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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수 주전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으려나?"

올 시즌 불안해 보이는 박한이를 두고 팬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삼성 라이온즈는 부상자와 군 입대자의 복귀로 그 어느 때보다 두터운 선수층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전 경쟁도 뜨겁고, 기존의 주전이었던 선수들조차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입니다. 선동열 감독도 확실한 주전은 없다고 못 박은 상황에서 2중고, 3중고에 처한 이슈메이커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박한이입니다.

그는 2000년대에 입단한 세대 중 리그에서 가장 화려한 야구 인생을 보냈습니다. 2001~2002, 2004~2006년에 걸쳐 모두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였는데, 삼성의 新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그는 1번타자와 주전 외야수(주로 중견수)의 중책을 맡아 동년배 선수들이 누릴 수 없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죠.

그렇지만 지난 명성과 업적은 앨범 속 사진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현재 삼성은 작년에 20-20클럽을 달성한 3번타자 강봉규, 최근에 급성장한 예비 1번타자 이영욱, 장타력이 돋보이는 4번타자 최형우가 떡하니 외야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경찰청에서 맹활약하며 복귀한 조영훈, 신예급인 배영섭, 오정복, 안성필도 도전장을 내민데다 내외야가 모두 가능한 강명구, 조동찬까지 외야 3자리를 놓고 경쟁자가 겹겹이 쌓이는 추세입니다. 군입대한 우동균은 실질적 경쟁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죠.

이런 가운데 박한이가 주전 외야수로서 살아남으려면 여러 난관을 돌파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과제들은 무엇일까요?




12초룰을 극복하라

최근 몇 년간 프로야구 경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로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올 시즌부터 12초룰을 시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룰이 시행되니 가장 시선이 집중되는 선수가 바로 박한이입니다. 타격 준비 동작이 요란한 그는 한 타석에 서기까지 20~30초를 보냅니다.

문제는 삼손이 머리칼을 길러야 힘을 쓰듯, 그가 그 요란한 동작을 취하지 않으면 집중하지 못하는 증세(?)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경기 시간을 줄여야 하고, 룰이 그렇게 바뀌었으니, 그도 변해야죠.

보다 간결해진 동작을 몸에 익혀 과거와 같은 타격솜씨를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문득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타격 직전의 특이한 동작을 떠올려봅니다.)





급감하고 있는 장타력의 회복

170 → 156 →139 →134 → 128 → 117 → 104

이것이 무엇이냐구요? 2003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박한이의 안타수 추이입니다.

단 한 번도 어김없이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더욱 주목할 것은 장타력의 급감입니다.

2004~2009년 사이 그의 홈런, 2루타의 개수 추이입니다.

홈런 :16 → 9 → 6 → 2 → 4 → 2 (개인최다 16개)
2루타 : 26 → 21 → 21 → 12 →17 → 28 (개인최다 34개)

비록 작년에 2루타가 많이 늘어났지만 줄어든 홈런수를 감안했을 때 2005~2006년 수준보다 장타력이 나아졌다고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장타력이 급감하고 출전 경기수도 줄어들면서 득점, 타점 역시 줄어들고 있습니다.

득점 : 81 → 62 → 89 → 68 → 57 → 48 (개인최다 113득점)
타점 : 63 → 59 → 43 → 27 → 41 → 36 (개인최다 63타점)

매년 전지훈련 때마다 그는 장타를 보다 많이 날리겠다고 공언해왔지만, 막상 시즌에 들어가서는 그 다짐은 공수표가 되어버렸습니다. 

과연 박한이는 이번 시즌 몇 개의 홈런을 날릴 수 있을까요?





'정신병자'에서의 탈출

다른 선수들에 비해 넋나간 주루플레이를 많이 한 덕택에 안타깝게도 그의 별명은 '정신병자'입니다.

현 삼성 라이온즈 김응룡 사장이 감독시절에 박한이가 산만한 경기자세로 어이 없게 아웃되는 것을 목격한 뒤, 기자들에게 이야기한 것이 별명이 되어버렸습니다. 문제는 해마다 본헤드플레이를 통해 경기의 흐름을 끊는 경우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잦다는 것입니다.

문득 작년 대구 LG전이 떠오릅니다.

LG 최원호가 5회말에 승리투수 요건을 코 앞에 두고 2사 만루 2-3 풀카운트에 몰리며 극심한 난조에 빠졌을 때였습니다. 박한이가 1루에서 견제사를 당하는 바람에 경기 양상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접전으로 흘러갈 경기 분위기가 단숨에 삼성의 대패로 굳어져 버린 것이죠. 그날 선동열 감독도 패인에 대해 주저않고 '박한이의 견제사' 때문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에는 수비에서도 집중력을 잃어서 팀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사실 박한이는 한 때 리그에서 손꼽히는 중견수로서 2005년에는 보살 11개로 1위였습니다.
(보살에 대해 쉽게 말하자면 수비수가 송구를 해서 주자를 잡아내는 것입니다.)

