 때 바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놓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대에서 키가 가장 큰 친구(1번)를 화장실 오장이라고 불렀습니다.
화장실 오장은 소대장 훈병/향도훈병과 더불어 소대 내에서 교관들이 아는 척 해주는 권력(그것을 권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마는)을 갖고 있어서 경외의 대상이었죠.

화장실 당번은 키가 큰 순서로 구성되어서 좀 무섭게 느껴졌는데,
청소시간에 화장실 사용을 못 하도록 위압감을 줘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어쨌거나 전 다급한 신호를 받았고,
화장실로 달려가 그나마 좀 친하다고 생각되는 화장실 당번에게 사용을 요청했습니다.

화장실 청소가 말끔하게 다 끝났다고 난색을 보이는 화장실 당번에게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고 당부하고서
키가 큰 화장실 오장의 눈을 피해 한 칸을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일을 마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럴 수가!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여서였을까요.

휴지가 섞이지 않은 100% 순수함만으로 변기가 막혀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제가 있던 신병교육대에는 우습게도 변기를 뚫는 압축기도 없었습니다.
화장실이 막히면 소화전의 소화호스를 사용해 변기를 뚫었는데, 그 엄청난 수압으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방식이었지요.

소화호스를 사용하면 물기 한 점 없이 말끔히 청소된 이 거룩한 공간을 나의 순수함으로 더럽히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시각은 8시 50분. 동기들은 이미 점호대형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소화호스를 사용할 시간도, 그 뒷정리를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나 하나 때문에 화장실 당번은 물론이고, 화장실 오장과 소대장 훈병, 아니 나아가 우리 소대 전체,
아니 우리 중대 전체, 아니 동기 전체가 잠을 못 잘 수도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습니다.

(정말 이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저를 믿고 화장실 오장의 눈을 피해 자리를 마련해준 동기를 곤경에 빠트릴 수 없었습니다.
곧이어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는 화장실 당번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다 안 쌌나? 빨리 나온나."

"응? 좀 기다려라. 다 쌌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저에겐 아무런 도구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쓰자. 생각해라. 생각해라.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해..!'

팔을 걷고 변기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샘이 깊은 물이란 이럴때 쓰라고 생긴 표현일까요?
활동복이 젖지 않도록 소매를 어깨까지 끌어올려 민소매 옷처럼 만들었지만,
제 순수함이 더해져 넘칠 듯이 불어난 물은 어깨까지 적셨습니다.

간절한 기도를 드리며 손끝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습니다.

(후비적 후비적..)



홍해를 가르던 모세의 심정이 이러했을까요?
꿀렁꿀렁~ 서서히 내려가는 변기를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동기들아, 기뻐해 줘! 너희는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지금 우리는 큰 위기를 넘겼다!'

어깨까지 젖은 물기를 다른 한 손으로 모두 털어내고, 활동복 소매를 내리고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문을 나섰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문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당번이 화장실 상태를 확인하러 들어가고,
전 쓴웃음을 지으며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습니다.

"야! 세면대도 쓰면 안된다!"

뒤따라 나온 화장실 당번이 걸레 한 장을 들고 황급히 제 뒤를 따라와 세면대의 물기를 닦아냈습니다.

"꼭 써야 된다.."

물기를 닦는 동기를 앞에 두고 차마 어깨까지 닦을 수는 없었습니다. 손을 닦고 점호를 받았지요.
다행히 그날 점호에서 화장실 청소상태에 대한 지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

자세한 묘사는 생략했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할 누군가를 위해 조언하자면

"더럽혀진 손은 씻으면 됩니다."

단, 깨.끗.이.

