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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간에 개막전은 설레입니다. 여러 달 동안 경기를 볼 수 없었는데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 시즌 개막전 때마다 신들린 듯 팀을 이끌어주는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 선수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개막전에 맹활약을 펼쳤던 인상적인 선수들을 모아봤습니다.




2000년 현대 퀸란 vs LG 테이텀

3루수 수비가 발군이었던 현대 용병 퀸란은 원래 방망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타율이 높은 선수는 아니었죠. 그러나 한 방에 있어서는 시즌의 처음과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그는 개막전에서 1회 3점포, 2회 1점포, 2점포를 작렬하며 개막전 스타가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줬죠. 또한 한국시리즈 MVP에 뽑히며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더구나 현대-한화(대전)의 개막전은 양팀 스코어 17:10의 난타전이었는데 무려 14개의 홈런이 쏟아지며 역대 한 경기 최다홈런(종전 11개)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시즌 중에 퇴출되었지만 테이텀 역시 퀸란 못지 않게 개막전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사직에서 펼쳐진 롯데와의 개막 1차전에서 선제결승홈런을 포함해 전타석 출루에 3타수 3안타 2홈런 4타점의 괴력을 선보였죠. 테이텀의 맹활약에 힘입어 엘지는 12:5로 낙승을 거뒀습니다.

개막 2차전에서 13k 완봉승을 거둔 김진웅과 최다안타 신기록을 수립한 장종훈도 잘했지만 인상적인 면에 있어서는 두 용병 선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1년 삼성 마르티네스-이승엽 vs 두산 장원진-우즈

개막 1차전에서 이승엽과 마르티네스는 각각 2점홈런, 1점홈런을 터뜨리며 한화를 4:3으로 제압했는데, 이들 콤비의 진면목은 2차전서도 드러났습니다. 1회부터 만루홈런으로 시작한 마르티네스는 4회에도 3점홈런을 작렬하며 4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한 이승엽과 함께 12:3의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이승엽-마르티네스 홈런 커플은 훗날 대기록 수립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되었죠. 역대 최초로 4연속타자 홈런이라는 기록이 수립되었는데 그 주인공은 이승엽, 마르티네스, 마해영, 바에르가까지 4명이었습니다.

2번 장원진 - 3번 우즈도 대단했습니다. 해태와 잠실벌에서 펼쳐진 개막 1차전에서 우즈는 7회에 병살타를 기록하며 역전 기회를 날려버렸지만, 9회말에 끝내기 2점홈런을 작렬하여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냈습니다. 다음 날에도 우즈는 5타수 3안타 2타점을 과시하며 역대 최고 용병이라는 찬사가 허명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장원진의 활약이 있었죠. 1차전에서 2:3으로 뒤진 상황에서 7회에 동점 적시타를 날려 팀을 살려내며 5타수 2안타 2타점, 다음 경기에서도 5타수 4안타 3득점을 기록하여 테이블 세터로서 더 없는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2002년 한화 송진우 vs 기아 키퍼

송진우와 키퍼는 2002년에 다승왕 경쟁을 펼쳤던 사이입니다. 이 두 선수는 개막 3연전에서 나란히 인상적인 투구로 팬들을 기쁘게 했죠.

특히 2000~2001년 모두 개막전을 두산에게 내줬던 기아(전 해태)는 2002년만큼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왔습니다. 결국 두산과의 3연전을 모두 싹쓸이하며 지난 앙금을 씻어내는대 성공했죠. 그 중심에는 키퍼가 있었습니다. 야구에서는 다득점이 펼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1:0의 투수전도 묘미가 있습니다. 개막 2차전에 선발투수였던 키퍼는 1회말에 정수근-장원진에게 연속타자 안타를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으나 이후 22타자 연속 범타를 이끌어내어 8이닝 3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영원한 회장님 송진우는 키퍼보다 더 빛나는 투구를 펼쳤습니다. 8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최기문에게 안타를 맞기 전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롯데 타선을 봉쇄했습니다. 결국 2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하여 프로통산 7번째 개막전 완봉승, 개인적으로는 통산 10번째 완봉승을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이날 승리로 당시 선동열이 세운 146에 단 1승차로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2003년 기아 리오스-키퍼 vs 삼성 이승엽-마해영