줄어가는 도루 능력, 늘어가는 수비 불안, 어이 없는 주루플레이는 박한이가 '정신병자'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외야 포지션 경쟁이 치열한 이 때에 박한이가 이런 오점들을 떨치지 않으면 서서히 자리잡혀가는 외야 구도에 빨간불이 켜지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스포츠과학이 발달되고 선수들 몸 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선수들이 맞이하는 전성기 연령대도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20대 중후반을 전성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30대에 접어들면 은퇴를 준비하는 시기라고 했지만, 요즈음에는 30대가 넘어서고 전성기를 맞는 선수들도 늘어났습니다.

그에 비해 박한이는 이제 갓 30살을 넘겼을 뿐인데도 최근 5~6년간을 보면 퇴조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1998년 아시안게임에서 함께 뛰었던 또래의 강봉규, 신명철이 작년에 급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FA계약 선수가 된다는 것은 곧 베테랑 선수가 됨을 의미합니다. 베테랑이 된다는 것은 혼자만 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후배 팀원들을 이끌어가며 팀의 리더격이 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에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성적 뿐만 아니라 팀원에게 임하는 태도가 보다 성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작년에 그도 탤런트 조명진과 결혼했고 머지 않아 아이를 낳게 되면 아버지의 역할도 맡게 될 것입니다.

과연 그가 선배인 양준혁, 진갑용, 박진만의 뒤를 이을 만한 삼성의 베테랑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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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故 임수혁 선수의 모교인 '봉천초등학교'입니다.
원래 그는 방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당시에 다이어트 삼아 운동을 하다보니
결국 5학년 때 야구부가 있는 봉천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사이에도 그의 모교에서는 후배 야구선수들이 맹활약하고 있었고
또 다른 후배들을 모집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운동장을 거닐며 故 임수혁 선수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노라니
가장 기억에 남은 3경기가 떠올랐습니다.


▲ 스포츠조선 2000년 4월 19일자



1999년 플레이오프 최종 7차전 (대구) - 기적 같은 대역전극의 초석이 되다

1승 3패로 몰린 롯데가 내리 2연승을 하며 최종 7차전을 맞이했습니다.
이승엽, 김기태, 김종훈의 홈런을 앞세운 삼성이 5:3으로 앞서고 있었죠.

2점차 뒤진 9회초를 맞이한 롯데.
공필성의 안타로 회생의 불씨를 살린 뒤 임수혁이 대타로 들어섰습니다.

임수혁은 바깥쪽 공을 기다렸다는 듯이 힘차게 방망이를 휘두른 뒤,
무언가 직감한 사람처럼 두 팔을 번쩍 들며 1루로 달려갔죠.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홈런!!!

이 동점포에 힘을 얻은 롯데는 연장전에 터진 김민재의 적시타에 힘입어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동점홈런의 가치가 높았던 것은 상대투수가 최고의 마무리 임창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역대 최고의 플레이오프 경기'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야구팬들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새긴 임수혁은 타격에 소질이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공격형 포수로 호쾌한 방망이를 과시하던 그가 그라운드를 떠난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이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무척 슬프군요.

과연 그가 쓰러진 당일,
무슨 일이 있었길래 팬들이 좋아하는 한 선수를 하늘 나라로 보내야 했던 것일까요?



▲ 스포츠서울 2000년 4월 19일자



2000년 4월 18일 (잠실) - 돌아오지 못한 그라운드

임수혁의 소속팀 롯데는 LG를 맞아 잠실에서 경기를 펼쳤습니다.

2회초에 유격수 유지현의 실책으로 출루한 임수혁은 우드의 안타 때 2루를 밟게 되었죠.
7번타자 조경환의 타석 때 갑자기 쓰러진 그는 더 이상 그라운드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병상에 눕기 전까지 임수혁은
1992년 부정맥의 판정과 함께 운동을 해도 괜찮다는 진단을 받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심장질환약을 복용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을 맞이했습니다.

그가 쓰러진 뒤 5분 안에는 누군가에 의해 심장 마사지가 시행됐어야 했는데
10분이 넘도록 아무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식물인간 상태에 이른 것이었죠. 
이후 임수혁은 10년간 다시 일어나지 못한 채, 세상과의 이별을 고했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 스포츠의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였습니다.
임수혁의 부친인 임윤빈씨의 "제 2, 제 3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당부에 걸맞을 만큼
당직의사제도를 비롯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어쨌든 이 사고 후 며칠 간 경과를 보니 더 이상 임수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됐구나 싶었습니다.