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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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동전이 2009.11.11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흠흠... 그래도 수세식 화장실을 썼구나... 난 푸세식의 그 알싸한 냄새에 고생했었는데... ㅋㅋ

    • BlogIcon 맹태 2009.11.11 0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푸세식이면 뚫을 필요도 없었을텐데 말입니다..흠흠

      너무 많이 쌓여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은 있어요..
      아, 생각만해도 끔찍하네요. 거긴 정말 손 못넣어요..아무리 씻으면 된다고 하지만...;;;;

  3. 유성이 2009.11.11 12: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겨울철 똥 깨보신분..ㅋㅋ 얼음똥 녹을때 캬~~

  4. 'ㅁ' 2009.11.11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엥.. 여기가 김형오 국회의장님 블로그인가요?
    개인적으로 국회의장님 팬인데..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5. 29년전 논산 2009.11.11 1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옛날엔 똥장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쪼그리고 앉는 수세식이었고 막혔을 때,
    그 때 똥장인 나도 손으로 뚫은 적이 있었죠.
    목표 의식이 강하고, 당위성이 확립되고나면
    손으로 막힌 똥을 뚫는 것에는 아무러한 거침이 없습니다.
    더럽다는 생각도 안들죠.

  6. FA신청선수 2009.11.11 1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께서 변기를 손으로 뚫은 사병처럼 막혀있는 우리정치를 시원하게 뚫어주시면 좋겠습니다.

  7. 심퉁이 2009.11.11 1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구.참별희안한추억도다있습니다.똥얘기하면 참으로잊지못할일이있죠 37녀전에안동역에매점옆에선물상자에 똥을싸서 포장해논분찾습니다. 전지금도그때를잊지못하고있습니다 아무도보는이도없고시간도
    많이지니고 아,누가잊어버리고간게틀림없구나싶어 조심히풀었드니 꽝꽝얼은 똥덩어리였습니다.
    지금41된 조카가저달라고 우는바람에 풀었다가 일생에 잊지못할가슴에똥덩어리 추억을갖게됬습니다.

    • BlogIcon 맹태 2009.11.11 13: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하...;; 웃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똥도 포장하면 그럴싸하다는 교훈.
      깜짝 놀라셨겠어요. 조카님께서도 상처 받으셨을듯..(당시 4살이셨을텐데...ㅠㅠ)

  8. 한영희 2009.11.11 13: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비를 잘헤쳐 나갔네요
    그런데 군대에선 알고보면 그것보다 더 심한 것도 무수히 많다고 들었어요
    제 아들은 부모님 면회때 화장실 청소를 맨손으로 암모니아가 덕지덕지 붙은 것을 동전으로 긁으라고 해 그렇게 했답니다 군대의 고생을 생각해 집에서도 일을 좀 거들면 좋겠는데 힘드나봅니다

    • BlogIcon 맹태 2009.11.11 13: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소변기 찌든 때 제거하는 것을 스켈링 작업한다고 했었는데, 그것도 종종 하는 일이죠.

      집에서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저도 이등병때는 '왜 내가 부모님께 하는 것보다 선임들에게 더 잘하고 있는걸까?'라는 생각에 사회에서의 모습을 반성했는데..

      막상 전역하고 보니 또..그게 잘 안되더라구요.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군대에서 더욱 강하게(!) 청소를 시키는 것 같아요.
      안그러면 사회에서 하듯이 '안할테니까'요..

      (흠흠..씁쓸~하네요.ㅋ)

  9. ㅋㅋ 2009.11.11 14: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중부전선 철책에서 있었던 일인데용...
    왜 화장실을 언덕빼기에 만들어 놔가지고...
    똥지게 메고 옮기다가 자뿌라지는 선임병을 봤었음...
    제가 이등병 때라...웃지도 못하고...어찌나 당혹지럽던지...
    똥지게 메고 언덕에서 나자뿌라지는 거 안봤으면 말을 마삼...ㅋ

    • BlogIcon 맹태 2009.11.11 14: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으악! '어깨'까지는 말도 못 꺼내겠네요.
      정말 이등병때 웃음 터질거 같은데 참는 것도...정말 난처하셨겠어요.ㅋㅋ
      넘어지셨던 선임분도 두고두고 향기나는(?) 추억이겠네요.ㅋ