2002시즌에도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한 기아는 2003년에도 개막 2연전을 모두 거머쥐었습니다. 그 1등공신은 바로 용병투수들이었죠. 리오스가 개막전에서 7이닝 8피안타 1실점으로 2003시즌 마수걸이 승리를 올린 뒤, 키퍼는 2003년에 이어서 또 다시 개막 2차전에서 6 2/3이닝의 호투를 펼쳐 연승행진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역시 용병투수가 맹활약을 하면 그만큼 경기가 쉽게 풀리는가 봅니다.

기아가 용병투수의 합작이 돋보였다면, 삼성은 토종 강타자 듀오의 방망이가 빛났습니다. 이승엽과 마해영은 각각 개막 1,2차전에서 닮은 꼴 활약을 펼쳤습니다. 개막전 첫날 이승엽은 절친한 친구인 박명환을 상대로 1회, 3회에 각각 연타석 투런포를 앞세워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면 다음 날에는 마해영이 구자운을 상대로 2회, 4회에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전 시즌 한국시리즈 MVP의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특히 개막 2차전에서 마해영은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의 활약으로 통산 10번째 2000루타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2004년 삼성 오리어리 vs 한화 송진우

기아-두산의 개막 1~2차전에 등판한 투수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기아를 거쳐 두산 유니폼을 입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죠. 개막 1차전은 리오스-키퍼의 대결이었고, 2차전에는 두산에서 레스가 등판했습니다. 기아(해태)에서 두산으로 옮겨간 순서는 레스, 키퍼, 리오스가 되겠군요.

2004년 개막전에 빛난 선수는 송진우가 있습니다. 전년도 한국시리즈 MVP인 현대 정민태와 맞대결을 펼친 그는 7이닝 무실점의 역투를 펼치며 4:1로 이겼습니다. 2002년 개막전을 연상시킬 만큼 호투였습니다. 4회까지 노히트 노런이었는데다 7회말까지 단 2안타만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투를 펼쳤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그는 다음 시즌(2005년)에도 개막전 선발투수로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또 다른 개막전의 영웅은 삼성의 용병 오리어리였습니다. 개막전에서 3회에 좌전안타를 날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데 이어 3:4로 뒤지던 7회에 동점홈런을 터뜨리며 제 몫을 해냈습니다. 다음 날 경기에서도 비록 팀은 패했지만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3타점을 책임지며 개막 2연전에서만 3홈런을 폭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활약은 오래 가지 못한 채, 결국 퇴출되고 말았죠.


2005년 삼성 심정수 vs SK 김재현

2004시즌을 마친 뒤 최고의 이슈는 삼성의 100억 FA선수 영입(심정수, 박진만)이었습니다. 2005년 개막전부터 심정수의 위력은 여지 없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미 개막 1차전에서 3타수 3안타 1타점으로 방망이 솜씨를 가다듬었던 그는 개막 2차전 1회에도 그랜드슬램을 기록하며 거포의 위력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각인시켰습니다. 개막 2연전 동안 심정수가 기록한 8연타석 출루(5타수 5안타 5타점)는 신기록이었습니다.

심정수와 동갑내기이자 FA 자격으로 이적한 김재현은 새로운 팬들에게 맹타로서 첫 인사를 보냈습니다. 1차전에서 SK는 현대를 상대로 비록 5:5로 비겼지만 1홈런을 비롯해 6타수 2안타 3타점을 폭발한데다 2차전에서도 2:2로 동점이던 상황에서 승부의 균형을 깨는 우전적시타를 터뜨려 결승점을 만들어냈습니다. 개막 2연전에서 10타수 4안타 4타점을 작렬한 김재현은 이적 후에도 역시 '클러치히터', '캐넌히터'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94년 우승을 경험했던 그는 각서파문 끝에 팀을 옮기고 2007년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기도 했죠.