▲ 일간스포츠 2000년 4월 19일자 (당시 분위기와 열악한 야구 환경에 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대구) - 꿈에서라도 통했다면

2002년 한국시리즈(삼성-LG)는 작년 한국시리즈(기아-SK)와 더불어서
역대 한국시리즈 가운데 가장 극적인 명승부로 기억합니다.

특히 최종전(6차전) 9회말을 시작할 때까지 9:6으로 엘지는 승기를 잡고 있었고 
삼성은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 이승엽의 3점포와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시리즈 기간 동안 맹타를 휘두른 마해영은 MVP에 선정됐습니다.

"(임)수혁이 형이 병상에서 일어나 나와 함께 운동을 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극적인 끝내기홈런을 날린 마해영의 소감 중 한 구절입니다.
(당시 삼성은 마해영의 맹활약 덕분에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를 제패했습니다.)

최종전 전날 임수혁의 꿈을 꿨던 마해영은 아침에 일어난 뒤
좋은 징조라 생각하며 그라운드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역대 손꼽히는 한국시리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해낸 주인공이 됐던 것이죠.



▲ 역대 최초로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끝내기홈런을 작렬한 마해영 -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임수혁과 마해영은 대학(고려대), 상무에서 한솥밥을 먹은 절친한 선후배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롯데 유니폼을 입었을 당시 팬들은 이들을 두고 '마림포'라고 불렀습니다.

임수혁은 2000년 4월 18일에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고
선수협 문제 등으로 마해영은 삼성으로 이적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마림포를 볼 수 없게 되었죠.

그래서 2002년 한국시리즈 MVP가 된 마해영의 소감이 더욱 인상 깊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수혁 선수가 병상에서 일어난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 궁금했지만
이제는 영영 아무 말도 들을 수 없게 되었군요.



▲ 월간 베이스볼 1998년  


임수혁은 1998년 어느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 돌아봤을 때 가장 불만스러운 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야구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것."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야구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자상한 가장이었다고 합니다.

사고가 났던 당일, 상경하기 전에 임수혁은 스킨로션을 사기 위해 부인과 함께 백화점을 들렀습니다.
모처럼 데이트의 분위기를 즐겼던 그는 부인에게 "일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해서 미안하다"며
"원정경기를 마치면 모처럼 다 함께 영화 한 편 보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때가 의식을 갖고 있던 임수혁이 부인과 함께 했던 마지막 순간이었습니다.

나중에 경기장에서의 비보를 들게 된 부인은 아이들에게 차마 아빠의 슬픈 소식을 전하지 못하여
"아빠가 멀리 전지훈련을 떠났다"며 둘러댔다고 합니다.



▲ 손문상 화백의 <얼굴> 중 '돌아오지 않는 주자 임수혁' 편
(지난 7일 이 그림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란 글귀가 새겨졌더군요.)



이후 10년간 병상을 지키고 살림살이에 육아까지 맡아
고생만 한 임선수의 부인과
그 고통을 함께 안은 가족들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심하게 느껴지더군요.


임수혁이 병상에서 일어나 그라운드를 누비길 기대했던 
많은 야구인들과 팬들의 바람도 이제 물거품이 됐습니다.

'제 2의 임수혁'이 나와서는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 '제 1의 임수혁'이 우리 곁을 떠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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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2.09 15: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시 치료가 조금만이라도 빨랐다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텐데,
    정말 안일한 야구의료체계에 한숨만 나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09 16: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옳은 말씀입니다.
      응급처치라는 건 시각을 다투는 거라
      사고가 터지고 5분 안에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데.
      아직 우리 나라는 멀었다는 느낌입니다.

      야구장 문제도 그렇고.
      전담의사제도도 제대로 시행되는 건 광주 밖에 없다고 하고.

  2. BlogIcon 커피믹스 2010.02.09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포츠에 무지한 저는 그런 사연이 있는줄 몰랐네요
    안타깝습니다. 응급처치만 했어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BlogIcon 칸타타~ 2010.02.10 08: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제 발인을 했다는데,
      이제 병상의 모습조차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민방위 훈련 가면 응급처치에 관한 부분을 교육받는데
      임수혁 선수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2009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지난 12일에 열렸습니다.

2009시즌 골든글러브 수상자 가운데
2000년대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들과 견줄 수 있는 선수는 누가 있을까요?
그리고 2000년대 통틀어 각 포지션 최고의 선수는 누구일까요?