  10. 능수 2009.11.11 14: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에 정겨운 글을 봅니다.
    30여년전....논산훈련소....훈련병 시절...그 당시는 푸세식 화장실이었는데.....
    나참.........화장실을 못들어가게 지키고있느 동료 훈련병
    정말 대단한 끗발이었어요...그 친구들....
    사정사정해야 화장실 한번 쓰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던 시절 이었지요.
    글쎄...한번은
    화장실에갖는데....옆 화장실에서..
    두녀석이 두런두런하기에 궁금해서
    살며시 보니까.....이런 참..............
    화장실에 밥 수저를 빠트리고 건져보려고..
    두런거리고 있지 뭡니까???
    그 시절에는 수저를 고무줄에 끼워서 주머니에 매달고 다녔는데....
    지금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울껄요...아마
    밥 수저 잃어버리면 밥도 못먹고....얼차려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래도 그 시절은 정감이 흐르던 시절이었지요//
    다시올수 없는 그 시절이 그립네요...

  11. BlogIcon 달콤시민 2009.11.11 15: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다행이네요.. 제가 이 포스팅을 식후에 봐서..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천만다행이에요 기억력이 3초라서 이 블로그를 덮는 순간 잊을 거라서... 아아악

    정말 군대란 곳은...뜨아아아 ㅜㅜ

  12. ㅋㅋㅋ 2009.11.11 16: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대 배치 받아서도 손바닥만한 걸레 하나가지고 화장실 광내던 기억 나네요...

    요새도 그렇게 시킵니까?

    • BlogIcon 맹태 2009.11.11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저도 이게 시간이 좀 지난 이야기이긴 한데-
      전역할즈음엔 화장실 물기제거를 제대로 안하더라구욧!
      ㅋㅋㅋ군대 이야기의 특징이지만 '나때는 안그랬다~'하는 부분 있잖아요.

      정말 저 이등병때는..물기제거가 생명이었는데..
      요즘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참고로 '다쓴 칫솔'과 '빗자루'를 걸레와 함께 사용했습니다. 청소도구의 비약적인 발전이군요~

  13. 장은근 2009.11.11 17: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활동복이란 말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보네요 ㅋㅋ

    DI 와 활동복 색깔을 보니 해군인거 같네요 ^^

    저도 해군훈련소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공감이 마구마구 갑니다 ㅋㅋㅋ

  14. 기억난다.. 2009.11.11 1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대에서 풍선 없다고 풍선 만들라고 하더니
    콘돔 주더라.. 휘밤바..

  15. 근데 2009.11.11 1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기 뭐하는 블로그죠? 군대 얘기하고 국회의장하고 뭔 상관? 기분좋게 볼려고하다가
    괜히 찝찝해지네요..

    • BlogIcon 맹태 2009.11.11 19: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근데님.
      김형오 국회의장 블로그입니다.
      팀블로그로 운영되고 있구요, 이 이야기는 블로그 운영진의 개인경험담입니다.

      기분 좋게 방문하셨는데, 찝찝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내용 자체가 좀 찝찝하다보니...)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

  16. BlogIcon 씨제이 2009.11.11 19: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손을 넣어서 뚫어 보았죠 ..맞아요 훈련소에서는 훈련을 강하게하기 때문에 변이 압축되어서 보통 더욱이 첨에는 변비가 많아서 잘 막혀요 제가 한번 논산훈련소에서 화장실 청소 당번이었는데 얼기도 하고 몇개가 막혀있더군요 조금 녹아도 있고 ㅡㅡㅡ저는 내임무에 그걸안뚫으면 지는것같아서 뚫다가 안되어서 개량식이었는데 손을 넣어서 하다보니까 어찌하다가 끝까지 잘안뚫리던것을 뚫은 기억이 납니다 .



    그때 3월 말이었는데도 가끔 얼었던거 같은데 변이 딱딱해서 열개중 4개에서 5,6개는 막혔던것 같아요 제가 한 3,4,5개는 뚫었던거 같아요 ㅋ 참 그런 기억도 있네요 .참 그땐 보초 연습때 누구말대로 혹시 간첩잡아서 포상휴가 갈지도 누가 알아 ,,,하는 좀 이상한 (가능성 없는 ㅡㅡㅡ)그런 상상도 하며 보초연습섯던 기억도 나네요 .,,,,행복하시길 ㅡㅡㅡ

    • BlogIcon 맹태 2009.11.11 1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씨제이님.