2006년 SK 시오타니 vs 삼성 권오준-오승환

시범경기부터 이목을 끌었던 일본인 용병 시오타니는 불행히도 KIA전에서 장문석의 투구에 맞아 왼손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퇴출되고 말았죠. 그러나 개막전에서 보여준 그의 맹활약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문학에서 펼쳐진 현대와의 개막전에서 4회말에 선제 2점홈런으로 결승타를 기록한 데 이어 다음 날 2차전에는 끝내기홈런을 포함해 무려 5타수 3안타 4타점을 쏟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죠.

2006년은 KBO 역사상 최다홀드(32홀드), 최다세이브(47세이브) 신기록이 수립된 시즌입니다. 1차전에서 패한 삼성은 5:5로 팽팽했던 6회말에 선두타자 박한이의 결승홈런이 터지자 권오준-오승환이 마운드에 올라 롯데 타선을 제압하고 시즌 첫 승을 생겼습니다. 권오준-오승환의 철벽계투 콤비는 2006년 삼성의 아이콘이었을 뿐만 아니라 '삼성은 6회까지만 야구하면 된다'는 공식을 만든 장본인이었는데, 그 효시가 개막 2차전이었습니다.


2007년 롯데 손민한 vs KIA 장성호

2001이후로 당시까지 6년간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한 설움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선봉이 서겠다고 공언했던 손민한은 현대를 상대로 한 개막전부터 롯데의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8이닝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를 펼친 그는 팀의 주장이자 에이스로서의 자존심도 세웠습니다. 첫 단추를 잘 풀어낸 롯데는 장원준, 이상목이 잇달아 선발승을 챙기며 현대와의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롯데에 손민한이 있었다면, 기아에는 장성호가 있었습니다. 1차전에서 LG 박명환의 호투에 힘입어 1차전을 내준 기아는 장성호를 앞세워 2,3차전을 내리 이겼습니다. 2차전 1:0으로 앞선 3회에 2점홈런을 작렬하며 승기를 잡았고, 3차전에서도 2:1로 박빙이던 7회에 또 한 번 2점포를 가동하여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2008년 롯데 이대호 vs 삼성 철벽계투

이대호의 방망이가 롯데의 개막 2연승을 이끌었습니다. 1차전에서 5타수 4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11:1의 대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2차전에서는 1회에 선제적시타를 날린 뒤 3회에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이틀 동안 무려 9타수 7안타 6타점의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2007년에도 3연승으로 개막전을 시작한 롯데는 2008년에도 2연승으로 쾌조의 출발을 보였는데, 투타에 손민한, 이대호라는 확실한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롯데와 함께 2연승의 주인공이 된 삼성은 철벽계투진의 활약이 컸습니다. 권혁, 안지만, 오승환이 이틀 연속 호투쇼를 펼쳤던 것이죠. 1차전에서는 3 1/3이닝 무실점, 2차전에서는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의 지키는 야구는 선동열 감독이 삼성에 취임한 이후 마무리 오승환을 중심으로 권혁, 안지만, 정현욱, 권오준이 나누어맡아 이뤄온 팀 컬러입니다.


2009년 두산 김동주 vs 롯데 김주찬

기아와의 잠실 개막전을 싹쓸이한 두산의 1등 공신은 바로 김동주였습니다. 양 팀 에이스 김선우와 윤석민은 4회까지 1:1의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습니다. 먼저 무너진 쪽은 기아였습니다. 선발 윤석민이 5회에 2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하는가 싶었는데 이종욱, 오재원에게 연속안타, 고영민에게 4구를 허용했죠. 2사 만루에 등장한 김동주가 싹쓸이 2루타를 터뜨리며 승부를 뒤바꿔놨습니다. 이후 김현수, 왓슨의 적시타마저 연달아 터진 바람에 승부는 거기서 끝났죠. 2차전에서도 김동주는 2:1로 간신히 앞선 8회에 승부에 쐐기를 박는 1타점 2루타를 날리어 간판타자로서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개막 2연전 1승 1패를 거둔 롯데의 김주찬은 승패에 관계없이 독야청청했습니다. 1차전에 1번타자로 출전한 그는 투수 앞 안타를 터뜨린 뒤 조성환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선취점을 올렸고, 7회에는 역전 결승 2루타를 날리어 3:2로 짜릿한 승리의 영웅으로 우뚝 섰습니다. 다음 2차전에서 그의 소속팀 롯데는 1:10으로 대패를 당했지만 김주찬은 첫 타석 안타를 포함하여 4타수 2안타를 날리어 팀의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더 많은 개막전 야구 영웅들이 있었지만 모두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야구가 계속되는 이상 더 많은 개막전 영웅이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욱 기대되는 2010년 프로야구. 과연 어느 팀이 마지막에 웃게 될까요?