[ 2009년 골든글러브 수상자 vs  2000년대 각 포지션 최고 선수 ]

각 연도별 선수들은 다음과 같이 표기하겠습니다.
'2009년 김상현 = 09김상현'

 


투수 부문

이름

이닝

평균자책점

승패

탈삼진

WHIP

00임선동

195.1

3.46

18승 4패

174

1.22

02송진우

220.0

2.99

18승 7패

165

1.15

04배영수

189.2

2.61

17승 2패

144

1.25

06류현진

201.2

2.23

18승 6패

204

1.05

07리오스

234.2

2.07

22승 5패

147

1.06

이름

이닝

평균자책점

승패

탈삼진

WHIP

09로페즈

190.1

3.12

14승 5패

129

1.27

09조정훈

182.1

4.05

14승 9패

175

1.33

09윤성환

166.2

4.32

14승 5패

131

1.18

 
2009시즌은 타고투저의 시즌이었습니다. 역대 최소승수 공동다승왕 3명이 배출됐을 정도로 2009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 후보들은 2000년대 이 부문 주요 수상자들에 비해 성적이 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14승 투수 3명 가운데 200이닝을 채운 선수도 단 한 명도 없었고, 평균자책점과 WHIP 역시 전체적으로 떨어집니다. 그런 가운데 2009년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은 예상대로 로페즈가 거머쥐었습니다.

위에 열거된 2000년대 수상자들은 모두 사연이 있습니다. 00임선동은 정민태, 김수경과 함께 한 팀에서 18승 공동 다승왕을 차지했었고, 02송진우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골든글러브를 거머쥐었죠. 04배영수는 시즌 중 꼴찌까지 간 팀을 준우승에 올려놨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역대 최초로 10이닝 노히트노런의 괴력을 발휘했었죠. 06류현진은 역대 최초로 투수부문 3관왕-MVP-신인왕을 동시에 석권하는 선수였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2000년대 최고 투수는 06류현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인으로서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르는 활약을 펼친 리그 최고의 에이스가 됐기 때문이죠. 특히 정상급 투수의 척도인 180이닝 이상 + 15승 이상 + 평균자책점 2점대 이하의 기록을 모두 달성한데다 200이닝 + 200탈삼진을 기록하여 역대 최고 신인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비록 리오스도 여러 시즌 좋은 활약을 보였고, 특히 07리오스 역시 류현진을 능가하는 성적을 올렸지만, 일본 진출 후 약물복용이 들통났다는 점에서 그에게 좋은 점수를 주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whip : 이닝당 출루허용수
평균자책점 = 방어율



포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박경완

0.281

40

95

7

0.419

0.615

1.034

9

03김동수

0.308

16

68

3

0.390

0.485

0.875

9

02진갑용

0.281

18

86

0

0.347

0.465

0.812

11

08강민호

0.292

19

82

2

0.365

0.485

0.850

6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9정상호

0.288

12

49

0

0.365

0.481

0.846

7

09김상훈

0.230

12

65

2

0.316

0.361

0.678

5

 
2000년대 최고 포수를 따져보면 00박경완이 독보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4연타석 홈런을 앞세운 40홈런은 역대 포수 최다 홈런입니다. 40홈런 이상 기록한 토종 선수는 장종훈, 이승엽, 심정수와 함게 단 4명 밖에 없습니다.

00박경완이 OPS에 있어서 1.000을 넘었다는 것은 괴물로 한 시즌을 보냈다는 증거이며, 더구나 그의 포지션은 포수입니다. 팀은 2000년대 최고승률로 우승을 했고, 자신과 호흡을 맞춘 투수는 18승의 공동다승왕이 됐죠. 실력이든, 운이든, 복이든 역대로 이보다 나은 시즌을 보낸 포수는 한국에서 전무후무합니다.

 03김동수, 02진갑용도 팀을 우승시키며 맹활약을 했고, 08강민호도 포수로서 좋은 방망이 실력을 뽐냈지만, 00박경완을 능가하는 수준은 아닙니다. 00박경완은 다음 시즌인 2001년에는 포수 최초로 20-20클럽을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역시 투수 부문처럼 2000년대 주요 수상자들에 비해 성적이 떨어집니다. 그런 가운데 09정상호와 09김상훈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데, 우승팀 프리미엄과 타점에 있어선 김상훈이,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등에서는 정상호가 각각 유리합니다. 

서로의 장단점이 수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누가 될 지 예측하기 쉽지 않은 가운데, 결국 김상훈이 웃었군요. 역시 우승 프리미엄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올 시즌 김상훈은 타율은 좋지 못했지만, 득점권 상황에서 활약만큼은 대단했습니다.

OPS : 출루율 + 장타율. 강타자 능력의 가늠하는 수치 중 하나

  

1루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2이승엽

0.323

47

126

1

0.436

0.689

1.125

4

03이승엽

0.301

56

144

7

0.428

0.699

1.127

5

06이대호

0.336

26

88

0

0.409

0.571

0.980

7

08김태균

0.324

31

92

2

0.417

0.622

1.039

2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9최희섭

0.308

33

100

2

0.435

0.589

1.023

5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은 이승엽이 KBO에 있던 시절 그가 석권하던 분야였습니다. 리그를 초월하는 기록들을 양산했기 때문이죠. 단순히 기록 자체만 보면 KBO에서 이승엽을 능가할 타자는 없어 보입니다. 최연소, 최소경기, 최단기간부터 시즌 최다, 최고까지 대부분의 홈런, 타점 기록을 이승엽이 갖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06년에는 이대호가 투고타저 상황에서 타격, 홈런, 타점 모두 1위에 오르며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고, 작년에는 김태균이 30홈런 고지를 밟으며 이름값을 했죠. 