      훈련소 화장실이 잘막히는 이유에 대해 상당히 논리적인 분석을 해주셨네요. 설득력 있는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ㅋㅋ

      씨제이님은...동기들에게 참 소중한 존재이셨을 것 같습니다...^_^

  17. 저는 아줌만데 2009.11.11 20: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손으로 뜷습니다. 집에서, 간혹 도구로 옷걸이철사도 쓰지만, 고무장갑끼고 하지요. ㅎㅎ 근데
    그게 제일 빨라요.

  18. 해상병 491기 2009.11.11 2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는 느낌이 해군 출신인가봐요... 화장실 오장, DI, 시퍼런 활동복 모두 해군훈련병의 상징들이죠..

    님이 느꼈을 감정 십분 이해 합니다..

    전..키가 작아..스머프 부대 즉, 식당 식가이고정 차출이었죠..^^

  19. BlogIcon 커피믹스 2009.11.12 10: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웁~~~.
    팔에서 냄새가 며칠동안 사라지질 않았겠군요.
    그러고 보면 인간의 신체부위만큼 훌륭한 도구는 없습니다ㅋㅋ

  20. 이상한 2009.11.12 1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동기들은 이야기 한다는거 너 내옆으로 오지마
    냄새나 꺼져 이런 반응 일껄요 ^^

  21. 사토자키 2009.11.14 00: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양반 완죠니 작가네. 아까 달마도 웃기더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완죤 웃겨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서해교전이 7년만에 다시 발발했습니다.

■ 서해교전 상보 (2009년 11월 10일)

군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경비정이  NLL을 남하하자
우리 해군 경비정이 경고방송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하하자 경고사격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북한이 사격을 했고, 남한 해군도 대응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남한 해군의 사상자는 없지만 북한 경비정은 피해가 있었다고 하네요. 
북한 경비정은 이후 북측으로 돌아갔으며, 현재 교전상황은 종료된 상태입니다.


오늘 일을 보니, 잊혀져가던 과거 연평해전의 악몽이 떠오르는군요.


다만 이런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 2 연평해전'입니다.

참극으로 기억되는 제2연평해전은 제1연평해전(1999년)이 벌어진 3년 뒤에 일어났습니다.

■ 제 2차 연평해전 피해 상황 (2002년 6월 29일 10시 25분 ~ 56분)

▷ 남한 : 고속정 1척 침몰, 전사 6명, 18명 부상
▷ 북한 : 경비정 1척 대파, 30여명 사상

대부분의 국민들이 2002년 월드컵에 취해 있었지만,
이런 무관심 속에 누군가는 결국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청춘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 당시 참수리-357에서 가장 먼저 전사한 故 윤영하 소령입니다. 북한 공격 첫 번째 타겟이 함교였으니까요.

▲ 교전 당시 후갑판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사한 故 서후원 중사, 故 박동혁 병장입니다.


■ 제 2차 연평해전 발발 원인 및 배경

▷ 제 1차 연평해전의 패배에 대한 보복
▷ 대내외적으로 어려워진 북한의 정치적 탈출구
▷ 북한 영해 확보와 NLL(북방한계선) 무실화


그러면 왜 이렇게 남한 해군의 사상자가 많았을까요?

1차 서해교전에서 패한 북한 측이 악의적인 기습 선제공격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워낙 치밀하게 집중공격을 펼쳤던 지라 남한 해군은 손쓸 틈 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죠.
우리 해군이 즉각 대응하여 북한 해군을 물리치긴 했지만 많은 사상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

아래는 당시 북한측 공격에 희생당해야 했던 참수리-357의 참혹한 모습입니다.

▲ 제 2차 연평해전에서 타격을 입었던 참수리-357입니다.