 

(사진 : 스포츠서울)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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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펨께 2010.03.28 18: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야구를 구경한지도 한참이나 되였네요.

  2. BlogIcon 악랄가츠 2010.03.29 08: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산전에 소녀시대가 시구하더니,
    엄청난 경기를 보여주며 이겨버렸네요! ㄷㄷㄷㄷㄷㄷㄷ
    소녀시대가 Oh를 부르며 응원하였으니...
    이길 수 밖에 없는 게임이었네요! ㅎㅎㅎㅎ

K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북 현대의 김상식 선수와 이광현 선수가 우승 뒤풀이 후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이 두 선수에게는 이 날이 최고의 날인 동시에 최악이 날이 된 셈인데요.

“음주운전,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 중에 상식.
하지만 문제는 이 상식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2만6873건, 사망자수는 969명으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음주운전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태국은 일부러 도로에 사고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음주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수준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조정했습니다.

4년 전 한 연예인은 음주운전 후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연예계에서 퇴출됐는데요.

이런 오리발은 아니라고 해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이들에게는 단계별 변명 패턴이 있었습니다.

나 혼자만의 불행이 아닌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음주운전의 단계별 패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1차 적발 = "술은 딱 한 잔만 마셨어요. 정말 멀쩡해서 괜찮을 줄 알았죠."


지난해 12월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회사원 L모씨.
송년회다 뭐다 연일 술자리가 이어지던 L씨는 그 날도 어김없이 저녁식사와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횟집에서 시작한 술자리는 2차 막걸리 집에 이어 3차 노래방까지, 풀코스로 이어졌고 그렇게 정신없이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새벽 1시.
술자리를 끝내고 집에 가기 위해 대리운전을 부른 L씨.
하지만 연말연시 대목이라서 그런지 그 날 따라 대리운전기사가 빨리 도착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요즘 부쩍 자주 만나게 되는 이슬양?

함께 술을 마시던 동료들이 하나 둘 모두 떠나가고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니 술도 깨는 것 같아 운전을 해도 될 것 같았다는 L씨.
결국 L씨는 음주운전 중 음주단속 중이던 경찰에 적발, 혈중 알코올 0,135%로 면허취소와 함께 15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처음 음주운전에 적발된 사람들의 변명은

"딱 한 잔만 마셨어요."
"이번이 정말 처음이에요."
"대리운전을 불렀는데 오지를 않았어요."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전 정말 멀쩡해요...근데 혈중알코올은 왜 이렇게 많이 나오죠?"
등등 입니다.

하지만 몇 명을 제외(일부 한 잔만 마셔도 혈중알코올이 높게 나오는 분들도 계시다고 하더라고요.)하고는 딱 한 잔만 마셨는데 면허정지 혹은 면허취소가 나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음주운전의 경우 처음에 걸리는 경우보다 적발 전 음주운전을 했던 경험이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결론은 어떠한 변명도 음주운전을 정당화 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2차 적발 = "무면허 운전, 사고만 안나게 조심하면 괜찮을 줄 알았어요."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운전자들은 면허정치 혹은 면허취소 처분을 받게 됩니다.
문제는 면허증이 없는 이들이 운전대에서 쉽게 '손'을 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보고 싶으시다면 더보기를 클릭.