어쨌건 역대 1루수 부문에 있어서는 이승엽이 독보적이긴 합니다만, 프로 프로 최초로 30홈런 돌파 + 프로 최초 20-20클럽의 김성한, 프로 최초로 40홈런 달성한 장종훈을 빼놓으면 안 되죠.

2009년에는 최희섭의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정상급 강타자의 조건인 3할 타율 + 30홈런 + 100타점을 모두 이루며 기아의 4번타자로서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게다가 또 다른 강타자의 조건인 타율 3할 + 출루율 4할 + 장타율 5할도 만족시켰습니다. 국내 복귀 후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뼈를 깎는 노력을 한 끝에 결국 이름값을 하네요. 박수가 아깝지 않은 선수입니다.

 

2루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박종호

0.340

10

58

9

0.428

0.490

0.918

16

09정근우

0.350

9

59

53

0.437

0.483

0.920

16

 
2009년 2루수 골든글러브 부문은 정근우가 수상했습니다. 09신명철이 2루수로서 20-20클럽에 가입한 것 역시 대단하긴 하지만, 09정근우의 기록을 보면 프로야구 역대를 두고 이야기할 만큼 월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0.350의 타율이면 타격왕, 도루가 53개면 웬만한 시즌 도루왕에 오를 만큼 훌륭한 기록을 쏟아냈기 때문이죠. 그리고 준우승한 소속팀 SK에서 타선의 핵심타자로서 제 몫을 다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올 시즌 SK타선의 에이스였죠.

09정근우의 이런 기록은 타격왕을 차지한 00박종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단일 시즌 기록만 따져보면 00박종호를 능가했다고 봅니다. 이 추세로 나간다면 정근우는 김성래, 강기웅, 박정태, 박종호과 같은 기라성 같은 2루수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수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유격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박진만

0.288

15

58

0

0.350

0.486

0.836

15

01박진만

0.300

22

63

9

0.380

0.507

0.886

25

04박진만

0.286

17

69

6

0.365

0.445

0.810

14

02브리또

0.283

25

90

1

0.355

0.499

0.854

22

03홍세완

0.290

22

100

7

0.347

0.483

0.830

13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9강정호

0.286

23

81

3

0.349

0.508

0.857

15

09손시헌

0.289

11

59

6

0.369

0.437

0.806

10

09나주환

0.288

15

65

21

0.364

0.440

0.804

15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유격수' 포지션만 떠올리면 박진만이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대표로서의 활약과 유격수의 수비를 따져봐도 현역 최고 유격수는 역시 박진만이죠.

그런데 2000년대 유격수 부문은 단일시즌만 놓고 보면 누가 최고인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우리 나라의 골든글러브는 외국처럼 수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베스트10의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에 공격력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컨데 03홍세완은 장종훈 이후 토종 유격수로서 20홈런 90타점 이상을 기록했고, 02브리또는 공수를 겸비한 25홈런 90타점의 성적으로 골든글러브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런 한 편으로 유격수는 전통적으로 수비가 중요시 되는 분야입니다. 포수와 함께 수비라는 의미를 생각하며 평가하는 자리가 유격수죠.

2009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은 나주환, 손시헌, 강정호의 경합 속에 실책이 가장 적었던 손시헌 선수가 수상했습니다.

강정호는 유격수로서 굉장한 타격을 선보였는데, 아직 20대 초반이니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2000년대 최고 유격수 중 한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저는 04박진만을 찍겠습니다. 골든글러브는 정규시즌의 기록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도 일정 부분 고려했구요.

또 한 가지.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배영수가 노히트노런하던 경기에서 현대가 패하지 않았던 것은 김한수의 중전적시타성 타구를 박진만이 다이빙캐치해서 아웃시킨 것이 결정적이었기 때문이죠. 사소해보이지만 유격수라는 자리를 깨우쳐주는 수비였습니다.