▲ 참수리-357의 측면입니다. 붉은 페인트로 칠해진 곳이 모두 총, 포의 공격을 받은 흔적들입니다. 쩝~

▲ 故 조천형 중사가 담당했던 21포(20mm 발칸)입니다. 집중 포화를 당했을 당시에는 전면 유리가 없었겠죠?

▲ 참수리-357의 내부인데 구멍이 엄청 크네요.

▲ 이 곳은 조타실로 故 한상국 중사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아~ 여러 군데 붉은 자국들이 보이네요.

▲ 이 부분도 참수리-357 안에 있는 측면부인데요. 북한군이 비 오듯 쏴댔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군요.

▲ 이 곳 역시 북한군의 기습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했군요.

▲ 가까이서 구멍을 찍어보니 헉~


■ 제 1차 연평해전 (1999년 6월 15일)

▷ 9시 28분경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에 대해 소형기관포로 선제공격
이후 우리 해군의 즉각적인 대응으로 남북한 함정이 각각 10척씩 대치
▷ 남한 해군은 경미한 피해, 북한 해군은 경비정 1척 침몰, 5척 대파
▷ 당시 북한 해군은 밀어내기 작전에 온갖 것을 집어던졌는데 각종 채소도 날아들었다고 함.





남북이 서로 화해-협력해야 할 시점에 군사적 충돌로 인한 유혈사태가 더 이상 나와선 안 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제 2차 연평해전에서 청춘을 바친 이들의 넋을 기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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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군출신 2009.11.10 14: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2함대 다녀오셨나보네요...사진 잘 봤습니다. ```

    • BlogIcon 칸타타~ 2009.11.10 15: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명피해가 없어야죠.
      그리고 지난 희망탐방에서 2함대를 방문했었거든요.
      그 자리에서 제 1~2차 연평해전에 관해 설명도 들었습니다.
      돌아가신 영령들에 대해 추모의 자리도 있었구요.

  2. 촌철살인 2009.11.10 17: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 홈피가 거의 생중계 뉴스수준이네요. 빠르다 빠라 ㅋㅋ.

  3. 너무 빨리 잊혀져 가서 .. 2009.11.10 21: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까운거같아요...ㅇㅇ

  4. BlogIcon 김한준 2009.11.10 2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훈련소때 식당서 배식 기다릴 때 마다
    서해교전 6분들 사진 보면서
    아 제발 저렇게 가지 않았으면 했는데
    군 생활 하면서
    부끄럽게 느꼈습니다.

  5. 최부람 2009.11.10 23: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측의 과잉대응이 아닌가'라는 글이 인터넷 어딘가에 떠다니더군요..말은 좋지만, 제발 상황을 좀 냉철하게 파악하고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무조건 안티를 고집하는 것도 일종의 정신병입니다.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반성해야함다. 맹목적인 종북주의는 시대착오라는 걸 명심하시길...반면,,이 글은 차분해서 좋네요...잘 읽었슴다.

  6. 남가좌 2009.11.11 01: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LL에 관해선 갑론을박이긴 하나 1999년 이전까지는 북한도 사실상 인정하던 영해 아니었나요?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돈 달라는 소리 같아서 이젠 정말 싫네요.

  7. 잊지말자 2009.11.11 12: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월드컵의 함성속에 너무 쉽게 가려지고... 잊혀진것 같습니다.
    당시 해군에서 군 복무중이었습니다.
    토요일로 기억하고..제가 속했던 부대에서 밤부터 새벽까지 전사자 합동분향소를
    만들었기에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군요.
    정치적인 이야기를 굳이 꺼내고 싶지 않지만 당시 정부의 대응과 유가족에 대한 보상등
    지켜보는 입장에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하여간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8. 준영 2009.11.11 14: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 전에 2함대를 방문하여 김형오 의장님과 함께 상흔으로 여기저기 찟겨 나간 참수리호에 올랐습니다. 그 긴박했을 순간을 상상하니 숨이 막히더군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초개처럼 목숨을 바친 이들의 정신을 기리고 그 가족들을 잘 보살펴 주는 것이 바로 또 다른 애국자를 기르고,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하는 초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형오 의장님이 6명의 희생자의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도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 군이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 예비역 공군 장교 올림