더보기


지난해 초 음주음전으로 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K씨는 무면허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또 다시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영업직에서 일하는 K씨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 면허취소 이후에도 운전대를 계속 잡았다고 합니다.
안전벨트 잘 매고 신호와 규정 속도도 잘 지키면서 조심스럽게 차를 몰던 K씨.
하지만 이러한 K씨의 무면허 운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사고만 나지 않으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던 K씨가 간과한 사실은 바로 경찰의 차적조회.
기술의 발달로 경찰들은 언제 어디서든 차적조회를 통해 무면허 운전차량 여부를 알 수 있었던 것이죠.

결국 K씨는 2년간 운전면허응시 불가와  100만 원의 벌금, 그리고 회사의 해고통보를 받게 됩니다.
해고 이 후 다시 취업을 하려고 해도 운전면허가 없어 취업이 어렵다는 K씨.
자신의 음주운전을 후회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무면허 운전의 경우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경찰들의 불시 검문으로 인해 언제든지 적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차 적발 = "조금만 더 참으면 면허를 다시 딸 수 있었는데..."

음주운전의 가장 큰 문제는 나 자신의 인생은 물론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6월 광주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공기총 살해사건.
이 끔찍한 사건의 발단은 가해자의 음주운전이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기 취소된 L모씨는 지난 6월 무면허로 운전하던 자신의 차에 아이가 부딪치자 아이를 차에 태운 후 공기총 6발을 쏴 살해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사고 직후 피해 어린이는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경상이었다는 점입니다.

면허재응시기간을 앞두고 난 사고에 L씨는 결국 자신은 물론 가족, 그리고 어린아이와 그 아이의 가족까지 불행해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20살 꽃다운 나이에 음주운전을 한 다른 차량과의 사고로 친구 2명과 자신의 얼굴을 잃게 된 재클린 사브리도. 그녀의 인생은 누구한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출처 : 미국 텍사스 음주운전방지운동본부>

지난 주말에도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40대 부부가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40대 부부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간 음주 운전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음주운전은 나 혼자만의 불행이 아닌 다른 사람의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Posted by 포도봉봉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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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달콤시민 2009.12.08 13: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초보운전인 저는 그 음주운전의 입장을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들긴한데..
    너무 자기 자신을 믿는 그 자만심이 음주운전을 부르는 것 같아요..
    대리운전 몇만원이면 갈 수 있을텐데 벌금 150만원이라니... 어휴. ㅜㅜ

  2. BlogIcon Reignman 2009.12.08 14: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정말 뻔한 패턴의 별명들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 같아요.
    암튼 저 재클린이라는 사람은 참 안타깝네요.
    음주운전이 남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더 위험한 범죄인 것 같습니다. ㅜㅜ

    • BlogIcon 포도봉봉 2009.12.08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정말 음주운전은 나 혼자만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인생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인 인식해야 할 것 같아요. 저 재클린이란 여성분은 음주운전의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알릴려고 캠페인에 참여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용기 있는 분인 것 같아요~ㅠㅠ

  3. BlogIcon 악랄가츠 2009.12.08 14: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우.. 음주운전! 정말 위험한 행동이죠 ㅜㅜ
    자신 뿐만, 아니라 선의의 피해자까지 생기잖아요 ㅜㅜ
    그 어떤 변명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제 술자리가 많은 연말이 다가오는데,
    차는 잠시 잊어주세요! ㅎㅎㅎ

    • BlogIcon 포도봉봉 2009.12.08 15: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저는 그래서 술마시면 혹시나 취해서 차 끌고 갈까봐 차 키를 아주 깊숙히 숨겨놓아요^^ 절대 취하면 꺼낼 수 없는 그런 곳에 ㅋㅋ 그러다가 영원히 찾지 못한 키도 있답니다 ㅠㅠ



챔피언이 앉은 돈방석은 얼마짜리? (3)

이기면 롤렉스 시계를 준다?




지난 (1), (2) 편에 이어  
다음 알아볼 시대는 1990년대입니다.

1990년대를 양분했다고 할 수 있는 팀은 LG 트윈스입니다.
해태가 4차례 우승을 했고, LG는 한국시리즈 4차례 한국시리즈 진출해서 2번 우승했죠.
 
그 중 1994년 LG 트윈스입니다.