 

3루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김동주

0.339

31

106

5

0.414

0.603

1.017

17

09김상현

0.315

36

127

7

0.379

0.632

1.011

21

 
2009년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은 시상식전부터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그 주인공은 바로 MVP 김상현입니다. 2009년 최고의 3루수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성적은 2000년대 최고 3루수에 오를 만큼 엄청난 수준이죠. 나아가서 역대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3루수의 기록 가운데 최고의 성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00김동주와 견줘봐도 전혀 떨어지지 않은 성적입니다. 다만 김상현이 역대 최고의 3루수로 불리기 위해서는 꾸준한 성적과 수비 보강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비록 위의 기록에는 빠져있지만, 2000년대 3루수를 논하는데 있어서 김한수를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해태-LG에서 다시 기아로 이적하면서 설움 많은 야구인생을 보내던 중 정상의 자리에 차지했으니,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 라는 말은 김상현에게 써야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외야수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이병규

0.323

18

99

14

0.383

0.482

0.860

2

00박재홍

0.309

32

115

30

0.388

0.589

0.977

2

00송지만

0.338

32

92

20

0.409

0.622

1.031

5

01정수근

0.306

2

53

52

0.395

0.403

0.798

6

03양준혁

0.329

33

92

2

0.395

0.614

1.009

6

03심정수

0.335

53

142

6

0.478

0.720

1.197

5

03이종범

0.315

20

61

50

0.389

0.515

0.904

4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9박용택

0.372

18

74

22

0.418

0.582

0.999

3

09김현수

0.357

23

104

6

0.448

0.589

1.037

1

09강봉규

0.310

20

78

20

0.405

0.506

0.911

4

09이택근

0.290

15

66

43

0.408

0.467

0.875

5

외야수 부문은 내야수 각 부문에 비해서 골든글러브 수상 자격에 있어서 타격 성적이 좌우하는 바가 큽니다. 2009년은 타고투저의 성향이 짙었지만 홈런보다는 타율에 시선이 집중되었던 시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0.370대 타율의 박용택이 등장하는 바람에 역대 최초로 2년 연속 타율 0.350대 타율을 기록한 김현수가 타격왕을 수상하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2009년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은 09박용택, 09김현수의 양강체제 속에 나머지 한 자리를 두고 20-20클럽의 09강봉규, 타율 3할 + 43도루의 09이택근, 용병 클락의 3파전이 예상됐는데요. 결국 마지막 한 자리는 이택근의 몫이 됐습니다.

09박용택, 09김현수는 2000년대 최고의 외야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좋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2000년대 최고 외야수 3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03심정수, 00박재홍을 먼저 선택하고 03이종범, 00송지만, 00이병규 중 한 선수를 지목하겠습니다.



사실 선정된 선수 하나 하나가 대물급 선수들이라 평가내리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몬스터 시즌에 해당되는 선수를 두고 누가 낫다 못하다 평가내리는 것 자체가 실례일 수 있기 때문이죠.

대체로 외야수 자리에는 테이블 세터급이든 중심타자급이든 타선의 중추가 되는 선수들이 배치되는데요. 아무래도 펀치력 있고 타점을 휩쓸어줄 수 있는 선수가 높이 평가받습니다. 야구의 공격은 결국 루를 얼마나 먹고 가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출루율, 장타율, OPS를 따지는 것이겠죠.

다만 이종범, 이병규와 같이 다재다능한 선수들이나 정수근, 이대형과 같은 쌕쌕이류 외야수들은 거포형 외야수와는 다른 활약을 펼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런 선수들이 1~2명 포진되면 상대팀은 괴롭습니다.

폭발적인 장타력, 뛰어난 도루능력, 정확한 타격능력 등 타자로서 뚜렷한 자기 색깔을 갖고 있지 않으면 높이 평가받기 어려운 자리가 외야수입니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수비 능력도 외야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죠.

 

지명타자 부문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0우즈

0.315

39

111

4

0.414

0.605

1.020

2

02마해영

0.323

33

116

2

0.386

0.592

0.978

1

03김동주

0.342

23

89

3

0.450

0.581

1.031

5

07양준혁

0.337

22

72

20

0.456

0.563

1.019

1

이름

타율

홈런

타점

도루

출루율

장타율

OPS

실책

09홍성흔

0.371

12

64

9

0.435

0.533

0.968

0

09페타지

0.332

26

100

2

0.468

0.575

1.043

7

 2000년대 최고의 지명타자라고 하면 우즈와 마해영으로 압축되는 것 같습니다. 역대 최고의 용병 우즈와 2002년 한국시리즈 MVP 마해영. 그 가운데 00우즈가 좀 더 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20-20클럽 + 타격 2위를 달성한 07양준혁도 대단했고, 타격왕을 차지한 03김동주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지명타자로 기억합니다.

비록 타고투저의 성격이 짙었던 2009시즌이었지만, 개개인의 홈런수 증가보다 리그 전체의 홈런수 증가가 더 눈에 띄던 시즌이었죠. 때문에 소수 타자의 엄청난 홈런 양산이 이뤄졌다기 보다는 20홈런급 타자가 대거 출연한 것이 2009시즌의 특징이었습니다.

또, 앞서 언급한 바처럼 장타보단 타율에 초점이 맞춰진 시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언제 다시 3할7푼대 타자끼리 타격왕을 다투는 경우가 나올까요? 또한 언제 3할5푼 타율 이상 타자가 4명씩이나 나오는 일이 있을까요?