    • BlogIcon 칸타타~ 2009.11.11 1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참수리정에서의 모습을 보니 전투 순간의 참혹함이 떠올랐습니다.
      의장님 말씀처럼 나라를 위해 몸 바친 분들, 그 유가족들을 위해
      충분한 보상과 대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9. BlogIcon pennpenn 2009.11.12 11: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에 완전히 북쪽 배를 침몰시켜야 하는건데
    아쉽습니다.

  10. BlogIcon 드자이너김군 2009.11.12 11: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렇게 두꺼운 철판을 뚫고 들어올 정도의 총탄이면.. ㄷㄷㄷ
    정말 잊지 말아야 하는데.. 점점 잊혀져 가는군요.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11. BlogIcon The Blue. 2009.11.13 10: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2함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참수리호에 올라갔는데 너무나 처참하더군요.

    이번 사태는 인명피해없이 잘 마무리 되서 다행입니다.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할듯 합니다.

  12. BlogIcon 시림,김재덕 2009.12.07 2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l^*........
    그리워했던 그리움이
    너 였나봐...

    그 기억을 잊으면 안 되고
    국력은 화력이기에
    모든 전력이 빔틈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행복은 곁에 있어요
    사랑으로...
    기다림에

    • BlogIcon 칸타타~ 2009.12.08 0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말씀하신대로 균형있고 수준높은 국방력은 필요합니다.
      다만 서로 피 흘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13. a 2010.02.03 10: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필 그것도 2002년에 그 기쁜날에 않됬군요

  14. 와빠 2010.05.01 0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0년 천안함 사건과 2002년 연평해전과는 무엇이 다른가요? 제가 보기에는 2002년 사건은 전사, 2010년 사건은 순직인것 같은데, 올해는 대통령까지 참석하고 장례도 5일장으로 국가애도의 날까지 선포하는데 2002년 사건은 총격으로 사망하고도 3일장으로 국민이 알면 않되는 것인지 누가 알까 쉬쉬하며 아는 사람들만 관심있고 나머지 모르는 국민들은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그런 사건으로 과거로 흘러가는 실정이 안타깝군요. 누구는 대통령 잘 만나서 호강하고 누구는 못 만나서 보상도 제대로 못받고 한이 남게되는 신세가 되었다니....

  15. 와빠 2010.05.01 08: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의 실정은 남과 북이 전쟁을 하다 휴전하고 있는 실정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통일이 되지도 않았는데... 현대와 나라에서는 북한을 도와줘야한다는...아니 이미 도와줬지요...전쟁도 안끝나고 휴전관계에 있는데, 북한의 전쟁준비를 도와주어야만 되는 현실이...북한을 도와주는 돈으로 우리의 군력을 키웠더라면 올해 서해에서의 천안함 사건은 없었으리라 봅니다. 군력이 약하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툭 툭 건드리며 아까운 생명들을 살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것을, 어디서 부터 잘못된것인지 되짚어 봐야 할것입니다. 또 이러한 사건이 없으리란 법이 있나요? 북은 핵무기를 만들어놓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데... 남한은 뭐하고 있나요? 북한의 핵무기 만들도록 돈을 주고 있는것인가요? 우리 선열들이 나라를 어떻게 이룩해 놓았는데... 동족끼리 총칼을 들이대고 있고 호시탐탐 망하기를 바라보고 있는.. 남한쪽에는 미국과 일본이 있고, 북한쪽은 중국과 러시아가 있잖아요...과거는 지나갔지만 아직 한이 남아 있을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연평해전의 영웅들을 지금이라도 우리들의 마음속으로 품어야 할것입니다. 천안함 46용사들처럼 예우는 해 주어야 하는것 아닌가요...맞는 말이면 당장 그렇게 해주십사 부탁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