1994년 LG 트윈스는 역대 우승팀 가운데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했던 팀이고

신인 3인방 대박에 여러 가지 이슈를 몰고 다닌 팀이었죠.

 

더구나 LG는 선수 지원과 복지에 대해 가장 선진화된 구단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타구단의 부러움을 샀었죠.

 

프로야구에서 현대식 전용연습장과 숙소를 구축한 최초의 구단이 LG 트윈스였습니다.

LG의 챔피언스파크-챔피언스클럽는 1993년에 모두 완성됐고,

1996년에 만들어진 삼성의 경산볼파크보다 3년이나 빨랐죠.

 

LG는 8억여원의 파격 보너스를 지급했었는데, 당시까지 사상 최고액이었다고 합니다.

 

그 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1994년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보너스

▷ 한국시리즈 직전까지 4억2천8백만원

▷ 우승배당금 2억5천만원

▷ 우승기념 구단 추가보너스 1억5천만원

▶ 우승보너스 총액 8억2천8백만원


뿐만 아니라 이미 지급한 보너스들도 상당했는데요.

포스트시즌(한국시리즈 포함) 이전에 지급됐던 각종 보너스,
즉, 페넌트레이스 당시 지급했던 보너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94년 LG 트윈스의 정규시즌 중 각종 보너스


▷ 월별 성적에 따른 메리트(4~9월) = 8천5백만원

▷ 2천만원 이하 저액연봉 선수를 위한 인센티브 = 5천7백만원

▷ 전반기 우승보너스 = 7천1백만원

▷ 정규시즌 1위 보너스 = 2억원

▶ 정규시즌 각종 보너스 총액 = 4억1천3백만원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2천만원 이하 저액 연봉 선수들을 위한 인센티브입니다.
대체로 고액 연봉자들이 팀 기여도가 높지만 적은 연봉을 받고 뛰는 선수들에게도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당근책이었죠.


LG는 우승한 뒤, 보너스 잔치 외에도
야구 관계자, 그룹 관계자, 재계 인사 등을 동원해서 우승 기념 리셉션을 치렀다고 하네요.

여기에 드는 경비는 1억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우승팀의 모기업들이 관련 상품에 대해 대폭 할인 행사도 했었죠.
즉, LG의 경우, 우승 기념으로 가전 할인 행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4년전인 1990년에는 LG가 프로야구, 프로축구를 석권했었죠?
그 때도 각종 할인행사를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94년 LG 트윈스의 우승 장면


다음은 2009년까지 해태의 마지막 우승이었던 1997년으로 가보겠습니다.

 

해태와 LG가 맞붙어 해태가 4승1패로 챔피언이 됐는데요.

그 시즌까지 포스트시즌 역대 최고 입장 수입(약 29억1천만원)을 기록했습니다.


그 덕택에 해태도 1997년 당시로서는 역대 최다 우승배당금 8억7천만원을 확보했죠.

종전까지 기록은 1995년 OB가 챙긴 7억6천7백만원이었습니다.

 

1996년 우승배당금 5억9천만원 중 경비를 제외한 5억1천만원 선수 몫으로 돌렸는데
1997년은 이보다 좀 더 많은 7억 안팎의 보너스가 풀렸다고 합니다.


 

1998년은 현대와 LG가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는데요.

여기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습니다.
 

1998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현대와 LG가 뜻밖(?)의 장외혈전이 있었습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LG 구본무회장이 그런 말을 했다죠?

 

"만일 우승컵을 되찾아온다면 수훈갑에게 가장 아끼는 시계를 벗어주겠다!!!"

 

문제의 그 시계는 '롤렉스' 시계로 시가로 8천만원 상당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당시 현대 강명구 사장은 정몽헌 구단주에게 건의를 했고

급기야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투수, 타자 각각 1명에게 그랜저XG를 걸었다니

감독, 선수 뿐만 아니라 야구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한마음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시리즈 MVP가 받을 경품은 EF소나타였거든요?
구단주가 내건 그랜저XG보다는 오히려 한 등급 아래의 차종이었다는 것.