 시즌 막판의 '뜨거운 감자'였던 타격왕 논쟁 속에 홍성흔은 비록 2인자가 됐지만, 2009년 지명타자 부문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함으로써 2년 연속 타격 2위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성적으로 보면 09페타지니도 수상의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만, 타격 2위의 홍성흔에게 표가 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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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09.12.17 05: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축하합니다! 짝짝짝!
    내년에도 올해처럼 멋진 경기 보여주세요!
    올해 프로야구 최고였다능! >.<

  2. 콩콩 2009.12.19 09: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 놓고 보니까능 2003년에는 심정수가 대단해긴했네요.
    완전 날라다녔다고 표현해야 할까봐요.
    이승엽도 무시무시했든걸로 아는데 53홈런 142타점이라니
    엄청난 활약이었던것같습니다.

    • BlogIcon 칸타타~ 2009.12.19 1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03년 심정수는 역대 최강급이죠.
      물론 이승엽도 최고였지만.
      2003년만큼은 ~율에는 심정수가 우위였고
      ~수에는 이승엽이 앞섰죠.

      따라서 출루율, 장타율 같은 건 심정수가 우위
      홈런, 타점 같은 건 이승엽이 우위.

< 이종범의 역대 한국시리즈 활약상 완벽 정리 (3) >

이제 마지막 회인 1997년이군요.

3. 1997년 한국시리즈

1997년 정규시즌 5대 선수
홈런왕 포함 3관왕에 최연소 MVP 이승엽
다승왕 포함 투수 부문 3관왕 김현욱
타격왕 포함 타자 부문 3관왕 김기태
구원왕 야생마 이상훈
그리고 30-30클럽에 도루왕을 기록한 우승팀 해태의 이종범

1997년 한국시리즈는 말 그대로
이종범으로 시작해서 이종범으로 끝난, 이종범을 위한 시리즈였습니다.

설명 전에 잠시 이례적인 일이 있었는데요.
한국시리즈 1차전은 정규시즌 우승팀의 홈인 광주가 아니라 잠실에서 먼저 열렸습니다.

당시 규정이 이상했기 때문인데요.

서울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경우, 1,2차전은 잠실에서 치른다.

마침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온 LG의 연고가 서울(잠실)이었거든요.

그러나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잠실은 해태에겐 제 2의 홈이라고 할 만큼 팬들이 많이 찾아오셨거든요.

자, 그럼 97한국시리즈의 이종범을 찾아 떠나볼까요?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1차전 - 기선 제압의 선봉에 서다 ]

1차전 초반부터 이종범의 맹활약은 시작됐습니다.

3회 2사에 볼넷으로 출루한 이종범은 김용수의 예리한 견제에도 불구하고 2루를 훔쳤고
2번타자 장성호의 볼넷 때 포수 김동수가 지나치게 이종범을 의식하다
공을 빠트려(패스트볼) 3루에 무혈입성했습니다.

이렇게 배터리가 모두 불안한 상황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LG는
최훈재에게 적시타를 맞고 선취점을 내주고 맙니다.

이후 LG의 반격으로 1:1 동점이 된 5회 2사에 등장한 이종범,
김용수의 변화구 실투를 받아쳐 좌중간으로 역전 아치를 그려냈죠.
당시 1루를 향하면서 두 팔 벌려 스스로 감격한 모습, 기억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장수들끼리 1:1 대결을 펼친 뒤,
그 결과에 따라 전투의 승부가 압도적으로 기울어져 버리죠.

그 당시 해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봉에 선 이종범이 공격의 물꼬를 터주자 나머지 선수들도 덩달아 힘이 난 듯
너도나도 방망이가 터지기 시작했고 결국 6:1로 1차전을 잡아냈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해태는 9번 김종국을 제외한 선발타자 전원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이날 이종범은 수비에서도 2루수 김종국과 함께 병살타 3개를 이끌어내며
키스톤 콤비로서 찰떡 궁합을 과시했습니다.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3차전 - 결정적인 한 방, 기울어진 시리즈 ]

'비수를 꽂는다'는 뜻이 무엇인지 보여준 3차전이었습니다.

3차전은 광주에서 열렸습니다.
해태는 조계현, 강태원으로, LG는 손혁, 김기범, 차명석으로 짠물투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1:1로 동점이던 7회말 1사 1루 상황,
LG는 간판투수이자 마무리인 이상훈 카드를 꺼내듭니다.
이상훈과 이종범... 두 거물의 맞대결이 최고의 무대인 한국시리즈에서 펼쳐진 것이었죠.

이 승부에서 이기는 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했었습니다.
한국시리즈 전체 판도를 좌우할 만큼 말이죠.
그런데 이 승부는 어떻게 됐을까요?

결국 이종범이 역전 결승 2점홈런으로 사실상 승부에 종지부를 찍어버렸죠.
6회 전타석에서 차명석에게 뽑아낸 동점홈런까지 포함, 연타석홈런 기록까지 달성했습니다.

* 한국시리즈 연타석홈런 - 한국시리즈 3차전 (1997년 10월 22일, 역대 3번째)
  기존 기록자들 - 김성한(1989년), 이건열(1991년)

* 한국시리즈 최다홈런 - 3개 (당시 기준으로 타이)
  당시 기존 기록자들 - 김유동(1982년), 김성래(1986년)
  현재 한국시리즈 최다홈런 - 4개, 우즈(2001년)


97년 한국시리즈 이종범의 공을 높이 살 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사실상 시리즈의 맥이 되는 1차전, 3차전을 잡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두 번째 엘지가 자랑하던 주요 투수력을 홈런포로 모두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당시 에이스-핵심불펜-마무리이던 김용수, 차명석, 이상훈을 각각 차례로 말이죠.
(1차전 - 김용수, 3차전 - 차명석, 이상훈)

* 1997년 LG 트윈스 주요 투수
97김용수 : 177이닝 12승 투수로 11승을 거둔 임선동과 함께 원투펀치.
97차명석 : 기교파 투수이긴 했지만 당시 정현욱, 전병두와 같은 핵심 불펜투수로 구원 11승
97이상훈 : 47세이브포인트로 당시 시즌 세이브포인트 기록을 세움
(세이프포인트 = 구원승 + 세이브, 2004년부터는 세이브만 계산함)

→ 당시 LG는 10승 투수가 김용수, 임선동, 차명석, 이상훈으로 4명이었습니다.


이미 삼성과 5차전을 치르면서 지친 LG 트윈스로서는
그들이 자랑하던 투수력이 일거에 무너지는 바람에
3차전 이후 내리 연패를 당하며 시리즈가 끝나고 맙니다.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5차전 - 유종의 미 ]

드디어 왕좌에 등극한 5차전이었습니다.


4차전 승리로 사실상 승부가 기울어졌지만,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요기 베라의 말처럼
마지막 마침표 하나를 찍을 때까지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죠.

* 한국시리즈 최다도루 - 13개 (93년 7개, 96년 4개, 97년 2개로 타이)
  기존 기록자 - 이순철 13개

0:1로 뒤진 3회에 김종국이 볼넷을 골라 출루한 뒤, 이종범은 안타로 터뜨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일단 이종범이 나간다는 건 상대팀에겐 매우 불안한 실점 위기임을 뜻했죠.

실제로 LG에서 한국시리즈의 유일한 승리투수였던 임선동도 흔들릴 수 밖에 없었고
장성호 내야 땅볼, 최훈재의 2루타 등으로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LG는 여기에서 빼앗긴 승기를 되돌리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끓었죠.

시리즈 내내 공격, 주루 뿐만 아니라 수비에도 발군의 실력을 보인 이종범은
5차전 승리를 통해 한국시리즈 우승과 함께 MVP에 오릅니다.
팀 동료 이대진과의 경쟁에서 총 45표 중 33표를 차지했습니다.


< 에피소드 >
한국시리즈 5차전의 승리투수는 故 김상진 투수였습니다.
그 당시 역대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을 기록했죠.
그러나 아쉽게도 위암으로 너무 일찍 야구팬 곁을 떠나버렸죠.
1999년 6월 10일, 만 22세의 나이로.

1997년 한국시리즈를 볼 때마다 이종범의 맹활약, 이상훈의 아픔, 故 김상진의 역투
이 세 가지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더군요.

▲ 출처 : 기아 타이거즈

그동안 이 시리즈를 읽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다른 시즌 한국시리즈의 이종범
(1) 1993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2) 1996년 한국시리즈의 활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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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Mr.번뜩맨 2009.10.20 10: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대단한 선수군요. 잘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

  2. BlogIcon 달콤시민 2009.10.20 17: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는 잘 모르지만.. 이종범 선수는 알아요!
    아버지가 해태타이거즈 팬. 지금은 기아..
    초등학교때는 화창한 토요일에 학교 다녀오면 2시부터 늘~~ 티비에서 야구만 해서 좀 싫었었는데 ㅜㅜ
    어느정도 크면서 박찬호 선수도 알게되고, 최희섭 선수도 알게되고, 좋아하는 선수가 생기니까 잘은 몰라도 야구도 좋아하게 되더라구요.
    가장 안타까운건, 저희 동네 야구팀이 없다는거 흑흑 ㅜ

  3. ㅎㅎㅎ 2009.11.26 18: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야구 제일 잘하는 사람은 1번타자인줄 알았던 시절....그립습니다.

  4. 박종욱 2010.02.03 19: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좋네요 잘보고갑니다 퍼갈게여