이런 걸 보면 우승을 위한 경품 전쟁도 야구 경기 못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98한국시리즈의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현대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죠.
현대 유니콘스는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우승배당금 6억원을 포함해
총 10억원의 우승보너스를 챙겨, 당시로선 "역시 현대!!!"라고 할 만큼 파격적이었습니다.

다음 시즌인 99년에 한화도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우승 보너스 규모가 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하니 우승이 좋긴 좋나 봅니다.

이상 3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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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hoebe 2009.10.31 11: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들 야구시킬걸 그랬네요.ㅎㅎㅎㅎ

  2. 순신이 2009.10.31 12: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켜스케이팅 시키세요...야구는 한물 갔음..

  3. probe 2009.10.31 15: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겨시킬 바엔 축구가 낫지.
    피겨는 김연아급 아니면 꽝.

  4. SCV 2009.10.31 15: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보니 푸훕~~~~~~~
    전성기 찬호팍 연봉이 웬만한 축구스타 연봉을 능가할걸여?
    김연아가 잘해서 국위선양은 인정.
    근디 돈을 생각하면 야구만한게 업음.
    차라리 골프면 모를가?

    • 소나무 2009.10.31 1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두 성공을 전제로 하신 거겠죠
      성공하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이 더욱 많을거 같군요

  5. 순신이 2009.10.31 17: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네요..성공했을 때 얘기죠...어릴 때 유도하는 동네 형한테 '형은 왜 국가대표 아니냐'고 물어봤다가 맞아죽을 뻔했던 경험이 있죠..그 형 대답이 "넌 우리나라 전체에서 공부 제일 잘하냐?" 였거든ㅇㅅ..

  6. BlogIcon 아라누리 2009.10.31 20: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그 당시에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

"과연 이번 우승팀은 얼마짜리 돈방석에 앉게 될까?"

매년 우승팀이 결정될 때마다 야구팬들의 최대 이슈가 되는 이야기죠.

일단 우승 돈잔치라고 하면 항상 선행되는 것이 있었으니
우승배당금이고 그 우승 배당금을 좌우하는 것이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입니다.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의 일정 부분을 우승배당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이죠.

올 시즌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과 기아가 받을 배당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역대 포스트시즌 입장수입 Best 5
(참고: 백만원 단위에서 반올림)

1위 2009년 약 70억5천만원
2위 2008년 약 53억6천만원
3위 2007년 약 36억3천만원
4위 2004년 약 31억2천만원
5위 1997년 약 29억1천만원

현재 기아는 위에서 언급한 약 70억5천만원 가운데 대회 진행비를 빼고 남은 금액 중
정규시즌 1위로 20%에 해당되는 8억4천만원을 받게 되었고
여기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통해 남은 금액의 50%인 16억8천만원도 챙겼습니다.

기아는 우승배당금만 25억2천만원을 챙겨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죠.
2000년대 우승배당금이 통상 6~8억여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3배가 넘는 금액입니다.

▲ 기아 타이거즈 우승 당시 모습 (출처 : KBO)

이렇게 우승배당금이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럼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이 늘어난 이유는 뭘까요?
다음과 같은 이유가 가장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2009년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 증가 원인

▷ 역대 2번째로 많은 포스트시즌 경기 수 (16경기, 역대 최다는 2000년 20경기)
→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가 모두 최종전까지 갔음
→ 준플레이오프도 최장 5차전까지인데 4차전까지 펼쳐짐

▷ 한국시리즈 1~2차전을 제외하면 모두 2만5천석 이상의 구장에서 경기했음
→ 역대 2만5천석 이상 경기장에서 최다 경기 치름 (총 16경기 중 14경기, 종전 1995년 13경기)
→ 포스트시즌 최다관중 41만262명 달성 (종전 최다관중 1995년 37만9978명)

▷ 프로야구에 대한 국민적 관심으로 열기 고조 및 인기팀 기아, 롯데의 급부상
→ 올해 최고의 팀 기아, 작년부터 가을잔치에 선보인 롯데의 인기가 흥행에 기여했음

어쨌건 25억2천만원의 우승배당금에 그룹지원금 등이 더해지면
기아는 역대 최다보너스가 지급(약 30~40억원)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실로 돈잔치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군요.

현재까지 역대 단일 시즌 우승으로 최다 보너스를 지급한 구단은 2002년 삼성 라이온즈입니다.
21년이나 한맺힌 한국시리즈 준우승 징크스를 떨쳐내자
구단에서 대대적으로 돈다발을 풀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2002년 삼성의 보너스 지급 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2002년 삼성 라이온즈

▷ 포스트시즌 우승팀 배당금 = 7억원
▷ 우승보험금(삼성화재) = 10억원
▷ 그룹지원금 = 13 + @억원 (추정)
▶ 우승보너스 총액 = 30 + @억원

이에 못지 않았던 것이 2005년 삼성이 우승 때입니다.
당시 보너스 규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

▷ 포스트시즌 우승팀 배당금 = 7억여원
▷ 우승보험금(삼성화재) = 20억원
▷ 코나미컵 준우승 배당금 = 3억원
▶ 우승보너스 총액 = 30억원

삼성의 우승보너스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는 우승보험금 때문인데요.
이 우승보험금은 2001년 우승팀인 두산 베어스도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어느 팀이 우승하건 공헌도에 따른 보너스 차등지급을 해왔는데,
당시 삼성은 A등급 1억원, B등급 7천만원, C등급 5천만원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2008년 SK는 우승보너스를 팀 공헌도 불문하고 균일 지급했었죠?

▲ 2005년, 2002년 우승 당시 만들어진 삼성 구단 엠블렘 (출처 : 삼성 라이온즈)

그럼 2000년대 다른 팀들 우승 당시 보너스 지급은 어땠을까요?
먼저 2003년 현대 유니콘스, 2001년 두산 베어스의 우승보너스의 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2003년 현대 유니콘스

▷ 포스트시즌 우승팀 배당금 = 6억원
▷ 구단 자체 보너스 = 4억원
▷ 그룹지원금 = @
▶ 우승보너스 총액 = 10억원 + @원
2001년 두산 베어스

▷ 포스트시즌 우승팀 배당금 = 7억원
▷ 우승보험금 = 8억원 (총 10억원 중 팬서비스용 2억원 제외)
▶ 우승보너스 총액 = 15억원

2001년 두산이 우승을 해서 영광을 누렸지만
당시 삼성이 우승을 했다면 예상 우승보너스는 15~20억원 수준이었다고 하더군요.

▲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의 주역은 여성 여러분들입니다. (출처 : KBO, 9월 2주차 응원피켓 이벤트 당선작)

(이 글에서 산정한 우승보너스 관련된 수치는 언론의 기사, 자료 등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2000년대 우승팀의 돈잔치에 관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면 80~90년대 우승팀은 어땠을까요?
궁금하시다면 다음 편 기대해주세요. 더 재미있을 겁니다.

[ 다음 편이 궁금하시다면 여기로 → 챔피언이 앉은 돈방석은 얼마짜리? (2) (바로가기) ]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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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말랑말랑 2009.10.29 0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는 일단 우승하고 봐야 되는가봐요.
    한 번 우승으로 쥐는 돈뭉치가 상당하니까요.

    • BlogIcon 칸타타~ 2009.10.29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승하면 감독, 선수, 코치만 보너스를 받는 게 아니죠.
      그 뒤를 받쳐준 프런트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고
      이름 없이 뛰고 있는 2군 선수들에게도 얼마씩 돌아갑니다.
      그 구단 전체를 먹여살리는 역할을 하는 게 우승이죠.

      2005년 삼성의 경우, 2군 선수들에게도 500만원씩 지급했다고 합니다.
      이 금액은 2군 선수 보너스 가운데, 역대 최고 지급액인 걸로 압니다.

  2. 노지심 2009.10.29 09: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3년전쯤부터 재밌어지더군요, 야구가...그전엔 좀 그럭저럭이었는데...언제부터인가 호쾌한 야구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치밀한 야구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오히려 그 점이 더 흥미진진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